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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한 가운데서
    jjolpcc | 2005년 08월 24일
    포경선 에식스호의 비극 바다 한 가운데서 나다니엘 펄브릭 지음 / 한영탁 옮김 / 중심 1820년 11월 20일 낸터컷 포경선인 에식스호는 태평양 갈라파고스 서쪽 1500해리 부근에서 거대한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침몰하게 된다. 순한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는 향유고래가 왜 포경선을 공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포경선 에식스호의 침몰은 에식스호 선원 20명이 작은 고래잡이 보트를 타고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의 시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보트를 타고 땅을 향해 찾아 표류했던 선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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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경선 에식스호의 비극 바다 한 가운데서
    나다니엘 펄브릭 지음 / 한영탁 옮김 / 중심



    1820년 11월 20일 낸터컷 포경선인 에식스호는 태평양 갈라파고스 서쪽 1500해리 부근에서 거대한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침몰하게 된다. 순한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는 향유고래가 왜 포경선을 공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포경선 에식스호의 침몰은 에식스호 선원 20명이 작은 고래잡이 보트를 타고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의 시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보트를 타고 땅을 향해 찾아 표류했던 선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낸터컷 포경선 에식스호의 침몰사건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중에 한 가지인 멜빌의 소설 "백경"의 중요한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이다. 사실 소설의 작가인 멜빌은 고래잡이 포경선의 선원생활을 한 경력이 있으며 그는 선원생활을 하면서 에식스호
    의 생존자인 폴라드선장의 이야기를 접하여 그의 소설 백경에 많은 소재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배을 공격하는 고래에 관한 이야기와 복수를 위한 선장의 모티브는 에식스호 난파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이렇게 소설의 소재로 사용된 에식스호의 침몰과 선원들의 표류사건은 백경이라는 소설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들이 숨겨져 있다.
    먼저 그들은 보트를 타고 구조될때까지 식량이 떨어진 상태에서 인육을 식량으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살아서 구조된 사람은 다섯명이며 표류중 무인도에서 남기를 원했던 세명 합해서 여덟명이 살아남았으며 표류초기에 몸이 약해져 죽어서 바다에 던져진 몇명을 빼고 나머지 죽은 사람은 살아남은 사람을 위해 식량이 되어야 했다. 두대의 표류보트중 선장 폴라드가 타고 있던 배에서는 나중에 제비뽑기로 사람을 뽑아 뽑힌 사람을 죽여 먹었다고 한다. 제비뽑기로 인해 식량이 되었던 사람중엔 폴라드의 조카도 있었다. 내가 촉각을 세우고 읽은 부분이 바로 인육을 먹는 부분이었다. 책에 여러 관점으로 이 식인행동에 관한 해석이 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인종 : 먼저 살아난 사람들은 모두 백인들이다. 흑인은 대부분을 다른사람을 위한 식량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인종차별적 관점에서만 생각해선 안된다. 특히 조난을 당하고 나서 보트로 표류시에 흑인들만 골라서 죽인후 식량으로 삼은 것이라 생각하면 옳지않다. 당시 포경선의 흑인들은 그 대우가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식사량과 식사의 질은 선장이나 항해사등의 백인뿐아니라 일반 백인 선원보다 훨씬 못한 것이었다. 당연히 건강과 영양상태가 좋지 못했던 흑인들은 백인들에 비해 표류시
    빠른 영양실조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 빨랐을것이다. 당시 낸터컷은 미국 본토에서 보다 더 흑인에 대한 처우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식사량에 관한 차별적인 성격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지도력 : 처음에 세대였던 조난보트는 나중에 두대만 남게된다. 한배는 선장과 몇명의 선원들 다른 배에는 일등항해사와 선원들이 타고 있었다. 일등항해사의 보트에선 세명이 살아남았다. 선장의 보트에선 두명이 살아남았는데 그들이 구조되던 순간
    을 비교해보면 일등항해사 보트의 선원들이 훨씬 몸상태와 정신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반면 선장의 보트에서 선장과 다른 선원 한명이 구조될때 그들은 지독한 정신착란증세를 보였으며 보트를 가득 채운 인골을 정신없이 빨아 먹고 있었다고 한다. 일등항해사는 음식과 물의 배급을 극도로 자제하였으며 지도자로서 위엄을 잃지 않았으며 선원들에 대한 격려등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 리더쉽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자연 위의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자연의 일부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름을 얻기 위한 향유고래의 포획은 결국 에식스호의 비극으로 나타났듯이 인간의
    오만과 무지는 분명 그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생각이지만 에식스호의 난파는 우연이 아닌 자연의 복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은게 조금 되다보니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극한 상황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단지 인육을 먹은 사건의 충격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훨씬 재밌는 것이 많이 들어있다. 낸터컷 포경산업의 발전사와 당시 선원들의 무지, 그리고 다양한 포경선의 묘사와 고래잡이의 사실적인 서술, 당시 선원들의 생활과 사고, 퀘이커 교도들의 여러가지 생각들.....
    다양한 지식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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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p 10 English Expressions
    seubasu | 2005년 08월 24일
    으~~~어제 하루 종일 올린 글이 마지막 저장에서 인터넷쪽이 불통되는 바람에 다 날려 먹고, 꼬박 하루를 다시 기다렸다 글을 올리게 됐네요. 결과적으로 제가 거짓말으 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ㅜㅜ 네이티브가 선정한 상황별 베스트표현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을 처음엔 연신 나오는 한숨을 내지르며 가만히 겉장만 뚫어지게 쳐다 봤다. 아닌 게 아니라, 난 정말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서 아니 영어와 정말 친해지기 위해서 이제까지 안 본 책이 없으며, 시중에서 좀 인기있다 싶음 영어교재들은 죄다 내 책장에 꽂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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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어제 하루 종일 올린 글이 마지막 저장에서 인터넷쪽이 불통되는 바람에 다 날려 먹고, 꼬박 하루를 다시 기다렸다 글을 올리게 됐네요. 결과적으로 제가 거짓말으 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ㅜㅜ

    네이티브가 선정한 상황별 베스트표현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을 처음엔 연신 나오는 한숨을 내지르며 가만히 겉장만 뚫어지게 쳐다 봤다. 아닌 게 아니라, 난 정말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서 아니 영어와 정말 친해지기 위해서 이제까지 안 본 책이 없으며, 시중에서 좀 인기있다 싶음 영어교재들은 죄다 내 책장에 꽂혀 있는지라 신청할 때 리뷰를 보고 이 책은 정말 틀리겠군!이래서 신청하긴 했지만, 막상 받아서 보니 아~ 이 책마저 다른 녀석들과 같음 어쩌나하는 생각에 선뜻 펼쳐 보기 힘들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교재들이 두 손 불끈쥐고 우리에게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 책만 보면, 네이티브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술술 쏼라쏼라 꼬부랑 말을 할 수 있다는 거 아닌가...하지만 솔직히 책만 봐서 독학으로 그렇게 되는 사람 몇 명 보지 못했는데..

    반신반의하며 이 책을 펼치고 한달이 약간 못 지난 오늘...
    사람들에게 요즘 학원 다녀? 왜 그렇게 잘 굴러가 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앗싸~ 하루에 30분씩 책에 나오는 예문을 외우고 또 외운 것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였다. 솔직히 테잎이 있었다면 공부하는데 더 쉬웠겠지만, 테잎은 별도구매였나 보다. 그래도 혼자 공부하기엔 그 짜임이라던가, 내용이 무척이나 우수하다

    일단 일상, 건강에서부터 결혼, 생일파티할 때라든지, 감정같은 것도 표현할 수 있도록 큰 주제안에 작은 소분류에 나누어 빨리 원하는 상황만을 찾아서 익힐 수 있도록 집필되었다. 심지어 사랑과 결혼 부분에는 부부싸움이라던가, 임신과 출산시에 쓸 수 있는 말도 있다. 각 파트를 보면, 각 상황별로 가장 많이 쓰이는 표현 중 상위 10개를 뽑아서 올려 놓고, 네이티브가 쓰는 뉘앙스라던가, 쓰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그 표현들을 실제로 쓸 수 있는 대화문을 올려 놓아서 실제 그 상황이 닥치면 어느 정도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루에 10개만 짬내서 보면 되니까, 크게 부담도 없고 일상어 위주로 집필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단어공부하고 문법공부하고 할 것도 없다. 요즘 유행하는 통째 먹는 방법으로 문장전체를 외우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문장이 신나게 길어서 짜증나게 하는 것도 아니라서 책을 보는 즐거움이 난다.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것마냥 쉽게 쉽게 넘어가니 공부하는 맛이 난다.

    많은 영어책들이 범하는 오류가 바로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상어라고 외우기만 하면 당장 써 먹을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결국 그 상황에 닥치며 생각 안 나고, 구체적으로 상황설명을 하지 않아서 머릿속으론 윙윙 거리며 그 문장이 날라 다녀도 제때 꺼내어 쓸 수 없는 거.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정도 그 오류를 수정한 수정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집필한 작가의 부인이 외국인이라고 하는데, 작가는 그녀와 사는 동안 겪었던 문화적 차이와 함께 언어적 차이도 겪었으리라. 그것을 적나라하게 펼쳐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작가 자신도 영어하면 다들 알아 주는 사람인데, 그녀 앞에서만 서면 대화가 잘 통하지 않던 이유는 자신이 배운 건 습득한 언어 즉 책에서만 살아 있는 영어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표현들로 꾸며 놓아서, 제때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참 좋은 것같다.

    정말 영어랑 친해져 보려고, 사회적으로 다 토익이고 토플이고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시대이기에 진짜 죽자살자로 공부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해서, 언제 실생활에 제대로 써 먹을 수 있었나? 아니, 아니였다.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모든 영어들은 공부를 위한 영어였지, 실제로 내가 외국인과 신나게 침 튀겨가며 말할 수 있는 그런 영어들은 아니였다
    지금도 다 보진 못했지만, 이제 반정도 봤다
    하루에 봐야 될 문장의 분량 자체가 10개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외워야 되겠다는 생각도 안 들고 부담이 없으니 머릿속에 더 오래 저장되어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인 것같다. 또한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어구이기 때문에 이젠 입이 간질간질하다. 회사에 빨리 외국인손님이 왔음 하는 맘마저 드는 걸 보니, 역시 인간이란 간사하구나 싶다. 영어 못해서 쩔쩔맬 때는 누가 혹 시키면 어쩌나 했었는데..
    아무래도 회사다니면서 학교까지 다니니까, 사람들은 내가 다방면에 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실제로 외국인이 오면, 나한테 말 좀 붙여보라고까지 했었다
    그때마다 떠듬떠듬 거리면서 어떡하든 말을 이어가려던 내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이 책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웃긴가?
    지금은 빨리 왔음 좋겠다. 어떤 상황이 오든 설사 내가 공부 못한 부분이더라도 언제든지 그 상황에 맞게 찾아 볼 수도 있고, 쉬운 표현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충분한 대화가 가능하니까

    사무실 책상서랍안에 넣어 두고 두고 두고 짬날때마다 테트리스나 다른 카드게임같은 거 하지 말고, 이 책 한번 펴서 한 문장씩만 입에 달고 살면 네이티브? 될 수 있다 ^^
    영어 공부, 토익이나 토플 기타 점수를 위한 공부보다는 정말 대화를 할 수 있는 공부를 해야 되지 않겠나요? 그렇다면 이 책을 보면서 기초를 닦으세요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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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항하지 마~!
    관리자 | 2005년 08월 24일
    만화책을 읽고 나서 자신에게 크나큰 변화가 생겼다면 그 책은 진정 대단한 도서이며 베스트셀러가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저, 평소 책 잘 안 읽는 사람이고 만화조차도 지겹고 귀찮아서 멀리 했던 사람입니다만, 이 책 정말 읽을 만합니다 카타르시스라고 하죠? 그거 느끼고 싶으신 분이나 학교가 짜증난다고 점점 멀어지려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해 주고 싶군요 학교....권위주의로 가득찬 부패한 쓰레기통. 선생....학생들의 눈치나 보면서 뒤로는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쓰레기 학생....이미 교권이나, 스승님이라는 존재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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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책을 읽고 나서 자신에게 크나큰 변화가 생겼다면 그 책은 진정 대단한 도서이며 베스트셀러가 부럽지 않을 것입니다
    저, 평소 책 잘 안 읽는 사람이고 만화조차도 지겹고 귀찮아서 멀리 했던 사람입니다만, 이 책 정말 읽을 만합니다
    카타르시스라고 하죠? 그거 느끼고 싶으신 분이나 학교가 짜증난다고 점점 멀어지려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해 주고 싶군요

    학교....권위주의로 가득찬 부패한 쓰레기통.
    선생....학생들의 눈치나 보면서 뒤로는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쓰레기
    학생....이미 교권이나, 스승님이라는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반황하는 청춘...
    학생때부터 이미 온갖 말썽이란 말썽은 다 부렸던 영길이는 어느날 자신의 최고의 로망이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불현듯..아니 사실은 여자 꼬시기에 좋고 여러가지 탱탱한 여고생들을 많이 안아볼 수 있으니까 좋을 것같아서, 선생님이 됐다
    그것도 불법으로~~이놈은 아주 당당하게 자신관 전혀 닮지 않은 녀석을 떡하니 앉혀 놓고 시험을 본 아주 황당한 녀석이였다
    이렇게 저렇게 교생실습에서 일부러 떨어뜨릴려고 이미 인생 포기한 녀석들이 무더기로 모여있는 반을 배정해 줬지만, 어라..이건 그를 선생이 되게 하려는 작가의 음모였다. 암튼 이제까지 갈고 닦은 주먹실력으로 단한번에 인기상승~!
    무사히 실습도 마치고 정식선생님이 됐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부임..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것 역시 그의 드롭킥맛을 본 학생들의 반성을 본 사립학교이사장의 강력추천에 의해 된것이다. 암튼 그가 부임하고 학교를 보아하니..
    허 이건 완전히 쓰레기통이였다.
    부패한 교사,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 쓰레기통같은 학교..
    이 모든 것을 영길이 특유의 무대포와 단순무식, 그리고 한없는 애정으로 모두 다 정화해 버리고 만다. 이 책 자체는 만화라는 장르를 무기로 삼아 정말 실제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둘씩 터트린다.
    이를테면, 책은 25권이 끝인데 보면 영길이는 그동안의 수많은 싸움으로 인해서 뇌에 큰 혈종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고 한번만 더 뇌에 큰 충격을 받게 되면 끝장이란 소리를 듣게 된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쌈 잘하는 영길에겐 또다시 큰일이 터지고 그는 맞음 안된다는 부위에 집중강타 당하고 끝내 생명을 놓게 된다. 근데 이건 정말 만화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제자가 들어와서 구해달라고 아직
    구해야 될 사람이 있다고 소리치는 순간, 멈췄던 심장 다시 살아나고 금방 죽었다 깨어난 놈이 무슨 힘이 있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로 쳐들어가 온갖 죄악의 심벌이였던 미스즈 교장(새로 바뀐 교장인데, 몸매가 속된 말로 쭉빵이지요. 그래서 영길이 한땐 정신 못 차렸지만)을 태우고 그 몇 층되는 학교에서 탈출한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암튼 그 뒤로 더 황당한 건 그 화염속에서 뚫고 나오는 그 순간에 언제 준비했는지 그 교장등에다가 박제새를 달아 놓았지 뭡니까? 푸하하하하 이 부분에서 저 뒤집어졌습니다. 위험한 순간에서도 번뜩이는 그 재치와 순발력. 그리고 정말 악한 사람도 내면 어디에는 위로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는 영길이.
    멋지지 않습니까?
    영길이 그 녀석에게도 그와 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그는 정말 멋진 선생이 됐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지금같은 모습의 사나이는 아니였겠지요
    처음엔 비록 불온한 목적을 가지고 선생이라는 길에 들어섰지만, 차츰 그는 정말 선생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왕따를 해결하고 이지메를 없애고 학생들이 갖고 있던 분노도 없애주고...
    이게 단순히 수당을 위한 봉사였다면, 정말 이런 만화책은 쓰레기야라고 했겠지만....그는 만화라는 세계에 사는 선생이지만, 그가 진정으로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학생들과 맘을 나누고 있다는 거 금방 느껴지더라구요
    그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선생의 모습이지요.
    누가 국사할 시간에 자신의 인생 경험 및 아이들과 놀아 줍니까?
    이미 교권은 땅에 떨어졌고, 학생들은 선생들에게 있어 월급을 받게 되는 매개체로 전락한 것이 오래인 것을요......물론 현직 선생님들이 보신다면, 저런 스승도 없는 놈을 봤나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제가 보는 교육계는 그렇습니다
    암튼 반항하지 마는 어떻게 보면 선생님들의 로망도 되겠군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애들과 함께 있어주고, 위에 눈치 안 보고 자신의 소신껏 수업을 할 수도 있고
    엄마들 눈치 안 보고 사랑의 매 확실하게 날릴 수 있고(이거 정말 사랑의 매예요. 감정섞여 때리는 사이비사랑의 매와는 절대로 틀리지요. 오해마시길)......
    헉....첨 쓰는 리뷰라 막 횡설수설...
    이거 그녀(seubasu)에게 들키면 난 죽는데...ㅜㅜ
    항상 글은 그 사람의 맘을 대변하는 거라 소신있게 그리고 물 흐르듯이 깔끔하고 담백하게 쓰라고 했는데 ㅜㅜ
    암튼 다음엔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글구 그녀와도 더 사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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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sncharm | 2005년 08월 24일
    몇 달전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겠노라고 해놓고 좀 늦었습니다. 신생아 작명이 상당히 어렵더군요. 많은 참고가 된 책인데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저자 이정이, 출판사 주식회사 월드코리아 출판부 저자는 3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통계로 이른 바 [소리 성명학]의 이론을 정립하여 출생년도, 성명의 자음, 한글 획수, 한자 획수 등으로 산출한 고유회전수, 유동회전수를 토대로 나타난 각 숫자로 개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름을 부르면 소리가 나고, 소리가 나면 그 소리의 기운이 운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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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전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겠노라고 해놓고 좀 늦었습니다.
    신생아 작명이 상당히 어렵더군요. 많은 참고가 된 책인데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저자 이정이, 출판사 주식회사 월드코리아 출판부

    저자는 3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통계로 이른 바 [소리 성명학]의 이론을 정립하여 출생년도, 성명의 자음, 한글 획수, 한자 획수 등으로 산출한 고유회전수, 유동회전수를 토대로 나타난 각 숫자로 개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름을 부르면 소리가 나고, 소리가 나면 그 소리의 기운이 운명을 만드는 작용을 시작한다는 말이다.

    이름 석자 중 가운데 글자에 성격을 형성하며,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고유회전수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소리는 상호작용을 하므로 가족(부, 모), 친척과도 연관성이 있고, 배우자를 고를 때도 면밀히 그 이름을 살펴보아야 한다.

    고유회전수로는 전반적인 인생의 운명을, 유동회전수는 1년운세를 볼 수 있다.
    또한 55진법이라고 하여 중간이름의 자음과 끝이름의 자음 또는 중간이름의 첫자음과 중간이름이 끝자음 등으로 운명을 맞춰보는 방법도 있다.

    내용에는 여러 유명인사의 이름, 대기업의 이름, 외국인의 이름 등으로 예시하여 자세한 운명 설명도 있다. 한글과 한자(인명용)의 획수 조견표, 고유 유동 회전수 조견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오랜 연구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설명해 놓아 한 번 보고, 그 깊은 내용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저자 만큼의 작명의 대가가 되기는 어렵겠고, 각자의 이름에 대한 평가, 닥쳐올 미래를 점쳐보고 싶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리기 위해 상호를 고르고 있는 분, 애기출산하여 작명해야하는 사람 등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봄직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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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는 자만이 인도를 꿈꿀수 있다
    grays18 | 2005년 08월 24일
    나는 인도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기보다 동경 한다, 하지만 인도로 무작정 떠날수 없는 내 상황이 말해주듯 인도여행 에세이는 자주 사서 읽는 편이다,이 책은 기존의 여행기 책들과는 다르게 책값이 비싸 망설였지만 한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이 있었다, 인도를 무작정 여행하면서 적은 작가의 사소한 감정나열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체계적으로 나누어서 그곳에서 보고 느낀것을 때로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때론 자신의 느낌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적어놓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책들과 공통된 것은 인도란 나라는 단지 어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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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인도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기보다 동경 한다, 하지만 인도로 무작정 떠날수 없는 내 상황이 말해주듯 인도여행 에세이는 자주 사서 읽는 편이다,이 책은 기존의 여행기 책들과는 다르게 책값이 비싸 망설였지만 한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이 있었다, 인도를 무작정 여행하면서 적은 작가의 사소한 감정나열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체계적으로 나누어서 그곳에서 보고 느낀것을 때로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때론 자신의 느낌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적어놓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책들과 공통된 것은 인도란 나라는 단지 어떤 글이나 말로써 완전히 정확하게 표현될수 없는 곳이라는 거다, 사실 유럽이나 왠만한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국민이나 문화가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 나라이다, 하지만 인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종잡을수 없는 곳이다, 무질서하면서도 질서있고, 삶의 철학이 없는 듯이 보이는 멍청한 사람들에게도 뭔가 심오함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다,

    적어도 내가 이책을 비롯한 많은 책들에서 보고 느끼기에는 그렇다, 세계 어느곳에도 아직까지 남아있지 않는 계급제도가 그들에겐 남아있다, 물론 법적으로 폐지가 되었지만 그들에겐 여전히 종교적 의례를 담당하는 브라만계급, 정치와 군사를 담당하는 크샤트리아, 상인계급인 바이샤, 노예계급인 수드라, 동물보다 못한 최하위 계급인 하리잔이란 계급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보단 최대한 만족하고 열심히 삶으로 해서 다음생에선 더 나은 상황의 생으로 태어날거라고 믿는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보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승에서 발버둥치는 우리로선 이해되지 않을때가 많다, 하지만 한가지 배울점은 지금 현재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더 나은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만이 행복으로 가는길이라고 믿는 우리로선 그들이 작은것에 행복해하는 모습은 배워야 하는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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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읽기 전에 이 것을 읽어라.
    luv2unme | 2005년 08월 24일
    삼색볼펜 초학습법 사이토 다카시/서한샘 역 지식여행 2003년 03월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책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지만, 집중력이 대체로 산만한 지라 그 원하는 지식들을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 독서생활에 있어서 나에겐 큰 고민이였다. 그래서 올바른 독서법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나에겐 늘 주어진 과제였는데, 이제 그 과제가 아주 많이 해결이 된 듯해 너무 기쁘다. 바로 '삼색볼펜 초학습법'이란 책을 읽고 난 후 부터이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거의 눈으로만 읽고, 간혹 검정 볼펜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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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색볼펜 초학습법

    사이토 다카시/서한샘 역
    지식여행 2003년 03월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즐거움에 책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지만, 집중력이 대체로 산만한 지라 그 원하는 지식들을 제대로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 독서생활에 있어서 나에겐 큰 고민이였다.

    그래서 올바른 독서법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나에겐 늘 주어진 과제였는데, 이제 그 과제가 아주 많이 해결이 된 듯해 너무 기쁘다.
    바로 '삼색볼펜 초학습법'이란 책을 읽고 난 후 부터이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거의 눈으로만 읽고, 간혹 검정 볼펜을 가지고 좋은 글구나 인상적인 글구, 도움이 되는 문장에만 주욱 치고 만다.

    하지만 나중에 그런 독서법은 독서를 함에 있어서 1차적인 지식습득의 목적만을 행할 수 있는 독서일 것이다.

    그러나 3가지(빨강, 파랑, 초록)색의 볼펜을 가지고 독서에 임하게 되면 각 색깔이 가진 역활로서 책 속에 담긴 지식습득을 좀 더 명확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의 저자와의 커뮤니케이션, 객관성과 주관성의 명확한 구분을 도움짓게 하는 매우 획기적인 독서가 될 뿐더러 독서를 하는 내내 전혀 지루함이 있을 수가 없다.

    빨강은 매우 중요한 문구
    파랑은 중요한 문구
    초록은 중요함과는 별개로 주관적으로서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하거나 인상적인 문구를 보는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표현할 수도 있는 색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 작은 방법이 독서 내내 명확한 지식 전달과 생각의 정리까지 이루어지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실용서적이든 소설책이든 논문이든 물론 구분이 없다.
    장르의 성격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이 삼색 볼펜 하나가 주어지는 능력은 다분히 다재다능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거나, 읽는 독자로서 좀 더 명확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보면 그 해답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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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tnstngnsl | 2005년 08월 24일
    "두브로브니크 어떻게 가야해요?" 어느 해인가 누군가가 물었던 적이 있다. 에펠탑도 못본 친구들이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관심을?...이라는 의문을 갖기에 앞서 '아이쿠' 소리가 먼저 나오곤 했는데, 필자또한 두브로브니크에 가본적이 없거니와 고작 아는 거라고 어떤 책 제목이었던 것 같다는 흐릿한 기억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고의 한 지방을 한국에 널리 떨치게 만든 책이 바로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이며, 그렇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저자인 권삼윤님이다. 저자인 권삼윤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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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브로브니크 어떻게 가야해요?"
    어느 해인가 누군가가 물었던 적이 있다.
    에펠탑도 못본 친구들이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관심을?...이라는 의문을
    갖기에 앞서 '아이쿠' 소리가 먼저 나오곤 했는데, 필자또한 두브로브니크에 가본적이 없거니와 고작 아는 거라고 어떤 책 제목이었던 것 같다는 흐릿한 기억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고의 한 지방을 한국에 널리 떨치게 만든 책이 바로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이며, 그렇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저자인 권삼윤님이다.
    저자인 권삼윤님은, 저자 소개에 문명비평가로 나온 이력에 걸맞을 만큼 책 속 가득 문화 혹은 문명에 대한 그만의 개성있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세계유산(world heritage)이란 유네스코(UNESCO 국제
    연합교육문화기구) 세계유산위원회가 가맹국의 자연 및 문화유산 가운데
    현저하게 보편적 가치가있다고 인정하여 '유네스코 세계 유산리스트' 등재한 유적지에 대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소개를 다룬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유네스코 유산 리스트중 유럽 대륙의 것들, 그 중에서도 저자가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살펴보아야 할 것으로 판단한 30점 (30개 지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30점에는 두브로브니크 처럼 책이 나오기전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도 있지만, 파리와 세느강 일대, 프라하, 바르셀로나 등등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곳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유럽을 여행가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문화 혹은
    문명에 대한 책이란 점일 것이다. 이는 그 지역에 따라 때로는 역사에 대하여, 때로는 음악에 대하여, 그리고 항상 여행에서 얻어진 그만의 인간적인 느낌에 대하여 다루는 폭넓음으로 나타난다. 더불어 문명비평가로써의 날카로움을 편안함으로 바꿔주는 그의 문체는 이 책에 대한 호감을 더욱 높여준다.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
    이 책은 독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한편의 소설처럼 즐거운 상상과 함께 읽어 내려갈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가이드북으로써 여행지에서 들고다니면 되새겨 읽어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많이 알고 갈 수록 많이 느낀다'라는 공식에 대한 맹신으로 온갖 고대역사 서적들과 무수한 인터넷 정보, 몇권의 가이드북을 섭렵하느라 힘이 빠진 사람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권해보고 싶은 책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끝으로...
    서두에 언급했듯이 나는 아직도 두브로브니크에 가본적이 없다.
    이 책의 권할만한 활용법은 자신의 일정 중 이 책에 포함된 곳이 있다면, 혹은 그 근처라면 한번쯤 책의 내용을 되새기며 여행을 하거나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들려보는 것이라 생각된다. 막연하게 남이 안가본 곳, 덜 알려진 곳을 헤매어보기 위하여 이 책에 소개된 신기한(?) 곳들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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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엠툰
    seubasu | 2005년 08월 24일
    여기 28살청년의 일기가 있습니다. 자신을 페리테일이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을 움직인 것들에 대해서 조용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알았을 때 그는 불가능한 일들도 당신은 언제나 가능하게 해 주던 그런 사람입니다 난 가망이 없는 그런 하찮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은 제게 놀랍고 새롭고 커다란 의미를 주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어떤 색깔의 장미도 피울 수 있는 당신은 언제나 제겐 놀라움으로 가득한 사람일 뿐입니다 라는 글로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됨으로써 겪게 되는 변화에 대해 털어 놓았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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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28살청년의 일기가 있습니다.
    자신을 페리테일이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을 움직인 것들에 대해서 조용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알았을 때 그는

    불가능한 일들도 당신은 언제나 가능하게 해 주던 그런 사람입니다
    난 가망이 없는 그런 하찮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은 제게 놀랍고 새롭고 커다란 의미를 주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어떤 색깔의 장미도 피울 수 있는 당신은
    언제나 제겐 놀라움으로 가득한 사람일 뿐입니다

    라는 글로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됨으로써 겪게 되는 변화에 대해 털어 놓았습니다. 그의 사랑을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사이트에 가서 글을 읽어 보니 이 책은 이미 그의 사랑이 떠난 뒤에 나온 책이더군요. 한 마디로 실연의 아픔을 창작의 힘으로 전환해서 나온 책인거죠
    이렇게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 실연뒤엔 어둠에 물들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글을 제게 또 보여주더군요

    처음부터 당신을 몰랐더라면.....
    애시당초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랬었다라면.......
    그래었더라면.......
    전......
    아마.....
    영원히.....
    사랑을 몰랐겠죠.....
    그랬었더라면....

    만나서 행복했고, 사랑을 할 수 있어 행복했었노라고 비록 아직까지 사랑에 대한 기억을 추억으로 잡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약간은 실망한 글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작가가 아닌 옆집에 사는 친구로 다가 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삽화를 곁들인, 아니 만화라고 해야 되겠죠
    만화를 곁들인 그의 글들이 절 울립니다.
    저 역시 사랑을 알고 실연도 알고..그리고 인생의 어려움도 알기 때문이죠
    이건 단순한 자서전의 축소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였습니다.
    그가 사랑을 알고 실패를 알고 실연을 알고 마음의 어둠까지도 알아 버린 지금 그가 제게 건넨 꽃을 받아 든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난 앞으로 어떤 식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줘야 하나하구요
    간단히 짧게 읽고 책장에 처박아 둘 책이 아닙니다. 갖고 다니면서 오래도록 보세요
    그걸 배려해서 양장본으로 책이 이쁘게 나왔답니다. 그리고 페리테일의 홈에 가 보세요. 아직 책에 실리지 않은 많은 그의 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마린블루스도 책으로 나왔죠. 마린블루스는 아무래도 약간 코믹하고 삶의 밝은 쪽을 비추는 면이 강한데, 포엠툰은 희노애락을 다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책가방이 무거워도 아직은 이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이 마냥 행복한 저입니다.
    제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의 이야기가 제게 말합니다.
    아직은 희망이 있네요. 아직은 당신 곁에 사랑이 있잖아요
    포기하지 마세요라구요
    당신도 포기하지 마세요
    정말 힘들땐 그냥 울어버리세요. 그리고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요
    당신께 제가 아는 멋진 친구 페리테일을 소개시켜 주고 싶군요
    그의 얘기를 당신께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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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스포츠만화가 보고 싶다
    관리자 | 2005년 08월 24일
    파인만씨를 읽으면서 간간히 읽고 있는 만화책 드림. 그런데 잠깐! 왜 우리나라는 이런 스포츠만화가 없는 거지? 며칠 전 종영됐던 모케이블방송의 더 파이팅도 일본만화구 한때 권투에 대한 꿈을 불사르게 했던 허리케인 죠도 일본만화구, 지금 국영방송에서 나오는 테니스왕자도 일본만화고 슛돌이도 일본만화고 피구왕 통키도 일본만화구 그 유명한 농구만화 슬램덩크도 일본 꺼. 하여튼 스포츠관련해서 웬만한 만화는 다 일본만화 아닌가....... 아, 물론 헝그리 베스트 5 - 허무영 가 있긴 하지만, 이거 이후로 나온 만화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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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인만씨를 읽으면서 간간히 읽고 있는 만화책 드림.
    그런데 잠깐! 왜 우리나라는 이런 스포츠만화가 없는 거지?
    며칠 전 종영됐던 모케이블방송의 더 파이팅도 일본만화구 한때 권투에 대한 꿈을 불사르게 했던 허리케인 죠도 일본만화구, 지금 국영방송에서 나오는 테니스왕자도 일본만화고 슛돌이도 일본만화고 피구왕 통키도 일본만화구 그 유명한 농구만화 슬램덩크도 일본 꺼. 하여튼 스포츠관련해서 웬만한 만화는 다 일본만화 아닌가.......
    아, 물론 헝그리 베스트 5 - 허무영 가 있긴 하지만, 이거 이후로 나온 만화가 있는가? 외인부대-이현세 껀 넘 오래됐다.
    암튼 이 대표작들외엔 요즘 작가들은 스포츠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도대체 왜 한국작가들은 스포츠를 외면하는가.....
    스포츠를 통해서 인간승리와 함께 땀에 대한 진실한 댓가를 그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드림을 보면서 내내 생각했다. 그 화려한 우리의 만화계는 왜 스포츠라는 분야를 등한시 하는 걸까? 유독 스포츠만이 아니다. 요리도 그렇고 일상화되는 소재에선 대부분 만화가 나오지 않는다. 너무 안타깝다. 우리네 시장규모도 엄청나지만, 소재고갈과 표절시비로 얼룩진 그곳엔 일본만화가 독식하고 있으니 ㅡㅡ

    암튼 요즘 보고 있는 이 드림은 천재 야구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현재 발간 중이다. 주인공은 타케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훈련을 빙자한 아동학대를 당했으며, 어머니와도 그리 사이가 좋지 않다. 야구실력만큼은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빠질 게 없지만, 어린 시절에 당한 학대로 인간관계는 너무 서투르다.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처받는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그다.
    이런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구, 꿈의 섬에 우여곡절끝에 야구선수로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괴팍하고 심술궂은 그지만, 야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갑자원..아니 갑자원이 다 뭐야 지역예선이라도 통과하면 다행인 그들이 타케토로 인해 신기록을 세우면서 갑자원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33권 진행 중이며, 갑자원을 향한 그들의 절력투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 책을 보면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상식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서, 한 컷을 그리기 위해서 많은 전문서적을 뒤졌을 작가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를테면 여성들에게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되는데, 오르막을 오르는 걷기운동을 한다고 하자. 그럼 상식적으로 우린 올라가는 게 더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글구 느낌상으로도 그렇구 하지만 아니올씨다이다. 올라가는 것보단 내려오는 것이 체중의 하중을 더 받기 때문에 더 많은 운동량을 소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구중계를 보다보면, 운동선수들이 심심치 않게 껌을 씹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그럼 왜 껌을 씹는 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야구관계자와 야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아니면 알지 못하리라. 긴장하게 되면 심장박동수는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요동치게 된다. 운동선수들은 그 긴장의 정도가 더 심하리라. 하지만 경기 중에 긴장하게 되면 실수하게 될테구, 그럼 당연히 우승은 물 건너 간것이다. 그러므로 껌을 씹어서 심장박동수를 운동하기 좋은 130대로 유지시킨다.
    한권의 만화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이런 크고 작은 상식들로 난 스포츠 만화를 즐겨 보는 편이다. 그리고 요리관련 만화도 즐겨 본다. 보다 보면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 상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난 지금 하품을 쏟아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만화책을 불쑥 던져주고 싶다.
    야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쉽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상식의 면을 엿 볼 수 있는 이 만화라면 하품은 금방 들어가 버릴테니까
    앞으로 이 만화가 얼마나 더 많이 출판될지는 모르겠지만, 완간되면 사서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싶다. ㅎㅎ 그녀도 나만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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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
    reader4 | 2005년 08월 24일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 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 저, 유영미 역 chr(124)_pipe 이끌리오 (끌리오) 출간 순수학문과 실용학문의 경계는 어디일까? 수학은 셈이나 틀리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계산하는 삶의 피곤함을 내세우며 졸업후 수학은 멀어져만 간다.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는 이러한 생각에 기분좋은 변화를 줄 만한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독일 수학자인 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가 연구를 위해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그곳 수학자 부부와 더불어 수학을 연구하는 동안을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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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

    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 저, 유영미 역 chr(124)_pipe 이끌리오 (끌리오) 출간


    순수학문과 실용학문의 경계는 어디일까? 수학은 셈이나 틀리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계산하는 삶의 피곤함을 내세우며 졸업후 수학은 멀어져만 간다.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는 이러한 생각에 기분좋은 변화를 줄 만한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독일 수학자인 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가 연구를 위해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그곳 수학자 부부와 더불어 수학을 연구하는 동안을 담고 있다. '수학이 우리 삶에 뭐가 필요한가 아 셈이나 제대로 하면 충분하지' 라며 수학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어온 사람들에게 일상생활에 접목되는 재미있는 발상들로 적절한 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알면 생활의 지혜가 될 수 잇는 알짜배기 지식들로 채워져 있다. 덤으로 ISDN의 원리도 수록되어 있다. 이런 소중한 지식들을 스파게티를 먹듯 우리 식으로 하면 국수나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먹듯 쉽게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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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골동양과자점
    seubasu | 2005년 08월 24일
    내 치명적인 병은 바로 케잌을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거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날 유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꼽는 그 첫번째가 케잌으로 유괴한다 일까.. 그치만... 양과자들의 그 화려한 옷들을 보면 죽어도 먹지 말아야하지 하지만 어느새 내 입안 가득히 퍼지는 생크림에 행복의 바다에 쩔어 있는 날 발견할 수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이런 내가 양과자를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었던 건 이 앤티크때문이다. 본 작품 서양골동양과자점에 나오는 양과자점 '앤티크'말이다. 그곳에 가면 항상 본인이 선호하다 못해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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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치명적인 병은 바로 케잌을 보면 사족을 못 쓴다는 거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날 유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꼽는 그 첫번째가 케잌으로 유괴한다 일까..
    그치만... 양과자들의 그 화려한 옷들을 보면 죽어도 먹지 말아야하지 하지만 어느새 내 입안 가득히 퍼지는 생크림에 행복의 바다에 쩔어 있는 날 발견할 수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이런 내가 양과자를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었던 건 이 앤티크때문이다.
    본 작품 서양골동양과자점에 나오는 양과자점 '앤티크'말이다. 그곳에 가면 항상 본인이 선호하다 못해 찬양해 마지않는 꽃!미!남! 것두 4명씩이나 날 반겨준다.
    뭐든지 최고를 달리지만, 어릴적에 유괴를 당한 기억이 봉인당한 체 성장해서, 어떤 여자와도 결혼이라는 단계에 다가가지 못한 체, 성공적인 직장을 때려치우고 과감히, 앤티크를 개업한 우리의 타치바나 케이이치로, 그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자 매력적이다 못해 마성의 게이인 오노 유우스케, 오랜 동안 타치바나 케이이치로가에서 생활하면서 맹세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치만 맘만은 비단결인 특이한 충복 코바야카와 치카게, 고아로 자라 막 나가는 성장기를 거쳐 복싱선수로 성공했지만, 망막박리로 인해 좋아하는 복싱까지 그만두고 우연히 앤티크에서 오노의 제자로 파티세로서의 희망을 품고 있는 칸다 에이지가 그 주인공들이다.
    항상 타치바나가 그날의 메뉴를 읊어 줄 때면 난 운다.
    왜...내 주변엔 저런 가게가 없냐구 방바닥 벅벅 긁으며 아주 통곡을 한다. 이 만화를 읽는 동안은 그나마도 케잌에 약한데 초절정의 유혹과 군침도는 상상력이 내내 위장을 노크하고 두뇌를 자극해 와서 괴롭다. 신경성 위염으로 입원하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 오후 10시가 넘은 밤 시간에는 이 매장의 방문을 금하는 바이다. 흑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앤티크에서 판매하는 케익은 도저히 먹지 않으면 안될만큼의 마력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치만 ㅜㅜ 만들어 먹지도 혹은 사러 나갈수도 없는 위기상황에 봉착하게 될테니 일찌감치 접고 자리에 드시길...

    장르를 따지자면 게이만화+제과 상법 만화+유괴범을 잡기 위한 추리 형사물정도라고 할까? 어느 것 하나 딱 부러지게 이거라고 할 순 없지만, 모두 조화롭게 앤티크를 중심으로 돌아가니 구태여 뭐라고 단정지어져 있지 않아도 좋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재료로 아주 멋지고 환상적인 맛을 가진 케잌으로 앤티크로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구태여 어른만화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어른들만이 갖는 생활의 우울함,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 현실에 대한 부담, 성공에 대한 압박감등을 잘 버무려 놓아 큰 부담감 없이 고스란히 그들만의 세계에 접어들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겪고 있는 성공에 대한 부담감, 하고 싶은 일을 접게 되었을 때의 그 암담함, 엉망진창인 인생을 어떡하든 개척해 나가고 싶은 마음같은 게 모조리 앤티크의 매장에 나와 있다.
    그들의 숨기고 보여주고 하는 과정속에서 나와 같은 인간을 보게 된다는 게 큰 매력인 것같다. 또한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큰 과장없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오버액션없이 잔잔하게 풀어가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공감하기가 쉽고, 내용의 부담감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된다.
    케잌의 맛을 내는 것은 어떤 좋은 재료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만들기 위한 파티셔들의 노력과 땀의 결정체가 바로 그 맛을 내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만화의 맛을 내는 건 해박한 케잌과 쿠키들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예쁜 그림체가 아니라 앤티크가 내뿜는 스토리의 탄탄함이라고 하겠다.
    내 생각엔 적어도 10권도 가능했을 것같은 스토리였는데, 작가가 너무 짧게 가게문을 닫은 것같아 적잖게 아쉽지만, 그래도 매장을 열어 놓은 그 시간만큼은 난 행복감을 맘껏 담아 왔으니 괜찮다.

    오늘 앤티크에 가 보지 않겠는가........
    행복을 파는 가게는 그렇게 많지 않단 사실에 중점을 두고 방문하길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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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의 기술 :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단호하게 나를 표현하는
    luv2unme | 2005년 08월 24일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남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주변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왜 나를 이렇게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 라는 생각은 하지만, 소극적인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는 뒤돌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게되는 과정에서 서로가 속마음까지 알 길이 없기에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그로 인해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심지어는 평생 그 사람에 대한 나쁜인상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그 자리에서 싹둑 잘라버리려면 그 만큼 용기있게(연습을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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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관계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남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주변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왜 나를 이렇게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 라는 생각은 하지만, 소극적인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는 뒤돌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커뮤니케이션하게되는 과정에서 서로가 속마음까지 알 길이 없기에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그로 인해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심지어는 평생 그 사람에 대한 나쁜인상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그 자리에서 싹둑 잘라버리려면 그 만큼 용기있게(연습을 충분히 한 후)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냥 내가 그 짐을 지고 말지.' 라는 소극적인 태도는 객관적으로 볼 때 매우 어리석고 손해보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 행동들이 주변의 인물들에게 자꾸 비춰지게 되면 그 손해는 점점 커지게 된다.
    남에게 해는 끼치지 않되, 자신의 것은 최소한 지킬 줄 아는 욕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이 책이 말하는 예시는 우리사회와는 약간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직접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못한 부분이 많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자신이 필요한 부분에 이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숙제이다.
    더 이상 손해보고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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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
    mcgwire | 2005년 08월 24일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10대들의 습관"이란 책이 집에 있길래 조금 읽어봤거든요. 근데 두께도 두껍거니와 재미보다 너무 이론중심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기가 만만치 않더라구요. 그래서 중간에 읽기를 포기 했는데 서점에서 우연히 청소년들을 위해 쉽게 풀어쓴 책이 나온걸 발견하고 구입했죠. 이전의 책을 어렵게 느낀 어른들이 보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수가 있죠. 더욱이 저자의 아들 숀 코비가 이 책을 10대들을 위해 각장마다 재미있는 만화그림과 명언들을 넣고 대화체의 말투로 엮은책이라 너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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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10대들의 습관"이란 책이 집에
    있길래 조금 읽어봤거든요. 근데 두께도 두껍거니와
    재미보다 너무 이론중심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기가 만만치 않더라구요. 그래서 중간에 읽기를 포기
    했는데 서점에서 우연히 청소년들을 위해 쉽게 풀어쓴
    책이 나온걸 발견하고 구입했죠. 이전의 책을 어렵게 느낀 어른들이
    보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수가 있죠.
    더욱이 저자의 아들 숀 코비가 이 책을 10대들을 위해 각장마다 재미있는
    만화그림과 명언들을 넣고 대화체의 말투로 엮은책이라
    너무 재미있게 본 책이에요.
    일단 7가지 습관을 들자면, 첫째 주도적이 되라 둘째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셋째
    소중한 것을 먼저하라 넷째 상호이익을 모색하라 다섯째 경청한 다음 이해시켜라
    여섯째 시너지를 활용하라 일곱째 끊임없이 쇄신하라
    앞의 세가지 습관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습관들이고 나머지 습관들은
    나와 상대의 인간관계를 발전할수 있는 습관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둘째 셋째 습관들에 공감이 많이 갔고 실천하려고 가장
    많이 노력하려고 해요. 내가 지금 이순간 해야할일을 알면서도 저는 가장 급한
    그 일을 회피하고 하지 않아도 될일들에 관심을 쏟았거든요.
    그리고 하고 싶은것 머리에 떠오르는것 위주로 일을 처리했는데
    목표를 정하고 계획해서 일을 처리하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됐구요.
    저는 이책의 디자인이나 그림이 재미있고 이뻐서 자주
    손이 가더라구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책 내용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머리에 각인도 되고 7가지 습관들도 실천하려고 마음도 변화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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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 오브 아프리카
    mcgwire | 2005년 08월 24일
    여행기를 읽고 있을땐 좋지만 다 읽고 나면 문득 아쉬움과 후회감이 든다, 그 나라와 지금의 내가 있는 나라의 물리적인 거리도 멀뿐더러 그곳에 지금 당장 갈수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는 말에 친구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을 쳐다보듯 나를 쳐다본다, 그들에게 가고 싶은 나라란 품격있고 우아한 나라, 적어도 우리나라보다 더 잘살고 문명이 발달한 나라들인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모든 문명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던 아직도 원시적이고 신비로움에 싸인 나라에 가길 더 원한다, 지금의 내안에 숨쉬는 동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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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기를 읽고 있을땐 좋지만 다 읽고 나면 문득 아쉬움과 후회감이 든다, 그 나라와 지금의 내가 있는 나라의 물리적인 거리도 멀뿐더러 그곳에 지금 당장 갈수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는 말에 친구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을 쳐다보듯 나를 쳐다본다, 그들에게 가고 싶은 나라란 품격있고 우아한 나라, 적어도 우리나라보다 더 잘살고 문명이 발달한 나라들인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모든 문명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던 아직도 원시적이고 신비로움에 싸인 나라에 가길 더 원한다,

    지금의 내안에 숨쉬는 동물적인 본능과 원초적인 어떤걸 느끼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이책은 단지 여행서적쯤으로 치부해 버릴 책이 아니라 아프리카란 나라에 대한 정보서적이라 할수 있다, 쓰신 분이 아프리카에서 다년간 외교관 생활을 하신분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서술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아프리카 각지역의 역사와 정치 문화,등을 찬찬히 서술해 놓으셨다, 기존의 우리 문명인??인들의 생각엔 아직도 그곳은 원시인들만 살고 빌딩하나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왠걸?

    각 도시는 우리나라 못지 않게 높은 빌딩과 건물들, 문명화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식민지 시절의 잔재와 함께 다수의 많은 부족들간에서 행해지는 다소 원시적인 할례의식으로 많은 젊은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고도 한다, 특히 우리 귀에 익숙한 나라인 나이지리아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곳엔 무려 300여개의 서로 다른 종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문맹률이 60%에 이르며 기관총으로 무장한 떼강도들이 많아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곳으로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다고 하는데,, 그만큼 아프리카에 보여지는 문명화된 모습은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문명화되며 기존의 문화들이 사라지는 것에도 마음이 섭섭하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방인들에게 친절한 웃음과 마음을 전해주는 아프리카인들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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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
    eujung | 2005년 08월 24일
    제목 :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 저자: 팻 맥라건지음 윤희기 옮김 출판사 : 예문 친구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책이 뭐냐구 물었다. 그때까지 나는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 다행히 검색이 되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후속편이 바로 이 책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이었다. 이책은 출간 4개월 만에 10만부 가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봄 경제 경영서 시장에 만만치 않은 돌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변화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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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
    저자: 팻 맥라건지음 윤희기 옮김
    출판사 : 예문

    친구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후속편에 해당하는 책이 뭐냐구 물었다. 그때까지 나는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다. 다행히 검색이 되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후속편이 바로 이 책 "바보들은 항상 결심만 한다"이었다.

    이책은 출간 4개월 만에 10만부 가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봄 경제 경영서 시장에 만만치 않은 돌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가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이 책은 우리가 변화의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어떻게 변화를 해야되는지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평범한 이들에게 그 방법을 제시해주는 실천서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아! 변화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이것을 해야되겠다구 결심은 합니다.」 하지만 그 결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쉽지 않죠! 그래서 변화를 못하는 바보가 되는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세간에 바보로 시작하는 자기경영·처세에 관한 책들이 아주 많이 나와있죠! 아주 두께가 뚜거운 책들도 많지만, 이책은 페이지수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구, 내용도 아주 쉽게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변화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 3가지를 강한신념, 강한 품성, 강한 행동으로 보며, 그 각각을 하나의 장으로 엮었습니다.

    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이 강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변화를 위해서는 정보화 시대의 기술을 개발하라, 커뮤니케이팅, 네트워킹, 관계형성 능력, 의사결정과 문제해결능력, 창조적, 체계적 비판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에 무지 공감이 갔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변화를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금은 알게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데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 않아 있으니 이 책을 읽으시는 분은 내가 변화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는 신념을 책을 읽는다면 아마 이 책을 독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변화에서 제외되어 도태되는 바보가 아니라 변화의 흐름에 합류하며 사회의 객체가 아닌 주체임을 스스로에게 보여줍시다.

    즐건 독서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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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동명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sisyphus72 | 2005년 08월 24일
    무엇보다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은 다루기 까다로운 카메라를 '친근한 장난감'으로 지위 격하(!) 시켰다는 데 있다. 아마도 사진에 흥미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년 전 쯤엔가 아마추어 사진 동호회의 출사(出寫)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내 딴에는 백 여 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니콘 FM-2 기계식 카메라(흔히 '수동 카메라'라고 표현한다) 및 부속 장비 일습을 챙겨들고 갔다. 고급 축에는 못 끼더라도 중간치는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근데 웬걸, 모인 20여 명의 사람들 장비를 둘러보니 이건 뭐 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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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은 다루기 까다로운 카메라를 '친근한 장난감'으로 지위 격하(!) 시켰다는 데 있다. 아마도 사진에 흥미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년 전 쯤엔가 아마추어 사진 동호회의 출사(出寫)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내 딴에는 백 여 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니콘 FM-2 기계식 카메라(흔히 '수동 카메라'라고 표현한다) 및 부속 장비 일습을 챙겨들고 갔다. 고급 축에는 못 끼더라도 중간치는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근데 웬걸, 모인 20여 명의 사람들 장비를 둘러보니 이건 뭐 초라하다 못해 숨기고 싶을 정도였다. 그들이 주고받는 아반떼 한 대 값이니, 봉고 한 대 값을 짊어지고 다닌다는 말이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으니까.
    올 초 읽은 사진 전문가의 글에도 내가 경험했던 상황이 비슷하게 나와 있다.

    "프로 사진가인 나는 촬영지에서 마주치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엄청난 장비에 항상 주눅들어 살고 있다. 그들을 보면 사진 촬영이 마치 체력 과시를 위한 도구란 생각이 든다. 등이나 어깨에 멘 커다란 카메라 백은 기본이고, 목에는 대포만 한 렌즈를 단 카메라가 걸려있다. 그것도 모자라 몇 대의 카메라를 멘 사람도 보이고 손에는 예외 없이 큼직한 삼각대가 들려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참새를 잡기 위해 M-16 소총을 쏘아대는 것이 분명했다."
    -윤광준, <잘 찍은 사진 한 장> 43-44쪽, 웅진닷컴, 2002년.

    오동명의 이 책은 윤광준 만큼 신랄하거나 비꼬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거창한 장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낸다.
    "오디오 마니아 중에는 값비싼 오디오를 집에 들여놓는 이들이 많은데 그걸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아마 볼륨의 3분의 1도 못 올리고 들어야 할 걸? ...... 카메라도 마찬가지야. 주위에서 새로운 카메라를 갖고 다닌다고 해서 신경 쓸 필요 없어. 지금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자기에겐 최상의 카메라니까."
    (본문 61쪽)

    심지어 필터대신 로션바른 유리조각이나 콧기름, 담배갑의 비닐을 이용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저자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이 책의 '소탈함' 때문에 다른 입문서는 마치 '카메라 장비 카탈로그'처럼 보일 정도다. 게다가 저자는 어려운 사진 용어나 난이도 높은 기술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가 오로지 고민하고 정성들이는 건 어떻게 하면 사진 찍는 것이 생활에 즐거움을 줄 것이냐의 문제다. 카메라를 전문기술자만이 다룰 수 있는 '고급 광학기기'에서 쉽게 사람들이 만지작거리며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멋진 풍경을 두고 그 앞에 뻣뻣이 서서 찍는 '기념사진' 문화를 질타하기도 한다. 풍경도 중요하지만 과감히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사진찍기, 손동작을 활용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진찍기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요컨대, 즐거운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생활 필수품으로서의 카메라, 또한 그 역으로 사진 찍기를 통해 즐거운 생활을 창출해 내는 것이 그가 바라는 전부일 듯하다.

    책을 읽고 나서 지난겨울 촛불시위 촬영 이후 구석에 쭈그려 박힌 카메라를 다시 꺼내 닦았다. 이번 여름엔 멋진 곳을 찾아 헤매기보다 주변의 사소한(?) 것을 담아보리라는 결심을 하면서. 그리고 조금만 나의 삶이 즐거워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어디 사진찍기만 그러하겠는가, 책읽기나 글쓰기도 그와 다름없을 게다. 무슨 평론가나 작가가 된 듯 어깨에 힘주고 어려운 말을 늘어놓기보다 그냥 오랜 친구와 나누는, 편안한 잡담 같은 글쓰기가 우리의 일상을 정작 밝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 오동명은 언론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 인물이다. 몇 년 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탈세 의혹이 불거졌을 때 중앙일보 기자들이 검찰 출두하는 홍 회장에게 "회장님, 힘내세요!" 외친 적이 있었다. 당연히 중앙일보 지면은 '표적수사', '언론탄압' 등의 대(對)정부 비난 기사로 메워졌고. 회사의 이런 분위기에 반발해 사내 게시판에 동료 기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써붙이고 사직서를 제출한 바로 그 사진기자다.
    오동명이 일전에 쓴 <당신 기자 맞아?>나 <신문所 습격 사건>을 읽어보면 그가 단순한 사진 기술자나 예술가가 아니라 '비상식적인 것' 에 분노할 줄 아는 건전한 '생활인' 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소박한 사진 입문서를 내놓게 된 걸 자연스럽게 생각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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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은 답을 알고 있다.(1,2)
    freshsea | 2005년 08월 24일
    안녕하세요.^^ 글을 쓰고 있는 전 고등학생이랍니다. 글을 표현하는데는 어리숙한 점이 많은나 제가 여러분들께 꼭 한번쯤을 읽어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전 이책을 처음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 하였습 니다. 처음 이책의 겉 표지에 있는 물결정을 보고 말로 형언할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 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진 꽤 되었지만 아직 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건 환경에 영향을 받아 모습이 달라지는 물의 결정 이였습니다. '행복' 이나 '사랑' 이란 글자를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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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글을 쓰고 있는 전 고등학생이랍니다. 글을 표현하는데는

    어리숙한 점이 많은나 제가 여러분들께 꼭 한번쯤을 읽어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전 이책을 처음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 하였습

    니다. 처음 이책의 겉 표지에 있는 물결정을 보고 말로 형언할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

    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진 꽤 되었지만 아직 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건 환경에 영향을

    받아 모습이 달라지는 물의 결정 이였습니다. '행복' 이나 '사랑' 이란 글자를

    보여줌으로써 보여지는 물 결정의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이 밖에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세계 어느 언어로 바꿔도 물 결정의

    모습을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안돼', '망할놈' , '짜증나네' 등의 모습을 보여준 물 결정은 마치 우주의

    폭발과 같은 불규칙적이며 분명하지 않은 흐릿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단지 이 물의 결정을 보고 놀란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놀란 이유는 우리

    가 바로 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냈을때 입니다.

    사람의 70%를 차지하는 물이 이 단어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해 냈을떄 몸의 구조가

    달라집니다.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이 달라지고 생각이 바뀌며 행동이 바뀝니다.

    왜 선조들이 생각의 힘! 이라는 말을 하는지 세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가 표현하는 글이 정돈되지 않아서 잘 전달되지 않은것 같습니다만.

    학교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셔서 한번 봐보세요... 글을 읽지 않아도 책속의

    사진만 보더라도 그 감동을 느끼실수 있으실것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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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몸을 살리는 요가 30분
    bunilee | 2005년 08월 24일
    송방호 지음, 『내 몸을 살리는 요가 30분』, 넥서스BOOKS, 2003. 몇 년 전, 어울리지도 않게 일주일에 한 시간씩 세 달 동안 재즈댄스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어렵고 격렬한 몸동작을 따라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어려웠다. 당시 3개월간 재즈댄스를 배우러 다니면서 깨달은 사실이란, 역시 과격하고 격렬한 춤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즈댄스라는 춤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어졌지만, 그 춤동작의 준비단계로 하는 스트레칭 체조가 내게는 더욱 흥미로웠다. 나중에야 그 스트레칭 체조의 대부분이 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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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방호 지음, 『내 몸을 살리는 요가 30분』, 넥서스BOOKS, 2003.

    몇 년 전, 어울리지도 않게 일주일에 한 시간씩 세 달 동안 재즈댄스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어렵고 격렬한 몸동작을 따라하는 것이 내게는 매우 어려웠다. 당시 3개월간 재즈댄스를 배우러 다니면서 깨달은 사실이란, 역시 과격하고 격렬한 춤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즈댄스라는 춤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어졌지만, 그 춤동작의 준비단계로 하는 스트레칭 체조가 내게는 더욱 흥미로웠다. 나중에야 그 스트레칭 체조의 대부분이 요가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부터 언젠가는 요가를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벼르고만 있다가 드디어 나는 올 봄부터 약 5개월간 혼자서 이 책을 보고 요가의 동작을 익혔다. 본래 요가는 호흡과 명상, 체조의 세 가지를 함께 일컫는 것이다. 호흡과 명상은 지도자의 도움이 없이 혼자 터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5개월간 짬짬이 책을 펴놓고 혼자 요가의 동작만을 익혔지만, 요가 수련의 신비로움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언젠가는 반드시 요가 수련원을 찾아가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이 책은 나처럼 혼자서 요가 체조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적합한 책이다. 시중에 요가 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있지만, 요가나 요가 체조 자체에 대한 길잡이가 되기보다는 요가를 통해 다이어트에 성공한 체험담이라든가 혼자서는 익히기 어려운 호흡이나 명상에 대해 길게 설명해 놓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설명과 사진을 보고도 한 동작씩 천천히 익힐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이 책은 요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요가의 기본적인 자세를 소개한 후, 원하는 대로 골라서 배워볼 수 있도록 주제별로 나눠져 있다. 예를 들면, 건강을 위해 요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전신피로에 좋은 요가, 척추를 바르게 펴주는 요가, 신장을 위한 요가, 신경통과 관절염에 좋은 요가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또 다이어트를 위한 요가 동작 역시 과식을 고치는 요가, 피부가 좋아지는 요가, 등살을 없애는 요가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으며, 남성, 임산부, 노약자, 어린이 등 대상별로 묶어 놓기도 했다.

    참고로 나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할 수 있는 동작들을 하나씩 따라하면서 나에게 필요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요가 동작들을 표시해 두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런 몇 가지 동작들을 집중적으로 따라해 보고, 한 두 가지씩 새로운 동작들을 익혀나가는 식으로 해서 이 책을 끝까지 다 보았다.

    요가에서는 우리 몸의 중심인 '허리'를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척추가 제자리를 잡고 바르게 서 있어야 그 안에 있는 내장 기관들 역시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데, 척추가 비뚤어지면 내장 기관들이 압박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압박을 받게 된 내장 기관들이 자기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한쪽으로 몰리게 되면 제 기능을 다할 수 없게 되어 여러 가지 질병들이 생길 뿐 아니라 비만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요가는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요가에서 명상을 중시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경직된 사고를 하는 사람들보다는 좀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요가의 동작들을 더 잘 따라한다고도 한다. 어설프게나마 요가의 동작들을 하나씩 꾸준히 익혀나가다 보면 틀림없이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적극 권해주었으며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랑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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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하는 개인과 지배하는 욕망-구조
    santaf | 2005년 08월 24일
    토미에 PART 1 - 이토준지 공포만화 콜렉션 3 / 이토 준지 (지은이) / 시공코믹스 이름이 토미에라고 하는 어느 여학생의 끈질긴 생명력과 그 여학생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흠모와 숭배, 그리고 그 여학생의 자기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적 허영 등을 그리고 있는 만화이다. 내가 처음 이토 준지 만화를 접한 것은 였다. 창백한 얼굴, 몽롱하니 초점 잃은 눈, 기괴한 몰골 등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역시 창백한 얼굴, 몽롱하니 초점 잃은 눈, 기괴한 몰골 등의 그림 표현을 통해 공포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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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미에 PART 1 - 이토준지 공포만화 콜렉션 3
    / 이토 준지 (지은이)
    / 시공코믹스


    이름이 토미에라고 하는 어느 여학생의 끈질긴 생명력과
    그 여학생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흠모와 숭배,
    그리고 그 여학생의 자기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적 허영 등을 그리고 있는 만화이다.

    내가 처음 이토 준지 만화를 접한 것은 <소용돌이>였다.
    창백한 얼굴, 몽롱하니 초점 잃은 눈, 기괴한 몰골 등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토미에> 역시 창백한 얼굴, 몽롱하니 초점 잃은 눈, 기괴한 몰골 등의
    그림 표현을 통해 공포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시각적 조건을 형성한다.
    그러나 <토미에>가
    <소용돌이>의 표피적 주제만 다른 복사판이 선사하고 말 뻔한 주제와 결론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끊임없이 작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재담 때문이다.

    여러 가지 단편들이 묶여서 편집된 만화인데 공통된 패턴이 있다.
    토미에는 분열과 재생을 통해 놀라운 자기증식력을 선보인다.
    그리고 토미에로부터 유혹을 받는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매력에 이끌리어
    토미에를 흠모하고 숭배하기까지 하게 된다.
    게다가 토미에는 자기자신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과대망상적인 허영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패턴들로부터 작가의 어떠한 주제의식을 읽어낼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보고자 한다: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로서의 환상
    을 이루는 욕망들의 경쟁적인 진화 과정이
    구현된 인물이 토미에이다.


    자주 등장하는 장면인,
    토미에가 분열과 재생을 통해 자기증식하고
    또 죽었다가도 끊임없이 다시 살아나며
    복수의 토미에가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또 살해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선택을 하는 행위자로서의 개체의 '본질'을 차지하려고 하는
    다양한 욕망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행위자인 개체의 존재성과는 어느정도 독립적으로
    그 존재성이 유지되는 구조, 문화, 또는 욕망체계는
    어느 한 행위자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행위자 개체를 통해
    여전히 지속될 수 있다.

    그리고 욕망들은 분열하여 더 하위의 복수 욕망들로 분화될 수도 있고,
    그대로 다른 행위자 개체에 전파되어 재생될 수도 있다.
    아울러, 주변 사람들이 토미에를 숭배하여 토미에의 지배를 받아
    그 명령에 복종하는 것 역시
    선택 자체는 행위자인 개인이 하지만,
    만약 행위자 개인이 자기 선택을 결정지은
    자기 자신의 선호체계 혹은 욕망구조들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그 개인의 선택은 사실은
    자기 자신이 빠져있는 욕망들의 지배를받는
    노예 상태의 예속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토미에가 과대망상적으로 허영적인
    자기 자신의 꿈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것은,
    '캐비어나 푸아그라'를 자꾸 찾는 대사에서 두드러지는데,
    바로 토미에 개인이 욕망체계라는 구조에 완전히 종속되어버린 극한점의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토미에>를 통해서,
    선택하는 개인과 그 선택을 결정짓는 욕망 구조 사이의 관계를 살펴본다면,
    <토미에>를 읽는 재미가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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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sncharm | 2005년 08월 24일
    "친구 네 사람이 각자 100원씩 갖고 카드 게임을 한다면 전체 파이는 400원에서 한푼도 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잃고 따는 셈이 되지만, 100원짜리 정보를 네 사람이 서로 나누는 게임을 생각하면 네 사람 모두 자기 정보를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정보를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으므로 각자가 300원씩, 전체적으로는 1200원이라는 파이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p153) "냉장고가 클수록 버리는 음식이 많아진다, 큰 창고를 갖고 있으면 자연히 재고가 늘게 마련이다. 소유는 새로운 것을 맞이할 여유를 빼앗아 간다. 자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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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네 사람이 각자 100원씩 갖고 카드 게임을 한다면 전체 파이는 400원에서 한푼도 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잃고 따는 셈이 되지만, 100원짜리 정보를 네 사람이 서로 나누는 게임을 생각하면 네 사람 모두 자기 정보를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의 정보를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으므로 각자가 300원씩, 전체적으로는 1200원이라는 파이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p153)

    "냉장고가 클수록 버리는 음식이 많아진다, 큰 창고를 갖고 있으면 자연히 재고가 늘게 마련이다. 소유는 새로운 것을 맞이할 여유를 빼앗아 간다. 자꾸 없애고 줄여서 새로운 것을 맞이할 여유를 확보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p162)

    위의 글은 이 책 속에 들어 있는 일례로 이처럼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하여 이건희 회장다운 발상으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1997년 11월에 동아일보사가 간행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1부 - 변해야 살아 남는다, 2부 - 벽을 넘어서, 3부 - 열린 디지털 사회을 위하여, 4부 - 상생의 공동체를 꿈꾸며, 5부 - 21세기 초일류를 향하여 라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계 1위의 삼성그룹을 이끌기 위하여 그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말 수가 적고,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많다고 하는 필자의 진지하고 의미 깊은 생각을 한올 한올 읽어내려가면 일정한 틀, 늘상 반복되는 일상사에 매몰되어 계획과 변화를 모르고 사는 우리도 조금만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나와 남이 함께 상승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음을 가르쳐 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일화와 사례를 들어가며 술술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 우리가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는 작은 재미도 느껴볼 수 있다.

    끝으로 리뷰 구분에서 '인문/사회/예술'에 넣지 않고 '실용/기타'에 글을 남긴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 우리에게 많은 실용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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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베박사와 프레데릭의 잠과 꿈 속으로 떠나는 7일간의 과학여행
    hanyong386 | 2005년 08월 24일
    '잠'이라는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동물이) 심신의 활동을 쉬면서 무의식 상태로 되는 일'이라는 한줄도 안되는 간단한 설명만이 있을 뿐이다. ('수면'으로 찾아보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우리 일생의 1/3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잠이라고 한다. 인류와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되었을 잠이었는데 그 역사에 비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불과 50년전까지만 해도 인류가 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뇌파가 발견되면서 환상과 꿈으로 여겨지던 잠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법이 등장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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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라는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동물이) 심신의 활동을 쉬면서 무의식 상태로 되는 일'이라는 한줄도 안되는 간단한 설명만이 있을 뿐이다. ('수면'으로 찾아보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우리 일생의 1/3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잠이라고 한다. 인류와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되었을 잠이었는데 그 역사에 비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불과 50년전까지만 해도 인류가 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하니 말이다. 뇌파가 발견되면서 환상과 꿈으로 여겨지던 잠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법이 등장하고 나서야 잠의 비밀을 조금씩 벗겨내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주베박사와 호기심 많은 과학소년 프레데릭의 이야기 형식(질문과 답변)의 글로서 청소년을 위한 교양 과학 도서이다. 이 책에서 제일 먼저 궁금한 것은 당연히 이야기를 이끌어 주는 주인공인 주베박사가 누구인가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리옹의 한 병원에서 신경계 기능을 연구하고 있는 미셸 주베 박사는 프랑스의 저명한 수면 연구가이며, 300여 편의 과학도서를 썼고 수면연구협회의 특별과학자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취리히 대학 등 여러 대학의 명예교수직도 맡고 있다.

    책 속의 과학소년 프레데릭과 주베 박사는 질의문답 형식으로 우리들이 궁금해 하는 잠과 꿈에 대한 의문들을 풀어준다. 더구나 수면의학을 전공한 정신과 전문의 서천석님이 번역을 했기 때문에 정확하고 이해가 쉽게 번역이 된 것도 이 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책 내용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래와 같은 소제목으로 이야기가 구분된다.
    첫째날-잠이란 무엇인가
    둘째날-잠의 연구
    셋째날-잠자는 장소
    넷째날-잠자는 때
    다섯째날-잠자는 방법
    여섯째날-잠자는 이유
    일곱째날-잠에 대한 Q&A

    잠이란 무엇인가라는 기초적이며 기본적인 문제에서 시작해서 수면연구에 대한 역사등 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전개가 사슬의 고리처럼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을 떼어내어서 '이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단정지어 말 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는 몇가지 궁금증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1.잠이 오면 왜 눈을 비빌까?-잠이 오면 평소보다 눈물샘에서 눈물의 분비가 적어진다. 그래서 눈이 공기에 노출되어 가려움증을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눈을 자꾸 비비게 된다.
    2.낮잠을 자는 것은 좋은가?-아침에 깨어나서 약 여덟시간이 흐르면 보통 졸음이 온다. 이때 10~15분 정도 낮잠을 자면 피로회복에 좋다.
    3.잠을 자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안전과 27도씨의 온도.
    4.우리 머릿속에도 있고, 식물들도 가지고 있으며 동물도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는 시계는?-우리가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루에 한 바퀴 도는 생체시계이다.
    5.기억력을 키우는 수면법은?-잠을 충분히 자고 무엇보다도 잠들기 전에 낮에 배운 것을 잠깐 동안이라도 복습한다.
    6.사람은 물 속에서 잘 수 있을까?-이론상 34도씨의 물이라면 잘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전에 물에 빠지져 죽을지도 모른다.
    7.잠자기 전에 먹으면 잠이 안오나?-잠들기 세 시간 전에 많은 양의 음식 섭취는 수면을 방해한다. 단, 가벼운 과자 정도는 잠을 더 잘 오게 한다.

    자칫 딱딱한 이야기일 수 있는 과학을 다루는 책이지만 대화 형식이어서 딱딱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잠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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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다시리는 티베트 명상법
    ko0322 | 2005년 08월 24일
    요즘 들어 티벳이라고 하는 나라가 이상하게 자꾸 나의 시선을 잡아끈다. 맨처음 티벳이라고 하는 나라를 알게 된 것은 브래드피트가 주연한 영화를 보고 나서였지만 이 때만 해도 잘생긴 남자배우의 얼굴만 쳐다보았을 뿐 티벳이라는 나라의 역사나 비극적인 배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달라이 라마의 책을 우연찮게 접하게 되면서 티벳이라고 하는 나라가 비록 물리적인 힘이 약해 중국이라는 나라의 속국이 되었지만, 정신적인 힘이 깊이는 상당히 뿌리깊은 그러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래저래 티벳과 관련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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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티벳이라고 하는 나라가 이상하게 자꾸 나의 시선을 잡아끈다. 맨처음 티벳이라고 하는 나라를 알게 된 것은 브래드피트가 주연한 영화를 보고 나서였지만 이 때만 해도 잘생긴 남자배우의 얼굴만 쳐다보았을 뿐 티벳이라는 나라의 역사나 비극적인 배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달라이 라마의 책을 우연찮게 접하게 되면서 티벳이라고 하는 나라가 비록 물리적인 힘이 약해 중국이라는 나라의 속국이 되었지만, 정신적인 힘이 깊이는 상당히 뿌리깊은 그러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래저래 티벳과 관련 있는 몇 가지의 책을 거쳐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명상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는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뭔가 알지 못하는 신비의 세계에 빠진다거나 아무도 없는 산 속에 들어가 몇 달간 묵언수행을 한다든가 해서 공중에 뜨는 공중부양 경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명상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고 생각이라고...

    그런데 이 책에서는 명상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종교와 직접적으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 단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단련시키고 훈련시키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전거타기를 배우는 것, 수영을 배우는 것과 명상을 하는 것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처음 탈 때는 저렇게 가늘고 얇은 두 개의 바퀴로 과연 균형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겁이 나기도 하지만 일단 그 방법을 우리의 몸이 습득하게 되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그 점이다. 자전거 타기처럼 명상도 매일 30분씩 시간을 내서 노력을 하면 익숙해진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읽어나가다 보니 서서히 명상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지칠대로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인지,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면서 얼마나 쓸데없는 것들에게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기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나도 생활 속에서 명상을 실행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요한 사항을 종이 위에 메모를 했다. 이 책은 명상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 놓은 책이어서 따로 명상수련원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명상의 효과를 확실하게 보기 위해서는 하루에 15분에서 30분을 꾸준하게 실행해야한다는 데 그게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생각해보매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것도 그렇다. 길은 도처에 널려 있는데 그리고 그 길이라는 것이 대개의 경우 참 쉽고 간단한데 왜 이리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것이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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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
    ko0322 | 2005년 08월 24일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살면서 이러저러하게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듯이 읽은 책 모두 또렷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도 아니지요. 책을 읽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영화를 보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읽었던 책의 내용이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예전에 알았던 사람의 말투나 얼굴이 어느 정도 잊혀진다 해도, 한참 전에 보았던 영화가 제목마저 가물가물하다고 해도 그 만남이 무의미하지 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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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살면서 이러저러하게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을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듯이 읽은 책 모두 또렷이 마음에 남아 있는 것도 아니지요.
    책을 읽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영화를 보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읽었던 책의 내용이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예전에 알았던 사람의 말투나 얼굴이 어느 정도 잊혀진다 해도, 한참 전에 보았던 영화가 제목마저 가물가물하다고 해도 그 만남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은 만남의 그 순간에 빛났던 영혼 때문이겠죠.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왕이면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책갈피에 끼워 둔 단풍잎처럼 선명한 빛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간사한 욕심만은 어쩌지 못합니다.
    올해 제가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입니다. 아무리 시간의 흐름에 무심한 사람이라도 새해라는 특별한 날에는 신년 계획 몇 가지 세워보기 마련입니다. 저도 올해 초 몇 가지 신년계획을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어놓았는데, 그 중 대부분의 것들은 다 시간의 공격 속에서 무참히 패배당했으나 다행히 한 가지는 초과달성한 것이 있습니다.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를 읽고, "10킬로 달리기"를 신년 계획 중 하나로 집어 넣었거든요. 그 책을 보고 자극받아 달리고 또 달려서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최장거리 기록은 13. 5킬로미터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태백의 공설운동장 가장자리 트랙으로 30바퀴랍니다)
    이 책의 저자인 요쉬카 피셔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일단 그가 독일의 외무장관이라는 것부터 이야기해야겠죠. 젊은 시절에는 축구도 하고 운동 신경도 좋아 비만하고는 거리가 먼, 날렵하고 민첩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술과 기름진 음식으로 해소하는 생활을 십 년 넘게 지속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체중이 늘기 시작했답니다. 급기야는 축구는커녕 걷는 것도 힘들 정도로 살이 쪘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늘어 점점 더 음식에 대한 탐닉이 심해져 갔죠. 결국 이혼까지 한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한 반성과 성찰을 한 끝에 자신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살을 떼어버리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 책에는 그가 얼마나 눈물겨운 의지와 노력으로 체중조절에 성공했는지가 아주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체중조절성공이 제가 이 책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처럼 달리기를 열심히 하게 만든 이유는 아닙니다.
    그는 말합니다. 처음에는 달리기를 살빼기의 수단으로 생각했지만 달리다보니 달리기 자체가 기쁨이 되고 목적이 되었다고. 이젠 달리기 없는 그의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달리면서 심장의 박동 소리도 들었지만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또 다른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고...
    전 달리기를 통해 아직 그리 많은 살을 빼지는 못했지만, 달리다 보니 그가 말했던 달리기의 즐거움과 매력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읽어 보시고, 운동화 끈 힘껏 조이고 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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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말하기, 그리고 딴소리하기
    santaf | 2005년 08월 24일
    신경생물학자와 수학자가 만나서 서로 자기가 아는 지식을 어떻게 상대방의 학문에 적용 또는 투영(projection)시킬 수 있을지 토론한다. 정돈된 결론과 정리를 제시하며 설명하기 보다는 어떤 것들이 가능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마구 떠들어대며, 자기의 상상력을 꺼내 보여주는 편에 가깝다. 간단히 말하자면 두뇌와 수학적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경생물학자는 두뇌를 연구하고 수학자는 수학적 대상- 예를 들어, 소수(prime number)-을 연구한다. 각자 자기 전문 필드에서 지금까지 연구했던 결과물들을 서로에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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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생물학자와 수학자가 만나서 서로 자기가 아는 지식을
    어떻게 상대방의 학문에 적용 또는 투영(projection)시킬 수 있을지
    토론한다. 정돈된 결론과 정리를 제시하며 설명하기 보다는
    어떤 것들이 가능할 수 있는지 이것저것 마구 떠들어대며,
    자기의 상상력을 꺼내 보여주는 편에 가깝다.

