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마음이 배부른 식당 조회수 : 4985
글쓴이 : 김보일 날짜 : 2005-12-05 00:00:00 추천 : 0
'


마음이 배부른 식당

마음이 배부른 식당 / 김형민 지음 / 키와채, 2005




십여 년 전 겨울, 남해금산의 정상 근처에 있는 부산여인숙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칠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네가 깔밋하게 끓여낸 된장국도 된장국이겠지만 특별한 조미료도 없이 나물을 버무린 솜씨도 보통이 아니시구나 하는 생각으로 음식 칭찬을 드렸더니, 노인은 대뜸 "맛이라니요? 에구 그런 말씀 마셔요. 손님이 시장하시니 그렇지요." 태연하게 말을 받는다. 말투엔 일체의 호들갑이 없었다. 다른 손님들도 맛있다는 말씀 많이 하시더라구요, 하는 정도의 은근한 자기 선전도 없었다. 맛이 있긴 뭐가 맛이 있냐, 맛이 있다면 모두 당신의 시장기 탓이라는 거였다. 허름한 상위에 놓인 음식들이 노인의 심성만큼이나 담백하게 느껴졌다. 십중팔구는 소슬하기 마련인 겨울 여행길에서의 하룻밤이 모처럼만에 푸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영어 단어 'companion'도 '함께 빵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말에서도 '한솥밥을 먹는다'는 관용구는 가족을 의미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섭식 행위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먹음'의 행위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성을 회복한다. 물론 모든 먹음의 행위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에 쫓겨 허겁지겁 먹는 패스트푸드는 허기를 때운다는 수단적 의미 그 이상을 가지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일상적 현실이 아무리 우리에게 '빠름'을 강요한다 할지라도 음식을 먹는 행위만큼은 반자본주의적으로 한번 에둘러 갈 필요가 있다. '밥'의 종국적 귀착지는 사람이다. 사람의 몸이 밥을 받고, 사람의 마음이 밥에 반응한다. 밥을 주는 사람의 마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밥상머리에서만큼은 수다나 너스레도 좀 떨어 보자는 이야기다. 배도 불러보고 마음도 좀 불러보자는 것이다. 꼭 이 정도의 '음식론'을 지지하는 독자라면 김형민이 소개하는 『마음이 배부른 식당』에 들러볼 일이다.



김형민의 식당에는 식도락가의 품위 있는 미각을 채워줄 만한 '럭셔리한' 메뉴는 없다. 그 식당에는 자장면, 감자탕, 콩국수, 콩비지, 돈가스, 만두, 수제비, 삼겹살, 매운탕……. 시장통의 한 구석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을 법한 음식 일색이다. 김형민은 흔하디 흔한 음식 속에서 흔하지 않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낸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그 마음에 다시 몸이 움직인다. 그런 사연을 가진 음식이라면 어디 한 번 먹어보자 하는 호기가 발동하는 것이다.



'셈베과자'를 만들어 파는 삼각지 근처에 있다는 '김용안씨의 과자점' 이야기는 이 책의 성격을 잘 요약해준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과자를 사러온 서른 중반의 여인이 들려주었다는 이야기를 본문의 의미를 살려 각색해보면 이렇다.



제가 이 집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들러서 엄마에게 드릴 과자를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사실 엄마는 제 친 엄마가 아니고 돌아가신 제 친 엄마의 언니, 즉 이모였어요. 제 친엄마와 아빠가 어려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모집에서 저희 두 형제는 눈칫밥을 먹으며 자랐죠. 이모는 저희들 때문에 시댁에서 평생 죄인으로 지내셔야 했지요. 저희들에게 옷 한 벌 사줄 수도 없었고, 맛난 것도 먹일 수가 없었죠. 어려운 살림에 두 군입을 데려왔으니 남편이나 시댁식구들에게 항상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모는 크리스마스만 디면 우리를 교회에 보냈어요. 그때마다 이모는 이 과자 한 봉지씩을 우리 손에 쥐어 주시면서 다 먹고 와라, 누가 볼지 모르니 밖에서 다 먹고 들어와라 그랬죠. 인형이나 옷은 주위의 눈이 무서워 줄 수도 없었고, 다른 선물도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이모는 먹어치울 수밖에 없는 과자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선택하셨던 거예요. 이모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1년에 단 한 번 이 과자점의 손님이 되었던 거죠. 그때의 이모처럼 저도 크리스마스에는 꼭 이 과자를 사서 이모에게 보내드려요.



