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선인들의 공부법 VS 너희는 공부가 즐겁지 않느냐 조회수 : 3333
글쓴이 : 김보일 날짜 : 2010-04-13 11:43:00 추천 : 0



선인들의 공부법 VS 너희는 공부가 즐겁지 않느냐


즐거움이 사라진 공부

얼마 전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죠.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현실에서 공부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한 가닥 위안은 됩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유쾌한 것만도 아닙니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공부는 결국 입시에서 성공하자는 공부일 뿐, 자신과 세계에 대한 성찰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공부 같아보이지는 않아서였기 때문입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보면, 일류대학에 가는 공부법, 성공하는 공부법, 상위 1프로가 되는 공부법 등 승자독식, 우승열패의 세계관을 암암리에 강조하는 내용 일색입니다. 경쟁은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피곤한 작업이요 노동입니다. 당연히 거기에 즐거움은 없습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 도합 16년의 공부에, 직장생활 중에는 ’교육‘이니 ’연수‘니 하는 이름으로 또 공부를 하게 되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긴 공부의 기간에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까요?

논어(論語)의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않으랴.”로 풀이되죠. 유학자들에게 있어서 공부는 무엇에 비길 수 없는 즐거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의 공부는 어떤가요.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학원, 과외로 이어지는 입시교육에서 과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학생들이 몇 명이나 될는지요. 어떤 일이든 그것이 즐겁기 위해서는 스스로 내켜서 하는 것이어야지 마지못해 하는 일이어선 안 되겠죠. ‘자율학습(自律學習)’은 말 그대로 스스로 하는 공부이지만 실제의 자율학습은 강요된 학습, 마지못해 하는 학습이 아니던가요? ’과외(課外)‘라는 말은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과정 이외의 공부라는 뜻이지만 실제는 어떤가요? 교과 학습의 연장이요 심화일 뿐입니다.

학원이나 과외를 남들은 하는데 내가 하지 않으면 왜 불안할까요. 바로 경쟁에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죠. 이렇게 공부가 경쟁의 도구가 되다 보니 공부 본연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만 거죠.


학문 그 자체를 즐겼던 선인들의 공부

그렇다면 선인들의 공부는 어땠을까요? 박희병의 『선인들의 공부법』은 바로 그러한 의문에 대한 답입니다. 공자로부터 맹자·주자·이이·이황·최한기에 이르기까지 선인들의 공부에 관한 명구들을 가려 뽑은 이 책은 일상생활의 언행,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독서의 방법과 자세, 마음을 다스리는 법, 사물을 궁구하는 방법 등의 공부의 모든 것을 소상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주자(朱子)는 “공부하는 자는 모름지기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요, 얻는 것을 계산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지, 학문으로서 돈과 지위와 명예와 같은 것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의대, 법대, 경영대와 같이 소위 ‘돈이 된다는 학과’에는 학생들이 몰리는 것만 보아도 오늘날의 학문은 ‘얻는 것을 계산하는 마음’으로 선택되기 일쑤죠. 사상 유례가 없는 취업란 앞에서 ‘돈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크게 이상하다고 할 이유는 없겠지만 인문학은 학문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경제적 부가가치로 그 가치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죠.

율곡 이이(李珥) 또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항상 그 마음을 학문에 두어야지 다른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반드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선(善)이 무엇인지 분명히 안 다음에야 마땅히 나아갈 길이 앞에 훤히 나타나서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해야 하며,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 성현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아야 할 선과 경계해야 할 악이 모두 책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학문에 두어야지 다른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곧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멀리하라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의 과도한 교육열은 따지고 보면 일류대학에 가서 안정된 수입원을 보장받기 위한 몸싸움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학문의 열기가 아니라 경쟁의 열기일지도 모릅니다. 아파트 청약을 둘러싼 부동산 열기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선인들을 보면 학문의 목적을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에 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약용도 그랬죠. 천주교 탄압 사건인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정약용의 집안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됩니다. 형인 정약종과 매형 이승훈, 조카사위 황사영이 목숨을 잃고, 정약종과 정약용은 유배 길에 오르게 되죠. 이 일로 정약용의 자손들의 과거길까지 막히게 됩니다. 이때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廢族]의 자손”이니 “너희들은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났구나.” 독서는 “위로 성현과 짝할 수 있고, 아래로 뭇백성을 깨우칠 수 있으며, 그윽하게는 귀신과 통할 수 있고, 밝게는 왕도와 패도의 방략을 터득하여 우주를 지탱할 수 있는 것”이니 부디 수불석권(手不釋卷), 책을 손에서 놓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문장가가 되는 일은 꺼릴 게 없지 않으냐.” 다산은 편지를 통해 준엄하게 아들들을 꾸짖습니다.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려는 공부가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그런 공부를 하라고 말입니다.