    간단히 말하자면 두뇌와 수학적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경생물학자는 두뇌를 연구하고 수학자는 수학적 대상- 예를 들어, 소수(prime number)-을
    연구한다. 각자 자기 전문 필드에서 지금까지 연구했던 결과물들을
    서로에게 소개해주고 상대방 의견을 구하고 한다.
    수학적 대상은 물리학의 대상인 자연과는 달리 정신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정신은 두뇌라는 물질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일 뿐이므로
    수학적 대상은 두뇌와 같은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구성물일 뿐이라고
    신경생물학자인 샹제는 줄기차게 주장한다.
    반면에 수학적 대상은 개별 수학 연구자의 연구 활동과는 관계 없이
    다양한 연구 주제와 시대에 걸쳐 놀랍도록 일관성을 보여왔으므로,
    수학적 대상은 수학자 인간의 구성(construction)과는 관계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수학자인 콘느는 줄곧 반론을 펼친다.

    수학적 대상이 일종의 문화적 표현체 또는 문화적 대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학자는 일단 의견이 일치한다.
    즉, 수학적 대상도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학적 대상의 존재성이 얼마나 인간 수학자의 활동에 독립적이냐
    하는 것이다.
    샹제는 새로운 수학적 대상이 나타날 때마다
    필요를 느낀 인간 수학자가 구성한 결과로 새로운 수학적 대상이
    나타날 뿐이므로 수학적 대상의 존재성은 인간 수학자의 활동에
    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콘느는 인간의 자의적인 조작 활동과는 독립적으로
    자기 완결성의 놀라운 논리적 특징에 따라 수학적 대상이 존재해왔으며,
    인간 수학자는 그러한 수학적 대상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새로운 수학적 대상을
    필요에 의해 인지하게 되고나서야 비로소 '발견'하게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콘느의 논의에서 수학적 대상 존재성의 독립성에 대해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 근거는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이다.
    즉, 논리성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편의'에 따라 구축된 수학이
    인간적인 '편의'에는 전혀 관심 없는 자연에
    이상하게도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으로 잘 적용된다는
    이해하기 힘든 비합리적인 사실이 바로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이다.
    콘느의 말은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만 보더라도
    수학적 대상이 인간의 '구성'에 대해 상당히 독립적인 존재성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 내용은 수학적 대상은 인간 두뇌의 산물이므로 플라톤적 실재론은
    맞지 않다는 샹제의 공격과
    '수학의 비합리적인 효율성' 측면에서 수학은 인간 두뇌의 활동과는 독립적으로
    자연과는 또다른 물질성을 갖는다는 콘느의 방어가 반복된다.

    진화론이 어떻게 수학에 응용될 수 있고, 위상수학이 신경생리학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간단하게 설명하는 대목이 조금 나오긴 하나,
    설명을 듣는 학자는 딴소리하기 일쑤이며
    설명하는 학자는 혼자말하기 일쑤이다.

    마지막 파트인 <윤리의 문제>는 문화-윤리-철학 방면에 대한
    샹제의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지식 뽐내기로 점철되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샹제의 기나긴 "문화이론"적 설교를 6개의 챕터 형식으로 편집했고,
    콘느의 지극히 짤막한 건의를 1개의 챕터 형식으로 끼워넣은 것은
    바로 이 책에서 계속되는 혼자말하기와 딴소리하기의 백미라고 하겠다.
    괴델의 정리와 튜링 기계를 논하는 대목 또한
    딴소리하기와 눈꼴 사나운 야합하여 서로 칭찬하기의 극치이다.

    학제적 연구의 시도라는 용기는 가상하나
    밀도 높은 토론이라는 좀더 책임있는 결과가 부족해 아쉬움을 많이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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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란 뭘까요???
    jesus13 | 2005년 08월 24일
    제가 이번 학기에 꼭 읽으려고 했던 책은 유럽의 역사나 유럽여행정보에 관한 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숙사에 컴퓨터가 없어서 제대로 미리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가까운 서점에도 잘 가보지 못해서 이번 2학기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으로 읽었던 책 내용에 대해서 부족하지만 몇글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번 학기에 들어와서 가까운 선배로부터`빌려서 읽은 책은 책 제목이 `다니엘 학습법‘입니다.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 했구 서울대에서 타과에서 자기 과에 들어오라구 제안도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종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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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이번 학기에 꼭 읽으려고 했던 책은 유럽의 역사나 유럽여행정보에 관한 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숙사에 컴퓨터가 없어서 제대로 미리 잘 알아보지도 못하고 가까운 서점에도 잘 가보지 못해서 이번 2학기에 들어와서 제일 처음으로 읽었던 책 내용에 대해서 부족하지만 몇글자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번 학기에 들어와서 가까운 선배로부터`빌려서 읽은 책은 책 제목이 `다니엘 학습법‘입니다.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 했구 서울대에서 타과에서 자기 과에 들어오라구 제안도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종교가 기독교 이라 그런지 이 책을 읽을 때 저의 여러 영적인 부분들...저의 신앙생활적인 상태에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은 기회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전도사님이시구 어려서부터 기도하고 성경 말씀 보지 않으면 육적인 양식 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영의 양식을 먹지 않는데 육의 양식은 무의미하다는 것이죠...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한번은 정말 밥을 주지 않자 배가 너무 고파서 기도하고 성경 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솔직히 종교가 없으시다거나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으시는 분은 전혀 이해가 안되겠죠..하지만 겉핥기라고 조금 정말 조금 신앙이란것에 대해 알게된 저로선 이 책을 읽고 굉장히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했던 이 저자는 자신만의 공부 방법에 관한 것도 적혀져 있었습니다. 늘 하루의 시작을 새벽에 기도나 성경공부, 새벽기도로 시작을 합니다. 참 부지런한 분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구 대학에 한번 실패를 하고 그 다음해 서울대에 들어갔습니다. 서울대에서두 역시 두각을 드러내며 열심히 하루하루를 생활했습니다. 제가 짧지만 대학 1학년 생활을 겪어보니 대학시험을 칠 때 컨닝이 무척 심하다는 것을 또한 알게되었습니다. 수업하나도 듣지 않고 수업 잘 들은 학생의 노트필기만 봐도 그 학생만큼이나 시험을 잘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저자에게도 대학교시절 노트필기를 빌려달라는 주위 사람들의 끊임없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저자는 조금 속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전제 하였습니다. 즉 전도를 했던 것이죠..이 부분을 읽으며 참 본받을 점이 많았습니다. 그리구 다른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중심적으로 공부를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공부를 하는 것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전 이제까지 얼마나 제 자신의 욕심이나 이기심으로 공부 해왔고 또한 살아왔는지...다시한번 돌이켜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앙이 없으시다거나 정말 믿지 않으시는 분들은 대체 저 책을 읽고 뭘 느꼈단 말인가라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지만..먼저 선입견은 버려주셨으면 합니다. 이런 생활들, 저런 모습들이 나쁘다거나 그런 것 말입니다. 한번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정말 권합니다. 생각이 바뀌실수도 있습니다. 이 책이 저에겐 우리 생활 삶 속에서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우선순위를 잘 정하는 좋은 방법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저의 지금 신앙생활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조금 이라도 신앙이 있으시든 없으시든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편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다니엘 학습법“ ...저도 이 책을 통해서 지혜를 얻었고 여러분들도 생활적인 부분들이나 학셍 분들은 실질적인 지혜 방법을 얻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생활과 학습의 지혜를 동시에 얻게 해주었던 책...참 알차고 뜻깊은 책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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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렌 니어링 또 다른 삶의 시작
    수양버들 | 2005년 08월 24일
    니어링에 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 졌다. 이런 저런 매체나 친구를 통해 헬렌부부의 삶을 짐작하고 있던 터라 제 3자에 시각으로 쓴 글을 읽어 보고 싶었다. 얼마 전에 읽은 김용석의 [깊이와 넓이 4막 16장] 이란 책에서 경제적 대안이 전제 되지 않은 자연주의 삶을 비판하는 글속에 '헬렌부부는 책이라도 팔아서 생활 하지 않았는가"라고 꼬집고 있었다. 자연주의 삶은 그림속에 그려지는 동경에 대상이고, 빛바랜 운동권의 대안으로 느 껴졌고, 어린이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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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어링에 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 졌다. 이런 저런 매체나 친구를 통해 헬렌부부의 삶을 짐작하고 있던 터라

    제 3자에 시각으로 쓴 글을 읽어 보고 싶었다.

    얼마 전에 읽은 김용석의 [깊이와 넓이 4막 16장] 이란 책에서 경제적 대안이

    전제 되지 않은 자연주의 삶을 비판하는 글속에 '헬렌부부는 책이라도 팔아서 생활

    하지 않았는가"라고 꼬집고 있었다.

    자연주의 삶은 그림속에 그려지는 동경에 대상이고, 빛바랜 운동권의 대안으로 느

    껴졌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환경, 자연에 관한 프로그램들이 또 다른 상술

    로 비추어 지기도 한다. 대부분에 사람들은 본의건 본의 아니건 " -자연주의 삶-이

    참된 삶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나처럼 유기농 음식이나 찾으면서 어

    정쩡하게 서있을 것이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려고 책을 손에 잡았다.

    저자는 니어링이 남편을 잃고 보낸 말년에 생활 지켜보고, 도와주고,

    영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니어링은 사고로 죽었다. 자연주의를 평생지켜왔

    고 평화롭게 죽은 남편에 비하면 의아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죽음은

    니어링이 바라던 것이였고 예견 죽음이라고 쓰여 졌다.

    노화로 인해 절제 되지 못한 니어링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쓰기도 했지만

    그녀의 죽음을 신성시하고 영적인 모습으로 추앙하는 자연스럽지 못하 글들이

    많았다. 니어링이 이 글을 읽으면 아주 못 마땅해 했을 것 같다.

    p 146 -좋은 삶의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좋은 죽음에 대한 계획도 있어야 했다

    라는 글 처럼 저자가 니어링의 글과 삶에 죽음을 끼어 마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소개 받은 책은 -소걀 린포체 [ 삶과 죽음에 관한 티베트의 책]이다

    니어링이 많은 영향을 받은 책이고,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니어링의 죽음에 관한 책이고, 내 문제는 해결 되지 않았다.

    순서가 뒤 바뀐 책 읽기 때문에 리뷰를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얼마전에 리더스를 통해 읽게 된 "콩깍지"라는 글에서 조직화 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주의 삶, 더불어 삶을 보여 주어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졌

    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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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직 성비로 살펴본 물리학에 대한 사회사
    santaf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피타고라스의 바지 저자 : 마거릿 버트하임 출판사 : 사이언스북스 이 책의 주요 문제 의식은, 과학 중에서도 하드 과학(hard science)의 극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물리학에서는 왜 유독 여성들이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가이다. 그에 대한 저자의 가설은, 물리학이 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남성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자는 수리물리학을 통해 우주를 탐구한다는 초월성을 추구하는 유사 종교적 사제의 냄새를 물씬 뿌려대며 여성들이 물리학계로 진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왔기 때문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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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피타고라스의 바지
    저자 : 마거릿 버트하임
    출판사 : 사이언스북스


    <연구직 성비로 살펴본 물리학에 대한 사회사>

    이 책의 주요 문제 의식은,
    과학 중에서도 하드 과학(hard science)의 극단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물리학에서는 왜 유독 여성들이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가이다.
    그에 대한 저자의 가설은,
    물리학이 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남성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자는 수리물리학을 통해 우주를 탐구한다는
    초월성을 추구하는 유사 종교적 사제의 냄새를 물씬 뿌려대며
    여성들이 물리학계로 진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여성들의 경전 읽기와 문자 교육, 가르침을 막았던
    전통적인 중세 서구 기독교 사제 집단들과 같이
    근대와 현대의 남성 물리학자들 역시
    종교가 사적인 것으로 전락해 모든 초월성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세속의 시기에 오직 수리물리학자들 자신들만이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초월성을 추구한다는 신비로운 사제의 이미지를
    은연중에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려 노력했고,
    그러는 와중에 자연스레 여성들의 물리학 진출을 적극적으로
    배제해왔다는 것이다.

    최소한 각 학문별 여성의 점유율이라는 통계적 수치를 놓고 볼 때,
    저자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미국만 하더라도
    수학, 생물학, 화학 등과 같은 물리학보다는 조금 '덜 하드'한 과학
    분야에서는 여성들의 연구직 종사 비율이 30%를 훨씬 웃도는 데 반해
    유독 물리학에서는 여성들의 연구직 종사 비율이 10%에도 못 미친다고 하니..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가설적 주장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자기 주장을 반복만 할 뿐,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최소한 두 가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 뉴턴 역학을 위시한 서구 근대 과학 성립기에
    서구 기독교 종교 집단은 마술사들의 마술적 유기체론에 반대하기 위하여
    기계론적 수리물리학의 세계관을 적극 육성해주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거의 어느 대학도 아무리 훌륭한 여성에 대해서도 물리학 정교수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은, 수학적 여성들이 물리학계에 더 많이 진출하여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물리학 정립의 이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질병 등과 같은 당장 시급한 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을 놔두고
    추상적 수학 유희인 '만물의 이론(TOE)' 연구비로 우선 세금을 지출하는
    잘못된 점을 시정할 수 있으리라는 저자의 예는 너무 논리의 비약이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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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보일배하는 마음으로 쓰여진 책
    mychoi3454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만화로 보는 박교수의 환경 재난 이야기 저자 : 박석순 출판사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 작년 3월 28일부터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며 전남 해창에서 서울까지 305㎞를 65일간 삼보일배를 하면서 무분별한 환경개발로 인한 지구 재앙을 막고 환경을 보존하고자 몸소 실천하였다. 삼보일배(三步一拜)란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면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나쁜 업을 참회하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생명을 돕겠다는 서원(誓願)을 일으키는 불교계의 수행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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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만화로 보는 박교수의 환경 재난 이야기
    저자 : 박석순
    출판사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 작년 3월 28일부터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며 전남 해창에서 서울까지 305㎞를 65일간 삼보일배를 하면서 무분별한 환경개발로 인한 지구 재앙을 막고 환경을 보존하고자 몸소 실천하였다.

    삼보일배(三步一拜)란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면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나쁜 업을 참회하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생명을 돕겠다는 서원(誓願)을 일으키는 불교계의 수행법을 말한다. 이 삼보일배에 담긴 기도의 마음은 한 걸음을 내딛을 때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을 참회하고, 두 걸음 내딛을 때 죽어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며, 세 걸음 내딛을 때 고통받는 모든 생명을 돕고 살리겠다는 큰 서원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농림부를 중심으로 구상되어 지난 87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새만금 사업은 전북 군산에서 부안 앞바다에 33㎞의 거대한 방조제를 쌓아 여의도 면적의 140배 수준인 4만100ha(1억2천만평)의 농지와 담수호를 개발하는 어마어마한 초대형 국책사업이었는데 제2의 시화호를 우려하는 시민환경단체의 목소리로 사회적 쟁점이 되었던 것이다.

    삼보일배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몸소 실천을 통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면, <만화로 보는 박교수의 환경재난 이야기>책은 만화라는 매개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바로 주변의 일처럼 와 닿는 환경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하겠다는 심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에는 1849년에 일어난 '런던 콜레라 사건'부터 최근의 '걸프전 환경테러 사건'까지 21개의 대표적인 환경재난 사건을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의 대륙별로 나누어 실려 있다. 만약에 이 광범위한 이야기를 전문용어를 써 가며 딱딱하게 풀어 갔으면 아마도 끝까지 읽고 책장을 다 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저자인 박석순교수 자신이 캐릭터화되어 만화 속 내용속에 등장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방식도 신선하였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워 잘 알고 있는 일본 도야마현에서 일어난 '이타이이타이 환경 오염 사건'으로부터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고, 유조선이 좌초되어 수백만 톤의 원유를 아름다운 해안에 토해 내어 갈매기와 바다오리 온몸에 기름이 범벅이 된 채로 죽어가고, 유독성 화학 물질 방류로 하천을 오염시켜 수백만이 마시는 상수원을 잃게 했던 사건 사례를 읽으며 우리의 닫혀진 양심과 모든 문제를 자본의 경제성 논리로 환산하여 판단하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우리의 그늘진 모습을 투영해 본다.

    또다시 지난 연말 노란색 두건에 노란 티셔츠를 온 가족이 입고 나와 거리한복판에서 핵페기물 매립장 건설 반대를 외치는 부안군민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환경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찬반 논쟁'이 아닌 인류의 생존과 후손들을 위한 최대의 화두라는 것을 느꼈다.

    어느 날 하루 일정을 마치고 휴식지에서 삼보일배의 동기를 묻는 질문에 수경스님은 의외의 대답을 한다.
    "물론 새만금 사업 중단이 삼보일배의 목표이긴 하지만 목적은 아니지요. 우리 목적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하심(下心)을 하자는 것이에요. 세상을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며 나서는 사람은 많은데 지금까지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않아요. 그게 왜 그럴까. 나 자신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삼보일배를 시작한 거지요."

    난 이 책을 통해 앞으로는 또다른 '삼보일배' 일행이 오늘 우리 산천 어디에도 걷고 있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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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리학史에서 본 기하학史 이야기
    santaf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저자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은이), 전대호 (옮긴이) 출판사 : 까치글방 서구 수학 가운데 근대에 '기하학'으로 분리된 수학의 한 분야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개괄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수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하학적 전환점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학자답지 않게 저자가 역사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 기하학 이외에도 중요 수학자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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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저자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은이), 전대호 (옮긴이)
    출판사 : 까치글방


    <물리학史에서 본 기하학史 이야기>

    서구 수학 가운데 근대에 '기하학'으로 분리된 수학의 한 분야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개괄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수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하학적 전환점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학자답지 않게 저자가 역사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 기하학 이외에도 중요 수학자의 생애에 대해서도 매우
    생동감 있게 재미있게 잘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번 설에 부산에 내려가 있던 친구가 읽다가 재미있다고
    갑자기 전화를 해줘서 읽게 되었다. 결과는? 확실히 읽는 재미는
    보장되니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비교적 어려운 수학자들 개인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편하게 쏙쏙
    골라서 들을 수 있기까지 하니, 보너스가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 피타고라스와 현대 초끈이론 분야의 주도적인
    이론물리학자인 에드 위튼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피타고라스는 신비주의자로서 얼핏 보면 예수와 비슷했다는 내용을
    저자가 인용하는데, 짧은 이야기였지만 참 재미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예수처럼 그를 추종하는 비밀 공동체를 조직했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등 현자적 가르침을 설파했으며,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등과 같이 예수와 매우 비슷한
    내용의 신화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피타고라스의
    전기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이에 비하면 에드 위튼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을 들려주기 때문에 이 책의 희소성을 더욱
    높여준다. 초끈이론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대가인 에드 위튼은
    , <엘러건트 유니버스>에서도 초인적 연구 능력을 지닌 '괴물'이라고
    소개된 바 있는데, 저자와 똑같이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프린스턴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파인만 이후 수십년간
    물리학계를 이끌다시피 할 정도로 영향력이 매우 큰 물리학자였는데
    그는 사실 학부에서 전공은 非과학인 '역사학'이었고 게다가
    학부에서 물리학 수업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온갖 멸시와 냉대 속에서도 꾸준히 끈이론의 산파 역할을 했던
    슈바르츠가 파인만이나 다른 동료 물리학자로부터 심한 무시와 놀림을
    당했다는 일화 역시 숨겨진 비화를 읽는 재미를 한층 높여주었다.

    이젠 책 내용에 대해, 개인적-주관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이 아니라
    일반적-객관적으로 잠깐 소개해야겠다. 이 책은 기하학의 큰 변화를
    가져온 다섯명의 수학자-물리학자들의 업적과 그 의미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유클리드, 데카르트, 가우스, 아인슈타인, 위튼이 바로 그들이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서구인들에게 맨처음 가장 영향력 있게 소개했고,
    데카르트는 기하학을 대수학과 연결시킴으로써 기하학적 문제를
    간단히 대수적으로 풀 수 있도록 좌표-그래프를 소개했으며,
    가우스는 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위한 기초를 닦았고,
    아인슈타인은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공간이 유클리드 공간이
    아니라 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하여 잘 설명된다는 점을 밝혔고,
    마지막으로 위튼은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중력)이론을 결합해
    만물을 단일한 원리로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초끈이론을 위한
    새로운 기하학을 정립했다.

    이 책은 수학자가 아닌 물리학자 출신의 저자가 집필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책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수학사보다는 물리학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선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위튼은 수학적 업적보다는 물리학적 업적으로
    더 유명한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특징은 이 책의
    단점이 아니라 차별적 장점이다. 현대물리학이 나오기까지
    기하학의 변천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 매우 생동감있고 재미있게
    잘 쓴 책이다. 역사학을 '非과학'으로 여겼던 저자가 오히려
    일반 역사적 사료들을 풍부하게 활용하여 썼다는 점에서 더욱
    웃기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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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dgu72 | 2005년 08월 24일
    영어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독일에서 조경학을 공부한 저자가 쓴 책이라서 논란이 많았다. 이 책이 나온후 영어 학습 방법서가 쏟아졌는데 내용은 이 책과 엇비슷하다.이 책은 영어공부법을 설명하지만 영어는 나오지 않는다.일단 이야기체라서 재미있다. 영어공부 하는데 중요한것은 반복과 받아쓰기, 영화로 공부하는 영어회화인데 이 책에서는 이런점을 쉽게 설명한다. 다른 영어 책에서도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점인데 이 책이 특히 인기있는 이유는 재미있다는 점이다. 공부가 아니라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테이프를 반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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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독일에서 조경학을 공부한 저자가 쓴 책이라서 논란이 많았다. 이 책이 나온후 영어 학습 방법서가 쏟아졌는데 내용은 이 책과 엇비슷하다.이 책은 영어공부법을 설명하지만 영어는 나오지 않는다.일단 이야기체라서 재미있다. 영어공부 하는데 중요한것은 반복과 받아쓰기, 영화로 공부하는 영어회화인데 이 책에서는 이런점을 쉽게 설명한다.
    다른 영어 책에서도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점인데 이 책이 특히 인기있는 이유는 재미있다는 점이다. 공부가 아니라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받아쓰기를 하면서 문장구조를 암기한다.이 방법으로 문법,독해,영작이 해결된다.쉬울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실력이 향상될까, 언제 완성되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효과있는 방법이다.결국 중요한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저자는 듣기만 강조했는데 듣기 못지 않게 중요한것은 입으로 말하면서 암기하는것이다.
    아쉬운 점은 인터넷 영어 사이트를 소개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점이다. 저자의 노력이 필요한 부문이다.
    저자의 후속책을 보면 이 책에서 기업문화를 비판한것때문에 에버랜드를 나오게된다.
    다른 책에서 읽은 이 책의 출판 에피소드를 보면 저자는 이 책 원고를 들고 몇군데 출판사를 찾아갔으나 거절당했고 사회평론에서 출판을 해서 대박을 일으켰다.독자들의 호응이 커서 출판사에서 영절하의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정도였다. 사회과학서를 주로 출판하는 사회평론이 대중서를 일어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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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명의 이상형 을 읽고
    km10002002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운명의 이상형 저자 : 김한식 출판사 : 회경사 제목을 보면 정말 너무나 호기심이 일어나는 책이다.운명의 이상형에 대한 글이라...성별을 막론하고,나이를 막론하고,이혼률50%을 바라보는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을 끌어당길 제목인가.그래서 신청했다. 책을 보고(읽은 책보다는 보는 책이다)잠시 고개를 겨우뚱거려야 했다.지은이는 74년생으로 나와 같은 나이다.이런 운명학적인 책을 쓰기엔 굉장히 젊은 나이다.그래서 그런지 흥미위주로 책을 펴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개개인의 깊은 운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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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운명의 이상형
    저자 : 김한식
    출판사 : 회경사


    제목을 보면 정말 너무나 호기심이 일어나는 책이다.운명의 이상형에 대한 글이라...성별을 막론하고,나이를 막론하고,이혼률50%을 바라보는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을 끌어당길 제목인가.그래서 신청했다.
    책을 보고(읽은 책보다는 보는 책이다)잠시 고개를 겨우뚱거려야 했다.지은이는 74년생으로 나와 같은 나이다.이런 운명학적인 책을 쓰기엔 굉장히 젊은 나이다.그래서 그런지 흥미위주로 책을 펴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개개인의 깊은 운명보다는 그냥 한번 보고마는 화보집을 잘못 펴낸게 아닐가 싶을 정도로 실망했다.책머리글에 분명히 지은이도 밝혔지만 이 책은 그냥 학문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실용서일뿐 나 자신의,어떤 심도깊은 인간사에는 그리 많은 도움이 되어 줄 것 같진 않다.그저 이런 인물이 주변에 누가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예을 들면 나의 사주를 설명해 놓은 페이지는 단 2쪽 뿐이다.남자와 여자의 얼굴(그것도 다 예쁘다)이 나오고 그 밑으로 관상에 대한 좋은 점만 부각하여 설명해 놓고(누구나 봐도 좋은 관상의 상식적인 말이다.)손금을 또 그려넣어 운명의 그 사람을 단순간에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그리고 한 3줄..이런 관상과 수상을 가진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고 왜 자신과 잘 어울리는지 설득하고 있다.너무 단순화한 것이 아닐까.아니면 우리 사회가 벌써 이런 책이 나올 만큼 조급해 진 것일까.나름대로 지은이와 삽화가는 심혈을 기울여 집필을 하였겠지만 왠지 모르게 속았다는 느낌이다.이 책의 제목(운명의 이상형)마냥 이상형은 이상형일뿐 현실에선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걸 한수 배움인가.아마도 서점에서 만 팔천원을 주고 사기엔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책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나의 이상형에 어울리는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이상형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현실형임을 잊지 말자.그저 한권의 책일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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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 학습과 독서 기술과의 만남
    foje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책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저자 : 백금산 출판사 : 부흥과 개혁사 최근 들어 '메타인지' 혹은 '메타학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교육 이론의 발전이 기존의 행동주의와 인지주의를 거치면서, 최근에 "학습자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와의 논의를 통해서 자신의 지식을 구성해 간다"라고 하는 구성주의 이론이 대두되면서 학습자의 지식 능력을 향상시키는 고급사고력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하여 학습자가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무슨 정보가 요구되는지를 알아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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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책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저자 : 백금산
    출판사 : 부흥과 개혁사


    최근 들어 '메타인지' 혹은 '메타학습'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교육 이론의 발전이 기존의 행동주의와 인지주의를 거치면서, 최근에 "학습자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와의 논의를 통해서 자신의 지식을 구성해 간다"라고 하는 구성주의 이론이 대두되면서 학습자의 지식 능력을 향상시키는 고급사고력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하여 학습자가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무슨 정보가 요구되는지를 알아낼 수 있는 전략을 입안하고, 자신의 인지과정을 구조화하여 스스로 자신의 인지를 고찰하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방안들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학력의 허울보다 실력과 능력 자체를 더더욱 강조하는 오늘날의 지식 혁명 시대에서 반드시 익혀야할 중요한 기술은 학습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과 관련하여 본서『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전인적 성장을 위해 어떻게 책 읽는 활동을 전략적으로 할 것인지에 관해 효과적인 지침을 마련해주는 메타 학습적인 독서기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유태인의 유명한 교육방법을 대표하는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주면 한번 식사밖에 하지 못하지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평생을 먹고 살수 있다(12p)" 는 말을 언급하면서 본서를 통해 '독서 전략'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서 가장 강조하는 요점은 여러 가지 독서법은 독서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4p) 즉 저자는 한가지의 식사도구로만 모든 종류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목적과 상황에 적합하게 독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독서법에 대한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매우 타당하다고 하겠다. 독서를 할 때는 먼저 분명한 독서의 목적을 정해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책을 읽는지 스스로 물어 보고, 그 목적을 확인할 때 책을 읽고자 하는 동기가 충만해질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능동적인 독서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연구를 위해서 독서할 때는 꼼꼼한 정독으로 읽어 나아가야 할 것이고, 교양이나 여가 선용을 위한 독서는 주로 가볍게 통독을 할 수 있으며 인격적 성숙을 위해서는 훌륭한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분석하고 반복적으로 묵상하는 것이 중요하다(74p)"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독학을 강조하면서 '독서 대학'에 입학하라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다. 사실 인간은 학습하는 존재요 배움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누리는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 들어 평생교육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인터넷 원격 교육 등을 포함한 평생교육의 장들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특히 그러한 평생교육을 가능케 하는 주요 통로로서 독서는 끝까지 권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가장 좋은 독서법이란 독서의 목적에 가장 알맞은 독서법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게 되고, 메타 학습에 관한 제 원리들을 추출해낼 수 있다. 또한 훌륭한 영적 거장 및 대가를 선정하여 그의 저서들을 집중적으로 탐독함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멘토링 관계를 맺는 것의 중요성 역시 배우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능동적인 독서인은 능동적인 학습인'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하면서 지식의 지평을 넓혀 나갈 뿐만 아니라 탁월한 저자들과 시대를 초월한 교감을 해 나감으로써 함께 풍성한 독서인이요 학습인으로서 계속해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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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는다는 평범한 기쁨의 발견
    mychoi3454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나는 걷는다 1권 저자 : 베르나르 올리비에 출판사 : 효형출판 1999년 봄부터 4년에 걸쳐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전설의 길 실크로드를 횡단한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장장 450페이지 분량이 말해주듯이 1999년 봄에서 여름까지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테헤란에 도착하기까지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첫 여정을 다룬 글이다. 과거에는 동양을 여행하는 서양인들의 대부분은 이국 취향에 한번 빠져보거나 젊은 혈기로 엉뚱한 일을 벌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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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나는 걷는다 1권
    저자 : 베르나르 올리비에
    출판사 : 효형출판


    1999년 봄부터 4년에 걸쳐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전설의 길 실크로드를 횡단한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장장 450페이지 분량이 말해주듯이 1999년 봄에서 여름까지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테헤란에 도착하기까지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첫 여정을 다룬 글이다. 과거에는 동양을 여행하는 서양인들의 대부분은 이국 취향에 한번 빠져보거나 젊은 혈기로 엉뚱한 일을 벌이려는 괴짜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엔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사회활동이 예순 살에 마감됨에 따라 새로운 모험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바로 이마에 주름이 지고 머리가 허연 사람들이다. 그들은 꿋꿋하고 드세고 고집이 세며, 어린 날의 꿈을 실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가정과 직업, 돈 문제 등으로 인해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을 뿐이었다. 은퇴와 더불어 마침내 자유로워졌고 이렇게 도전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그도 역시 은퇴하기전 유수한 프랑스 신문과 잡지사들의 정치부 기자였고, 칼럼니스트였다.

    어째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런 나라를 택했을까?

    이 세상에서 유럽, 미국, 알프스나 산악지대 등 걷는 것이 그야말로 행복인, 이곳만큼 아름다운 꿈의 고장들이 많다. 더구나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전설 같은 길들도 있다. 잉카 유적을 따라가는 아메리카 횡단이나 산타페를 따라 신비한 서부를 향하는 아메리카 개척자들의 긴 여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왜 히필 터키인가? 우리에게조차 월드컵4강의 축구나라나 투르크족과 민족문제가 많은 나라로만 알려져 생소한 나라인데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독학으로 공부해 자수성가한 그가 열렬한 독서광이었는데 특히 역사 분야를 탐독하다가 서양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빗을 인식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은퇴 후인 1999년에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을 알게된다.

    테헤란에 도착하기까지 1000킬로미터대를 횡단하는 동안 그는 강도를 만나 돈과 배낭을 빼앗길 뻔하거나, 이슬람민병대 부대로 끌려갔었고, 심지어 미친 사람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하였다, 또 테러리스트로 오인받기도 하고 만나는 터키인들로부터 온갖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행중 몸이 아프거나 날이 어두워서(터키의 밤중 여행은 자살행위에 가깝기 때문에) 혹시라도 차를 빌려 타게 되면 반드시 다음날 아침에 반대편으로 가는 트럭 한 대를 세워서 전날의 장소로 되돌아가서 다시 걸어오곤 했는데 이는 실크로드를 단 1킬로미터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란다. 거의 그는 정신병이나 편집증에 가까운 모습으로 횡단을 시도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을 뿐이다.'
    (아랍 속담 중에서 p175)

    그는 걸어야 했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에게 자문해보곤 했다. 무엇이 나를 자꾸 앞으로 떠미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길래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길로 내던지는 걸까? 그에게 진정 어려운 일은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었다.
    저자가 실크로드 길을 도보여행하면서 지리학자나 역사학자 행세를 하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보다는 대상의 일상을 이루고 있던 생각, 감정, 그리고 위기를 느껴보면서 고속도로 존재처럼 빠름만이 미학이 되어버린 세상에 그 당시의 분위기와 전통, 삶의 방식을 되찾고만 싶었을 것이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를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
    (본문중에서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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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자유주의 교육에 관한 문제점과 대안점
    관리자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문화정치학과 교육 저 자 : 마이클 W. 애플 외 출 판 사 : 우리교육 신자유주의 교육에 관한 문제점과 대안점 "1980년대 이후 경제 불황으로 미국 사회가 위축되고 케인즈주의적 복지 국가론이 비판받으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집단으로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 세력의 부상하자 교육계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소비자 중심의 학교선택제가 도입되고, 표준화된 국가 교육과정과 국가 학력평가가 실시되고, 공적으로 지원되던 교육 부문 예산은 감축되어 교육의 시장화와 민영화가 촉진되고 있다." 이는 마이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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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문화정치학과 교육
    저 자 : 마이클 W. 애플 외
    출 판 사 : 우리교육


    신자유주의 교육에 관한 문제점과 대안점

    "1980년대 이후 경제 불황으로 미국 사회가 위축되고 케인즈주의적 복지 국가론이 비판받으면서 새로운 이데올로기 집단으로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 세력의 부상하자 교육계도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소비자 중심의 학교선택제가 도입되고, 표준화된 국가 교육과정과 국가 학력평가가 실시되고, 공적으로 지원되던 교육 부문 예산은 감축되어 교육의 시장화와 민영화가 촉진되고 있다."

    이는 마이클 W. 애플과 애니타 올리버, 그리고 크리스토퍼 젠크가 지은 『문화정치학과 교육』이란 책의 첫머리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을 통해 우선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이 책은 신자유주의 경향의 교육제도에 관한 문제점과 그에 대한 극복들을 시도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저자가 학교에 몸담고 있으면서 체득한 부분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교사로 처음 부임한 곳은 흑인과 라틴계 학생만 있는 도심 학교였다. 우리는 학생들이 절대로 '비표준어 영어'나 스페인어를 쓰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우리의 임무는 '그들을' 아주 빨리 '진정한 미국인'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교하면서도 그다지 정교하지 않은 인종주의와 문화 지배 유형의 표현들은 학생 및 지역 사회 인사나 교사들에게 명백하게 가시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경향은 자칫 '영어 전용 운동'이나 '서구 전통 교육의 우월성'으로 비쳐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랫동안 제도화된 교육 체제들은 자칫 문화적 지배와 '타자' 형성 문제를 더더욱 신자유주의의 우세 속에 가두어 두려 하려는 경향이 짙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한 체제만이 공교육 이념을 지킬 수 있고, 민영화되고 시장화된 체제에서 힘을 잃어 가는 교원 노조도 보호할 수 있고, 가난한 아이들과 유색 인종 아이들을 시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그 아이들이 겪는 가난과 공동체 해체를 만든 것이 바로 그 '자유 시장'이다."

    이런 현상들이 두드러진다면 결국 잘 사는 집 아동에게는 상대적으로 규제도 적어지고, 사적 부문도 증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머지, 즉 경제적 지위도 낮고 유색 인종인 학생들이 다니는 최소 학교는 엄격한 규제와 단속을 받을 것이고, 재정 보조도 별로 받지 못하게 될 것이며,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좋은 임금을 받는 직업을 얻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러한 부당성과 불평등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마 교육에 있어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모든 것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문화 정치학에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교육이 교육 자체만의 문제점이 아니라, 정치와 병행해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다는 판단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문화 정치학의 핵심이다. 우리는 누구의 지식이 '공식적'인 지식으로 선언되는지, 어떠한 정체성이 형성되는지-문화정치학에 대한 논쟁에서 중심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세계와 그 속에서의 자기 위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광범위한 담론이 유포되는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보수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조직된 경제적 담론은 사람들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문화 자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경제 담론을 담론으로서 뿐만 아니라 일련의 매우 실제적인 물질적 현실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지배 집단에 저항하는 일에 참여하고, 학생, 교사, 행정가, 지역 사회 구성원 등이 협력하는 것이 가능하며, 보수 연합의 규범과 가치를 재생산하지 않을 수 있고, 그 성과를 다른 국면에 확대할 수 있는 맥락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만이 신자유주의 교육의 정책에 대한 대안점과 극복점들을 일궈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점들을 이 책에서 지적해 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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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주명리학 이야기
    수양버들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사주명리학 이야기 저자 : 생각의 나무 출판사 : 조용헌 일단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고 내 생각들을 두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사주명학을 읽고 똘레랑스를 생각하다. - 재미 있는 사실은 명리학의 기본 원리가 바로 태극도라는 사실이다. 태국도는 명리학의 기본 골격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완전히 똑같다는 말이다. 조선시대는 태극도의 음양오행 원리에 의해서 역사변청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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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사주명리학 이야기
    저자 : 생각의 나무
    출판사 : 조용헌

    일단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고 내 생각들을 두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사주명학을 읽고 똘레랑스를 생각하다.

    - 재미 있는 사실은 명리학의 기본 원리가 바로 태극도라는 사실이다. 태국도는 명리학의 기본 골격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성리학자의 우주관이나 완전히 똑같다는 말이다. 조선시대는 태극도의 음양오행 원리에 의해서 역사변청이나 왕조의 교체, 그리고 인간의 운명을 해석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태극도에서 파생한 두 아들이 성리학과 명리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성리학은 인간 성품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고 명리학은 사람 운명의 이치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같은 부모 밑의 두 아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성리학은 체제를 유지하는 학문이 되었고, 명리학은 체제에 저항하는 반체제의 술번이 되었다. 성리학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양지의 역사가 되었고 명리학은 달빛의 조명을 받아 음지의 잡술이 되었다.-

    - 명리학과 성리학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다 보니까 진단과 서자평의 인간관계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진단은 태극도를 중 화산의 석벽에 각인하여 후세에 전한 인물이다. 태극도라 성리학자들에게 전해진 계기는 진단의 덕택이다. 그는 북송초기의 저명한 도사이다. 후당 때 무당신의 구실암에 은거하며 신선술을 연마하였으며, 북송 초기에 화산으로 옮겨와 살면서 여러 은사들과 교루하였다. 이때 화산에서 같이 수도한 인물이 바로 명리학의 완성자인 서자평이다. 태극도의 진단과 명리학의 서자평은 같은 화산에서 인간관계를 맺으며 수도한 사이였다. 사람의 인연이란 이 처럼 멀고도 가깝다. 당연히 두 사람은 서로 간에 사상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사자평의 명리학이 탄생하였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성리학과 명리학이 같으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상호보완적 관계이기도 하다.-

    - 조선시대의 사주팔자. 이는 개인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점술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혁명가들의 신념 체계로 작동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하여야 한다. 신비적인 것이 곧 합리적인 것이고, 종교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본물 p42~43)

    사주명리학에 의지하여 혁명을 이루려 했던 인물들, 궁궐 내에서 권을 잡으려해던 사건들의 사례을 재미있게 엮어나가고 있다. 뒤 부분에서 다시 혁명을 통한 후천개벽를 언급하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지만 모오한 환상처럼 보인다. 이 책에선 많은 예언가들이 지축 뒤 바뀌는 후천개벽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예언하고 있다. 어젯밤 도올 선생 강의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도올 선생은 후천개벽의 혁명이 수운 최제우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축이 반쯤 기울었다고 한다.
    서자평, 사주명리학의 반체제 역사, 아래로부터 혁명, 후천개벽, 노무현의 출현, 탄핵사태.
    이 책은 탄핵사태 이전에 읽었다. 그런데 지금 리뷰를 쓰면서 나도 모르게 머리 속에 이렇게 연결 지어지고 있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 책이 발행된 것은 2002년 11월 19일이고, 내가 읽은 것은 3월 초, 리뷰 쓰는 것은 3월 23일 이다. 작가가 책을 쓴 시점, 독자가 읽는 시점, 리뷰 쓰는 시점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주제를 읽어내는 시각에도 많은 변화를 보인다. 책이란 이렇듯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후천개벽에 대하여 말해보자
    저자에 말처럼 오래전부터 많은 예언가들이 후천개벽을 말해 왔다. 그래서 지금 바로 그 시대가 도래 했다고 치자. 그 이후 무엇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그 대가를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이 오는 것인가 ? 빈부에 차이가 없어지고 배운 놈 못 배운 놈 차별 없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온단 말인가,
    후천개벽이 되면 민의가 반영되는 세상이 온다?
    민의란 것이 얼마나 다양한가, 그런 민의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똘레랑스 할 수 있는가,
    그러고 보면 혁명이니 후천개벽이니 하는 허망한 것으로 혹세무민하기 보다는 홍세화의 말처럼 ' 왜 똘래랑스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回光返照

    - 신언서판이란 무엇인가
    정기는 눈에서 나타난다.
    신(身), 언(言), 서(書), 판(判). 오랜 세월 동안 동양사회에서 인물을 평가할 때 적용하던 기준이다. 身이란 그 사람의 관을 일컫는다. 남자 관상을 볼 때 포인트는 눈이다. 精氣는 눈에서 표출된다고 본다. 그러나 지나치게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면 총기는 있지만 장수는 못한다고 본다. 도교 內丹學에서 말하는 인체의 세가지 보물은 하단전의 에너지인 精과, 중단전의 에너지인 氣, 그리고 상단전의 에너지인 神이다. 눈빛에서 나오는 총기는 神에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가공하지 않는 자연 상태의 원유가 精이라고 한다면, 원유를 어느 정도 가공해서 나온 석유가 氣이고, 상당히 가공해서 나온 휘발류가 바로 神에 해당한다. 휘발유는 상당히 가공된 것이라서 귀하고 비싼 기름이다. 그러므로 평소에도 神이 항상 빛난다는 것은 비싼 휘발유인 神이 지나치게 과소비되는 있음을 의미한다. 神은 氣에서 나오는 것이고 氣는 다시 精에서 생산되는 것이므로, 神을 많이 소비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하단전의 精과 중단전의 氣도 이에 비례해서 빨리 고갈되기 마련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스위치를 꺼 놓아야지 항상 스위치를 켜놓고 있으면 배터리가 빨리 방전되는 이치이다. 눈에 총기가 가득한 천재들이 대체적으로 장수하지 못하고 빠리 죽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 같다. 회광반조(回光返照), 빛을 돌려서 아랫배를 관조하라는 말은 눈의 총기를 밖으로 품어내지 말고 내면으로 감추라는 이야기이다. 자기 몸을 감추는 둔갑술이란 바로 눈빛을 감추는 일이다.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쉬의 눈빛을 보라! 지극히 고요하고 편안하면서도 보는 사람을 감동시켜 버리는 눈빛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눈빛도 수준급이다. 사람을 폭박시켜 버리는 테러리스트답지 않게 고요하고 편안한 눈빛이다. 죽음을 이미 받아들인 사람의 눈빛으로 보인다. 아마 기도를 많이 한 것 같다.-

    이 책에선 또한 많은 고승과 도사, 술사들이 등장하여 흥미진지하게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있다. 책 읽는 중간쯤엔 '열심히 공부해서 20년쯤 뒤에 도 닦으러 산으로 가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주명리학이 무엇이가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 아닌가? 운명을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운명을 모르고 사는게 속편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자신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범인에겐 일상이 곧 배움에 터전이고 수행에 과정 일 것이다. 다만 일상 속에서도 부지런히 氣와 精을 닦아 맑은 神을 길러 回光返照 할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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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윌버포스가 본 진정한 기독교
    dscom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진정한 기독교 저자 : 윌리엄 윌버포스 출판사 : 생명의 말씀사 3년전 윌버포스의 평전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윌리엄 윌버포스'를 읽고 느꼈던 엄청난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책은 얇고 글씨도 크고 간단명료하지만 그 내용은 심금을 울렸다. 윌리엄 윌버포스 그는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공헌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사명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회 개혁과 노예제도 폐지였다. 그는 정말 잘나가는 정치인이다. 당시 기득권층이고, 개인적으로도 사교적이고 주위에서 인정받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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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진정한 기독교
    저자 : 윌리엄 윌버포스
    출판사 : 생명의 말씀사

    3년전 윌버포스의 평전 '부패한 사회를 개혁한 영국의 양심-윌리엄 윌버포스'를 읽고 느꼈던 엄청난 감동을 다시한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책은 얇고 글씨도 크고 간단명료하지만 그 내용은 심금을 울렸다.

    윌리엄 윌버포스 그는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공헌한 사람이다. 당시 그의 사명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사회 개혁과 노예제도 폐지였다. 그는 정말 잘나가는 정치인이다. 당시 기득권층이고, 개인적으로도 사교적이고 주위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기독교로 회심하고(여기서 회심이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는 사람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기독교를 자랑하는 것이다) 사명을 찾고,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하고, 같은 뜻을 가진 자들을 모으고 함께 하고, 핍박(테러)에도 굴하지 않고 노예제도 폐지를 봤다.

    그런 그가 쓴 진정한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다. 이 내용은 신학자가 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깊이가 없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심연을 울리는 소리는 진실함과 진리이다. 그가 진실로서 말했고, 그 말한 것이 진리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감동을 준 것이다.

    그는 회심 후 먼저 성경을 공부한다. 그리고 신앙의 고전들을 읽는다. 그리고 그는 잘못된 기독교인의 신앙을 비판한다. 그리고 도덕과 신앙의 일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탁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기심을 버리고 교만,탐욕,인정받을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말한다. 심지어 가족이나 국가, 조직 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라고 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다른 것들을 등한시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시 영국의 엄청난 부를 만들어 줬던 노예산업. 그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영국의 부를 잃을 수 있어 전 국가적인 반발을 초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목숨걸고 반대했던 것이다. 그외 정책도 대다수의 뜻과 다르더라도 정당의 뜻과 다르더라도 선한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반대한다. 이런 것을 봤을때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기독인이지만 자기, 가족, 조직, 나라 를 위한 이익을 취하는 것은 기독인의 양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주의 뜻대로 해야할 것이다.

    이 책은 기독인을 대상으로 씌여진 책이다. 하지만 비기독인이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신앙과 삶의 일치를 강조한다. 하지만 삶속에 도덕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 한다. 그는 분명 옳다. 그의 행위는 이 세상에서 보답을 받는다. 자기만족, 다른사람들에게서의 인정 등을 통해서 하지만 기독인의 행위는 더 나아가 천국에서 보답을 받는다고 말한다. 기독인들이 약한 것이 칭찬이다. 사람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한다면 선한행위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칭찬은 주님게 받고, 모두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모두가 성경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교만,이익이 아닌 주의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욕먹는 기독교가 아닌 정말 세상의 빛과 소금의 기독교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뒤에 스터디 부분이 있어서 복습할 수도 있고 여럿이서 함께 볼 수 있게 해놓아서 좋다. 기회가 있다면 주위 사람들과 같이 함께 읽어보고 토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194~
    그리스도인들은 일시적인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으며, 세속적인 일에 과도한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히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그분의 섭리 아래 인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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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 달라스 윌라드
    dscom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하나님의 음성 저자 : 달라스 윌라드 출판사 : IVP 달라스 윌라드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였다. 그 때 느낀 감동은 책 읽기를 통한 치유를 주었다. 삶의 어려움속에 예수님의 8복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나에게 전해준 그 글은 정말 내 인생의 화이팅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성경에보면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는데, 이런 의심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들을 귀가 없어서 못 드는 것인지, 들을 마음이 없어서 못듣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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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하나님의 음성
    저자 : 달라스 윌라드
    출판사 : IVP

    달라스 윌라드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였다. 그 때 느낀 감동은 책 읽기를 통한 치유를 주었다. 삶의 어려움속에 예수님의 8복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나에게 전해준 그 글은 정말 내 인생의 화이팅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성경에보면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는데, 이런 의심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들을 귀가 없어서 못 드는 것인지, 들을 마음이 없어서 못듣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인지. 이 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지적으로 알려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때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 이적, 표적을 보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신다.
    "그렇게 거절하신 이유는,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행해도 보는 이들의 개념과 사고 방식이 잘못되어 있어 결국 부질없는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기적이 하나님의 존재를 더 확연하게 나타낼 수는 있어도 믿음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장 자주 되풀이하신 말씀 중 하나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였다. 이 말은 물리적인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자 하는 마음이다. 즉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들을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순종하며 변화될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반응없이 일방적인 말만 한다면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대화하는 과정을 주께 인도해주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을 목자라고 한다. 하지만 목자들 가운데 성경의 명령과 어긋나게 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외관상은 그럴 사 하지만 '내 교회', '내 사역'만을 추구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줄 착각하고, 종파주의, 교회 외형(건물크기, 헌금액수, 교인 수) 등 만을 강조한다. 중심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요즘 한국교회도 이러한 경향으로 남의 교회 신도 빼가기처럼 교인의 수평적인 이동만을 보이면서 부흥되었다고 자랑하곤 한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인데 그곳에 상업기독교로 교인을 소비자로 바라보고, 교회크기를 기업의 크기처럼 생각하는 세태를 보면 안타까움이 생긴다. 그리고 그 위에 절대적으로 권력을 행하는 재벌총수처럼 군림하는 목사들도 중심을 벗어났다. 교회의 주인을 생각하고, 그들의 목적은 군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선한 관계로 양들을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단들도 잘 못된 하나님과의 대화를 가르친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수 많은 이단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1인 혹은 소수에 의해서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전제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은 그 단체 상부의 말씀에만 동조하고, 지도자의 명령이라면 상식조차 버리는 행위를 해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수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오는 것이다. 우리가 훈련이 안되어 있고, 듣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못듣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렇게 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날마다 잠깐 동안 하나님 앞에 앉아 묵상하며 가만히 있으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의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고 성령께 구하라.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한 것이 무엇인지를 기쁜 마음으로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율법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는 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미신적인 태도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세상적인 인과응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과응보로 간다면 인간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 말씀에 감사함과 그리고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 성경을 읽을 때 진리가 무엇인지 찾을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무오하고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전제로하고, 이젠 순종함으로서 읽을려고 한다. 감사함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 책은 내게 성경 이라는 것, 신학이라는 것을 지적으로 풀어준 책이었다. 감동보다는 만족이 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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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야 나무야
    dscom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나무야 나무야 저자 : 신영복 출판사 : 돌베개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였다. 그 책을 통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인간을 만났다는 것은 너무나 기쁘고 나에게도 살아간다는 것의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번역한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책에서도 체제는 다르지만 역시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었고, 번역자를 보고 그 책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최초의 책이었다. 그리고 '사람아 아 사람아'랑 비슷한 말투의 이 책을 통해서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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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나무야 나무야
    저자 : 신영복
    출판사 : 돌베개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였다. 그 책을 통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인간을 만났다는 것은 너무나 기쁘고 나에게도 살아간다는 것의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번역한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책에서도 체제는 다르지만 역시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었고, 번역자를 보고 그 책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최초의 책이었다. 그리고 '사람아 아 사람아'랑 비슷한 말투의 이 책을 통해서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서 세상을 자유롭게 거닐때 그는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말하면서 그의 여행기, 아니 '여행지에서의 사색'이 시작되었다. 전에는 그의 사색의 편지를 가족에게 보내주었다면 이번에는 중앙일보에 보내게 되었다. 그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내 어찌 그분의 큰 뜻을 비판하겠는가. 하지만 출판사가 돌베개라는 친근한 곳에서 발행함이 감사했다. 중앙일보에서 이 책이 나왔다면 그를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서운했을 것이다.

    갇혀본 자만이 그 자유를 알고 진리에 목마른 자만이 진리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것처럼 그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어렵지만 그는 희망을 볼 수 있고, 우직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그는 편지를 보낸다. 중앙일보가 아닌 이 글을 읽는 젋은 당신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한다. 때로는 허준에게 자신의 늙어 죽은 몸을 맞긴 유의태처럼 자신을 밟고 가라고, 때로는 자연속에서 기품을 잃지 않고 언제나 동일한 나무들처럼 살아가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었던 어느 여자후배는 허난설헌의 무덤을 보고 쓴 글이 가장 감명깊었다고 한다. 얼마전 강릉 경포 초당동에 가서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에 다녀왔다.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앞에는 경포호수가 있고 뒤에는 소나무들이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집안도 소박했다. 그 집안을 채우는 것은 지금 집안에 적어놓은 허균과 허난설헌의 시처럼 그들의 학문과 인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내가 아는 허난설헌은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까지 그의 글이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지식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일찍 죽었다고 해서 나는 미인박명과 천재박명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이야기,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어선 그녀가 재주를 다 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쉬움보다는 한 여인으로서, 여자로 태어나서 겪은 그녀가 애설프게 느껴졌다.

    "사랑했던 오라버니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존경했던 스승 이달의 좌절, 동시대의 불행한 여성에 대하여 키워온 그녀의 연민과 애정. 남편의 방탕과 학대 그리고 연이은 어린 남매의 죽음, 스물일곱의 짧은 삶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육중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그녀에게 이러한 고통이 있었던 것일까? 시대를 잘못타고나서, 여자이기때문에.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자가 나서서 집안이 망한 것일까? 그리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자후배에게는 허난설헌이 어떻게 다가왔던 것일까? 허난설헌이 너무 똑똑했기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부담스러워 그녀를 괴롭히고 다른 여자를 찾았던 것일까? 그녀의 짧은 인생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었던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힘들지만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할 수 없는 현실이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의 여성들을 보면 허난설헌은 부러워할 것 같다. 나 또한 이 땅의 허난설헌들이 비극이 아닌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꿔 본다.

    세상에는 많은 사색이 있다. 사람들은 올바른 사색의 길로 독서와 여행을 이야기 한다. 많은 사람에게 여행은 사람을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나도 여행을 갔지만 깊은 사색보다는 그곳에서 경치구경과 경험에 한정된 사색을 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한 시간이었지만 값되게 쓰지 못한 아쉬운 시간이었다. 여행지에서도 이런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다듬어지지 않았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희망찬 그런 생각을 하는 그런 여행을 가고 싶다. 푸른 경치도 좋고, 파란 하늘과 바다도 좋고, 황금 들판도 좋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자연이 있고, 사람이 주인공인 그곳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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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 - 게으름
    dscom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게으름 저자 : 김남준 출판사 : 생명의 말씀사 아침에 일어나는데 벨소리 2번이나 들어도 일어났다 다시 자고, 어머니 몇번이나 오셔서 겨우 일어났다. 조금 늦은 것 같아 아침을 거르고 갈려다 겨우 끼니만 때우고 지하철을 탔다. 피곤에 쩌든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준다. 다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는 사람은 그나마 잠으로 피로를 풀고 서 있는 사람은 겨우 남은 체력 언제 자리가 빌지 온 힘을 다해 준비한다. 왜 사람은 이렇게 피곤하면서 꾸벅꾸벅 겨우겨우 대충대충 사는듯 마는듯 살아야 할까? 꽤 심각하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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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게으름
    저자 : 김남준
    출판사 : 생명의 말씀사


    아침에 일어나는데 벨소리 2번이나 들어도 일어났다 다시 자고, 어머니 몇번이나 오셔서 겨우 일어났다. 조금 늦은 것 같아 아침을 거르고 갈려다 겨우 끼니만 때우고 지하철을 탔다. 피곤에 쩌든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준다. 다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는 사람은 그나마 잠으로 피로를 풀고 서 있는 사람은 겨우 남은 체력 언제 자리가 빌지 온 힘을 다해 준비한다. 왜 사람은 이렇게 피곤하면서 꾸벅꾸벅 겨우겨우 대충대충 사는듯 마는듯 살아야 할까? 꽤 심각하게 생각하면 살았다. 조금 벌어도 잠 많이 자고 아침도 여유롭게 먹으면서 지하철도 사람없을때 타고 신문도 읽고(지하철 무료일간지 말고) 살면 안될까? 그러나 대답은 뭔가 이유가 있으니 이 사람들이 이렇게 살겠지라는 것이었다.

    게으름이다. 어떻게 보면 게으름을 구하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본능적인 수면욕을 통한 행복을 다른 것들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높이 구하는 것이다. 조금 더 잔다는 것에서 인생의 행복을 느낀 내 자신이 불쌍해 보였다. 여기서 그 동안 읽고 싶었는데 왠지 통속적일 것 같아서 시대영합적인 기독교서적일 것 같아서 망설였던, '게으름'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단순하다. 그래서 더욱 좋은지 모르겠다. 게으름은 죄성이고, 그 게으름 영적이고 육적인 게으름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명료하고 감동적인 글이란 말인가. 이 책에서는 글자글자를 보지 않고 내 자신의 나태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촉매제로써 이미지를 봤다.

    남보다 게으르다는 것은 세상 경쟁에서 지고, 약육강식의 시대에 먹히기 쉬운 좋은 먹이가 되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퇴출 1순위의 사람이 되기 싶다. 게으름은 곧장 실력과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저자가 게으름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는 세상에서 실력을 쌓아 잘먹고 잘살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기독교인이라는 독자들에게 왜 게으름이 죄가 되고, 게으름이 영적생활에 왜 나쁜 것인지, 쉬운 예화들과 더불어 설명해준다. 그리 대단한 책은 아니다. 없는 이론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탁월한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해주는 책도 아니다. 기적을 소개하는 책은 더욱더 아니다. 하지만 오직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에게는 그것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20세기가 이념논쟁으로 싸운 캐피탈리즘과 맑시즘의 시대라면, 21세기는 게으르티즘의 시대같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이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러셀같은 사람이 나와서 게으름을 찬양한다고 하지만 게으름 그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피에르 쌍소가 나와서 느리게 산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게으름은 삶의 여유가 아닌 오히려 속박되고 쫒겨사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이 근면성실을 강요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기독인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하고 특히 영적으로 열심히 살아야함은 당연한 것 같다. 근면성실의 목적이 무엇에 있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피곤하기도 하고, 잠처럼 평안한 것에서 나가기도 싫지만, 게으름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람들마다 게으름에 대한 개념도 다르고 의견도 다르다. 그 중에 나는 게으름은 나쁜 것라고 명확히 말하며 삶에서 내 자신의 말을 실천해 가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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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형이 살아있다??
    심은주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Living Dolls 저자 : 게이비 우드 지음 / 김정주 옮김 출판사 : 이제이북스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할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은 두 명의 어린아이가 얼굴은 인형 같고 생기가 없어 보인다. 한 아이는 루이 15세와 조지 3세의 초상화를 그리고 다른 한 아이는 기괴한 철학적인 농담을 던지는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쓴다. 이러한 광경이 머리 속으로 상상이 되십니까?? 이들은 1774년에 만들어진 인공적인 인형으로서 보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놀라게 하고, 당혹스럽게 했다. 이 책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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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Living Dolls
    저자 : 게이비 우드 지음 / 김정주 옮김
    출판사 : 이제이북스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할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은 두 명의 어린아이가 얼굴은 인형 같고 생기가 없어 보인다. 한 아이는 루이 15세와 조지 3세의 초상화를 그리고 다른 한 아이는 기괴한 철학적인 농담을 던지는데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쓴다.

    이러한 광경이 머리 속으로 상상이 되십니까?? 이들은 1774년에 만들어진 인공적인 인형으로서 보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놀라게 하고, 당혹스럽게 했다. 이 책은 복제 인간 문제가 대두 되는 이 때에 제목과 같이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려고 노력했었던 사람들의 욕망과 그들이 만들어낸 인공적 인형, 로봇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그들은 인간과 같이 시간에 얽매여 사는,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형이라는 것으로 이겨내고자 하는 욕망을 지녔다. 또한 생각하는 인형, 말하는 인형, 감정을 지니는 인형 등 이제껏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인공 인형들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더욱 인간과 비슷한 인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오싹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이 내 목소리와 같은 소리로 말을 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울고 웃으며 감정을 표현한다면...' 순간 아찔했다. 왠지 머지않아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인간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인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과연 자신과 똑같은 인형, 즉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나서 답을 한다면 사람들은 그런 인형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인간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인형까지 만들어 낼 수는 있겠지만, 정말 살아있는 인형,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각, 감정까지 지닌 인형은 그 어떤 것으로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인형' 이 책은 읽은 이들로 하여금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를 인간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자체에, 그리고 내가 살아있는 인형이 아니라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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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박한 호기심이 창의력을 키운다 왜 그럴까?
    qpqpzlzl12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생각을 키우는 90가지 과학원리 왜 그럴까? 저자 : 과학 저널리스트 시라토이 케이 출판사 : 지식여행 어렸을 적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해서 항상 입에 궁금증을 달고 살았습니다. 저건 왜 저럴까? 왜 그러지?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궁금한 것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속에 호기심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누로 몸을 씻으면 때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서 왜 그럴까? 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똥은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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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생각을 키우는 90가지 과학원리 왜 그럴까?
    저자 : 과학 저널리스트 시라토이 케이
    출판사 : 지식여행


    어렸을 적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해서 항상 입에 궁금증을 달고 살았습니다. 저건 왜 저럴까? 왜 그러지?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궁금한 것이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속에 호기심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누로 몸을 씻으면 때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서 왜 그럴까? 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똥은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일상 속에서 겪는 경험들 속에 신기하고 재미있는 과학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은 지루 할 수도 있는 과학을 일상생활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과학 현상에 빗대어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에 흥미를 느끼게 하고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저도 이 책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호기심을 다시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어른들도 이 책을 통해 잃어버렸던 과학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 시대의 어른들과는 달리 호기심을 잃지 않고 항상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과학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이 책이 첫 발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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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물
    eujung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선물 저자 : 스펜서 존슨 출판사 : 중앙 M&B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으로 유명한 의 두번째 이야기로 유명한 책이 바로 선물이다. 선물? 과연 무엇이 선물일까? 우리의 삶 속에서 생기는 문제, 즉 다람쥐 쳇 바퀴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한 부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생활해 나가는 의 이 시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 주는 책인 것 같다. 영어로 "present"는 현재라는 의미와 선물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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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선물
    저자 : 스펜서 존슨
    출판사 : 중앙 M&B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으로 유명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두번째 이야기로 유명한 책이 바로 선물이다.
    선물? 과연 무엇이 선물일까?
    우리의 삶 속에서 생기는 문제, 즉 다람쥐 쳇 바퀴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한 부류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생활해 나가는 <현재>의 이 시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 주는 책인 것 같다. 영어로 "present"는 현재라는 의미와 선물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우리는 이 현재라는 시점을 더 없이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간직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현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의 행진이 될 수도 있다.


    책의 핵심 글을 옮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

    - 현재 속에 살기
    행복과 성공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라.
    소명을 갖고 살면서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아라.

    - 과거에서 배우기
    과거보다 더 나은 현재를 원한다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라.
    그것에서 소중한 교훈을 배워라.
    지금부터는 다르게 행동하라.

    - 미래를 계획하기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멋진 미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라.
    그것이 실현되도록 계획을 세워라.
    지금 계획을 행동으로 옮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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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니지 [애장판 1-7]
    seubasu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애장판 1-7] 저자 : 신일숙 출판사 : 대원 리니지하면 게임 리니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 이 만화책은 그 장엄한 게임을 낳게 한 모체로써 게임처럼 그 스케일이 크면서도 오밀조밀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뭐 기본적인 구조는 하나다. 모든 옛날 이야기가 그렇듯 나쁜 왕에게 쫓겨 왕자는 수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와 나라를 되찾는다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일단 리니지의 장점을 말하기 전 난 신일숙이라는 작가의 단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녀는 많은 작품을 낸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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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애장판 1-7]
    저자 : 신일숙
    출판사 : 대원

    리니지하면 게임 리니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기 이 만화책은 그 장엄한 게임을 낳게 한 모체로써 게임처럼 그 스케일이 크면서도 오밀조밀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뭐 기본적인 구조는 하나다. 모든 옛날 이야기가 그렇듯 나쁜 왕에게 쫓겨 왕자는 수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와 나라를 되찾는다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일단 리니지의 장점을 말하기 전 난 신일숙이라는 작가의 단점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녀는 많은 작품을 낸 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만화계에서 그녀처럼 확실하고 많은 그리고 대중적인 인기도 등에 엎은 작가가 몇이나 있단 말인가?
    끽해야 방학기, 원수연, 김혜린, 황미나, 천계영, 이현세 정도이다.
    섬세한 붓터치, 일본만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스토리라인..
    어느 것하나 흠잡을 데 없는 그녀이지만,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바로 결말이 허무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예전 작품인 라이언의 왕녀, 아르미안의 네딸들, 파라오의 연인, 리니지 등 모든 작품들이 다 결말이 허무하다. 리니지같은 경우는 모든 해피엔딩의 전형인 왕자와 공주는 그 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재창하고 있고, 아르미안같은 경우도 주인공이 죽어 버리는 허무한 결말을 제시하고 라이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뒷심없이 끝내 버리지만 않으면 정말 최고로 좋을텐데...
    이 리니지같은 경우 작품 내내 아름다운 그림체와 현대 경영판을 생각해도 좋을 법한 리더십, 약간의 로맨스를 곁들은 맛갈스러움을 고집하다 끝에 가서 허무허무..
    그래도 좋다...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져 버린 어머니가 던질 수 있는 마지막 패는 자신의 남자와 아이를 모두 보호하는 법...여왕이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사랑하는 남자를 왕으로 만들고, 그와 사이가 좋을 수 없는 전왕의 자식을 세상으로 내보내 연륜을 쌓게 한다. 물론 왕자가 16살이 되면 왕위를 반납한다는 조건을 응당 달아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왕자는 여러가지 시련을 겪게 된다. 왕비의 사랑으로 왕이 되었으나 본시 농노의 자식인 반왕은 거대한 왕국을 꾸려 나가면서도 항시 외롭다.
    그는 왕이였으되 왕이 아니고 농노의 자식이였으되 농노의 자식이 아니였다.
    가슴속에 한 줄기 불을 품고 있는 사내였던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정령족의 보호를 받으며 반왕은 서서히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면서 왕자를 찾는다. 아버지의 혈맹들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성장한 왕자는 자신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아버지의 혈맹이 그러했듯 왕자와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혈맹들의 도움을 받아 진정한 왕으로서의 성장과정을 걷게 된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는 분명하게 너가 원하는 것을 얻어 내라.
    기사란 왕이란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것이다.

    왕자가 기사수업에서 받은 것은 현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밖에 없는, 전쟁통에서 살아 남기 위한 일종의 방책..

    처음 애장판이 나왔을 때의 그 기쁨...
    한권 한권 사 모을 때의 즐거움..
    어느 것하나 버릴 것 없이 충만한 리니지..

    일부러 줄거리를 구구절절 적지 않았다.
    이런 작품은 실제 본인이 느껴야 제 맛을 낼 수 있는 법...
    요즘 대부분의 작품들이 애장판이란 이름을 달고 재판하고 있지만, 기실 내용의 충실도가 떨어지는 게 많다. 하지만 애장판이란 이름을 달고서 과연~하고 무릎을 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품에 기꺼이 리니지를 추천한다.

    오늘 우리는 그 옛날 정령이 존재하고 마법이 존재했던 곳에 살고 있는 왕자(처음으로 이름을 밝힌다. ㅋㅋ 데포로쥬)를 만나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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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과학공화국 물리법정.(매우 흥미로움)
    wood1016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과학공화국 물리법정 저자 : 정완상 지음 출판사 : 자음과 모음 ㅎㅎ 안녕하세요 리더스 회원님들... 제가 여기에서 책을 몇권 받아서 읽었는데 그거에 대한 감상을 아직 올려드릴수 없네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과학에 관련된 책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고등학생이라지만 아직도 서툰 우리말을 구사 하더라고 많은 양해 부탁 드리면서 책에 대한 소개 시작 하겠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과학공화국에 내용인데요... 물리학을 잘 몰라서 생기는 일을 법정에서 판결을 해줍니다. 그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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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과학공화국 물리법정
    저자 : 정완상 지음
    출판사 : 자음과 모음


    ㅎㅎ 안녕하세요 리더스 회원님들... 제가 여기에서 책을 몇권 받아서 읽었는데
    그거에 대한 감상을 아직 올려드릴수 없네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과학에 관련된 책을 소개 하고자 합니다. 고등학생이라지만 아직도 서툰 우리말을 구사 하더라고 많은 양해 부탁 드리면서 책에 대한 소개 시작 하겠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과학공화국에 내용인데요... 물리학을 잘 몰라서 생기는 일을 법정에서 판결을 해줍니다. 그리하여 3명의 지원자가 있는데 시험을 봐서 가장 점수 높은 물리짱이 판사를 맡고 2등인 피즈와 꼴찍(물리 잘 못하는.)
    물치가 원고와 피고 측의 변록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과학공화국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이 물리법정의 판결을 통해 원활히 해결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물리법정의 판결들을 통해 물리를 쉽고 정확하게 알게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책은 정완상교수님께서 쓰신 책으로 물리와 법정에 만남?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만났습니다. 이책은 우리 일상생활속의 물리의 관련된 재미있는 사건들을 법정에서 판결하는 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총 10장으로 나무어져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법정에서 판결을 해주는 데요... 글을 읽다가 보면 사람들의 이름이라든지 또는 집단 이름이 그 사람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만들어져 있어서, 읽다가 웃음을 참지 못할때 도 생깁니다.

    주의하실점은 법정에서 판결을 하는 형식으로 되어있기에 서로간의 대화가 주고받고 하는데, 이 대화앞에 얼굴이 있는데... 얼굴을 너무 의식해서 읽다보면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시니 주의 하시면서 읽으세요...

    기억에 남는 부분을 하나 알려드리자면...p272~282쪽에 해당하는 원심력과 구심력에 관한 글을 말씀드리자면, 아차 이전에 질문 한가지 할께요...
    '회전하는 원판 위에 지우개를 올려놓고 원판을 점점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지우개가 밖으로 밀려난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있는 힘은 무엇인가?'
    답을 생각하셨나요???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요? 원심력? 아닙니다.
    답은 구심력에 관련된 것입니다. 저도 이것보고 원심력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구심력을 얻지 못해서 밖으로 밀려난다는 것입니다. 원심력은 단지 위에 문제와 관련지어 말씀드리자면 원판에 앉아서 지우개와 함께 돌면서 지우개를 관찰하고 있는 관찰자가 지우개가 정지해 있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내세워야 하는 가상의 힘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알지못하는 지식, 알지만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재미있게 법정에서판결해 줍니다. 아차차 각 장 끝마다 각 장에 관련된 물리법칙?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져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것은 제꿈이 최순달 공학박사님 처럼 로켓을 쏘아올리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 물리란 과목을 잘 알아야 하므로 물리에 관련된 책을 찾다가 재미있을것 같다 싶어서 봤는데... 저를 한단계 지적수준을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요즘 이공계을 꺼려하는 학생이 많은데, 과학이란 학문은 너무 재미있고 흥미를 많이 느껴 우리 대한민국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우주 선진국을 저와 함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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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괴짜였으나, 실로 진실한 사람이었도다
    littlechr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괜히 왔다 간다 저 자 : 중광 출 판 사 : 기린원 그는 괴짜였으나, 실로 진실한 사람이었도다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 달들은 장구를 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회를 만드오. 나는 탁주 한잔 꺾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나는 걸레 이는 중광 스님이 쓴 《괜히 왔다 간다》(기린원·2003)에 나오는 자작시이다. 흔히 세상에 알려지기론 걸레스님으로 더 널리 알려진 중광 스님. 한평생 정직하고 진실한 세상을 꿈꾸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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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괜히 왔다 간다
    저 자 : 중광
    출 판 사 : 기린원


    그는 괴짜였으나, 실로 진실한 사람이었도다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
    달들은 장구를 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회를 만드오.
    나는 탁주 한잔
    꺾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나는 걸레

    이는 중광 스님이 쓴 《괜히 왔다 간다》(기린원·2003)에 나오는 자작시이다. 흔히 세상에 알려지기론 걸레스님으로 더 널리 알려진 중광 스님. 한평생 정직하고 진실한 세상을 꿈꾸며 바람처럼 살았던 그 스님이 몇 해 전 세상을 뜨셨다. 입적하신 것이다. 스님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세상에 왔다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그저 바람처럼 왔다가 또 바람처럼 사라졌을 뿐이다.

