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너무합니다 조회수 : 1698
글쓴이 : 박옥균 날짜 : 2012-02-10 11:37:00 추천 : 0



너무합니다


대마(大馬)는 불사(不死)합니다. 바둑에서는 흔히 바둑돌의 움직임을 행마라고 하는데, 움직이는 마(馬)가 클 경우에는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때로는 대마가 죽고, 때로는 대마만 남고 상대방의 집이 거의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실력차이가 월등한 경우에 나타납니다. 이런 경우가 승자독식(勝者獨食)이지요. 승자가 다 가지고 가면 패자는 가질게 없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없는 일이죠. 이런 것을 두고 그래도 그것은 경쟁이라도 해봤지 않느냐고 하는 말이 나올 일이 요즘 벌어지고 있습니다. 재벌이 모두 가져갑니다. 동네 구멍가게도, 대기업체 납품도 다 기업주 가족이 가져갑니다. 노력도 경쟁도 이윤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한겨레신문에는 몰락하는 권력을 보며 자본은 영원하다는 내용의 그림 만평이 실렸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고사성어는 이제 사라지는 언어가 될 지경입니다. 아름다운 꽃도 십일을 가지 않고 만인지상(萬人之上)같은 권력도 십년을 가지 않는다는데, 자본 권력인 재벌은 3족(族)이 대대손손(代代孫孫) 부귀와 영화를 모두 누릴 모양입니다. 크게는 재벌이 눈에 띄지만, 작게 보면 이런 일이 어디 하나 둘이겠습니까? 출판도 자유롭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대형 출판사들이 외국에 스카우터를 둔다는 기사가 났었습니다. 외국 번역물의 로열티를 경쟁적으로 올려놓아, 중소형출판사들은 큰 맘 먹지 않으면 괜찮은 외국 저작물을 엄두도 못 냅니다. 설상가상으로 스카우터가 미리 점찍어 놓으니 아예 꿈조차 꾸지 못할 일입니다.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서구 선진국의 위선을 하나씩 비판합니다. 그들의 거짓말. 하지만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정답으로 알고 있는 그 주장들. 말하느니 선이요 행동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들. 공자가 보면 소인(小人)의 전형이라 할 만한 일들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단순히 ‘사돈이 땅을 사면 배아프다’였으면 좋겠습니다. 재벌이 돈을 안 벌면 나라가 망한다는 거짓말에 속아도 참을 만큼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합니다. 자식들에 사촌에 온갖 이익을 퍼다 주며, 자기 기업에는 비정규직을 이용해 비용을 아낍니다. 건강한 중소기업도 혈연 기업들의 하청기업을 만들어,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듭니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세계최악의 기업 3위에 뽑혔습니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스위스와 스위스 시민단체 ‘베른 선언’이 지난 26일(현지시각)까지 온라인 투표를 벌인 결과입니다. 아마존을 망치며 원주민 4만 명을 강제 이주시킨 광산기업 ‘베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안전을 무시해 방사능 오염을 일으킨 ‘도쿄 전력’에 이어 삼성이 3위에 올랐습니다. 삼성전자가 오른 이유는 노동자 140명이 암 진단을 받고 50명이 사망한 것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삼성의 막강한 권력은 사회적으로 이 문제가 이슈화되지 않게 막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그만한 숫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발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출판에서도 흉흉한 소문들이 많습니다. 한 대형출판사의 대표는 직원이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하다가, 이에 항의하는 직원들을 해고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또 어떤 출판사는 한겨울인데도 실내온도가 10도로 맞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물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진보성향의 출판을 하면서도 돈을 벌면 대표가 가져가고 어려워지면 직원이 해고되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극히 일부의 일일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적은 지분으로도 엄청난 부를 누리는 재벌들, 함께 일하였음에도 과실의 일부도 함께 나누지 않는 중소기업들, 어쩌면 이것은 진보적 가치의 책을 내면서도 내부는 관료적이고 자본적인 출판사들에게 묻는 말은 아닐런지요. 이런 ‘나쁜 기업’들을 솎아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하니까요.

* 이 글은 <책방나들이>에 썼던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