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일자리는 다 어디 간 거야? 조회수 : 2125 별점
글쓴이 : 진달래 날짜 : 2007-03-13 추천 : 2 [추천인]
천 유로 세대

<천 유로 세대>,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 알레산드로 리마싸 지음, 김효진 옮김, 예담

아, 꿀꿀한 인생들이다. 대학을 졸업했건만 제대로 된 일자리는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고, 걸리는 일이라곤 학생들이나 할 만한 알바가 다다. 그나마도 늘 있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면 영락없이 제대로 된 보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어쩌다 인턴으로 일하게 돼도 재계약이 될지 안 될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들의 소원은 정기적으로 일하러 가고 남들처럼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것이다. 이게 천유로 세대를 사는 4명의 이태리 청년들의 일상이다. 영원히 학생이고자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편하게 용돈을 뜯는 마테오를 빼고는 모두 머니(이런 단어에 태클 걸지 마시길... 개인적으로 원래 단어는 어감이 좋지 않아 되도록 안 쓰려고 한다.)를 벌려고 열심히 산다.

일도 늦게 시작한데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회사가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본사로 철수해버리는 바람에 백수가 돼서 몇 년 전에 어찌 저찌 한 2년 백수를 했다. 원래 머니가 없었는데, 가끔씩 들어오던 프리랜서 일은 벼락공부처럼 해치웠지만, 그렇게 한 번에 많이 번 머니로 한 끼 잘 먹는다고 해서 그 다음 끼를 굶을 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집 없는 아이>의 마띠아가 한 말이 그렇게 이해가 잘 될 수가 없었다. 인생이란 게 그날 벌어 하루 먹고 말면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난 프리랜서 생활이 싫었다. 잠시 하는 일치고는 보수가 높은 편이었지만, 미래를 계획할 수도 없고, 그렇게 마냥 공짜 쿠폰이나 챙기고 언제까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이 네 명의 주인공을 정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머니나 일자리로 보면 정말 대책 없이 꿀꿀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 네 명의 친구들의 삶은 절대로 꿀꿀하지 않다. 물론 서로 머니를 아끼려는 생각으로 대학생 때나 하던 식으로 한 집을 네 명이서 나눠 쓰고 있지만, 그들은 나름 비슷한 생각을 갖고 비슷한 환경에서 서로 우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머니가 없다고, 자기 일감을 다른 낙하산한테 뺏겼다고, 아무리 밤낮으로 일해도 한 달에 겨우 700유로 벌었다고 우울해하는 것도 잠시, 함께 맥주 나눠 마시고 영화 한편 때리고 나면 다시 이력서를 쓰고, 다시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일을 찾는 등,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간다.

읽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학대하거나 윗세대들에게 반항하거나 사회에 징징거리기보다는 어떻게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유리하게 끌어가려고 애쓰는 이 젊은이들의 패기와 활기가 멋지고 부러웠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비참하지 않게 가끔 카페에서 카푸치노와 브리오쉬빵도 먹는 센스를 부려주고, 이베이에 갖고 있는 수집품들을 모두 팔아 짧은 여행을 다녀올 계획도 세우고, 노숙자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10유로를 그 호주머니에 찔러줄 줄도 아는 멋진 젊은이들인 것이다.

부모들은 대학을 졸업하면서 쉽게 일자리를 얻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고 노후를 대비해 저축도 할 수 있었다. 그게 부모 세대의 평범한 삶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젊은이들에게는 그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뼈가 저릴 정도인 것이다. 이 젊은 세대는 “마음에 드는 걸 사야지.”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자기 사정에 더 맞는 것’을 사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삶조차 부르주아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주인공 클라우디오가 뭐든 쓰기 전에 한 푼 두 푼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걸 보면 요즘 내 생활과도 다르지 않다. 월급도 오르고 보너스도 받았는데, 여전히 쪼들리는 생활... 하지만 클라우디오도 나도 미래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현실은 각박하고 세상엔 태클로 넘쳐나지만 희망이 있고 젊음이 있으면 뭐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규직 일자리 찾을 때까지 알뜰살뜰 절약하며 살면 어떤가. 그 맛 또한 좋지 않던가... 일하러 가기 싫다가도 ‘월급의 감동’을 생각하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