    바람이 떠나간 자리, 거기엔 먼지만 남는다. 쓸쓸한 가랑잎만 쌓인다.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쌓이고 또 쌓여 덩어리가 된다. 오물덩이가 되고 쓰레기 더미가 된다. 사방에 온갖 썩은 냄새로 가득하게 된다. 코를 막고 옷을 빨아도 속에 벤 냄새는 어찌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이 그처럼 썩고 냄새나는 것들로 가득하다. 법도 썩었고, 정치도 썩었고, 종교도 썩었고, 교육도 썩었다. 사람 마음도 이미 썩은 지 오래다. 올곧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기란 좀체 힘든 세상이다. 더 채우기 위해 모두가 안달이 났고 더 잡아먹기 위해 이리처럼 날뛰고 있지 않던가. 썩을 대로 썩고 곪을 대로 곪았으니 누가 세상을 바로 잡겠는가. 사람들이 무서워서 어디 쓴 소리를 내겠는가.

    그래도 중광 스님은 바른 세상을 위해 벌침을 쏘아 댔다. 독기를 품어 댔다. 잘 사는 사람에게도 높은 사람에게도 겁이 없으셨다. 그저 보이는 대로 쌍소리를 해 댔고 야단법석을 피웠다. 사람들이 들어서 고치면 그것으로 족했고, 듣지 않고 딴전을 피어도 그만이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할 도리만 지키면 그것으로 다한 셈이었다. 그래서 그가 걸레이기를 자처하지 않았던가.

    "내가 말하는 걸레는, 다 떨어지고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이 쓰면 쓰고 버리면 버리는 물건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남의 것을 깨끗하게 해 준다는 것은 큰 허물이다. 내가 무엇이기에 남이 지니고 있는 더러움을 맑게 해 주겠는가. 나는 수동적으로 쓰여지는 걸레이다."

    스님은 그래도 속으로는 참 겸손했다. 어린아이들처럼 천진난만했다. 꾸밈이 없고 거짓도 없으셨다. 자랑하고 싶으면 숨김없이 자랑했고 누군가 그만두라면 또 쏙 들어가지 않았던가. 남들에겐 큰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작은 사람이었다. 가진 게 많았어도 나눠 줄줄 알고 퍼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종교 안에서 갇혀 그저 채우고 또 채우기보다는 비우고 또 비울 줄 아는 참 자유인이었다.

    반은 미친 듯 보였고, 반은 참된 듯 보였다던 중광 스님. 아마도 숲처럼 그를 바라본 사람들은 필시 그가 미친 사람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무처럼 마주 앉아 이야기한 사람들은 그가 참된 사람이었다. 괴짜였으나, 세상에 보기 드문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톨릭계 구상(具常) 시인이, 영화 감독 김수용 씨가, 운보 김기창 화백이 어찌 그를 참되게 보았겠는가.

    참된 삶을 온 몸으로 살다 갔던 중광 스님. 오늘도 그는 바람처럼 우리 곁에 다가와 끊임없이 벌침을 쏘아대고 있다. 벌침을 제대로만 맞는다면 참다운 약이 될 테니 세상 사람들아 귀를 쫑긋 세워보지 않겠는가.

    "내가 오늘 이 시점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직하게 살아라.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정직하게 살아라'이다. 흔히 이 세상은, 정직하게 살면 못산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속된 말이다. 참으로 정직하게 살아 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이다. 최후의 승리, 최후의 성공은 오직 정직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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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원 두뇌 속독법
    dscom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4차원 두뇌 속독법 저자 : 김영철 출판사 : 한비 요즘 속독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져 관련 서적중 신간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읽는 속도라면 남부럽지 않게 읽고 있지만, 속독법도 어느정도 눈의 훈련이고, 습관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시 예전 속도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완전히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빠른속도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이런 책에 내가 이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때도 있다. 천천히 읽어도 만족스러운 책이 있지만, 때로는 그렇게 정독할 필요도 없는 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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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4차원 두뇌 속독법
    저자 : 김영철
    출판사 : 한비

    요즘 속독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져 관련 서적중 신간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읽는 속도라면 남부럽지 않게 읽고 있지만, 속독법도 어느정도 눈의 훈련이고, 습관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다시 예전 속도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완전히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빠른속도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이런 책에 내가 이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때도 있다. 천천히 읽어도 만족스러운 책이 있지만, 때로는 그렇게 정독할 필요도 없는 책도 있어서 빨리 읽고 싶을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속독법 관련 책중에서 두깨가 상당한 것 같다. 총 579페이지나 나갈정도다. 가격도 28000원이나 된다. 과연 생각의 속도로 읽는다는 저자의 말이 궁금하기도 하고, 과연 이 책은 다른 속독법 책들과 어떻게 차별화 되고 실용적인지 의문을 가지고 독서를 했다. 4차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나머지 하위 차원 3차원, 2차원, 1차원, 0차원과 비교해서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하위차원에서 상위차원으로 이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기하학적인 표현을 가지고 설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4차원이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과 이미지맵을 강조한다. 토니부잔의 마인드맵 개념도 여기서 방사선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아마 원리는 차용한듯 하다. 아니어도 이미 검증된 방식이니 굳이 태클걸 필요는 없을 듯하다.

    우선 4차원이기때문에 기존의 속독법은 안구의 훈련과 습관으로 연습하는 것이라 눈이 필요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지만, 저자는 이 방식으로 훈련하면 자연스럽게 책을 속독할수있기에 눈의 피로는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책을 다 읽긴 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훈련은 부족하였기때문에 효과에 대해 확실히 뭐라고 하기는 그런것 같다. 하지만 이 방식대로 하면 눈의 피로는 좀 줄어들것 같다. 자주 눈을 감아서 필름을 쪽~~ 넘기기때문에(저자의 표현).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지 근본적으로 눈의 단련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기 독서 속도 쟀을때 1733이 나왔는데 이 책 다 읽었을때는 아마 2000은 넘었을 것 같다. 시간을 재진 않았지만 확실히 느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효과때문인지는 확실치는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컨트롤과 강력한 동기부여로 빨라졌을 가능성이 크기때문이다.

    효과적인 학습을 위한 세 가지 유의 사항
    1.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한 빈 마음 필요
    2. 하루 한 시간 분량의 숙제를 꼭 해야한다.
    3.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

    속독 능력 개발을 위한 과제
    1. 시점의 자연스러운 순간 이동 능력 개발
    2. 대뇌의 순간 지각 능력 개발
    3. 높은 집중력 개발

    이것은 저자가 말하는 필수 암기사항이다. 이러한 것에 유의해 반드시 된다라는 확실한 믿음체계에서 이 훈련을 한다면 많은 성과가 있을 것 같다. 어디서나 다 강조하지만 인간의 능력은 엄청나기때문에 많은 계발이 필요하다. 책 곳곳에 저자의 종교적 가치관이 많이 나오는 것이 걸리긴 하다. 속독법책에 왜 이런 내용을 넣을까 의문도 들지만 저자가 4차원의 영감을 종교적인데서 받았음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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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기획자 필독서 - 상식이 통하는 웹사이트가 성공한다
    하늘우리 | 2005년 08월 24일
    상식이 통하는 웹사이트가 성공한다 저자 : 스티브 크룩 역자 : 유유미 출판사 : 안그라픽스 출판일 : 2000년 3월 이 책은 많은 웹기획자들에게 검증받은 책이다. 그만큼 장점이 많은 책이다. 이책의 장점을 몇가지 들어보자. 먼저, 책이 얇다. 괜히 두꺼워야 하는 우리 컴퓨터 책들에 비하면 얇아서 일단 부담감이 없다. 두번째는 사용자의 눈높이의 강조이다. 많은 개발사이트들이 주로 개발자와 기획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다. 이용자는 만들어진 사이트에 적응하도록 강요받는다는 다면 결코 그 사이트는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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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이 통하는 웹사이트가 성공한다

    저자 : 스티브 크룩 역자 : 유유미
    출판사 : 안그라픽스 출판일 : 2000년 3월


    이 책은 많은 웹기획자들에게 검증받은 책이다.

    그만큼 장점이 많은 책이다. 이책의 장점을 몇가지 들어보자.

    먼저, 책이 얇다. 괜히 두꺼워야 하는 우리 컴퓨터 책들에 비하면 얇아서 일단 부담감이 없다.

    두번째는 사용자의 눈높이의 강조이다. 많은 개발사이트들이 주로 개발자와 기획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다. 이용자는 만들어진 사이트에 적응하도록 강요받는다는 다면 결코 그 사이트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세번째는 실제에 적응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바로 어떤 사이트에서는 무엇이 잘못되고, 잘 되어있는지를 판단하기 쉽게 되어있다. 이미 많은 사이트개발에 참여해본 사람의 경우에도 놓치고 있는 많은 사실들을 깨닫을 수 있다. 마지막장에는 Usavility Test방법까지 설명해 놓고 있다.

    웹사이트 개발에 관련된 분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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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 비즈니스의 길잡이 Internet Business.com
    allwebceo | 2005년 08월 24일
    "Internset Business.com" 김진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HCI Lab. 공저 출판사 : (주) 영진 출판사 이책은 인터넷 비즈니스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께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해야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채 인터넷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될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전업무를 통한 이해와 구체적인 방법론과 전략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어 쉽게 인터넷 비즈니스에 접근 할 수가 있습니다. 단지 책이 발간 된지 꽤 시간이 지났기에 워낙 빨리 변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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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nset Business.com"
    김진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HCI Lab. 공저
    출판사 : (주) 영진 출판사

    이책은 인터넷 비즈니스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께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해야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채 인터넷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될것이라고 확신한다
    실전업무를 통한 이해와 구체적인 방법론과 전략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어
    쉽게 인터넷 비즈니스에 접근 할 수가 있습니다.
    단지 책이 발간 된지 꽤 시간이 지났기에 워낙 빨리 변화하는
    인터넷 비즈니스라 현재 시스템과 맞지 않는 부분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인터넷 비즈니스 대한 정의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수립을 위한
    체계는 잡을수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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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gramming Windows / Charles Petzold
    santaf | 2005년 08월 24일
    Programming Windows - 5판 / Charles Petzold (지은이) / 컴피플 이 책은 윈도우즈 프로그래밍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기존의 콘솔 프로그래밍에 익숙한 프로그래머들에게 윈도우즈 프로그래밍 기법을 세세한 사항까지 그것도 일일이 윈도우즈 API만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이 책은 해외 유명 인터넷 서점에 등록된 서평만 보더라도 그 원서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윈도우즈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저자 '펫졸드' 이름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통할 정도이다 ;-) 그러나 한국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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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gramming Windows - 5판
    / Charles Petzold (지은이)
    / 컴피플


    <고전적인 내용, 까다로운 한국어>


    이 책은 윈도우즈 프로그래밍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기존의 콘솔 프로그래밍에 익숙한 프로그래머들에게 윈도우즈 프로그래밍 기법을 세세한 사항까지 그것도 일일이 윈도우즈 API만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이 책은 해외 유명 인터넷 서점에 등록된 서평만 보더라도 그 원서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윈도우즈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저자 '펫졸드' 이름이 하나의 보통명사로 통할 정도이다 ;-) 그러나 한국어 번역본인 이 책은 원서의 훌륭한 내용을 한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번역으로 인해 그 품질을 결정적으로 하락시켰다.

    우선 이 책 내용 자체만 살펴본다면, 그래픽, 그중에서도 윈도우즈 프로그램 방식의 그래픽에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자세히 다루어진다. 윈도우즈 시스템에서 실행될 수 있는 '응용(application)' 프로그램의 다양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기법에 대한 안내를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실망은 이 책에 대한 흠이 될 수는 없다. 이 책의 일차적 집필 의도는 어디까지나 윈도우즈 프로그래밍의 기초(fundamental)를 튼튼히 구축하는 데에 있으므로.

    MDI, 멀티 쓰레딩, 인속 응용 프로그램을 위한 내용도 소개되긴 하지만, API 직접 이용하는 방식이므로 실제 빠른 개발을 요구하는 산업 현장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능에 비해 아주 기본적인 내용들만을 다루어 빈약한 감이 있다. 단, 윈도우즈 시스템에서 실행되는 프로그램 코드에 대해 되도록 시스템 호출에 가까운 거리에서 '한 점의 의혹 없이, 블랙박스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윈도우즈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실행 방식과 그래픽 관련 사항들을 '한 점 의혹도 없이' 일일이 API 호출해가며 밑바닥 수준에서 코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윈도우즈 프로그래밍의 기초(fundamental)를 튼튼히 구축하게 도와준다는 장점이 있으나, 한국어 어법에 맞지 않거나 어색한 문장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이따금 뛰쳐나온다는 단점이 있다. 유닉스, 도스 환경이나 자바 환경에 익숙하지만 윈도우즈 환경에는 문외한인 프로그래머로서 윈도우즈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실행 방식을 철저히 파악하고자 하는 '열정이 끓어넘치는'사람들에게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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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 기초플러스
    karma2000 | 2005년 08월 24일
    두께만큼이나 자세하게 c++을 설명하고 있다. 예제도 많은 편이고, 설명도 그런대로 되어 있다. 요즘이야 책이 워낙 쏟아져 나오니 꼭 이 책이 좋다라고는 말 못하지만, 기초를 다지라는 목적에 충실히 몫을 다하는 책이다. 아~ 두껍다.. 뭐 항상 접하는 책들이지만 300페이지 짜리 소설 책을 보면 책같지도 않아 보인다. 프로그래밍은 항상 연습이 중요한 듯.. 이 책의 특징 하나를 꼽으라면, 꼼꼼하다는거 필요 없는 부분도 열심히 설명해 뒀다는거. 역시 책장에 꽂아 놓기 좋다. 번역도 나름대로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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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께만큼이나 자세하게 c++을 설명하고 있다. 예제도 많은 편이고, 설명도 그런대로 되어 있다. 요즘이야 책이 워낙 쏟아져 나오니 꼭 이 책이 좋다라고는 말 못하지만, 기초를 다지라는 목적에 충실히 몫을 다하는 책이다. 아~ 두껍다.. 뭐 항상 접하는 책들이지만 300페이지 짜리 소설 책을 보면 책같지도 않아 보인다. 프로그래밍은 항상 연습이 중요한 듯..

    이 책의 특징 하나를 꼽으라면, 꼼꼼하다는거 필요 없는 부분도 열심히 설명해 뒀다는거. 역시 책장에 꽂아 놓기 좋다. 번역도 나름대로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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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 프로그래밍
    karma2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행복한 프로그래밍 저자 : 임백준 출판사 : 한빛미디어 '행복'과 '프로그래밍' 중에서 무게를 둔다면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전자는 행복 해지기 위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일 것이고, 후자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행복 해지는 사람일 것이다. IT산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으로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물론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은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작 품이기도 하지만, 심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하려는 노 력과 여건이 충분하지 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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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행복한 프로그래밍
    저자 : 임백준
    출판사 : 한빛미디어


    '행복'과 '프로그래밍' 중에서 무게를 둔다면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전자는 행복
    해지기 위해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일 것이고, 후자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행복
    해지는 사람일 것이다. IT산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으로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물론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은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작
    품이기도 하지만, 심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하려는 노
    력과 여건이 충분하지 못한 데에 있다. 일에 대한 욕망과 열정보다는 외피의 화려함
    이 인간에게는 더 매력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하는 프로그래머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통할 수 없을 것 같다. 비트의 세계, 그 세계와 끈임없이 대화하
    며 창조물(소프트웨어)을 만들어가는 창조주의 기쁨을 아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
    유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밤새워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설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책들을 보게되면 저자의 약력부터 보게 된다. 이 사람은 이 분야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얼마나 많은 경험과 노력을 하였는가? 과연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가?
    를 보기 위함이다. 간략하게 말하면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현재는 벨 연구소가 있
    는 루슨트 테크놀로지스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부럽다. 그의 이력에 대한 부러움
    도 크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부럽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커피로 알고
    리즘을 만든다'. 프로그래머들의 고뇌와 일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는 문장이다.

    책의 구성은 이렇듯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철학만을 얘기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많다. 프로그램 언어의 역사, 암호학, 이
    런 저런 알고리즘, 해킹, 기념비적인 사건들이 아침에 마시기 좋은 카페오레,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진한 에소프레소 등 커피의 특성에 비유하여 내용을 적절히 구성하
    였다. 그만큼 전산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중을 대상으로 집필한 편
    안한 책이다. 흥미로운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간단하고 재미있는 알고리즘 퀴즈들도 있는데, 이것들은 프로그래밍의 기초는 알고
    있어야 하지만 풀지 않아도 무방하다. 엔지니어가 쓴 책이라서 글이 딱딱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문장력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용과 기사의 퀴즈 대결로 알고리즘을 설명
    한다던가(기사는 '정보처리기사'라서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 ^^). 무협지의 일부분
    을 가져와서 프로그래머의 내공과 외공을 설명하는 등 필치에 유연함과 재치를 보여
    준다.

    전체적으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것이 에세
    이인가, 입문서인가 정체가 불명확하지만, 에필로그는 참으로 아름답고 의미있게 장
    식한거 같다.
    <'등산 안내서, 여행가이드북, 컴퓨터 매뉴얼을 쓰는 저자들이 단지 그런 책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설가나 철학자들보다 폄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중략) 이들
    은 진심으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세상과 공유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
    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창조적 노동을 하는 프로그래머들의 마음이 따뜻해
    지면 세상이 따뜻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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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 사이트 제작 워밍업 <웹 스타일 가이드>
    naisdw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웹 스타일 가이드 저자 : 패트릭 J.린치, 사라 호튼 지음ㅣ 양선옥, 고일주 옮김 출판사 : 안그라픽스 웹 사이트 제작 워밍업 몇 년 전, 집에서 전화선에 연결된 “나름대로 고속모뎀”(?)으로 “인터네트”란 희한한 것에 처음 접속했을 때. 몇 초 뒤, 야후의 홈페이지가 아주 느릿느릿 모니터에 떠올랐을 때. 나는 새로운 천지를 본 것처럼 놀랬고, 설랬다. 그때까지는 웹 사이트나 웹 서핑이란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으며, 나는 시골 농부가 창경원에 가서 처음 원숭이를 본 듯한 느낌으로 웹 서핑을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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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웹 스타일 가이드
    저자 : 패트릭 J.린치, 사라 호튼 지음ㅣ 양선옥, 고일주 옮김
    출판사 : 안그라픽스


    웹 사이트 제작 워밍업


    몇 년 전, 집에서 전화선에 연결된 “나름대로 고속모뎀”(?)으로 “인터네트”란 희한한 것에 처음 접속했을 때. 몇 초 뒤, 야후의 홈페이지가 아주 느릿느릿 모니터에 떠올랐을 때. 나는 새로운 천지를 본 것처럼 놀랬고, 설랬다. 그때까지는 웹 사이트나 웹 서핑이란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으며, 나는 시골 농부가 창경원에 가서 처음 원숭이를 본 듯한 느낌으로 웹 서핑을 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의 웹 서핑은 신품 전시장에서의 관람 행위거나 일종의 관광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생활”이 아닌 때였다.

    그렇게 인터넷이 생활이 된 시절에 웹 사이트 제작에 대한 책을 읽는다. 컴퓨터 관련 서적은, 더욱이 인터넷 관련 서적은, 인문학처럼 고전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웹 페이지상에서 떠도는 좋은 강의도 많으며 며칠 내로 새로운 테크닉과 경향 들이 흘러넘칠 것이기에. 이 책은 첨단의 웹 제작 테크닉과 유행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해설하지 않는다. 웹 사이트 제작의 장기적인 기획과 제작, 운영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조언해주고 그리고 나서 인터페이스, 사이트, 페이지, 타이포그래피, 편집 스타일의 이론적 기초를 다룬다. 내가 보기엔, 사이트 디자인이나 구체적인 페이지 제작에 대해서보다 웹 기획에 대한 조언 쪽이 더 볼만하다. 집필 당시인 2000년을 기준으로 해서, 당시의 안목으로 웹 사이트 제작과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이 좀더 오랫동안 살아남아 독자들에게 펼쳐질 수 있다면, 그건 디자인에 대한 시시콜콜한 언급 때문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웹 사이트 제작이 필요한 독자들마다 저마다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스타일과 디자인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문제에 가깝다. 단지 이 책은, 전문가 집단들이 웹 사이트에 접속할 때에는 빠른 페이지 뷰를 위해서 텍스트 중심의 디자인을 하는 것이 좋겠고, 초심자나 첫 방문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웹 사이트라면 이미지를 풍부하게 쓸 것을 권하라는 등의 핵심적인 조언을 던지는 이론적 가이드이다.

    직접 웹 사이트를 개발할 독자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단체, 모임 등의 홈페이지를 외부 제작할 사람들도 가볍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

    아, 그리고 재미있는 한 구절. “HTML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은 입자 물리학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표준화 방안을 찾고 있던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컴퓨터 화면에 보여지는 문서의 정확한 시각적 형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실 HTML은 컨텐츠 구조와 그래픽 디자인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웹 페이지 텍스트를 ”읽어주는“ 브라우저를 비롯한 모든 브라우저와 시스템에서 디스플레이될 수 있고 자동 검색 엔진에 의해 정확히 해석될 수 있는 페이지로 이루어진 월드와이드웹을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94쪽) …하긴, 내 할아버지의 증조할아버지의 할머니의 증조할머니의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처음부터 옆집 공룡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동굴 인테리어를 꾸미기 시작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피식.


    * 항의 : 105쪽 등 글꼴이 나온 페이지들에서 바탕체와 돋움체와 굴림체가 모두 똑같아 보이는군요. <웹 스타일 가이드>라는 제목이라면 좀더 신경 쓰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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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과의 화해--질병의 극복
    masterbell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고통과의 화해 저자 : 스펜서 내들러 출판사 : 이제이북스(EJB) 각종 의료 기술이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들이 흔히 걸릴 수 있는, 각종 암, 알츠하이머병. 비만 등을 소재로 인간이 다양한 종류의 질병과 맞닥뜨릴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를 저자 스펜서 내들러의 관점으로 본 이야기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로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요즘 사회,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가 점차 얕아 지는 요즘 사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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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고통과의 화해
    저자 : 스펜서 내들러
    출판사 : 이제이북스(EJB)


    각종 의료 기술이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 책에서는 우리들이 흔히 걸릴 수 있는, 각종 암, 알츠하이머병. 비만 등을 소재로 인간이 다양한 종류의 질병과 맞닥뜨릴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를 저자 스펜서 내들러의 관점으로 본 이야기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로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요즘 사회,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가 점차 얕아 지는 요즘 사회에 뭐니 뭐니 해도 그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될 수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함이 있어서였다.

    처음 책을 접한 느낌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참 어렵구나’ 이었다. 그만큼 이 책은 사용된 단어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 모두 어렵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저자에게 있어서는 일상이었던 의학 전문 용어가 많이 쓰였고 다루는 주제가 삶과 죽음이란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운 내용은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였고 삶과 죽음에 관한 무거운 주제에 대한 내용은 우리에게 평소에 생각할 기회가 적었던 주위의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주었다.

    책의 내용 중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러 사람들의 아픔이 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지방을 잘 분해하지 못하는 신체를 갖고 태어나게 되었다. 그로 인해 비만이 되었지만 뚱뚱한 사람은 무조건 자기 관리를 못한다거나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게 된다는 주위의 각종 편견들, 주위의 시선이 그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들은 처음에는 작은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천천히 잃어간다. 물건을 잊고 공간을 잊고 시간을 잊고 결국에는 소중한 사람까지 잊어버린다. 이 병은 걸린 자신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며 주위사람들에게도 크나 큰 마음의 상처를 준다. 이러한 다른 사람들이 갖는 고통을 이해하고 포용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형태를 지닌다. 하나는 병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몸의 일부로서 적응 해 나간다. 병은 그들에게 꿈을 이루는데 있어서 아무런 방해도 되지 못한다. 그런 반면 병의 진실을 외면한 채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더욱 큰 고통을 겪는 사람 또한 있다. 이렇듯 인간이란 육체적으로는 강인할지 몰라도 정식적으로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인간이 고통에 굴하지 않고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점은 어찌 보면 상당히 의외일 수 있다. 한 여자는 자신이 걸린 병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 하며 그것을 포용하면서 극복해 나가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싸워 나가야 할 병의 모습을 확인하고 마음속으로 그것을 이겨나가는 것을 그려나가곤 한다. 심장병에 걸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게 있어서 그 병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사그라지게 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에게 더 적은 시간이 주어졌음을 알고 더욱 더 열정적으로 살게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그래서 더욱 더 값진 것이 아닐까. 만일 인간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지고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면 더욱 게을러지지는 않았을까? 이 책은 이러한 삶과 죽음에 관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과 배려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0389123 Y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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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생충 제국을 읽고
    asczeus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기생충 제국 저자 : 칼 짐머(지은이) 이석인(옮긴이) 출판사 : 궁리 흔히 사람들은 '기생충' 이라 하면 기분 나쁘고 별로 좋지 않은 존재로 여기고 또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 책이다. 기생충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 저자는 기생충이란 하나의 생물을 통해서 전체적 생물사를 들여다 보고 있다. 남녀의 구분이 생기게 된 것이 기생충 때문이라는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아는 것이 없는 기생충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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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기생충 제국
    저자 : 칼 짐머(지은이) 이석인(옮긴이)
    출판사 : 궁리

    흔히 사람들은 '기생충' 이라 하면 기분 나쁘고 별로 좋지 않은 존재로 여기고 또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러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 책이다. 기생충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되었다.

    저자는 기생충이란 하나의 생물을 통해서 전체적 생물사를 들여다 보고 있다. 남녀의 구분이 생기게 된 것이 기생충 때문이라는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아는 것이 없는 기생충을 통해서 면역 체계의 발달을 설명한다.

    기생충을 인간에 비유하고 인간을 지구의 기생충으로 비유한 부분은 매우 인상 깊었다. 이 부분을 통해 저자는 환경보존에 무심한 인간들에게 하나의 경고를 하는 듯 했다. 그칠 줄 모르는 기생충(인간)은 스스로를 파멸 시키고 자신의 숙주(지구)에게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기생충의 대단한 생존전략이 엿보인다. 파괴는 시키지만 없애지는 않는, 하나의 교묘한 작전이었던 것이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기생충이 오래전부터 진화의 원리에 따라 숙주의 삶과 성격을 바꾸어 놓는다는 주장이었다. 책에 나온 일례로 기생충은 최종 숙주인 소의 몸 속으로 들어 가기 위해서 중간 숙주인 개미가 최종 숙주인 소에게 쉽게 잡아먹히도록 개미의 행동을 통제 하여 소가 쉽게 볼 수 있는 풀잎 위에 올라가게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여러 가지 현상들도 제시하며 저자는 기생충이야 말로 생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햇던 기생충들의 하나의 생존 전략 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가며 느끼는 나의 충격도 엄청났다.

    결국 기생충은 인간과 매우 밀접하고 우리의 삶이 기생충과 많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지구의 역사와 함께 한 기생충은 박멸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통해 서로 진화해 가면서 공존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기생충의 생각을 완전히 뒤엎는, 그리고 다시한번 기생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이 기생충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의 무지, 소외 받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괸심 등도 우리에게 묻고 있는것 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워주는 책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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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랑한 둘리가 추레하게 늙어버렸다
    minianjin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저자 : 최규석 출판사 : 길찾기 만화의 힘이 더 강하고 단단하게 뭉쳐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제 소설이나 인문과학보다는 만화가 움켜잡았다는 걸 느낀다. 어렸을 때 잠깐 무협만화를 보던 나는 알 만한 건 다 아는 나이가 되어서 만화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사실 시간에 쫓기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고로 그 내막을 알고 싶기는 한데, 정색을 하는 책 말고 후다닥 볼 수 있는 책이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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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저자 : 최규석
    출판사 : 길찾기


    만화의 힘이 더 강하고 단단하게 뭉쳐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제 소설이나 인문과학보다는 만화가 움켜잡았다는 걸 느낀다. 어렸을 때 잠깐 무협만화를 보던 나는 알 만한 건 다 아는 나이가 되어서 만화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사실 시간에 쫓기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고로 그 내막을 알고 싶기는 한데, 정색을 하는 책 말고 후다닥 볼 수 있는 책이 절실했다. 마음은 <이슬람 문명>에 기울어져 책을 사놓고도 끝을 보지 못하는 시간을 한참 흘려보낸 후, 저절로 손이 <팔레스타인>으로 가 두세 시간만에 책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만화의 힘은 사실 이런 거다.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의 인식을 바꾸고 가슴을 데우는 것이 만화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도 그런 점에선 만화의 힘에 두툼한 한 표를 더한다. 첫 번째 단편 '사랑은 단백질'을 보면 다소 억지스러운 짜맞춤이란 생각이 들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의 부조리성은 살점을 지나 뼛속까지 드러낸다.

    먹고 먹히는 관계, 그러나 그것을 사람과 치킨의 관계로 설정한 것이 터무니없다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현실은 살육의 관계를 명백히 기반으로 하는 짜고치는 고스톱인걸. 그렇다고 작가가 입까지 봉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기실 우습지도 않은 쓸쓸한 표정을 잔뜩 짓고는 "넌 참 좋겠다, 양심이 없어서"라고 툭 뱉어낸다. 그러나 화살을 벼르고 겨냥해서 한방에 날리지만 독설만 가득한 건 아니다. 칼로 배를 갈라 돈을 죄다 긁어낸 돼지저금통이 배를 움켜쥐고 모자란 동전을 내처 던지는 식의 기찬 풍자는, 마치 많이 아프냐, 고 슬쩍 반창고라도 붙여주는 듯하니.

    표제작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작가의 처절하며 날카로운 비판 위에 천연덕스러움을 꼼꼼히 덧발라냈다. 천진난만한데다 남의 집에 얹혀 살면서도 기고만장한 아기공룡 둘리는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세월은 모든 명랑함을 날려버렸다. 어른이 된 둘리는 행색마저 허름해진 공장 노동자가 되었으며 이미 프레스에 손가락을 잘려먹었다. 그의 친구들? 짚으면 뭐하나, 쓰디쓴 현실의 자국만 보여줄 텐데. 그래도 심술궂은 작가가 그려내는 걸 어디 보자. 동물원의 창녀가 된 타조 또치, 외계인 도우너의 사기로 재산을 홀라당 날려먹고 화병에 죽은 고길동, 이젠 친구들보다 머리회전이 빠른 고철수가 해부용 생물로 연구실에 팔아버린 도우너, 감옥을 드나들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보이는 희동이... 왜 이리 망가진 모습으로만 그려놨는지 슬그머니 화가 치밀지 않는가.

    그래도 얄궂은 작가가 마지막 컷으로 그려낸 늙은 둘리의 모습은 이제껏 울그락불그락 했던 열을 싸늘히 식혀놓는다. 둘리는 고길동의 무덤에 초라하게 드러누워 있다. 다시 빙하기로 돌아가고 싶은, 다시 철모르고 통통거리며 다녔던 명랑만화로 내달리고 싶은 둘리. 그러나 소주잔 옆에 힘겨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둘리는 명랑한 만화로 달려가기에 너무 늙었으니...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어둡고 비루한 삶을 조명해낸다. 왜 나는 저항하는 판잣집 앞에 철거용역반의 쇠파이프를 들고 서 있는가, 내가 그곳을 철거하고 새로 들어설 건물주가 아닌데도! 나는 왜 판잣집에 사는 친구의 얼굴에 생채기를 내야 하는가, 꼭 그래야만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느 편에 서 있느냐는 어려운 '선택'이다.

    사회가 나눈 지역 한편에 서 있었으나 그 신념이 흔들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가 서 있던 자리만 보고 있던 눈이 다른 자리도 봐버렸기 때문이다. <선택>과 <솔잎>은 진정 보지 않았으면 편했을 자리가, 보는 순간 불편해지는 모순을 그렸다. 그렇다면 나는 짐짓 보지 않은 척해야 하나, 아니면 보고도 내 자리를 공고히 지켜야 하나, 아니면 내 자리를 흔들어서라도 부조리를 말해야 하나. 작가는 두 눈을 가지고도 용기없음을 매운 손으로 꼬집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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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육을 통한 본성 - 닭이 먼저? 알이 먼저?
    신정호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본성과 양육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 저자 : 매트 리들리 출판사 : 김영사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떠오른 오래된 말장난이다. 인간이 형성되는 것이 ‘본성(유전)’이냐 ‘양육(환경)’이냐 하는 문제는 위의 질문처럼 언뜻 생각하기에 난해하고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에 혼란스러워 진다. 이런 혼란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저자 ‘매트 리들리’는 위의 질문처럼 근본에 관한 질문으로 끝이 없을 것 같은 문제의 결론을 제시해준다. 부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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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본성과 양육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
    저자 : 매트 리들리
    출판사 : 김영사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 이 책을 처음 접할 때 떠오른 오래된 말장난이다. 인간이 형성되는 것이 ‘본성(유전)’이냐 ‘양육(환경)’이냐 하는 문제는 위의 질문처럼 언뜻 생각하기에 난해하고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에 혼란스러워 진다. 이런 혼란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저자 ‘매트 리들리’는 위의 질문처럼 근본에 관한 질문으로 끝이 없을 것 같은 문제의 결론을 제시해준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태어나서 유전형질 데로 성장하는 것인지 주변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어 지는지에 대한 논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둘을 따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가 제시하는 중심은 ‘양육을 통한 본성’이다. 인간이든 다른 동물이든 간에 생물은 유전자라는 본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있다. 그러나 이 유전자는 학습이라는 양육을 통해 생물을 결정한다. 이를 기초로 해서 양육을 통한 본성이라는 간단한 이론이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이론을 제시하면서 상당히 논리적인 방법을 택했는데 각 장마다 빼놓지 않고 유전연구의 결과를 제시함으로 입증해 나갔고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글들로 자신의 주장에 이득이 되는 말들로 책을 엮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쉬운 점은 각종 연구결과와 이론들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 하나 없이 글로만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해가 힘든 부분이 있어서 책을 읽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처음 접하는 이론에 대한 두려움이 책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 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걱정이 되었다.

    인간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발현되는 것은 학습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은 학습을 통해 발현될 수 있지만 학습을 통해 없어질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 어떤 정보를 각인시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뱀이나 꽃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에게(학습되지 않은 사람) 꽃을 보고 두려워하는 모습과 뱀을 보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뱀은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지만 꽃을 그런 식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갓난아기는 세상을 처음 봄에도 불구하고 미(美)를 추구한다. 아기한테 편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난 사진과 추하고 불안한 사진을 보여주면 전자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위의 두 가지 예는 학습을 통한 본성과 학습을 통하지 않은 본성을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도 이 애매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즉, 본성과 양육의 문제는 복잡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명확히 증명해내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제시된 다양한 관점과 풍부한 최신의 과학적 이론들을 이 문제와 잘 버무려서 이 논쟁의 끝에 다가가는데 분명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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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정복한 괴짜, 류비세프를 만나다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저자 :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출판사 : 황소자리 이 남자 참 특이하다. 알렉산더 대왕과, 히틀러 그리고 나폴레옹도 점령하지 못한 것을 점령한 이 남자, 류비셰프는 알수록 독특한 남자다. 과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류비셰프라는 이름을 갖고 다가온 이 남자는 누구인가? 류비셰프. 그는 워낙에 방대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했기 때문에 의사나 검사, 소설가 같이 단순명료한 직업명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남자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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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저자 :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출판사 : 황소자리


    이 남자 참 특이하다. 알렉산더 대왕과, 히틀러 그리고 나폴레옹도 점령하지 못한 것을 점령한 이 남자, 류비셰프는 알수록 독특한 남자다. 과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류비셰프라는 이름을 갖고 다가온 이 남자는 누구인가?

    류비셰프. 그는 워낙에 방대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했기 때문에 의사나 검사, 소설가 같이 단순명료한 직업명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남자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류비셰프라는 남자의 정복기만 알면 된다. 어차피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이다.

    류비셰프는 무엇을 정복했는가? ‘시간’이다. 뜻밖의 대답에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정복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시간을 그는 정복했다. 그는 사람들이 버릇처럼 내뱉는 ‘시간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럴 시간에도 정복한 시간을 이용할 뿐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는 류비셰프라는 인물에 대한 전기적인 이야기와 함께 그의 삶의 원동력이 됐던 ‘시간통계’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시간통계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루에 한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무슨 시간을 정복하는 것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류비셰프의 시간통계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몇 십 년 동안 시간통계를 해 온 류비셰프의 기록을 보자.

    1964년 4월7일, 울리야노프스크.
    ․ 곤충분류학 : 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두 점 그림. 3시간 15분.
    ․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 - 20분.
    ․ 추가 업무 : 슬라바에게 편지 - 2시간 45분.
    ․ 사교 업무 : 식물보호단체 회의 - 2시간 25분.
    ․ 휴식 : 이고르에게 편지 - 10분.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中>

    그는 철저하게 기록한다. 휴식 시간이든 공부한 시간이든 간에 ‘시간’이면 그는 무엇이든지 기록한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버리는 시간을 없애기 위함이다. 류비셰프는 너무나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던 남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했다. 그는 멍하니 있는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또한 지난 날의 기록들과 비교해 보기 위해서 매일 같이 시간을 기록했고 연말에는 통계를 내어 주위 사람들에게 그 결과를 보여줬다.

    물론 이런 것들은 누군가에게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고 애시당초 자랑거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그는 왜 그렇게 시간통계를 했던 것일까? 버리는 시간을 없애는 것 이외에도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나아가 자신이라는 존재에 알고 싶어 했다.

    하루의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그것은 분명하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며, 자신의 미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류비셰프는 ‘괴짜’ 같은 행동으로 삶을 규명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그리하여 도무지 이 남자를 어떤 남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일들을 해냈고 또한 후세에 영향을 끼쳤다.

    몇 년 전부터 시간을 아끼자는 실용서들이 끊이지 않고 독자들의 눈앞에 나타났지만 대개가 개괄적인 수준을 논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 여기 류비셰프가 있다. 이 소문난 괴짜를 한번 만나보고 싶지 않은가? 알면 알수록 궁금증을 자아내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의 시간정복법이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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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형화된 웃음 멈춰버린 논스톱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정형화된 웃음 멈춰버린 논스톱 저자 : 방송문화진흥회 엮음 출판사 : 한울 세상에 소중하지 않을 책이 어디 있겠는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소중한 책이 있다. 사람들의 정성이 결집된, 그래서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책이 그것일 텐데 방송문화진흥회가 엮은 도 그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은 전국의 시청자들이 만든 책이다. ‘2004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수상집’이기도 한 이 책은 시청자들이 2004년도 지상파 방송에 등장했던 드라마, 오락프로그램, 뉴스, 토론프로그램 등을 망라해 비판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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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정형화된 웃음 멈춰버린 논스톱
    저자 : 방송문화진흥회 엮음
    출판사 : 한울


    세상에 소중하지 않을 책이 어디 있겠는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소중한 책이 있다. 사람들의 정성이 결집된, 그래서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책이 그것일 텐데 방송문화진흥회가 엮은 <정형화된 웃음 멈춰버린 논스톱>도 그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형화된 웃음 멈춰버린 논스톱>은 전국의 시청자들이 만든 책이다. ‘2004 좋은 방송을 위한 시민의 비평상 수상집’이기도 한 이 책은 시청자들이 2004년도 지상파 방송에 등장했던 드라마, 오락프로그램, 뉴스, 토론프로그램 등을 망라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칭찬할 것은 칭찬한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책이다.

    옛말에 ‘천심은 민심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현대 방송의 운명은 시청자들이 갖고 있다. 방송은 모두의 재산이며 방송은 시청자들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들은 일종의 엘리트로서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억지로 쥐어짜는 ‘웃음’과 볼썽사나운 작위적인 ‘이쁜’ 이야기만 만들어내면 시청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호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랴? 시청자들은 이미 한수 앞을 내다보고 있다. 한수가 아니라 먼 곳까지 내다보고 있다. 시청자들은 그러면서도 애정을 갖고 있다. 방송이 자신들을 무시한다 할지라도 방송이 제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예 외면하지 않고 비판하며 바꿔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정형화된 웃음 멈춰버린 논스톱>에는 애정이 있다. 시청자들의 비판만 있다면 이 책은 그렇게 소중한 책으로 불리기 어려울 것이다. 애정이 있기에, 정성이 있기에 이 책은 어느 책에 못지 않은 소중한 마음이 페이지마다 쌓이고 쌓여 있는 책이다.

    최우수작은 ‘MBC 청춘 시트콤’ 논스톱을 대상으로 글을 썼는데 그 비판의 칼날은 어떤 검술보다 날카롭다. 그러나 살의는 없다. 무슨 말인가?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없애라고 하지 않는다. 바꾸라고 말한다. 관습에 집착하지 말고 대학문화를 ‘연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 말 것이며 청춘을 편견 속에서 무기력하게 만들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모든 작품이 그렇다. 날카로운 비판도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시청자들이 느낀 바를 솔직하게 써내려가고 있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바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있다.

    <정형화된 웃음 멈춰버린 논스톱>은 귀중한 책이다. 어느 의견 하나 버릴 것이 없고 어느 문장 하나 소흘히 할 수가 없다. 비록 비평가들에 비하면 문장의 완성도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태도가 아마추어적이기는 그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 목소리가 바로 방송의 주인인 시청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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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철에 맞는 자연 밥상 반찬이 들녘 곳곳에 넘쳐 있으니
    littlechr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자연달력 제철밥상 저 자 : 장영란 출 판 사 : 들녘 제철에 맞는 자연 밥상 반찬이 들녘 곳곳에 넘쳐 있으니 "안방 벽에 농협 달력이 걸려 있었다. 커다란 종이에 날짜가 크게 써진 그 달력에 그 날 한 일, 본 것, 들은 것을 적었다. 해가 바뀌어 새 달이 돌아오면, 묵은 달력을 꺼내놓고 지난 해 이맘 때 무슨 일을 했는지 복습을 했다. 몇 년 달력을 한자리에 펼쳐 보면 해마다 보이는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남에게서 답을 구하다 어느새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이는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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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자연달력 제철밥상
    저 자 : 장영란
    출 판 사 : 들녘


    제철에 맞는 자연 밥상 반찬이 들녘 곳곳에 넘쳐 있으니


    "안방 벽에 농협 달력이 걸려 있었다. 커다란 종이에 날짜가 크게 써진 그 달력에 그 날 한 일, 본 것, 들은 것을 적었다. 해가 바뀌어 새 달이 돌아오면, 묵은 달력을 꺼내놓고 지난 해 이맘 때 무슨 일을 했는지 복습을 했다. 몇 년 달력을 한자리에 펼쳐 보면 해마다 보이는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남에게서 답을 구하다 어느새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이는 장영란의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2004)에 나오는 머릿글 한 토막이다. 농협 달력이야 농사를 짓는 집이라면 모든 시골 방구석에도 붙어 있건만, 장영란이 걸어 놓은 농협 달력은 달랐다. 여느 시골 집 농협 달력처럼 그녀는 그것을 걸어 놓고 한 장 한 장 떼어 내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듣고 본 것들을 거기에다 꼼꼼히 쓰고 고쳐서 이듬해까지도 배우고 익혔던 그야말로 농사 달력이었던 것이다.

    1996년,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를 떠나 무주 산골에 터를 잡고 농사를 배웠다. 허나 뭐든지 첫 발걸음은 어설프기 짝이 없는 법,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은 장영란도 그때부터 몇 년간은 꼭 죽을 맛이었다. 도무지 볍씨는 어떻게 해야 하며, 꼬치 모종은 또 어떻게 해야 하고, 장이라든지 고추장 담그는 법도 손에 익은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이 논 저 논 기웃거리기도 많이 했고, 이 집 저 집 밭뙈기에도 수 없이 둘러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기를 한 두 해 하면서 서서히 농사짓는 게 어떤 것인지, 자연 속에서 먹거리들을 어떻게 얻는 것인지 알게 됐고, 나중에는 논 네 다랑이 오백 평에, 집 뒤 산 밭들을 얻어서 손수 농사를 짓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농사를 골고루 하되, 어느 하나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봄에 씨 뿌릴 때야 다 거두고 싶지만, 중간에 제대로 안 되면 자연에 못할 짓을 하는 거니까. 그래서 여름 장마를 거쳐 가을걷이까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만큼, 그만큼 씨를 뿌리려 한다."(18쪽)

    그녀는 보통 농사꾼들처럼 욕심을 품고 살지는 않는다. 농사를 지어 돈방석에 앉고 싶은 욕심이 없다. 더욱이 깊은 산골이요, 5월 초까지도 서릿발이 내리는 해발 4백 미터가 넘는 고랭지에서 무슨 돈벼락 농사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녀가 품은 바람은 다만 그것이다. 자연 속에서 얻는 것들로 제 식구들 밥상 하나 족하게 차려 먹는 것뿐이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그런 밥상….

    그래서 그녀는 이 책에서 농사짓는 법을 하나에서 열까지 알려주기보다는 그저 자연이 이끌고 가르쳐 주는 대로 농사짓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고, 사계절 자연 들녘 속에서 얻는 자연 제철 밥상과 그 반찬들을 알려주고 있다.

    "농사일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논밭은 비어 있다. 논과 밭을 둘러보며 밭 정리하고 나물 캐다 보면, 올해 여기다 무얼 심을까 계획이 떠오른다. 저녁밥 먹으며 식구마다 자기 농사계획을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무슨 곡식이 알맞고, 산 뙈기밭에 합다랑이를 할까, 말까? 콩밭은 배수로를 다시 파야겠지…."(41쪽)

    "봄에 많이 하는 나물은 쑥이다. 논일 밭일하다 냉이, 달래를 캐고, 머위를 꺾는다. 작대기 하나 들고 산을 돌아다니며 다래순 훑고, 취, 고사리를 꺾다가 두릅밭을 발견하면 나만 아는 듯 은밀하다. … 봄에는 나무 어린순과 잎도 맛난다. 훗잎, 두릅, 가죽나무순, 뽕나무순, 다래순. 그러다가 초여름이 되면 뽕잎, 산을 다니다 송순을 만나니, 다음엔 어떤 잎을 만날까 고라니처럼 염소처럼 기다린다."(64쪽)

    장영란 씨는 톱니바퀴 기계처럼 쫙쫙 짜 맞춰진 농사일을 하는 게 아니다. 자연이 알려주고 이끄는 그 흐름을 따라 손이 가고 발이 가는, 그저 순리에 따라 농사를 지을 뿐이다. 더 많이 거두어보고자 논밭에 화학비료를 뿌리거나 농약을 치는, 억지도 부리지 않는다. 기계에 힘을 빌어 손쉽게 일을 끝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콤바인을 대 벼 탈곡을 하는 게 아니라, 힘들더라도 홀태에 온 식구들이 달라붙어 한 몸이 돼 일을 한다.

    그렇듯 욕심부리지 않고 자연이 이끄는 대로 봄부터 겨울까지, 일년 열 두 달을 허허롭게 살아가니 그 자연스런 멋을 어디에 빗댈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입춘부터 대한까지, 제철에 맞는 자연 밥상 반찬이 집 둘레 들녘 곳곳에 넘쳐 있으니 그 자연스런 맛을 무엇에 빗댈 수 있겠는가.

    "집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면 농사지어 넣어 둔 것을 하나 하나 꺼내 맛난 걸 만들어 먹는다. 때로는 손 많이 가는 음식도 해 먹는다. 팥 삶아 걸러 앙금 내고 그걸 졸여 소를 만들고, 찹쌀을 불려 고두밥을 해 떡메로 쳐서 하나하나 빚어 먹고. 만두, 인절미, 묵, 깨강정……. 한겨울 든든히 먹고 힘내자고, 이렇게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몸 움직이고, 식구들 즐겁고."(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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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들의 의미에 경이와 겸손을 배우게 된다.
    redffin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남대천에 연어가 올라오고 있어요 저자 : 성기백 지음 출판사 : 보림 이 책의 분류를 보면 생태,환경에 관한 이론서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론서가 이렇게 재밌는 책일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얼마전에 라는 책을 보면서 지렁이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작가에게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앎'은 단순히 지식적인 것을 떠나 그가 그토록 오랜세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가운데 사랑하게 됨으로 인한 그 애정이 결부되어 있었기에 그의 따뜻한 시선을 독자인 나 역시 느낄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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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남대천에 연어가 올라오고 있어요
    저자 : 성기백 지음
    출판사 : 보림


    이 책의 분류를 보면 생태,환경에 관한 이론서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론서가 이렇게 재밌는 책일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얼마전에 <지구를 구한 꿈틀이사우루스>라는 책을 보면서 지렁이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작가에게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앎'은 단순히 지식적인 것을 떠나 그가 그토록 오랜세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가운데 사랑하게 됨으로 인한 그 애정이 결부되어 있었기에 그의 따뜻한 시선을 독자인 나 역시 느낄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책은 분류상 환경다큐멘터리동화였는데 어쨌거나 그렇게 어떤 한가지에 오래 집중하고 오래 연구하고 오래 파고드는 열정과 사랑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그리고 그들의 앎을 책이라는 것을 통해 나누어가질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들의 오랜세월을 경험할수 있는가 말이다.
    그렇게 자연의 하찮아 보이는 미물 지렁이를 너무나 친근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어 길가다 지렁이를 발견하면 안녕하세요? 정말 애쓰시는군요? 라고 인사라도 건넬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을 보면서 부러웠었다. 그런 작가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이제 우리나라에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는 책을 만나니 더없이 반갑고 또한 감사하다.
    작가는 17년간 연어를 연구해 온 사람이다. 말했듯 연구만해서 지식적으로만 무장된 사람이 아님을 책을 읽으면 알수가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 애정이 담겨있어 읽는 나에게도 그 느낌이 전달된다.
    그와 같은 시선으로 연어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은 설명을 어렵게 하는걸 종종 본다.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앎이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음에도 쉽고 재밌게 설명할줄 안다.
    이 책을 보면서 그랬다.
    연어의 삶이 참 놀랍고 대단하여 그 앞에서 숭고한 마음을 가져야 할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너무 흥미롭고 재밌어서 훌훌 후루룩 읽혀버려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작가가 머리말에서도 이야기했듯 예전에 비해 연어에 대한 지식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나 사전적인 간단한 내용이나 중복적인 자료들이 가득하다는 말. 공감한다. 그래서 이처럼 정말 제대로 잘 아는 사람들의 애정어린 세심한 책을 접하면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우리나라의 연어연구가 가깝게는 일본을 비롯해 훨씬 많이 연구하는 나라들에 비해 부족한것이 나 역시 안타깝지만(연어의 북태평양 이동경로등의 과정이 그래서 일본자료를 참고한다. 안타깝게도.) 그래도 내게는 충분히 넘쳐날만큼 재미있고 유익하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사진외에도 산란기 연어의 변화모습(7종) ,연어의 성장단계별 생존률. 연어의 먹이사슬과 숲과 연어의 관계도, 연어의 한살이 등의 그림은 아직 이 책을 읽기에는 다소 어리다 생각되는(9살) 우리 아들도 넘겨보며 그 지적호기심을 채울만큼 유익하였다.
    특별히 나는 산란기 연어의 변화모습이 너무 심하게 못생겨서 놀랍기도 하고 현실적이어서 친근하기도 하였다.

    이야~~ 정말 이렇게 생겼단 말이야? 대체로 짝짓기때는 더 예뻐지는줄 알고 있는데 이건 너무 심한거 아냐...하고 보다가 그렇게 변화하는 이유를 알고보니 그렇게 가볍게 웃을일이 아니었다.
    저 먼 북태평양으로부터 알을 낳기 위해 돌아오는 그 길고 험한여정속에서 동지들이었던 연어들이 이제 모천의 상류로 접어들며 경쟁상대가 되고 거기에서 이겨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전투하고 투쟁하기 위해 그렇게 변한다니...어찌 웃을수 있겠는가.

    그들의 회귀과정자체가 치열한만큼 외모마저 그런 모습을 따른다니 참 놀랍다. 반면 다른 생명체들도 그런 경쟁이야 있을터인데 왜 연어만 유독 그리 못생겨지는지도 궁금했다.
    열심히 돌아와 상류로 가기전 하천에서 삼투압적응과정의 생리적 변화를 거치는 것 역시 새로운 지식이었다. 정말 쉬운건 하나도 없다. 인생뿐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생명들에 또한 감탄을 하고 '나도 열심히 살리라' 그런 비장한 각오도 잠시 해 본다.

    연어는 오랜세월 많은 나라에서 연구해 왔슴에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 신기한 점이 존재한다.
    연어가 회귀하여 민물에 알을 낳으려는 이유중 현재 알려진 하나가 진화론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100프로 납득하지 못하겠기에 더욱 궁금했다.
    또한 연어가 그 멀고 먼 길을 제대로 찾아 태어난 곳을 찾아오는 방법.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인도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았있다.
    여러 실험을 통해 후각을 이용한다고 하기도 하고, 새의 귀소본능에 작용하는것처럼 태양이 나침반작용을 한다고 하기도 하고, 지구 자기장 이론을 내세우기도 한다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니....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연어에게 물어볼수도 없고 말이지.
    이 책을 읽는 그 누군가가 언젠가 그 수수께끼를 속시원히 풀어줄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작가와 동일하게 나도 가져본다.

    정말 수수께끼 같은 신비한 연어. 그의 밝혀진 삶의 과정을 보는것만으로도 일단은 유익했다.
    비단 연어뿐 아니라 내가 글 서두에 말했듯 지렁이든 무엇이든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생명 그 소소한 모든것에 관심과 귀를 기울일줄 아는 정말 인간다운 인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곳에는 놀라운 자연의 섭리. 우리가 배워야 할 많은것들이 감동과 함께 언제나 존재하는것 같다. 인간은 더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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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인 스토리
    lamyrrhe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브레인 스토리 (뇌는 어떻게 감정과 의식을 만들어 낼까? ) 저자 : 수전 그린필드 지음, 정병선 옮김 출판사 : 지호 이 책은 BBC 2의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뇌라는 것은 우리 몸의 일부를 부르는 말이지만, 우리가 뇌를 통해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 실체에 대해 별 물음없이 살아왔다. 머리칼과 피부 그리고 두개골에 쌓여서 우리에게 있는 우리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관이기 때문일까? 얼마전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가 이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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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브레인 스토리 (뇌는 어떻게 감정과 의식을 만들어 낼까? )
    저자 : 수전 그린필드 지음, 정병선 옮김
    출판사 : 지호

    이 책은 BBC 2의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뇌라는 것은 우리 몸의 일부를 부르는 말이지만, 우리가 뇌를 통해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 실체에 대해 별 물음없이 살아왔다.

    머리칼과 피부 그리고 두개골에 쌓여서 우리에게 있는 우리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기관이기 때문일까?

    얼마전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가 이 실체에 대한 이야기화로 우리에게 뇌를 초점에 두도록 만들었다면, 이 책 <브레인 스토리>는 좀더 과학적이다.

    나는 언어학을 배우면서 인간의 언어를 관장하는 뇌 부위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뇌라는 존재에 눈뜨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경우 치매 증상과 같이 뇌가 훼손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재능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과학자들은 뇌의 생리적, 화학적 작용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우리의 감정과 능력과 또 복잡한 사고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어려워한다.

    그런데 19세기 인기를 끌었던 골상학이라는 학설에서는,두개골에 있는 각각의 융기가 특정한 성격 요소를 대변한다고 보았다.

    이런식으로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 또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그 성격을
    명쾌하고 뚜렷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성격을 파악하려면 세심하게 측정된 두개골 융기 자료를 살펴보면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학설은 곧 배척받기 시작했는데, 이는 뇌에 질병이 있는 사람들의 증상 때문이었다.
    뇌의 서로 다른 부위가 손상된 환자를 통해서 소뇌와 대뇌가 저핵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뇌는 뉴런이라 부르는 신경세포 집단으로 구성된다. 이 신경세포는 서로 연결되어 복잡한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뇌에서는 세로토닌 이라는 물질의 전달로가 많고, 다양한 것을 볼 때 온갖 종류의 정신 작용에 세로토닌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면에서 고통과 수면이 중요한데, 약물로 인해 세로토닌이 고갈되면 고통을 더 심하게 느낀다. 또 세로토닌 수원이 손상되면 불면증에 시달리고, 동물의 뇌에 세로토닌을 주입하면 꿈을 꾸지 않는 느린 뇌파의 수면이 유도된다고 한다.
    세로토닌이라는 물질만이 특정 기능 하나에 대응될 수 없듯이,다른 신경 전달 물질도 어떤 정신작용이든 두 가지 이상의 신경전달물질로 관여한다고 한다.

    놀라웠던 것은, 신생아의 뇌는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와 어머니의 목소리에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찰스 넬슨이란 사람은 유아의 뇌 활동을 기록했는데, 기억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우리는 뇌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기억을 담는 창고? 요즘 드라마에서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는 장소? 아니면 쾌감?

    나는 꿈을 꾸게하는 역할로서의 뇌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꿈은 상상의 산물이지만, 깨어있을 때 보는 세계만큼이나 뇌에는 생생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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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의 생명수가 사라지지 않게 하라
    littlechr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저 자 : 전영우 출 판 사 : 현암사 우리나라의 생명수가 사라지지 않게 하라 얼마 전 방송을 듣다가 소나무에도 에이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나무 에이즈'란 과연 무엇인가. 그건 몸에 재선충을 지닌 '솔수염 하늘소'가 소나무 잎을 갉아먹을 때 그 충이 전파되어 소나무 숨통을 끊어 놓는 병이라고 한다. 그 왜래 병해충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88년도 부산이었고, 올해 부산에서는 6,000여 그루가 그 병 때문에 잘려 나갔다고 한다. 심각한 이야기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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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저 자 : 전영우
    출 판 사 : 현암사


    우리나라의 생명수가 사라지지 않게 하라

    얼마 전 방송을 듣다가 소나무에도 에이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나무 에이즈'란 과연 무엇인가. 그건 몸에 재선충을 지닌 '솔수염 하늘소'가 소나무 잎을 갉아먹을 때 그 충이 전파되어 소나무 숨통을 끊어 놓는 병이라고 한다.

    그 왜래 병해충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88년도 부산이었고, 올해 부산에서는 6,000여 그루가 그 병 때문에 잘려 나갔다고 한다. 심각한 이야기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걱정스런 이야기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20년 안에 모든 소나무가 말라죽을지도 모른다는 발표이다. 과연 이 땅에 있는 소나무들이 차츰차츰 사라지다가 아예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걱정들을 함께 생각해 보고, 또 함께 대비책을 마련해보자는 큰 뜻에서 전영우 교수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현암사·2004)란 책을 펴냈다.

    물론 이 책에는 그런 소나무에 관한 병해충만 다루고 있는 게 아니다. 소나무가 어떻게 우리 민족과 함께 숨쉬며 살아 왔는지 또 소나무가 우리 민족 속에서 어떤 위상을 떨쳤는지, 그리고 우리 소나무가 일본 등 외국에까지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소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정서적 근원을 현장 답사를 통해서 밝히고, 우리 문화의 다양한 영역 속에 자리 잡은 소나무의 위상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한편, 우리 곁을 점차 떠나고 있는 소나무를 지키고 가꾸고자 펼치는 여러 활동도 담고자 했다."(머리말)

    그럼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어떤 숨을 내쉬며 살아 왔을까,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얼마만큼 친숙한 존재일까. 그저 집을 짓는 데만 소나무가 사용되었을까, 아니면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관을 짤 때만 사용되었을까.

    엄밀하게 따져보면 우리 민족이 소나무와 맺은 인연은 참으로 질기지 않나 싶다.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다다르는 그 모든 과정 속에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는 까닭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다른 사람 출입을 금하려고 솔가지를 끼워 금줄을 쳤다. 또 나무를 해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필 때 사용한 땔감도 소나무를 베어다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옛 어르신들은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자랐고, 소나무로 만든 쟁기나 달구지를 썼고, 송편이나 송엽주 같은 먹거리들도 다 소나무에서 가져 온 것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 땅을 떠나는 날 육신이 들어가는 관도 소나무로 만든 송판이고, 그 관마저도 뒷산 솔밭에 묻히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 옛 어르신들이 살아 온 삶은 소나무와 함께 한 삶이라고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소나무 밭에 죽는, 완전히 소나무에 기대어 소나무와 함게 숨쉬며 살아왔다. 그런 뜻에서 본다면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 불러도, 소나무를 우리의 생명수라 불러도 가히 부족하지 않을 듯 싶다.

    "소나무는 백성의 생명수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솔잎을 가르는 장엄한 바람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면서 시기와 증오, 원한을 가라앉히려고 솔밭에 정좌하여 태교를 실천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철 변치 않는 푸름과 청정한 기상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받아 지조·절개와 같은 소나무의 덕목을 머릿속에 심어 주었다. 그러니 소나무는 왕실 뿐 아니라 한민족 모두의 생명수였던 셈이다."

    지조와 절개, 무병장수는 소나무가 가지고 있는 큰 덕목들이다. 보통 그것은 전통 한국화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그렇게 풀이되기도 한다. 그럼 지조와 절개를 뜻하는 소나무 그림이 무엇이 있을까. 그건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무병장수를 바라는 그림은 또 어디에 나타나 있을까. 그건 '십장생도'나 강희안이 그린 '송학도'에 드러나 있다. 그 그림들 모두가 한결같이 멋진 그림들이요, 그 속에 담겨 있는 소나무들이 마치 살아 있는 소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옛 선비들 가운데 소나무와 연관 있는 선비를 꼽는다면 누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소나무를 가꾸고 번창시키는데 지대한 공로가 인정된 선비를 추천한다면 과연 누구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건 정약전이다. 흔히 정약전에 대해서는 <자산어보>만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는 물고기만 몰두했던 게 아니라 산 속 소나무 연구에도 깊이 관여했던 선비이다.

    당시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된 정약전은 지금의 전라남도 신안군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생활을 한지 3년째인 1804년에 그는 '송정사의'라는 훌륭한 책을 지어내게 된다. '송정사의'란 어떻게 하면 소나무를 많이 심고 또 잘 가꿀 수 있겠는가를 생각한 책이다.
    그래서 정약전은 소나무 식목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개인이 갖고 있는 산뿐만 아니라 국가가 지정한 봉산까지도 개인이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했고, 나무가 없는 산은 산 주인에게 벌을 내려야 하고, 1,000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기둥이나 대들보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소나무를 기른 사람에게는 포상을 해 주고, 주인 없는 산을 찾아 한 마을에서 힘을 모아(송계松契) 1년이나 2년 동안 소나무를 길러 울창한 숲을 만들었다면 그 나무 크기에 따라 그 마을 세금을 1년이나 2년 간 면제해 주는 방안도 제안했다고 한다.

    "정약전은 소나무 숲을 지키려면 지방관의 권한을 축소하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 소유와 개인 소유를 가릴 것 없이 바닷가로부터 30리 이내의 산에 대하여 소나무 벌목을 금한 국법도 자라는 소나무가 있을 경우에나 유용하지 않는 나무가 없을 경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아무 쓸모 없는 연해 금산의 실상을 자세하게 전한다."(82쪽)

    이는 오늘날로 하면 중앙정부 산림청에서 모든 지방 곳곳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들을 책임지고 돌볼 것을 주장한 셈이다. 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게 됐을까. 그마만큼 소나무가 중요했고, 또 그마만큼 소나무를 관심 갖고 돌보지 않으면 모두가 베어나가거나 죽거나 또 없어질 것을 내다 봤던 까닭이 아니겠는가. 그런 모습들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소나무들이 사라지고 있고, 또 많은 소나무들이 병해충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남모르게 베어가거나 산불을 내면 그저 벌금이나 구금 정도로 묶어 둘 뿐,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키고 돌보는 게 더 적기 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그래도 옛날 농촌생활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산 속에 들어가 소나무 마른 이파리와 가지들 그리고 솔방울을 주워서 땔감으로 썼다. 그리고 그것들을 긁고 모을 때 활엽수들도 많이 베어서 같은 땔감으로 썼다.

    하지만 농촌 인구가 줄어들었고, 또 농촌에서도 지금은 연탄이나 기름 보일러를 때는 집들이 대부분인 까닭에 농촌 사람들 가운데 산에 올라가거나 소나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럴 경우 소나무 자리를 꽤 차고 들어가는 것은 활엽수들이고, 거기에 소나무 재선충이나 솔입혹파리, 그리고 솔껍질깍지벌레 같은 외래 병해충이 넘쳐나니 가히 소나무가 자리할 틈새는 점점 비좁기만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정약전이 주장했듯이, 중앙 정부 산림청이 이 모든 것들에 책임을 지고 확고한 대비책을 적극적으로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하는 애국가 가사에도 담겨 있는 우리나라의 생명수, 소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지금까지 약제에 의 한 치유나 천적으로 방제할 수 있었던 다른 병해충과 달리 천적이나 치료약이 없다. '소나무의 에이즈'라고도 불리는 이유도 발병 후 1년 안에 모두 죽기 때문이다. 병충해 전문가들은 '소나무재선충병을 지금 잡지 못하면 20년 이내에 국내의 모든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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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적 충만감이 끔찍하게 차오른다
    karma2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스티프(Stiff) 저자 : 메리 로취 출판사 : 파라북스 지적 충만감이 끔찍하게 차오른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데, 심하게 곤혹스러웠다. 제목대로 사후 경직된 시체가 주인공인지라 겉 표지에 있는 시신의 하얀 발부터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시신이 가지는 문화적 상징을 떠나 세밀한 묘사와 ‘적절한’ 비유가 가득하여 원치 않는 상상의 날개를 절로 달게 된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질병, 사고, 불행, 혐오의 상징인 시체를 담은 이 책을 굳이 읽은 이유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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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스티프(Stiff)
    저자 : 메리 로취
    출판사 : 파라북스


    지적 충만감이 끔찍하게 차오른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데, 심하게 곤혹스러웠다. 제목대로 사후 경직된 시체가 주인공인지라 겉 표지에 있는 시신의 하얀 발부터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시신이 가지는 문화적 상징을 떠나 세밀한 묘사와 ‘적절한’ 비유가 가득하여 원치 않는 상상의 날개를 절로 달게 된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질병, 사고, 불행, 혐오의 상징인 시체를 담은 이 책을 굳이 읽은 이유는 지적 충만감이 주는 황홀함을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가 종교적인 관심사였다면, 사후 처리되어야 할 육신은 사회적 관심사이다. 수없이 많은 탄생 뒤에 찾아오는 죽음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될 만큼의 시사성을 가진다. 뉴스기사로도 가끔 등장하는 묘지가 매년 여의도 면적의 몇 배 만큼 증가 한다는 둥, 화장터, 납골당 유치 문제로 지역주민과 마찰이 있다는 둥. 인간은 죽어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한국의 상황과는 연관성이 없는 듯 하면서도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게 이 책은 시신의 유용성과 다양한 사후 처리를 말한다. 해부 실습용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거치지 않는 망자들의 다양한 행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 소개된 예를 언급하자면, 충돌 실험용, 해부 실습용, 탄도 실험용, 종교성을 띤 십자가 실험, 기요틴으로 참수 된 시체를 이용한 머리 이식, 의료용 식인행위, 퇴비 등의 예는 죽음 뒤의 세상을 실험실로 연상케 한다. 자르고, 베어내고, 찢고, 드러내고, 안구에 강한 충격을 주고, 총을 쏘고, 장기를 적출하고, 피를 뽑고, 펌프로 대동맥에 방부액을 밀어 넣고, 심지어 간다. 이쯤 되면 좀비, 슬래시, 스플래터, 하드고어 영화가 떠오른다. 비슷하긴 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에 나오는 시체는 얌전하고 사전에 동의를 했다는 점(유족 또는 본인)이다.

    기증이라는 절차를 거쳤으므로 잔인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끔찍함은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자연적인 분해과정(범죄 수사를 위한 사체 연구소의 실험), 방부 처리하여 장례를 치르는 과정 또한 HDTV급의 선명한 묘사를 하며, 미적차이는 별로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레닌처럼 깔끔한 박제(미적으로 뛰어난)가 되려면 어느 공장의 생산라인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 아닌가.

    일단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다르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얇게 저민 살(삼겹살이라 명명된), 벗겨낸 피부(돼지 껍질), 머리와 발(머리고기와 닭발, 족발), 살아있는 채로 살을 발라내고(회), 배를 가르고, 뼈를 몇 시간동안 삶는다. 고추장도 모자라 온갖 자극성 있는 물질로 잘 버무려지는 대상들 또한 살아있었던 생명체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인식, 감성적 반응을 무뎌지게 하는 작업이 꼭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에 대한 위대한 휴머니즘, 존중을 유지한 채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의사, 연구원, 장례업자 등)은 이러한 과정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결코 즐겁지 않은 일들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익숙함과 식상함이란 신이 준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저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섬세하게 적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녀의 눈과 귀는 인식의 전환을 이끄는 엔진이 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기능의 중추를 인터뷰가 담당하고 있는데, 꺼림직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큐멘터리만큼의 사실성과 현장감을 전해준다.
    ‘의학도들은 해부학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대면 하기도 한다. 또한 존중과 동정이 아닌 스스로를 무뎌지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의식적 동일성 상실은 인간이 자연과의 격리에서 오는 고립에 근거한다. 유일하게 그 끈을 이어주는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저승행 열차를 타는 순간인데, 인간이 가장 당황스러워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인간다움’을 가장 훼손당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불경에 ‘염처경’을 보면 시체를 곁에 두고 가르침을 받는 부분이 나온다. 시체는 썩어가고 승려는 어느 순간 한줄기의 미소를 짓는다는데, 육체의 덧없음을 깨닫는 수행이라고 한다.

    덧없는 육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자는 식의 뉘앙스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죽은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시체의 유일한 재능은 고통을 받아넘기는 재주 아니던가. 그러한 재주 때문에 당신의 안전(안전 벨트, 에어백의 안전성은 그들이 검증했다), 당신의 생명(장기 이식 또한 그들이 주는 새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이 책의 주목적이다. 이것을 안다면 감동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하게 된다.

    의학, 범죄, 과학, 역사 등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통찰을 보여주면서도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위험스럽고, 혼란스럽다. 뇌사자가 죽음에 가까운가, 생에 가까운가를 따지는 일 만큼이나…
    ‘삶과 죽음 사이에는 가사상태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죠.’

    말없는 시신이 유일하게 말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죽음을 밝히는 과정은 부담스럽지만, 생의 조건(유감스럽게도 죽이는 조건도 부수적으로 밝히는)을 밝히는 빛이다. 불교의 덧없음과 살포시 맞닿아 있기에 절묘한 양립이 경이적인 이 책은 겉 표지와는 다르게 경쾌하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죽음에 대한 정의는 물론이고 이성적, 감정적으로 바라본 장기기증에 대한 이율배반적 인식이 조금은 달라질 듯 싶다. 끔찍하게 재미있으니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다 읽고 나서 가장 놀라는 일은 처음과 다르게 사람을 꿀에 절여서 약재로 쓰는 밀화인(본초강목 기록된)이나 약재로 미이라나 사람을 먹는 행위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마냥 신기해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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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확정성 원리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jjolpcc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저자 : 츠즈키 타쿠지 지음/ 김하경 옮김 출판사 : 도서출판 홍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것이 있다. 19세기 이전 양자역학이란 것이 생겨나기 전 뉴턴역학이 물리학을 지배하던 시절에 프랑스의 물리학자였던 라플라스는 우주의 법칙은 인과율(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존재하며 이로써 원인을 알면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만약 어떠한 현상의 모든 조건을 알고 있으면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라플라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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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저자 : 츠즈키 타쿠지 지음/ 김하경 옮김
    출판사 : 도서출판 홍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것이 있다. 19세기 이전 양자역학이란 것이 생겨나기 전 뉴턴역학이 물리학을 지배하던 시절에 프랑스의 물리학자였던 라플라스는 우주의 법칙은 인과율(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존재하며 이로써 원인을 알면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만약 어떠한 현상의 모든 조건을 알고 있으면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걸 만들어냈다. 즉 현재 상황에서의 물리학적인 모든 조건(시간과 공간 그리고 다양한 역학적 조건들)을 알고 있다면 정확히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리학적으로 미래를 정확히 내다보는 존재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하는데 고전적인 뉴턴 역학 신봉자들은 물리학의 발전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라플라스의 악마가 현실에 존재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라플라스 자신은 죽을 때까지 완벽한 역학적 예측이 가능한 악마의 존재를 믿었을 것이다.