생활의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는 공부

정약용의 공부는 치열한 것이었죠. 언뜻 보기에도 그의 공부는 종교에서의 수행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주역』한 가지 책만을 책상 위에 두고 밤낮으로 마음을 가라앉혀 탐구했더니, 계해년(1803년) 늦봄부터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 입으로 읊는 것,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붓으로 베껴 쓰는 것에서부터, 밥상을 대하고 뒷간에 가고 손가락을 퉁기고 배를 문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주역』이 아닌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치를 환히 깨달았다.” 생활의 모든 것을 공부 하나에 집중시키는 무서운 공부법이죠.

철의 녹는점은 섭씨 1200℃-1300℃이라고 하죠. 그런데 1300℃의 열을 가한다고 철이 녹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00℃의 열을 가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200℃의 열을 가하고 또 시간이 지난 후 700℃의 열을 가하더라도 철은 녹지 않습니다. 철은 일시에 집중적으로 1300℃의 열이 가해졌을 때 녹습니다. 정약용에게 공부도 그러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그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았습니다. 생활의 모든 국면을 『주역』과 연결시켰다는 그의 고백이 이를 잘 말해주지요. 가진 것을 하나에 쏟는 것을 영어로 "올인(All in)"이라고 하던가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올인의 열정 앞에 사교육이 필요하겠습니까, 보충수업이 필요하겠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서경덕이 『화담집』에서 말한 바 있는 단정하게 앉는 자세가 필요했겠지요. 서경덕은 약불위좌(若不危坐)면 사려불일(思慮不一)하고 사려불일(思慮不一)이면 불능궁격(不能窮格)이라했습니다. “만약 바르게 앉아 있지 않으면 생각이 한결같지 않고, 생각이 한결같지 않으면 이치를 연구할 수 없다.”는 말이죠. 바른 자세가 공부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나쁜 자세는 어깨나 목 근육의 경직을 불러 오고 심한 경우 요통을 유발하고, 이는 곧 학습능력의 저하로 이어지니 바른 자세를 강조하는 선인들의 말씀을 잔소리라고 일축할 수만도 없을 것 같네요.


알묘조장(揠苗助長), 급하게 목적을 이루려는 조급증

『맹자(孟子)』에는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에 있었던 한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 농부가 봄에 볍씨를 뿌려놓고 그 싹이 잘 자라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밭에 나가서 싹이 빨리 자라지 않음을 안타까워했죠. 그러다가 그는 벼를 빨리 키우고 싶다는 욕심으로 기어이 벼의 싹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자랑스러운 듯 "오늘은 내가 정말 피곤하다. 곡식이 자라는 것을 내가 도와주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 하였죠. 이 말을 듣고 다음날 그의 아들이 논에 가서 보니 곡식의 싹은 모두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가 벼의 싹을 뽑아 벼의 성장을 돕는다는 알묘조장(揠苗助長)의 고사성어입니다. 이 이야기는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데 있어 급하게 서두르거나 억지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의적으로 가르친 내용이죠.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것도 바로 ‘알묘조장’의 어리석음이요, 중학생이 고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미분과 적분을 미리 하는 선행학습도 이런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조급증 때문에 우리는 순리를 무시하곤 하지요. 모국어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외국에 유학을 보내려고 하는 것도 바로 순리를 무시한 알묘조장의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황은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바로 이런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예로부터 똑똑함과 지혜가 지나쳐서 학문을 마다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혹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부분 자만하여 빨리 이루고자 하는 폐단이 있다. 자만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되고, 빨리 이루고자 하면 뭇 이치를 궁구하지 않게 된다. 이러고서도 도에 들어가고 덕을 쌓아 성현의 경지에 다가서기를 바란다면, 이는 뒷걸음질치면서 전진하기를 구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빠르기를 욕심내면 도달할 수 없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욕속부달(欲速不達)’이란 말처럼, 학문에 있어서 빨리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치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풍부한 독서와 시사자료 읽기로 배경지식과 교양을 튼실하게 쌓지 않고 논술이나 심층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얻겠다고 덤비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알묘조장의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겠죠.

