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고양이의 입을 빌어 선검일치를 말하다 조회수 : 3622
글쓴이 : 김보일 날짜 : 2011-05-18 11:52:00 추천 : 0



고양이의 입을 빌어 선검일치를 말하다


선검일치(禪劍一致), 다선일미(茶禪一味). 도를 닦는 것이나 칼을 쓰는 것이나 한 가지요, 차를 마시는 것과 도를 닦는 것이 한 가지다. 결국 수행의 세계나 차를 마시는 세계나 칼을 쓰는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겠는데 또 누구는 선(禪)과 묵(墨)도 다르지 않다고 하니[禪墨一致], 조금 더 과장되게 말한다면, 주먹과 도가 다르지 않고[禪拳一致], 농사와 도가 다르지 않다면[禪農一致], 세상의 모든 일이 도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저 평상심이 모두 도라고 해도 무람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고. 덧붙이자면 마라톤도 도고, 모터사이클도 도다.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란 기발한 책을 쓰지 않았던가. 선과 모터사이클이라, 그 그로테스크한 조합이 신선하다.

『고양이대학교』는 칼을 쓰는 일이 선을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선검일치(禪劍一致)의 사유를 쥐와 고양이와 같은 모족(毛族)의 일에 빗대고 기대어 풀어내고 있다. 조우성이란 시인은 그의 시 <칼>에서 쓰고 있다.

한 사람의 비장한 칼은 그 날을 갈고 또 갈아야 하느니
이가 빠진 이 세상에선 하나 마음 기울여 손 볼 칼뿐이로다.
아 그러나 누가 저의 피를 달구고 두드려 달빛에 싯푸른 그 적막함을 아느뇨


마음을 벼리고, 갈고 다듬고, 쓴다는 것이 칼을 손질하고 부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겠는데, 칼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타이핑의 초보자라면 자판이 인식되겠지만(자판이 인식되면 오타는 필연이다.) 어지간히 능숙한 타이피스트라면 자판을 잊는다. 달인과 고수는 도구를 잊는다. 체화된 인지라던가. 기억은 뇌에만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몸, 여기저기에도 저장된다.[心身一致]. 발은 길을 기억하고, 손은 뺨을 기억한다. 만리동 고개 성우 이발소 이남열씨는 하루 종일 이발을 해도 손의 피로를 모르는 고수다. 가위와 손이 하나가 된 경지를 터득했으니, 뭣이든 지극하면 하나가 되는 법이겠다.

도구가 인식된다는 것은 공부에 부족함이 있다는 이야기겠다.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 곧 무심(無心)이지 않을까. 칼을 쥐었으면 칼을 잊고 붓을 쥐었으면 붓을 잊어라! 손에 쥔 것과 손이 하나가 되게 하라. 이런 류의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늙은 고양이가 내뱉는다. 유불선이 고루 녹아있고, 칼과 선이 하나로 녹아 있고, 우화와 경전이 하나로 스며있다.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경지가 바로 이런 것인지. 맑고 드높은 것을 속가의 쥐새끼나 고양이 새끼의 입을 빌어 말하는 이 대승적인 말하기 방식을, 묘리(妙理)를 터득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일이다. 일독을 권한다. 꼭대기에 오르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데, 깨달음도 문제지만 그것을 전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신경 좀 써달라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