    19세기말 유럽의 강대국은 그들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의 기반으로 철강산업을 육성했다. 국가적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중공업 육성은 당연한 것인데 이러한 국가적분위기 때문에 물리학에서는 열역학부분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강철을 가열할 때 온도가 높아지는 강철이 처음엔 붉은 색을 띠다가 더 높은 온도에서는 노란색을 그리고 온도을 더욱 높이면 마지막에는 백색으로 변하는 색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이를 연구하게 된다. 결국 흑체복사(일반적으로 검은색은 모든 빛을 흡수만 하고 반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흑체를 가열하면 흑체를 이루는 물질의 분자나 원자가 진동하게 되는데 이 분자나 혹은 원자를 진동자라고 생각하고 이 진동자의 운동을 진동자의 진동수로 표현한 것이 플랑크의 식이다)현상을 연구하던 독일의 플랑크에 의해 흑체에서의 온도변화는 진동자의 진동수의 정수배의 에너지를 진동자가 가진다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E = hf (E: 진동자의 에너지, h: 플랑크상수, f: 진동수)라는 공식을 발표하여 진동자의 에너지는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이며 양자화 되어 있다는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플랑크의 이 이론이 아인슈타인의 광자효과를 설명하는데 있어 정확하게 일치하고 이를 계기로 물리학은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에너지의 양자화 그리고 빛의 양자화는 기존 뉴턴 물리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대 혁명이었다. 양자화란 쉽게 사과를 세는 데 하나, 둘, 셋으로 밖에 셀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사과 1/2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사과를 낱개로 한 개, 한 개 세는 방법이 양자이론 즉 에너지의 불연속적인 개념이라면 사과를 쥬스로 만들어 적당량을 부어 양을 측정하는 방법이 에너지를 연속의 개념으로 보는 뉴턴식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여하튼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이라는 걸출한 물리학자들에 의해 정립된 양자역학은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슈뢰딩거로 이어지는 코펜하겐 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20세기초 물리학은 원자의 구조에 대한 연구로 들썩이고 있었다. 보어는 원자핵 주변에 전자의 위치를 양자역학적 틀(결국 전자궤도의 양자화 개념)로 해석하여 수소원자의 전자배치를 완벽하게 설명하였고 이 후 하이젠베르크는 입자 운동을 완벽히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유명한 불확정성의 원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고전역학의 개념에서는 어떤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다면(운동량이란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운동량을 안다는 것은 질량과 속도를 안다는 뜻이다) 그 물체의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자화된 에너지를 가지는 소립자들의 운동에서 위에서 주장하는 연속적인 에너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 즉 어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자의 운동을 추적할 때 사용하는 기기등에 의해 입자의 운동은 교란을 받게되고 이는 궁극적으로 미시세계에서 미립자들의 운동은 확률적인 방법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존재를 부정하게 된다. 미시세계의 입자운동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지배받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며 이는 고전적인 역학개념인 라플라스의 악마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에서 물리학이 탐구하는 활동은 우주의 본질을 밝혀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물리학을 단순히 역학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물리학은 우주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여기서 이야기하는 양자역학적인 연구결과는 실제로 실생활에 많이 접목되고 있다. 영화필름에서 소리를 재생하는 과정이나 혹은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원리등은 양자역학에서 이해되는 빛의 양자화개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쉬운 예일 것이다. 또한 플랑크 상수가 매우 크다고 가정한다면 거시세계에서 무시되는 에너지의 양자화가 현실에서 가능해지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운동계가 측정불가능이 되어버려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는 등의 운동이 가능해 질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물리적 개념들을 현실에 적용해 보면 짜릿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츠즈키 다쿠지가 지은 이 책에서는 이러한 양자역학을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을 양자화된 입자로 설명하는 부분이나 플랑크 상수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전쟁시나리오등은 그런대로 참신했다. 하지만 일본책을 번역하여 껄끄러운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또한 이 책을 이해하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물리적인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물리학에 무지한 사람들에겐 쉬운 책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실제로 양자역학의 기본개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입자의 파동성 이라든가 빛의 이중성 그리고 파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소립자의 물리학적 개념 그리고 고전역학의 개략적인 이해가 없는 한 이 책을 읽고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요즘 과학서적이 많이 출판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좀 더 현실감 있고 쉬운 과학서적이 아쉬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참고
    책에서 운동량을 기술하는 부분에서 운동량을 무게와 속도의 곱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입니다. 108페이지에서는 두 번이나 실수를 했더군요.
    그리고 128페이지에서 플랑크 상수의 단위를 에르그 초라는 단위를 사용했는데 될 수 있으면 표준단위계인 줄초(Js)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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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디를 지망하는 자여 이 책을 보라
    drumset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피디가 말하는 피디 저자 : 장기오 외 출판사 : 부키 지금으로부터 1년전. 뒤늦은 나이에 제대하고 한참 이제 뭐 하고 살까 하고 후보 직업군을 선정해놓고 순위놀이를 하던 때였다. 난 글쓰기를 좋아해. 그럼 기자를 할까? 흠... 음악도 좋아하는데? 음악이랑 글이랑 짬뽕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아하 피디. 라디오 피디. 정말이지 라디오 피디는 매력적이었다. 평소 라디오를 잘 듣진 않는 나지만-요즘은 아예 안듣는다- 라디오 피디는 음악과 글을 좋아하는 나에겐 매력적인 직업후보였다. 그러나 반면 티비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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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피디가 말하는 피디
    저자 : 장기오 외
    출판사 : 부키

    지금으로부터 1년전. 뒤늦은 나이에 제대하고 한참 이제 뭐 하고 살까 하고 후보 직업군을 선정해놓고 순위놀이를 하던 때였다. 난 글쓰기를 좋아해. 그럼 기자를 할까? 흠... 음악도 좋아하는데? 음악이랑 글이랑 짬뽕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아하 피디. 라디오 피디. 정말이지 라디오 피디는 매력적이었다. 평소 라디오를 잘 듣진 않는 나지만-요즘은 아예 안듣는다- 라디오 피디는 음악과 글을 좋아하는 나에겐 매력적인 직업후보였다. 그러나 반면 티비 피디는 싫다. 티비 피디는 오락프로그램도 있고, 교양프로그램, 드라마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교양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내겐 매력적이지 않았다. 내겐 '끼'는 없으니까.

    그렇게. 난 소위 언론고시라고 불리우는 사실상 국가고시는 아닌 그 치열한 경쟁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에니아그램 5번인 나는 사전에 치밀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방대한 량의 정보를 축적해놓고 이 직업에 대한 조사가 어느 정도 끝났다. 음. 생각보다 힘들겠군. 상식시험, 국어시험, 영어 토익점수, 면접, 최종면접 등등 관문이 꽤 많았다. 하긴 어느 직업을 하건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다 거친다. 그리고 영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가 공부하기 좋아할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라디오피디는 한해에 5명정도 뽑는다는 것. 대개는 설대, 연대, 고대 출신들이 가져간다 한다. 뭐 그들이 실력이 있어서 가져간다면 할 말 없다만. 연줄이 좀 작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 괜히 덤벼들었다가 안되면 어카지? 라는 시작하기도 전에 쫄아버리는 소심함으로 결국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다. 다른 쪽은 기자, 교사, 학자 등...

    이 책은 이 때 한창 조사작업을 할 때 찾아봤던 책이다. 2003년 12월 말에 나왔는데 당시 이 책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서울 시내 대형서점에 가보면 이 책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었다. 그만큼 피디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이다. 더불어 함께 나온 자매품 <기자가 말하는 기자>도 그만한 인기를 누렸다.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피디들이 직접 쓴 피디에 대한 직업소개, 경험담, 피디가 되기 위한 준비는 어찌해야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하고 그것들을 묶어서 책으로 만든 것이다. 필자들은 다양하다. 예능국 피디도 있고, 시사교양국 피디, 프리랜서, 라디오부장, 만화/영화, 외화, 콘텐츠 등 이들의 이력에서부터 피디도 참 가지가지가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준다.

    피디들은 정신은 자유롭다. 이들은 어디에 구속되거나 정형화된 틀에 맞춰살기 보다는 자유롭게 산다. 그래야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구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자유로움이 좋았다. 안정된 수입과 자유로운 활동은 피디의 매력이다. 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작업, 밖으로 나돌아야하는 드라마 피디, 다큐멘터리 피디 같은 경우는 그것이 피디라는 직업의 단점으로 지적된다. 일과가 정해져있지 않고 들쑥날쑥하니 건강도 나빠질 수 있고, 사람들과 항상 부대껴야하니 술과 함께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하는 강박관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술과 담배가 늘고 자연 건강악화로 이어진다. 이런게 피디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각자 경험담에 나와서 솔직하다. 피디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피디의 환상에 갇혀있기 쉽다. 이 책을 읽으면 오히려 피디가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의욕상실케하는 책이다. 하지만 어떤면에서는 도전의식을 갖게 만들 수도 있다. 이만큼 힘들고 어려우니 도전할만하다는 생각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책을 낸 출판사 부키의 기획력을 칭송할만하다. 여러 직업에서 현지에 머무는 사람들의 체험담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 직업을 미리 소개하고 간접체험하게 만드는 것이 책의 의도이고 목적이다. 그리고 그 기획은 성공했다. <피디가 말하는 피디> 뿐 아니라 <기자가 말하는 기자> 도 인기를 누렸으니 말이다. 이후로 또 어떤 직업에 대한 책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 하지만 인기있는 직업에 대해 '직업탐구리포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피디를 지망하는 이들이 한번쯤 읽어봐야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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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미는 왜 힘이 셀까?
    drumset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개미는 왜 힘이 셀까? 저자 : 하늘기획 출판사 : 달리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샀던 책인데 그땐 참 책에 대한 관심은 있으면서도 내가 뭘 읽어야할지 몰랐었다. 아마도 이 책은 당시에 여름방학에 국어선생님들이 나눠준 추천 도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지금은 절판됐다. 책장 구석에 처박혀있길래 오랫만에 다시 읽어봤다. 라는 책은 순전히 개미가 왜 힘이 센지에 대해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개미는 왜 힘이 셀까'라는 제목은 이 책에 담긴 여러 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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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개미는 왜 힘이 셀까?
    저자 : 하늘기획
    출판사 : 달리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샀던 책인데 그땐 참 책에 대한 관심은 있으면서도 내가 뭘 읽어야할지 몰랐었다. 아마도 이 책은 당시에 여름방학에 국어선생님들이 나눠준 추천 도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지금은 절판됐다. 책장 구석에 처박혀있길래 오랫만에 다시 읽어봤다.

    <개미는 왜 힘이 셀까>라는 책은 순전히 개미가 왜 힘이 센지에 대해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개미는 왜 힘이 셀까'라는 제목은 이 책에 담긴 여러 글중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순전히 개미가 왜 힘이 센지가 알고 싶은 사람들은 굳이 이 책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

    개미는 왜 힘이 센가? 대답은 개미는 실제 힘이 세진 않다. 개별 개미들은 힘이 세지 않지만 다수의 개미가 모여 힘이 센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개미들은 팀을 짜서 물체를 균형있게 잡고 서로의 다리가 엉키지 않게 질서정연하게 이동한다. 즉 물체를 이동하는 개미들은 이들이 모여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 개미는 힘이 세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벌레들의 생활' '우리 주변의 신비' '미크로의 세계와 마이크로의 세계' '우주여행' '사람의 몸' '사랑과 성' '시간' '이상한 동물들'이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단위에 한페이지 내지 두페이지 정도 분량의 간략한 글들이 딸려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궁금증에 대해 풀이해준다.

    이 책의 역자들은 첫페이지에서 자신들을 일컫길 '두고두고 서가에서 손길을 받는 책을 사랑하는 전문번역집단'이라 소개하고 있지만 이 책이 이미 절판된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들의 소망은 단지 소망으로 끝났다고 봐야겠다. 사실 이 책은 그저 손쉽게 읽을거리에 불과했지 책이라 하기엔 뭣한 그다지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책이다. 오늘날 이 책의 물음들은 인터넷이 대신해주고 있다. 네이버, 엠파스 지식검색을 이용한다면 이 책에 있는 우리의 궁금증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절판된 것일까? 굳이 돈 주고 그 정보를 얻을 필요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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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인들의 명언을 한데 모아모아서
    drumset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뉴에이스 문장사전 저자 : 이어령 출판사 : 금성출판사 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어령씨가 엮어냈다. 특별히 이어령을 좋아해서 이 사전을 구입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어령이라는 사람의 학문적 내공은 일단 인정하면서도 그가 주장하는 바의 것들에 대해서는 난 아직 그다지 접한 바가 없으며, 따라서 내가 그를 평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어령에 대해서는 난 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장사전은 굳이 이어령이었기 때문에 구입한 것은 아니며, 사전의 기획의도가 내가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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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뉴에이스 문장사전
    저자 : 이어령
    출판사 : 금성출판사


    <뉴에이스 문장사전>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어령씨가 엮어냈다. 특별히 이어령을 좋아해서 이 사전을 구입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이어령이라는 사람의 학문적 내공은 일단 인정하면서도 그가 주장하는 바의 것들에 대해서는 난 아직 그다지 접한 바가 없으며, 따라서 내가 그를 평하기에는 나의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어령에 대해서는 난 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문장사전은 굳이 이어령이었기 때문에 구입한 것은 아니며, 사전의 기획의도가 내가 바라던 그것과 부합했기 때문이다. <뉴에이스 문장사전>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국어사전이나 기타 다른 류의 사전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오히려 이 사전은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뉴에이스 문장사전>은 국어사전식 단어나열법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선 판이하게 다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본다면, 1.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 2. 남녀가 서로 애틋이 그리는 일. 또, 그 애인. 연애. 3. 동정하여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마음. 4. 육정적, 감각적이 아닌 동정, 긍휼, 구원, 행복의 실현을 지향하는 정념. 이라고 되어있으나, <뉴에이스 문장사전>의 한 구절을 발췌하자면 이렇다.

    사랑은 교전의 일종이다. <오비디우스>
    사랑을 하는 것은 즐겁지만 사랑을 받는 것은 즐겁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논리학>
    사랑에는 연령이 없다. 그것은 어느 때든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파스칼>

    이런 식의 인용구들이 모인 장이 '사랑'에 관해서만 장장 9쪽에 걸쳐있다. 물론 사랑에 관해 언급한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다른 단어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하기도 덜 하기도 하다.

    어쨌든 단지 유명인들의 문장을 끌어다가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특정 주제에 대해서 그들의 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전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3만 9천원이라는 꽤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구입할 의지를 가졌던 것이다.

    정작 사전을 활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사전 역시 기존에 내가 소개한 다른 류의 사전들과 마찬가지로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가슴 뿌듯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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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랫말이 먼저, 멜로디는 나중’이라는 가치판단이 부활하도록
    littlechr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 저 자 : 김수경 출 판 사 : 책세상 ‘노랫말이 먼저, 멜로디는 나중’이라는 가치판단이 부활하도록 요즘 십대와 이십대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면 뭘까. 아마 랩이나 락이 아닐까. 힘찬 비트에다 세상을 마음껏 뒤흔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흥겨운 음악. 뭐라고 입술에서 토해내는데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운 노랫말들. 그네들에게 느린 것이란 좀체 재미도 없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다. 한 눈으로는 책을 들여다보고 또 한 눈으로는 게임을 하고, 그리고 한 손에는 콜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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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
    저 자 : 김수경
    출 판 사 : 책세상


    ‘노랫말이 먼저, 멜로디는 나중’이라는 가치판단이 부활하도록

    요즘 십대와 이십대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면 뭘까. 아마 랩이나 락이 아닐까. 힘찬 비트에다 세상을 마음껏 뒤흔들었다 놓았다 할 정도로 흥겨운 음악. 뭐라고 입술에서 토해내는데 도무지 알아듣기 어려운 노랫말들.

    그네들에게 느린 것이란 좀체 재미도 없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다. 한 눈으로는 책을 들여다보고 또 한 눈으로는 게임을 하고, 그리고 한 손에는 콜라병을 들고 또 어느새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이야기하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몸짓처럼 아마도 랩이나 락이 그들에겐 제격인 듯싶다.

    그럼 삼십대와 사십대는 무슨 노래를 좋아할까. 십대와 이십대들처럼 랩을 좋아할까. 아니면 뽕짝을 좋아할까. 물론 그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래를 따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것 같다. 삼십대와 사십대가 호흡하는 것으로는 십대와 이십대를 따라 잡을 수는 없다. 또 오십대와 육십대가 하는 호흡에 맞추는 것도 쉽지 않는 일이다.

    너무 강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느려터지지도 않는 빠르기. 또 부담 없이 들을 수 있고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노래. 상투적인 노랫말 같지만 거기에서 옛 추억이 묻어나고 또 옛 사랑과 헤어짐이 담겨 있는 노래. 그게 발라드이다.

    그 발라드 노래들을 시대별로 하나하나 이어가며 그 노랫말이 주는 뜻과 느낌들을 새롭게 정리한 책이 나왔다. 이른바 김수경이 쓴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책세상·2005)가 그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 발라드가 그렇게 부각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발라드가 남긴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나는 그 해답의 단서가 노랫말의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17쪽)

    그렇다면 발라드는 다른 노래들과 달리 어떤 노랫말을 지니고 있을까. 랩이나 락처럼 조금은 반항적이고 조금은 거칠고 또 많은 외국말 가사가 되풀이되고 있을까. 아니면 뽕짝처럼 흘러간 옛 사연들만 가득 차 있을까.

    물론 랩이나 락이라고 해서, 또한 뽕짝이라고 해서 그렇게 한쪽으로만 몰고 갈 수는 없다. 시대가 변했고, 그렇게 한쪽 방향만 고집하는 노랫말들이 이제는 여기저기 다채롭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발라드에는 어떤 노랫말들이 사용돼 왔을까. 그에 대해 김수경은 1980년대 초와 중반, 그리고 1990년대로 이어가면서, 비록 똑같은 그 노랫말인 것 같지만 그것이 어떻게 다른 옷을 입고서 나타났는지 밝혀주고 있다.

    이를테면 박인희가 부른 <모닥불>이라든지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 조용필이 부른〈단발머리〉, 소방차가 부른 〈그녀에게 전해주고〉, 그리고 최진희가 부른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라는 노래. 그게 1980년대 초반에 유행한 발라드인데, 그 노랫말들은 대부분 박건호씨가 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에는 양인자씨가 많은 노랫말들을 써서 새로운 노래들을 유행시키게 된다. 이를테면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라든지,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 김국환이 부른 〈타타타〉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수 없이 많은 노랫말을 써서 그 발라드 풍 노래들을 유행시켰던 박건호씨와 양인자씨가 쓴 노랫말에는 어떤 게 묻어나고 있는가.

    그건 그저 뜬구름 잡듯 허공에 대고 메아리치는 노랫말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애매모호한 비유적인 표현들을 갖다 붙이기보다는 듣는 즉시 이해하고 또 함께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설명이 필요없는 노랫말을 반복해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네

    -조용필 <단발머리>(박건호 작사·조용필 작곡)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나를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을 믿나요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이선희 〈알고 싶어요〉(양인자 작사·김희갑 작곡)

    그러나 김수경이 당시 박건호씨와 양인자씨에게서 찾고자 했던 점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다. 그들 두 사람이 수 없이 많은 노랫말을 썼고, 정말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노랫말을 썼다는 공로뿐만 아니라,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노랫말이 먼저, 멜로디는 나중’이라는 가치판단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건 요즘 들어 불고 있는 풍토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요즘에는 멜로디가 우선이고 노랫말은 나중이다. 세상에 뜰 수 있는 곡을 미리 짜 놓고서 그 뒤에 노랫말을 따라 붙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옛날, 노랫말에 따라 영감을 얻어 곡을 창작하던 그때보다는 훨씬 더 뒤떨어진 영감과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그 시대에 좋은 노랫말을 써서, 거기에 따라 영감을 얻어 작곡하도록 그 토대를 만들었던 박건호씨와 양인자씨는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랫말들이 1990년대로 흘러가도 좀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과 헤어짐과 아픔과 슬픔이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상투성’이란 게 그것이다.

    대중가요가 다들 그렇듯, 시대를 달리 해도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아픔 등 비슷비슷한 노랫말들이 수 없이 들어 있다. 더욱이 새로운 곡들이 쏟아져 나와도 다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상투적이고 뻔한 말들을 빼면 정작 알맹이가 들어 있는 노랫말을 찾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상투적인 표현은 다 쓸모없고 진부한 것인가? 김수경은 그에 대한 해답을 이 책 후반부에 밝혀주고 있다. 사실, ‘가지 마라’, ‘그리움이 사무친다’, ‘나 정말 당신을 사랑해’, ‘그대 없는 세상’, ‘당신은 너무합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으며’ 등 상투적인 말들이 그 당시에도 많이 쓰였고 시대를 달리해도 똑같이 사용됐다. 그런데도 그 당시 신선할 것 같지 않은 노래들이 어떻게 히트곡이 될 수 있었는가.

    그에 대해 김수경은 그 노래들이 정말로 ‘획기적’인 노랫말을 담고 있었고, 사랑과 이별과 슬픔을 담아내는 노래 속에 ‘구체적인 공간’까지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를테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하는 노랫말들. 그리고〈광화문 연가〉 〈남남〉 〈사랑하기에〉 〈잃어버린 우산〉 등에 담긴 구체적인 상황과 그 공간 표현.

    “위에서 예로 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르고 있는 노래들이다. 이별했으나(혹은 이별을 앞두고 있으나) 아직 그녀를 사랑한다든가 잊을 수 없다는 점은 기존의 사랑․이별 노래와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함께 있는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남남이 되고 말 것이라는 깨달음(〈남남〉),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왜 떠나가야 하는지, 그런 말은 믿을 수가 없다는 항변(〈사랑하기에〉) … 그러나 이 같은 새로움을 빛나게 하고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은 오랜 시간 쌓여 온 상투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88쪽)

    90년대가 지나고, 새로운 천년이 되었어도, 아니 “천년이 두 번 지나도” 여전히 발라드계에는 사랑과 헤어짐과 슬픔을 담는 상투적인 노랫말들이 되풀이될 것이다. 그건 다른 노래와 마찬가지로 발라드가 대중성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대중성을 지향하는 노래라면 거기에는 보통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랫말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야만이 대중들이 요구하는 욕구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듯 고리타분한 듯, 늘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상투적인 노랫말이 앞으로도 똑같이 사용될 것인데, 그렇다면 그 속에서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겠는가? 그건 상투적인 노랫말이 좀더 색다른 뜻과 구체적인 현장감을 담아내도록, 노랫말을 짓는 사람들이 그 디딤돌 역할을 충실히 해 주는 데 달려 있지 않겠나 싶다.

    그래서 그 옛날 박건호씨와 양인자씨 같이 ‘노랫말이 먼저, 멜로디는 나중’이라는 가치판단이 현 발라드 계에도 다시금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만큼 부르기 좋고 이해하기 쉽고, 그야 말로 대중성을 받는 노랫말을 지어내기란 쉽지 않는 일일 텐데, 다시금 그런 작사가들이 일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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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증의 존재 아버지여!
    zayuin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자 : 김성묵 출판사 : 두란노 아버지! 듣기만 하여도 가슴 벅찬 단어다. 아마도 그 가슴 방망이질은 아버지께 느끼는 나의 감정이자, 내 아들과 딸들이 내게 느껴주기를 바라는 감정이리라. "사랑합니다.아버지" 1. 감동 혹시 운전 중 라디오를 듣다가 솟구치는 눈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지금까지 여러번 갓길에 차를 세웠던 적이 있다. 도저히 운전을 계속할 수 없어서... 나를 운전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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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아버지 사랑합니다
    저자 : 김성묵
    출판사 : 두란노


    아버지! 듣기만 하여도 가슴 벅찬 단어다. 아마도 그 가슴 방망이질은 아버지께 느끼는 나의 감정이자, 내 아들과 딸들이 내게 느껴주기를 바라는 감정이리라.

    "사랑합니다.아버지"

    1. 감동
    혹시 운전 중 라디오를 듣다가 솟구치는 눈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지금까지 여러번 갓길에 차를 세웠던 적이 있다. 도저히 운전을 계속할 수 없어서... 나를 운전하기 힘들게 만들었던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것들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사연들이 왜 내 가슴을 그토록 비집고 들었을까?
    수년 전부터 부쩍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각종 대중매체들을 통해 공개되는 <체험수기>들이 인기있는 이유는 듣고 보는 이로 하여금 '어, 저건 바로 내 이야긴데?'하는 공감을 이끌어 내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도 무감각하게 굳어버린 습관 속의 나를 다시 끄집어 내게 하는 과정에서 묻혀있었던 자신과 <재회>하거나, 또 다른 나에 대한 <투사>들이 주는 재미와 감동들이 쏠쏠하기 때문이리라.

    <아버지, 사랑합니다>의 내용 중 몇 개의 이야기들이 나를 또 울렸다. 차를 세워야 할 일은 없었지만 양쪽 집게손가락들은 수 차례 눈꼬리를 훑었다.
    구구절절이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애잔한 이야기들은 아버지에 대한 아픈 추억과 끔찍했던 기억들을 토해 낸다. 그것들은 언제나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증오를 동시에 담고 있지만 항상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아버지를 찾아 헤메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사랑하기에 증오한다"는 말이나 "증오하기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은 한낱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던 내 생각이 바뀌었음을 깨닫고 있다. 책에 쓰여진 남의 이야기들이 단순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겪고 있는 내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가보다.
    가슴 아리는 사연들의 감동은 늘 나를 반성시킨다. 뒤를 돌아볼 여유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 감사...

    2. 아쉬움
    책은 <사랑으로 하나되는 가정>의 완성을 위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생활체험수기이자, 중수필이고, 한 편의 인생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가장 정확한 정의는 <신앙간증서>이다.
    교회에서 장로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자기반성적 생활체험이다 보니, 당연히 삶의 종교적인 해석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사물과 사건에 대한 해석의 바탕을 기독교와 성경 그리고 교회생활(봉사활동)에 두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로 인하여 기독교인이 아닌 독자들에게서 보여질 수 있는 약간의 거부반응은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책이 특정 대상(물론 기독교인들이다)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일반독자들의 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같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내용들을 나열하고 관계되는 종교적 특성들은 별도로 해석(주석)처리한다든가 하는 방식들을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담고 있는 내용들이 감동 그 자체라 할지라도, 표면상의 형태에 따라 <종교 지침서>나 <전도 계몽서>로 인식되어 세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중심적 사고를 뛰어 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아버지>는 두 가지 측면으로 등장한다. 천지창조의 주체이고 인간 삶의 절대 주관자로서의 아버지, 그 아버지로부터 가정을 사수할 사명을 부여받은 인간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아버지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는 단지 아버지의 갈비뼈 한 쪽에 불과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사랑으로 하나되는 부부>의 한 쪽 <귀퉁이>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 이유로 제목이 <아버지 사랑합니다>일까? 항상 수동적으로 끌림(결정) 당하는 피동적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옥의 티라고나 할까...

    3. <두란노 아버지 학교>에 바란다
    글의 여러 군데에서, 심지어는 뒷표지에 실린 학교의 슬로건에도 "아버지의 <권위>"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예의 "<권위>를 추구하고, <권위>를 회복시키고, <권위>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울을 수복했듯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지 궁금해 진다. 과연 아버지들이 <권위>를 <수복>하는 가정이어야만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는걸까?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 학교가 추구하는 정신일까?
    아니라면 다른 단어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절대권력자인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이양 받았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 절대적으로 <권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권위>라는-원래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단어 선택함으로써, 교회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고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유발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차분히 생각해 볼 일이다.

    애착을 갖게되면 걱정도 많아지고, 사랑이 깊어질수록 말도 간섭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기껏 책 한권을 읽고 독설을 퍼붓는다는 인상이 전달될 수도 있겠지만,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감히 지껄일 수 없는 말들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주시기를...

    지금 나는 내가 내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서 한량없이 기쁘다.

    from 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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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친 사람 - 김응용의 힘
    namu0808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김응용의 힘 저자 : 이영만 출판사 : 은행나무 예전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으며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초기 프로야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들, 그것으로 세상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 그러면서 지금의 생활이 단조롭거나 좀 지겨운 분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강력 추천! 그 책을 보면, 삼미슈퍼스타즈는 '자신만의 야구'를 한다고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야구의 핵심은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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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김응용의 힘
    저자 : 이영만
    출판사 : 은행나무


    예전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으며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초기 프로야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들, 그것으로 세상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 그러면서 지금의 생활이 단조롭거나 좀 지겨운 분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강력 추천!
    그 책을 보면, 삼미슈퍼스타즈는 '자신만의 야구'를 한다고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야구의 핵심은 바로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힘든 야구라고 주장합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가장 힘든 야구, 그래서 오직 삼미만이 할 수 있었고, 결국 '놈'들은 삼미의 해체를 결심하고, 모기업 삼미를 부도시키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명랑한 필체에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와, 그 때 삼미슈퍼스타즈 감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감독의 이름도 기억이 안 납니다. 삼미슈퍼스타즈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로 다시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감독의 이름은 영영 잊혀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는 패장이었으니까요. (당시 초대 감독은 박현식 감독. 사실 왕년의 홈런왕으로, 말 그대로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러나 13경기만에 해고된 역대 최단명 감독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최고의 승장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김응용입니다.

    《김응용의 힘》을 읽었습니다.
    평소에 워낙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 지금 프로야구 팀이 몇 개인지 알지도 못하고, 들어도 까먹는 - 제가 이런 책을 산 것부터가 '김응용의 힘'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대구에서 자랐습니다. 거긴 삼성라이온즈의 연고지입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그야말로 '난리'였습니다. 지역감정까지 격해있던 때라, 대구종합운동장 앞의 해태 선수단 버스가 불타기도 하고...
    그 때 저는 중학생이었는데,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동생과 함께 등록을 했습니다. 어디냐구요? '해태'요^^. 아마 어린이 회원이었으니까 가능했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모두 하늘색의 삼성라이온즈 잠바를 입고 있는 사이에, 동생과 나만 새까만 해태타이거즈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 모습이 너무 웃깁니다. 사실 우리도 삼성 회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회원이 너무 많이 모집되어서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태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응용의 힘》을 산 것도 그런 사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김영덕의 힘'이나 '정동진의 힘' - 이랬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오늘 리뷰는 좀 이상하네요. 책 얘기는 안 하고 개인적인 잡담만 하고 있으니... 이제 각설하고!
    이 책, 재미있습니다. 이 역시 순전히 '김응용의 힘' 때문입니다. 책의 부제가 '이 남자가 이기는 법'인데, 바로 그 내용입니다. 프로야구 20년史에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이라는 기막힌 기록을 가진 이 사나이가 이기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현재 경향신문 편집국장이며 과거 10여 년을 체육기자로 활동한 이영만 국장입니다. 그가 발로 뛰며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뭔가 특별한 남자' 김응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응용의 주특기는 침묵, 무언. 그러다가 심사가 뒤틀리면 수많은 관중 앞에서 발길질. 제 아무리 슈퍼스타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스타의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훈련 모습이 못 마땅하면 아무말 없이 괜한 기물을 파손한 뒤 사라져버립니다. 다음날 훈련장은 열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감독이 와도 눈길 한 번 마주치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이 돕니다. '말없음 + 느닷없는 폭력'에 길들여집니다. 보지 않아도 마치 보는 듯한. 원형 감옥 파놉티콘을 연상시킵니다. 그러다가 선수들이 항명하면 스스로 먼저 짐을 싸서 나가버립니다. 구단이 발칵 뒤집힙니다. 결론은? 다시 원점. 그의 머리에는 '감독은 나다'라는 강한 자신감과 원칙이 있습니다.

    '토사구팽'은 비인간적인 사람들에게 욕이나 마찬가지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김응용은 '토사구팽'합니다. 쓰임이 있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립니다. 용케 스스로 나가게 만들든지, 아니면 억지로라도 버립니다. 잘 하는 선수와 필요한 선수는 따로 있다고 합니다. 필요한 선수를 위해 잘 하는 선수와 바꾸기도 합니다. 버림받는 사람은 이를 갈겠지만 김응용에게 예외는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쓸만할 때 버리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단으로서도 돈이 되고, 맞바꿔 데려오는 사람 또한 제대로 고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버림받은 사람이라도 재기에 성공합니다. 역설적으로, 아직 쓸모가 있을 때 버려주기 때문입니다. '쓸 만한데 왜 버리느냐?'는 질문에 '쓸 만하기 때문에 버린다'가 대답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만의 방식에 매료됩니다. 한 마디로 호쾌합니다. 그러나 김용용式의 리더십을 따라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건 오직 김응용 방식일 뿐, 저같은 놈은 흉내내려고 해도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힘'도 없거니와 성격이 도저히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야구에 미쳤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덕장德將을 포기하고 오직 승장勝將으로만 기억되길 바란 것인지도 모릅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덕德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야구를 할 땐 야구 생각하는 재미로 산다. 야구를 하지 않을 때는 야구를 더 잘할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신기하다. 야구는 몇 년 전 경기까지 복기가 되는데 자동차는 아침마다 어디 세웠는지 헤매곤 한다. 그게 내 인생이다."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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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띠떼프가 내 아들이 아니기에...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띠떼프 안녕! 잔인한 세상 저자 : 젭 출판사 : 아트나인 띠떼프 책을 읽을 때마다 우리 아들이 띠떼프보다 얌전하고 차분하고 깔끔한 것에 감사한다. 내 아들이 아닌 남의 아들 이야기니까 웃지, 내가 띠떼프의 엄마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인물을 하나 더 꼽으라면 장 끌로드를 추천하고 싶다. 이름은 장 끌로드 반담과 같은 녀석이 혀짧은 소리를 할 때 따라 읽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장 끋노드, 띠떼프랑 따이도케 디대다!(사이좋게 지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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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띠떼프 안녕! 잔인한 세상
    저자 : 젭
    출판사 : 아트나인

    띠떼프 책을 읽을 때마다 우리 아들이 띠떼프보다 얌전하고 차분하고 깔끔한 것에 감사한다. 내 아들이 아닌 남의 아들 이야기니까 웃지, 내가 띠떼프의 엄마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인물을 하나 더 꼽으라면 장 끌로드를 추천하고 싶다. 이름은 장 끌로드 반담과 같은 녀석이 혀짧은 소리를 할 때 따라 읽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장 끋노드, 띠떼프랑 따이도케 디대다!(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임)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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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을 통해 체력을 강하게!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먹으면 약이 되는 음식 536가지 저자 : 유태종 출판사 : 서울문화사 미국에서 수입한 아토피 연고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이 책을 보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약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약값도 만만치 않고... 옛부터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밥 잘 먹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이런 책을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장점이 많은 책이라고 본다. 예방, 치료에 좋은 식품과 식사법 건강요법까지 알려주고 있어서 좋다.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데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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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먹으면 약이 되는 음식 536가지
    저자 : 유태종
    출판사 : 서울문화사

    미국에서 수입한 아토피 연고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이 책을 보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약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약값도 만만치 않고... 옛부터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밥 잘 먹고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이런 책을 보게 되었는데 이 책은 장점이 많은 책이라고 본다. 예방, 치료에 좋은 식품과 식사법 건강요법까지 알려주고 있어서 좋다.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에 믿어 의심치 않으며 몸에 좋은 자연 식품을 알고 싶을 때 보면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책, 집에 한 권씩 놓고 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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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던데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방배동 선생 최경숙의 기초 가정 요리- 일식 저자 : 최경숙 출판사 : 동아일보사 이세상에 요리책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은 내게 필요한 요리책이라고 생각한다. 깔끔한 일식 요리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식 요리의 장점, 특징을 파악하고 싶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다양한 일본 요리를 소개해 주고 있는데 맨 끝에 나온 오하기를 보고 깜짝 놀랬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설이면 엄청 많이 만들던 그 떡... 말랑말랑할 때는 콩고물 맛에 먹고 굳으면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 놓고 구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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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방배동 선생 최경숙의 기초 가정 요리- 일식
    저자 : 최경숙
    출판사 : 동아일보사

    이세상에 요리책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은 것은 내게 필요한 요리책이라고 생각한다. 깔끔한 일식 요리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식 요리의 장점, 특징을 파악하고 싶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다양한 일본 요리를 소개해 주고 있는데 맨 끝에 나온 오하기를 보고 깜짝 놀랬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설이면 엄청 많이 만들던 그 떡... 말랑말랑할 때는 콩고물 맛에 먹고 굳으면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 놓고 구워 먹던 속에 팥을 넣은 인절미.... 계란 중에서도 특란만한 크기로 만들어서 주먹을 쥐고 잡으면 딱 손아귀에 잡히는 그 떡... 그 떡이 일본에서 전해진 떡이구나... 그 시절이 그립고 그 맛이 그립다. 정말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던 떡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런 맛에 요리책 보는 거 아닌가 싶다. 내가 찾던 요리, 내가 바라는 요리가 나온 책... 정말 잘 골랐다고 나 자신을 칭찬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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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객3 - 허영만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식객3 저자 : 허영만 출판사 : 김영사 일단 만화니까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읽기 좋다. 그러나 한편 한편 이야기마다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다. 앞부분에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에피소드, 잔상이 나오는데 그것도 꼼꼼하게 읽어보게 된다. 이런 책이 쉽게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사실 내 욕심이야 성찬이가 매번 경기에서 이기면 좋겠지만 다른 장인들의 정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고기의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차가운 쟁반을 마지막에 꺼내 놓는 꼼꼼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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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식객3
    저자 : 허영만
    출판사 : 김영사

    일단 만화니까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읽기 좋다. 그러나 한편 한편 이야기마다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다. 앞부분에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었던 에피소드, 잔상이 나오는데 그것도 꼼꼼하게 읽어보게 된다. 이런 책이 쉽게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사실 내 욕심이야 성찬이가 매번 경기에서 이기면 좋겠지만 다른 장인들의 정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고기의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차가운 쟁반을 마지막에 꺼내 놓는 꼼꼼함에 감탄을 했다. 책꽂이에 꽂아 놓고 심심할 때 한 번씩, 아이들도 함께 읽어 볼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찜질방에 가본 적이 없는데 숯을 꺼내고 난 자연 찜찔방에는 진짜 가보고 싶다. 보고 배울 것이 많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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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분에서 텃밭까지, 채소 가꾸기의 모든 것
    namu0808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채소 가꾸기 저자 : 서명훈 출판사 : 김영사 가방에 책을 세 권 정도 넣고 다닙니다. 지루하지 않게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읽는 것과 밤에 퇴근할 때 읽고 싶은 책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가급적이면 한 권을 하루 또는 이틀에 걸쳐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으나 몸이 지친 퇴근 길이나 밤에는 아침에 잘 읽히던 책이 읽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 읽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책 읽는 일마저 큰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아침, 저녁으로 기분에 따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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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채소 가꾸기
    저자 : 서명훈
    출판사 : 김영사

    가방에 책을 세 권 정도 넣고 다닙니다. 지루하지 않게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읽는 것과 밤에 퇴근할 때 읽고 싶은 책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가급적이면 한 권을 하루 또는 이틀에 걸쳐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으나 몸이 지친 퇴근 길이나 밤에는 아침에 잘 읽히던 책이 읽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 읽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책 읽는 일마저 큰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아침, 저녁으로 기분에 따라 책 종류를 바꿔가며 읽는 것은 이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제는 경제경영 서적 한 권, 세계사 책 한 권, 그리고 점심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에 보기 위해 《채소 가꾸기》를 가방에 넣어두고 있었습니다.

    어제 점심 시간, 그리고 밤에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채소 가꾸기》를 읽었습니다. 문고판이라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사진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분량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사면서 원했던, 기대했던 내용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꽤나 알찬 책입니다.

    지지난 주엔가 베란다에 플라워 박스(긴 직사각형 모양의 플라스틱 화분) 두 개에 동네 산에서 퍼 온 흙과 부숙토(퇴비)를 섞어 흙을 만들고 거기에 상추 씨를 뿌렸습니다. 지금 제법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상추 하나 키우는 데에도, 워낙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 상추가 제대로 크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막상 싹이 트고 자라고는 있는데 솎아내기는 어떻게 어느 정도 해야하는지, 물은 어느만큼 줘야 하는지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 것이 바로 이 《채소 가꾸기》입니다.

    김영사에서 출간된 〈잘~먹고 잘사는법〉 시리즈 제23권입니다.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도 있었으나 텃밭 가꿀 생각은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뭐, 한 평이라도 내 땅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베란다에서 화분 몇 개 놔두고 상추나 미나리, 쑥갓 같은 것을 키워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채소 가꾸기 책 몇 권 중에서 실내에서 채소를 가꾸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골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나 꽤 내용이 충실한 책입니다. 아파트 베란다나 실내에서 혹은 작은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분량이 적으니 오히려 더 꼼꼼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베란다에 심어놓은 상추를 빨리 솎아 내야겠습니다. 못잡아도 10배수 이상 많이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9/10를 뽑아 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 책을 조금 더 늦게 봤더라면 상추들만 불쌍할 뻔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솎아 내야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보다가 욕심이 생겼습니다. 작은 텃밭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주말농장을 찾아봤습니다. 주말에 산에도 가고 밭도 가꾸다가 보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1년에 연회비 80,000원이면 4평 땅을 임대할 수 있습니다. 사이트를 뒤져 몇 군데 전화를 걸어봤는데 이미 임대가 다 되어 남은 땅이 얼마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하나 찾았습니다. 당장 회비를 입금하고 싶었지만, 이왕 시작하는 거 눈으로 직접 한 번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주말로 미뤘습니다. 책을 보니 기본적으로 밭 관리를 잘 해주는 농장주가 있는가하면 땅만 임대해주고 모든 것을 사용자가 알아서 하는 그런 농장도 있었습니다. 농장주와 사용자가 하는 역할이 잘 나누어져 있고 좀 부지런하고 맘씨 좋은 농장주가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좀 바쁠 것 같습니다^^
    혹시 저와 같이 텃밭 가꿔보실 생각, 없나요?

    손병목 http://www.itmember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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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으면서 정리하는 120분 영문법 - 이보영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들으면서 정리하는 120분 영문법 저자 : 이보영 출판사 : 넥서스 영어 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위해 이 책을 골랐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초부터 다지는 의미에서 성문기본,핵심 영어를 공부하고 기초적인 영문법책을 보던 남편은 옛날 책말고 요즘 나온 책을 원했다.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 집필된 책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디자인도 맘에 들었고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약간은 길죽한 책모양도 새롭고 눈을 편하게 해주는 종이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 부분에 팔품사를 정리하는 의미로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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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들으면서 정리하는 120분 영문법
    저자 : 이보영
    출판사 : 넥서스

    영어 공부를 시작한 남편을 위해 이 책을 골랐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기초부터 다지는 의미에서 성문기본,핵심 영어를 공부하고 기초적인 영문법책을 보던 남편은 옛날 책말고 요즘 나온 책을 원했다. 시대가 바뀐 만큼 새로 집필된 책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을 보는 순간 디자인도 맘에 들었고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약간은 길죽한 책모양도 새롭고 눈을 편하게 해주는 종이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 부분에 팔품사를 정리하는 의미로 이도령과 방자가 춘향을 처음 보게된 장면이 예문으로 나오는데 같은 예문을 가지고 품사별로 강조해서 보여주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특히 이보영씨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상냥했었나 싶어서 놀랬다. TV를 통해서 이보영씨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기에 이 책도 괜찮으려니 하는 마음에서 골랐지만 TV를 통해 듣는 것이랑 tape를 통해 듣는 것이 이렇게 다르게 들리는지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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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시간에 끝나는 영문법 총정리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4시간에 끝나는 영문법 총정리 저자 : 문단열 출판사 : 두비컨텐츠 4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제목에 혹 해서 고른 책 맞다. 그러나 4시간에 영문법에 통달을 하고픈 마음에서 고른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고른 책이다. 책도 좋지만 테잎과 CD가 들을 만하다. 문단열 선생님이 홈쇼핑에서 파는 제법 비싼 교재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테이프를 편안하게 듣고 있다가 문단열 선생님이 '네게 말해 줘워어...'하는 독특한 억양의 말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재미있어서 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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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4시간에 끝나는 영문법 총정리
    저자 : 문단열
    출판사 : 두비컨텐츠

    4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제목에 혹 해서 고른 책 맞다. 그러나 4시간에 영문법에 통달을 하고픈 마음에서 고른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싶어서 고른 책이다. 책도 좋지만 테잎과 CD가 들을 만하다. 문단열 선생님이 홈쇼핑에서 파는 제법 비싼 교재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테이프를 편안하게 듣고 있다가 문단열 선생님이 '네게 말해 줘워어...'하는 독특한 억양의 말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재미있어서 졸지 않는다. 지각동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지각하는 게 아니라 지각이 있다는 것은 보는게 안목이 있고, 듣는게 수준이 있고, 생각하는게 현명하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기억에 남는 말이다. 지각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 싶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재미있게 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 CD도 15 track까지 있어서 제법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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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영의 영어공부 비밀노트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이보영의 영어공부 비밀노트 저자 : 이보영 출판사 : 영진.com 비싼 출판비 들여서 찍은 책을 그냥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무료로 받았다면 이보영님께 크게 감사했을 것이다. 돈 주고 샀기에 좀 서운하다. 어느 집안이나 근심 한가지 없는 집 없고, 돈 많은 집은 많은 집대로 고민이 있다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이보영씨네 집에는 무슨 고민이 있을까? 이른 아침부터 영어방송을 하느라 열심히 산 이보영님의 성실함에는 박수를 쳐 주고 싶지만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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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이보영의 영어공부 비밀노트
    저자 : 이보영
    출판사 : 영진.com

    비싼 출판비 들여서 찍은 책을 그냥 나누어 주기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무료로 받았다면 이보영님께 크게 감사했을 것이다. 돈 주고 샀기에 좀 서운하다. 어느 집안이나 근심 한가지 없는 집 없고, 돈 많은 집은 많은 집대로 고민이 있다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이보영씨네 집에는 무슨 고민이 있을까? 이른 아침부터 영어방송을 하느라 열심히 산 이보영님의 성실함에는 박수를 쳐 주고 싶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이보영님이 인생살이 쓴맛 단맛이라는 것을 과연 아는 분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좋은 부모님 슬하에서 좋은 환경에서 순조로운 인생을 살아온, 게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그녀가 굳이 이런 책을 낸 이유가 뭘까? 바라고 원하던 영어 학원을 차리고 나서 인생의 황금점에서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만한 명성에 그만한 재력을 가진 분이라면 이런 책은 어린 학생들의 위해서 무료로 나누어 주어도 큰 무리가 없을 성 싶은데 CD까지 주면서 책을 만든 이유가 뭘까? 아직 자서전을 쓰기에는 이른 나이가 아닐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책 앞에 토플이라고 쓰면 토플 책, 토익이라고 쓰면 토익책이라는 말도 있던데 이보영님의 이번 책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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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치탈출 24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영치탈출 24 저자 : 이지영 출판사 : 넥서스 내가 이지영님이 진행하는 굿모닝 팝스를 듣게 된 이유는 2005년 1월 4일, 대전역 내 대합실 서점 유리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 나서 였다. 도대체 어떤 방송을 진행하는 분이고 얼마나 대단한 책을 냈기래 저렇게 도도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을까 싶어서 방송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전에는 새벽 시간에 EBS TV의 영어프로그램을 보았지만 요즘은 이지영님의 굿모닝 팝스를 듣고 있다. 이지영님이 좋아서라기보다 존 발렌타인님의 편안한 진행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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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영치탈출 24
    저자 : 이지영
    출판사 : 넥서스

    내가 이지영님이 진행하는 굿모닝 팝스를 듣게 된 이유는 2005년 1월 4일, 대전역 내 대합실 서점 유리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보고 나서 였다. 도대체 어떤 방송을 진행하는 분이고 얼마나 대단한 책을 냈기래 저렇게 도도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을까 싶어서 방송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전에는 새벽 시간에 EBS TV의 영어프로그램을 보았지만 요즘은 이지영님의 굿모닝 팝스를 듣고 있다. 이지영님이 좋아서라기보다 존 발렌타인님의 편안한 진행이 돋보이기 때문에 듣고 있다. 톡톡 튀는 상큼 발랄함이 지나치면 산만할 수도 있는데 존 발렌타인 선생님이 보조를 잘 맞춰주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지영님이 진행하시는 굿모닝 팝스를 듣고 있기에 영치송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책과 테이프를 통해 굿모닝 팝스, 재능방송 영치탈출에 이어 영치송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는 점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도 영치송, 저기도 영치송이다 보면 곶감 고치 빼 먹 듯 그게 그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지영님께서는 알고 계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살 돈이 없는 분들에게는 KBS 홈페이지에 가면 영치송을 무료로 다운 받아서 MP3나 컴퓨터 하드에 저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싶다. 영치송을 몰랐던 분들에게는 발랄하고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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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즈공예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비즈 초급,중급 과정을 수강하면서 배웠던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도면을 볼 줄 안다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기본적이고 예쁜 작품들을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예쁘고 실용적이고 응용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추천합니다. 사실 돈 들여 배우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어느 곳에서는 초급 과정에 들어가는 작품이 다른 곳에서는 중급에 들어가기도 하고, 강사 선생님에 따라 변동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비즈의 기초만 알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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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초급,중급 과정을 수강하면서 배웠던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도면을 볼 줄 안다면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기본적이고 예쁜 작품들을 많이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예쁘고 실용적이고 응용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추천합니다. 사실 돈 들여 배우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어느 곳에서는 초급 과정에 들어가는 작품이 다른 곳에서는 중급에 들어가기도 하고, 강사 선생님에 따라 변동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비즈의 기초만 알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와 있어서 초보자나 학생들이 보기에도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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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끄러움 없는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청춘표류 저자 : 다치바나 다카시 출판사 : 예문 일본에서 알아주는 분석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통하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다. 를 통해 알려진 기이한 경력은 둘째치고라도 에서 날카로운 펜의 힘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 자연스럽게 명성을 얻어갔다. 최근작 도 마찬가지. 인터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저자가 ‘청춘’을 분석한 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청춘을 방황했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 학벌사회를 비판한 와 마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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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청춘표류
    저자 : 다치바나 다카시
    출판사 : 예문


    일본에서 알아주는 분석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통하는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하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통해 알려진 기이한 경력은 둘째치고라도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날카로운 펜의 힘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유효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 자연스럽게 명성을 얻어갔다.

    최근작 <청춘표류>도 마찬가지. 인터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저자가 ‘청춘’을 분석한 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청춘을 방황했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분석하고 있다. 학벌사회를 비판한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한국에서도 통하는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각 분야에서 정상을 달리는 11명의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글이지만 <청춘표류> 역시 한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으로 보인다. ‘청춘’이라는 주제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스로 “요즘 젊은이들이 못마땅하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성공코스를 밟으려고 할뿐 별다른 고민도 없고 패기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대기업의 역사는 줄줄이 꿰차고 있어도 자신의 이름은 한자로 쓸 줄 모른다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을 향해 저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청춘표류>에서 저자는 변화하고 있다. 능동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수동적인 변화다. 방황했던 청춘을 딛고 일어선 젊은이들의 삶을 보고 들으며 반해버리고 그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인식의 틀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그럼 못마땅했던 저자를 변화하게 만든 젊은이들은 누굴까?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사실 <청춘표류>를 보는 사람들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기억하려면, 그들이 ‘삶’을 기억하면 된다.

    저자가 만난 11명 중에는 열등생 출신이 많다. 선생으로부터 ‘상급학교 진학은 헛수고일 테니 포기하라’는 소리를 들은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들이 현재 정상에 자리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예민한 시절에 사회와 학교로부터 낙오자 소리를 들은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 성인이라면 모를까 상처 받은 그들은 쉽게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방황’이라는 단어만이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시절을 맞이하게 된 그들. 그들의 청춘은 바닷가에서 목적지 없이 떠다니는 나뭇잎과 같다. 살아가는 목적도 없고, 이유도 없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것도 오지 않는다. 사회에서 낙오자가 된 이들은 스스로에게도 낙오자의 딱지를 붙이는 인생을 코앞에 두며 젊은 날을 보낼 뿐이다.

    허나 청춘을 소유한 자들에게는 ‘오기’란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고, 한심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분노일 수도 있다. 사람인 이상 무언인가 좋아하는 것이 있던 만큼 이들은 오기로 똘똘 뭉쳐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돌아오자고 스스로에게 의지를 복 돋운다. 그렇기에 오지 않는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들은 나이프 제작자, 원숭이 조련사, 정육 기술자, 레코딩 엔지니어 등 각자 하고 싶은 분야에서 정상의 위치에 오른다. 이야기만 듣는다면 뻔한 성공스토리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로 명성이 자자한 저자의 펜은 이들의 ‘노력’을 진부한 이야기로 봐두지 않는다.

    <청춘표류>에서 이들이 성공해서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이들이 방황을 하던 시절과 그 시절을 겪어내며 달려 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젊은 날에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비결’을 그려내기 보다는 성공과는 먼 곳에서 표류하던 청춘의 시절을 그려낼 뿐이다.

    물론 성공비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있기는 있다. 11명의 모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니 2명의 이야기만 들어도 비결이 무엇인지를 눈치 채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내와 ‘노력’, 그 두 가지라고 할까? 이 비결에 대해 원론적인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원론을 놔두고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내’야 말로 성공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누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열정과 같은 ‘노력’없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던가?

    <청춘표류>는 청춘의 한 때를 보내는 이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줄 수 있는 나침반과 같다. 저자가 알려주는 그 길은 쉽게 정복될 길이 아니다. 오히려 길을 찾다가 방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방황하는 이들을 다독거려준다. 모두가 그랬다면서, 청춘은 방황해야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그 격려가 어두운 미래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이들에게는 천군만마와도 같다.

    청춘의 한 때를 방황하고 있어 걱정인가? 그럼 <청춘표류>에서 마찬가지로 방황했던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방황조차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던 그들의 반짝이는 열정에서 답을 찾아보자. 마찬가지로 방황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성공할 수 있다.

    자신의 청춘을 마주보는 데 당당할 수 있는 그 성공의 길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잊고 있었던, 혹은 포기하고 있었던 ‘원론’적인 것에 달려있다. <청춘표류>는 어둠 속의 빛처럼 그 사실을 비춰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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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미꽃 전설을 아시나요?
    littlechr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한국의 야생화 저자 : 이유미 출판사 : 다른세상 ‘할미꽃 전설’을 아시나요? 집 둘레에는 봄 햇살을 머금고 자라는 봄꽃 나무들이 몇 있습니다. 민들레와 장미 그리고 철쭉입니다. 또 쑥이랑 봄나물 몇이 더 있습니다. 그것들은 내가 가꾼 것들이 아닙니다. 오직 제 몸짓 하나로 꾸역꾸역 땅 위로 올라온 것들입니다. 그 밖에도 가시오가피랑 노란 줄무늬를 하고 있는 난을 비롯해서 이름 모를 봄꽃들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알아보려고 해도 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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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한국의 야생화
    저자 : 이유미
    출판사 : 다른세상


    ‘할미꽃 전설’을 아시나요?


    집 둘레에는 봄 햇살을 머금고 자라는 봄꽃 나무들이 몇 있습니다. 민들레와 장미 그리고 철쭉입니다. 또 쑥이랑 봄나물 몇이 더 있습니다. 그것들은 내가 가꾼 것들이 아닙니다. 오직 제 몸짓 하나로 꾸역꾸역 땅 위로 올라온 것들입니다. 그 밖에도 가시오가피랑 노란 줄무늬를 하고 있는 난을 비롯해서 이름 모를 봄꽃들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알아보려고 해도 도무지 알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처음 본 것들 같아서 멋지기는 한데 이름을 모르니 정말로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여러 책들을 뒤져 보고 또 인터넷도 뒤져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이름을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한꺼번에 묶음을 해서 나와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고 있는 김민수 기자가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그 기자는 제주도에 살면서 이 꽃 저 꽃 여러 꽃들에 대해서 동화를 쓰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쓴 글들을 하나하나 뒤져 보다가 좋은 식물도감 하나를 알려주고 있는 책 하나를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이유미씨가 쓴 <한국의 야생화>(다른세상·2004)란 책이었습니다. 내 딴에는 그 책을 사면 집에서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꽃들과 잡초들을 잘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사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는데, 그 책에는 집에서 자라는 꽃과 잡초를 뛰어넘어 우리 나라 온 산지에 자라고 있는 모든 야생화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자생하는 식물의 종류는 4천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겉씨식물은 물론이고 양치식물도 포함된다. 자생식물은 식용, 약용, 목재용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관상적 가치가 있는 식물의 종류는 600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 숫자는 쓰임새의 개발에 따라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그 책에는 정말로 많은 야생화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봄 야생화 따로, 여름 야생화 따로, 가을 야생화 따로 그리고 겨울 야생화 따로, 그렇게 사계절에 맞추어서 설명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야생화들 가운데 내 눈길을 잡아끌었던 것은 당연히 봄 야생화였습니다.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야생화도 빼곡히 담겨 있었지만 때가 때인 만큼 봄철 야생화를 살펴보았습다. 지금이라도 당장 산과 들로 나가면 볼 수 있는 꽃들이 어떤 것들인지 그게 궁금했던 까닭입니다.


    위에 피어 있는 꽃은 ‘뻐꾹채’라고 한답니다. 정말 탐스럽고 멋진 것 같은데, 이 뻐꾹채는 늦봄에 피기 시작하기 때문에 여름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쯤은 이 꽃을 보기가 힘들 것 같고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 꽃이 뻐꾹채라고 이름 붙여졌을까요? 뻐꾸기가 우는 5월에 이 꽃이 피기 때문에, 그래서 뻐꾸기가 이 꽃을 피웠다고 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꽃송이들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과 같은 것들이 뻐꾸기 앞가슴 깃털을 닮아서 그렇게 부른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 꽃 붉은 꽃송이가 마치 뻐꾸기 붉은 입 속을 생각토록 해주기 때문일까요. 이 책을 쓴 이유미씨는 마지막 세 번째 것을 그 이유로 꼽고 있습니다. 뻐꾸기 붉은 입 속이 빨갛고 또 멋지고 신기해서 예전부터 그렇게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뻐꾹채뿐만 아니라 식물 가운데에는 이처럼 새 이름을 가진 것들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해오라비난초, 황새풀, 제비난초, 참새피, 박새, 방울새 같은 것들입니다. 참 재미난 이름들 같습니다. 아마도 그 꽃들이 그런 새들을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짓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앵초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산과 들에서 많이 본 것이긴 하지만 나도 이름은 잘 모르고 있는 꽃이었습니다. 이 앵초는 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는데, 계곡이나 냇가 옆에 무리를 지어서 핀다고 합니다. 또 꽃대 끝에는 작게는 7개에서 많게는 20개씩 한자리에 꽃이 피기 때문에 아주 예쁘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종류도 앵초는 ‘큰앵초’, ‘흰앵초’, 또 ‘설앵초’ 이렇게 세 가지나 있다고 합니다. 제일 왼쪽 윗 것이 큰앵초이고, 그 아래가 흰앵초 그리고 오른쪽 큼지막한 게 설앵초라고 합니다.

    이름이 다르듯이 이 앵초들 특색도 다 다르다고 합니다. 우선 큰앵초는 키가 좀더 크고 잎이 단풍잎을 닮았으며, 또 꽃빛도 진분홍색을 띠고 있습니다. 흰앵초는 그렇다면 꽃이 희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어진 것 같습니다. 또 설앵초는 앵초류 가운데 가장 작지만 꽃은 그만큼 크다고 합니다. 설앵초는 꽃 색도 예쁘지만 꽃 자체가 더 멋져서 화분에 담아가지고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그만큼 보기 좋다고 합니다.

    여러 꽃들을 더 알려주고 싶지만 하나만 더 올려볼까 합니다. 이름 하여 할미꽃입니다. 봄철 들판에 가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인데, 특별히 묘지 근처에서는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할미꽃은 너무 흔해서 그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쉽게 지나쳐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할미꽃처럼 멋진 꽃도 없다고 합니다. 줄기며 잎이며, 보송보송 돋아난 많은 솜털하며,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사랑스럽지 않나 싶습니다.

    이 책에는 동강할미꽃과 분홍할미꽃, 그렇게 두 가지 꽃이 들어 있습니다. 동강할미꽃은 얼마 전에 동강유역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고, 분홍할미꽃은 아마도 꽃잎과 빛깔이 분홍빛을 띠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할미꽃들 말고도 제주도에 가면 ‘가는잎할미꽃’이 자란다고 하는데, 그건 키가 작고 잎이 가늘고 뾰족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또 북한 관모봉에 가면 7월에 꽃피는 자주색 ‘산할미꽃’도 있다고 합니다. 참 종류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할미꽃이란 이름이 붙여졌을까요? 할미꽃이 노래 말처럼 줄기가 굽어 있어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일까요. 헌데 그렇지가 않다고 합니다. 할미꽃이 피고 지고, 또 열매가 익으면 그 열매에 흰털이 가득 달려 있어서 마치 그게 하얗게 센 할머니 머리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 할미꽃이 쓰이는 것은 향수를 자극하는 야생화로 인기가 높지만, 작은 화단이나 돌이 있는 화단에도 멋진 조화를 이룬다고 합니다. 또한 한방에서도 쓴다고 하는데, 주로 뿌리를 이용하지만 잎이나 꽃을 쓰기도 한답니다.

    해열이나 수렴, 소염이나 살균, 지혈이나 지사 등에 효과가 있어서 아주 다양한 처방전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할미꽃이 독성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잘 써야 되고, 심장에 해가 되기도 하지만, 잘만 쓰면 심장을 더 강하게 하는 작용도 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유미씨가 알려주는 할미꽃 전설이 있는데, 참 그럴듯한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한 할머니를 두고서 큰 손녀와 작은 손녀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큰 손녀가 부잣집으로 시집간 까닭에 할머니가 거기서 살려고 했는데 구박이 심해 그렇게 하지 못하고, 힘들게 시집 생활을 하는 작은 손녀 집으로 가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그만 기력이 다하여 죽고 말았다는데….

    “마침 할머니가 걱정되어 찾아가던 작은 손녀가 이를 발견하고 길가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 드렸는데, 그 무덤가에서 피어난 꽃이 바로 할미꼬치라고 한다. 지금도 할미꽃은 뒷산의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슬픈 전설 때문인지 할미꽃의 꽃말은 ‘슬픔’과 ‘추억’이다.”

    어떤가요? 흔하디흔한 할미꽃 하나에 너무나 재미있는 것들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이 책은 단순한 식물도감이 아니라, 꽃 이름과 꽃말 뜻, 종류별로 여러 가지 꽃들, 또 그 생김새와 비슷한 식물들을 구별하는 방법, 또 언제 어디에 어떻게 심어야 할지, 또 어떤 약효로 쓰이는지, 그리고 그 꽃에 따른 전설들도 간간히 소개돼 있으니 정말로 귀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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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랑말랑하고도 톡톡튀는 스프트웨어 개발론
    karma2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조엘 온 소프트웨어 저자 : 조엘 스폴스키 출판사 : 에이콘출판사 무엇을 함께 하고 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고,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동일한 방향을 바라 보고 있다면 알게 모르게 상당한 연대의식을 느끼게 된다. 패거리주의가 아닌 절대 공감이라는 공통 분모는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힘이 되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혼자서 움켜 쥐겠다고, 그것의 권한자로써의 지위만을 유지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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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조엘 온 소프트웨어
    저자 : 조엘 스폴스키
    출판사 : 에이콘출판사


    무엇을 함께 하고 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고,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동일한 방향을 바라 보고 있다면 알게 모르게 상당한 연대의식을 느끼게 된다. 패거리주의가 아닌 절대 공감이라는 공통 분모는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힘이 되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혼자서 움켜 쥐겠다고, 그것의 권한자로써의 지위만을 유지하려는 자에게는 퇴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현대의 복잡성과 기술의 발전 속도를 혼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활발한 소통은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도록 해결점을 제시해 줄 것이며, 비전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라는 1인 미디어의 위력을 이 책은 충분히 보여준다. 독창적이고, 풍부한 담론들이 광케이블의 전파 속도를 타고 전 세계를 휘젓는다. 결과적으로 먼 타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글이 2만 2천원, 400페이지 가량의 두툼한 책으로 탄생되기까지는 국적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수많은 블로거들의 지지와 관심, 도움이라는 화려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구어체가 많고, 문화의 벽을 느끼게 만드는 많은 요소를 자연스러운 번역으로 문화 충격을 완화시키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 중의 장점이다. 그러한 사실은 책의 여러 곳에서도 확인 될 수 있고, 웹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개발자들의 공감이 만들어 낸 작품이기 때문에 완성도는 한껏 높아졌다. 또한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은 절대 후회 없음이다. 일상의 활력을 불어 넣어줄 정도라면 설명이 제대로 될까.

    어떤 글들이길래 이렇게 칭찬을 늘어 놓을까? 개발자의 시선이 담긴 에세이, 기술 동향, IT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개발, 관리, 시스템 운영 등 소프트웨어 개발 전반에 대한 통찰력, 해석, 정보가 담겨져 있다. 심지어 개발자 면접 방법, 명세서 작성법까지 방대하면서도 구석 구석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CEO부터 말단 개발자까지 대상 독자층은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소프트웨어 공학을 다루는 책들처럼 재미없어 보이지만, 차별성은 몇 페이지만 읽어도 느낄 수 있다. 딱딱하게 타버린 삼겹살 같은 소프트웨어 공학책이 절대 아니다. 재미가 장난이 아니다.

    무슨 재미?
    씹는 재미.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지적만큼 통쾌한 재미는 없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주는 것만큼 시원한 재미는 없다. 게다가 잘 알려지지 않는 사실을 드러내서 알려주는 미덕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것과 같다. 특히 3년간 저자가 일했다던 MS사의 비화는 구경거리 중의 구경거리이다. MS사의 발전 역사와 현재의 MS사의 덜그덕거림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개발자들의 관심을 바짝 당긴다. ‘MS사가 윈도우 API의 지배력을 잃고 있다’라는 한 문장만 봐도 다음 책장을 넘겨 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저자가 느끼는 MS사에 대한 느낌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표지의 그림처럼 ‘Anatomy of Melancholy이다. 우울의 해부학, MS사에 대한 상당한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이용당한 느낌. 버림받은 느낌. 그것을 낱낱이 해부하여 까발리고 싶은 그 심정. 바로 그것이다. 이전 버전과의 호환성, 대중성의 조화라는 MS사의 최대 강점이자 발전 원동력을 폐기처분하고(얼마전에 떠들썩 했던 VB6.0의 지원 중단), 개발자와의 공생적인 관계를 깨버리는 독단적인 태도는 MS사의 몰락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은근히 내비친다.

    저자의 글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그러한 환경에 있지 않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시나리오와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는게 개발자 아니던가. IT노가다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필독서가 될 듯 싶다. 영양가 있고, 맛도 있고, 즐겁게 요리 방법까지 알려주니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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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구 커버링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낡고 싫증난 가구를 새롭게 바꿔 주는 가구 커버링 저자 : 김성희 출판사 : 시공사 아는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싫증난 식탁에 식탁값보다 더 비싼 돈을 들여 커버링을 해 놓은 것을 보았다. 깔끔하고 예뻐보이기는 하나 약간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커버링을 하는 것보다 식탁을 사는 것이 이익이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가 하는 말, 남편이 커버링된 식탁과 의자를 보더니 "밑에 있는 돈이 썩을까봐 숨쉬라고 웃돈 썼구나'하며 쓴소리를 하더란다. 커버링이라는 것이 튼튼하고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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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낡고 싫증난 가구를 새롭게 바꿔 주는 가구 커버링
    저자 : 김성희
    출판사 : 시공사

    아는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싫증난 식탁에 식탁값보다 더 비싼 돈을 들여 커버링을 해 놓은 것을 보았다. 깔끔하고 예뻐보이기는 하나 약간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커버링을 하는 것보다 식탁을 사는 것이 이익이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가 하는 말, 남편이 커버링된 식탁과 의자를 보더니 "밑에 있는 돈이 썩을까봐 숨쉬라고 웃돈 썼구나'하며 쓴소리를 하더란다. 커버링이라는 것이 튼튼하고 좋은 가구이나 싫증나고 때가 탓을 때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나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이 책을 찾아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솜씨가 좋은 사람이라면 가정용 미싱을 사서 직접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가 제안하고 꾸며놓은 커버링을 보면서 참고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How to make라고 해서 만드는 방법도 그림과 설명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데 이해력이 부족한 나같은 사람은 좀 헤맨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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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구라는 나무를 보지 말고 생각이라는 숲을 보자 [생각의 도구]
    bonspike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내 두뇌에 날개를 달아주는 생각의 도구 저자 : 가토 마사히루 / 박세훈 옮김 출판사 : 에이지21 왠지 제목에 이끌려 사게 된 책이다. 아마도 요즘 나의 상황이 조금은 답답하여 뭔가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갈구하다 보니, 생각의 도구라는 제목에 끌렸었나 보다. 이 책은 많은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기획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현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수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아이디어의 창출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럼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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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내 두뇌에 날개를 달아주는 생각의 도구
    저자 : 가토 마사히루 / 박세훈 옮김
    출판사 : 에이지21


    왠지 제목에 이끌려 사게 된 책이다. 아마도 요즘 나의 상황이 조금은 답답하여 뭔가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갈구하다 보니, 생각의 도구라는 제목에 끌렸었나 보다.

    이 책은 많은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기획자들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현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수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아이디어의 창출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럼 점에서 이 책은 어떤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의 두뇌를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아이디어를 다듬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상법, 두뇌 훈련법 들에 대한 기초적인 책과는 좀 더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어 지금 바로 한번 써먹어 볼 수 있는 방법을 예시하고 있는데, 책 내용 중에 몇가지 독특하게 와 닿았던 것을 필자의 언어가 아닌 독자의 언어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 첫번째는, ‘컬러 배스’이다. 내용은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컬러 배스의 요지와 그 목적은 두뇌의 훈련 내지는 집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떤 물건-신발-을 사려고 마음 먹으면 백화점에서나 다니는 길에서나 다른 사람의 신발만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컬러 배스의 방법은 바로 이러한 관심 및 집중에 기초한다. 오늘 퇴근길에 잠시라도 한가지 주제를 잡고 주의 깊게 관심을 기울여보고 눈에 들어오는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당장 그 효과를 느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출근길에 파란색에 관심을 가지고 나와보니, 모 헤어클럽의 색, 광고표지판에서 파란 색이 차지하는 비중 및 들어간 이유, 주택가에서 의외로 파란 색이 많이 사용이 안 되고 있다는 점, 평소에 무관심하게 지나치게 되던 것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게 되고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런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는 자유로와지고 뇌가 훈련될 수 있음이 느껴졌다. 이러한 두뇌 훈련은 의외로 아이들에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같이 여행이나,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에, 특정 주제-색깔, 소리, 글자, 어떤 것이라도 좋을 것이다-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고 그 이유에 대해서 얘기해 보는 과정은 아이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또 한가지는 만다라트이다.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을 때, 특정 개수 – 만다라트의 경우에는 주제와 관련 있는 8가지 –를 정해 놓고 무엇이든지 써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내용에 대해 또 8가지를 써보고, 즉, 강제성을 띠어 어떻게든 그 개수를 채워보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의외의 곳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인데,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내용이지만 참신하게 와 닿았다. 자신만의 강제성을 정해 놓고 어떻게든 0.1퍼센트라도 상관이 있는 내용을 적어나가보면, 의외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 오를 것이다. 즉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두뇌를 믿고 나가다 보면 무엇인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다.

    기타 이 책에서는 메모, 포스트 잇 활용, 시각화 등 일반적인 내용에 대한 글들도 무리없이 긴 시간 들이지 않고 읽어보고 나면 자신만의 아이디어 활용법이 나름대로 또 생각날 만 하였다. 아이디어를 급하게 내야 하는데 도저히 아무 방법도 떠오르지 않을 때 시도해 볼 수 있는 ‘오스본의 체크리스트’, ‘5W 1H’에 의한 아이디어 전개 및 기획서 작성에 있어서 주의할 점 등도 한번쯤은 다시 인지해 놓으면 좋을 내용이었다.

    필자는 책을 빨리 읽고,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으라고 얘기하면서 이 책 같은 경우는 4분이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이 책은 그리 글자수가 많은 편이 아니어서, 잠시 휴식 시간 30분 정도에 다 읽을 수 있을 만한 분량이다.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지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두뇌를 자유로이 놓아주고, 때론 훈련시키며, 자신이 낸 아이디어에 자심감을 가지되, 오만하지는 말라고 전한다. 우리는 흔히 자기가 낸 아이디어를 아주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거나, 너무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책 내용 중에 “생각을 전개할 때는 넓히고 또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형제처럼 보여도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진 아이디어이다”라는 말처럼 아이디어의 조그만 차이 및 그 새로움을 인식할 수 있음이 자신이나 상대의 아이디어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마음가짐이며, 꼭 필요한 마음가짐일 것이다.

    비록 이 책의 제목이 생각의 도구이지만, 그 도구들의 사용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러한 생각의 도구들이 나의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 그 배경 및 원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자신만의, 자신에게 유용한, 특별한 자신만의 생각의 도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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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름>과 <애정>의 방정식을 풀어보자
    zayuin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남자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여자 저자 : 앨런 피즈,바바라 피즈 공저/서현정 역 출판사 : 베텔스만(2003년 11월, 159페이지, 8천원) 을 이해하면 이 싹틀까?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종(種)이 같다는 것을 빼고나면 같은 게 하나도 없다.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생각되는 이런 현상들이 왜 나타나는지 아는가?" 책이 던진 화두다. 그리고 그 의 베일을 벗겨간다. '무엇이 다르지, 왜 다른지, 어찌하다(?) 그렇게 되었는지...' 누구나가 살다보면 품게 될법한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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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남자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여자
    저자 : 앨런 피즈,바바라 피즈 공저/서현정 역
    출판사 : 베텔스만(2003년 11월, 159페이지, 8천원)


    <다름>을 이해하면 <애정>이 싹틀까?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종(種)이 같다는 것을 빼고나면 같은 게 하나도 없다.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생각되는 이런 현상들이 왜 나타나는지 아는가?" 책이 던진 화두다.
    그리고 그 <다름>의 베일을 벗겨간다. '무엇이 다르지, 왜 다른지, 어찌하다(?) 그렇게 되었는지...' 누구나가 살다보면 품게 될법한 궁금증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특히 이성(異性)에 대해 느꼈던 "도대체 왜 그러지?"라는 질문의 답들은 명쾌하다.

    사실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남자,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여자]라는 제목만으로는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 광고를 보거나 직접 읽어보기 전에는 책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저자는 독자들로부터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까? '라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싶었던 걸까? (나는 이 책을 [한번남, 잔소리녀]로 부르기로 했다.)

    하여간 이 기막히게 긴 제목의 책은 겨우 핸드북(문고판 서적) 크기로, 기가 막힐 정도로 작다(아마도 여성들의 핸드백 사이즈를 염두에 둔 배려(?)인듯...). 게다가 기막히게 얇고, 내용도 듬성듬성 인쇄되어 있어서, 어떤 독자는 책을 열어보는 순간 기가 막혀 숨이 멎어버릴 지도 모른다.
    '이것도... 책이라고 만들어서... 돈 받고 팔어...? 이렇게... 괴씸할데가...!' 책을 펴던 순간 가졌던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만 읽다보면 알게된다. 이 기막히게 조그만 책이 기막히게 긴 인간사(史)와 역시나 기막히게 적나라한 인간사(事)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아주 재치있는 글솜씨를 자랑하면서!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는 사실은 엄연한 사실이며 현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거나(대개는 알려고 하는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겠지만), 알아도 대충 알고 있거나, 설혹 잘 알고 있더라도 아는 바 대로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크고 작은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수시로 일어나는 다툼의 원인은 너무나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우리(남자와 여자)는 그 <사소함>때문에 서로에게 실망하고, 다투고, 지쳐버리고, 심지어는 헤어지기도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서로의 <다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결과로...

    책은 그러한 문제의 작은 불씨들을 잘 끄집어내서 도마위에 올려놓고 역사적, 심리학적, 생태적 칼날로 문제의 현상과 원인을 해부한다. 그 <칼질>은 짧지만 재미있다 섬뜩할 정도로. 위트와 재치가 배어있는, 당돌하고 발칙해 보이기까지 한 손놀림에는 순식간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숨어있다. 나 또한 그 입담에 혀를 내둘렀다.

    개인적으로 [한번남, 잔소리녀] 정도의 책이라면 누구에게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다(특히 새콤달콤한 연애에 넋을 빼앗긴 청춘들에게라면...). 왜냐하면, 사랑은(연애도 마친가지 겠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때에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고, 그 진실이라는 것은 기술(테크닉)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마음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책 한 권으로 남녀간의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일상이 책에 쓰인 것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과 함께 해야하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대표적인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명확하게 맥을 짚을 수 있다(어쩌면 그것이 전부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하지만 책값은 조금만 아주 조금만 거품을 뺐으면 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이 땅의 <한번남>들과 <잔소리녀>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그들이 서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함께 마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좋은 선물로 기억되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라 하지 않았던가. 결국, 남성이건 여성이건 서로의 <이성>에게 '무사히(?) 접근하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상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에게는 분명한 <다름>이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하는 방법도, 행동하는 방식도, 심지어는 섹스에 대한 감정과 느낌 마저도 왜 그렇게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거든 부담없이 접근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이성으로서의 <나>와 <너>를 뛰어넘어 하나된 <우리>를 찾을 수 있을 이다. 서로에게 간절히 필요한 <우리>를 말이다.