중국의 북송시대의 문장가였던 구양수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3대 요건으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꼽았죠.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하라는 것이죠.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가는 절차탁마 (切磋琢磨)의 수련을 거치지 않고 좋은 글을 쓰겠다는 것은 기지도 못하면서 날기부터 하겠다는 과욕이겠지요. 바로 그런 조급증을 버리라는 것이 맹자와 이황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역경 속에서도 배움의 즐거움을 잃지 않았던 선인들

앞서의 박희병의 책이 공자를 위시한 선인들의 공부에 관한 명구들을 가려 뽑은 책이라면 ‘청소년을 위한 조선조 학자 23인의 공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너희는 공부가 즐겁지 않느냐?』는 조선조 최고의 학자 23인이 말하는 공부의 의미와 자세에 얽힌 에피소드들과 함께 그들의 말씀과 시(詩)를 아울러 소개하고 있는 책입니다. 또한 후자의 책은 부록으로 공부와 관련된 고사성어와 단어들을 찾아보기 쉽게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두 책은 다소 중복되는 면이 있지만 나름대로의 색깔이 있어 겹쳐읽기를 하면 선인들의 공부법을 좀더 소상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자의 책에는 이현일의 어머니인 안동 장씨와 김만중의 어머니인 윤씨등 부녀자들의 학문관과 자녀 교육철학을 소개하고 있어 이채롭습니다. 안동장씨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희들이 글을 뛰어나게 잘 안다는 명성이 있더라도 나는 좋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선행을 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바로 기뻐하며 그걸 잊지 않겠다.” 가르침의 목적이 글을 뛰어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에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김만중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인 김익겸은 병자호란으로 강화에서 순국하게 됩니다. 어머니 윤씨는 자식들이 남들로부터 과부의 자식이라는 욕을 먹지 않도록 엄격하게 자식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하루는 김만중의 형님이 『춘추좌씨전』을 사고 싶어 하자, 김만중의 어머니는 베틀의 명주베를 잘라서 값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식들이 어머니의 밥상에 조금이라도 진귀한 반찬을 올리면 “우리 집안의 음식은 처음부터 이러하지 않았다.”라고 하시며 언짢아 하셨다고 합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는 천금도 아까지 않으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진미도 내치는 그런 엄격함이 김만중을 큰 선비로 키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공부가 즐겁지 않느냐?』가 소개하고 있는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공부법도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합니다. 그는 자신을 ‘글만 보는 바보’라는 뜻으로 자신을 스스로 간서치(看書癡)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책읽기를 너무도 사랑했던 그의 이야기는 『책만 읽는 바보』라는 단행본으로 따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이덕무는 서자였기 때문에 관직에 나가지도 못했고,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가난은 그에게 운명이나 다름이 없었죠. 그는 추위를 견딜 수 없을 때는 『한서』 한 질을 깔고 잠을 청하고, 식구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할 땐 『맹자』 한 질을 200전에 팔아 식량을 구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친구인 유득공에게 말하자 유득공은 그에게 『춘추좌씨전』을 팔아 술을 사줬다고도 합니다. 가난하지만 학문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우정이 이 글에는 감동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라 했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이 없다면 얻음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움이 없으면 위태롭다'는 뜻이죠. 사색과 반성을 통해 나의 삶을 음미한다면 응당 깨달음이 생기고, 그 깨달음은 내 삶을 변화시키고, 사물과 인간에 대한 나의 태도를 변화시키겠지요. 그러나 생각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단히 책을 통해 세계의 지식을 흡수하면서 자기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하겠지요. 자기자신의 믿음에만 빠져 새로운 지식을 얻는 작업을 게을리하는 자는 편벽되고 고루한 보수주의자의 멍에를 벗어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부단히 공부하는 자는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겸허히 인정할 줄 압니다. 학문과 공부의 역사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오류를 바로잡아가는 교정과 수정의 역사이었으니까요. 공부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믿음이 독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인들의 공부란 부단한 성찰과 실천을 통해 자신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