글제목 : 서평의 시작 - 책 읽기 조회수 : 3856
글쓴이 : 알지 날짜 : 2014-04-01 21:41:00 추천 : 0

서평의 시작 - 책 읽기

 

왜 책을 읽을까? 너무나 당연한 질문은 답이 궁색하기 마련이다. 마치 왜 사는가?’라는 물음처럼. 어떤 산악인은 산에 오르는 이유를 산이 있으니까로 답한다. 마찬가지로 책이 있으니 읽는다고 답할 수 있겠다. 반면에 점점 사람들은 책 아니어도 인터넷에서 읽을 것이 많은 요즘, 굳이 책을 읽어야 하냐고 말한다. 새로운 책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인터넷에서 정보가 홍수처럼 범람하며 독서 율을 낮추고 있다고들 말한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취미가 독서인 사람이 국민의 절반이었다. 그 때는 독서의 의미가 자못 명확했다. 지금처럼 독서의 의미가 혼란되는 시기에, 그 의미를 찾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은 우리가 해 온 책 읽는 행동에 담긴 의미를 톺아보는 것이다. 가장 쉽고도 명확하게 접근하는 방법은 한글자로 독서를 표현해보는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가 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로 ()’의 의미로 책 읽기를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앎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이해할 때의 말이다. 인터넷에서 말하는 정보는 소식의 전달 혹은 공유를 의미로 시작했다. 다양한 커뮤니티의 발달로 정보의 의미가 콘텐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포털들은 정보의 소재지를 알려주는 검색 중심에서 회원들의 카페, 블로그 등의 콘텐츠 생산으로 발전했다. 앎의 의미를 가장 극대화한 경우가 지식인으로 대표하는 지식 묻고 답하기이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지식인의 정보가 인터넷에 있지만, 지식 정보 책들은 여전히 유통된다. 정보의 정확성, 저자에 대한 신뢰도 등도 이유가 되겠지만, 지식 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맥()이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콘텐츠의 차이도 맥의 존재 유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많은 구슬이 꿰어진 구슬을 대체할 수는 없다.

앞에서 말한 국민의 취미라고 했던 독서는 ()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의 연재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시대에는 주로 소설이 대상이었다면, 최근에는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과 만화를 주로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는 독서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만화가 지금은 집에 놔두고 보는 소장가치가 있는 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전히 만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문사회와 같은 어려운 분야도 만화를 통해 표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런 경우는 재미가 독서의 중심인 것은 아니다. 다만, 재미와 흥미를 통해 독자를 끌어당기는 것은 분명하다.

앎과 락은 독서에서 무시 못 할 의미이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를 꼽는다면 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진시황은 전국을 통일할 때 법가의 전통을 세웠다. 그에게는 가장 큰 위협요소가 유가의 철학이었다. 잔악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분서갱유는 유가의 철학을 막고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할 목적의 치세 술이기도 했다. 화형의 대상이었던 종교개혁운동이 안착한 것도 출판의 힘이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도 책을 통해 윤리를 일반백성에게 가르치려 한 목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드레퓌스 사건을 반전시킨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의 사례도 있다. 우리 헌법에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것도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자유를 보장한 것이다. 삶의 전환점을 가져오는 독서의 이런 힘은 사람들에게 그때까지 살아온 세계의 암흑에서 벗어남 혹은 자신의 선입견에서 새로운 깨어남을 준다. 안타깝게도 이런 깸의 독서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삶은 촘촘히 짜인 그물속의 물고기처럼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있다. 더군다나 깸은 곧 을 가져오기도 한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읽은 독자는 그 내용에 공감과 새로운 삶의 방향을 느꼈다고 해도 이미 버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삶에서 더 짐을 지는 것을 거부 혹은 회피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이후에는 점점 그 분야의 책을 가까지 하지 않게 될 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물이나 짐에서 벗어날 방법을 돈에서 찾는다. 권력을 찾을 수도 있지만 권력조차도 돈과 관련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돈이 해방의 열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돈과 관련된 책은 끊임없이 읽힌다. 재테크, 경매, 회계 등 직접적인 것 외에도 적은 돈으로 집짓기, 쉽게 할 수 있는 인테리어 등이 읽힌다. 내면적 문화 보다는 표현되는 문화를 더 크게 생각하는 시대에, 이에 도달 할 수 있는 적은 돈이라는 화두는 독서의 유인이 된다. 어린이 책에서도 경제 분야 책이 늘어가는 것도 어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돈의 경제학 이데올로기가 들어가는 이유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직업의 세계를 안내하는 책도 마찬가지이다. ‘을 키우는 독서로 들어갈 자리가, 현실적으로 직업의 세계를 안내하는 독서가 들어간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일 지 모르지만, 평가되는 물질적 가치는 언제나 사라질 수 있고 왜곡될 수 있는 반면에 꿈은 그렇지 않은 것이 망각되고 있다.

결국 모든 독서는 우리 삶과 관련이 있다. 시대에 따라 트렌드가 나타나는 것은 독서가 삶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IMF때 아버지와 관련된 책이 쏟아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공지영의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어머니를 주제로 한 책이 나타난 것은 삶의 모순이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넘어감을 보여준다. 그 후에 청년을 트렌드로 하는 책이 유행해 지금까지 팔린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이라는 트렌드를 보여주는 책들은 삶의 거울이 아니라 삶을 왜곡할 수도 있는 문제점이 있다. 경제와 정치가 성장하던 시기를 살았던 세대가 88만원 세대에게 주는 내용은 위안의 달콤함은 줄지언정 삶을 비추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빛바랜 위안이 가린 탓인지 정작 비정규직이나 취업 예비생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쓴 책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결국은 기대를 품게 한 것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공감대가 나올 때까지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독서의 의미를 찾은 것은 왜 우리가 책을 읽는 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서평자체의 의미를 찾기 전에 기본 디딤돌인 독서를 찬찬히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선택해서 읽는 행위가 바로 서평의 시작이다. 왜 읽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안다면 서평은 이미 반이 써진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