    " 10년 전에 당신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당신과 결혼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는 걸?"
    읽어보라며 건넨 책을 다 읽고나서 내게 돌려주며 던진 아내의 독후감(?)이다.
    아내는 '<연애박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셨으니 어쩌시나?'며 엄살 섞인 눈꼬리를 살짝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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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9단에게 지혜를 배워볼텨?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인생 9단 저자 : 양순자 출판사 : 명진출판사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라고 할까? 양순자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깜깜하기만 한 세상 속에서 앞을 밝혀주는 촛불을 보는 것만 같다. 과장이 아니다. 공지영의 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모니카 수녀’를 연상케 하는 할머니는 올해 65세로 37세부터 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사형수들을 상담해 왔다. 일생의 많은 부분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일부러 걸어가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던 사람이 바로 양순자 할머니다. ‘가시밭길’이라는 표현으로도 어색하기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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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인생 9단
    저자 : 양순자
    출판사 : 명진출판사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라고 할까? 양순자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깜깜하기만 한 세상 속에서 앞을 밝혀주는 촛불을 보는 것만 같다. 과장이 아니다.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모니카 수녀’를 연상케 하는 할머니는 올해 65세로 37세부터 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사형수들을 상담해 왔다. 일생의 많은 부분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일부러 걸어가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던 사람이 바로 양순자 할머니다.

    ‘가시밭길’이라는 표현으로도 어색하기만 한 그 길은 남을 위한 고단한 길이었다. 쳐다보기조차 어려운 범죄자들의 곁으로 일부러 찾아가 말을 나누기를 벌써 29년. 법무부 교정대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등을 받았다고 하지만 누가 상을 준다고 해서 그 길에 올라서기를 자처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할머니는 올라섰다. 그리고 꿋꿋이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내고 있다.

    그 고된 삶 속에서 할머니가 ‘인생 공식’을 정리한 <인생9단>을 선보였다. 제목은 할머니의 별명에서 따온 것인데 <인생9단>은 이제껏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겪었고 느꼈던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것이다.

    사실 <인생9단>의 소식은 뜻밖의 소식이다. 남들에게 쓴 소리 한 번 못해봤을 것 같은 할머니가 인생의 공식을 말한다니 약간의 의아스럽기도 하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보건데 할머니가 무슨 영광을 바라고 책은 내놓은 것을 아닐 터인데 무슨 까닭이었을까? 인생의 공식이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책을 내놓은 사연도 궁금하다.

    “한 번 왔다가는 인생인데 너무 힘들게 살면 안 되잖아.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가벼운 걸음으로 살려면 바로바로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단 말이지.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프롤로그’중에서-

    ‘인생 9단’이라고 불리는 할머니는 사람들이 잘 사는 법을 알려 주고 싶으신 게다. 할머니는 굳이 그것을 공식이라고 부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누구든지 배워보라고 한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경지에는 비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한 평생 살아온 사람이자 연장자로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냉수를 얻어 마시듯, 혹은 웃기는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에서 공식을 얻어 보라는 것이다.

    <인생 9단>도 할머니의 봉사하는 마음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잘한 일, 착한 일만 들려준다면야 모를까 <인생 9단>은 그렇지 않다. 이혼했던 경험과 배신당한 경험까지 지난날에 얻은 상처와 아픈 이야기들까지 털어놓고 있다. 이 또한 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상처까지 드러내면서까지 인생 후배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봉사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생 9단>은‘인생 기본 공식’과 ‘사람 사이 공식’, 그리고 ‘가족 사이 공식’ 등 세 개의 파트로 인생사 문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을 세 번 놀라게 한다.

    첫 번째는 구어체가 그대로 사용돼 직접 할머니의 육성을 듣는 것 같아서 놀라게 되고 두 번째는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연애문제 등 젊은이들의 문제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기에 놀라게 된다. 책 내용만 보고 할머니의 연세가 65세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마음의 문이라는 건 사람한테만 여는 게 아니야. 나한테 오는 곤란한테도 문을 열어 놓아야, 그 곤란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 단 말이야. ‘언제나 편한 세월이 올까?’이런 투정은 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마. 그런 세월은 없으니까. 불편한 세월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잘 달래면, 그게 바로 편한 세월이 되는 거야.”
    -‘기본공식2.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 중에서-

    “혹시 상대한테 내가 첫 사랑이 아닌 게 마음에 걸린다면 이렇게 생각해 봐. 내가 지금 굉장히 매력 있는 사람을 사귀고 있구나 하고 말이야. 당신 애인 같이, 당신 남편, 아내같이 멋진 사람을 누가 가만 나뒀겠어? 진짜 사랑이니 가짜 사랑이니, 첫 사랑이니 두 번째, 세 번째니 따지지 마. 그 시간에 차라리 오늘 저녁에 둘이서 뭐 먹고 뭐하고 놀까, 그 생각을 해. 그게 훨씬 기분도 좋고 사랑이 오래 가는 비결이니까.”
    -‘사랑공식2. 사랑에다 소금을 뿌려봐’ 중에서-

    “부모들이 행복하면 아이들 인생도 행복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자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보여줄까 그 궁리나 해. 그게 조기유학 보내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방법이야. 아이들이 ‘우리 부모님 참 괜찮은 사람들이야.’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미 얘기는 끝난 거야.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부모가 되는 거야.”
    -‘부모공식. 최고의 유산은 부모의 행복이야’ 중에서-

    <인생9단>을 보며 세 번째로 놀라는 것은 할머니가 말하는 공식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라는 사실이다. 사실 할머니는 책에서 다룬 내용들을 공식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지혜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인생 9단>은 실상 할머니의 ‘지혜’인 셈인데 생각해보면 얼마나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말인가.

    그 동안 말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면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귀 담아 듣지 않았던 그것이 아니었던가? 새삼스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겪은 그 이야기들이 어느 것보다 필요한 지혜인 것을.

    <인생9단>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이 들린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한번이라도 더 웃고, 한번이라도 더 편안 마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는 그 방법이 들린다. 그 방법이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깨우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 스스로 알아내거나 이미 겪은 사람에게 배워야만 한다.

    여기 쉬운 길이 있다. ‘인생9단’으로 불리는 양순자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비록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 9단>에서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 다했으니 책으로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인생사, 이미 겪을 대로 겪어본 ‘인생9단’의 할머니에게 지혜를 얻는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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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토끼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자살토끼 저자 : 앤디 라일리 출판사 : 거름 누가 뭐래도 불쌍한 토끼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그 토끼를 보면서 즐겁다.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중간중간에 좀 잔인하게 죽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일상에 지친 우리를 위해 죽어주는 토끼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토끼야, 정말 고맙다. 너때문에 한참 웃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주고 싶은 책이고 아픈 친구 병문안갈때 가져가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어렵게 머리써서 죽느니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살자 살자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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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자살토끼
    저자 : 앤디 라일리
    출판사 : 거름

    누가 뭐래도 불쌍한 토끼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그 토끼를 보면서 즐겁다.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중간중간에 좀 잔인하게 죽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일상에 지친 우리를 위해 죽어주는 토끼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토끼야, 정말 고맙다. 너때문에 한참 웃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주고 싶은 책이고 아픈 친구 병문안갈때 가져가고 싶은 책이다. 이렇게 어렵게 머리써서 죽느니 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살자 살자 웃으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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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바이러스 손바닥...
    rossin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독감 저자 : 지나 콜라타 출판사 : 사이언스북스 정말 끈기를 가지고 내가 선택한 책이기에,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 생각이 들어도 끝까지 읽어 냈다. 이 순간 정말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아둔한 내가 정말 싫다. 미스테리라는 말만 쓰이면 사려 드는 것, 이것도 병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1918년 독감처럼 전염성은 없고 치명적이지도 않다. 다만 내 속만 쓰릴 뿐... 1918년 그렇게 위대하다는 나라 미국에서 전염병이 돌았다.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것은 독감!!! 마치 얼마 전 일어났던 사쓰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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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독감
    저자 : 지나 콜라타
    출판사 : 사이언스북스

    정말 끈기를 가지고 내가 선택한 책이기에,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 생각이 들어도 끝까지 읽어 냈다. 이 순간 정말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아둔한 내가 정말 싫다. 미스테리라는 말만 쓰이면 사려 드는 것, 이것도 병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1918년 독감처럼 전염성은 없고 치명적이지도 않다. 다만 내 속만 쓰릴 뿐...

    1918년 그렇게 위대하다는 나라 미국에서 전염병이 돌았다. 그리고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것은 독감!!! 마치 얼마 전 일어났던 사쓰처럼... 독감이 전 세계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1차 세계 대전 시기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이동은 잦았고, 병사들은 집단으로 모여 훈련을 받다 감염되어 쓰러져 죽고, 더러는 그 병을 고향으로 옮기고 다른 나라에도 옮겼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왜 그렇게 치사율이 높았는지도 모른다. 어떤 과학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미래 인류는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가지 감기만 빼고... 감기 바이러스는 해마다 변종을 일으켜 밝혀 낼만 하면 다른 것이 생기고 해서 과학자를 애 먹인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일종의 경고가 아닐까...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바이러스 손바닥 안에 있을 뿐이고 그 바이러스는 인류 전체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그러니 자연에 순응하고 얌전히 살다 가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자들의 암투와 정치인들의 교묘한 술수가 포함되어 있어 또 한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독감을 연구하고 치료하는데 왜 과학자들은 저들끼리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싸우고, 정치인들은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전략을 짜는 것이냔 말이다. 이러니 바이러스가 인간을 우습게 볼만하지 싶다. 다음 독감에 대비해서 마스크 사 뒀는데 그거나 잘 사용하고 깨끗하게만 힘써야겠다. 나머지는 과학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 책보니 예방 주사도 맞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

    좋은 점은 각주를 일일이 모두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만족하지만 그 각주가 페이지마다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맨 뒷 페이지에 모여 있어 찾아보기 불편하게 되어 있어 불만스러웠다. 원래 책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두꺼운 책을 읽는데 불편함을 초래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앞으로 각주는 그 페이지마다 독자가 손쉽게 볼 수 있게 달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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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으로 신실하게
    cathy11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참으로 신실하게 저자 : 이재철 출판사 : 홍성사 말로만 듣던 이재철 목사님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맑고도 예민한 영성과 신실한 믿음, 그리고 예리하고도 깊이 있는 성경에 대한 통찰력에 존경과 감사가 우러 나왔다. 이책에는그가 유럽에서 목회하면서, 그곳 지역의 청년, 장년들과 함께 ,기독교의 구원과 믿음이란 무엇이며 크리스쳔으로 살아간다는것이 진정 어떤것인지에 대해 묵상했던 신앙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그 묵상의 가장 핵심은 신앙이란 신실함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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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참으로 신실하게
    저자 : 이재철
    출판사 : 홍성사

    말로만 듣던 이재철 목사님의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맑고도 예민한 영성과 신실한 믿음, 그리고 예리하고도 깊이 있는 성경에 대한 통찰력에 존경과 감사가 우러 나왔다. 이책에는그가 유럽에서 목회하면서, 그곳 지역의 청년, 장년들과 함께 ,기독교의 구원과 믿음이란 무엇이며 크리스쳔으로 살아간다는것이 진정 어떤것인지에 대해 묵상했던 신앙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그 묵상의 가장 핵심은 신앙이란 신실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는 무관 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며, 참으로 신실한 신앙이란 어떤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하나님께 간절히 처해진 어려움에서의 구원을 간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것은 즐거워 하지 않은 신앙인들,이런 신앙의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 생각한다.

    < 그대가 정녕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의 가지 된 크리스쳔이라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대 인생의 농부이심을 믿으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가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의 마당임을 믿으라 . 만사의 때를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훈련하라. 신실하고 참되신 주님의 이름에 힙당한 바른 기도의 삶을 훈련하라. 이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밑가지가되는 삶을 훈련하라. 그리할때 의심의 여지없이, 변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될것이다. 웬지 아는가? 그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대를, 그대의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가꾸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중> 하나님은 농부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이다.그러므로 우리가 그 포도나무에 붙어있을때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그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성실하시고 섬세한 손끝에 의해 온전하게 자라게 되는 것이다.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 3: 32~3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주시는것은 그분은 본심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고 모든것을 통치하시는 그분께서, 한치의 오차도 없으신 그분께서 나를 성숙시키고 온전케 하시려는 의도가 계시다는것, 알고는있는 말씀이지만 어려움에 처하면 그런 믿음 또한 흔들리게되는 인간인데, 다시한번 믿음을 지켜가리가 다짐을 하며 글을 읽었다 .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알긴 했지만 그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책을 통해 깊은 의미를 알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장, 삶 그현장성에서 말한바와 같이 믿음이 현장에로 옮겨질때 참된 지식이고 참된 믿음이 되듯이, 글을 읽는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나의 삶으로 연결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리뷰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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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과 자연의 행복한 어울림
    ljch33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옛집기행 저자 : 이용한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마지막 서민옛집 보고서 (웅진 지식하우스) 급격한 문명의 속도에 밀려 우리 주변에는 누대에 걸쳐 아끼고 지켜오던 순수 원형의 터살이 풍경과 풍습, 전통과 사물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불과 20~30여 년만에 눈부신 근대화를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었다. 성장논리와 근대화라는 명분이 버리지 말아야 할 우리네 소중한 원형의 풍경까지 짓뭉개고, 폐기처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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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옛집기행
    저자 : 이용한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마지막 서민옛집 보고서 <옛집 기행>(웅진 지식하우스)

    급격한 문명의 속도에 밀려 우리 주변에는 누대에 걸쳐 아끼고 지켜오던 순수 원형의 터살이 풍경과 풍습, 전통과 사물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우리는 불과 20~30여 년만에 눈부신 근대화를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었다. 성장논리와 근대화라는 명분이 버리지 말아야 할 우리네 소중한 원형의 풍경까지 짓뭉개고, 폐기처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역사 이래 가장 보편타당한 우리네 주거문화였던 초가집이 하루아침에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것도 그 때문이며, 전국의 무수한 당집이 불타고, 원형의 풍습인 당산제나 풍어제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당연히 대대로 이어온 우리네 주거문화와 마을문화의 정체성도 그 때부터 혼란을 겪고, 결국엔 획일적인 근대화의 풍경에 묻히고 말았다.
    문화와 풍습이란 한번 사라지고 나면 복원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당대에 기록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기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옛집기행>은 바로 그 외면받아온, 그러나 간신히 목숨을 지켜가고 있는 쓸쓸한 서민옛집에 대한 마지막 보고서이다. 그냥 관광지를 둘러보는 관광안내서가 아니라 우리네 원형의 삶의 숨결을 보듬는, 이 땅의 마지막 옛집을 찾아 나선, 땀과 한숨이 그득한 기행서인 것이다. 책에는 그동안 지배층의 주거문화였던 기와집에 밀려 문화적으로, 학술적으로 많은 소외를 받아온 초가를 비롯해 굴피집이나 너와집, 돌너와집, 샛집, 투막집, 귀틀집, 흙집 등의 서민옛집이 마지막 보금자리처럼 둥지를 틀고 있다.
    사실 집이란 사람이 사는 공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당대의 생활상과 시대상이 다양하게 어우러지고 버무려진 핵심적인 문화이며, 삶의 풍경이고, 누대에 걸쳐 슬기와 솜씨를 더해 이어온 생활미학이다. 거기에는 우리 삶의 원형이 깃들어 있다. 우리의 오래된 집이 낙후된 구시대의 유물이고, 물 건너온 '시멘트집'만이 신식이며 좋은 것은 아니다. 옛집은 문명에는 한발 뒤쳐져 있지만, 자연에는 한발 다가가 있다. 옛집은 풍경을 차단하지 않고,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 옛집은 자연을 해치지 않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옛집은 건강하게 숨을 쉼으로써 사람을 숨쉬게 한다.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옛집이야말로 요즘의 집보다 훨씬 좋은 집이라 할 수 있다.
    옛집은 한마디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자연친화적인 집이다. 초가나 너와집, 굴피집, 흙집과 같은 서민옛집들은 모두 자연에서 빌려온 재료로 자연을 닮고자 했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행복하게 어울린 삶의 공간, 그것이 옛집인 것이다. 서양의 집인 양옥과 아파트는 편리함은 있을지언정 자연에 해를 입히고, 사람의 건강과 정서까지도 위협하는 독소로 가득한 집이다. 시멘트집이란 게 그 자체로 '새집 증후군'을 일으키는 독성과 오염 덩어리인 셈이다. 그것은 철거하고 나면 모두 이 땅을 더럽히고, 냄새를 풍기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을 골치 아픈 쓰레기일 뿐이다. 반면 옛집은 친환경적이며, 수명이 다한다 한들 나무와 흙과 짚풀이 전부이니 그대로 썩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들이다.
    책은 다양한 서민옛집을 종류별, 지역별, 기능별로 소개하고 있으며, 옛집에 깃든 신들과 부속채와 집을 이루는 공간과 세간까지 차근차근 일러준다. 이 책은 저자와 사진가가 1998년부터 8년 동안 옛집을 찾아나선 결과물이지만, 결과적으로 옛집은 사라져가고 있음을 담담하게 그려낸 기록물이기도 하다. 영광 효동마을의 소박했던 초가가 어느날 사라졌다. 도초도에 남아 있던 20여 채 초가 살림집도 몇 년에 걸쳐 사라졌다. 홍천의 귀틀집도, 인제의 너와집도, 삼척의 굴피집도 그들이 돌아다닌 8년 사이 이 땅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여 책에는 아직도 멋진 집으로 남아 있는 오대산 8부 능선에 자리한 너와집과 경주 양동마을 물봉 너머 초가와 삼척 사무곡에 남은 굴피집에 대해 안쓰럽고도 애정어린 관심을 보태고 있다. 도대체 지금 이 시대에 이토록 끈질기게 옛집을 찾아나서고, 그것을 기록한 까닭이무엇인지, 새삼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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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홀과 시간굴절
    kopulja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블랙홀과 시간굴절 (아인슈타인의 엉뚱한 유산) 저자 : 킵 S.손 출판사 : 이지북 일단 이 책은 그 크기와 두께만으로도 독자들에게 강한 압박을 준다. 나같이 과학쪽의 지식이 미천한 인문계 학생에게는 과학적 내용이 가득찬 이 큰 책이 더욱더 두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나름대로 나와 같은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해설을 해주며 과학적 내용을 설명한다. 일단 내가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인 블랙홀의 존재에 대해 설명할 때, 역사적으로 과학자들이 블랙홀의 존재를 부정하기위해 애쓰던 모습과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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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블랙홀과 시간굴절 (아인슈타인의 엉뚱한 유산)
    저자 : 킵 S.손
    출판사 : 이지북

    일단 이 책은 그 크기와 두께만으로도 독자들에게 강한 압박을 준다. 나같이 과학쪽의 지식이 미천한 인문계 학생에게는 과학적 내용이 가득찬 이 큰 책이 더욱더 두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나름대로 나와 같은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해설을 해주며 과학적 내용을 설명한다. 일단 내가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인 블랙홀의 존재에 대해 설명할 때, 역사적으로 과학자들이 블랙홀의 존재를 부정하기위해 애쓰던 모습과 그 존재가 밝혀지는 역사적 사실을 말할 때, 나는 책 속에 빠져서 시간 가는줄 도 모를 정도였다. 물론 내가 그 속에 들어있는 과학적 법칙들까지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별이 죽음을 맞이할 때 무덤을 고르는 핵력과 중력, 압력등의 차이와 그 원인인 중성자 등) 그 속에 있는 수많은 공식들과 과학적인 지식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블랙홀이 생성되는 원인과 그 블랙홀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고 믿어 엉뚱한 이론만을 세우던 유명한 과학자들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의 아인슈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자중 최고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마저 블랙홀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 존재여부를 부정하기 위해 많은 과학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은 나에겐 참 새로운 일이었다.
    현재의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옛날 과학자들이 하던 논쟁들은 가끔 어이없을 때도 있다. 그 옛날의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던지, 이 책에 언급된 블랙홀에 관한 내용이라던지 발달된 과학으로 보면 이미 사실이 명백한 것들이 옛날에는 논쟁 거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논쟁과 사실을 밝혀내고자 노력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학구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위에서 말했듯 나는 과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적인 사실들 보다는 역사적 사실과 거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등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블랙홀의 존재를 미리 부정하고 과학적 사실을 보기 거부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에서는 편견의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 블랙홀에 관한 이야기 외에도 내 관심을 끈 소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타임머신 이었다.
    이 책의 맨 앞부분은 저자가 상상으로 지어낸 짧은 소설형식의 우주 여행기가 실려 있다. 이 우주여행기에 따르면 우주선이 광속으로 이동할 시에는 우주선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대신 지구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고 말하고 있다. 블랙홀의 주위에서 궤도를 그리며 움직일때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지구에서 40억년이 흐른 시점에서 우주선안에서는 고작 100년정도만 흘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과거로 돌아가고자 웜홀을 이용하는 시도를 하고자 하는 장면에서 이 여행기는 끝을 맺는다. 과연 시간을 거스르는게 가능할까? 어릴때부터 자주 품었던 의문이었고,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기 마련인 문제이다. 이 책에 따르면 미래로 가는 것은 쉬우나 (물론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광속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면 가능.) 과거로 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일단 미래로 가기 위해선 광속으로 움직이면 된다. 아니면 블랙홀 근처로가 엄청난 중력이 만드는 시간의 굴절 속에 들어가 있어도 된다.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시간과 공간의 굴절은 이런 시간여행을 이론상으로나마 가능하게 해주었고 나에겐 큰 놀라움을 주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에서 그 자동차 안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이 다르고 큰 중력 안의 시간과 바깥의 시간이 다르다는 그의 주장은 타임머신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해준다는 웜홀. 이 웜홀을 이용한 과거여행은 아직까진 의문이 많다고 한다. 아직까지 광속으로 비행하는 우주선도 없고, 우주여행을 다닐 기술도 없는 우리이기에 위와같은 이야기들은 한참이나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그러나 어릴때부터 막연히 꿈만 꾸어봤단 타임머신의 이론적 원리나마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즐거웠다. 블랙홀과 같이 강한 중력장 안에서는 시간도 느리다. 참으로 신기한 이야기이다. 블랙홀 지표면 안쪽의 모습이 궁금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조사도 불가하다고 하니 이것에 관한 의문은 접어두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이렇게 이 책을 보며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 두가지를 대략적으로 이야기해 보았다. 물론 이 책을 읽어본 다른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곳에서 흥미를 보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나는 위의 두가지보다 흥미있는 소재가 없었다. 글재주가 없어 두서없이 책 내용만 나열한 듯 싶으나 내가 하고싶은 말은 한가지다. 이 책은 재미있다. 분량이 매우 많지만 시간만 된다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장해 주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리 생각해 두길 바란다. 자신의 과학적 지식이 어느정도인지, 그리고 이 책을 읽을 때 과학적 지식을 중심으로 읽을지 아니면 나와같이 그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읽을지 정해둬야 할 것이다. 일단 600페이지라는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기 때문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 책을 읽을지 안 읽을지는 여러분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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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살 - 법의학의 눈으로 바라본 독살사건들' 을 읽고..
    htgkt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독살 - 법의학의 눈으로 바라본 독살사건들 저자 : 우에노 마사히코 출판사 : 살림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맨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관심에 끌려서 였다. '독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던 나에게 이 책이 나에게 순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사가지고 읽기 시작하였다. 잠시, 이 책의 저자인 우에노 마사히코에 대해 소개하자면, 그는 1929년 이바라기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동방 의과대학 졸업 후에 일본 대학 의학부 법의학교실에서 근무했다. 또한, 도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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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독살 - 법의학의 눈으로 바라본 독살사건들
    저자 : 우에노 마사히코
    출판사 : 살림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맨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관심에 끌려서 였다. '독살'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던 나에게 이 책이 나에게 순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사가지고 읽기 시작하였다. 잠시, 이 책의 저자인 우에노 마사히코에 대해 소개하자면, 그는 1929년 이바라기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동방 의과대학 졸업 후에 일본 대학 의학부 법의학교실에서 근무했다. 또한, 도쿄 감찰의학원에서 감찰의를 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그가 도쿄 감찰의학원에서 감찰의를 할 때 그가 맡았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쓰여졌다.
    이 책에 대해서 간단히 평가하자면 현실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우에노 마사히코는 자신이 직접 맡아서 경험했던 사건들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그 방식으로는 우선, 독살 사건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한 뒤에 그 사건이 해결된 과정을 상세히 기술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독살에 대한 의견을 자세히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이 이 책에서 전체적으로 반복된 구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어서 책을 읽는데 조금은 따분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실제 일어났던 독살 사건들에 대해서 다양하고 신선한 방식으로 썼으면 좋았었는데'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로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쓰기 위해서 노력했다. 작가는 객관적 시각에서 독살 사건들을 살펴보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의견을 게재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점이 이 책을 읽는데 좋았다.
    사실,앞에서도 말한 것 처럼 나는 이 책을 읽기전에 '독살'과 그에 관련된 많은 약물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이 나에게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이 책의 목차가 좋게 보였다. 비소(砒素), 청산(靑酸), 농약(農藥), 수면제(睡眠劑), 일산화탄소(一酸化炭素), 부자(附子), 각성제(覺醒劑), 알코올, 쥐약, 크레졸, 시너등 우리의 주변에 존재하는 각 약물에 현실적인 사건을 약물 별로 나누어서 구분하고 그에 따라 사건을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그리고 그 약물에 대한 심층적인 설명도 했다. 그래서 평소에 약물에 대해 잘 몰랐었던 나에게는 이번 기회에 평소에 몰랐었던 약물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비소, 부자, 크레졸, 시너 등은 처음 들어오는 약물이었는데 이 책에서 그에 대한 설명을 보니 이해하기 쉽고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이 책을 통해서 '법의학' 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에 알게 되기도 하였다. '법의학' 이란 의학분야를 제도화 시켜서 다루는 학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우에노 마사히코는 법의학 에서는 우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고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생명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야 시체나 사체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체나 사체를 보고도 생명을 경시하는 경향이 발생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는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 법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더불어서 감찰의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사건이 발생하면 시체나 사체에 대해서 감시나 부검을 해야한다. 감시나 부검을 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없고, 흐지부지하게 사건을 종결하고 만다. 이 점을 또한 작가는 중시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는 '독살' 이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분류해서 그에 따라서 독살과 관련된 직종을 가진 사람이 할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크나큰 특징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중에 의학 중에서도 특히 법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목 처럼 이 책은 일본에서 발생했던 독살 사건들에 대해 법의학의 시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아직 '법의학' 이라는 분야가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히 들리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학문의 중요성을 알고 인식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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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미스터리 비밀을 벗다
    jeneroad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세계의 미스터리 비밀을 벗다 저자 : 실비아 브라운 출판사 : 정신세계사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초능력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외계인이 언젠가 갑자기 나타나 지구를 침공하지는 않을까? 이 책은 그러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근거가 과학에 있지 않음은 우선 알아둬야 하겠다.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완벽히 신비주의적이고 비과학적인 근거들로 가득차 있다. 그녀는 이 책의 초반부에서 스톤헨지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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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세계의 미스터리 비밀을 벗다
    저자 : 실비아 브라운
    출판사 : 정신세계사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초능력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외계인이 언젠가 갑자기 나타나 지구를 침공하지는 않을까? 이 책은 그러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근거가 과학에 있지 않음은 우선 알아둬야 하겠다.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완벽히 신비주의적이고 비과학적인 근거들로 가득차 있다.

    그녀는 이 책의 초반부에서 스톤헨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녀는 직접 스톤헨지를 방문하여 그것의 비밀을 캐내었다는데 그 방법이 심히 의심스럽다. 우선 그녀는 가볍게 손을 대고 '사이코메트리'를 하였다고 한다. '사이코메트리'는 어떤 물건에 손을 대면 그 물건에 대한 정보가 영상으로 보인다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어쨌든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스톤헨지에 담긴 역사를 영상으로 본 그녀는 그녀와 항상 함께 있다는 '지도령 프랜신'에게 설명을 듣기도 한다. 그녀가 말하는 지도령은 만화책이나 영화에서나 나오는 수호천사 비슷한 개념인 듯하다.

    사이코메트리, 지도령은 책의 후반부까지 계속 등장한다. 그녀는 아무런 물질적 근거가 없어도 "프랜신은~라고 말했다"라고 하면서 모든 것들을 설명한다. 물론 프랜신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그녀만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인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실비아는 'www.world-mysteries.com'이라는 미스터리 사이트의 내용을 자주 인용하는데 과연 그런 사이트의 자료가 신빙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실비아 브라운의 유명한 저서인 '대예언'이 있다. 이것은 2008-2080년 사이에 일어날 일들을 그녀가 예언한 책이다. 거기엔 일본이 망한다는 내용도 있고 미국의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내용도 있다.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에 비하면 훨씬 강도가 약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미래를 예언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울만 한 내용이다.(올해 안에 에이즈 백신이 발명된다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예언이 현실이 되든 안되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신빙성 있게 예상했다는 점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인가. 온갖 신비주의로 점철되어 있을 뿐 보통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만한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녀는 '지도령 프랜신'이 그녀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합당하다고 생각한 걸까? 내가 보이게는 이 책에서 다룬 어떤 미스테리보다도 그것이 더욱 미스터리인듯 하다. 올해 에이즈 백신이 발명된다면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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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수양버들 | 2005년 08월 24일
    도서제목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저자 : 최규석 출판사 : 길찾기 만화는 그림과 언어의 예술이다. 문학과 그림이 예술로써 높이 평가받고 있다면 언어와 그림이 보완관계인 만화 역시 예술로써 비준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다만, 문학이나 미술작품이라해서 모두 예술이라 할 수 없는 것 처럼, 모든 만화를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몇 장을 넘기다 작가 약력을 살펴보았다. 77년생 아직은 세상에 찌들기엔 이른. 그래서인지 그 표현 방식이 과감하고 충격적이다. 서릿발 같은 관찰력, 극에 닿은 상상. '내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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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제목 :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저자 : 최규석
    출판사 : 길찾기

    만화는 그림과 언어의 예술이다. 문학과 그림이 예술로써 높이 평가받고 있다면 언어와 그림이 보완관계인 만화 역시 예술로써 비준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다만, 문학이나 미술작품이라해서 모두 예술이라 할 수 없는 것 처럼, 모든 만화를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몇 장을 넘기다 작가 약력을 살펴보았다. 77년생 아직은 세상에 찌들기엔 이른. 그래서인지 그 표현 방식이 과감하고 충격적이다. 서릿발 같은 관찰력, 극에 닿은 상상. '내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면 그를 예술가라 불러도 좋을까, 최규석은 ‘작가의 말’에 젊음만큼이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낸다.
    자아실현, 사회참여, 고차원적 소통, 남 위에 서기, 칭찬듣기, 정신적 노출증... 이런 고상하거나 혹은 세속적인 많은 부모들에게 태어나기 했지만 그것들과 관계없이 이 책 속에는 읽히기를 바라는 저의 간절한 마음과 그것을 위한 노력만이 들어 있습니다.
    작가의 사고 깊이 보다, 독자가 더 큰 감동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독자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솔직했지만 나는 그를 예술가라 부르기를 보류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 살과 피를 만든다는 것에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유지하는 한, 이런 죄책감은 금새 사라지고 적당한 타협으로 변명을 만들어낸다.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허접 쓰레기 같은 인생이나마 지탱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희생이 따른다. 콜라맨을 밟고 일어선 소년이 그렇고, 명랑만화가 끝난 공룡 둘리 친구들이 그렇다.

    최규석의 작품은 극에 닿아 있다. 다음에 올 것은 희망 밖에 없다. 그러나 결코 섣불리 희망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여기가 끝이라고 한계점(한계점이라 말하고 싶은)을 찍어 놓는다.

    그 중 한계점마저 발견되지 않아,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작품이 있다. ‘리바이어던' 배고 푼 백성을 알지 못한 착한 왕을 몰아내고 청년이 등장한다. 청년은 영웅답게 스스로 왕이 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 줄 ‘리바이어던’을 새 왕으로 모셔온다.

    '리바이어던'이란 구약성서 《욥기(記)》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永生)동물의 이름이다. 최규석은 리바이어던에서
    왕이 된 리바이어던은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착한 마음”을 받은 백성들은 리바이어던이 시키는 것을 그대로 따르기만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라 했는데 그림 속에 나타난 ‘리바이어던 눈’의 실체가 좀 아리송하다. 영생동물(리바이어던)을 홉스는 교회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국가라는 했다. 그러나 최규석의 '리바이어던의 눈'은 조종자이고 감시자이다. “착한마음”은 종교적 세뇌이거나 국민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선, 덕, 인간애 따위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리바이어던의 어원이 어떠하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배권(국가)으로부터 강요되는 “착한마음”에 있다. 사람들은 “착한마음”으로 무장하여 분노를 억누르고 행복을 가장한다. 그들은 지능화된 폭력 앞에서 외곡된 거짓 미소에 익숙하다.

    이 작품에 절망하는 이유는 인류역사가 잉여생산 발생 이후 계층 간의 갈등이 계속 되어 왔다는 대에 있다. 영웅이 나타나 혁명을 이룬다 해도 권력은 또 다른 권력으로의 이양일 뿐 하층민은 언제나 누군가의 지배와 조정아래 살아야 했던 것이다. 젊은 혈기는 개혁을 꿈꾸지만 지배구조는 축이 되어 빙빙 돌 뿐 축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나의 생각들은 작가의 그것과 좀 멀리 와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가 세상을 자기식대로 읽고 표현 했다면,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내식대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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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을 읽고
    ananhj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저자 : 안상헌 출판사 : 북포스 나는 좋은 책은 두 번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작가에 의해서 한번은 독자에 의해서다" '나는 어떤 독자인가.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가. 단지 책이 나에게 ‘좋은 책‘ 이기만을 바라는 건 아닌가. 나의 책 읽기는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좋은 책을 거듭 나게 할 수 있는가..나는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골수를 취할 수 있는가' 한참을 생각 해 보았다.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내게 인터넷의 화려한 클릭을 격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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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저자 : 안상헌
    출판사 : 북포스


    나는 좋은 책은 두 번 만들어 진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작가에 의해서 한번은 독자에 의해서다"<5.자신만의 밑줄을 그어라 중에서>


    '나는 어떤 독자인가.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가. 단지 책이 나에게 ‘좋은 책‘ 이기만을 바라는 건 아닌가. 나의 책 읽기는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좋은 책을 거듭 나게 할 수 있는가..나는 책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골수를 취할 수 있는가' 한참을 생각 해 보았다.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내게 인터넷의 화려한 클릭을 격찬하며 종이책이란 이제 박물관에나 전시되고 말 유물 취급하며, 책을 끼고 사는 사람들을 시대를 거슬러 퇴행하는 사람쯤으로 안쓰러워했다. 그는 다시 의기양양하게 덧붙이기를 "학생들의 교과서마저도 사라 질 것이다. 머잖아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선생님은 컴퓨터를 통하여 모니터로만 공부한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책읽기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으며, 이제 책읽기는 더 높은 비중으로 점수와 연결되어 버렸다. 또한 <책을 위한 책들>이 최근 몇 년간 많이 나왔으며, 인터넷에서 폼 나고 똑 부러지게 글 쓰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책까지 소비자(?)입맛에 맞게 다양하게 나오는 책들 앞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거듭 탄성을 지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몇 년 새, 책은 참으로 다양해졌으며 개성이 뚜렷해졌다. 책을 위한 책들도 많이 보이고, 글을 쓰기위한 책도 많이 나오며, 이런 인터넷 공간에서 공감의 애정으로 탄생한 책까지, 누구나 자기의 전공 분야에서 애정과 열정이 뒷받침되면 다시 책으로 만나질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의 수다스러움-사는 이야기나 개인 블로그의 일상 이야기-그 속의 진솔까지도 애정이 깃들어 있다면 책이 될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우리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맘껏 향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이 좋아 책을 늘 끼고 살며 책읽기에 전문적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읽기에 대한 여러 각도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책에 미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그리고 책이 좋아서 책에 미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또한 책과 사귀고 싶지만 막연히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책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그 길잡이라고 해도 좋겠다.

    "책읽기, 그 내공을 쌓는데 훌륭한 길잡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가급이면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는 법, 가급이면 같은 책을 읽더라고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읽어 나가며 자기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 좋은 책을 읽었으면 나만의 글로 만들어 보는 것,...말하자면 책에 미치더라도 제대로 미치자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잡기 중에서 책으로 시간 보냄을 제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좀 더 적극적인 방식과 안목을 제시하여 주는 책이다.

    고백하건대, 그간 책이라면 어지간히 달려들어 볶아대며-밑줄 긋고, 떠오르는 생각들도 수없이 적어가며, 이리 저리 끌고(? 들고)다니며- 보았음에도 나의 책 읽기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이 책 속에서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지금은 다른 책을 읽는 중에 곁들여 틈틈이 수시로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 다시 보면 또 다른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결국은 절대로 책장에는 꽂아지지 못할 성 싶다. (가까운 곳에 두고두고 자주 보기를 희망하는 책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모두 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시하는 50가지 주제마다 달고 있는 부제가 좀 더 구체적인 책읽기 그 실천 방법이다. 그리고 각장마다 저자의 독서노트가 들어 있는데 한 작품에 대한 짧지만 함축적인 메모에서 얻어지는 것들도 많다. 저자의 풍부하고 다양한 상식을 곁들인 내용들은 전체적으로 쉽다.

    혹자는 물을지도 모른다."책읽기도 생산적이어야 할까? 그냥 좋으면 읽고 감동하고 말면 그만이지. 재미있으면 그걸로 된 것이지. 나는 전문가도 아니고 뭐가 될 것도 아니면서 그냥 일반 독자일 뿐인데 재밌으면 되는 거 아냐?....". 맞다 책읽기는 그냥 우선 재미있어야 하며 읽는 동안 기분 좋고, 읽고나서 기분 좋으면 그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꼭 그럴까?.아니 가급이면 책을 읽으며 좀 남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 자기만의 남다름을 이 책은 바라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 널려있는 정보는 무한하다. 이 책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몇 번이고 재탄생 할 수도 있고 묻혀버릴 수도 있다. 누구나 활용하기 나름 일 것이다. 이 책은 뭐 거창하게 어떤 용어들을 쓰지도 않는다. 그냥 저자의 순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뿐 인데 왜 자꾸만 매력이 느껴지는 걸까? 선택하여 느끼는 사람의 몫으로 돌린다.

    각 주제마다 곁들여 둔 독서노트도 꽤 쏠쏠하다. 나도 한때 보았던 책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책도 만난다. 저자보다 내 스스로 훨씬 멋있게 정의 내려버린 책도 만나며, 나는 이 생각을 왜 못했던가 싶어지고 짧게 메모해 둔 노트에 감탄도 하고, 그러면서 역시 나는 책에 미쳐 사는 보람을 인생최대의 행운으로 오늘도 자족한다. 그리하여 다시 들볶아대며 책을 만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책에 메모를 하거나 줄을 긋는 것이 책을 망치기라도 하는 양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룬다. 각자 개성이겠지만 책을 지나차게 소중하게 생각해서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비싸고 좋은 술 술을 장식장에 진열만 해놓아서는 술의 진정한 맛을 음미할 수 없다. 꺼내서 마셔봐야 술맛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에서>"


    저자의 말처럼 나에게 좋은 책이란 밑줄을 긋고, 다시 거듭 그어가며, 관련한 것이 생각나면 메모해 두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여백에 몇 줄 생각나는 안부 글이라도 적어보고...일도 해야 하고 책도 마음에 맴돌고 일 하는 틈 틈에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며, 들볶아가면서 보는 책...이런 책을 나는 좋은 책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진즉에 나에게 속내를 들켰는데, 여전히 들볶아대기를 틈나는 대로 하고 있는 그런 책이다. 좋은 책이란 또한 수시로 펼쳐 들기를 희망하는 그런 책일 것이다. 문득 펼친 페이지에서 또 다른 것을 알아지게 하는 책....펼칠 때마다 새로운 내용에 다시 밑줄을 긋고 그었다. 수많은 밑줄 긋기에서 자기 발전으로 가급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것, 무엇보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것인데 그 활용법이 이 책 어딘 가에 있었다. 앞으로 종종 펼쳐 들기를 게을리 하지 않을 책이다.

    문득 다시 펼쳐 든 페이지는 홀로서기 50이라는 독서 노트다. 현재 국민연금관리공단 GS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며 기업 등에서 강의중인 저자는 강의 안을 만들거나 어떤 주제로 고민할 때 책을 참고삼는다고 한다. 어떤 일에나 자신만의 키워드가 필요함을 말하며 책읽기에도 자신만의 키워드의 필요함을 강조한다. 자신만의 키워드를 통하여 다른 사람의 지식과 경험, 생각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책읽기를 혁신함이라.

    "안상헌...'책 읽기는 자신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다'. 현실을 벗어난 공허한 메아리 같은 책읽기를 탈피하고 자신의 생활과 책읽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가는 것이 그가 책을 읽는 이유다<책표지 저자 소개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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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수한 그리움의 발자국
    zipge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그림자 소묘 저자 : 김인 글, 그림 출판사 : 새만화책 콘테는 연필이나 목탄보다 진하고 윤기가 있고 무른 결점이 있지만 빛과 음영의 변화나 양감과 공간 관계를 표현하는 데 더없이 적합한 미술 도구라고 한다. 《그림자 소묘》는 보통 펜과 스크린 톤으로 그려지는 다른 만화들과는 달리, 바로 콘테와 붓으로 그려졌다. 그만큼 책 속에는 음영도 많지만 빛 또한 풍성하다. 그늘이 드리워져야 할 곳들에 제대로 짙은 음영이 묘사되어 있어, 빛이 그토록 눈부신가 보다. 《그림자 소묘》는 〈내 마음의 지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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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그림자 소묘
    저자 : 김인 글, 그림
    출판사 : 새만화책


    콘테는 연필이나 목탄보다 진하고 윤기가 있고 무른 결점이 있지만 빛과 음영의 변화나 양감과 공간 관계를 표현하는 데 더없이 적합한 미술 도구라고 한다. 《그림자 소묘》는 보통 펜과 스크린 톤으로 그려지는 다른 만화들과는 달리, 바로 콘테와 붓으로 그려졌다. 그만큼 책 속에는 음영도 많지만 빛 또한 풍성하다. 그늘이 드리워져야 할 곳들에 제대로 짙은 음영이 묘사되어 있어, 빛이 그토록 눈부신가 보다.

    《그림자 소묘》는 〈내 마음의 지도〉와 〈그림자 소묘〉 두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빛처럼 밝고 부드럽고 질박한 시골 소녀 ‘주희’와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투명해진 서울깍쟁이 소녀 ‘정원’의 따뜻한 우정과 자기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내 마음의 지도〉에서 늘 길을 잃고 헤매던 주희는 ‘내 마음의 지도’를 완성함으로써, 〈그림자 소묘〉에서 정원은 더 이상 길을 헤매지 않게 된 주희와 ‘주파수’를 맞춰가면서 잃어버린 그림자를 되찾고, ‘서울’이라는 현실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든든히 새겨 넣는다.

    여기에서 콘테와 붓이 아주 효과적으로 쓰인다. 명암과 질감이 뚜렷하게 그려지는 콘테는 정체성의 회복을, 투명하게 그려지는 붓은 정체성의 상실을 표현한다. 〈내 마음의 지도〉에서 주희는 콘테로, 주희에게 낯선 서울은 붓으로 그려졌으며, 〈그림자 소묘〉에서 정원은 붓으로 그려지다가 주희를 만나는 순간부터 콘테로 그려졌다. 콘테의 명암과 질감은 주희와 정원, 그리고 서울에 존재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두 단편 중에서 〈내 마음의 지도〉는 만화가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내 깊은 그리움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내 마음의 지도〉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주희가 막내이모를 따라 그림 공부를 하러 서울로 상경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짙푸른 숲과 들판이 있는 곳에서 시시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가롭고 평화롭게 자란 주희는 ‘길바닥이 숫제 사람 머리통으로 새까만’ 서울에서 걸핏하면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이다. 주희는 그 많은 ‘번듯한 미술 학원’ 다 두고, ‘구들짝에서 귀신 나게 생긴’ 허름한 화실이 마음에 쏙 든다. 화실 앞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강아지풀에까지 물을 주는 화실 선생님의 모습에 홀딱 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희에게는 화실 가는 길을 익히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주희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었으니, 황량한 서울 바닥에서 양옥집 대문 위에 자라는 상추, 전깃줄을 따라 덩굴을 뻗은 호박, 어느 집 앞 화분에 심어져 있는 토란, 주차장에 서 있는 오동나무 등등이었다. 주희는 그것들을 따라 이정표를 세우며 화실까지 가는 ‘내 마음의 지도’를 만든다.

    그 지도 안에서는 주희의 눈에 띈 상추며 호박, 토란, 오동나무 등등이 실제보다 비정상적으로 크게 그려지지만, 그 대담한 구도가 〈내 마음의 지도〉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이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근원적인 ‘고향’의 자연이 그리워진다. 각박한 시간 속에서 마법처럼 진한 향수(鄕愁)에 젖어들게 된다. 시골 우리 집에 있는 석류 나무, 자두 나무, 배 나무, 단감 나무, 복숭아 나무, 포도 나무, 그리고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 또 우리 집에까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옆집 모과 나무가 그립다. 어디 그리운 게 한둘인가. 우리 엄마 젖가슴도 무지 그립다. 또 내가 우리 집에 갈 때마다 바뀌어 있는 누렁이들도 너무나 그립다. 주희의 ‘내 마음의 지도’는 내 영혼이 진정으로 머물고 싶어하는 곳까지 무수한 그리움의 발자국을 찍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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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는 인간 죽어도 안 걷는 인간
    ananhj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걷는 인간 죽어도 안 걷는 인간 저자 :하우석 출판사 :거름 "걷기는 나에게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은 선물을 안겨 주었다. 86킬로그램이었던 뚱뚱한 몸은 68킬로그램의 날렵한 몸매로 변신했다. 무려 18킬로그램이나 체중이 준 것이다. 불룩 튀어나왔던 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허벅지와 엉덩이에서 출렁이던 물살들도 사라졌다. 터질 듯 빵빵하던 얼굴도 턱 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몸이 정말 가벼워진 걸 매분, 매초 느낄 수 있었고, 그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걷기는 나를 끔찍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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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걷는 인간 죽어도 안 걷는 인간
    저자 :하우석
    출판사 :거름


    "걷기는 나에게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은 선물을 안겨 주었다. 86킬로그램이었던 뚱뚱한 몸은 68킬로그램의 날렵한 몸매로 변신했다. 무려 18킬로그램이나 체중이 준 것이다. 불룩 튀어나왔던 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허벅지와 엉덩이에서 출렁이던 물살들도 사라졌다. 터질 듯 빵빵하던 얼굴도 턱 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몸이 정말 가벼워진 걸 매분, 매초 느낄 수 있었고, 그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걷기는 나를 끔찍이도 괴롭혔던 만성두통과 위장병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오후 세 시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두통, 그리고 늘 쓰리기만 했던 속, 그것들 역시 나태함에서 온 자생적 문제였음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책 속에서>

    "체중감량에 대한 책이니까 '미용, 다이어트' 책이 아니겠느냐 생각이 들고. 또 어떻게 보면 자기를 온전하게 들여다보는 자기개발의 모티브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기개발서가 아니겠느냐." 의 두 의견으로 서점마다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이 책은 코너를 달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저자는? 당연히 자기개발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밝히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어떤 일시적인 열풍에 편승하여 우선 돈벌이에 치중한 나머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보기 좋게 짜깁기한 책이 결코 아님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 앞에 있었던 워킹법 관련 책들과 비슷하려니 우선 제쳐버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에게 건강, 다이어트 관련 책은 사실 넘쳐 난다. 물론 '걷기'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진즉부터 거론되어왔기 때문에 '걷기'에 대한 책도 많다. 또한 계속되고 있는 '웰빙'과 함께 건강 관련 책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 ‘자기 개발’ 면이 강하다. '건강'이 목적이지만 분명 자기 개발이 우선이다. 이 책을 함께 읽게 된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대답하기를.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몰라? 그런 걷는 것에 대해 무조건 방법이나 목표치를 무작정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자기 자신에게 신념을 갖게 하니까 자기 개발이 맞지 않을까?"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or infirmity).” 그렇다. 건강은 수많은 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최우선으로 강조해 온 말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누구나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건강하지 않는가. 건강하고 싶은데 왜 건강하지 못한가.

    "인간은 원래 하루 종일 걷는 동물이었다. 원시시대를 떠올려 보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동물사냥을 하거나 열매를 따러 돌아 다녀야 했다. 또 먹잇감의 이동을 쫓아서 엄청난 거리를 걷고 또 걸어야만 했다. 걷는 것은 생존 자체였다. 걷지 않는다는 것은 곧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갓난아기가 아닌 다음에야 걷지 않는 사람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뿐이었다....<책 속에서>"

    걷는 다는 것은 ‘즉, 산다.’는 것임에도 우리는 '왜' 선뜻 걷지 못하고 있는가. 걷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 '왜' 걷는 것 앞에 게을러지고 마는가. 걷다가 '왜' 주저앉고 마는가. "왜?...." 이런 저런 방법이나 효과만 나열하여 제시하는 일부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왜'에 중점을 두고 걷는 인간에게 합류하는 신념을 일깨운다.

    걷기가 주는 행복감 중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느 순간 경험하는 ‘또 다른 나’와의 대화이다. 즉, 걷다 보면 어느 샌가 감추어진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는 그 내면의 목소리와 때로는 차분하게, 때론 흥겹게 대화를 나눈다. 그런 대화를 통해서 나는 나를 한번 돌아보게 되고, 내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게 되며, 나의 앞날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걷기가 주는 또 다른 행복은 세상과 나누는 대화다. 세상이 보여 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세상은 대답을 해 주기도 하고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그러나 침묵도 대화의 한 방법이니까 그것도 좋다. 내가 나누는 세상과의 대화는 무엇을 얻으려는 게 아니다. 그저 대화하는 것이 목적의 전부인 것이다.<책 속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들은 모두 걷는 것의 전형적인 모델들이었다. 그들의 사유의 장은 걷는 것에서, 걷는 길에서였다. 그들은 걸으며 사색을 하였고 영감을 얻어 냈으며, 즉 걷는 것은 그들 자신이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고 루소가 그랬으며 칸트도 그랬다. 칸트는 매일 오후 그 시간에 그 자리를 걷는 인간으로 유명하다. 또한 독일의 관광 명 코스 중에는 '철학자의 길'이 있을 정도다. 이 철학자의 길에서 헤겔과 야스퍼스, 괴테 등 많은 문인들이 사유하며 걸었고, 음악가들도 걸으며 그 영감을 얻어내기도 하였다.

    '걷는 인간' 하우석은 이 책에서 자신 있게 말한다. 걷기 시작하며 자신의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으며 이제는 걷기를 기준으로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고. 자신의 모든 계획과 아이디어는 걷는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도 어떤 계획안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으면 일단 걷는다고 한다. 걷는 인간과 죽어도 안 걷는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은 확연히 다르며 미래 또한 하늘과 땅만큼 서로 달라 질것이라.

    운동이라고는 숨쉬기운동뿐이었다. 그런 무기력 속에서 무기력은 되풀이 되었다....어느 날 우연히 시작한 걷기로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 사소한 시작에서 얻어 낸 결과는 너무 위대하며, 때문에 단 10명의 독자에게라도 꼭 알리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밝히는 이 책의 에필로그는 9페이지로서 다소 길다.

    마지막 5부에서 제시하는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걷는 인간'이 되는 9단계 프로젝트는, 막연한 방법이나 계획이 아니라 누구나 앞장(1부에서 3부, 그리고 4부의 '걷는 인간'에 합류한 경험자들 이야기)에서 제시한대로 걷는 것의 제대로 된 가치를 알면 쉽게 해볼 수 있는 목표와 실천방법들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걷는 것'의 가치를 크게 두고 있다. 영국이나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는 걷기 대회가 연일 열리고 있으며 세계 의학계는 걷기를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마사이족의 걸음이 제일 진보적인 것이라는 의학적인 결과까지 제시하며 세계는 그야말로 이 '걷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내 스스로 물어 본다. 당신은 걷는 인간인가? 아니면, 죽어도 안 걷는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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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 밑에 살아가는 작고 여린 것들에 관한 느낌
    littlechr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작은 것들의 눈부신 이야기 저자 : 손광성 출판사 : 눈빛 땅 밑에 살아가는 작고 여린 것들에 관한 느낌 일곱 살 때 내가 본 바다는 하나의 경이였다. 스물이 되었을 때 바다는 어느새 늘 함께 하고 싶은 갈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제 노년의 고갯마루에서 지금 나는 다시 나의 바다를 본다. 바다는 그의 젊음으로 내 나이를 지우고 그의 커다란 눈물 속에 나의 작은 눈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는 그의 품 안에 나의 존재마저 말없이 보듬는다. 이는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 씨가 펴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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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작은 것들의 눈부신 이야기
    저자 : 손광성
    출판사 : 눈빛


    땅 밑에 살아가는 작고 여린 것들에 관한 느낌

    일곱 살 때 내가 본 바다는 하나의 경이였다. 스물이 되었을 때 바다는 어느새 늘 함께 하고 싶은 갈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제 노년의 고갯마루에서 지금 나는 다시 나의 바다를 본다. 바다는 그의 젊음으로 내 나이를 지우고 그의 커다란 눈물 속에 나의 작은 눈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는 그의 품 안에 나의 존재마저 말없이 보듬는다.


    이는 수필가이자 동양화가인 손광성 씨가 펴낸 화문집 《작은 것들의 눈부신 이야기》(눈빛.2005)에 나오는 글이다.

    함경남도가 고향인 그는 6.25때 월남하여 문학에 몸을 담았다가, 교편을 잡고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렇지만 결코 미술에 대한 뜻을 꺾을 수 없어서 나이 마흔이 넘어서 다시금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얼마 전에는 산뜻한 개인전도 두 차례나 가진 바 있다.

    그가 쓴 글이야 《달팽이》나 《나도 꽃처럼 피어나고 싶다》를 읽어만 봐도 얼마나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썼는지 알 수 있다. 이번에 그가 펴낸 화문집 속에 담긴 글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정갈하면서도 무언가 깊은 뜻을 생각토록 해 주는 글이 많이 담겨 있다.

    가시가 돋쳤다고
    미워하지 마세요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랍니다
    혐의 같은 건
    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의심을 받아야 한다면
    보이는 가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시가 아닐까요
    사람의 혓바닥을 보실래요
    아주 나긋나긋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날름거리고
    외국어 발음도 유창하고
    당신을 꼬실 수도 있습니다
    키스 한 방에 당신을 날려 보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가시돋친 독설이 되어
    당신의 가슴을 찔러대고
    기억에 아픈 상처를 남길 겁니다
    독설은 피 없이 사람을 죽입니다
    이제 아셨나요
    보이는 가시보다 무서운 건
    보이지 않는 가시란 걸.
    (‘선인장의 항변’전문, 40쪽)



    참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다가오는 시 한편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린 그림들은 또 어떠한가. 위에 있는 선인장 그림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가 그린 그림들은 정말로 맑고 곧고 따뜻하다. 요란하지도 않고 거칠지도 않다. 그저 단아하고 청순하다.

    뭐랄까. 화장을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곱고 아름다운 그런 수줍은 새색시 같다고 해야 할까. 강렬하지는 않지만 뭔가 마음 한 구석에 오래도록 남을 그런 그림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소재 또한 거창하지 않다. 세상에 이름난 곳이나 기암절벽 같이 멋들어진 곳이 아니다. 수려한 산자락도 하늘로 쭉 뻗어 있는 고층 건물도 아니다. 그저 꽃과 새와 달팽이, 선인장과 금붕어와 수박 같은 것들이다. 땅 밑에 살아가는 작고 여린 것들이다.

    그런 그림들과 짧지만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글들이 여유롭게 들어 차 있는 이 화문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네 가지 틀로 짜여 있다. 아마도 동양화가답게, 우리나라 사계절을 깊이 생각해보자는 그런 뜻에서 짠 것 같다.

    그 가운데, ‘양귀비꽃 전설’이라든지 ‘달개비와 바랭이 혼사’ 같은 글은 짧지만 정말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고, ‘여우사냥’ 같은 글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그 모습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재미있다.

    함경도가 고향 땅인 그는 다른 꽃과는 달리 ‘동백꽃’을 대할 때마다 그 느낌만큼은 남다르다고 한다. 그에게는 동백꽃이 경이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린시절에 그가 봤던 동백꽃은 실물이 아니라 집안 벽장문 속에 붙어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6.25때 월남하여 피란살이를 할 때에 봤던 그 동백꽃은 그림이 아니라 정원 속에 살아 있는 실물이었고, 그 색깔이 그림 속에 담겨 있는 동백꽃과는 달리 너무나 불붙듯이 강렬했다.

    그래서 그토록 경이로웠지만, 그러나 그 동백꽃을 볼 때면 자기가 살던 고향 땅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와 있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는 까닭에,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 붉은 꽃은 나에게 있어 경이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촘촘한 꽃술과 그 끝에 보주처럼 달려 있던 노란 꽃 밥들이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낯선 꽃으로 해서 나는 내가 살던 고향으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매우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낯선 세계의 꽃이기도 했다.(75쪽)


    아무쪼록, 작고 여린 것들 속에서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고, 또 그것들 속에서 멋진 동양화 한 폭도 함께 감상하고 싶다면 이 책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이 책에 담겨 있는 그림과 글들은 결코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위대하고 웅장한 것들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땅 밑에 살아가는 너무나도 작고 여린 것들에 관한 느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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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르미도르
    zipge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테르미도르 저자 : 김혜린 글, 그림 출판사 : 길찾기 프랑스대혁명은 절대 권력, 신분 사회, 봉건 체제를 해체하고 ‘자유∙평등∙박애’ 정신에 기초한 정치혁명이요 사회혁명이요 계급혁명으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혁명이라는 데 누구나 주저 없이 동의한다. 프랑스대혁명은 자유와 혁명 정신의 위대한 영광을 상징한다. 학창 시절, 내가 프랑스대혁명의 원인과 결과, 영향, 역사적 의의를 달달 외워야 했던 것도 그 영광만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도 그 영광 뒤에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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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테르미도르
    저자 : 김혜린 글, 그림
    출판사 : 길찾기


    프랑스대혁명은 절대 권력, 신분 사회, 봉건 체제를 해체하고 ‘자유∙평등∙박애’ 정신에 기초한 정치혁명이요 사회혁명이요 계급혁명으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혁명이라는 데 누구나 주저 없이 동의한다. 프랑스대혁명은 자유와 혁명 정신의 위대한 영광을 상징한다. 학창 시절, 내가 프랑스대혁명의 원인과 결과, 영향, 역사적 의의를 달달 외워야 했던 것도 그 영광만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도 그 영광 뒤에 피를 흘리며 스러져간 영혼들의 상처와 아픔과 외로움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테르미도르》는 프랑스대혁명의 위대성을 찬미하기보다 그 영광을 이루기 위해, 위대한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무수한 살육과, 시대의 변화와 이념의 맹목성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자들의 뼛골 스미는 아픔과 지독한 외로움을 상처받은 영혼 ‘유제니’를 통해 그려냈다.

    ‘테르미도르’는 프랑스대혁명의 정점기였던 열월(熱月)을 의미한다. ‘자유’라는 이상을 추구했던 혁명 정신조차 광신적인 ‘혁명’에 휘둘려 점점 과격해지고 무자비해졌으며 잔혹해졌다. 혁명은 피를 불렀고, 그 피는 또 다른 피를 불렀으며, 또 다른 피는 수많은 다른 피들을 불렀다. 혁명이 내세운 고결한 이상은 피비린내 아래 근사한 허울이 되고 무고한 피까지 부르는 명분이 되었다. 혁명은 혁명 자체를 유지하려다가 혁명에 배신당했다. 그렇게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시시각각 다가왔다.

    유제니는 그 혁명의 미친 소용돌이 한가운데 뛰어들었다. 그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귀족이 되기 위해서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생부, 그로 인한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린 어머니, 생부를 죽여달라는 어머니의 악다구니……. 생부에 대한 증오는 곧 귀족에 대한 분노였으며, 유제니가 단 한 번의 의심 없이 혁명 투사로서 행동대원이 되어 두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너무도 순수한 신념이었다. 그의 때 묻지 않은 혁명 정신은 그를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그는 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정작 혁명은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작은 위안조차 되어주지 못했다. 유제니는 언제나 칼날 같은 혁명의 선두에 있었지만 늘 고독했다. 늘 상처받고 있었다. 늘 아픔으로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격변의 시대가 유제니를 배반했고, 삶의 의미였던 혁명이 유제니를 배반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내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배반의 끝에 피어 있을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시대가 급격하게 변하고 허물어질 때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무수한 배반의 꽃이 피고 진다. 그 배반의 대상은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 구시대의 지배계층도, 피지배계층도 모두 희생당한다. 새시대의 영광은 그 무수한 희생 위에서야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그러기에 영광의 이면은 너무나 쓸쓸하다. 희생된 자들이 영광을 이루어냈으나 그것을 누리는 주인은 그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 줘야 한다. 한시도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테르미도르, 그것은 꽃과 길로틴이 공존하는 계절. 그리고 지금은 슬픈 울림을 남긴 채 세월의 지평으로 사라진 이름. 태양의 계절, 테르미도르. 나는 피빛의 꽃잎들이 눈물처럼 후둑후둑 지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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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vinus36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저자 : 사이먼 본드 출판사 : 거름 얼마전 개그콘서트에서 "그까이 꺼 대충'맨이 자유여신상을 두고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저 혼자 처 먹겠다고 아이스크림 높이 쳐 들고 있는..."이라는 말이다. 이 책을 보며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싱글싱글 웃으며 읽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지? 모든 사물을 고양이로 바꿔서 표현해 본 작가의 센스와 감각을 칭찬해주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죽은 고양이로 박제를 만들고 냉동을 시켰다해도 그렇지 불에다 들이대면 털 타는 냄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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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저자 : 사이먼 본드
    출판사 : 거름


    얼마전 개그콘서트에서 "그까이 꺼 대충'맨이 자유여신상을 두고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저 혼자 처 먹겠다고 아이스크림 높이 쳐 들고 있는..."이라는 말이다. 이 책을 보며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싱글싱글 웃으며 읽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지? 모든 사물을 고양이로 바꿔서 표현해 본 작가의 센스와 감각을 칭찬해주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죽은 고양이로 박제를 만들고 냉동을 시켰다해도 그렇지 불에다 들이대면 털 타는 냄새는 누린내는 어쩔 것인가? 그냥 참어? 죽은 고양이를 통째로 써 먹을 수도 있고 발목을 댕강 댕강 잘라서 써 먹을 수도 있는 것을 보며 작가의 센스는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비위가 약해서 읽기 좀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혹시 그림만 보고 '자살토끼'의 귀여움을 생각하시지는 말 것! 이 책은 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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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ananhj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편지(원제 Success Secrets ) 저자 : 리차드 웹스터 출판사 : 재인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정말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그 때 내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 했다. 나는 내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되었고 오래전 잃어버린 꿈, 열정, 신뢰, 사랑...나의 모든 것을 되찾게 되었다. 내가 그 한통의 편지를 열어 본 순간은 바로 인생의 성공의 비밀을 엿본 순간이었다." '에릭은 사무실 의자에 털썩 앉으며 눈을 감았다....' 이 짧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여 '...네빈 선생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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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편지(원제 Success Secrets )
    저자 : 리차드 웹스터
    출판사 : 재인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정말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그 때 내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 했다. 나는 내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되었고 오래전 잃어버린 꿈, 열정, 신뢰, 사랑...나의 모든 것을 되찾게 되었다. 내가 그 한통의 편지를 열어 본 순간은 바로 인생의 성공의 비밀을 엿본 순간이었다.<책 속에서>"

    '에릭은 사무실 의자에 털썩 앉으며 눈을 감았다....' 이 짧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여 '...네빈 선생님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으셨어요.'로 끝난다. 한 중견회사의 세일즈맨인 에릭은 '인생 최악의 순간'에 날아든 편지 한통으로 잊고 살았던 꿈을 다시 생각하고 그 꿈을 향한 열정을 찾는다.

    에릭의 상황은 삶의 비전과 열정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 같고, 불황의 깊은 늪만 같다. 영업 실적은 더 이상 진전이 보이질 않고 아내와의 사이마저 불협화음인데 자신의 잘못과 무관하게 동료마저 회사의 가장 큰 거래처를 부주의로 놓치고 만다. 자신의 문제로도 허덕이는 날들인데 동료들의 문제로 이젠 그나마 직장에서도 위기에 몰리고 있는 에릭에게 어느 날 한통의 편지가 온다.

    '인생의 최악의 순간 한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달라졌다....'그랬다. 이 편지는 꿈 많은 소년기에 반짝이는 꿈을 갖게 해주었던 역사 선생님 프랭클린 네빈이 보낸 편지였다. 삶의 최대 위기이자 슬럼프에서 단지 다른 직장으로 이동 한다는 등의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위기에서 도망치려는 에릭에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선생님이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에릭, 자네의 꿈들, 자네가 하고자 했던 그 멋진 일들을 모두 기억하나? 그것들이 전부 이루어졌길 바라네. 사람들은 대부분 저마다의 꿈을 갖고 있지. 나름대로의 꿈을 갖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야. 에릭, 자넨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나?...” (첫 번째 편지)

    '아직 나에게 열정이 남아 있다는 뜻인가?' 에릭은 동료 던컨의 실수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하여 사장의 지시로 이동 하는 중에도 선생님의 편지를 외울 수 있을 만큼 읽고 생각하고 다시 생각한다. 분분하게 움직였음에도 소득 없이 허탈감으로 돌아 온 집에 두 번째 편지가 와 있었다. 에릭의 내부에서 조용히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세일즈맨으로 성공한 자신의 아빠처럼 자신 역시 멋진 세일즈맨이 되고 싶었던 꿈을 생각하게 하고 숨어있는 열정을 일으키게 하는 그런 메시지였다.

    “...에릭, 꿈을 좇고 있나? 자네가 두려울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미치도록 원하는 일말이네. 그랬으면 좋겠네, 에릭. 원대하고 가치 있는 무엇, 그러니까 놓치지 않고 목표로 삼아 전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자네 앞에 있어야 한다네. 꼭 그것을 성취하지 못해도 상관없네. 목표를 높게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 되는 거야. 그 여정을 즐겨보게, 에릭...”(두 번째 편지)

    풋풋한 소년시절에 가졌던 꿈을 일깨워주는 선생님의 편지는 이제 에릭에게 인생의 멘토가 되어가고 있었다. 남들의 눈에 뛸 만큼의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에릭 스스로의 내면에서 물밀듯이 무언가가 끊임없이 꿈틀거렸으며, 잊어버리고 있었던 꿈을 향한 그것은 열정이었다. 얼마 전까지 위기에 절망하던 에릭의 삶이 바뀌는 중이었으며, 모든 것인 '인생의 최악'이라는 무력감뿐이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우연히 날아든 편지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꿈을 다시 생각해 냈으며, 이어지는 몇 통의 편지를 통하여 그 꿈을 향한 열정도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에릭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40대를 보는 듯하다. 그 어떤 세대보다 시대적 굴곡의 변화가 많았던 시기에 십대와 이십대를 '열정'으로 보내고,30~40대의 자신감과 안정의 경쟁을 맘껏 펼쳐보기도 전에 불황의 깊은 늪에서 꿈을 접고 허덕이는 세대들. 불황의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특히 자신의 현재 상황이 인생최대의 안좋은 상황이라고 주저 앉으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그러나 어른이 되었지만 생존을 위한 타협과 굴종으로 꿈은 묻혀지고, 다소 무모하게 꿈을 향해 번득이던 열정도 이미 차갑게 식어 버렸다. 어쩌다가 지난날을 생각한다든지,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지난날의 꿈과 열정이 저만치서 희미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이젠 꿈은 꿈에 불과한거다. 그것도 이미 오래전의 무모한 꿈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꿈'이어서 아름답고, 이루지 못해서 추억하며 아름다운 '꿈'이고 말 것인가....'이대로...아니, 그럴 순 없어!. 내 삶의 정답은 늘 나에게 있었지.'

    이 책 <편지(Success Secrets)>는 편지라는 메시지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자신감과 긍정의 힘을 일깨워준다. 프랭클린 네빈 선생님의 편지는 단지 에릭에게만 전달된 역사 선생님의 편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삶에 대한 얼마든지 열려 있는 가능성(꿈)과 그 가능성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늘 함께 있다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위기에, 혹은 절망 앞에 반짝이며 나타나 스스로를 일으켜주는 나의 가능성, 자신감, 삶의 아름다운 자각....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메시지랄까. 다른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이어주는 모퉁이 같은 그런 역할이랄까.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스스로에게 오늘은 아주 멋진 날이 될 거라고 얘기한다네. 그러면 보통은 정말 멋진 날이 되거든.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지."

    우연히 접한 대수롭지 않은 작은 계기가 우리의 삶을 얼마든지 바꾸기도 하듯이 이 책과의 만남이 이 책을 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부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꿈과 열정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에릭에게 전달된 몇 통의 편지 내용과 함께 지난 날 나에게도 있었던 꿈을 생각하고 그 꿈을 향한 열정을 생각한다. 이제 그때의 꿈만큼 찬란하고 크게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풀어져 나동그라진 나사처럼 무기력한 일상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며, 편지 한통과 함께 에릭의 삶이 바뀌었듯 작은 계기 하나가 또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줄 것이다.

    2시간정도 몰두하여 쉽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의 목차를 덧붙이고 싶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운과 열정의 메시지 '편지'의 독자로 다가가는 키워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 책의 메시지가 누군가에게 뜻밖의 소중한 행운이 되었으면 좋겠다. 의외의 조그만 무언가가 뜻밖의 행운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것. 그 행운은 우연한 기회에 뜻밖으로 다가오지만 실은 나의 내면에서 늘 움직이던 열정의 소산이라는 것. 단지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 언제나 우리들 스스로가 알아차리고 움직여 주기를 바란다는 것.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 '편지'의 내용들이 지금의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삶의 '어떤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꿈...꿈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열정...미치도록 원하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라. ▲긍정...고달픈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지 않는다. ▲몸과 영혼의 소리...진심으로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배움...사람들에게는 삶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관계...사람들의 결점을 넘어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라. ▲목적...목적은 열정과 에너지를 분출시킨다. ▲확신...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언제나 의식하라.▲신뢰...믿음은 인생에서 가장 든든한 보험이다.▲사랑...사랑은 변화와 치유의 기적을 낳는다.

    “누군가 간절히 원하면 모두가 그의 꿈이 이뤄지도록 돕는다.” 이 책은 이런 암시를 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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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가 즐거움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shortcut4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학문의 즐거움 저자 : 히로나카 헤이스케 출판사 : 김영사 풀어도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수학 문제를 끝까지 풀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최소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을 받은 일본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그렇다. 는 학문, 그 중에서도 풀어도 풀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수학을 즐긴다. 유년학교 시험에도 떨어졌던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결이 뭘까?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먼저, ‘창조하려면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배우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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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학문의 즐거움
    저자 : 히로나카 헤이스케
    출판사 : 김영사



    풀어도 풀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수학 문제를 끝까지 풀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최소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을 받은 일본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그렇다.
    는 학문, 그 중에서도 풀어도 풀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수학을 즐긴다.
    유년학교 시험에도 떨어졌던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결이 뭘까?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먼저, ‘창조하려면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배우지 않으면 창조할 수 없다고 했다. 배경지식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다.
    공부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장사꾼 아버지와 배운 것은 없으나 아들이 가진 궁금증을 그대로 인정해 준 어머니 밑에서 그는 평범하게 자랐다고 한다.
    창조의 기쁨과 괴로움에 대해서도 말한다.
    때로는 체념도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과 억측을 구별하는 자세와 소박한 마음은 창조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학문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발전시켜 나가야 학문이 즐거울 수 잇다는 것이다.
    특이점 해소의 문제 해결로 필드상을 받았다. 당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노력이란 말은 나에게는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 번 품은 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도전할 때 즐거움이 도래한다는 주장이다.
    배움에 있어 필요 없는 것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혜가 만들어진다. 이 지혜가 만들어지는 한 공부한 것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는 여전하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배우는 것은 낭비가 아니다. 그러므로 많이 배우고 많이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고 독자를 향해 의견을 내놓는다.
    어렵고 험한 여건 속에서도 학문을 즐겁게 일궈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에게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어린시절에 들려 준 말을 적어본다.
    “이 담에 커서 공부하면 모두 알 수 있을 거야.”

    궁금해서라도 공부에 접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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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랏말쌈이 영어에 달아, 어린 백성이 고생 무지하게 하나니
    bonspike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당신의 영어를 업그레이드 하라 저자 : 최덕규 출판사 : 랜덤하우스 중앙 바야흐로 국제화 사회에서 영어는 가장 기본적인 필수 덕목이 되어 가고 있다. 나서 자란 땅을 떠나 굳이 외국에 가서 외국인과 오래 살 일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데도 불구하고, 모국어보다는 영어 공부가 더욱 중요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말과 중국의 글이 달라 세종대왕이 새롭게 만드신 훈민정음과 같이, 이 책의 저자도 나랏말이 영어와 달라 고생하고 있는 어린(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새로 여섯 자를 맹글어 제시하기까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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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당신의 영어를 업그레이드 하라
    저자 : 최덕규
    출판사 : 랜덤하우스 중앙


    바야흐로 국제화 사회에서 영어는 가장 기본적인 필수 덕목이 되어 가고 있다. 나서 자란 땅을 떠나 굳이 외국에 가서 외국인과 오래 살 일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데도 불구하고, 모국어보다는 영어 공부가 더욱 중요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말과 중국의 글이 달라 세종대왕이 새롭게 만드신 훈민정음과 같이, 이 책의 저자도 나랏말이 영어와 달라 고생하고 있는 어린(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새로 여섯 자를 맹글어 제시하기까지한다. 좀 오버스러운 감이 없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저자의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한 방편인 듯 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우리가 영어를 못하는 일곱 가지 이유는 매우 타당하다. 제목만 읽어 봐도절로 ‘맞아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특히나 영어 문장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사용에 대한 통찰은 여러 항목으로 나열된 일반 문법책보다는 훨씬 명쾌하다.

    이 책은 영어 학습을 위한 강의는 아니다. 나름대로 저자가 느낀 영어와 우리말과의 차이를 제시하는데, 이 차이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면 영어를 배우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그래서 내가 영어를 힘들어했구나’하고 자기 합리화를 시켜주어 마음의 부담을 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곱 가지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단숨에 읽힌다. 굳이 머리 속에 넣어 암기해야할 만한 사항도 아니다. 그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 영어 문장을 대할 때에는 그런 부분들에 더 조심하면 된다. 그렇게만 해도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될 것이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지는 일이 없듯이, 우리말과 영어의 차이점을 알고 임한다면 처참하게 지는 일은 없으리라.

