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멱함수’로 바라본 새로운 세상 조회수 : 2734
글쓴이 : 박옥균 날짜 : 2012-06-12 12:25:00 추천 : 0



‘멱함수’로 바라본 새로운 세상


막대기를 모래성에 꽂아놓고 모래를 조금씩 빼내는 놀이가 있다. 게임의 묘미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래를 조금 빼낸다거나 많은 쪽에서 빼낸다고 막대기를 안 넘어트린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때가 되면 넘어질 뿐이다. 거꾸로 쌀 한 톨씩을 유리위에 떨어트린다고 해보자. 쌓여가던 쌀 무덤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느 순간에는 무너질 것이다. 어떨 때는 조금 무너져 내릴 것이고, 어떤 때는 크게 무너져 내릴 것이다. 언제 어떻게 무너져 내릴 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즐겁게 생각할 수 있는 이런 게임을 벗어나 실제 우리 삶의 상황들에 접근하여보자.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지진 예측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의 경우 지진 예측정도는 어느 정도 일까? 고베와 후쿠시마의 큰 사상자와 손실은 그 예측 능력의 한계를 알 수 있게 한다.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왔음에도 지진을 비교적 근사하게라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은 그 이유로 흔히 작은 것에도 아주 복잡함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LA에서 나비의 날개 짓이 북경에 폭풍을 일으키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카오스이론이 대표적이다. 카오스 이론을 역사에 적용해보면, 1차 세계 대전이 한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모든 오스트리아 대공이 살해함으로써 일어났다는 가설을 증명해주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럴까? 여기에 흥미로운 반론이 있다. 리히터 지진계로 유명한 리히터와 구텐베르크는 오랫동안 지진에 대한 연구를 통해 피해 규모와 그 발생주기는 멱함수적인 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즉 규모가 10인 지진에 비해 5인 지진은 4배 정도 자주 일어난다. 이 법칙은 앞에서 행한 쌀을 떨어트리는 실험에서도 적용된다. 마크 뷰캐넌은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지호 출판)에서 산불과 생명체의 멸종에서도 멱함수 법칙은 꽤나 들어맞음을 실증한다. 큰 변화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랫동안의 쌓음을 통해 축적된 것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1/2 크기의 사건보다 자신은 4배 (혹은 6배 등) 만큼 늦은 주기로 나타난다.

멱함수 법칙은 복합적인 다양한 원인들로 구성된 복잡계를 이해할 명확하고 실질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산불을 생각해보자. 오랫동안 불이 나지 않은 산은 큰 산불이 날 확률이 높다. 숲은 노령화되어, 늙은 나무들이 많고 죽은 나무, 나뭇잎들이 축적되어 큰 불이 잘 날 수 있는 ‘초임계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작은 산불은 오히려 큰 산불 예방에 효과가 있다. 결국 작은 산불은 큰 산불로 나아갈 수 있는 ‘스트레스’의 축적을 풀어냈기 때문에 오히려 큰 산불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멱함수 법칙을 인간사회로 투영해 보면 어떻게 될까? 전쟁도 그 인명 피해 규모와 발생주기가 멱함수에 일치하게 나타난다. 전쟁 시기마다 다른 인구를 보정하여 살펴보아도 멱함수 관계는 일치한다. 그렇다면 멱함수 법칙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단이 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는 가장 유력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이 역사와 사회현상에 해석한다는 것에 대해 반감이 있을 수 있다. 자유로운 인간의 선택과 자연의 발생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 자신의 입장을 옹호한다. 미국 도시 분포를 보면 동부와 북부에서 대형도시가 발생하였지만, 그 도시 인구 규모와 그 인구에 해당하는 도시 수의 관계는 멱함수에 일치한다.

멱함수 법칙을 사회적 긴장감과 급격한 변화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쌓였던 분노를 풀어낸 중동의 변화는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끊임없이 빈부격차가 커지고, 기득권이 고착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가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원인을 계속 축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