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나는 네가 내년 여름에 할 일을 알고 있다? 조회수 : 1569
글쓴이 : 박옥균 날짜 : 2012-10-06 16:04:00 추천 : 0

나는 네가 내년 여름에 할 일을 알고 있다?

버스트

한때 ‘조지는 어디에 (Where's George?)’라는 웹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 문구가 찍힌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가 그려진 1달러 지폐를 갖게 되었다고 하자. 궁금해서 포털 검색창에 입력하면 동일한 이름의 사이트(www.wheresgeorge.com)가 있다. 지폐의 일련번호와 위치를 기록하면 내가 할 일은 끝난다. 그 기록이 모이면 ‘그 조지’가 어느 지역에 있다가 온 것인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돈의 흐름을 알게 되는 것일까? 돈을 쓰는 사람들의 관계를 알게 될 수 있을까?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이 풀어질 것 같은 희망이 싹텄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돈의 이동경로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다고 네이처 등 유명잡지에 실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당시에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돈의 주고 받음이 사람간의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바이러스의 전파와 유사하다는 것이 설득력을 준다. 다만, 돈 자체가 바이러스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성에 대하여 증명해야 할 일이 남았다. 과학자들이 왜 이런 일에 집중할까? 과학은 자연의 현상을 단순화해 본질의 이치를 깨달아가는 학문이 아닌가. 과학 중에서 특히 물리학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후에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제 복잡한 현실 자체를 연구대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이름 하여 복잡계 과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재승 교수가 복잡계 과학의 전문가이다.

 

이렇게 됨에 따라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영역이 모호해졌다. 특히 사회가 급격히 네트워크라는 기술적 장치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됨에 따라 인문 자체도 과학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인문학이 고전 과학론에 기반을 둔 ‘과학적 사회 분석론’을 부정하고 그 자리에 ‘포스트’라는 이름이 추가되면서 형이상학적 기류로 바뀌며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과학자들이 인문과학의 영역인 사회 분석에 ‘네트워크 분석’이라는 내용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그 대표주자의 한명이 《링크》로 유명한 앨버트 리슬로 바라바시이다. 세 단계만 건너면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연결된다는 이야기는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그의 과학적 분석이 큰 힘을 보탰다. 더 나아가 그는 《버스트》(동아시아)에서 인간 행동은 대부분 예측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바라바시는 “위성항법장치(GPS)로 스마트폰 이용자의 이동 데이터를 수집해서 분석해봤더니 90% 확률로 그 사람이 다음 주 월요일에 어떤 장소에 있을지 예측하는 게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종교와 철학에서는 한 마디 할 법하다. ‘내일 일도 모르면서’ 다음 주는 어떻게 알 것인가? 일주일에 무수히 많은 우연이 존재할 터이니, 타당한 지적이다. 다만 이 네트워크 과학자도 할 말은 있다. 알 수 있는 것은 장소이고, 그 장소도 온전히 아는 것은 아니고 확률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뛰어난 법조인 못지않게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놓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알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신문 사회면에 범인을 잡은 기사를 자세히 본 사람들은 이제 셜록 홈즈의 자리에, CCTV나 핸드폰 위치추적과 네트워크 접속 흔적이 있음을 알게 된다. 탐문과 날카로운 추리로 범인을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확보된 디지털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이제 고단수 범죄자는 손가락 지문을 지우고 알리바이를 위해 지인과 약속하는 것 뿐 만아니라, 대포폰과 대포차를 가지고 움직이고 CCTV자리를 확인해야 한다.

 

범죄를 꾀하지 않는 일반인들은 그럴 일이 없으니 그들의 움직임의 패턴은 쉽게 알 수 있다. 바라바시는 사람의 행동패턴이 분석된 틀에서 80%정도 일치한다고 말한다. 더 세밀하게 들어간다면 80%라는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행동 패턴의 기록을 분석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가 힘들수록 사주를 많이 보는데, 사주도 사실은 통계라고 보기도 한다. 우주의 기운과 사람의 운세의 연결이라고 하지만, 그 우주의 기운은 태양계의 운동이다. 수 억 년 동안 예측할 수 있는 흐름을 보여 온 태양계의 흐름을 통해 개인의 운세를 본다는 것도 사실은 이 통계의 비밀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다만, 패턴에서 벗어난 10%가 결과를 다르게 할 수 있다. 또 2%만 패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면 내년 여름에는 삶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