    일곱 가지 이유를 말해준 후에 영어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100권의 영어책을 읽어보라고 한다. 좀 많다. 영어 문장을 직접 써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런 것보다는 TOEIC 공부가 나을 듯 하다. 그래도 좋은 추천이긴 하다. 몇 페이지 영문 서적 제목만 가득 있어도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을 장식함에 있어 유명한 DEAR ABBY 시리즈를 몇 개 가져와서, 한 문장을 길이를 늘려가며 세번 넘게씩 적어 놓은 것은 정말 이 책의 엄청난 결점으로 보였다. 앞의 일곱 가지 이유만 해도 책의 가치는 충분했는데, 책의 1/3 정도가 영문 서적 제목과 DEAR ABBY의 문장들로 가득하다. 저자가 굳이 이것을 필요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감하게 페이지 수가 좀 모자라더라도, 앞의 좋은 내용만으로 책을 마감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량이 모자라 책값이 좀 떨어진들 어떨까? 1/3 더 붙여서 굳이 정가를 세종대왕님에 맞춘 것에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책의 저자는 새로 6글자를 만들었으니, 그 공통점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책 값을 낼 때 한번 더 세종대왕님의 얼굴을 보며 한글을 되새기라는 깊은 뜻이었을까? 인터넷으로 구입했으니 것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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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법을 제시하는 책
    mehoo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사랑의 완성 저자 : 존 그레이 출판사 : 들녘미디어 한때 열풍처럼 몰아쳤던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그 상황에 봉착했을 때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말과 행동때문에 나는 하루하루 내 머리를 잡고 씨름했으며, 학교 도서관의 온갖 심리학 서적을 뒤적여가며 시간을 보낸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썩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시간이 흐르고 직접 경험을 몇번 하고 나서야 그다지 고민할 필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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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사랑의 완성
    저자 : 존 그레이
    출판사 : 들녘미디어


    한때 열풍처럼 몰아쳤던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내가 그 상황에 봉착했을 때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말과 행동때문에 나는 하루하루 내 머리를 잡고 씨름했으며, 학교 도서관의 온갖 심리학 서적을 뒤적여가며 시간을 보낸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은 썩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시간이 흐르고 직접 경험을 몇번 하고 나서야 그다지 고민할 필요도 소란을 떨 필요도 없는 누구나 겪는 연애담을 나도 겪은 것이며,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은 그것이 동성간이든 이성간이든 서로 배려하고 믿어주는 마음 없이는 어떤 경우라도 힘들다는 만고의 진리를 깨달았다.

    사실 화남금녀와 비슷한 종류의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지만, 거의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 책의 저자인 존 그레이만 하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한가지를 가지고 몇권의 책을 써내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래도 굳이 평점을 매기자면 그의 시리즈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나은 것 같다. "화남금녀"가 남성과 여성의 다른점을 부각시키는데 치우쳐있어서 오히려 그 치우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반면에, 이 책은 사귐의 5단계를 제시하고 조화로운 교제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남녀의 연애가 아니더라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때는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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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동물실험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언론에서 새로운 약이 개발됐다고 하는 소식을 전할 때 대부분 그 근거로 삼는 것이 '동물실험'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뒀기에 이제 임상관찰만 거치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식이 들려오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환자들의 가족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이 치료됐다는 다음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제 곧 병을 정복할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차후의 경과는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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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실험은 완벽하게 실패했다


    언론에서 새로운 약이 개발됐다고 하는 소식을 전할 때 대부분 그 근거로 삼는 것이 '동물실험'이다. 즉 대부분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뒀기에 이제 임상관찰만 거치면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소식이 들려오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환자들의 가족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병이 치료됐다는 다음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제 곧 병을 정복할 것처럼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차후의 경과는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의학계에 몸을 두고 있는 레이 그릭과 진 스윙글 그릭은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에서 그것에 대한 답을 간단명료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동물실험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도 인간에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당초 동물실험은 '쓸모없는' 것이기에 당연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더불어 그들은 동물실험이 몇몇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도모하고 유지하기 위한 재원낭비이기에 동물실험으로 병을 치료한다는 자체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충격,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제껏 동물실험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어야만 인간에게 실험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기에 근본적인 것을 비판하는 그들의 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마 그들도 이러한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실험의 무익성과 동물실험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인간들의 수많은 악의 행위를 거리낌 없이 폭로하고 있다.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은 무엇을 폭로하고 있는가? 첫 번째는 이제껏 믿고 있던 동물실험이 연구자들만의 복지이자 인간을 배제한 어처구니없는 자원낭비라는 것이 그것이다. 지은이들은 동물실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인간과 다른 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뒤에 인간에게 그 효과를 얻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이것은 인간을 위한 과정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은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은이들은 종이 다른 인간으로 실험을 한 뒤에 결과를 얻고 그것을 인간에게 실험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백인과 흑인, 여성과 남성에서도 병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종이 다른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고양이의 병에 효과적인 치료약이 있어 그것을 동일 병을 앓고 있는 인간에게 실험했을 때 인간은 치료는커녕 더 심각한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관절염 치료제, 플로신트는 쥐, 원숭이 몇 개를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실험동물들은 플로신트를 잘 견뎠다. 그러나 글 인해 인간은 8명이 사망했다. 이와 같은 사건의 영향으로, 알버트 세인빈 박사의 전직 동료였던 길리오 타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궁극적으로 진통제 연구에서 어떠한 동물실험도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동물실험의 결과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에게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신성하고 고귀한 직업이 사실은 인간의 건강을 돈내기하듯, 동물을 화폐 다루듯이 하는 거대한 규모의 도박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팅턴 연구 센터 책임자인 랄프 헤이우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 독성 자료에서 역반응의 상호 관련성은 아마도 5~25퍼센트 사이일 것으로 짐작된다." 불과 5~2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비율로 보면 동물실험이 동전 던지기보다 더 마구잡이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본문 중에서)

    마찬가지로 쥐에게 효과가 있다고 하여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위험한 상태에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은 탈리도마이드나 인슐린 등 이미 역사는 숱하게 그것들을 증명해왔다고 제시하고 있다. 오히려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치료약의 발견들은 동물실험이 아니라 임상관찰과 연구, 약물역학, 유전학 등으로 얻어냈다고 말하면서 가장 많은 재원을 투입했던 동물실험은 효과는커녕 병에 대항하는 인류의 발걸음을 퇴보시켰다고 덧붙이고 있다.

    지은이들은 동물실험의 그 같은 무익성과 유해성은 의학자들도 알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다소 뜻밖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렇게 무익한 것을 알았다면 왜 이제껏 아주 오랫동안 지속돼 온 것인가? 여기서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이 두 번째로 놀라운 사실로 폭로하고 있다. 바로 인간이 아닌 돈을 신봉하는 세력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것이다.

    해마다 동물실험에 투자되는 국가 예산과 기부금은 상상을 초월한다. 제약 회사들과 동물실험을 위한 동물을 제공하고 장비를 제공하는 업체들에게는 이것은 '생명줄'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것이니 모든 능력을 동원해 동물실험을 계속하게 만든다. 인간을 위한 약을 개발에서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은 의아스럽게 여길 수 있겠지만 군수업체들이나 담배회사들이 벌인 유명한 로비들을 생각해본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어떤 기업들이 동물실험에서 이익을 얻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로비스트들을 지지하고 있을까? 동물 사육업자들과 판매업자들 외에도 우리, 격리 우리, 주사기와 주사 바늘, 저울, 전문화된 수술 장비, 동물 조직, 기관 및 혈액, 동물 사료, 살수장치, 특수한 방식으로 동물을 죽이는 장비, 화학약품, 현미경, 미세수술용 확대 장치, 외과용 수술 칼, 전기 장치, 혈액 검사 장비, 입체배열 장비 등등을 제조하는 사람들과 판매하는 사람들이다. 이 목록은 거의 끝이 없으며, 각각의 품목은 프리미엄이 붙은 상태로 판매된다. (본문중에서)

    또한 과거부터 내려온 관습도 한 몫 한다. 오랜 역사 덕분에 동물실험에서 인정되지 않은 약은 아예 인간에게 실험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지은이들이 우려한 대로 인간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을지 모르는 약들도 동물실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당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많은 이들이 관습에 얽매여 이대로 행동하고 있다.

    더불어 지은이들은 안이함을 추구하는 의사들의 태도 또한 문제로 지적한다. 특히 학문의 발전에 이바지해야 할 상아탑에 있는 이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에 대한 실험 보고서를 하나 쓰는 동안 동물에 대한 실험 보고서를 다섯 개는 쓸 수 있다. 인간은 까다롭지만 동물은 실험실에 가두어 두고 편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누가 편하면서도 자신의 경력을 위한 이력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동물실험을 외면하겠는가?

    이러한 지은이들의 폭로와 비판은 놀랍다. 너무 놀라워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숱한 예산과 의사들의 손끝에 희망을 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절박함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로 존재한다. 인간의 에이즈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에이즈로 죽지 않는 동물들을 실험한다며 많은 시간과 인력,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낭비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가 고작 '이 동물은 에이즈로 죽지 않는다'는 것임에도 아직도 동물실험은 계속되고 있고 엄청난 재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암과의 전쟁이 가진 문제점을 단지 과학의 신빙성에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매년 암과의전쟁이라는 명분아래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가 동물실험에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 연구 분야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다. 다른 항암 연구자로 갈 수 있는 이러한 자산이 완전히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에 따르는 인간의 희생은 수치화할 수조차 없다. (본문 중에서)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에서 지은이들은 과학적으로 동물실험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당장 때려 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에 그 많은 자원들을 효과가 검증된 다른 방법들, 예컨대 병리학이나 역학, 임상관찰이나 사람의 조직을 이용한 '시험한' 연구 등에 사용하고 국가적으로 병을 '예방'하도록 조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만과 탐욕의 동물실험』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득권 세력이 순순히 자신들의 것을 포기할리는 만무하기에 개인이 진실을 알고 지역사회와 시민단체들이 진실을 알아서 포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오만과 탐욕의 동물실험』에서 밝힌 내용들을 상기한다면 그것이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목 그대로 너무나 오만하고 탐욕으로 가득차 있기에, 병에 걸린 사람들과 앞으로 병에 걸릴지 모르는 나와 내 가족들도 그 탐욕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에게 무엇이 좋은 백신인가를 테스트해 보았는가? 원숭이에게 어떤 물질이 효과가 있는가를 발견하는 데는 5~6년의 기간이 필요하고, 그 후에야 그것이 인간에게도 효과가 있는가를 테스트해 볼 수 있다. 그때서야 당신은 인간이 원숭이와는 전혀 다른 방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5년의 시간이 허비되었음을 깨닫는다. (본문 중에서)


    도서 제목 :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
    저자 : 레이 그릭, 진 스윙글 그릭
    출판사 : 다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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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쁜 시대에 인상 쓰고 있는 사람들이여, '게으름학'에 심취해보자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 저자 : 톰 호지킨슨 출판사 : 청림출판 참으로 바쁜 세상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신문을 보고 뉴스를 들어야 하며,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뿐인가. 회사나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다. 너무나 바쁘기에 그 시간마저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첨단기술이 발전하면서도 기계의 도움 덕분에 여가시간을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무색케 만들었다.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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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
    저자 : 톰 호지킨슨
    출판사 : 청림출판


    참으로 바쁜 세상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신문을 보고 뉴스를 들어야 하며,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뿐인가. 회사나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 아니다. 너무나 바쁘기에 그 시간마저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첨단기술이 발전하면서도 기계의 도움 덕분에 여가시간을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기대를 무색케 만들었다.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더 바쁘게만 보인다. 마치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 ‘회색신사’들을 곁에 둔 것처럼 사람들은 어떤 수를 써도 바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느리게 살자’는 운동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뛰는 대신에 걷고, 한번에 두 가지를 하는 대신에 한번에 하나를 여유롭게 천천히 하자는 그것은 분명히 바쁜 세상을 싫어하면서도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에는 마찬가지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차라리 빨리 하고 나중에 쉬자’는 개념을 만들어내 ‘느림의 시대’는 더욱 바쁜 시대를 만들어냈다. 결국 이 시대는 느림도 안 통하는 이 시대로 판명 났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뭔가 해결책이 없을까? 바쁘다고 투덜거리고 인상 쓰면서도 계속 이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영국의 저널리스트 톰 호지킨슨라는 인물이 있다. 낯익은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가 이 시대를 타파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게으름’이다.

    게으름이라는 단어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가? 열에 아홉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테다. 그렇기에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이라는 제목에도 인색한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을 테다. 하지만 솔직하게 생각해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미지가 아닌 자신의 경험으로 게으름을 생각해보자. 이때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까? 열에 아홉은 아닐 테다. 게으름을 부리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다수는 희희낙락거리며 즐길 따름이다.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은 그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게으름 부리는 즐거움을 잊은 채 바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시계 알람 소리에 긴장해서 벌떡 일어나고, 샌드위치를 입에 문 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다음날 회사출근을 위해 저녁 술자리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와야 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외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해도 해도 질리지가 않는 게으름에 대해서 말이다.

    지은이는 시간대 별로 게으름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먼저 오전 8시에는 알람 소리에 벌떡 일어나지 말라고 한다. ‘5분만 더’, ‘10분만 더’를 말해보라는 것이다. 사실 지은이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불 속에서 ‘5분만 더!’라고 말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데도 점점 그것을 잊고 있다. 왜 인가?

    5분이나 10분을 그렇게 보냈다 하여 하루를 망칠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은이도 마찬가지. 그래서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또한 오후 1시에는 점심시간을 제대로,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진실한 사랑으로 음식을 사랑하라고 한다. 오후 3시에는 완벽한 쾌락인 낮잠을 즐기라고 말한다. 자정에는 달빛이 별빛이 있는 하늘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게으르면 행복할 수 있고 지금처럼 인상 찡그릴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그런데 지은이의 설명을 듣다보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과연 저것들이 게으른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낮잠을 즐기고, 밥을 꼭꼭 씹어 먹고, 하늘을 바라볼 줄 아는 것들이 과연 게으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게으른 것이 아니다.

    지금의 사람들이 동경하는 과거의 사람들, 비록 물질은 부족했지만 정신은 넉넉했던 그들이 살았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오늘날에도 전문가들이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도 이것이다. 낮잠이 좋다는 것, 하늘 한번 바라볼 여유가 스트레스를 막아준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 아닌가?

    지은이는 농담조로 ‘산업혁명’을 무시무시한 적으로 묘사한다. 왜냐하면 산업혁명 이후부터 사람들은 삶을 즐길 수 없이 자본에 종속됐기 때문이다. 동시에 과거에 삶을 즐긴다고 말했던 것들은 천하의 악덕이라는 ‘게으름’이라고 분류되면서 사람들에게 그것을 행하지 말라고 일종의 세뇌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보람도 없는 무언가를 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마치 세상에서 도태될 것처럼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든 것도 그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문명은 기묘한 속임수를 통해 노동계급을 꼼짝 못하게 움켜쥐고 있다. 이 속임수는 개인과 사회 차원의 재앙을 줄줄이 만들어냈고, 2세기 동안 가엾은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그들이 이용한 속임수는 바로 ‘일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불 같은 열정’이다. 성직자, 경제학자, 도덕주의자들은 과로를 조장하는 문화에 저항하기는커녕, 성스러운 후광을 덧씌워주었던 것이다…… 우리 시대는 노동의 세기라 부려 왔지만, 사실은 고통과 비참함, 그리고 부패의 세기라 하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사람들에게 바쁘게 숨차게 달려온 만큼 이제는 게을러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은 이른바 ‘게으름학’을 알려준다. 이것은 진짜 학문은 아니지만 진짜 학문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지혜와도 같다.

    무슨 지혜인가? 자본주의나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기 이전에 인간들이 편안하게 누리던 삶의 형태에서 얻는 지혜다. 또한 잠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자신이 있던 자리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지혜이기도 하다.

    더불어 얼마나 무의미하게 아등바등 거리며 살고 있는지, 무엇보다도 얼마나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툴툴거리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혜다. 참으로 오늘날에 더욱 귀하게 배워볼만한 지혜가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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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속에 묻혀사는 그녀의 행복
    cognizance | 2005년 08월 24일
    창밖의 하늘 멀리 헬리콥터 한 대가 흰 구름을 배경으로 날아간다. 벌써 가을이 당도해 버린 것인가. 지난 번에 주문한 는 책에 관한 여러 책들 중 하나다. 독서에 관한, 책에 관한 타인의 취향이 궁금할 때 가끔 환자(?)들의 책을 읽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증상과 성향들을 보여 재미있다. 물론 부분적으로 나도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고 그렇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중의 하나는 책읽는 부모를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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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의 하늘 멀리 헬리콥터 한 대가 흰 구름을 배경으로 날아간다. 벌써 가을이 당도해 버린 것인가. 지난 번에 주문한 <서재 결혼 시키기>는 책에 관한 여러 책들 중 하나다. 독서에 관한, 책에 관한 타인의 취향이 궁금할 때 가끔 환자(?)들의 책을 읽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증상과 성향들을 보여 재미있다. 물론 부분적으로 나도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고 그렇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중의 하나는 책읽는 부모를 만나는 일이라고 한다.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양질의 도서를 책장 가득 채워주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조용히 책읽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 분위기가 집안 전체를 가득 메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앤 패디먼은 바로 그런 집에서 자란 대표적인 경우이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과정보다 서재를 합치는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롭게 보인다. 영혼을 합치는 작업을 눈으로 확인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온 과정을 책이라는 주제로 묶은 수필집이다. 성장배경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책과 관련된 에피소드와 연결시켜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불편하고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위트와 유머 넘치는 글솜씨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준다. 권위적이거나 목에 힘주고 설교하거나 진지하고 깊이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긴장시키지 않는 방법을 저자는 알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끔씩 책을 읽는 행 위 자체를 돌아보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여전히 책읽기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사는 나에게 생활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즐겁게 여겨진다. 결국 살아가는 일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자신이 읽고 쓰는 일로 연결되어 버린 앤 패디먼은 행복해 보인다. 누구나 그렇게 자연스런 행복을 원한다.

    어느집에나 같은 책 두권이 꽂혀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읽고 선물했던 책과 선물받았던 책들이 가장 많은 경우다. 양이 많지 않아 나란히 꽂아두고 나름의 추억으로 삼는다. 패디먼 일가처럼 교열에 관한 편집증적 증상을 보이지는 않지만 직업병 수준에 가까운 맞춤법과 표준어에 대한 관심은 글쓰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수많은 오탈자를 담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들이 더 정겹다. 엘리베이터에 앞 게시판에 붙혀놓은 반상회 안내문에 아저씨들의 실수가 짜증으로 여겨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언제나 세상을 정확하고 꼼꼼하게만 살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은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표지의 인용부호가 패디먼의 삶을 요약하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그녀의 전 생이 책으로 가득하다는 말이니 달리 설명이 필요없다. 수많은 책에 관한 책중에 하나임이 틀림없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손색없는 아주 괜찮은 책이다.

    200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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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터십 다운의 열 한 마리 토끼
    radaka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워터십 다운의 열 한 마리 토끼 저자 : 리처드 애덤스 출판사 : 사계절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곳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 모퉁이. 부모님을 졸라 샀지만 아파트에서 기를 수 없어 유치원으로 쫓겨 왔고, 유치원에서도 감당이 안 됐는지 처마 밑에 토끼 두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 토끼를 보기 위해 아이는 엄마 손을 잡아끌고 매일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난 봄, 이름도 없는 토끼 두 마리는 토끼장만 남겨 두고 사라졌다. 토끼가 왜 없어졌느냐고 아이가 묻자 소홀한 관리로 죽었다는 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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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워터십 다운의 열 한 마리 토끼
    저자 : 리처드 애덤스
    출판사 : 사계절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곳이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유치원 모퉁이. 부모님을 졸라 샀지만 아파트에서 기를 수 없어 유치원으로 쫓겨 왔고, 유치원에서도 감당이 안 됐는지 처마 밑에 토끼 두 마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 토끼를 보기 위해 아이는 엄마 손을 잡아끌고 매일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난 봄, 이름도 없는 토끼 두 마리는 토끼장만 남겨 두고 사라졌다. 토끼가 왜 없어졌느냐고 아이가 묻자 소홀한 관리로 죽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풀이 많은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고 둘러댔다. 나에게 토끼는 토끼장 안에서 가져다 준 풀이나 배춧잎을 부지런히 갉아먹는 온순한 동물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모험을 떠났다고 둘러대고도 머쓱했는데 진짜 모험을 떠난 토끼들을 만났다.

    겨우 모험을 떠나는 토끼 이야기가 영국 판타지 문학의 고전이라니 시시한 감이 들었다. 일단 소재부터 어딘가 어색했다. 기왕 모험담의 주인공을 동물로 설정할 거라면 사자나 표범, 여우처럼 활동적인 동물을 선택했어야 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두 마리도 아니고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라니?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이야기도 이제 밑천이 다했으니 읽어 두었다가 아이가 조르면 자장가용으로 쓰자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다. 그러나 카우슬립네 마을에서 파이버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대목까지 숨을 꼴딱거리며 읽고 있는데 아이가 졸음에 겨웠는지 엄마가 읽던 책을 덮어 버렸다. 아이를 재우고 스르르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안락한 카우슬립네 마을에 있던 파이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궁금해 눈을 번쩍 뜨고 일어섰다. 헤이즐 일행이 워터십 다운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뒤 아이 곁에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삼십대 중반의 아줌마가 1318문고를 읽는다. 아이 때문도 아니고 예전부터 1318문고를 읽어 왔다. 13세에서 18세까지 읽는 문고라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없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1318문고 안에서 만났다는 것이 조금 아까웠다. 아무래도 독자층이 청소년으로 한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나부터 1318문고를 밤새워 읽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같은 취향의 기성세대가 많을 듯싶다. 작가의 말에 “나이가 찬 아이들은 토끼 이야기라서 유치하다고 싫어할 테고, 어린이들은 어른 책처럼 씌어 있어서 어렵다고 싫어한다.”는 이유로 출판사를 전전한 배경이 담겨 있다. 아마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제목과 서두만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린 편집자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진 선입견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줄도 고치지 않고 출판사 문을 두드렸던 작가의 자신감 덕분에 우리는 아동문학의 성숙한 경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피곤에 겨워 쓰러지듯 잠들던 아줌마를 불러 세웠던 이 책의 힘은 무엇보다 박진감이었다. 그저 토끼를 의인화한 우화였다면 잠 못 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른에게도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토끼들의 성격 설정이 완벽하다. 겸손하면서 현명한 지도자 헤이즐, 재난을 예언하고 토끼들에게 새로운 마을을 찾게 도와주는 예언자 파이버, 단순하면서 강인한 투사 빅윅, 총명하지만 힘든 일은 남에게 미루는 블랙베리, 헤이즐 일행을 괴롭히는 나쁜 토끼지만 전략적 지도자로서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운드워트 장군. 주인공 토끼 열한 마리뿐만 아니라 조연 토끼까지 여느 대하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 못지않게 생생하다. 하나의 사건에 부딪칠 때마다 영웅 토끼 한 마리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일을 풀어 나가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또 헤이즐 일행의 모험에 정신적 지주로 등장하는 엘-어라이라의 이야기는 신화적 상상력이 가득 담겨 있어 책의 깊이를 더해 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신화와 역사가 담긴 영웅 토끼들의 이야기이다. 토끼의 생태와 맞물려 우리가 그 동안 읽어 왔던 그리스ㆍ로마 신화와는 색다른 맛을 준다. 양장본 768페이지면 아주 긴 이야기지만 읽는 동안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헤이즐 일행에 끼어 엔본 강을 뛰어넘고 천의 적을 피해 워터십 다운으로 가는 토끼가 되었다.

    헤이즐 일행이 안락한 워터십 다운에 정착하고도 이야기는 끝을 맺지 않는다. 워터십 다운에 정착했어도 암토끼가 없어 번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운드워트 장군을 찾아가 협상을 하지만 결국 전투를 통해 암토끼를 얻게 된 헤이즐 일행. 사실 이 안에 동물의 생존 방식이 담겨 있다. 자립과 자손 번성은 인간뿐만 아니라 어느 동물도 피해 갈 수 없는 중대하고도 영원한 과제이다.

    “동물은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죽여야 할 때는 죽이지. 가만히 앉아서 머리를 굴려 가며 다른 동물의 삶을 망치고 상처를 주진 않아. 동물은 존엄성과 동물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야.”

    암토끼를 두고 협상을 하기 위해 운드워트 장군을 찾아간 사절단은 이렇게 연설했다. 그러나 이 말은 운드워트 장군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에게 전하는 말로 다가온다. 인간만이 최고라는 자만을 버리고 동물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더불어 인간 사회가 가장 합리적인 사회라는 환상을 버리라는 주장이 바닥에 깔려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운드워트 장군이, 토끼가 너무 많아 스스로 수정된 태아를 체내로 흡수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암토끼를 보내지 않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감행하는 것처럼, 인간도 부작용을 알면서도 동물과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또 들꽃과 자연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노력 속에서 좀더 겸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자연과 만나자는 다짐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판타지 문학 하면 기상천외하고 주술적인 내용이 담긴 문학을 생각한다.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는 신화와 종교, 역사에 바탕을 둔 단단한 판타지 문학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마법 같은 내용이 전혀 없지만 읽는 사람은 판타지 문학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내가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 모퉁이 토끼를 보러 갈 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아이와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아이는 갇힌 토끼를 보고도 더 많은 상상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는 잠자리에서 토끼들의 모험 이야기를 듣는다. 작가의 두 딸이 아빠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듯이 우리 아이도 꿈 속에서 토끼들이 펼치는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은 길고 재미있는' 모험을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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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얘들아, 우리도 시체놀이 한 번 해 보자
    ms879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저자 : 이경혜 출판사 : 바람의 아이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마음 속에 품고 잊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은 게 아니라고,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거라고......웃기는 소리다. 마음을 달래느라 만들어 낸 수많은 거짓 위로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말이다. 차라리 재준이가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그렇게 씻은 듯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그렇다. 우리는 자신없는 대목에서 둘러대기 바쁘다. 그것이 위로든, 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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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저자 : 이경혜
    출판사 : 바람의 아이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마음 속에 품고 잊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은 게 아니라고,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거라고......웃기는 소리다. 마음을 달래느라 만들어 낸 수많은 거짓 위로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말이다. 차라리 재준이가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그렇게 씻은 듯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그렇다. 우리는 자신없는 대목에서 둘러대기 바쁘다. 그것이 위로든, 질책이든, 교훈이든...아이들에게 뭔가 의미있는 말을 남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이(꼭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부질없고도 부끄러운 노릇인가가 이 책에서는 잘 드러난다.

    열 여섯의 두 아이가 있다. 친엄마, 새아빠, 성(姓)이 다른 어린 동생과 함께 살기에 누가 봐도 문제가 있을 법한 '반항아' 유미, 그리고 엄격한 아빠와 몸이 약한 엄마, 남동생과 함께 누가 봐도 별 문제 없는 가정을 가진 '모범생' 재준이. 그러나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재준이고, 이로인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 것은 유미다. 그러한 유미에게 재준의 엄마는 재준이가 남긴 일기장을 건네주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그 일기장을 펼치기조차 힘들어하던 유미가 결국 그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읽어 가면서 재준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둘 사이의 우정을 확인하면서 재준이를 온전히 떠나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맺는다.

    어쩌면 단순하다고 할 줄거리지만 이 속에는 가정, 학교, 학원이라는 일상 속에서 빚어지는 사춘기 아이들의 갈등과 감성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유미의 닫혔던 마음은 세상과 화해하게 된다. 처음엔 (소희라는, 재준이가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재준이 오토바이를 배운 것이기에) 소희를 원망하고, 그 죽음의 시간에 겉멋에 들린 문자나 날렸던 자신을 괴로워하지만, 일기장을 덮을 때는 '재준의 짧은 생에 그처럼 어여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소희가 고맙고, 자신도 문자의 마지막에 (물론 그 때는 작별인사일 줄 몰랐지만) '잘자'를 썼다는 것을 생각해내서 안도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재준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 속에 도저히 파낼 수 없는 무거운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며 작별의 인사를 고하는 마지막 부분은 '삐딱이' 유미의 마음이 이제 얼마나 따뜻하고 깊어졌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어린 나이에 어이없이 사라져 간 소년들에게 글 속에서나마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무겁지 않고 어둡지도 않다. 첫사랑에 실패해서 늘 멍하니 정신을 딴데 두고 다니는 담임선생님이나 유미가 부르는 '새아빠'라는 호칭이 합리적이라며 칭찬(?)해 주는 새아빠처럼 개성있는 인물들과 아이들의 감성이 살아있는 문체, 정교하고 세심한 심리묘사가 제목만큼이나 흡인력이 있다.

    솔직히 그동안 중학교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 우리나라 소설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동화는 아이들이 표지만 보고는 시시하다고 느끼고, 기성작가의 성장소설은 세대차이 때문일까? '지금, 여기'가 중요한 아이들이 (장년, 내지 노년에 접어든) 작가의 회고담을 읽으려면 기본적으로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책을 읽어보겠다는 빛나는 각오로 아이들이 물어올 때, 아니 그들이 물어보기 전에라도 나는 이 소설을 꼭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한 번 권하고 싶다.

    "얘들아, 우리도 재준이처럼 시체놀이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지금처럼 사는 게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느껴질 때는 말이야...그리고나서 오늘 일기장에 한 번 써 보는 거야.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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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라면 '이름없는 너에게' 생명을 주시렵니까?
    ms8799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이름없는 너에게 저자 : 벌리 도허티 출판사 : 창비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의학적으로는 어느 쪽에도 이상이 없다 하는데도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애간장이 타는 부부가 있는가하면, 단 한 번의 관계로 아기가 생겨 그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미혼부/모가 있다. 두 경우가 모두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이지만, 같은 무게의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주변사람들에게서 받는 시선이 너무나 다르다. 내 주변에서도 두 경우를 모두 보며 많은 생각들이 오갔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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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이름없는 너에게
    저자 : 벌리 도허티
    출판사 : 창비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의학적으로는 어느 쪽에도 이상이 없다 하는데도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애간장이 타는 부부가 있는가하면, 단 한 번의 관계로 아기가 생겨 그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미혼부/모가 있다. 두 경우가 모두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이지만, 같은 무게의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주변사람들에게서 받는 시선이 너무나 다르다. 내 주변에서도 두 경우를 모두 보며 많은 생각들이 오갔던 차라, 청소년 소설에서 미혼부/모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참신한 충격이었다. 과연 그들은 그 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내 관심은 온통 그 '짐',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원망과 부정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한 생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가 있었다.

    헬렌과 크리스는 고3이다. 음악학교에 가기로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 똑똑한 여학생 헬렌, 그리고 영문학을 지망하는 순수하고도 따뜻한 심성을 가진 크리스, 그 둘에게 단 한 번의 '특별한 시간'은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세상 속으로 던져 넣는다. 그것은 비록 견디기 힘든 불안과 혼동의 시간이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삶을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 집을 나갔던 엄마를 찾는 크리스나 그토록 따스하고 푸근하던 외할아버지가 사실은 자신의 진짜 외할아버지가 아니었다(그러니까 헬렌의 엄마가 사생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헬렌, 각각의 가족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굵직한 축이 된다.
    엄마마저도 '그 짓을 몇 번이나 했냐'며 딸을 혹독하게 몰아치고 낙태 수술대로 오르게 하는 부분에서는 이 소설의 배경이 서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다. 소설의 시점은 크리스(미혼모가 아닌 미혼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시점인데, 헬렌의 심리는 '이름없는 너에게'로 시작하는 (크리스가 받은) 편지로 인해 충분히 설명된다. 중심은 분명 크리스에게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기(크리스의 입장)와 편지(헬렌의 입장)가 교차하면서 두 젊은이가 한 생명을 자신의 책임으로, 자신들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눈물겹도록 치열한 과정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물론 원하는 대학 기숙사를 향해 짐을 꾸리는 크리스에게는 아이의 탄생이 큰 변수가 되지 않겠지만, 헬렌에게는 분명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이를 키우고 몇 년을 유예한 뒤 다시 시험을 치러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맨 마지막 장면(할머니 품에 안긴 아기가 가족들간의 상처를 꿰매주고 있는 것 같다는 구절의 상징)으로 볼 때 헬렌도 예정된 대학에 가고 아기는 할머니가 어머니가 돌봐 준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소설 이후, 그 아이를 누가 키우고 헬렌과 크리스가 과연 결혼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이 소설에서 부차적인 문제이다. 나는 과연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라면, 헬렌처럼 결단의 순간에 용기있게 아기를 선택하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크리스를 떠나게 할 수 있을까? 또 크리스처럼 여자친구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아기를 지키고 끝까지 그녀를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어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아니라, 내가 고3때 이런 일이 생겼다면, 혹은 내 딸이 이런 일이 생겼다면 말이다. 어쩌면 너무나 상식적이고도 옳은 선택인 줄 모두가 알지만 소설과 같은 선택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내 주변에서도 (고등학생도 아닌,) 대학시절에 아이가 먼저 생겨 아이 때문에 결혼을 했지만 결국은 이혼을 하는 경우도 보았기 때문에 꼭 결혼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아마 헬렌도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기는 지켜야 하지만, 아직 서로가 준비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혼이라는 끈으로 크리스를 자기 곁에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여자들의 성의식 속에 사랑=결혼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문화권이나 마찬가지일텐데, 어떻게 아기와 남자(아기의 아빠)를 분리해서 선택할 수 있는지, 나는 헬렌의 고3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판단의 성숙함과 현명함에 감탄을 했다. 헬렌은 부모나 남자친구에 의존하지 않고, 또 그 어떤 사회적인 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할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주체적인 인간인 것이다.
    물론 크리스의 헬렌에 대한 사랑도 정직하고 순수하지만 나중에 고백하듯이 크리스는 아기보다는 헬렌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임신이라는 것이 남자에겐 간접경험이니까, 더구나 같이 살지 않는 여자친구의 임신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크리스는 아기의 탄생을 통해서야 비로서 자신이 (아버지로서의 준비는 둘째 치고라도) 자신의 삶을 위한 준비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발견한다. 작가는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결혼)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미묘한 울림이 주는 공명의 효과-즉 젊은 남녀 둘 만의 사랑이 단지 그 둘의 지금 현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상대방은 물론이요, 각각의 가족(과거)과 그들이 책임져야할 또 다른 생명(미래)에 이르기까지-를 마치, 여러 개의 동심원을 그리듯이 잔잔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몇 년 전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 한 분에게서,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졸업 후 찾아와서 낙태를 한다고 돈을 빌려 달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이미 공공연한 현실로 인정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이 '미혼모', '낙태'라는 단어이다. 결혼여부를 떠나 '이름없는 너'로 인해 고통받고 그것이 상처로 남겨진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특히 크리스처럼, 남자들이 본다면 조금은 더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미 비슷한 상황에서 새 생명을 포기했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죄책감을 증폭시켜) 치유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지라도, 지금 막 뜨거운 사랑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예방적(?)인 효과는 확실할 것 같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거리를 배회하는 비행청소년들에게만이 아니라 헬렌과 크리스처럼 밝고 맑은 심성의 여느 청소년들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이름없는 너'로 인해, 숨쉬는 것조차 버거워지는 순간이 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든 일어 날 수 있는 일이, 누구에게 일어나느냐에 따라 생명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되, 이 소설처럼 조금은 앞서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소설의 배경이 우리나라였다면?' 이라는 의구심을 애써 지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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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prettydal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저자 : 이경혜 출판사 : 바람의 아이들 얼마전 거리를 동네 골목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 생각이 났다. 내 주먹만이나 할까, 너무 작은 몸집의 어린 고양이는 쓰레기 봉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향해, 캬오, 이빨을 드러냈다. 물론 절대 무섭지 않고 웃겼을 따름이다. 사람으로 치면 발음도 제대로 안되는 꼬마가 어른 흉내를 내며 큰소리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어미는 잠깐 어딜 간건지, 아니면 도망간건지... 나는 안된 마음에 어떻게 도움을 좀 주고 싶었지만 새끼 고양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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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저자 : 이경혜
    출판사 : 바람의 아이들


    얼마전 거리를 동네 골목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 생각이 났다.
    내 주먹만이나 할까, 너무 작은 몸집의 어린 고양이는 쓰레기 봉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향해, 캬오, 이빨을 드러냈다. 물론 절대 무섭지 않고 웃겼을 따름이다. 사람으로 치면 발음도 제대로 안되는 꼬마가 어른 흉내를 내며 큰소리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어미는 잠깐 어딜 간건지, 아니면 도망간건지...
    나는 안된 마음에 어떻게 도움을 좀 주고 싶었지만 새끼 고양이가 그렇게 겁내는 걸 보니 다가갈 수가 없었다. 빨리 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그랬다, 그 새끼 고양이는 겁내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나를 위협하는 몸짓이었지만 실은 무척 겁내고 있었다.

    아이들도 그런게 아닐까.
    어른들에게서, 세상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의 거부의 몸짓이며 그건 또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싶었다.아이들은 거칠지만 사랑받고 싶어하고, 소통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크고 깊어 선뜻 손내밀지 못하고 자기 뒤에 숨어버린다. 거칠고 사납게 만든 가면 뒤로, 혹은 우등생, 모범생의 가면 뒤로. 슬프고 아픈 일이다.

    너무 여러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어서 그런지 나로서는 오히려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토바이며 담배며 이미 아이들 사이에선 당연한 일이 되었는데 이제와서 어른들끼리 논의를 해봐야 뭐 하겠나. 어른들에게 필요한 건 아이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귀와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가슴, 그리고 한 인격체를 향한 존중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른 자신이 제 인생을 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른이라고 다 맞는 건 아니지 않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아닌 척 하지 말고 좀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뻣뻣하게 살면 어른도 목 아프다.

    내 이름이 유미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의 유미에게 잘 동화가 되지는 않았다. 너무 감정 과잉이거나, 덜 과잉인 듯 해서. 이상하게 친구를 잃은 아픔이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준의 시체놀이가 놀랍고 관심이 많이 갔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사는 삶. 그렇게 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의미가 있어질 것인가. 맑고 착하고 순한 재준이는 참 놀이도 어른스럽다. 정작 어른들이 보기엔 한심해 보였겠지만. 하지만 그런 놀이마저도 재준의 아픔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면 또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현실의 무게가 버거웠으면... (아픈 엄마의 자식이 모범생이 될 수 밖에 없는,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얼마전, 고3짜리 하나가 자살 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처음 스쳐지나간 생각이, 아직 어린 그 아이의 인생이었고 다음번이 이랬다.
    세상에, 자식 다 키워놓고..그 엄마는 어쩐대?
    나에게 그 이야길 전한 학생은, 아, 우리엄마랑 똑같은 얘기해! 하며 불만스러워했다. 하긴 나도 놀랐다. 그 전엔 좋은 시간도 못 보내고 공부만 하다 죽은 아이의 인생이 너무 불쌍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이렇게 됐다. 이제 슬슬 엄마의 심정에 이입되는 나, 어떤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할까. 많이 고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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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한번 삶이 주어진다면...
    book2004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컬러풀 저자 : 에토 코리 출판사 : 문학수첩 리틀북스 노란 표지가 눈에 들어오는 작은 이 책은 청소년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집단 따돌림, 원조교제, 자살, 폭력, 가족간의 대화단절, 오해가 그 주된 내용이다. 어떤 남자의 영혼하나가 알 수 없는 추첨에 당첨되었다는 천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의 내용은 시작된다. 전생의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갚고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어, 자살한 중학교 3학년 마코토의 몸속으로 들어가 부활하게 되는 남자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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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컬러풀
    저자 : 에토 코리
    출판사 : 문학수첩 리틀북스

    노란 표지가 눈에 들어오는 작은 이 책은 청소년 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집단 따돌림, 원조교제, 자살, 폭력, 가족간의 대화단절, 오해가 그 주된 내용이다.

    어떤 남자의 영혼하나가 알 수 없는 추첨에 당첨되었다는 천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책의 내용은 시작된다. 전생의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갚고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어, 자살한 중학교 3학년 마코토의 몸속으로 들어가 부활하게 되는 남자의 영혼. 그 남자의 영혼과 마코토의 삶을 되돌아가며 알듯 말 듯한 추리게임을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여러 가지 문제로 자살을 선택한 마코토의 삶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풀려 나가며,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의심과 문제들을 대화를 함으로 인해 오해를 풀 수만 있다면 사람은 쉽게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마코토 가족의 불륜, 부정, 폭력의 진실을 하나씩 밝혀내며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끼는 남자의 영혼은 어쩌면 방황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영혼이 아닐까? 혹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아 떠돌아 다니는 모든 방황하는 영혼들의 모습은 아닐까?
    마코토의 몸을 빌린 영혼은 진짜 마코토의 영혼이 다시 부활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천사는 그 소원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24시간 안에 영혼이 전생에 지은 죄를 기억해 내라고 한다. 힌트는 마코토의 육체가 가는 곳마다 있다고 한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남자의 영혼은 기억을 해 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가 않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긴장감을 독자도 마찬가지로 느끼게 된다.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현재 한 단면에 숨어 있던 문제를 생생하게 그대로 보여주는 책인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했다. 결론은 다소 유치하고 뻔하다고 할 수 있는 가족의 사랑과 대화가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이 마코토 처럼 다시 한번 삶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싶어할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할까?
    만약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어떤 장소에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될까? 문득 궁금해지는 건 왜 일까? 겨울이 깊어가는 요즘 읽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삶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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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뤽케
    수양버들 | 2005년 08월 24일
    도서명 : 크뤽케 저 자 : 페터 헤르틀링 출판사 : 사계절 꽁꽁 언 땅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을 보자 토마스는 집에 있을 스케이트가 생각났다. 제대로 갖추어진 침실과 욕조를 보고 전쟁이 나기 전 자신의 집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따뜻한 집과 깨끗한 이불,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 소박한 음식이 주는 안락함과 평화로움이 토마스에게도 있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2차 대전 참전해 돌아가셨다. 엄마와 함께 피난열차를 타려다 많은 인파에 휩쓸려 헤어지게 되었다. 토마스는 혼자서 엄마와 함께 가려던 이모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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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명 : 크뤽케
    저 자 : 페터 헤르틀링
    출판사 : 사계절

    꽁꽁 언 땅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을 보자 토마스는 집에 있을 스케이트가 생각났다. 제대로 갖추어진 침실과 욕조를 보고 전쟁이 나기 전 자신의 집을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따뜻한 집과 깨끗한 이불, 가족을 위해 만들어진 소박한 음식이 주는 안락함과 평화로움이 토마스에게도 있었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2차 대전 참전해 돌아가셨다. 엄마와 함께 피난열차를 타려다 많은 인파에 휩쓸려 헤어지게 되었다. 토마스는 혼자서 엄마와 함께 가려던 이모 집을 찾아 빈에 도착하지만 그 곳도 이미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였다. 이모 집이 있어야 할 헬러가 9번지엔 낯선 아주머니가 앉아 있다.
    "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디로 갈 셈이냐?"
    " 사실은 반다 이모를 찾아갈 생각이었거든요."
    아주머니는 웃었다. 아무 소리 없이 흔들면 웃다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으로 찍어 냈다.
    " 그 '사실은'이라는 말이 너무 우스워서 그랬다.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말이 너무 많아. 그 말 한마디로 참혹한 이 현실이 다 표현된 것 같구나. 사실은 나도 집에 편안히 앉아 남편인 크루제 대위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지. 그리고 사실은 너하고 내가 여기에서 만날 이유가 없었지 . 사실은 내가 너를 더 친절하게 대해 줘야만 했지...... ."

    전쟁 속에서 고아가 된 토마스에게 거칠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가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은 비좁고 더러운 공간이나마 내어주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외다리 사나이 크뤽케를 보자 주저 없이 그를 따라간다. 이 외다리 사내가, 어디에 가면 먹을 만한 햄이나 빵이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집 없는 떠돌이 생활에서 얻어진 경험이다.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서 비롯된다.

    토마스의 짐작대로 크뤽케는 전쟁에서 한 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지만 수단이 좋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안정된 숙식을 제공받게 되었고, 마지막엔 토마스가 엄마를 찾을 수 있게 한다. 돼지와 페르시아제 카펫을 맞바꾸는 거래에서 중 돼지 대신 새끼 돼지를 받았지만 크뤽케가 건네 카펫도 사실은 가짜였다. 크뤽케는 독백처럼 말을 한다.
    "그래, 우리도 타락했지."
    서로가 서로를 속이며 타락하지만 반 나치스트였던 크뤽케는 이젠 더 이상 도덕적 가치에 민감해 하지 않는다.

    국제 적십자사에서 가족을 찾으려고 서류를 접수하는 길고 긴 줄을 바라보며 크뤽케는 말한다.
    " 거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 모양이야. 어머니는 자식을 찾고, 아내는 남편을 찾고, 아이들은 부모를 찾겠지. 이 모든 것이 '위대한 지도자(히틀러)'께서 세계의 절반을 정복하셨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이지."
    사실은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저녁을 함께 했어야 했다. 사실은 늦 잠자는 아이를 엄마가 애써 깨워야 했다. 사실은 크뤽케와 토마스는 평생 모르는 사이여야 했다.

    토마스와 크뤽케는 빈에서 독일로 돌아온다. 그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동물 우리를 방불케 하는 끔찍한 기차여행과 수용소 생활을 한다. 겨우 도착한 그들의 정착지 풍경을 바라보며 크뤽케는 말문을 연다.
    "토마스, 우리가 지금 도대체 어는 별에 와 있는 거야. 지금이 어느 시대지? 서로 총부리를 맞대고 총을 쏘지 않았었나? 가축 우리 같은 곳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래도 우리가 인간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었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시내로 들어와 봤더니 우리를 마치 페스트처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대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우리를 보려고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있어. 그러면서 교회에 모여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다니!"

    헤르틀링 작품 속 어른들은 가난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다. 크뤽케 역시 비록 외다리에 전쟁 떠돌이지만 자신의 처지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안다. 크뤽케는 그들을 경계하는 바그너 부인의 다락방에서 토마스를 위해, 또한 자신을 위해 정성껏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그리고 아래층에 내려가 가족이 모두 함께 있는 바그너 부인에게 즐거운 성탄절을 보내라는 인사를 한다. 크뤽케는 바그너 가족에게 불쌍하고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토마스가 명절에 슬픈 얼굴을 하고 있지 않기를 바랬다. 바그너 부인은 그들의 크리스마스 인사에 당황했지만 과자가 잔뜩 담긴 접시를 토마스에게 건네 준다.
    "바그너 부인은 마음씨가 괜찮은 사람일 거야. 단지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의 잔재인 우리들이 이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 현실이 문제지. 그러니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 달라고까지 요구할 수는 없어."

    헤르틀링은 작품 속 주인공을 극한 상황이나 비극적인 현실에 고립시키지 않는다.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기관이나 개인에게 당당히 도움을 청한다. 혼자의 힘으로 어려우면 여럿이 힘을 모은다. 절대로 사회에서 낙오시키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만들지 않는다. 독재자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이 황폐해졌지만 개인간의 오가는 정이 살아있어 토마스는 무사히 살아 남는다.

    토마스는 엄마를 찾으려고 처절하게 매달리지 않는다. 우연히 어떤 일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 당장당장 살아나가야 하는 현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선 어린아이들은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크뤽케와 같이 육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건강한 정신을 가졌다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다. 과장되지 않고,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따뜻한 이웃이 있고, 건강한 정신을 갖은 어른이 있으며, 공공기관에서 제 역할을 해주는 그래서 불행에 처한 한 아이를 구원해 내는 것이 헤르틀링의 작품들이다.

    어찌보면 이런 설정 역시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토마스가 그나마 운이 좋은 아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아이에게 가장 불행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소설로서 이야기를 만들었다기보다는 '불행한 아이'를 어떻게 부양해야 하며, 어떤 이웃이어야 하는지, 또 기관에는 어떤 도움들을 받아야 하지를 말하고 있다. 헤르틀링의 작품은 《할머니》에 이어 《크뤽케》를 두 번째로 읽는다. 다음에 읽을 책은 《바람 속으로 떠난 여행》이다. 누군가가 아이들을 위해 어떤 소설이 나오길 바라느냐고 내게 물으면 이렇게 말하겠다.

    ""페터 헤르틀링 작품들을 읽어보세요. 우리는 도움을 주고받을 줄 몰라요. 어려움에 처했을 땐 당당히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도 상상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 나가야 합니다. 스스로를 지켜내고 자신도 사회에 일원으로서 행복해야 한다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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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 가발다의 <35kg짜리 희망덩어리>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35kg짜리 희망덩어리 저자 : 안나 가발다 출판사 : 문학세계사 “나는 학교가 싫다. 나는 학교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 아니 그 이상이다…… 학교 때문에 내 인생은 끝장나고 말았다.” 사고뭉치 소년이 있다. 이제 겨우 13살인 그레구아르. 몸무게 35kg의 왜소한 체격의 녀석은 학교 냄새만 맡을라치면 뱃속에서 딱딱한 공이 생기는 것 같아 한다. 언제나 놀림감이 되는 체육 시간을 싫어하고, 분필냄새를 싫어하며, 국어나 수학도 싫어한다. 그렇다. 구레구아르는 학교의 모든 것을 싫어하고 그는 사회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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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35kg짜리 희망덩어리
    저자 : 안나 가발다
    출판사 : 문학세계사



    “나는 학교가 싫다. 나는 학교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 아니 그 이상이다…… 학교 때문에 내 인생은 끝장나고 말았다.”

    사고뭉치 소년이 있다. 이제 겨우 13살인 그레구아르. 몸무게 35kg의 왜소한 체격의 녀석은 학교 냄새만 맡을라치면 뱃속에서 딱딱한 공이 생기는 것 같아 한다. 언제나 놀림감이 되는 체육 시간을 싫어하고, 분필냄새를 싫어하며, 국어나 수학도 싫어한다. 그렇다. 구레구아르는 학교의 모든 것을 싫어하고 그는 사회나 가정에서 사고뭉치로 통한다.

    그가 치는 사고라는 것은 무엇일까? 솔직히 그레구아르가 벌인 행동에서 특별히 사고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다. 그저 남들과 다르다는 것뿐?

    발명을 하고 싶어 하고, 아이디어 내는 것을 좋아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를 떠올릴 대의 그레구아르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그레구아르는 같은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하기는 사람이 진실로 하고 싶을 것을 해야 할 때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안나 가발다의 <35kg짜리 희망덩어리>는 그레구아르가 행복해지는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인데 주목할 것은 작가의 특별한 시선이다.

    그레구아르는 주위 사람들, 가정과 사회, 나아가 제도화된 교육체계 때문에 불행함을 느낄 뿐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중요한 하나가 빠져있다. 그것은 그레구아르의 의지력 혹은 노력의 부재이다.

    작가는 그레구아르가 한걸음 나아가는 계기로 언제나 그레구아르를 응원해주던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무엇이든 잘했던 할아버지는 가정에서 유일하게 그레구아르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지지자다. 하지만 단순한 지지자가 아니다. 그레구아르가 한걸음 나아가도록 중요한 무언가를 제시해준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반드시 필요한 인생에서 꼭 필요한 가르침을 말이다.

    “얘야, 행복해지는 것보다 불행해지는 편이 더 쉬운데, 난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하는 이들이 싫다. 난 불평꾼이 싫다! 행복한 사람이 되란 말이다, 제기랄!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란 말이다!” <할아버지가 그레구아르에게 하던 말 중에서>

    <35kg짜리 희망덩어리>는 사고뭉치가 35kg짜리 희망덩어리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어른이나 청소년 모두가 읽어볼 만 하다. 특히, 작가의 의도와 달리 어른들에게 더욱 필요해 보이는데 그것은 그레구아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듯이 ‘청소년’에게 기회를 주는 것, 격려해주는 것, 용기를 심어주는 것은 오직 어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렇다. 어른들이 시선을 바꾸면 골칫덩어리, 사고뭉치는 어느새 희망덩어리가 되어 세상에 희망을 뿌리며 살아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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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네살의 여름
    miracle21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열네살의 여름 저자 : 베치 바이어스 출판사 : 소년한길 열 네살이라... 어린티를 벗은 어엿한 청소년 시기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고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다. 나의 열 네살은 짜증도 많이내고.. 아무튼 반항기가 많은 그런 학생이었던것이다. 이 책에서 열 네살은 '계단 한 가운데 서 있는 나이'라고 비유하였다. 아마도 새로운 단계로 넘어와 새로운 삶을 보내야 하기에 계단에 비유한듯 싶다. 나도 지금 계단 한가운데 서 있는 나이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 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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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열네살의 여름
    저자 : 베치 바이어스
    출판사 : 소년한길


    열 네살이라... 어린티를 벗은 어엿한 청소년 시기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고 깨달은 것이 너무 많았다. 나의 열 네살은 짜증도 많이내고.. 아무튼
    반항기가 많은 그런 학생이었던것이다.
    이 책에서 열 네살은 '계단 한 가운데 서 있는 나이'라고 비유하였다. 아마도
    새로운 단계로 넘어와 새로운 삶을 보내야 하기에 계단에 비유한듯 싶다. 나도 지금
    계단 한가운데 서 있는 나이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
    간 일들이니 만큼 그냥 웃어 넘기는게 좋다 생각한다.

    나는 계단 맨 밑에서 한가운데까지 올라올 동안을 한번 되새겨 본다.
    어렸을적..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친기억, 자전거를 타다 차와 부딫친기억, 생전
    처음으로 미국이란 곳을 가본기억.. 그리고 2005년 오늘까지.. 이제 더 많은 계단을 올라야한다. 오르는 동안 넘어지지 않게 되도록 내가 더욱 더 노력해야겠다!

    음.. 사라는 이 사건을 통해 느낀것이 참 많을것이다. 동생을 잃어버리기 전.
    사라는 유행에 따라가고 싶어하는 반항기 많은 날라리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동생 찰리를 찾고 난 후. 동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을을 알게되었고 잘못을 늬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사라는 자신이 한걸음 한걸음 계단에 오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계속 높은 계단을 향해 힘차게 걷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동생을 찾았다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의 오해가 풀렸다는 것이다. 오해란 것이 원래 하는것도 하는것이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어째 좀 그렇다. 변명 한 마디 못하고 당하는 것이니 답답할수도
    있고... 그런데 친구 조 멜비는 어째서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나 같았으면
    목이 찢어져라 해서라고 변명을 했을것이다. 아무튼 오해가 풀렸다니 정말 다행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열 네살이란. 그러니까 사춘기때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주인공 사라는 비슷한 나이라 그런지 비슷한것도 많이있다.
    이런건 하지 말아야지.. 저런건 하지 말아야지.. 정말.. 이렇게 다짐을 해도 왠지
    모르게 하게된다. 그리고 짜증이 많아졌단 것이다. 내가 이런 나만의 사춘기 시절을
    쓰는 이유는 반성하고 잘못을 했으면 제때 고치려고 쓴 것이다. 반성할 건 반성을
    해야 나중에 되풀이 되지않고.. 그러면 무엇이든 편해지지 않을까?

    아~ 사라와 나를 다시한번 비교해본다. 만약 내가 가족을 잃는다면..
    아마 대한민국 전체를 다 찾아서라도 찾아내고야 말았을것이다. 누구나 그러하지
    않은가..
    힘들고 어려운일이 일어나도 가족으로 위로가 되고 가족으로 힘이 되는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아무튼 가족을 위해 늘 가족만을 생각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나는 찰리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찰리야. 비록 아퍼서 다른사람처럼 놀지도, 웃지도 못하지만 용기를 갖길 바래.
    힘든일도 끝까지 한번 해 보고 누나와 사이좋게 지내고.. 아프다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마.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살길 바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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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디아의 비밀
    miracle21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클로디아의 비밀 저자 : E.L 코닉스버그 출판사 : 비룡소 ... 클로디아는 가출하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삶이 지루하고 따분해서였다. 매일 똑같은 학교성적, 동생들과 매일 텔레비전 때문에 싸우는 것.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대우도.. 모두가 지겨웠다. 하지만 가출을 하긴해도 돈이없어 걱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동생 제이미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제이미는 카드놀이로 돈을 많이 벌었으며 쓰지않는 성격. 일명 '짠돌이'라서 돈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출이라...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가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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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클로디아의 비밀
    저자 : E.L 코닉스버그
    출판사 : 비룡소


    ... 클로디아는 가출하고 싶어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삶이 지루하고 따분해서였다. 매일 똑같은 학교성적, 동생들과 매일 텔레비전 때문에 싸우는 것.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대우도.. 모두가 지겨웠다. 하지만 가출을 하긴해도 돈이없어 걱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동생 제이미와 함께 가기로 결정했다. 제이미는 카드놀이로 돈을 많이 벌었으며 쓰지않는 성격. 일명 '짠돌이'라서 돈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출이라... 지금은 아니지만 나도 가출하고 싶었던 생각을 했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내 세상이 아니어서였다. 그러니까 예를들어 집에서 내가 편안대로 하지도 못하고 놀고싶은데 놀지도 못하니까 이런 생각을 했던것이다. 솔직히 나는 클로디아가 잘 이해안된다. 지루해서 가출이라..?? 도대체 얼마나 지겨웠길래 가출까지 결정했는지가 이상하다.

    아무튼 집 밖에 나오는 것을 성공하여 뉴욕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갔다. 생활할 곳으로 이 곳을 택한 것이다. 이 곳에 들어오면서 클로디아의 모습은 쏵 바뀌게 되었다. 이 쯤… 프랭크와일러 부인은 적은돈에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을 팔았다.. 굉장히 적은 돈에...
    이 조각상때문에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도서관도 가고 신문도 보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정한 목표를 이루려고 하니 정말 대단해. 비슷한 또래인 나도 정말 본 받아야겠어!' 눈물을 흘려가며 조각상에 알고싶어하는, 달라져서 집에 돌아가겠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은 조각상에 대한 비밀을 풀기위해 마지막 카드를 썼다. 프랭크와일러 부인을 찾아가는것이다. 부인의 집에 도착하고 그들이 남은 돈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집에 갈 걱정에 조각상에 대한것을 풀기위해.. 걱정이 많았다.
    어마어마하게 큰집..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집 안으로 들어가 부인을 만났다. 클로디아는 당당하게 말했다. 조각상에대해… 부인은 두 남매가 어떻게 지냈는지가 매우 궁금해하였다. 그렇지만… 두 남매는 끈질기게 자기들의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

    점심도 맛있게 먹고 그러면서 많은 대화를 했다. 부인은 아이들에게 조각상에 대한 자료를 서류가 든 캐비닛에서 찾으라고했다. 클로디아와 제이미는 물론 찾아내었다. 부인 이 자료를 두 남매에게 주겠다고 유언장에 쓸 생각이었다. 대신 미술관에서의 생활을 들려달라고 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꿈을 가져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것과 '비밀은 그냥 비밀일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밀은 꼭 동행한다고…' 꿈을 실천하는 자만이 진정한 멋쟁이이고, 비밀이 동행한다고 해서 그 비밀에 속아 넘어간다면 정말로 고쳐야한다. 그래야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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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참 적나라하다.
    redffin | 2005년 08월 24일
    내껀 너무 작다니 이 얼마나 자극적인 책 제목인가.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자극' 이라는 것이 본문중에도 나오는 바 포르노영화같은류의 자극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이 제목과 내용중에 다루어지는 청소년기의 남자아이들의 고민중 특별히 성에 관련된 고민에 집중해서 눈이 똥그래질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성교육을 해야하고 그것이 더이상 숨겨야 할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에 나역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교육 그림책을 접해주고 그 덕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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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껀 너무 작다니 이 얼마나 자극적인 책 제목인가.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말하는 '자극' 이라는 것이 본문중에도 나오는 바 포르노영화같은류의 자극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처음 접했을때 이 제목과 내용중에 다루어지는 청소년기의 남자아이들의 고민중 특별히 성에 관련된 고민에 집중해서 눈이 똥그래질수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성교육을 해야하고 그것이 더이상 숨겨야 할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에 나역시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교육 그림책을 접해주고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학교숙제로 독후화를 그려갈때에도 서슴없이 정자들이 난자를 향해 달음박질치는 장면을 그려가기도 하고 부부관계의 모습이 너무 신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막상 그 문제들이 현실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닥쳐올때 그리고 유아기때의 성교육을 넘어 보다 구체적으로 실체화될때는 당황스러워 한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일까.

    사실 이 책은 청소년기 2차 성징이 일어날때의 신체적변화뿐 아닌 포괄적인 남자아이들의 문제에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접근을 하는 책이다. 그 진면모보다 오직 성적인 것에만 눈이 돌아가 놀라고 말았으니 나도 참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아직은 이 책을 보기에는 어리다 싶은 9살 아들이 나보다 먼저 이 책을 본것에 당황해 아이가 봐도 괜찮을까 하는 소제목들을 염려했던탓에 그리 집중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 아들은 내가 염려한(도대체 무엇을 염려했을까...) 너무 이른 깨달음으로 인한 충격따위는 없었다.
    다만 청소년기가 되기도 전인 지금에도 해당되는 문제를 가지고 광분했을뿐..(여자아이들과 좀 잘 지내면 사귄다는둥 놀려대기만 한다고. 다 똑같다고)
    그래서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볼 기회가 생기기도 하였다.

    비단 이 얘기뿐 아니라 이 책은 남자아이들이 커가면서 갖게 될 궁금증과 감정,생각들에 대해 정말 적나라하고 구체적이라 속으로만 앓게 될 아이들에게 큰 힘을 줄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아이가 순간적으로 자기처럼 당하고 자기에게 놀림을 주었던 아이들처럼 책에서 놀리는 아이들과 그 상황에 흥분하여 생각과 경험과 감정을 폭발시키듯...

    보다 중요한 청소년기에 이 책으로 인하여 그렇게 발산할수 있다면 이 책이 만들어진 효과는 백프로 일것이다.
    거기다 남자와 여자. 그 미묘한 생명에 대한 탐구가 끊임없이 되어짐에도 딱히 남자는 어떤존재 여자는 어떤 존재라 결정지어지지 않아 성인도서로도 그렇듯 남자와 여자의 심리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나오는 마당에 이제 아이들이 자라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지는 시점에서 자신들의 변화에도 놀랍고 당황스럽지만 그것을 미리 대처하고 자신이 속한것이 여자라 할지라도 또래의 남자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는것 또한 눈앞의 단발적인 고민들에서 벗어나 더 멀리 볼수 있는 마음이 되지 않을까?

    내 기대가 너무 큰 것일까?
    처음의 놀라고 당황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읽어보니 이 책은 충분히 그런 역할을 감당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남자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보편적인 그 기준이 계속 변화한다고 하여도 언제나 그 보편적인 기준에서 떨어지는 남자들도 있게 마련이며 그렇다고 하여 그가 남자답지 못한것이라고 누가 말할수 있는가? 누가 그것을 가지고 놀려도 된다 했는가?
    그럼에도 그 기준에서 떨어지는 혹은 그렇지 않아 보이는 많은 남자아이들의 속고민을 그 누가 있어 이토록 상세하게 짚어줄 것인가?

    참으로 친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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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쥐'
    수양버들 | 2005년 08월 24일
    도서제목 : 쥐 저자 : 아트 슈피겔만 출판사 : 아름드리 인간의 뿌리는 포유동물인 쥐와 같이 자그맣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원시 포유동물은 공룡의 세상이었던 중생대 ( 2억 5000만 년 전부터 6천 500만 년 전까지)에 공룡들이 활동하지 않는 밤에 곤충 따위를 잡아 먹고 조심조심 살았다. 고등영장류 3800만 년 전에 들어서야 나타난다. 4만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신인)의 출현이후 인류는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멀리서부터 본다면 인종구분이 이루어진 시기는 그리 오래 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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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제목 : 쥐
    저자 : 아트 슈피겔만
    출판사 : 아름드리

    인간의 뿌리는 포유동물인 쥐와 같이 자그맣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원시 포유동물은 공룡의 세상이었던 중생대 ( 2억 5000만 년 전부터 6천 500만 년 전까지)에 공룡들이 활동하지 않는 밤에 곤충 따위를 잡아 먹고 조심조심 살았다. 고등영장류 3800만 년 전에 들어서야 나타난다. 4만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신인)의 출현이후 인류는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멀리서부터 본다면 인종구분이 이루어진 시기는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만해진 인간은 인종구별을 빌미로 잔혹한 행위를 자행하고 끝 없은 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아트 슈피켈만은 '쥐'에서 유대인을 쥐로, 나치를 고양이로 표현하여 포식자 관계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숨어서 살았던 유대인을 생각한다면 타당한 설정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과정을 만화로 그린 작품으로 저자의 감정개입이나 소설적 효과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쉰들러 리스트’ 와 같은 영웅이나 극적감동은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들은 증언만이 생생히 전해져 올 뿐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작가 의식도 설정된 인물 속에서가 아니라 비극적인 역사의 파편으로 고통 받는 또 다른 생존자로 전해질 뿐이다.

    ‘쥐’1권에선 능력 있는 젊은 청년 블라덱과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냐의 만남으로 전개된다. 그 시절 블라덱은 타고난 수완과 처세로 능력을 인정받아 사랑도 나누며 평화로운 가운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잔혹한 나치 앞에선 블라덱 역시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를 밟으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뿐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블라덱은 능수능란한 처세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 평화를 되찾지만 학살시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의 메마르고 구두쇠 같은 태도는 아들 아트을 정신병에 이르게 하고 가족 간의 단절을 낳는다.

    ‘쥐’ 1권을 마치고 작가는 인터뷰 내용을 2권에 ‘오랄 히스토리’의 일부분에 삽입한다.

    질문 : 시청자께 당신의 책에서 얻었으면 하는 메시지가 뭔가 말씀해 주시죠?
    아트 : 전 이걸 어떤 메시지 하나로 축소하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누구든 제가 원하는 바에 대해 납득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질문 : 선생님의 책이 독일어로 번역되고 있다죠? 독일 청소년들은 대학살 이야기라면 이미 질릴 정도로 듣고 봤습니다. 이 사건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왜 그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아트 : 누구에게 얘기 할까요? 하지만 나치 하에서 번성했던 많은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번창하고 있죠. 모르겠어요...... 아마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 껴야죠. 전부가 ! 영원히 말이죠 !

    나치당은 왜 유태인을 학살 했는가 ? 아트는 아버지의 회고록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어 했을까 ?

    당시 독일은 소수 유태인이 독일 전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데 대한 독일인들의 거부감이 심했다. 유럽에서 야만족이라는 평을 받던 게르만 민족이 열등감을 해소 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소수의 나치당은 이런 사회적, 역사적 현상을 이용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태인 학살을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 봤을 때 우리는 독일인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아무런 가책 없이 비방할 수 있는가? 유대인은 오랜 역사 동안 떠돌아다니면서도 그 나라에 동화되지 못하고 민족주의로 집결하지 않았던가? 유대인은 나치의 인종차별로 인해 패스트에 감염된 쥐처럼 학살당했다. 수만 명을 발가벗겨 가스실에 쳐 넣고 살충제를 뿌린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은 블라덱이 흑인은 모두 도둑이란 편견을 갖고 있다. 이것은 블라덱 역시 나치식 인종차별주의에 떳떳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트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 까닭은 나치의 잔혹성의 근원인 인종차별의식이 희생양이였던 유대인에게도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배척하는 모든 이들이 나치를 비난하기 앞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블라덱은 언제나 공동의 가치보다 자신의 이익 우선했다. 다른 이를 죽이고 살아 날정도로 잔혹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모든 능력을 발휘했다. 아내인 아냐와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그에게 주어진 건 진정한 삶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진정한 생존자인 아들 아트에게 자신의 생존이 옳았음을 확인하려 한다. 그런 아버지로 인해 아트는 언제나 잘 못된 축에 서야 했다. 전쟁이 끝 난지 오래지만 나치의 악몽은 여전히 그들 가족을 괴롭혔다.

    블라덱이 아우슈비츠의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수용소에서처럼 빵 부스러기 조차 아끼는 생활을 한다. 그의 행동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자식과 부모 형제들에 대한 예의였는지? 아니면 언제 또다시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는 의문이지만 아트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아우슈비츠에서 가해졌던 만행이 우리 속에 숨어 있음을 반성하게 한다.

    유대인 학살에 관하여 어떤 허구도 생존자의 증언을 대신할 수 없다. 어둡고 칙칙한 흑백만화지만 간결한 어투로 진행되는 전개와 표현 양식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책 속에 빠져들게 한다. 1권만으로도 8 년간의 작업을 했다한다. 리얼리즘의 구현을 좀더 심화시키기 위하여 편집기법을 만화에 시도한 때문이라 하니 작가가 이 작품에 기울인 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


    - 움베르토 에코 -

    쥐는 진실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다. 두 쥐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들이 고통을 받을 땐 가슴이 아파온다. 고통과 유머, 그리고 삶의 일상적 시련을 담은 이 짧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가노라면 당신은 어느덧 한 동유럽 가족의 대화에 매료되고, 그것이 주는 부드럽고 최면에 걸리게 하는 리듬에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쥐>를 다 읽고 나면 그 신비의 세계를 떠나는 데 아쉬움을 느끼고 다시 그 세계로 이끌어갈 속편을 고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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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aquajin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전태일평전 저자 : 조영래 출판사 : 돌베게 주인 있는 개보다 천한 생활을 했던 어린시절의 전태일. 그에게 한 인간의 설자리를 허용하지 않는 강한 자가 지배하는 질서. 태일은 '부한 환경'에 대한 비판과 현실과 싸워 이기려는 의지를 키웠다. 떠돌이 실직 청소년이 임금 노동자인 '시다'로 취직하면서 새로운 살 길이 열린다는 희망에 부푼다. 시다에서 미싱보조를 거쳐 미싱사가 된 태일은 열서너 살 어린 소녀들의 처참한 노동 현실을 보게 되고 그들을 돕기위해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월급 7000원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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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전태일평전
    저자 : 조영래
    출판사 : 돌베게


    주인 있는 개보다 천한 생활을 했던 어린시절의 전태일. 그에게 한 인간의 설자리를 허용하지 않는 강한 자가 지배하는 질서. 태일은 '부한 환경'에 대한 비판과 현실과 싸워 이기려는 의지를 키웠다.
    떠돌이 실직 청소년이 임금 노동자인 '시다'로 취직하면서 새로운 살 길이 열린다는 희망에 부푼다.
    시다에서 미싱보조를 거쳐 미싱사가 된 태일은 열서너 살 어린 소녀들의 처참한 노동 현실을 보게 되고 그들을 돕기위해 재단사가 되기로 결심한다.월급 7000원의 미싱사를 그만두고 월 3000원 수입의 재단사 보조를 거쳐 재단사가 된 태일은 기업주들의 횡포에서 여전히 여공들을 도울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통해 '근로 기준법' 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근로 기준법 준수를 위해 근로갑독관을 찾아가 호소 하지만, 근로감독관과 기업주가 결탁하여 서로 돕고 봐주면서 짜고 해먹는 관계임을 알게 되고 크게 좌절 한다.즉, 싸워야 할 대상이 기업주가 아니라 억압하는 사회전체적인 구조와 힘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상심과 번민 끝에 호소와 진정이 아닌 '데모'를 계획하지만 노동자들의 확고하지 못한 의식과 조직의 감시로 때문에 번번이 실패한다.
    노동자들을 단호한 투쟁으로 이끄는 것은 말이나 이론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피로써, 자신의 젊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던지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 해서 1970년 11월 13일 분신을 감행한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그의 처지가 딱해서가 아니다.고생하는게 불쌍해서도 아니다. 그가 감내한 인간적인 고뇌를 짚어 볼 때, 눈에서는 오히려 눈물이 마르고, 마음으로 통곡을 했다.
    치욕적인 굴종의 삶에 대한 혐오, 어린 여공들에 대한 연민, 부한 환경에 대한 울분과 맞서 또 한편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책임감, 못다 이룬 공부의 꿈들, 숲과 산과 하늘과 별과 바람과, 그리고 삶이 가져다 줄 모든 아름다운 추억과 유혹과 미련들. 만 스믈 하나의 나이에 생명을 건 딜렘머에 휩싸인 그를 생각하면......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한 그가 그토록 값진 희생의 의미를 인식하고 감수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철저한 사랑 이었으리라.
    아름다운 청년 그의 얼굴과 언젠가 한TV프로그램에서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그래도 살아서 싸웠어야지......' 라며 애끊는 그리움을 토해내던 주름진 얼굴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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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리는 신념도 세상을 움직인다
    aquajini | 2005년 08월 24일
    도서제목: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출판사:문학과지성사 저자:윤흥길 나는 30년, 5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 작품들을 읽을 때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희열을 느낀다. 내 부모님이 꽃다운 나이를 보내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내 유년기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 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대의 작품을 읽으면 고향에 온 듯 익숙하고 반갑다. 내가 겪진 않았지만 내가 있기까지 내 부모님이 살아온 배경을 만나는 일과, 기억 저편에 가물거리는 기와와 슬레이트지붕, 마당에 아무렇게나 핀 채송화와 사루비아의 흑백영상을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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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제목: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출판사:문학과지성사
    저자:윤흥길

    나는 30년, 5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 작품들을 읽을 때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희열을 느낀다. 내 부모님이 꽃다운 나이를 보내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내 유년기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 때의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대의 작품을 읽으면 고향에 온 듯 익숙하고 반갑다. 내가 겪진 않았지만 내가 있기까지 내 부모님이 살아온 배경을 만나는 일과, 기억 저편에 가물거리는 기와와 슬레이트지붕, 마당에 아무렇게나 핀 채송화와 사루비아의 흑백영상을 꺼집어 내는 작업은 그 시대 작품을 읽게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나'라는 인간을 알기 위해서 내 부모님의 삶을 알지 않을 수 없고, 부모님의 지난한 청춘의 배경을 알아내는 일은 젊었던 엄마 품에 안긴 듯 평온하다. 세상은 그토록 모질고 무심했는데도 말이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1970년대의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한 윤흥길이 1977년에 '날개또는수갑' - '직선과곡선' - '창백한 중년' 까지 연작으로 발표했다. 성남시에서 국어교사를 하는 오선생 집에 세들게 된 가난하고 연약한 소시민 '권기용'은 본의 아니게 광주 철거민 폭동에 과격분자가 되어 감옥 살이를 하게된 '대학나온' 사내다. 욕망을 꿈으로만 꾸던 대학 나온 사내는 욕망을 행동으로 표현 하는 악인된 것이다. 아내의 분만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엉성한 오선생 집에 강도로 들어온 것을 오선생은 모른채 해 주지만 자존심이 상해 죽기를 시도 한다. 자살에 실패한 그는 돌아와 그동안 분신처럼 애지중지 하던 아홉켤레의 구두를 불태운다.


    작가는 이 구두 화형식을 두고 오선생을 빌어 이렇게 적었다.
    ........더럽고 지저분한 것들이 불타면서 그처럼 아름다운 불꽃을 생산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상당히 위안으로 느껴졌다.......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또 하나의 더러움과 지저분함 보다 견고하고 완강하게 제련(製鍊)되어 대치되는 연금술의 기적을 절절히 소망했다........
    오선생의 바램처럼 사내는 도시빈민으로 살기를 결심한다. 사내에게 '대학나온'자존심은 구두와 함께 태워 진 것이다.


    '동림산업'사장 차에 치이게 된 사내는 사장이 우호적이고 친절했던 외형과 달리 악덕 기업주 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틈타 치부한 사장에게서 수단껏 뺏아 내야겠다고 당당히 오선생에게 말한다. '대학나온' 선량했던 사내가욕망을 실현시키는 악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인 것이다. 동림 산업의 잡역부로 취직한 사내는 작업중에 기계에 팔을 잘링 여공이 사장과 싸워 산재보상금을 탈 수 있도록 돕는 적극적인 일을 하게 된다.