과자 하나에도 이렇듯 애틋한 사연이 있는데 하물며 훈김이 피어오르는 한 그릇의 국밥에서랴. 책은 계속해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이 마음이 배부른 식당이다. 그 식당은 허름하지만 그 속의 이야기들은 맛깔스럽다.



식당을 개업하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컨설팅을 해준다는 '뚱보갈비'집의 아저씨는 말한다. "장사 처음 할 때 마포의 한 갈비집에 가서 부탁을 했죠. 도와 달라고. 대뜸 로얄티를 250만원 달라 합디다. 그때 우리 집 전셋값이 200만원이었어요. 에라 혼자 해보자. 나중에 성공해도 난 저렇게는 안 산다. 도와준다고 생색내지도 않고, 돕는답시고 남의 피 같은 돈 긁지도 않겠다."



'뚱보갈비' 아저씨의 발언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 마음 속의 분노다. 밥이 하늘이라 했는데, 돈은 좀 적게 벌릴지라도, 좋은 재료 써서,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한 번 좋이 먹여보겠다는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여는 주인장들이 이 땅에 얼마나 될까. 손님들의 건강이야 어쨌든 맛 하나만을 위해서라면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듬뿍 치고, 얕은 눈속임으로 손님들의 혀끝만을 만족시키는 데에 여념이 없는 이 땅의 식당문화에 대한 분노가 김형민의 글에 먼저 반응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신성각'이란 자장면집 주인장은 돈만이 최고는 아니라는 배짱으로 두둑하다.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자니 몸이 가잔다. 해서 퇴근 무렵에 그 집에 들러 주인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수타면을 먹어보았다. 기름지고 느끼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었다. 그 맛은 요란한 수사학, 장황한 자의식으로 범벅이 된 프로작가들의 글과는 그 맛이 판이한 작가 김형민의 문체와 많이 닮아있었다. '대교(大巧)는 약졸(若拙)'이라 했던가. 지극한 기교는 단순한 것에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노자가 살아온다면 이 집에서 자장면 두 그릇을 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 집에 써 있다는 글귀들을 읽어보았다. 책이 소개하는 글귀에 얽힌 이야기들은 이렇다.



글귀1: 영업시작 11시 37분, 문닫는 시간 8시 31분

글귀1에 대한 주인의 변: 그렇게 분(分)단위로 체크해야 모든 게 두루뭉실해지지 않아요. 그 시간에 나를 맞추는 거죠. 늦게 일어났다고 늦게 시작하고, 무슨 일 있다고 시간 어기고 그러면 내가 거기에 맞춰진다고.

글귀2: 배달 속도 드림, 저속 배달

글귀2에 대한 주인의 변:(손으로 만드는) 수타 짜장면을 하다보면 한 그릇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타산이 안 맞아서 종업원도 못써요. 아내가 배달을 하는데 면허 딴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오토바이 타고 뽈뽈뽈 간다구요. 그러니 저속배달이지.




이 책의 띠지에는 민주노동당 소속의원 노회찬씨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정치하는 사람이 별 곳에 다 얼굴을 내미는군,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에 서려는 작가의 균형감각이다. 그런 균형감각이 없었다면 이 책은 따뜻한 미담을 전하는 낯간지런 이야기에 그쳤을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SBS 프로그램 '리얼 코리아'의 후일담이다. 작자는 그 프로그렘 제작에 참여했던 PD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밥집들의 이야기는 일간무가지 'AM7'의 지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그 이야기들을 묶은 책이 『마음에 배부른 식당』이다. 글은 설렁설렁 쉽게 읽힌다. 마음도 뭉클뭉클 대책 없이 따뜻해진다. 그렇다고 글맛에 빠져서 우리네 현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도처에 마음이 배부르지 않은 식당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상국의 시 하나로 글을 맺자.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이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사족 하나. 이 책이 소개하는 식당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 주인장들의 배가 너무 불러지지 말아야 하니까 말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식당들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하기 전에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먼저 헤아려 보는 것도 좋다. 좋은 친구가 오면 맛도 함께 오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