    작품의 오선생과 권기용(사내)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들 중에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한 안정을 보장 받고 싶어하는 다수의 오선생이 있다. 보기에도 믿음직한 가장이고, 선생이다. 양심에 위배되는 일을 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욕을 해댈 뿐이다. 적당히 이웃사람에게 베푸는 것으로 자신의 양심을 위로한다. 하지만, 사내는 좀 다른 양심을 가졌던지 우연히 얽혀서 그랬던지 '구청'을 상대로, 기업주를 상대로 싸우다 결국 기업주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청년들에게 맞아서 정신을 잃게 되는 우리들 중 소수에 해당한다.


    비슷한 개인의 모습은 사회의 거대한 힘을 받는 방식에 따라 다른 삶, 다른 계층을 살도록 바꿔 놓는다. 사내는 오선생을 상대로 이렇게 바란다.
    ........나는 무리를 해가면서 무섭게 변모해버린 나 자신을 그에게 이해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 언젠가 때가 되면 그도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내가 꼭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사정들을 전처럼 애정 어린 눈으로 보게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
    오선생은 같은 약자인 사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사내는 이해 받기를 원하고 있다. 사내는 자신의 변화에 힘겨워 하고 있다. 확신을 갖지 못해서 인지 여전히 다른 한 쪽을 의식한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이 이 세상을 잘 사는 방법인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일일이 힘든 일에 나서는 사람을 보면, 왜 저렇게 세상을 어렵게 사는지 답답하게 여긴다. 깔끔하게 품위있는 말만하고 얼굴 붉히지 않는 사람을 고상하다고 생각한다. 융통성있다고도 한다. 적응력이 있다고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선량한 소시민으로 적당히 못본 채하며 가난하나마 내 가정, 내 가족을 건사하며 살아 가는 사내는 아홉켤레의 구두를 신들린 듯 닦는 것으로 자신의 열정을 발산한다. 요즘 말로 스트레스를 푼다.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 후에 오는 해악들을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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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들의 추억말고는 모든게 변해가는게지
    aquajini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저자 : 필리파피어스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홍역을 앓는 동생을 피해 이모집에 머물게 된 톰은 정원도 없고 건조하고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따분하게 생각한다. 집 안 모든 장식이 산뜻하지 않은 가운데 열세번 울리는 오래된 괘종시계에 톰은 관심을 갖게 된다. 모두가 잠든 한 밤,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고(존재하지도 않는 열세시를 알리자), 우연히 뒷문을 열게 된 톰은 느닷없이 '정원'을 발견하고 이끌리게 된다. 장난꺼리가 필요한 개구쟁이에게 정원의 큰 나무와 풀숲은 매력있는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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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저자 : 필리파피어스
    출판사 : 창작과비평사

    홍역을 앓는 동생을 피해 이모집에 머물게 된 톰은 정원도 없고 건조하고 오래된 다가구 주택을 따분하게 생각한다. 집 안 모든 장식이 산뜻하지 않은 가운데 열세번 울리는 오래된 괘종시계에 톰은 관심을 갖게 된다. 모두가 잠든 한 밤,괘종시계가 열세번 울리고(존재하지도 않는 열세시를 알리자), 우연히 뒷문을 열게 된 톰은 느닷없이 '정원'을 발견하고 이끌리게 된다. 장난꺼리가 필요한 개구쟁이에게 정원의 큰 나무와 풀숲은 매력있는 놀이터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고 귀양온 공주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해티'를 만나 둘 만의 비밀을 나누며 우정을 쌓게 된다.


    톰이 이모 내외 몰래 밤마다 찾아 간 그 정원은 100년 가까운 과거의 시간이다.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옛날 복장을 하고 있고, 톰을 알아보지 못한다. 톰은 밤마다 찾아 가지만, 거기서 만난 해티는 오랜만에 온다고 말한다. 밤마다 같은 시간 대로 돌아 간 것도 아니고, 계절도 뒤죽박죽 이다. 하티의 방에 들어가게 된 톰은 그 방이 지금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하티와 정원이 과거 속에 존재하는 곳임을 짐작한다.


    겨울 정원에서 만난 하티에게 타던 스케이트를 벽장 아래에 꼭 두라고 말한 톰은 다음 날 벽장에서 그 스케이트를 발견한다. <이 스케이트는 해리엇 멜번의 것으로, 한 꼬마 소년에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둡니다>라는 수 십년 전의 날짜가 적힌 메모와 함께. 스케이트를 타고 강을 따라 여행하던 해티와 톰은 '바티'를 만나 마차를 얻어 타게 되고, 바티와 숙녀가 된 해티는 급속히 친해진다. 톰은 자신의 시간을 해티의 영원으로 바꾸려고 하지만, 톰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톰이 과거 속 정원에서 만난 해티는 이 다가구 주택의 주인 바돌로메 할머니의 소녀시절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바돌로메 할머니는 옛일을 생각하거나 꿈을 꾸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 속에 산다. 할머니는 그 시절에 그 정원에서만 노는 것을 좋아 했듯이, 꿈 속에서는, 정원에서 놀고 싶은 마음에서 소녀였던 '시간'으로 되돌아 가있었고, 톰은 뛰어 놀 곳을 찾아 헤매다 똑같은 정원으로 가게 되었다는 거다. 할머니의 꿈은 순서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앞뒤가 마구 왔다갔다 하고, 계절이 하루 밤 사이에 변하기도 하는 것이라 해티는 가끔 톰을 보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꿈 속에서 '시간'은 해티의 '현재'를 붙잡아 톰의 '과거'로 바꾸었고, 잠깐이긴 하지만 둘 사이의 '현재'였던 것이다. 톰이 할머니의 꿈 속을 드나들었다는 허구의 극치를 스케이트가 물증이 되어 현실과 중재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독자들이 긴장하도록 한다.


    전체 시간 속에서 내가 보내는 것은 일부분일 뿐이다. 그 시간도 내 마음대로 붙잡지 못한다. 시간은 변하고, 정원도 변하고, 나도 변하지만, 시간 속에 '추억'은 변하지 않는다. 추억 속에 어린 소녀 '해티'를 할머니의 모습으로 만났을 때, 톰은 과거의 해티로 기억 할 뿐이었다.


    영혼이 맑은 작가, 상상이라는 날개를 달고 있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추억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런 뻔한 교훈 말고 찾아 보자. 건조한 현실 속에서 맑은 눈, 밝은 영혼을 간직하고 살면, 세상은 아름답다. 피부의 수분이 빠져나가 쪼글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에서도 톰은 해티를 발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으니... 우리에게 어떤 정원이 있나? 어떤 추억이 있나? 책을 읽을 때 마다 곤혹스러운 것이 작가의 숨은 의도 찾기이다. 이 작품이 그랬다.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한 구성과 시각적인 표현들을 즐기며 몽환 속에 빠져 드는 그런 느낌만 만끽하고 싶은 책이다.


    외람되지만, 톰이 주인공으로 충분한 성격 몇가지를 들어보면,
    1)홍역을 앓고 있는 동생에게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편지로 보내 줌
    .....50여 년 전의 일이지만, 문학소년이다.
    2)현실과 동떨어진 현상에 관심을 갖는다.
    .....두려워 하거나 피하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다.
    3)비현실적 현상의 인과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찾거나 이모부에게 질 문 한다.
    .....능동적이고 학구적이다.
    4)할머니의 모습으로 만난 해티를 당황해 하지 않고 꼭 안는다.
    .....인간중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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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환학생
    chunginbok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교환학생 저자 : 크리스티네 뇌스틸링어 글 /김재희 옮김/ 최수연 그림 출판사: 동녘 좋은 책 목록을 들고 다니며 책을 고를때도 있지만 우연히 내게 오는 책도 있다. 그런데 그 우연히 만난 책이 하루를 행복하게 하는 수도 있다. 읽어봐야 겠다고 벼르던 책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우연히 접한 책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훨씬 더 크다. 책을 읽을 때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책을 습관처럼 펴들고 읽었을때, 마지막 책장을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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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교환학생
    저자 : 크리스티네 뇌스틸링어 글 /김재희 옮김/ 최수연 그림
    출판사: 동녘


    좋은 책 목록을 들고 다니며 책을 고를때도 있지만 우연히 내게 오는 책도 있다.

    그런데 그 우연히 만난 책이 하루를 행복하게 하는 수도 있다.

    읽어봐야 겠다고 벼르던 책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우연히 접한 책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훨씬 더 크다.



    책을 읽을 때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책을 습관처럼 펴들고 읽었을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빙긋이 웃을 수 있는 책,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혼잣소리로 좋다~를 외치는 책

    그 책이 내게 있어서는 좋은 책이다.



    나는 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어(거) 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부지런히 찾아서 읽는 편이다.



    <교환학생>

    인터넷에서 눈독을 들인 책이긴 했지만 실제 <교환학생>을 접할 기회는 종로도서관에서였다.

    반가운 맘.

    그러나 행사(책.놀이 한마당)에 밀려 뒤로 밀려나 있었다.

    반납 기일에 임박 해서야 잡게 책인데 보고 나서 맘 가득 뿌듯함이 밀려온다.



    범생이 아들 에발트, 야무진 딸 빌레, 자녀교육에 열을 내지만 성교육 앞에선 쩔쩔매는 엄마와 아빠로 구성된 미터마여 가족은 지루할 정도로 조용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에발트의 영어 발음 향상을 위해 큰맘 먹고 초대한 영국 교환학생 재스퍼가 오면서 이 집안에 폭풍이 휘몰아친다.

    애초에 에발트의 집에 오기로 되었던 아이는 제스퍼가 아니라 그의 동생 톰이었다.

    그런데 출국을 얼마 앞두고 갑작스런 사고로 톰의 다리가 부러져 기부스를 한 상태라 톰이 올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사정이 생긴 것을 모른 채 공항에 나갔던 미터마여 가족앞에 나타난 것은 톰의 형 제스퍼였다.

    전에 톰의 집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페터의 말에 의하면 점잖고 예의 바른 톰은 어디가고 형인 제스퍼 악마 새끼가 나타났다고 생 난리였다.

    평안으로 위장이 되었던 미터마여 집안은 제스퍼라는 돌맹이 하나로 큰 파문이 인다.

    제멋대로 인 제스퍼를 놓고

    이웃인 페터는 사이코 거지 새끼로 평하면서 거듭 거듭 당장 돌려 보내지 않으면 크게 후회 할 것이라고 말을 한다.

    과연 재스퍼는 악마새끼라는 명성에 걸맞게 처음 만나 집으로 갈때부터 욕을 찍찍 해댄다.

    자기 물건은 아무도 손을 못대게 한다. 자기 혼자 방 쓰는 게 좋다며 에발트의 방까지 뺏아 쓰고, 먹는건 생선튀김과 감자튀김 뿐. 그리고 온통 이상하게 생긴 돌들만 잔뜩 모아놓은 가방을 무척 애지중지 아끼면서 제멋대로 행동을 한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 돌맹이 하나는 엄청남 파문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미터마여 가족들의 상식으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예의는 약으로 쓰려고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고, 씻지도 않고, 주변에 전혀 관심도 없고.....

    돌려 보내자니 지금 막 온 아이를

    '당신의 아이가 맘에 들지 않아서 교환학생으로 받을 수 없어 돌려 보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일단은 휴가 전까지만 데리고 있다가 적당한 구실을 붙여 돌려 보내자는게 미터마여 부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항상 예외가 있는것.

    빌레는 엄마의 문제는 모든 것을 엄마의 기준에 맞춘다며 그애(제스퍼)를 그냥 좀 놔두라고 한다.

    이 재스퍼 때문에 집에는 온통 이상한 분위기만 잔뜩이고, 지루하기만 했던 미터마여 가족은 가정을 꾸린 후 처음으로 폭풍이 불어닥친다.

    있는 그대로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던 빌레는제스퍼와 미터마여 가족을 연결하는 끈이 되어 버렸다.

    어느날 빌레가 전하는 제스퍼의 가정사는 제스퍼를 이해 하는 요인이 된다.

    그것이 동정이든 사랑이든 제스퍼의 행동의 근원을 이해하고 나니 제스퍼를 전혀 이해 못하고 상종 못할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그래서 제스퍼를 데리고 휴가를 떠났는데

    제스퍼는 왠일인지 자꾸 로마 가까이로 가고 싶어 한다. 알고 봤더니 생모는 아니지만 자기가 엄마라고 믿고 있는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의 전처였던 메리 아줌마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제스퍼를 도와주고저 메리 아줌마와 연락을 한 결과 제스퍼는 또 한번의 마음의 큰 상처를 받는다. 이전의 버릇없는 아이 제스퍼는 어디로 가고 무기력한 제스퍼만이 쭐레쭐레 미터마여가족을 따라왔다.

    집에 돌아와 모두 쉬려니 생각하고 방심한 순간 제스퍼는 가출을한다.

    세상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는 절망감.

    그 절망감은 살아갈 이유도 의지도 없게 만들었다.

    미터마여 가족은 화들짝 놀라서 제스퍼를 찾아왔고 제스퍼에게 살아갈 이유와 존재의 끈을 만들어 주어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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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그윽한 우리 고전의 향기...
    cognizance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달빛 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 - 채봉 감별곡 저자 : 권순긍 출판사 : 나라말 문학의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은 진부하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으며 늘 새로운 형태로 전달되고 해석되어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점으로 ‘단순’하거나 ‘뻔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없는 우리 고전소설의 아름다움은 당대의 가장 소중한 진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이나 운영전보다 훨씬 애절한 사랑노래가 이 아닌가 싶다. 소극적, 수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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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달빛 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 - 채봉 감별곡
    저자 : 권순긍
    출판사 : 나라말

    문학의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은 진부하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으며 늘 새로운 형태로 전달되고 해석되어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점으로 ‘단순’하거나 ‘뻔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없는 우리 고전소설의 아름다움은 당대의 가장 소중한 진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이나 운영전보다 훨씬 애절한 사랑노래가 <채봉감별곡>이 아닌가 싶다. 소극적, 수동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운명과 사랑을 지키려 노력했던 춘향이나운영이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모순된 당대 현실과 제도를 온몸으로 거부한 채봉이야말로 우리 고전문학사의 가장 현대적 개념에 근접한 여인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달빛 아래 장필성과 김채봉은 한 눈에 반하게 되고 서로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긴 시간동안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당시의 매관매직에 의한 뿌리 깊은 사회적 부패 현상과 기생제도에 대한 인권문제 등은 조선 후기 사회에 나타난 민중들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난을 겪은 사랑일수록 더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채봉이가 보여주는 눈물겨운 투쟁(?)과 적극적인 운명 개척의 정신이다. 소설의 전면에서 허판서의 첩으로 살게 될 운명을 거부하고 아버지를 구해내며 자신의 사랑까지 지켜나가려는 채봉의 적극성은 봉건시대 한국적 여인상이 지닌 미덕 아닌 미덕을 거부한다.

    평양감사의 업무 보조로 일하던 어느날 가을 달빛에 젖어 써내려간 ‘추풍감별곡’이라는 가사의 이름에서 ‘채봉감별곡’이라는 소설 제목이 연유하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속의 장편 가사 ‘추풍 감별곡’은 당시 민중들의 애절한 사랑노래를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눈앞에 온갖 것이 모두 다 시름이라
    바람에 지는 낙엽 풀 속에 우는 짐승
    무심히 듣게 되면 관계할 바 없건마는
    이별의 한 간절하니 소리소리 수심이라
    굽이굽이 맺힌 시름 어찌하면 풀쳐낼고
    아해야 술 부어라 행여나 시름 풀까
    잔대로 가득 부어 취토록 먹은 후에
    석양산길로 을밀대 올라가니
    풍경은 예와 달라 만물이 쓸쓸하다 - ‘추풍감별곡’ 중에서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책 중간중간에 끼어 있는 정보쌈지이다. ‘조선시대의 사랑’, ‘기방풍경’, ‘19세기 매관매직의 실태’, ‘고전소설 속의 여인들’, ‘평행기행’ 등 쉽고 재미있는 정보 페이지를 삽입해서 간단하지만 알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속 배경지식들을 덤으로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우리 고전에 대한 이해와 깊은 애정은 한국문학에 대한 뿌리와 바탕을 이룬다. 정확한 해석에 의한 판본이 없어 쉽고 재미있는 우리 고전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거나 과소 평가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확하고 재밌는 시리즈를 기대하며 숨어 있는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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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빛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
    emhy311 | 2005년 08월 24일
    도서 제목 : 빠져들다 저자 : 이승하 출판사 : 좋은 생각  요즘 유행어 중에 " 빠져 봅시~~다 " 라는 개그 맨의 매력 있는 말이 유행되는데 정말 세기의 사랑이야기에 빠져 들을 수 밖에 없는 책이 있다. 얼마전에 이책이 절판이 되어 아쉬웠는데 , 다시 금 멋진 사랑의 사연들을 볼 수 있어서 깊은 사랑의 이야기 숲에 빠져 들수 있었다 .        비교적 널리 알려진 동서양의 유명인들의 러브 스토리 들이라 조금은 지루 한 소재로 오해 될수 있었지만 , 글 솜씨가 좋은 작가 이승하 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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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제목 : 빠져들다 저자 : 이승하 출판사 : 좋은 생각 

    요즘 유행어 중에 " 빠져 봅시~~다 " 라는 개그 맨의 매력 있는 말이 유행되는데 정말 세기의 사랑이야기에 빠져 들을 수 밖에 없는 책이 있다. 얼마전에 이책이 절판이 되어 아쉬웠는데 , 다시 금 멋진 사랑의 사연들을 볼 수 있어서 깊은 사랑의 이야기 숲에 빠져 들수 있었다 .       

    비교적 널리 알려진 동서양의 유명인들의 러브 스토리 들이라 조금은 지루 한 소재로 오해 될수 있었지만 , 글 솜씨가 좋은 작가 이승하 님의 멋진 소개로 읽어보는 뜨겁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애절한 선율에 몸서리 칠만큼 감동 스런 책이다. . 

    거기다 , 몽환 스런 느낌을 돋아주는 이태영 화가의 순정 만화 스타일의 환타지아풍 일레이트레이션이 이야기의 주인공 들을 실감 나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이러니 이책을 대한 느낌은 사랑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본다면 , 흠뻑 빠질만한 구성의 아름다운 책 일 것이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애절한 느낌이 절절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으로 연결 지어 지는 듯한 사랑의 순애보에 빠져 볼 만한 책이다 션덕 여왕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아웅산 수지 여사에 이르기까지 , 세기의 로맨스들을 망라하였기에 유명한 이야기로 다 알듯 하지만 로맨스 속의 진실한 마음들을 읽어 내는 즐거움이 한층 즐겁다.  

    시인 백석과 자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나혜석과 최린의 이야기에서 더욱 눈물 겹고 , 천상병과 문순옥의 러브 스토리는 순수 그 자체 같다 . 희생 같은 아름다운 정성이 천사의 모습처럼 느껴 진다.          

    그리고 서양편의 화가 모딜리아니와 에뷔테른 , 영국의 촬스램과 앤시몬스 넬슨 제독과 에바 훼밍턴 의 로맨스 에 이어서 , 찰리 채프린과 우나 오닐 , 제임스딘과 피어 안젤리 등 많은 로맨스를 통해서, 꿈꾸듯 뜨겁고 미치도록 열광했던 사랑의 정열을 다시금 이책을 읽으며 느낄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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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까마귀 조슈아, 신과 진실을 찾아 떠나다
    jmh5000 | 2005년 08월 24일
    ‘조슈아’라는 이름의 까마귀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보통의 까마귀들이 먹고 자는 것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조슈아는 신을 찾고 명상을 한다. 또한 이제는 잊혀진 존재이지만 위대한 까마귀였다고 알려진 엘쉬커를 믿는다. 덕분에 아버지로부터 꾸지람도 듣고 형제들로부터 장난질 당하기 일쑤다. 그래도 조슈아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더 높은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노아의 친구이자 세계 대륙에 퍼져있는 까마귀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던 엘쉬커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엘쉬케는 노아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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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슈아’라는 이름의 까마귀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보통의 까마귀들이 먹고 자는 것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조슈아는 신을 찾고 명상을 한다. 또한 이제는 잊혀진 존재이지만 위대한 까마귀였다고 알려진 엘쉬커를 믿는다.

    덕분에 아버지로부터 꾸지람도 듣고 형제들로부터 장난질 당하기 일쑤다. 그래도 조슈아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더 높은 것을 갈망하는 것이다. 노아의 친구이자 세계 대륙에 퍼져있는 까마귀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던 엘쉬커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엘쉬케는 노아와 함께 노아의 방주에 올랐던 까마귀다. 그 까마귀는 특별했다. 무엇이 특별한가? 단순히 먹고 자며 동물의 본능대로 살아가는 까마귀가 아니었다. 인간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 인간의 친구였던 것이다. 신의 뜻으로 대홍수가 대륙을 집어 삼켰을 때 노아는 함께 있던 엘쉬케에게 부탁을 한다. 새로운 땅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그 때에 엘쉬케는 절친한 친구 비둘기와 함께 노아의 부탁을 받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엘쉬케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동시에 까마귀들은 위대한 예언자를 잃고 먹는 것과 자는 것, 그리고 당장 하루를 편히 보내는 것에만 몰두하게 된다. 예언자를 잃은 그들은 신의 뜻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조슈아는 다르다. 엘쉬케를 기억하려고 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충동적으로 가출을 하게 된다. 허나 어린 까마귀가 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생존 방식을 배우지 못한 조슈아는 세상의 두려움에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

    낙담하고 외로움을 느낀 조슈아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 결국 집을 향해 날개 짓을 한다. 그리고 다시 반갑게 가족들과 재회할 순간을 맞이한다. 하지만 조슈아는 가족에게 인사를 하지 못한다. 엘쉬케의 이야기를 들려준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못하고, 형과 누나들과 함께 하자는 말도 못하는 것이다. 총을 든 아이들에 의해 가족이 학살됐기 때문이다.

    엘쉬케를 따라 인간과 친구가 되기를 꿈꿨던 조슈아, 신의 뜻을 따르려 했던 조슈아에게 그 장면은 절망 그 자체였다.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작 재미삼아 다른 종을 죽이는 인간을 돕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지 조슈아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회의를 품게 된다. 그리고 다른 까마귀들이 그랬듯이 안락한 당장의 삶에 충실하려 하고 바보 같던 자신을 책망할 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까마귀만큼 불길한 느낌을 만들어주는 새도 없다. 최근에 효자 새라는 사연 등이 소개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상당부분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불길함은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까치소리와 달리 까마귀 울음소리는 아직까지 환영받지 못한다. 또한 까마귀의 날개 짓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을 찾아 나선 까마귀 조슈아의 삶을 그린 크리스토퍼 포스터의 용기는 놀랍다. 지은이는 분명 더 호감을 줄 수 있고, 사랑받는 동물들을 찾아낼 수 있었을 터인데도 까마귀를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더 절실하게 이야기를 건네자는 의도일까? 자신들의 입장에서 까마귀가 불길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알려주려는 속셈일까?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그렇다. 그 말은 <신을 찾아 나선 까마귀 조슈아>에서도 들어맞는다. 사물의 외양만 보고 상황을 받아들였던 조슈아는 모습 이전에 존재하는 진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가장 경이적인 순간’, 즉 자신의 가족들을 죽였던 인간들을 용서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은이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더군다나 그 주인공이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매개체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일수록 더 큰 성과를 얻는 법이다. 지은이는 까마귀를 사랑스러운 동물로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엘쉬케의 전설 외에도 늑대와의 우정이나 인간과의 교감 등의 장면들, 그리고 지은이의 탄탄한 이야기 구성 덕분에 그것을 가능케 한다.

    당장의 것과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신과 진실을 찾으려는 <신을 찾아 나선 까마귀 조슈아>의 메시지는 작품 안에서만 메아리치지 않는다. 그것은 작품 밖에서도 유효하다. 까마귀의 모습만 보고 그랬듯이 보이는 당장의 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던 이들에게 과감하게 생각의 전환을 꾀하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지은이는 어려운 여정 끝에 하찮게 보이더라도 모든 존재하는 것에 의미가 있음을 알려주는 우화를 선보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잊기 쉬운 ‘지혜’를 알려주는데도 성공했다. 더욱이 진실을 찾는 행위가 소멸되어가는 이때에 진실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데도 성공했다. 그것들이 함께하는 <신을 찾아 나선 까마귀 조슈아>는 따뜻한 책이다. 덕분에 세상의 냉랭한 공기와 맞춰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씨에 훈훈한 감정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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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짧은 글, 긴 침묵
    desert44 | 2005년 08월 24일
    짧은 글, 긴 침묵 / 미쎌 투르니에 저 / 김화영 역 / 현대문학 대가(大家)들의 능청은 눈여겨 볼 만하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하지만 거기엔 간과할 수 없는 예지와 통찰이 있다. 초보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일단 열대숲의 구관조처럼 자신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의 화려한 외양에 흠뻑 만족해 한다. 대부분의 처녀시집(處女詩集)들은 이러한 종류의 나르시시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젊음은 그 자체로도 보여줄 가치가 있는 것인데도 굳이 치장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심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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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글, 긴 침묵 / 미쎌 투르니에 저 / 김화영 역 / 현대문학


    대가(大家)들의 능청은 눈여겨 볼 만하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하지만 거기엔 간과할 수 없는 예지와 통찰이 있다. 초보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일단 열대숲의 구관조처럼 자신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의 화려한 외양에 흠뻑 만족해 한다. 대부분의 처녀시집(處女詩集)들은 이러한 종류의 나르시시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젊음은 그 자체로도 보여줄 가치가 있는 것인데도 굳이 치장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 '심뽀'의 배후엔 인간의, 거의 본능적이랄 수 있는 자기현시욕이 있다.


    건물만 해도 그렇다. 졸부들의 거리,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빅토리아풍의 요란한 대리석 장식은 풍경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있는 시각을 한껏 교란한다. 거기엔 침전된 '역사'는 없고 오직 '공간'만이 존재한다. 솜씨가 무르익지 않은 요리사가 재료와 양념을 혹사하는 법, 호들갑스럽지 않을 만큼의 양념에 살코기들을 적당히 버무림으로써도 어떤 이들은 맛깔스런 풍미를 식탁 위에 연출해낸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그렇고, 조선의 백자가 그렇고, 수필가 윤오영의 <방망이 깎는 노인>이 그렇다. 거기엔 지나친 자의식이 없다. 만드는 자의 주관은 재료와 형상에 조용히 자리를 양보해준다. 자신을 드러내놓고 주장하지 않겠다는 이런 겸손은 사실 쉬운 게 아니다. 자본의 논리는 이런 겸손을 아주 희귀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자본은 일단 화려한 외양과 자극적인 목소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겸손이 얼마나 무능력한 처세술인가는 오늘날의 정치가 잘 웅변해준다. 정치는 일단 '말하는 자'의 몫이다.


    자신의 주관을 재료와 형상에 양보하는 겸손의 어법은 자신의 질서를 더 큰 질서 아래 포섭시키려는 구도자적 통찰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 겸손의 어법은 사뭇 경건하기까지 하다. 최소한의 재료로 자신의 품위를 고즈넉하게 말하고 있는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그래서 우리에게서 내뱉어진 너무 많은 말을 무참하게 한다. 자발없이 몸을 뒤챘고, 경박하게 떠들어 댔다는 자책감이 스스로를 아주 몹쓸놈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명품'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그 앞에서 우리의 '뿌리없음'을 스스로 실토하게 만드는 것, 우리가 얼마나 경박한 충동에 자신을 위탁해버렸는지를 아프게 깨닫게 하는 것.


    그러나 명품이 반드시 인간을 주눅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명품 앞에서 우린 엄숙해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론 후후, 적의(敵意) 없는 미소를 터뜨리기도 한다. 『짧은 글, 긴 침묵』의 작가 미셀투르니에는 엉덩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엉덩이에 대한 예찬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조물주가 무슨 변덕을 부려서 인간이 가진 것들 가운데서도 가장 부드럽고 피동적이고 맹목적일 만큼 푸근하게 믿기 잘하는 모든 것, 매질을 당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만이 본분인 그 모든 것이 와서 숨어 있는 이 둥근 구릉을 남자와 여자에게서 박탈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해질 지경이다. 엉덩이는 언제나 수줍게 가려져 있기를 바라는 만큼 매맞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 보들보들한 살은 가장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뽀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대개 학대하고 싶을 때만 엉덩이를 노출하도록 만든다.


    우린 이런 대목에서 후후, 웃으면 된다. 푸짐한 살덩어리, 엉덩이가 이렇게 충성스럽고, 친근한 내 몸의 기관이었던가를 새삼 알아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만으로 엉덩이는 눈물겹도록 고마운 것이다. 조그마한 영광을 엉덩이에게 돌리는 투르니에의 호들갑스럽지 않은 이런 어법 속에서 질좋은 휴머니즘을 느껴보는 일은 재밌다.


    트루니에의 글은 매우 지적인 글이지만 그것이 현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주관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글쓰기의 전략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지적인 글이 빠뜨리기 쉬운 시적 감수성, 시적 감수성이 간과하기 쉬운 지적인 탄력성을 이 책은 잘 믹싱(mixing)해서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의 지중해 연안지방을 <미디Midi>라는 이름으로 지칭하는 것은 절묘하다. 왜 미디인가? 그곳은 태양의 운행 곡선의 정점이요, 태양이 그 절정을 음미하기 위하여 걸음을 멈춘다고 인간들이 즐겨 상상하는 바로 그 균형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절이 불러일으키는 이국취미(exotism)에 아직도 가슴이 설레인다면 지중해는 영원한 피안의 땅이 아니라 마땅히 내가 도착해야 할 세속의 땅이어야 한다. 트루니에는 지중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중해는 이것인 동시에 또한 저것이다>라고. 모든 귀한 것들은 이것인 동시에 저것이다. 심지어 우린 그것이 안타깝게도 우리의 모든 것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짧은 글, 긴 침묵』의 호화 양장본의 뒷켠을 장식하고 있는 이런 카피가 맘에 들지 않는다.


    이 산문집은 집, 도시들, 욱체, 어린이들, 이미지, 풍경, 책, 죽음 등 각기 길이가 다른 8개의 장 속에 짤막한 텍스트들로 묶여 분류되어 있다. 그의 산문은 방만한 수필이 아니다. 그것은 등푸른 생선이다. 구워서 밥상에 올려놓는 생선이 아니라 이제 막 아침빛을 받으며 바다 위로 튀어오르는 생선이다.


    왜 미셀투리니에의 산문이 <구워서 밥상에 올려놓는 생선>이면 안될까. 그런 평가를 고스란히 수락하기에 미셀투르니에의 텍스트는 '쌀'. '엉덩이', '머리털','집과 도시들과 타잔' 등 너무도 번다하고 자질구레한 일상을 담고 있다. 차라리 까뮈의 『결혼, 여름』이란 수필집이

    '막 아침빛을 받으며 바다 위로 튀어오르는 생선'이라면 생선이랄 수 있겠다. 까뮈는 그 책에서 육체를 말하고 있지만 그 육체는 번다한 일상 속의 육체가 아니라 쏟아지는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햇볕 속에 서있는 구릿빛의 육체다. 아직 까뮈가 젊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까뮈의 육체는 해학까지 말할 겨를과 여유가 없다. 그러나 투르니에의 육체는 다르다. 그의 육체는 '이것이면서 저것'이다. 속스럽고도 성스럽고 탐미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엉덩이에 대해서 능청스런 해학을 떨던 그가 때론 이렇게 말한다.


    상처 입고, 치료받고, 죽임을 당하고, 수의에 감싸이는 인간의 육체는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서 형이상학적 현기증과 피학, 가학적 도취감을 자극하는 거대한 주체다. 이는 잔혹함과 애무, 죽임과 찬양이 교차하는 다분히 변태적인 변증법이다.


    바로 이러한 지(知)와 정(情)을 넘나드는 트루니에의 이중성이 이 책의 독서에 좋은 리듬감을 불러일으킨다. 독서의 시간은 이완과 긴장의 반복 속에서 묘한 에로티즘과 만나게 된다. 어젯밤 내가 인터넷의 일본 포르노 사이트에서 접촉할 수 없었던 고즈넉함이 그 속에 있다. 그의 짧은 글 하나.


    인도에서 목격한 광경. 새 한 마리가 종려나무 위에 앉는다. 새가 싼 똥이 나무 둥치 아래 떨어진다. 그 속에 바냔 씨 한 알이 들어 있다. 새똥 덕분에 비옥해진 땅에 씨앗은 싹이 튼다. 바냔 싹이 자라 종려나무를 감는다. 거기에 두번째 싹, 그리고 세번째 싹, 이렇게 여러 개의 싹이 차례로 돋아나 합세하여 종려나무를 감아 올라간다. 마치 여러 개의 점점 더 억세어지는 손가락을 가진 손처럼, 땅에서 솟아난 어린 바냔 나무가 종려나무를 모질게 휘감아 뿌리를 뽑아 올린다. 뿌리뽑힌 종려나무는 바냔나무에 쳐들려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종려나무는 때로는 땅에서 몇 미터씩 쳐들린 채 나뭇가지들의 감옥 속에서 계속하여 생명을 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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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시답게 하는 산문
    desert44 | 2005년 08월 24일
    『공동선』의 편집장인 한상봉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구정 전날이었다. 대학로 근처에 있는 공동선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들었지만 그와 상면을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지금 귀농을 하여 무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는 세 살 아래였지만 묵직했고, 신실했다.그는 무주의 인근에 있는 사람들과 작은 공동체를 꾸려 가고 있다고 했다. 공동선 사무실에서 나는 그의 권유로 편집회의에 참여했다. 한상봉씨는 공동선 3월의 특집주제로 를 제안하면서 귀농에 대한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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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선』의 편집장인 한상봉씨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구정 전날이었다. 대학로 근처에 있는 공동선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들었지만 그와 상면을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는 지금 귀농을 하여 무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는 세 살 아래였지만 묵직했고, 신실했다.그는 무주의 인근에 있는 사람들과 작은 공동체를 꾸려 가고 있다고 했다.

    공동선 사무실에서 나는 그의 권유로 편집회의에 참여했다. 한상봉씨는 공동선 3월의 특집주제로 <은둔이나 사회적 실천이냐>를 제안하면서 귀농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변절에 관해서>란 주제는 어떻겠느냐는 말을 했던 것도 같다.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어떤 식으로든 접속하기 위해서, 그러나 세상과 어떤 식으로든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요란하게 드러낼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을 숨길 만한 사람은 더더욱 아닌 것 같았다. 공동선 1월호에서 그는 허균을 빌어 은둔자의 아웃사이더 정신 역시 세상의 흐름에 거스르는 비장한 저항의 한 형식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삶 자체가 저항인 것은 꿈을 꾸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이러한 일탈이 시류에 영합하는 진부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영혼 깊숙이 잠자고 있던 거룩한 일상을 깨어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동선이 말하고 있는 이런 멘트는 사실 목소리와 몸집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공소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그 목소리와 몸집을 떠받들고 있는 그의 삶처럼 보인다.(나는 그에 대해서 어떤 확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그를 알지 못한다.) 내 의견을 물어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는 편집회의 내내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내 입이 그나마라도 대견한 구석이 있다면 이럴 때다.

    그는 내게 두 권의 책을 주었다. 『지상에 몸 푼 말씀』, 요한복음 묵상 교재로 엮은 두 권의 책이다, 각 챕터의 머리에는 기성시인들의 시가 하나씩 소개되어 있다. 시를 고르는 그의 안목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나는 그의 책에서 백석, 윤동주,민영, 황지우, 김정환, 곽재구의 시들을 다시 읽는다. 좋은 영화음악이 영화에 잘 스미듯 좋은 시들은 그의 산문에 잘 스며있다. 버터가 잘 발라진 빵의 은근한 육질처럼 시를 더욱 시답게 하는 산문과 산문을 더욱 산문답게 하는 시, 시와 산문이 이렇게 고즈넉하게 화해하고 있는 책을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하철 입구역의 한 곳을 장악하고 떠들썩하게 외쳐대는 복음의 말씀과 달리 고막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이런 식의 복음은 내가 독점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산문 한 구절을 소개하자.

    소창다명(小窓多明)이라 했다. 산동네에 가면 창문이 작고 낮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토굴 같은 방안에서 창을 통해 빛줄기를 이루며 지는 은총을 선명하게 체험한다. 그러나 창이 넓은 부잣집은 대낮에도 햇빛이 눈부시다 하여 커튼을 치고, 화려한 실내등으로 방을 밝힌다. 창이 있으되 막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창이 작되 햇빛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천양지차다.


    그가 뽑은 백석의 시 「수라(修羅)」를 다시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한 재미다.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하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 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가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어니젠가: 언젠가
    *싹기도:흥분되거나 긴장된 마음이 풀어져 가라앉다.
    *가제: 막, 방금,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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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서록
    desert44 | 2005년 08월 24일
    제목: [소설] 무서록 / 이태준 무서록 - 오래되었지만 신선한 글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에 입맛이 길들기 마련이고, 씀바귀나물이니 톡쏘는 흑산홍어회엔 도리질을 치기 마련이다. 모든 취향이 나이에 따라 변해간다. 입맛도 나이에 따라 늙는다고 할 수 있을까. 열 몇 살 때는 싸르르한 박인환의 시가 좋았고, 스무살 무렵엔 화려한 장석주 시가 좋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무렵에 이태준의 수필은 무미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 징조라면 징조겠다. 노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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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소설] 무서록 / 이태준


    무서록 - 오래되었지만 신선한 글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에 입맛이 길들기 마련이고, 씀바귀나물이니 톡쏘는 흑산홍어회엔 도리질을 치기 마련이다. 모든 취향이 나이에 따라 변해간다. 입맛도 나이에 따라 늙는다고 할 수 있을까. 열 몇 살 때는 싸르르한 박인환의 시가 좋았고, 스무살 무렵엔 화려한 장석주 시가 좋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무렵에 이태준의 수필은 무미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금은 또 다르다. 이런 게 나이를 먹는 징조라면 징조겠다. 노자와 장자와 금강경이 전에 없이 읽히고 피천득의 수필도 무리없이 읽힌다면 이건 명백히 조로(早老) 증세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아직 염려할 단계는 아니다. 아직 내 애창곡들은 비트가 강한 쪽이다. 김광석보다는 나는 안치환 쪽으로 기운다. 반듯한 것보다는 삐딱한 쪽으로 기우는 성향도 여전하다. 이건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아님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제 방을 청소할 때만해도 그랬다. 벽에 걸려있는 액자며 장식물들이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몇 개는 치워 버렸다. 다소 삽상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삽상한 느낌도 책장을 마주하면 싸그리 사라지고 만다. 좋다 싶으면 장르 불문하고 읽어대고, 아니다 싶으면 팽개쳐버리는 독서습관은 책장을 아주 무정부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독서 취향의 변천사가 그 책장 안에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번잡하고, 두서없고, 무질서하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요령부득이다. 책장을 보면서 내가 저 책들을 배반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빈방이니까. 크고 텅 빈 방.

    문득 남해금산 보리암 근처 부산여인숙의 빈 방이 생각났다. 덩그마한 빈 방에 아내와 단 둘이 누워있으려니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었다. 새벽 범종소리는 가히 우주를 흔들어 깨우는 듯했었다, 그런 고요와 내 책방의 분위기는 너무 멀다. 한지로 도배된 작은 방에 조그만 상 하나를 가져다 놓고 파초 잎에 빗방울 듣는 소리에 귀를 열고 싶다는 운치와 멋을 내것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 멋을 내기엔 이르다. 그윽한 시선으로 난초와 자기(磁器)를 완상(玩賞)하면서 깊은 차맛을 음미하며 무위의 경지를 소요(逍遙)하고 싶은 맘도 없다.

    왠지 청승맞아 보인다. 이런 나에게는 완물상지(玩物喪志)란 말이 반갑다. 완물(玩物)에 마음을 빼앗겨 뜻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 어떤 멋스러움에 마음을 의탁할 나이는 아직 아닌 듯하다. 텃밭도 가꾸며 전원의 한미(閑微)함도 즐길 수 있는 전원주택도 내 뜻하는 바는 아직 아니다. 사계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커다란 창이 있는 저택은 내 경제력으로도 요령부득이지만 거저 준다고 해도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켕긴다.

    단지 커다랗고 조용한 빈 방이 하나 있었음 좋겠다. 가끔은 이거저거 벗어버리고 운주사나 송광사쯤에서 적요함의 세례를 맞아 보아도 좋겠다. 명상음악과 작설차와, 난초, 파초는 너무 멋스러워서 사양할란다. 뜨아, 하품이나 하면서 점심 때쯤 눈꼽이나 떼고 창문을 열어 길게 한번 호흡할 수 있는 그런 빈방이 하나 있음 좋겠다.

    그런 방에 어울리는 것은 하품이지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태준의 이런 책은 괜찮을 듯싶다. 제목부터가 무덤덤한 『무서록無序錄』, 책 제목을 풀이하자면 순서가 없다쯤 될 것이다. 순서가 없으니 어떤 페이지를 먼저 읽든 상관은 없다.

    일찍이 시인 지용은 산문하면 이태준을 꼽았단다.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두 세 시간 쯤을 이런 명편에 할애한다는 것은 꽤 괜찮은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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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desert44 | 2005년 08월 24일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 알랭 드 보통 / 한뜻 출판사 돈 주고 사긴 아깝고 관심의 영역에서 추방하자니 조금 아쉽기도 한 소설이 있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소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도 뭐 그런 종류의 글이려니 했다. 수서역 구내 서점에서 덤핑으로 사분의 일의 가격에 이 책을 구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제값을 주고 구해 읽을 엄두를 못 냈을것이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고도 종국엔 아니야, 이건 아니야를 연발한 적이 얼마나 잦았던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제목부터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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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 알랭 드 보통 / 한뜻 출판사


    돈 주고 사긴 아깝고 관심의 영역에서 추방하자니 조금 아쉽기도 한 소설이 있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소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도 뭐 그런 종류의 글이려니 했다. 수서역 구내 서점에서 덤핑으로 사분의 일의 가격에 이 책을 구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제값을 주고 구해 읽을 엄두를 못 냈을것이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고도 종국엔 아니야, 이건 아니야를 연발한 적이 얼마나 잦았던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제목부터가 다소 선정적이고 천박하지 않은가. 드러내놓고 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오, 선전하고 있는 것 같고 약간은 도발적인 제목으로 행인의 눈길을 끄는 것 같아 애초엔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원제가 밋밋하기 그지없는 『The Romantic Movement』임을 감안한다면 제목의 선정성은 작가의 탓이 아니라 상업적 계산에 밝을 수밖에 없는 출판사의 장삿속 탓이다.

    원제를 보고 제목에 대한 반감이 누그러뜨려지긴 했다. 게다가 신림동 스피노자 안경점 주인 고일희씨가 그 소설 그런 대로 깜찍해요, 하는 말에 얇은 내 귀가 그만 솔깃했던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별 셋쯤은 줄만 했다. 달리 말하면 그리 나쁜 소설은 아니라는 거다. 읽어서 시간 낭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대로 성공한 독서인 셈이 아닌가. 사실 별 하나 주기에도 아까운 소설에 기껏 시간을 빼앗기고 내 무딘 선구안(選球眼)을 탓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 젊고 명민한 작가는 비트겐쉬타인, 프로이트 등 여러 이론가들의 논리와 현학적인 텍스트들을 동원하여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를 상당한 수준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그런 분석이 서걱이지 않고 그런 대로 소설에 잘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을 독파한 후에 소설책 한 권과 에세이집을 동시에 읽은 느낌이 드는 것도 아마도 그런 때문.

    소설은 서사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 소설에 관한 내 지론이었다면 지론이었는데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은 그런 평소의 내 소설관을 기분좋게 유린한다. 일단 길게 숨을 쉬고 다음과 같은 대목을 보자.


    워홀은 보잘것 없는 통조림 깡통을 소재로, 프라톤의 견해처럼 예술이 현실의 사물을 단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와일드의 말처럼 그 사물의 가치를 확대시킨다는 기적을 실행에 옮겼다. 캠벨 회사의 통조림은 분명 사람을 우울하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 깡통을 다른 사람과 함께 본다면, 누군가가 주의를 기울여 가치 있는 사물로 변형시켰다면, 그래서 그 사물이 예술적인 고매함을 얻어 박물관의 벽에 걸린다면, 우리가 느끼는 우울함은 얼마나 가벼워질 것인가? 오랫동안 재현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고 '일상적 사물'이라는 경멸적인 범주로 취급받아 왔던 그 모든 것들, 이를테면 깡통이나 햄버거, 헤어드라이기나 립스틱, 샤워꼭지나 전등의 스위치 따위들이, 이제는 예술가의 손에 다루어진다는 이유로 진지한 비평가들의 눈길을 한몸에 받게 되었다. 그들은 먹고 있던 감자 스프 너머로, 이전에는 무의미하게 지나쳤던 온갖 사물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마돈나와 비너스 그리고 그리스도의 수태와 더불어 미학의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결정 때문이었다.

    일상적인 것들이 미학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사물의 형태와 색, 소리와 반향 등을 타성적으로 무시하려던 경향이 사라지고 다음과 같은 공식이 보편화되었다. <여기, 이 속에도 특별한 것이 살아 숨쉬고 있음> 시릴 코널 리가 정의한 대로, 단지 한 번만 생각해 볼 어떤 것이 저널리즘이고 재차 눈길을 끄는 것이 문학이라면 캠벨 회사의 깡통은 워홀의 손끝에서 문학적인 지위를 획득하기 전까지는 '단지 소량의 액체를 담기 위해 제작된 일회용 물품으로서 저널리스틱한 것이었다. 당신이 오랫동안 모르고 지냈던 콧등이나 손등의 주근깨를 보고 연인이 감탄하는 일과 워홀이 물감으로 해낸 일에는 유사점이 있지 않은가?

    <중략> 그렇게 자질구레한 것들에 경탄하는 것은 통조림 깡통이 벽에 걸리는 일만큼이나 우스운 일이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도 더 넓고 더 중요한 전체, 즉 사랑하는 사람 그 자체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떤 세부적인 특징이 보다 큰 전체의 일부로 비쳐질 때, 그것은 단순히 사소한 것 이상의 지위를 얻게 된다.


    팝아티스트 앤디워홀의 캠벨 스프 깡통을 빌어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감정을 분석하는 작가의 필치는 경쾌하지만 자칫 <이런 것도 소설이야>하는 비난을 살 만하다. 그러나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소설이 꼭 소설이어야 한다는 법 있나>하는 심사로 읽어 내려간다면 거기서 느끼는 재미도 쏠쏠할 듯. 다음은 역자 후기의 한 토막. <특유의 현학적인 분석, 지적 유희, 사소한 것들에 대한 영민한 눈길, 거대함과 진지함의 무게를 더는 재치는 역시 이 소설에도 가득하다.>
    이런 구절도 곱씹을 만하다.


    어떤 학문 분야에서는 투명성에 반대하고 그에 상응하여 난해한 텍스트를 존중하는 편향이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다. 칸트나 헤겔, 후설이나 하이데거의 밀도 높은 글에 전념하는 학자들은 그속에 담겨 있다고 그들이 말하는 빛나는 사상들에 사로잡힐 뿐 아니라, 서툰 독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꼬이고 왜곡된 언어의 미로 속에서 이 사상들을 발견하는 순수한 어려움에 이끌리기도 한다.

    <중략> 독자를 고생시키는 저작은 명확하고 투명하게 읽히는 책보다 더 심오하고도 유효하며 더 진실하다고 간주되는 경우가 있다. 예민한 사람이 하이데거나 후설에 빠져 있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은 얼마나 심오한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분명 저자가 나보다 똑똑하기 때문이지. 이해하기 어려운 까닭은 이해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야. 그 책을 한쪽으로 집어던지고 참을 수 없는 헛소리로 가득한 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경우는 아무래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략> 이것을 인간관계에 적용시킨다면, 까다로운 연인이 솔직 명료하고 예측가능하며 제시간에 전화를 걸어주는 연인보다 어떻게든 더 가치 있다는 개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종교적 낭만적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런 유형의 손쉬운 사랑은 비난이나 회피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들은, 훌륭한 문체로 빛나는 산문이 교육받은 20세 청년에게 이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속에 담긴 사상을 조롱하고 마는 학자들처럼 행동한다.


    상당히 솔직한 분석이다. 난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모리스 블량쇼에 대한 내 무능한 독해 실력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모리스 블량쇼는 언제나 내 이해 수준을 웃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블랑쇼 블랑쇼 할 때, 저들이 진정으로 블랑쇼를 이해하고 하는 말일까 의아했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나를 조금 안도하게 했다. 아마도 그들도 블랑쇼를 이해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들이 블랑쇼에게 보여 주었던 열광은 자신의 이해 수준을 웃도는 그 난해성에 대서 기웃거려 본 작가들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그런 독서는 필경 실패한 찬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정도의 난해함의 수준쯤이야 나도 이해할 수 있어, 라고 하는 어떤 지적 나르시시즘이 블랑쇼에 대한 찬사를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내 스스로에 대한 이 정도의 격려라면 나도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한 한심한 나르시스트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보니 <소설은 서사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라는 내 믿음을 내 스스로 져버렸다.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의 서사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으니 말이다. 일독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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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의 학교
    desert44 | 2005년 08월 24일
    어른의 학교 / 이윤기 / 민음사 김수영도 그랬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의례 수필에 대한 묘한 저항감을 나타내 보인다. 문학가들의 그런 저항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잡문(雜文)을 쓴다는 식이라든가, 시의 타락이 소설이요, 소설의 타락이 수필이라는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장르의 위계 질서가 엄존하는 곳에서 시나 소설이 아닌 글들은 간단하게 잡스런 글들로 분류된다. 서양쪽이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사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서 잡문에 대한 점수는 그리 후한 편이 못된다. (대체 장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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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의 학교 / 이윤기 / 민음사


    김수영도 그랬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의례 수필에 대한 묘한 저항감을 나타내 보인다. 문학가들의 그런 저항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잡문(雜文)을 쓴다는 식이라든가, 시의 타락이 소설이요, 소설의 타락이 수필이라는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장르의 위계 질서가 엄존하는 곳에서 시나 소설이 아닌 글들은 간단하게 잡스런 글들로 분류된다. 서양쪽이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사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서 잡문에 대한 점수는 그리 후한 편이 못된다. (대체 장르에 대한 이런 식의 평가가 어떤 기원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국 현대 문학에서 사유와 문체가 잘 버무려진 맛깔난 에세이를 읽기가 쉽지 않다. 김소운이나 윤오영의 수필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글을 향한 조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그 양이 적다. 파스칼의 『팡세』와 같이 문체의 요모조모를 뜯어보는 즐거움과 함께 거장의 정신의 광맥을 짚어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책은 불행하게도 그리 많지가 않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제법 빗줄기가 굵은 소낙비다. 김화영의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문학상상력의 연구』도 문체와 사유가 행복하게 악수하고 있는 아주 희귀한 예에 속할 것이다. 여러번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논문이라면 나는 김화영의 카뮈 연구서인 『문학상상력의 연구』를 권한다. 적어도 김화영의 이 책에서만큼은 <아름다운 논문>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윤기의 『어른의 학교』도 호우급에 속한다. 그 빗줄기가 사뭇 시원하다. 이문열이 그랬던가. 이윤기의 소설은 잔재주로 안개를 피우지 않는다고. 그런 사정은 수필에서도 마찬가지. 분위기로 멋을 부리지 않는 대신 그의 의뭉은 여전히 한 소식을 전한다. 귀밑이 희끗희끗한 이 아저씨는 능청스럽게 사람을 웃긴다. 본심을 슬쩍 뒤로 감추고 짤막짤막한 스타카토식 발언으로 소위 '뒷다마를 까는' 솜씨는 고수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글을 꼬부려서라도 미문을 쓰겠다고 덤비는 요즘의 신세대 작가들도 한 번 눈여겨 볼 만한 문체다. 국내 몇 안되는 유능한 번역문학가로서 잔뼈가 굵은 그는, 오랜 번역 과정에서 얻었음직한 인문학적 교양으로 한껏 글의 후광 효과를 살린다. 선가(禪家)의 에피소드들도 재밌다. 책의 여백은 시원하다. 북디자인 방면에서 그래도 한다 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정병규의 솜씨가 책의 외양을 산뜻하게 했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정재규의 컷도 운치가 있다. 꼼꼼히 읽으면 이윤기의 콤플렉스가 보인다. 대충 읽어도 이윤기의 유머는 보인다. 내 마음은 이런 구절에 기표했다.


    사다리를 버린다(去梯)커니, 통발은 잊는다(忘筌)커니,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다(不立文字)커니 하는 거 아무나 지망지망히 시늉할 것이 아닙니다. 사다리는 누각에 오른 연후에야 버리는 것(登樓去梯), 통발은 물고기를 잡은 연후에 잊는 것(得魚忘筌)입니다. 자기 근기(根氣)는 요량도 못하는 채 뭘 불싸지르고 뭘 버리는 거 좋아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적어집니다.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들 것이 아니라 모두 배우는 일에 겸손해졌으면 합니다. 옛 선사 한 분의 말씀이 들어둘 만합니다. <언필칭, ' 불립문자 '라고 하나 문자도 방편될 것이면 가히 길동무 삼을 만한 것이라(그러니까 까불지 말거라).>


    옳다. 언어나 논리가 아니라면 우리가 달리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김용옥도 그런 말을 했지만 논리의 극단에서 초논리이어야지 논리란 논리는 모두 정리해고한 후에 초논리하자는 것은 우습다. 아니 위태롭다. 공자님도 우군으로서 여기에 한 마디 거드신다.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사색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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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년 동안의 고독
    desert44 | 2005년 08월 24일
    백년 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르께스에게 바쳐진 헌사 중 최고의 것은 쿤데라의 입을 빌어야 했다. 아닌게 아니라 쿤데라는 유머의 대가답게 호들갑을 떨지않아서 좋다. 마콘도에서 아이들은 양탄자를 타고 다니면서 날아다닌다. 나는 것이 필요하면 나는 것을 꿈꾸면 된다. 비행기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꿈꾸면 된다. 마콘도는 가난한 땅이다. 그래서 신화도 많고, 전설도 많고 방귀 소리도 크다. 거기에 돼지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엄청난 방귀로 꽃들을 질식시켜 죽여 버리는 거대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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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 동안의 고독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르께스에게 바쳐진 헌사 중 최고의 것은 쿤데라의 입을 빌어야 했다.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지엽말단적인 걱정일 뿐이다. 동구나 중남미 작가들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서재에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꽂아놓은 채 소설의 죽음에 대해 중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닌게 아니라 쿤데라는 유머의 대가답게 호들갑을 떨지않아서 좋다.

    마콘도에서 아이들은 양탄자를 타고 다니면서 날아다닌다. 나는 것이 필요하면 나는 것을 꿈꾸면 된다. 비행기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비행기를 꿈꾸면 된다. 마콘도는 가난한 땅이다. 그래서 신화도 많고, 전설도 많고 방귀 소리도 크다. 거기에 돼지 한 마리를 먹어치우고 엄청난 방귀로 꽃들을 질식시켜 죽여 버리는 거대한 사나이가 있다 해도 따지지 말 일, 송아지 한 마리와 쉰 개의 오렌지, 8리터의 커피와 30개의 날계란, 두 마리의 돼지와 한 다발의 바나나, 네 상자의 샴페인을 먹어치우는 여자가 있다 해도 따지지 말 일, 하늘에서 꽃비가 내릴 수도 있고, 한 여인이 돼지 꼬리가 달린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도 그곳에서는 극한을 향해 과장된다.

    중요한 건 표현과 현실의 일치가 아니라 무슨 말을 해도 즐겁자는 것. 그것이 게임의 논리요 언어의 논리가 아닌가. 생각해보시라 아무리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겠는가.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곳이 있다는 말인가. 해서 하는 말인데 즐겁자는 게 말이니 따지지들 마시길.

    극한의 아름다움, 그 강철의 무지개 앞에서 죽음이나 삶도 무게를 잃어 버린다. 마콘도에서 운우지락(雲雨之樂)의 열락의 신음은 무덤 속의 유골마저 놀라움에 떨게 한다. 그런 강렬한 매혹 앞에서 현기증을 느끼는 몸, 탕진을 예감하며 떠는 몸, 죽음을 예감하며 한 사나이가 미녀 레메디오스의 아랫배에 손을 집어 넣는다. 이럴 때 에로티즘은 지독하게 외로워 보인다. 에로티즘은 지긋지긋한 개체성을 탈피해 어떤 합일과 섬광의 순간을 꿈꾸지만 그게 될 법한 일인가.

    나는 너라구?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나는 지긋지긋하게 나다. 아닌가? 대체 어떤 탁월한 수단과 방법으로 네가 나이며, 내가 너란 말인가? 하기야 개체가 제 윤곽을 허무는 일도 있긴 하겠다. 가령 죽음 같은 거 말이다. 세상이 내 허물어진 몸에 확, 침투해서 비로소 내가 세상이 된다. 그런데 나는 없다. 그때 난 죽었으니까. 암만 생각해도 내가 네가 되는 경우를 알지 못하겠다. 약의 힘을 빌기도 어렵고.

    <진정한 기억은 기억의 환영 같았다. 반면에 거짓스러운 기억은 너무도 그럴 듯해서 현실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것 같았다.>라는 마르께스의 구절은 곱씹을 만하다. 대문 앞에 부서지는 햇살, 찌그러진 냄비, 하수구에서 꼼지락거리던 미꾸라지들, 담장은 창문까지 기울어져 어둑신한 방안, 그리고 담장 밑의 푸른 개똥참외, 대체 이런 기억들은 무엇인가. 과연 나는 그런 것들을 경험한 것이라도 한 것일까. 그 기억엔 현실감이 없다. 나는 어떤 환상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기억은 너무도 완강해서 나는 그것들을 차마 부인할 수도 없다. 내가 내 속에서 무엇인가를 분명히 묘사해냈다면 거기엔 필경 일정량의 픽션이 개입했음이 틀림이 없다. 모든 기억은 흐릿하다. 그래서 아련하고 조금은 알싸하다. 분명한 건 분명하기 때문에 사기고 흐릿한 건 흐릿해서 사기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사기냐 사기 아니냐를 따지자는 게 아니쟎은가? (내 소리가 그 소리)

    마르께스가 이렇게 말할 때, 그는 가난이나 불안의 초상을 마치 신주 단지 모시는 듯한, 구질구질한 유럽의 작가와는 확연하게 구별된다. <헤밍웨이는 항상 창조성의 낭만적 개념에 반대하여, 윤택한 경제 상황과 좋은 건강이 훌륭한 글쓰기로 이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궁핍은 때로 너무나도 많은 과오를 변명하게 만들고, 폐결핵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필요 이상의 연민을 만들어 낸다. 궁핍과 질병은 세상에 복수의 칼날을 갈게 하지만 윤택함은 세상과 놀게 한다. 복수보다는 유희가 즐겁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백년 동안의 고독』이 말하는 것은 욕망이다. 욕망은 유전될 뿐 진화하지 않는다. 테크놀로지가 욕망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조작할 수 있는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까지는 인간은 아랫도릴 싸쥐고 신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럴 때 대체 역사는 발전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늙지 않는 욕망과 함께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은 아닌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역사가 끊임없이 욕망과 함께 순환하는 땅은 마콘도이다. 마콘도, 낙원의 땅, 저주의 땅, 대홍수의 땅, 전쟁과 살육의 땅, 위대한 어머니의 땅.

    욕망이란 렌즈를 통해서 본 미래는 뻔하다. 기껏 날아보았자 부처님의 손바닥 안이다. 욕망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안해냈다면 그는 대단한 히트상품을 발명한 셈. 어떤 고약한 신이 욕망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지도 않으면서 영생만을 준다면 그보다 지독한 테러는 없을 것이다. 욕망을 좌지우지하고 그것을 제멋대로 주물러 가지고 놀 수 있는 막강한 힘과 함께 영생을 주지 않는다면 영생은 감옥이다. 담배는 수백 보루가 쌓여있는데 불이 없는 감옥처럼 끔찍한 감옥이 있을까.

    프랑스의 한 출판사는 마르께스에게 물었다. 그는 유머스럽게 대답했다.
    - 당신 최대의 미덕은?
    - 죽을 때까지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능력
    마르께스의 그런 미덕도 결국은 언어에 의해서 폭로된다. 말이란 놈 대단하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놈에 맞아 아파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둘러싸여 행복해하는지. 최소한 마르께스는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 더 바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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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껴 먹는 슬픔
    nopoem | 2005년 08월 24일
    아껴 먹는 슬픔 / 유종인 / 문학과 지성사 시집 곳곳에 출몰하는 미친 사람의 이야기, 그러나 시의 발성은 전혀 미쳐있지 않고 너무도 안정되고 낮은 목소리다. 도대체 미친 것은 누구인가. 시에 씌여진 그대로 작자의 누이인가. 어머니인가. 아버지인가. 단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시적 화자, 그 자신이라고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적 화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지는 이 세상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확장된 시각을 가진다면 우리 모두가 '광인'임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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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껴 먹는 슬픔 / 유종인 / 문학과 지성사

    시집 곳곳에 출몰하는 미친 사람의 이야기, 그러나 시의 발성은 전혀 미쳐있지 않고 너무도 안정되고 낮은 목소리다. 도대체 미친 것은 누구인가. 시에 씌여진 그대로 작자의 누이인가. 어머니인가. 아버지인가.

    단 하나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시적 화자, 그 자신이라고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적 화자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지는 이 세상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확장된 시각을 가진다면 우리 모두가 '광인'임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그의 말마따나 '증세를 다 호명할 수 없어 그냥 놔둔 노천 병원'이고 시적 화자는 그러한 진실들을 낱낱이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병은 무엇인가. 그는 정신 미분열증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팝콘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꽃
    꽃은 열매 속에도 있다

    단단한 씨앗들
    뜨거움을 벗어버리려고
    속을 밖으로
    뒤집어 쓰고 있다

    내 마음 진창이라 캄캄했을 때
    창문 깨고 투신하듯
    내 맘을 네 속으로 까뒤집어 보인 때
    꽃이다

    뜨거움을 감출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속을 뒤집었다, 밖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은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꽃은
    견딜 수 없는 嘔吐다

    나는 꽃을 집어먹었다


    위 시에서는 꽃이 진 자리에서 열매가 맺힌다는 기본적인 도식을 뒤집고 있다. 열매는 꽃 속에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꽃이 열매를 맺게 할 수도 있고 열매가 꽃을 피워낼 수도 있다. 언제나 바깥에 머물던 것이 안이 될 수도 있고 안은 또한 바깥이 될 수 있다. 아름다운 꽃이 견딜 수 없는 구토가 될 수 있고 이런 구토는 또다시 '먹어져서' 화자의 속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이항대립의 해체. 그것이 시인이 보고 있는 정신 미분열증이다.

    삶의 등뒤에 죽음은 언제나 앙증맙게 업혀있다. 시집에서 가장 주된 안과 밖의 분열은 이 삶과 죽음의 두 축이다. 살아있으면서 죽었음을 깨닫는 상태, 이것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미쳤음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예일 것이다. 시인은 이런 상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시집이 때때로 답답한 것은 그의 이항대립 붕괴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까닭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잣대가 서기도 전에 시인은 붕괴를 맞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이러한 시각으로 무엇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인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이러한 생각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


    세상 모든 비밀에 방패연 구멍을 뚫고
    갈 곳 없는 시간에 꼬리를 달아줬어요
    (광인일기 4)


    구멍을 뚫는다는 행위는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다. 그리고 그렇게 뚫려 있을 때에만 방패연은 하늘을 날 수 있다. 시인의 전략은 명확하다. 안과 밖을 꿰뚫고 삶의 진실 혹은 죽음의 진실, 그 혼합된 진실을 바라봄으로 해서 날아오르고 싶은 것이다.

    그의 연날리기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다음 시집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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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연향
    nopoem | 2005년 08월 24일
    용연향 / 김정란 / 나남 시집이 나오기 전에 나는 많이 우려하고 있었다. 그녀의 문학 외적인 활동을 나는 그다지 찬성하고 있지 않다.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김정란의 시는 외적인 부분과의 마찰이 아닌 내면과의 마찰로 쓰여지는 그것인 까닭에 그녀의 문학 외적 활동은 그녀의 문학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시집을 다 읽어낸 지금, 나의 걱정이 다소 과한 것이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음을 느낀다. 그녀의 시집은 언제나 동어반복이다. 한 시집 안에 담겨 있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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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향 / 김정란 / 나남

    시집이 나오기 전에 나는 많이 우려하고 있었다. 그녀의 문학 외적인 활동을 나는 그다지 찬성하고 있지 않다.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김정란의 시는 외적인 부분과의 마찰이 아닌 내면과의 마찰로 쓰여지는 그것인 까닭에 그녀의 문학 외적 활동은 그녀의 문학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시집을 다 읽어낸 지금, 나의 걱정이 다소 과한 것이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음을 느낀다.


    그녀의 시집은 언제나 동어반복이다. 한 시집 안에 담겨 있는 시들은 모두 같은 주제를 향해 쓰여지고 접근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그러나 그것이 각각의 시들에 대해 존재의 이유를 물어야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시들은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저희들 스스로 울림을 만들며 깊어진다. 그리고 그 울림은 그녀의 시가 다른 누구의 시와도 구별되는 것임을 이야기해 준다. 그녀의 시가 훌륭하냐 아니냐는 점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독특한 위치를 가진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첫 번째 시집부터 세 번째 시집은 그 시집 안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일정한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다. 첫 시집, 「다시 시작하는 나비」에서부터 「매혹 혹은 겹침」을 거쳐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까지 그녀는 점차 존재의 근원으로 하강해 왔다. 그녀의 시에 매혹 당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녀의 이런 진행성이었음을 이야기해야겠다. 언제나 다음 시집에서 이전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그 지점을 지나 더 깊은 지점을 보여주는 시, 그래서 그녀의 시집을 사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앞서 나의 걱정이 부질없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던 이유는 그녀의 이번 시집이 이런 진행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까닭이다. 그녀는 「그 여자, 입구에서 가만히 뒤돌아보네」에서 반발자국 더 들어갔을까? 좀 더 구체적이 되었을 뿐, 큰 걸음을 내딛지는 못한 듯 하다. 이는 그녀 자신이 추구하는 곳으로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든 내적 어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잦은 외도로 인해 생긴 불상사인지 그것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복합적인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해 볼뿐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역시 그녀는 일인칭 화자로써 이야기하고 있다. 총 네 단계로 이루어진 시집의 소제목은 각각 '눈물의 방', '치유와 성숙', '계시 또는 천사', '세상속으로-귀환과 연대'이다.(서사적인 구조로 짜여진 이 구조는 (연대로의 희망을 통해) 미래를 향해 열려있고 (시작된 고통을 말함으로) 과거를 향해서는 닫혀있다.

    이점이 이 시집을 그 동안 출판된 그녀의 시집에 대한 요약, 정리가 아니냐는 의심을 가지게 하고 그래서 이 시집이 그 전의 시집에 비해 좀처럼 나아간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좀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 고통의 극복과 그리고 희망. 통속적인 서사구조 속에 배치되어 있는 그녀의 시편들은 자신의 고통을 제시하고 자신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자신이 믿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자기중심의 글쓰기를 의도적으로 오해한 까닭에 남진우는 김정란의 시를 '사춘기 소녀의 감상에 빠져 있는 시'라고 이야기했다. 그에게 이 시집은 한 나르시스트의 자기 하소연 정도로 읽힐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으로 인해 잘려나가는 무수한 부분들에 대해 남진우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 그녀의 시가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는 그 부분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나르시스가 목숨을 걸고 닿고자 열망했던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는 절대적 아름다움의 타자였다. 김정란은 그녀 안에서 존재의 본질, 근원을 본다. 이것은 그녀 안에 간직되어 있는 어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도 누구에게도 간직되어있는 보편적인 무엇이다. 그럼으로 이것은 내 안에 있으면서 무한히 밖에 있고 열리면서 동시에 닫혀 있고 있으면서도 없다. 김정란은 이것을 여성성이라고 규정하고 근대 이성중심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억압받아 왔던 본질적인 것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바로 억압받은 '여자의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녀의 시는 심층 심리학과 맞닿아 있다.

    또 수많은 신화 연구 속에서 밝혀지는 여신에 대한 해석과도 맞닿아 있다. 은폐된 존재의 신비와 맞닿아 있다. 그럼으로 여성인권 회복을 요구하는 페미니즘과도 김정란은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녀가 여성성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남녀를 막론한 인간 영혼의 고귀한 본질성 회복이다. 그녀가 살고 싶어하는 마을은 '흰 눈 종일 조용조용 내리고/ 상처들이 비밀스럽게 편지를 주고 받는 곳,/ 당신도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상한 빛을 생산하는 기이한 발전기가 되는' 마을이다.

    시집 끝에 있는 권명환은 그의 평론에서 김정란의 시를 읽어내는 방법은 '시인과 일체가 되어 스스로 불타 봐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상으로 존재하는 다른 시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런 필요가 김정란의 시가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아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좀더 깊숙이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시는 더 이상 읽히기 위한 어떠한 조건도 필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것은 저 혼자서 울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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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하얀그녀 | 2005년 08월 24일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저/권진욱 역 chr(124)_pipe 한문화 사춘기시절,무작정 글쓰기에 집착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디로든 터져버리고 싶었고,어쩔 수 없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 다. 그림 그리는게 좋아 시작했던 미술도 결국은 마찬가지였고,모든건,대학을 가기위한 논리가 있었고,무엇하나 자유가 없었다.화실에 다니고,레슨을 받고,빠른 시간들 속에 서 나는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나는 종이라면 아무데 나 썼다.일기장을 비롯 수업시간에 문득 생각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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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저/권진욱 역 chr(124)_pipe 한문화

    사춘기시절,무작정 글쓰기에 집착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디로든 터져버리고 싶었고,어쩔 수 없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
    다.
    그림 그리는게 좋아 시작했던 미술도 결국은 마찬가지였고,모든건,대학을 가기위한
    논리가 있었고,무엇하나 자유가 없었다.화실에 다니고,레슨을 받고,빠른 시간들 속에
    서 나는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나는 종이라면 아무데
    나 썼다.일기장을 비롯 수업시간에 문득 생각나는 것이면 교과서,학습노트,심지어는
    내 방 벽지위에다에도 나는 썼고,끊임없이 흔적을 남겼다.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직
    도 누군가 내글을 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이책의 저자 나
    탈리 골드버그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자유로운 글쓰기<진실되고 자유로운 글쓰기
    >....누구나 알고 있고,쉬운 듯 보이는 글쓰기...
    습작을 하고,많은 책을 읽고,또 끊임없이 쓰고,읽고...
    를 하라고 얘기한다.
    그렇다.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논리적이고,이성적인 사고밑으로 자신도 모르는 영롱하고 투명한 맑
    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자신의 내면을 깨닫고 진실된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자신
    의 손놀림은 빨라지고,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져 놀라울것이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선 명상 체험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펜을 잡고 글을 쓰고만 싶어졌다.
    글을 쓸수 있는 한권의 노트와 부드러운 느낌의 펜만 있다면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쓸수 있을 것만 같았다.이 책은 분명 무언가 하고 싶지만 자신감부족이거나 아
    직 "글쓰기"란 어려운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인것 같다.


    어쩌면 너무 심오하고,어렵기도 한,또는 너무 투명한 우리의 정신세계를 저자는 선
    명상법을 톻하여 글쓰기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고,우리에게 그것을 일러주고 싶
    었는지 알수 있다.

    저자의 말중에 <"첫 생각"을 놓치지 말자>라고 한 얘기는 가장 많이 와닿았다.
    글을 쓸때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감정과 에너지의 힘에 겁에
    질려 먹을지 모르지만 이때 손을 멈추어선 안된다고 말한다.모든걸 기록하고 심장부
    로 뚫고 들어가 손을 움직이라고 말한다.
    "첫 생각은 에고나 우리를 통제하려고 드는 메커니즘(세상은 영구불변하며,견고하며,
    지속적이고,논리적이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은 생각이다.세계는 불변이 아니라 끊
    임없이 변하고 있으며,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실들로 가득하다.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자신의 의식 차원을 넘어선 글을 쓸때,그것은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실을 나
    타낸 것이 된다.그래서 이런 글은 에너지가 넘칠 수 밖에 없다.당신의 글쓰기를 누르
    던 자아라는 짐을 벗어 던지는 순간 당신은 인간적 감성과 인생의 단편이라는 파도
    를 타고 더 큰 조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늘,처음이란 것은 가슴 설레이고,가장 신선한 것이 아닐까.
    가장 순수할 수 있는 첫 생각.....
    이 책은 분명 글쓰기에 지레 겁을 먹고 있는 이들에게 무언가 막 쓰고 싶게끔 하는
    용기와 충고와 자신감을 안겨 줄것이다...
    끝으로 저자가 한 말을 인용해 본다.

    *손을 계속 움직이라,방금 쓴 글을 읽기 위해 손을 멈추지 말라.
    그렇게 되면 지금 쓰는 글을 조절하려고 머뭇거리게 된다.

    *편집하려 들지 말라,설사 쓸 의도가 없는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라.

    *철자법이나 구두점등 문법에 얽매이지 말라.여백을 남기고 종이에 그려진
    줄에 맞추려고 애쓸 필요 없다.

    *마음을 통제하지 말라,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더 깊은 핏줄로 자꾸 파고들라.두려움이나 발가벗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무조건 더 깊이 뛰어들라.거기에 바로 에너지가 있다.

    *생각하려 들지 말라.논리적 사고는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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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literist | 2005년 08월 24일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 이치흔 / 민음사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작품이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속물적인 유혹도 있었고 주위의 좋은 입소문에 의한 기대도 있었다. 상당히 긴 제목, 그렇지만 호기심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제목을 보며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었다.그러나 그리 기대 만큼의 수준작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기대치에 비례하는 실망감만은 아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명확히 드러나 듯 '권태'로운 인간들을 등장시켜서, 그들의 '권태'로운 생활상들을 '권태'롭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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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 이치흔 / 민음사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한 작품이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속물적인 유혹도 있었고 주위의 좋은 입소문에 의한 기대도 있었다. 상당히 긴 제목, 그렇지만 호기심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제목을 보며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었다.그러나 그리 기대 만큼의 수준작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기대치에 비례하는 실망감만은 아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명확히 드러나 듯 '권태'로운 인간들을 등장시켜서, 그들의 '권태'로운 생활상들을 '권태'롭고 지루한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는 '권태'가 조직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부적응의 징후로서의 그것이라고 표현했다. 일리있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이 간다. 눈코뜰새 없는 자본주의의 시대, 생산품의 사이클이 하루, 반나절 아니 시간 혹은 분단위 까지 짧아지는 시대. 이런 시대에 있어 '권태'라는 것은 불경스러운 단어이고 '권태'로운 것들은 사회악적인 존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지식인들은 오히려 '권태'를 대응무기로 삼아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공룡에 대항하곤 했다. 시인 이문재는 그의 두번째 시집 [산책시편]에서 도시사회의 속도에 대한 저항으로서 '산책'을 내세웠다. 최근에 나온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도 역시 속도에 대한 반성과 저항에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권태'에 대한 지은이의 피력과 달리 내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중심 줄거리는 성(城)이라는 조직이 권태로운 자들을 죽이려하고,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 권태로운 자들이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권태로운 자들로서는 [구토]의 로캉탱, [권태]의 디노, [날개]의 주인공 등등이다. 이 인물들은 차례대로 성에 의해 사주받은 기사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간신히 죽음을 피해 소파씨의 아파트에 몸을 숨긴다.

    그렇다면 이것은 속도에 저항하는 '권태'가 아니라 속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로의 편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저항으로서의 '권태'가 아니라 지루함으로서의 '권태'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여기서 발생하는 해프닝들은 단지 '권태'로운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일회성의 유희, 놀이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권태를 탈출하기 위한 놀이 역시 종국에 권태라는 거대한 그 무엇의 한 요소로 편입되고 만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권태를 잊게해주는 T.V 역시 결국 일상 속에서는 권태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은이가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무었이었을까? '권태'만이 속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라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그 어떤 것도 결국 권태롭게 된다는 극도로 허무적인 성찰이었을까?


    덧말 : 참고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권태롭고 지루하고 느려터진 작품들을 덧붙이기로 한다.

    제목 / 지은이

    구토 / 사르트르
    경마장의 오리나무 / 하일지
    권태 / 알베르트 모라비아
    조서 / 르 클레지오
    날개 / 이상
    욕조 / 장 필립 투생
    씨(氏) / 장 필립 투생
    온종일 풀 숲에서 / 마르그리트 뒤라스
    질투 / 알랭 로브그리예
    카프카의 책들
    황지우의 시편들
    그것으로부터의 분리 /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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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대녕,피아노와백합의사막
    clumsy | 2005년 08월 24일
    윤대녕 소설은 매력적이지만, 작위적이다. 사람을 묘하게 끌 어들이는 기운을 갖고 있지만, 조금만 냉정한 시선으로 읽어 보면 많은 약점이 눈에 잡힌다. 그 약점이란 것이 어쩌면, 개 인적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다르게 표현하자 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점들을 노출시키고 만다는 것이 다. 하나만 예를 들면, 윤대녕 소설의 남자주인공은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이다. 한 마디로 자기애가 깊은 나머지 이성적이 고 객관적인 시선을 잃을 때가 종종 있으며, 그것은 거의가 윤 대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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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녕 소설은 매력적이지만, 작위적이다. 사람을 묘하게 끌

    어들이는 기운을 갖고 있지만, 조금만 냉정한 시선으로 읽어

    보면 많은 약점이 눈에 잡힌다. 그 약점이란 것이 어쩌면, 개

    인적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다르게 표현하자

    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점들을 노출시키고 만다는 것이

    다. 하나만 예를 들면, 윤대녕 소설의 남자주인공은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이다. 한 마디로 자기애가 깊은 나머지 이성적이

    고 객관적인 시선을 잃을 때가 종종 있으며, 그것은 거의가 윤

    대녕 소설에 대한 이미지로 연결될 때가 많다.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그런 점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런지.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또한, 윤대녕 특유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소설이었다. 11박 12일 간의 실크 로드 여행

    과, 유년 시절의 `사막`을 함께 공유했던 친구와, 여행길에서

    아무런 의미도 띄지 않은 채 무심하게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주인공 남자와 특별하게 발전되는 여류화가, 그리고, 그녀가

    건네 준 백합... 쇼팽의 녹턴 8번에서 10번까지.

    이 소설에 들어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백합 화분 옆에 가만히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유년에

    못다 흘리고 남은 눈물이, 흐린 날 산에 올라 보게 되는 머나

    먼 한 줄기 강물처럼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

    한 잠시 내 눈에 문득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피

    아노의 환영이 비쳐 들었다.`

    이 소설은, 미학적이고 신비로우며 자못, 삶과 자아에 대한 성

    찰이 들어 있지만...

    이문열의 <이 황량한 역에서>만 못하다.

    윤대녕을 두고, 문장력이 없다거나 소설을 쓸 줄 모른다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를 타고난 소설

    가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감탄하지만...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어딘가 허무한 느낌, 그리고, 깊이의 면에서, 이문열의 <이 황

    량한 역에서>를 읽었을 때, 가슴을 파고들었던 그 느낌... 그

    것에 많이 미치지 못한다라고. 철저히 나의 공감대에 관한 부

    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잘 그려진 만화를 한 편 봤

    다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부인할 수 없이, 너무나 매력적이긴 하지만.



    사막은 바다와의 거리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즉, 바다와 가

    장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사막이 발생할까. 지구의 1할이 사막

    이듯, 내 존재의 1할도 아마, 윤대녕 소설 속의 그 남자에게처

    럼, 사막일 것이다. 아마, 많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않을

    까. 살면서, 사막을 동경해 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

    뭔가를 잃어버리기 위해서 사막을 상상하고, 뭔가 새로운 것

    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막을 상상할 것이다.

    마치,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처럼.


    그런데, 윤대녕은 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뜨거운 것`을 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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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내치즈를 옮겼을까
    dnjsgid | 2005년 08월 24일
    한참 전에, 누군가 내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우리오빠 의 선물로 이 책을 정말로 읽게 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 왜 나한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주었었는지. 그 사람 아마도, 나보다 영리해서 앞에 일어날 일 을 내다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에게 일어날 변화를. 사실 그건 영리하다는 차원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경험 의 문제라고 하면 어떨까. 어차피, 어떤 일에 관한 예지력 같 은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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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전에, 누군가 내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우리오빠

    의 선물로 이 책을 정말로 읽게 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사람, 왜 나한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얘기해

    주었었는지. 그 사람 아마도, 나보다 영리해서 앞에 일어날 일

    을 내다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에게 일어날 변화를.

    사실 그건 영리하다는 차원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경험

    의 문제라고 하면 어떨까. 어차피, 어떤 일에 관한 예지력 같

    은 것은 그 일을 경험했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이젠 `치즈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의 미래`를 조금은 내다볼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는 내가 알게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이미 없어져버

    린 치즈에 대해서 더이상 아주 약간이라도 연연해서는 안된다

    는 것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알게해주고 싶었을지

    도 모른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목소리로 우리오빠

    는 말했었다. 나는 과거에 대해서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

    다,라고. 훗. 난 그 말을 공허한 잘난척에 불과하다고 단정짓

    고, 난 그럴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릴대로 부리곤 했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아무도 내 치즈를 옮겨간 사람은 없다. 다만, 아주 천천히 아

    주 조금씩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그 치즈들이 없어지

    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오늘 노란 치즈 색깔의 이 책의 예쁜 뚜

    껑을 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나는 이미 내 치

    즈를 옮겨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치즈가 없어진 것은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안에 모든 원인이 다 들어있었다는 것

    을. 그리고, 이제 그 상실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미로로 뛰어

    들 수 있다는,

    그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 상황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뭔가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시간이 흘러

    갔을 뿐이다......


    아니 아마도 어쩌면, 이런 것들을 내가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훗,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내가 천성적으로,

    슬픔 속에 오래오래 빠져있을 수 있는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도 같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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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수
    surya | 2005년 08월 24일
    조금은 지루한 쿤데라의 변주곡 개인적으로 밀란 쿤데라를 무척 좋아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책을 골랐다. 작품 편편 이 박힌, 예의 철학적 사색이 뭍어나는 매력적인 그의 문장이며 개인과 역사를 능수 능란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실력은 여전했다. 그러나 전작품들과 비교해 본다면 좀 실망이다. 일단 장편이라 보기엔 분량이 좀 적다싶고 53개로 지나치게 세분화된 내용단락은 자 연스런 내용흐름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여러 캐릭터들이 조금씩 겹쳐지는 시간속에 서 공통된 경험을 전혀 다르게 회상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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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지루한 쿤데라의 변주곡


    개인적으로 밀란 쿤데라를 무척 좋아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책을 골랐다. 작품 편편
    이 박힌, 예의 철학적 사색이 뭍어나는 매력적인 그의 문장이며 개인과 역사를 능수
    능란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실력은 여전했다. 그러나 전작품들과 비교해
    본다면 좀 실망이다.

    일단 장편이라 보기엔 분량이 좀 적다싶고 53개로 지나치게 세분화된 내용단락은 자
    연스런 내용흐름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여러 캐릭터들이 조금씩 겹쳐지는 시간속에
    서 공통된 경험을 전혀 다르게 회상하는 것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전략이지만 <향수>
    에서는 너무 자주 바뀌어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파노라마필름이 실수로 간간
    히 끊어지듯 불편한 느낌을 준다.
    오뒷세이아나 스카셀, 쇤베르트 등의 에피소드는 쿤데라의 지적 깊이로 볼 때 오히
    려 평이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쿤데라의 역작으로 꼽는 <농담>이나 <불멸>에 비
    교해 볼 때 작가의 정성이 덜 들어갔다고 할까, 이전에 밑줄을 그으며 열광하던, 삶
    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을 보여주는 그의 문장들을 그다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쿤데라는 <농담>으로 에세이적 소설쓰기를 시도한 후 꾸준히 그만의 소설문법을 구사
    하고 있는데 하나의 문법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그의 전략을 조금씩 발전시
    키고 변주하면서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우리에게 책읽는 즐거움을 선사하여왔다. 그
    러나 <향수>는 조금은 지루하고 그가 안주했다는 느낌을 준다. 노년의 그에게 더욱
    창조적인 작품을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일까.

    마지막으로 책상태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 길지 않은 분량에 하드커버인 것도 맘
    에 안 들거니와 ignorance라는 단어의 불규칙한 배열과 빨간 점만으로 구성한 무성의
    한 디자인도 불만이다. 우리나라 책들은 도대체가 표지디자인 개념이 없는 거 같다.
    가까운 일본만해도 책표지에 반해 책을 사고픈 욕구가 일어날 정도이다. <향수>라는
    제목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데 적당한 디자인을 해달라. 아니면 최소
    한 독자를 고려하여 하드커버, 소프트커버 두가지로 출판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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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줄 긋는 남자
    surya | 2005년 08월 24일
    밑줄 긋는 남자 / 카롤린 봉그랑 엽기발랄명랑행복소녀, 콩스탕스 제목에 끌려 친구집에서 막무가내로 집어온 책이다. 친구 왈 매력적이지만 결말이 아 쉬운 소설이라 해서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읽었는데, 내 생각에 그런 결말이 아니었 다면 정말 유치한 소설이 돼고 말았을 거 같다. 내가 책을 읽을 때 항상 샤프를 들고 밑줄을 그으며 읽는 데다 로맹 가리의 광팬이 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매우 즐거웠다. 책에 그어진 밑줄을 보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하고는 자신도 밑줄을 그어 대화를 시도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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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 긋는 남자 / 카롤린 봉그랑


    엽기발랄명랑행복소녀, 콩스탕스


    제목에 끌려 친구집에서 막무가내로 집어온 책이다. 친구 왈 매력적이지만 결말이 아
    쉬운 소설이라 해서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읽었는데, 내 생각에 그런 결말이 아니었
    다면 정말 유치한 소설이 돼고 말았을 거 같다.

    내가 책을 읽을 때 항상 샤프를 들고 밑줄을 그으며 읽는 데다 로맹 가리의 광팬이
    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매우 즐거웠다. 책에 그어진 밑줄을 보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하고는 자신도 밑줄을 그어 대화를 시도하는 콩스탕스. 그녀는 25세
    자유기고가로 몽상적인 면이 있으며 진정으로 살기 위해 사랑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자이다. 그녀가 '밑줄 긋는 남자'에게 보낸 편지 구절 중에 '산다는 것이 내겐 아
    주 두려워요. 나는 이렇게 사는 삶의 끝이 어디인지, 이 모든 습관과 몸짓이 나를 어
    디로 이끌고 가는지 잘 모르고 있고, 아직 내가 존재하는 않는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
    하는 단계에 있어요'라는 부분은 몸서리치게 공감하며 읽었다. 작가는 20대 여자들
    이 가질 수 있는 생각과 감상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콩스탕스란 인물을 창조해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이 소설은 거장들의 저서를 적재적소에 인용하여 소설을 이끌
    어나간다. 작가 자신이 밑줄 긋는 버릇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카롤린
    봉그랑은 책의 구절들을 정확히 인용하여 '밑줄 긋는 남자'와 콩스탕스의 심리를 표
    현한다. 틀짜기에 상당히 능숙한 작가이다.

    결국 '밑줄 긋는 남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도서관 사서를 사랑하게 되는 콩스탕스는
    사랑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었을 것이다. 나는 콩스탕스
    가 분명 성장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칙칙하거나 건조한 소설들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당신은 분명 당
    신의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작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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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잭 나이프
    surya | 2005년 08월 24일
    잭 나이프 / 엠마뉴엘 베른하임 흘러가버리는, 그저 떠내려가버리는 소설 출판사·미디어 리뷰를 읽으면서 라는 책이 생각났다. 책속에 서 저자인 에프라임 키숀은 난해한 작품을 생산해대는 현대미술가와 그에 장단을 맞 춰주는 비평가들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 대상 중에 앤디 워홀과 요셉 보이스까지 있었으니 키숀은 어쩌면 용감한 동시에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바 보 중에 하나가 되려고 한다. '곤두선 신경 같은 압축된 문체, 자극적이고 아이로니컬한 차가움으로 탈선의 현기증 을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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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 나이프 / 엠마뉴엘 베른하임


    흘러가버리는, 그저 떠내려가버리는 소설


    출판사·미디어 리뷰를 읽으면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라는 책이 생각났다. 책속에
    서 저자인 에프라임 키숀은 난해한 작품을 생산해대는 현대미술가와 그에 장단을 맞
    춰주는 비평가들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 대상 중에 앤디 워홀과 요셉 보이스까지
    있었으니 키숀은 어쩌면 용감한 동시에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바
    보 중에 하나가 되려고 한다.

    '곤두선 신경 같은 압축된 문체, 자극적이고 아이로니컬한 차가움으로 탈선의 현기증
    을 묘사하는 작가, 모든 사랑의 테마를 전율시키는 글쓰기, 면도날로 자른 것 같은
    분명함과 죄어오는 폭력적 압박감, 하루 동안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마시는 아주
    진한 커피 같은 소설...'
    <잭나이프>에 쏟아진 찬사들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모든 찬사들이 판매부수를 늘이
    려는 출판사의 얄팍한 상술과 그에 단합한, 자신이 매우 전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
    는 비평가들의 허망한 수사능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극히 짧고 건조한 엠마뉴
    엘 베른하임의 문체는 새롭고 독특한 문체로 인정받았으며 행동만을 캐취한, 빠르지
    만 지루한 묘사 방식은 최신 카메라 기법이라는 말로 대변되었다.
    베른하임이 이 작품을 얼마만에 완성했는지는 모르지만 독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책장
    이 믿을 수 없을만큼 빠르게 넘어갔다. 그것은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흡입력 있다는
    뜻이라기보다 기억에 남을만한 이미지나 문장이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처녀작이기 때문인지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에피소드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허술한 부분들도 몇몇 눈에 걸렸다. 곳곳에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타인과의 관계에 있
    어 어려움을 겪는 비정상적인 여자라는 실마리를 주었음에도 그녀의 친구인 마리는
    지나치게 그녀에게 잘해준다. 엘리자베스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친구에게 잘해
    주거나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마처럼 엘리자베스를 돌봐
    주는 마리의 존재는 납득되지 않는다.
    뜬금없이 엘리자베스를 도와주겠다는 파리 교통공사 직원의 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의 병리적 증상을 조금씩은 소유한 현대인의 단면인가? 고독하게
    지내온 엘리자베스의 또다른 모습같은 걸까? 이래저래 작가의 의도를 곱씹어보지만
    여전히 뜬금없다는 느낌을 가라앉지 않는다.
    자신이 찌른 남자에 관해 상상하는 부분도 현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길이
    도 지나치게 길다 싶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이 찌른 남자인 세실을 만나면서부터 변화하는 심리를 미묘하게 포
    착해낸 것은 나름대로 칭찬해주고 싶지만 전체적으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시나
    리오 작가답게 그녀의 소설은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저 흘러가
    버리고 세월이 흐르면 기억나지 않는 그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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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desert44 | 2005년 08월 24일
    아무래도 노장(老莊)은 늙음에 어울리고 체 게바라는 젊음에 어울린다. 락은 젊음에 어울리고 재즈는 중년에 어울린다. 꼭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다 어울리는 때 가 있는 법이다. 무릎 관절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DDR을 하는 노인네가 있다면 말 릴 일이다. 문제는 자신의 문화를 눈치 보지 않고 즐기는 데 있다. 굳이 몸의 무리 를 무릎 쓰면서까지 젊음의 문화를 따라가야 할 이유가 없다. 대충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내 프로레슬링 애호는 변호가 궁색해진다. 치 고 박고, 때려부수고, 심지어는 피까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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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노장(老莊)은 늙음에 어울리고 체 게바라는 젊음에 어울린다. 락은 젊음에
    어울리고 재즈는 중년에 어울린다. 꼭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다 어울리는 때
    가 있는 법이다. 무릎 관절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DDR을 하는 노인네가 있다면 말
    릴 일이다. 문제는 자신의 문화를 눈치 보지 않고 즐기는 데 있다. 굳이 몸의 무리
    를 무릎 쓰면서까지 젊음의 문화를 따라가야 할 이유가 없다.

    대충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내 프로레슬링 애호는 변호가 궁색해진다. 치
    고 박고, 때려부수고, 심지어는 피까지 철철 흘리는 야만적인 게임이 뭐가 그리 재밌
    냐는 아내의 항변은 그런 대로 받아넘기겠지만 내 집을 방문한 '점잖은' 손님 앞에서
    까지 천연덕스럽게 프로레슬링을 즐기기엔 다소 난감한 게 사실. 그러나 공범이 있으
    면 죄책감이 덜한 법. 다행스럽게도 성철스님을 옆에서 오랫동안 모셨다는 원정(圓
    淨)의 수필집,『침묵의 깊은 뜻을 마음으로 보게나』(맑은 소리 刊)는 성철스님이 프
    로레슬링의 애호가였음을 말해준다. 게다가 이 책은 천하의 임제나 조주도 그 앞에
    서 꼬리를 접어야 했을 선지식 경허스님의 제자였던 만공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것으로 유명한 청담 스님 또한 프로레슬링의 팬이었음을 짤막한 에피소드와 함께 전
    한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현대 한국 불교사에서 내로라 하는 큰스님인 성철스님과 청담스
    님, 두 사람이 한번은 어느 신도 집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묵었다는 것. 그런데 두
    분 스님이 그곳에서 레슬링 경기를 정신없이 보다가 "우리도 레슬링 한번 하자." 하
    며 서로 목을 끌어안고 뒹굴기 시작했단다. 쿵쿵거리는 소리에 놀란 안주인이 달려와
    서 그 광경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성철스님 변명하는 목소리로 왈 "우리 지금 레
    슬링하고 있는 거야." 했단다. 그 후 두 스님은 만날 때마다 그 레슬링 얘기를 하셨
    다고 한다. 심지어 차 안에서 '이 놈의 영감, 레슬링 한번 하자.'고 서로의 멱살을
    잡곤 했다는 것. 어느 날인가는 자꾸 한판 붙어 보자고 하는 청담스님을 떼어 놓을
    요량으로 성철스님께서 "향곡이도 내가 이긴다구" 했단다. 향곡은 몸집이 남달리 크
    고 힘이 셌다는 것이다. 그 후 청담스님이 입적하자, 그가 입관될 때 꼭 하고 싶었다
    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성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놈의 노장! 어서 일어나 우
    리 레슬링 한번 해야지!"
    '스님'과 '레슬링'이라는 다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코드들이 모여 혼융의 일대장
    관을 연출하고 있는 에피소드다. 이런 에피소드에 재미를 느낀다면 "달마가 동쪽으
    로 간 까닭은?"이라는 물음에 "WWE를 보기 위해서"라는 유머로 가볍게 받아칠 수도
    있을 것이다. 달마가 누군가. 송곳니를 세우고 달려드는 호랑이도 가볍게 때려누일
    수 있는 소림 권법의 창시자가 아닌가. 아무리 설법(?)을 늘어놓아도 프로레슬링은
    짜고 하는 쇼, 그런 유치한 장난을 뭐가 좋다고 보는가, 라고 계속 따진다면 소이부
    답(笑而不答), 이는 성과 속을 가볍게 뛰어넘는 도통한 웃음이 아니다. 그저 답변이
    궁색할 땐 웃는 게 최고. 정색을 하고 따져 묻는 엄숙주의자 앞에선 어떤 변호도 통
    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스콜피언 킹으로 잘 알려진 더 락, 관 속에서 부활하는 언더테이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터프가이 스티브 오스틴, 다소 느끼한 아메리카니즘을 내세우는 올림픽 금메
    달 리스트 커트 앵글, 레슬링은 덩치로 하는 것이 아님을 현란한 기술로 보여주는 크
    리스 베누아와 RVD, 입만 벌리면 슬랭이 쏟아지는 부커티, 현란한 테크니션 Y2J, 0.2
    톤이 넘는 무게로 링을 압도하는 빅쇼, 어깨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며 사자후를 내뿜
    는 트리플H, 그 숱한 스타레슬러들이 상대를 화려한 피니쉬 기술로 쓰러뜨리는 장면
    앞에서 엄숙한 얼굴일 필요는 없다. 더구나 레슬러들이 피를 철철 흘린다고 해서 겁
    먹을 일이 아니다. 1999년 경기중 오웬 하트가 사망했다고 해서 프로레슬링의 폭력성
    을 주장하는 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어디에나 사고는 있는 법, 락공연 중에 한
    뮤지션이 일렉트릭 기타에 감전사했다고 해서 락공연의 폭력성을 말하는 사람은 없
    다. WWE 게임의 90프로는 각본에 의한 것. 생각해보시라. 219센티미터에 230킬로그램
    의 몸무게를 가진 빅쇼의 애 머리통 만한 주먹질에도 죽어 나자빠지는 사람이 없다
    면 레슬링은 '큰쇼'임이 명백하다. 그렇다. 레슬링은 스포츠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에 가깝다. 레슬링이라는 기본 포멧만 가지고는 WWE가 가지는 저 막강한 흥행성을 설
    명할 수 없다. 레슬링은 흥행시스템이다. WWE의 연간 매출액은 10억 달러라고 한다.
    한화로 약 1조원 규모. 입장수입뿐만이 아니라 의류, 액세서리, 음반, 게임, 비디오
    등 상당히 많은 사업에서 수익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곳에선 끊임없이 스타가 제조
    되고 사멸된다. 스타는 체력과 힘과 기술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된다. 무쇠 체력의
    소유자 케인이나 빅쇼가 대스타로 자리잡지 못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WWE는
    힘에 의해서만 굴러가지 않는다. 욕설과 말빨과 루머와 유행어가 WWE를 끌고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오스틴이 입만 열면 내뱉는 "WHAT?" 부커티의 "Can you
    dig it, sucka?"' 크리스 제리코, 일명 Y2J의 "I am living legend"… WWE를 즐긴다
    는 것은 그 욕설과 말빨과 루머와 유행어를 함께 즐긴다는 것. 뷰넷 사이트
    (http://www.ppvw.net/)엔 레슬러들의 이력과 그가 사용하는 욕설과 유행어까지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장 방대한 자료를 모아놓은 곳은
    http://user.chollian.net/~economist/dlek. 가히 프로레슬링의 종합박물관이라 칭
    할 만하다. WWE. WCW, ECW에 관련된 기사, 주요경기장면, 추억의 명승부가 잘 정리되
    어 있다. 특히 레슬러들이 링에 등장할 때의 테마음악들이 정리되어 있는 것이 이채
    롭다.
    여타의 사이트가 동영상을 제시하는데 비해 김태균의 레슬매니아
    (http://hbk123.wo.to/)는 베스트 게임을 텍스트문서로 보여주고 있다. 프로레슬링
    선수의 배경화면 사진, 동영상, 테마뮤직 등도 잘 정리되어 있다. 뉴스와 루머, 매
    주 업데이트 되는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은 http://wwf.pe.kr/
    레슬링이란 검색어를 넣고 이리저리 부유하다 보면 이런 기사와도 조우한다.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프로레슬링 경기 ELT 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한 늙은 레슬러
    의 은퇴식을 지켜보면서 깊은 감동과 사랑을 느꼈다. 1975년 프로레슬링에 입문해 항
    상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기해 온 그는 '마법사의 폭풍'으로 불렸다. 화려한 분장뿐
    아니라 그의 현란한 개인기는 관중을 열광시켰으며,‘마법사의 폭풍’은 위기의 순간
    마다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23
    년 동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마법사의 폭풍’은 어느새 53세의 중년이 되
    어 끝까지 자신을 아껴준 팬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다. ‘마법사의 폭풍’
    이 링 위에 오르자 관중은 모두 기립박수로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했다. 그
    는 관중의 갈채를 한 몸에 받으며 링 중앙에 섰다. 관중의 박수가 잦아들 즈음, '마
    법사의 폭풍’은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관중
    들은 그가 준비한 선물에 놀라 모두 숨을 죽였다. 마침내 황금가면을 벗은 그 또한
    감격에 차있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 교회의 신부인 세르지오
    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 동안 관중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더욱 더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세르지오
    신부는 23년 동안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얻은 수익금으로 3천여 명의 고아들
    을 돌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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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이야기
    하얀그녀 | 2005년 08월 24일
    스무살 즈음에 나는 신경숙의 책을 만났다. 신경숙 본인에게는 그야말로 대박이 난 책 를 비롯,...그리고 가장 최근의 베 스트셀러이기도 했던 ... 누가 보면 내게 신경숙을 좋아하냐 물을만도 하다. 신경숙이란 여성작가의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관심이 있기는 하나,나는 결코 신경 숙을 좋아하진 않는다.그녀의 신간이 나올때마다 늘 나는 그저 그녀가 궁금했다. 짧게 이야기를 엮은 < J 이야기>는 읽는 내내 기분이 유쾌했다. 아!하고 짧은 탄성을 내지르기도 하였고,조용히 웃기도 하였고,가슴이 저려오기도 했 다.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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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즈음에 나는 신경숙의 책을 만났다.
    신경숙 본인에게는 그야말로 대박이 난 책 <풍금이 있던 자리>를 비롯,<오래전 집을
    떠날때><깊은 슬픔><딸기밭><외딴방><기차는 7시에 떠나네>...그리고 가장 최근의 베
    스트셀러이기도 했던 <바이올렛>...
    누가 보면 내게 신경숙을 좋아하냐 물을만도 하다.
    신경숙이란 여성작가의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관심이 있기는 하나,나는 결코 신경
    숙을 좋아하진 않는다.그녀의 신간이 나올때마다 늘 나는 그저 그녀가 궁금했다.

    짧게 이야기를 엮은 < J 이야기>는 읽는 내내 기분이 유쾌했다.
    아!하고 짧은 탄성을 내지르기도 하였고,조용히 웃기도 하였고,가슴이 저려오기도 했
    다.그동안의 신경숙 소설들과는 다른 뭐랄까..아직 채 익지 않은 푸른 사과를 기분좋
    게 -아그작-하고 한 입 베어먹는 후레쉬한 기분,뭐 그런걸까...

    J는 출판사에 다니는 여인이다.대학때 캠퍼스커플인 그녀는 8년 연애끝에 결혼도 하
    고 연이라는 딸을 낳는다.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을 아주 짧게 엮어 간
    다.제이가 들은 이야기나,J의 주변일들의 이야기,J가 주고받은 편지들..그리고 그녀
    의 사랑..결혼후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동안의 신경숙의 글들과는 많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고,유쾌하고 기분좋은 책..이
    었다.신경숙의 말대로 J는 나이기도 하고 당신이기도 할겁니다.란 말은 읽는 내내 그
    럼.그럼.했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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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래의 여자
    blueink | 2005년 08월 24일
    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 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모래의 유동성에 이끌려 남자는 사구로 여행을 떠난다. 좀더 정확한 목적이라 면 사막에서 사는 곤충을 관찰하는 것이고, 새로은 종이라도 발견해서 자신의 이름 을 붙이는 영광을 누리는 것. 그가 생각해낸 모래의 유동성은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 다. '일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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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
    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모래의 유동성에 이끌려 남자는 사구로 여행을 떠난다. 좀더 정확한 목적이라
    면 사막에서 사는 곤충을 관찰하는 것이고, 새로은 종이라도 발견해서 자신의 이름
    을 붙이는 영광을 누리는 것. 그가 생각해낸 모래의 유동성은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
    다. '일년 내내 매달려 있기만을 강요하는 현실의 답답함에 비하면 이 얼마나 신선한
    가'. 그리하여 그는 떠난다.

    소설의 처음은, 남자의 실종사건으로 시작된다. 휴가를 맞이하여 곤충채집을 갔던
    한 남자가 실종되었다. 그리고 7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고 결국은 사망선고를 받게 된
    다. 왜 실종되었을까. 시간은 거슬러 7년전의 어느 여름 8월오후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곤충을 찾아 사막에 다다르게 된 남자.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끝없는 유동성으로, 붙박힌 현실의 갑갑함을 가려줄 자유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는
    함정에 빠지듯(혹은 구멍에 빠지듯), 기이한 모래언더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마
    을은 하루하루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끝없이 덮쳐오는 모래들을 퍼내며 살아야 하
    는 시지프스의 운명을 가진 마을이었던 것이다.

    잠시만 머물고자 했던 남자는, 실체가 보이지 않는 마을의 '힘'과 '음모'에 의해 강
    제로 유폐당하다시피 한다. 마치 카프카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대목... 그가 할 일
    은, 홀로된 한 여자를 도와서 그 집에 닥쳐올 모래들을 끝없이 퍼올려야 하는 것...
    어느 한 집이라도 모래에 먹히는 날엔, 연쇄반응처럼 마을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
    므로 부락민 누구도 이 운명에 소홀할 수가 없다. 살기 위해서 모래와 싸워야 하고
    모래와 싸움으로써 삶이 연장되는 것이다. 한때. 자유롭고자 꿈꾸던 모래에서 결국
    그 자신이 채집된 채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그의 맞은 편에 모래의 여자가 있다. 그와 함께 한 집에 기거하는 여자, 말없이 모래
    의 운명에 순응하는 여자. 삶을 투쟁하는 여자....왜 제목이 모래의 여자일까. 모래
    속의 여자라는 뜻인가, 아니면 모래의 속성을 가진 여자라는 것인가. 준페이가 발견
    한 모래의 유동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흐르는 게 아
    니라 고여서 스스로 모래가 된다. 모래는, 그 남자의 생각처럼 절대로 한곳에 머무
    르지 않고 그 어떤 것도 모래 속에서 살지 못하게 하는 방부제같은 존재가 아니었
    다. 그것은 어딘가로 파고들어서 조금씩 사물들을 썩게 하고 드디어는 그 안에서 물
    을 배태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론은 생존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 것이냐. 남자는
    아마도 이 모래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되리라. 어쩌면 조금씩, 우산을 쓰고 식사를 하
    는 생활에 익숙해질지 모른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부삽과 양동이로 모래를 퍼올리
    며, 단순한 노동이 제공하는 그늘에 기대어 잠시 시간을 잊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날았는 줄 알았는데, 실은 유리창에 콧잔등을 비비고 있을 뿐인 왕큰
    집파리...학명 Muscina stabulans...시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허울만 그럴 듯한
    겹눈.....

    우리도 그런 존재인지 모른다. 1/8mm의 모래알갱이는 기실 우리의 일상에 다름아니
    다. 누구든 꿈을 꾸지만 그 꿈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
    이 바로 그 모래구덩이 속의 집하고 다른점이 또 무얼까....왜 하필 나여야 하냐고,
    모래 퍼내는 것이야 원숭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좀 더 그럴싸한 존재 이유
    가 내게 있을 것이 아니냐고 따져볼까.

    사막, 하면 몸살날 정도로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내 구미를 확실하게 당긴 작품
    이었다. 비록 속보이게 허구적인 장치와 기시감을 일으키는 구성이 눈에 걸리긴 했지
    만 이만하면, 책을 읽는 머릿속에 서걱거리는 모래언덕을 퍼 담고도 남을 매력이 있
    었다. 그리고 또....

    할말이 많았는데, 인용하고 싶은 구절도 많았는데, 그냥 이쯤 갈무리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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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한평생, 결국은 사랑
    낙서가 | 2009년 02월 15일
      신화가 결국 사람살이의 이야기라면 거기에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사랑이라는 테마로 신화를 읽으니 결국은 사랑뿐이었고,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었다. 신화가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걸 보니, 사람 사는 일도 그러함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의 한평생, 결국은 사랑이다.    '잃어버린 반쪽이'라는 말이 재미있다. 원래는 두 사람이 한몸이었는데, 신들에 의해 원하지 않는 생이별을 당한 지금의 인류는 잃어버린 반쪽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란다. 사람의 한평생이 '결국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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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가 결국 사람살이의 이야기라면 거기에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사랑이라는 테마로 신화를 읽으니 결국은 사랑뿐이었고,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었다. 신화가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걸 보니, 사람 사는 일도 그러함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의 한평생, 결국은 사랑이다. 


      '잃어버린 반쪽이'라는 말이 재미있다. 원래는 두 사람이 한몸이었는데, 신들에 의해 원하지 않는 생이별을 당한 지금의 인류는 잃어버린 반쪽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란다. 사람의 한평생이 '결국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더 실감하겠다. 왜 다들 사랑타령인지, 노래도 드라마도 영화도 소설도 왜 모두 사랑을 말하는지 조금은 알겠다. 너도나도 사랑타령만 하는 것을 두고 천박하다고 여겼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신화를 보니 알겠다. 우리는 사랑타령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결국은 사랑뿐이었다.


      사랑 이야기를 하니 환희와 열정, 절망과 고통을 말하게 된다. 질투와 음모, 배신과 복수도 빠질 수 없다. 권력과 재물을 덧붙이니 재미가 배가 된다. 가족과 우정을 양념으로 버무리고, 탄생과 죽음까지 아우른다. 그러고보니 인생살이의 모든 것이 따라왔다. 신화를 보니 또 알겠다. 사랑을 말함에 있어 어찌 사랑 하나만으로 끝낼 수가 있겠는가? 사랑에는 삶의 모든 것이 따라온다. 인생살이에서 만나는 것들은 모두 사랑의 또다른 모습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었다. 


      사랑이 뭔가? 인정하는 일이다. 나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다. 전능한 신들도 사랑에 빠지거늘 하물며 우리 인간은 말해 무엇할까. 신 앞에서 그리고 자연 앞에서 우리는 너무도 초라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잃어버린 반쪽이를 만나 우리는 더 강해지고,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혼자서 살아가기엔 삶은 너무 고달프다.


      그러기에 사랑에 빠질 일이다. 저자는 '힘써 사랑할 일이'라고 말했다. 헤르메스처럼, 파시파에처럼, 히폴뤼토스처럼, 뷔블리스처럼, 스뮈르나처럼, 오이디푸스처럼, 엘렉트라처럼, 테레우스처럼, 나르키쏘스처럼 실패할지라도, 좌절과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라도, 배신과 음모에 빠질지라도, 그리하여 죽음에 이를지라도 일단은 사랑할 일이다. 그 사랑의 대상이 누구이든 일단은 사랑할 일이다. 사랑을 무시했던 지난날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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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밥
    review12 | 2005년 08월 24일
    글쓴이 김중미 그린이 김환영 펴낸이 정광호 펴낸곳 낮은산 태어난 것만으로 축복받고 사랑 받아야할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 종이밥은 어린 송이가 배가 고플 때에나 할머니가 보고플 때 먹는 종합장 속 종이이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송이는 오빠 철이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다. 그러나 노점상을 하던 할아버지는 병이 나셨고 병원 청소부로 일하는 할머니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돌보아주던 오빠는 학교 숙제며 오락에 바쁘지만 자신을 잘 돌보아 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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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밥>

    글쓴이 김중미
    그린이 김환영
    펴낸이 정광호
    펴낸곳 낮은산


    태어난 것만으로 축복받고 사랑 받아야할 아이들의 슬픈 이야기. 종이밥은 어린 송이가 배가 고플 때에나 할머니가 보고플 때 먹는 종합장 속 종이이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송이는 오빠 철이와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와 산다. 그러나 노점상을 하던 할아버지는 병이 나셨고 병원 청소부로 일하는 할머니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돌보아주던 오빠는 학교 숙제며 오락에 바쁘지만 자신을 잘 돌보아 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신들이 죽고 나면 남게 될 송이가 걱정되어 절에 보내기로 한다. 오빠 철이는 항상 돌보아주어야 하는 송이가 귀찮았지만 막상 절에 간다고 하니 잠도 안 오고 슬프다. 송이는 스무날 뒤에 학교에 가는 줄 알고 곰돌이 푸우가 그려진 가방을 사달라고 졸라댄다. 절에 가기 전날 송이, 철이,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 사진을 찍고 빨간 곰돌이 푸우 가방을 멘 송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절로 향한다. 송이가 간 후 집안을 그야말로 절간 같다. 할아버지는 벽만 바라보고 계시고 철이는 동생을 그리며 정말 밥풀 냄새가 나는지 종이밥을 씹어본다. 사흘 후 할머니가 오셨다. 철이와 할아버지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송이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철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열쇠를 따고 방문을 열 때까지 송이는 단칸방에서 혼자 놀았다. 철이가 방문을 열면 송이는 눈이 부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뒤뚱뒤뚱 걸어와 철이에게 안겼다. 송이가 혼자 놀던 방바닥에는 언제나 종이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송이는 그때부터 종이를 씹기 시작하였다. "
    종이밥은 송이의 어린 시절 친구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오빠 철이는 그런 모습이 안타깝지만 가난 때문에 지켜볼 수 밖에 없다. 1990년대 호황 이후 1998년 IMF 사태가 일어났고 우리 주변에는 노숙자와 어린 앵벌이들이 넘쳐났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졌다. 송이 같이 부모님이 없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키우는 아이들은 무척 많다. 이들은 사회에서 휴식을 취해야할 분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다. 가난해서 서로 돕고 살 수 도 없고 각박할 것 만 같지만 이들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중미 작가는 철저한 고증과 소박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바탕으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명제를 상기시킨다.
    '아이들은 태어난 그 자체로 사랑 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어야 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며 가난을 뛰어넘는 행복이란 있다. 우리는 주변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나의 주변은 나를 숨쉬게 하는 공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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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철에서 보기 아까운 책-종이밥
    juheun | 2005년 08월 24일
    전철에서 보기 아까운 책-종이밥 전철이라는 공간은 늘 나에게 책을 읽을 시간을 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가지고 아이들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눈터라 인상 깊었던 김중미님의 또 다른 책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전철에서 책을 모두 읽고 덮는 순간 너무 안스러웠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마음껏 음미하지 못한 탓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책을 들었다. 40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랄까? 윗세대의 어려운 환경을 이해하고 아랫 세대의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터라 낀세대라 불리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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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에서 보기 아까운 책-종이밥


    전철이라는 공간은 늘 나에게 책을 읽을 시간을 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가지고 아이들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나눈터라 인상 깊었던 김중미님의 또 다른 책이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전철에서 책을 모두 읽고 덮는 순간
    너무 안스러웠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마음껏 음미하지 못한 탓이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책을 들었다.

    40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랄까?
    윗세대의 어려운 환경을 이해하고 아랫 세대의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터라 낀세대라 불리우는 40대는 윗세대를 알고 자랐고 아랫 세대를 이해하려 애 써야 하는 안타까운 세대이다. 그래서 더욱 '종이밥'의 느낌을 절절이 느끼고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행복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게 하는 책.
    물질문명에 물들어 행복을 행복으로 여기지 못하고 사는 아이들도 많지만
    가난 속에서도 송이와 철이에게는 따스한 행복이 깃들어 있다.

    여섯살 차이 나는 동생을 챙기기가 버겁기도 한 철이는
    하지만 그 아픔들과 버거움을 사랑과 행복으로 바꾸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중을 염려해 송이를 절에 보내려고 하던 날
    가족 모두는 어둡고 무거운 터널속에 남겨진 사람들 같았다.


    철이는 할머니가 돌아올 골목을 지키고 섰다. 혹시나 송이가 다시 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몸져 누운 할아버지는 며칠째 그렇게 신음한다.
    그 맘을 알았을까?
    할머니는 절에 놓고 오려고 데리고 갔던 송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다.

    밥을 굶지 않게 해 주고 싶었던 것보다
    사랑을 굶지 않게 해 주려는 마음의 승리였다.

    책을 모두 읽기 전에 송이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정말 송이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하고 말이다.

    가진것 없는 내가
    그 아이들을 보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수성님의 부친께서 그랬다던가.
    내가 가질것 챙기고 나서 남에게 나누어 주면 동정이고
    남부터 먼저 주면 도움이라고...

    이제 날이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움추릴지 생각이 드는 때이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나무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마음을 나누어줄 사람이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는지 말이다.

    사랑이 담긴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철이와 송이가 헤어져 살지 않아도 될터인데...

    지금은 아이가 '종이밥'을 챙겨 들고 있다.
    아이는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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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루한 것의 카니발
    nomadman | 2005년 08월 24일
    * 황종연, , [비루한 것의 카니발], 문학동네, 2001. 황종연의 은 90년대 소설문학의 특징인 '비루한 영웅들의 출현'이라고 명명한 것과 관계가 있다. 글쓴이는 이들을 '문제적 개인'(루카치)의 한국적 연장선상에 놓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서사를 추동시키는 장정일, 최인석(그리고 성석제)의 소설을 다룬다. 비루한 영웅들은 80년대의 거대서사가 사라진 이후에 반권위적인 하위문화의 출현과 더불어 탄생했으며, 그들은 축제와 폭력, 범죄등을 통해 기성질서에 전면적인 도전을 꾀하며 그런 의미에서 80년대식의 운동과도 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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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종연, <비루한 것의 카니발>, [비루한 것의 카니발], 문학동네, 2001.

    황종연의 <비루한 것의 카니발>은 90년대 소설문학의 특징인 '비루한 영웅들의 출현'이라고 명명한 것과 관계가 있다. 글쓴이는 이들을 '문제적 개인'(루카치)의 한국적 연장선상에 놓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서사를 추동시키는 장정일, 최인석(그리고 성석제)의 소설을 다룬다. 비루한 영웅들은 80년대의 거대서사가 사라진 이후에 반권위적인 하위문화의 출현과 더불어 탄생했으며, 그들은 축제와 폭력, 범죄등을 통해 기성질서에 전면적인 도전을 꾀하며 그런 의미에서 80년대식의 운동과도 변별적인 차이를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비루한 영웅들의 출현이 가져온 긍정적 성격에 주목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의 반항이 기존질서를 전면으로 부술 수 있는 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존질서가 베푼 일시적인 해방기제, 그리고 상품화의 전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여기에 '진정성'이 회복되어야 비루한 영웅들의 전복적 의미가 기성의 질서가 베풀고 상품시장이 제공하는 문화에 맞선 또 다른 문화를 배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 그 '진정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진정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개인의 자기 창조적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루한 영웅들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90년대에 들어서 너도 나도 사회운동가도 오토바이 폭주족도 <탈주>를 외치고 실행했는데, 이때 탈주는 급진적 욕망의 흐름을 외치면서 반도덕, 일탈, 범죄를 은밀히 합리화하는 행위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윤리적인 문제를 유발한다. 즉 타인의 진정성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연대의 필요성을 되묻게 한다. 이 지점에서 진정성이 갖는 확장된 의미는 진정성을 마음에 품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해방과 연대를 생각하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장정일과 최인석이 꿈꾸는 수정궁, 혹은 유토피아에 대한 끊임없는 희망으로 작품속에 절실히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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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색인
    k1000999 | 2005년 08월 24일
    최인훈소설 - '회색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감동'이라고 말한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첫번째는 공감대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읽고 있는 나 자신까지도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두번째는 낯설음이다. 늘 알고 있던 이야기, 매일 만나던 사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과 철학이 가미되면서 우리는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차갑지만 기분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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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소설 - '회색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감동'이라고 말한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첫번째는 공감대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어떻게 보면 읽고 있는 나 자신까지도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깊이 공감할 수 있다.
    두번째는 낯설음이다. 늘 알고 있던 이야기, 매일 만나던 사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과 철학이 가미되면서 우리는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차갑지만 기분좋
    은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그 이유는 바로 낯설지
    만 공감할 수 있었던 독고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 정보통신과 사이버기술이
    넘쳐나고 있는 지금,그 한복판에서 경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독고준을 통해 느
    낀 것은 다름 아닌 지금 바로 이순간의 내 복잡하고 혼미한 마음들이었다. '회색
    인'은경기침체로 인한 세상의 정적과 멈춤에 숨막혀 했던 나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
    스가 발견했던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작은 구멍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 내게는 너
    무나 고마운 소설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독고준의 시선이 너무나 차갑고 냉소적이기에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변화의 욕심이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
    기에 말도 걸지 못하고 함부로 시작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비로소 진정한 사랑
    이라고 고개 끄덕일 수 있었던 그런 소설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꼭 마음에 드는 글에 밑줄은 긋는 습관이 있는데 이 소설은 책 전체
    를 밑줄 긋고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로 단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셋을 셀때까지 분명한 결단을 요하는 지금들, 그 안에서 무관심할 수
    있고 우유부단해질 수 있는 법을 독고준에게서 배운다면 우리는 좀더 쉽게, 좀더 기
    쁜 마음으로 세상과 친해질 수 있고 변해갈 수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세상이 멈추어 있을때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에
    다가올 세상에 대해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그 공부에 시작을 부르는 소설이, 나는
    최인훈의 '회색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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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Korea | 2005년 08월 24일
    김진명-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기 가입한 분이시라면 당연히 읽었을 법한 책이겠지요. 저는 얼마전에 읽게되었습니다. 성격상 장편은 못읽는 편이라 남들보다 시간이 좀 오래걸렸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책을 읽고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삭히느라 너무나도 힘이 들었고, 그동안 내가 우리나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나.? 정말 말뿐인 내나라가 아니었나 하는 회의가 많이 느껴졌습니다. 작가 김진명씨는 역사적으로 책을 많이 쓰는데요. '하늘이여 땅이여' '황태자비 납치사건'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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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명-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여기 가입한 분이시라면 당연히 읽었을 법한 책이겠지요.

    저는 얼마전에 읽게되었습니다.

    성격상 장편은 못읽는 편이라 남들보다 시간이 좀 오래걸렸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책을 읽고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삭히느라 너무나도 힘이 들었고,

    그동안 내가 우리나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나.?

    정말 말뿐인 내나라가 아니었나 하는 회의가 많이 느껴졌습니다.

    작가 김진명씨는 역사적으로 책을 많이 쓰는데요.

    '하늘이여 땅이여' '황태자비 납치사건'등으로 미루어 보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억울한 삶을 살았던 우리조국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풀이하였다고나 할까요?

    그 책을 읽으면서 전 다시 느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완전한 독립국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민족의식이 너무나 부족한 약소국이라는 것을.

    또다시 예전의 그 피말리는 싸움을 전쟁으로서가 아닌,

    다른방향으로만 하고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약소국의 서러움이란.. 정말 답답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고

    현실을 너무나도 냉혹하게 느껴주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았습니까.?

    우리 스스로 하나가 되어 선진국민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불과 몇년만에 경제성장을 이룩해낸 한국인 다운 그 빨리빨리

    의식을 경제성장과 나라에 힘썼으면 하는데요.

    대한민국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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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미빛 인생
    sopia012 | 2005년 08월 24일
    이 책을 다 읽을때까지 나는 손에서 색 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았지만 그 중에서도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가슴을 울리는 글들에 밑줄을 긋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이 책은 눈으로 읽어내리기에는 편한 책일지 몰라도(문장이 간결하고 호흡이 빠르므로) 가슴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힘든 책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너무도 지독스럽게 선명하다. 자신의 삶이 힘들어 죽는 게 나을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그리고 삶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꼭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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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다 읽을때까지 나는 손에서 색 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았지만 그 중에서도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가슴을 울리는
    글들에 밑줄을 긋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이 책은 눈으로 읽어내리기에는 편한 책일지 몰라도(문장이 간결하고 호흡이
    빠르므로) 가슴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힘든 책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너무도 지독스럽게 선명하다.
    자신의 삶이 힘들어 죽는 게 나을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그리고 삶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꼭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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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한가지 소원
    all8795 | 2005년 08월 24일
    늘 딱딱한 글만 읽어서 그럴까, 책을 받고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계속 생각을 한게 '산뜻하다' 였다. 물론 책의 표지도 이쁘고 깔끔하지만, 내가 놀란건 아동도서만의 특이한 문체가 아닐런지. 큼지막한 글과 아기자기한 삽화는 어릴때의 동화책을 읽는 기분까지 들게한다. 몸이 허약한 엄마때문에 동생이 없는 나리의 꼭 한가지 소원은 바로 '동생이 있었으면..'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리는 병아리, 달팽이까지 정성껏 돌보고 동생의 허전한 빈자리를 그것으로 채우려 한다. 언제나 약 냄새가 나는 엄마가 싫지만, 엄마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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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딱딱한 글만 읽어서 그럴까, 책을 받고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계속 생각을 한게 '산뜻하다' 였다. 물론 책의 표지도 이쁘고 깔끔하지만, 내가 놀란건 아동도서만의 특이한 문체가 아닐런지. 큼지막한 글과 아기자기한 삽화는 어릴때의 동화책을 읽는 기분까지 들게한다.

    몸이 허약한 엄마때문에 동생이 없는 나리의 꼭 한가지 소원은 바로 '동생이 있었으면..'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리는 병아리, 달팽이까지 정성껏 돌보고 동생의 허전한 빈자리를 그것으로 채우려 한다. 언제나 약 냄새가 나는 엄마가 싫지만, 엄마 앞에선 싫다고 말 안하는 그래도 철든 아이. 엄마와의 투쟁은 언제나 나리가 지지만 엄마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나리이다. 귀찮은 옆집의 재모같은 동생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해도 잠든 재모의 신발을 신겨주는 걸로 봐서는 누나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겨운 일상생활에서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소설은 어렸을 적에는 한번씩 다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나리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이미 동심과는 동떨어져버린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역시 어린애야'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켠으로는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하는 생각도 들게한다. 바쁘게만 사는 우리에게 잠시 기분좋은 브레이크를 밟아보는 것은 어떨까. 어렸을적의 나를 상상 해 보면서 책을 읽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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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jure | 2005년 08월 24일
    작년 12월 28일에 핫트랙스로부터 주문했던 음반이 도착했다. 그 몇 주 전 아침, FM에서 우연히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를 듣고는 마치 몽유병자처럼 나른하게 그 음악에 반해 라디오방송국 홈페이지에 당시에 미 처 메모하지 못한 곡의 제목을 물었고, 핫트랙스에 가보니 안타깝게도 품절 이던 음반을 다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손에 넣은 것이다. 이 음반에는 '그노시엔느', '오지브', '짐노페디', '사라방드' 등이 있는데, 이번에 라는 에릭 사티의 전기소설을 읽으면서 그 곡들의 작곡 동기와 배경을 알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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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28일에 핫트랙스로부터 주문했던 음반이 도착했다.
    그 몇 주 전 아침, FM에서 우연히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를 듣고는 마치
    몽유병자처럼 나른하게 그 음악에 반해 라디오방송국 홈페이지에 당시에 미
    처 메모하지 못한 곡의 제목을 물었고, 핫트랙스에 가보니 안타깝게도 품절
    이던 음반을 다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드디어 손에 넣은 것이다.
    이 음반에는 '그노시엔느', '오지브', '짐노페디', '사라방드' 등이 있는데,
    이번에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라는 에릭 사티의 전기소설을 읽으면서 그
    곡들의 작곡 동기와 배경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불과 한 달여 전에 바로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
    덕에 갔었다. 20여일의 짧지 않은 유럽 여행 중에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였던 몽마르트르.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다녀온 후나 여전히 가장 다시
    가고픈 도시 파리. 아름다웠던 몽마르트르.

    우리는 그때 카페 '라팽아질'을 찾기 위해 무려 예닐곱 명의 행인을 붙잡고
    길을 물었고, 그 좁은 골목 어디엔가를 돌고 돌아 드디어 '라팽아질'을 찾
    아냈을 땐 해가 완전히 저문 밤이었다. 그러한 어둠 속에서 그저 카페의 바
    깥 모양만을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나의 마음은 섬뜩하리만치 강하고 선명하
    게 전율했었다. 건물의 벽에 그려진 토끼 그림과 울타리가 쳐진 좁은 마당
    의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처음엔 숲속의 작은 집처럼 아기자기 하고 예쁘게
    보이던 것이 그 나무로 된 문 안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노
    랫소리로 점점 몽환적인 느낌이 되고,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동경 때문에 지금은 더더욱 미칠듯이 가고
    싶은 곳. 다시 몽마르트르 언덕에 가게 되는 날에는 반드시 그 문을 열고
    발을 디디리라. 그 환상 속으로.

    그런데 바로 그 '라팽아질'이 에릭 사티의 59년의 생애 중에 단 한 명의 연
    인이었던 쉬잔을 처음 만난 곳이다. 그 '라팽아질' 앞의 비탈길에서 에릭
    사티가 잊어버리고 두고 간 박쥐우산을 돌려주러 나온 쉬잔은 그와 마주 선
    다. '그노시엔느'의 선율을 그립게 반추시키던 그녀.
    에릭 사티는 에펠탑이 완공된 직후 맨 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갔을 때 검은
    고양이와 기묘한 춤을 추는 망상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데, 그 이튿날 이 피
    아노곡을 작곡했다. 에릭 사티가 남몰래 사랑했다는 작품 '그노시엔느'. 그
    리고 나 또한 바로 이 곡 때문에 에릭 사티의 음반을 사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왜 몽마르트르 언덕의 그림 가게들에
    이 책의 표지와 똑같은 그림이 그렇게 많이 나부꼈는지 알았다. 바로 이 표
    지가 에릭 사티가 처음 피아니스트로 취직한 카페 '검은 고양이'의 포스터
    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단지 아라이 만이라는 일본 작가가 쓴 이 소설의
    표지가 왜 이렇게 파리에서 많이 팔고 있을 만큼 유명한지에 대해 의아했었
    다. 알고 보니 그건 바로 이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평생을 가난한 카페 피아
    니스트로 살았던 에릭 사티 때문이었고, 이 카페 '검은 고양이'야말로 그의
    곡 중 가장 유명한 '짐노페디'를 탄생시킨 곳이기 때문이었다.
    카페 주인인 살리스 노인이 측흥 만담을 하는 동안 그 반주로 '거위를 눌러
    죽인 뒤 느긋하게 춤추는 검은 고양이'를 상상하면서 즉흥적으로 연주한 '
    짐노페디'.

    그런데 그렇게 소설 속의 배경에 내가 직접 가봤다는 사실로 인한 공감과
    재미 외에도 내가 이 소설을 너무나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요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김석희라는 번역가의 놀라운 언어구사력! 마치 박완서 등의 우
    리나라 소설가의 작품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매끄럽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우리나라 말들이 많이 나오기까지 한다.
    그래서 죽 메모를 해놓고 어젯밤에 책을 다 읽고 국어사전을 찾아봤는데 바
    로 이런 말들이다. 정말 번역서에서 나온 단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미늘창 : 창 끝이 나무의 가지처럼 두 가닥 혹은 세 가닥으로 갈라져 있는 창.
    번드치다 : 물건을 번득이어 뒤집다. 처음 먹은 마음을 변하여 바꾸다.
    괄태충 : 민달팽이
    신천옹 : 신천옹과의 바닷새. 거위보다 크고 살쪘으며, 날개와 꽁지는 검고 몸
    은 휨. 오래 날 수 있음. 국제 보호조로 지정됨.
    훌닦다 : 남의 허물을 들어 몹시 나무라다.
    지정거리다 : 곧장 내달아 가지 않고 조금 지체하다.
    물거름 : 액체로 된 거름.
    너글너글하다 : 마음씨가 확 풀리고 너그럽다.
    께르는하다 : 기운이 없어 늘쩍지근하고 내키는 마음이 적다.
    가붓하다 : 가분한 듯하다. (가분하다 : 들기 좋을 만큼 가볍다)
    농탕치다 : 남녀가 음탕한 소리와 난잡한 행동으로 마구 놀아대다.
    다박나룻 : 다보록하게 함부로 난 수염.
    모주꾼 : 모주망태. 술을 늘 대중없이 많이 먹는 사람.

    이 책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를 파리를 동경하고, 에릭 사티의 음악을 좋아하
    고 예술의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권한다.
    마지막으로 수많이 밑줄을 그은 중에 에릭 사티의 그의 음악 작곡에 대한 모토
    혹은 예술관에 관한 부분을 옮긴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음표를 자꾸 덧붙여가면 악보의 페이지도 부쩍부쩍 늘어납
    니다. 두꺼운 악보를 만드는 건 지극히 간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작곡을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평소에 유념하고 있는 건
    음표를 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자꾸 빼 나가는 겁니다. 군더더기 음표 쓸데없는 음표, 장식에 불과
    한 음표, 요컨대 군살 같은 음표는 가차없이 잘라냅니다.
    그러다 보면 맨 마지막에는 도저히 잘라낼 수 없는, 그러니까 없어서는 안될 음
    표만 살아남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음표지요. 그래서 내가 만
    드는 작품들은 모두 악보가 얄팍합니다. 내 머리털과 비슷할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부디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얄팍한 건 같지만, 내 악보와 머리털은 하늘
    과 땅만큼 다릅니다. 내 머리털은 운명의 힘으로 저절로 ''빠진'' 겁니다.
    그런데 내 음표는 예술의 힘으로 일부러 "뺀'' 겁니다. 어떻습니까. 악보가 얄팍
    한 건 예술적 도전의 결과였다는 걸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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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nopoem | 2005년 08월 24일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이면우 강철 난로의 시인, 이면우의 두 번째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면우의 새 시집을 망설임 없이 구입할 것이다. 그만큼 시집의 감동은 컸고 감히 말하건 데 2001년에 출판된 그 어떤 시집보다 탁월했다. 이번 시집은 그의 절판된 첫 시집 『저 석양』에 수록되어 있던 시편들과 이후의 시들을 한데 묶은 시집으로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기준으로 이면우의 전후 시적 작업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시집을 단숨에 읽어버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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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이면우


    강철 난로의 시인, 이면우의 두 번째 시집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면우의 새 시집을 망설임 없이 구입할 것이다. 그만큼 시집의 감동은 컸고 감히 말하건 데 2001년에 출판된 그 어떤 시집보다 탁월했다.
    이번 시집은 그의 절판된 첫 시집 『저 석양』에 수록되어 있던 시편들과 이후의 시들을 한데 묶은 시집으로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를 기준으로 이면우의 전후 시적 작업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시집을 단숨에 읽어버린 지금, 나는 조금은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

    이전 시집에서 이면우가 보여주었던 것은 현실의 구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놀라운 연금술이었다. 그의 직업이 보일러공이라는 이유로 나는 주로 '난로'에 그의 시를 비유하기를 좋아하는데 그의 시안에서 퍽퍽한 일상들은 태워져 따뜻함을, 뜨거움을 전달해준다. 이번 시집에서도 그러한 시들은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령 다음과 같은 시들이다.


    여편네한테 받은 첫선물이 하늘빛 벙어리장갑
    겨울이면 마음 든든해서 돌아다녔다
    술자리에선 술잔 곁에 나란히 포개두다 사실은
    땀 새로 바람 솔솔 드나드는 벙어리 장갑 속에서
    나는 늘 두 주먹을 꼭 쥐고 있던 거다 그래
    악수할 때 내 손은 언제나 촉촉 따스했다
    언젠가 싸락눈 속에서 맨손으로
    자전거 탄 고향 친구에게 벗어주었더니
    여편네 암말 않고 하나 더 짜주다
    겨울 석달은 꼼짝없이 놀아야 했던 때, 그래
    나는 벙어리 장갑 속에 불끈 쥔 두 주먹을 감추고
    대양의 섬 같은 겨울 공사판을 기웃거렸다
    품팔아 사는 게 기적 같던 때다 지난해
    첫 아들놈이 두 주먹 꼭 움켜쥐고 나와
    벙어리 장갑을 떠올리며 혼자 빙긋이 웃었다
    그래 아가야, 너도 참 할 일이 많은가 보구나

    -「할 일 많은 사내는 주먹을 쥐고 있다」 전문


    이러한 종류의 현실을 긍정하는 시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판은 그것이 '현실에 대한 도피 혹은 회피'이거나 '거짓 희망을 말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면우의 시에 한해서만 말할 때 이러한 비판들이 성립할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시가 가지는 진정성 때문이다. 즉 그의 시가 그 자신이 치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며 그 안에서 스스로 몸으로 깨달은 손에 박힌 굳은살과 같은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퍽퍽한 삶의 모습들 속에서 독자들은 시인과 함께 '문득' '갑자기'(그의 시에서는 유난히 이러한 각성의 순간이 많다) 살아온 온 생의 무게로 시인이 깨닫는 생의 의미를 보게 되고 한없이 따뜻함을 느낌과 동시에 그 치열함에 서늘함을 느낀다. 그럼으로 이면우의 시가 가지고 있는 힘은 다름 아닌 구체성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구체성의 힘을 박노해의 시에서 본 적이 있다. 그가 형무소에서 빠져 나와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써대기 시작하기 전에...

    나의 우려는 이러한 구체성에서 이면우가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 때문이다.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이전과 이후의 시들이 뒤섞인 채 시집이 묶여있는 까닭에 어느 것이 이전의 것이고 어느 것이 이후의 것인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삶의 구체성이 부족한 시들이 이후의 것이라는 것은 시의 내용으로 짐작해 볼 수는 있다. 가족과 자신의 노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대신 이면우는 그의 삶을 추상한다. 표제작인「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만 보더라도 그의 변화는 쉽게 알 수 있다.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다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 밑에 놓아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 할 저녁이 있다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 울림에 실어
    나지막이,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다
    그러나 그 저녁이 다 가도록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전문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는 그의 가족과 노동을 보여주기보다는 숲과 새들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각성의 순간(비약의 순간)을 보여주는 대신 자신이 내린 정의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렇게 쓰인 시들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면우의 시는 몸뚱이로 쓰여질 때 그 힘이 제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신성한 노동의 시인, 그것이 이면우가 아닐까? 그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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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색인
    birdies312 | 2005년 08월 24일
    최인훈의 을 읽고 이런 소설도 있구나 싶다. 이렇게 치열한 사색의 밀도를 본 적이 있던가. 같은 소설가이며 진지함과 민족, 역사, 사회에 대한 작가적 의식 역시 더하고 덜함을 말하기에 몹시 어려운 두 작가이지만 조정래의 형상화 작업과 최인훈의 그것은 방법면에서 많이 다르다. 최인훈은 관념적이면서도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지식인 냄새가 작품 전체에 짙게 배어 있으면서도 역시 현실의 아픔을 비껴가지 않는다. 특히 은 작가의 지적. 정신적 편력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지금으로선 하이네의 풍자시가 비바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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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의 <회색인>을 읽고


    이런 소설도 있구나 싶다. 이렇게 치열한 사색의 밀도를 본 적이 있던가.
    같은 소설가이며 진지함과 민족, 역사, 사회에 대한 작가적 의식 역시 더하고 덜함을 말하기에 몹시 어려운 두 작가이지만 조정래의 형상화 작업과 최인훈의 그것은 방법면에서 많이 다르다.
    최인훈은 관념적이면서도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지식인 냄새가 작품 전체에 짙게 배어 있으면서도 역시 현실의 아픔을 비껴가지 않는다.

    특히 <회색인>은 작가의 지적. 정신적 편력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지금으로선 하이네의 풍자시가 비바람에 바랜 다이너마이트처럼 무력하다든가, 발자크의 소설은 그 소설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역사, 경제, 종교 등 문학 밖의 모든 지식으로 감상이 가능하다거나, 혁명의 폭풍 속에서도 태연했다는 괴테의 처신이 징그럽고 구역질난다거나, 문학으로서 가능한 상징의 끝은 카프카일 거라는 얘기 등등.

    이문열에서는 현학취라고 느꼈던 것들이 최인훈에서는 도저한 편력으로 읽히는 것은 내 선입견 혹은 편견 때문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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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붕
    paiksk | 2005년 08월 24일
    한국의 이솝이기를 자청하는 방송작가 나울시님이 이 번 9월에 펴낸 책입니다. 사후 자신의 등껍질을 은인에게 지붕으로 제공하는 거북의 마음이 가슴 찡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우린 누구에게 나의 등을 주고 싶은 것일까요? 이 집을 짓는 과정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술보다도 탁월합니다. 짧아도 매우 긴 이야기,게임같은 인생사가 재치 있는 그림과 더불어 외로움을 잊게 합니다. 그래요,지금 오늘은 2002년의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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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이솝이기를 자청하는 방송작가 나울시님이 이 번 9월에 펴낸 책입니다.

    사후 자신의 등껍질을 은인에게 지붕으로 제공하는 거북의 마음이 가슴 찡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우린 누구에게 나의 등을 주고 싶은 것일까요?

    이 집을 짓는 과정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술보다도 탁월합니다.

    짧아도 매우 긴 이야기,게임같은 인생사가 재치 있는 그림과 더불어 외로움을 잊게

    합니다. 그래요,지금 오늘은 2002년의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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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밤
    birdies312 | 2005년 08월 24일
    이기철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오르는 양은 그릇들이 날을 부딪히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으로는 전할 수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여린 처녀가 삼십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 소설을 읽는가 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들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생을 살러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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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철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오르는 양은 그릇들이 날을 부딪히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으로는 전할 수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여린 처녀가 삼십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 소설을 읽는가 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들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생을 살러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낫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
    여기에 우리는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어느 집엔들 한오리 근심 없는 집이 있으랴
    군불 때는 연기들은 한 가정의 고통을 태우며 타오르고
    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여기에 우리는 한 줌의 삶을 기탁하러 왔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극빈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로 치면 보통 사람들의 삶이 아닐까 싶다.
    봄을 타며 소설을 읽고, 아이들을 키우고, 어느날 문득 되돌아 보니 이룬 것 없이 밥만 축낸 듯하고, 늘 백 프로 만족스런 경우는 없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다들 자신의 소중한 뭔가를 포기하며 살아가야 하고, 그래도 삶은 계속되야 하고, ..... 이러한 보편적인 삶에서 건져올린 노래일 것이다.
    누구도 떨어지는 돌을 다시 밀어 올리고 밀어 올리고 해야하는 시지포스의 형벌 같은 삶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삶의 진실. 그런 까닭에 <봄밤>이 힘든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시가 내게 지리멸렬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질긴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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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aimiso | 2005년 08월 24일
    김형경,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들마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니, 사랑에 관한 생각들도 무척 다양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난 후에도 '사랑이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세진과 인혜는 사는 방식이 조금은 다르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세진과 인혜의 삶 중 어떤 것에 더 공감했을지 모를 일이나, 나는 줄곧 세진의 삶에 더 깊이 닿아있었던 것 같다. 세진... 많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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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경,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물론 사람들마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니, 사랑에 관한 생각들도 무척 다양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난 후에도 '사랑이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세진과 인혜는 사는 방식이 조금은 다르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세진과 인혜의 삶 중 어떤 것에 더 공감했을지 모를 일이나, 나는 줄곧 세진의 삶에
    더 깊이 닿아있었던 것 같다.
    세진... 많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에게만 보여지는 삶을 살아 온 그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던 여자.
    어쩌면 내가 세진의 삶에 공감했다는 것은 내게도 세진과 비슷한 상처가 있음을 의미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상처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세진처럼 아마 전혀 근
    거없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작가 김형경은 세진과 인혜가 스스로의 결핍을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게 한다. 결국 두 주인공이 자신을 알아가고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찾기까지 작가는 물론
    세진과 인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한다.

    이 책은 주인공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많은 메시지를 준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이루는 정신분석의 과정을 독자들도 함께하고 세진과 인혜의
    모습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라는 책을 읽고 우리 자신을 모두 드러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느끼고 좀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충
    분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30대 후반의 두 여성이지만,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오.여.사(오늘을 여성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에서부터 오늘날 여성의 삶까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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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paiksk | 2005년 08월 24일
    제목: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남자들의 주요 화제가 군대와 축구라는데 축구는 월드컵 덕분에 나도 상당한 매니아가 되었지만 군대는 아직도 등 너머의 원경일 뿐이다. 어릴 때에 휴가 나올 때마다 건빵을 갖다주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단정한 제복과 무거운 워커가 참 인상적이었다. 당시의 건빵은 지금보다 훨씬 단단하고 반질반질하고 맛 있었던 것같다. 지금도 더러 건빵 사다가 그릇에 담아 별사탕 넣어서 그대로,또는 끓여서 먹어본다. 특별한 사연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고 정승화장군이 지난 6월 타계하시기 전 일대기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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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대한민국 군인 정승화

    남자들의 주요 화제가 군대와 축구라는데 축구는 월드컵 덕분에 나도 상당한 매니아가 되었지만 군대는 아직도 등 너머의 원경일 뿐이다.
    어릴 때에 휴가 나올 때마다 건빵을 갖다주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단정한 제복과 무거운 워커가 참 인상적이었다. 당시의 건빵은 지금보다 훨씬 단단하고 반질반질하고 맛 있었던 것같다. 지금도 더러 건빵 사다가 그릇에 담아 별사탕 넣어서 그대로,또는 끓여서 먹어본다.

    특별한 사연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고 정승화장군이 지난 6월 타계하시기 전 일대기를 남기셨다.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병상의 노장군을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순간에서도 메모를 남긴 일본인이 있었을 때에 우린 기록을 잘 하지 않는 민족이라고 반성하지 않았던가.

    오래 전 대연각 화재때엔 불길 속에서 의연히 구조를 기다린 중국신사가 있어 처변불경(處變不驚)이라는 쉽지 않은 고사성어가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갑자기 이등병으로 추락한 장군은 타오르는 심화 속에서도 오로지 군인이고자 했던 자신의 일생과 격전의 기억들을 회고했으리라. 복권된 뒤에도 역시 후배 장병들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 뿐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울타리를 지켜주는 전선의 젊음들을 생각하며 생사가 엇갈리는 순간에서도 죽음으로써 터전을 지키는 우리 남성들에게 감사를 느낀다. 서해 교전때의 전사상자들을 잊어서는 안 되리라. 그리고 우리나라가 강력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러면 무엇을 어찌 해야할 것인가도...! 동족상잔의 굴레에서도 어서 벗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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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을 찾아가는 아이들
    bonobono | 2005년 08월 24일
    더글러스 커플런드 저/권정희 역 문학동네 믿음 없는 시대의 황량한 삶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은, 이 책을 처음 단숨에 읽은 뒤의 느낌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여백이 많은, 널찍하게 편집된 페이지에 짤막하게 토막나 있는 구절들은 모두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였고, 읽을 때마다 서글픈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현대 도시인의 생활이다. 평범하게 자라 왔지만 어느새 일그러져 있고, 꿈을 잃었으며 생활에 매몰되어 텅 비어버린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손자에게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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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글러스 커플런드 저/권정희 역 문학동네


    믿음 없는 시대의 황량한 삶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은, 이 책을 처음 단숨에 읽은 뒤의 느낌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여백이 많은, 널찍하게 편집된 페이지에 짤막하게 토막나 있는 구절들은 모두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였고, 읽을 때마다 서글픈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현대 도시인의 생활이다. 평범하게 자라 왔지만 어느새 일그러져 있고, 꿈을 잃었으며 생활에 매몰되어 텅 비어버린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손자에게 동화를 이야기해 주려 해도 비정한 현실세상의 비유에서 벗어날 수 없고, 어느날 아내에게 버림받고는 멍하니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자문하게 되고, 몇 년만에 길에서 만난 친구는 보험설계사가 되어 있거나 교회의 전도사가 되어 있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퍽퍽하고 건조한 삶이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그 속에서 조금씩 말라 비틀어져 가는 우리의 자화상이 서글프게, 그러나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아무런 믿음도 사랑도 남아 있지 않은 세대, 이 우리 세대를 그는 신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명명하고 있다.

    문장은 담담하고, 핵폭탄이 떨어져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고 있는 장은 침착하지만, 그 상상 속의 상황이 너무나 리얼해서 더욱 비극적이다. 왜, 우리도 이따금씩, 어쩌면 종종,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던가. 내일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바로 지금 내가 죽게 된다면, 세상이 멸망한다면.

    이 책은 아름답고 서글프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건조함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더욱 더 건조하고 메마른 모습, 황량한 삶과 대면하는 순간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조금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그 서글픔 속에서 묘한 위로를 얻게 된다. 이렇게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생각, 모두가 함께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감. 결국 그러한 동세대가 이렇게 현재, 함께 살아있다는 느낌. 모두 혼자이지만, 홀로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역설적인 느낌을 위로로 남기는 이 책은, 그러므로 다시, 어떻게 이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동반한다.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나가지 않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꼼짝도 하지 않고 들어앉아 생각을 하는 주인공이 '정답'을 얻은 것만은 아니니라. 하지만 멈추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던 것만으로도 분명 그의 삶의 빛깔은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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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볕 속의 사람들
    bonobono | 2005년 08월 24일
    가싼 카나파니 저/김종철.천지현 역 창작과비평사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비추는 뜨거운 태양 최근 열음사에서 '이삭줍기' 시리즈가 선보이고 있다. 서구 유럽 및 영미권 일부, 일본 정도의 책들만 편중되어 소개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여기에 그간 소개되지 않았던 제3세계의 문학성 있는 작품들을 발굴, 소개하겠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의도라는데, 의미있는 시도인 이 기획에 기대와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가싼 카나파니의 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팔레스타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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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싼 카나파니 저/김종철.천지현 역 창작과비평사



    팔레스타인 난민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비추는 뜨거운 태양


    최근 열음사에서 '이삭줍기' 시리즈가 선보이고 있다. 서구 유럽 및 영미권 일부, 일본 정도의 책들만 편중되어 소개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여기에 그간 소개되지 않았던 제3세계의 문학성 있는 작품들을 발굴, 소개하겠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의도라는데, 의미있는 시도인 이 기획에 기대와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가싼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팔레스타인 소설이라고 미디어를 통해 리뷰되고 있는데, 이미 오래 전에 창비에서 출간된 이 <불볕속의 사람들>이 먼저 처음 소개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팔레스타인 해방전선의 책임 대변인이자, 이 조직의 기관지 『알 하다프』의 편집장이기도 했던 작가의 중단편을 모은 이 소설집은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9편의 작품을 싣고 있어, 열음사 판보다 2편을 더 만날 수 있다.

    소설들은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어렵게 살아가 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보이고 있다. 극명한 메시지와 높은 목소리를 통해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비참하고 숨막히는 삶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감동과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나로서도 처음 접해보는 팔레스타인 소설이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테러와 공습, 접전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쿠웨이트로 밀입국하기 위해 탱크로리에 몸을 숨긴 세 사내가 국경 경비대의 몇 분의 말장난 때문에 뜨거운 탱크 속에서 단 몇 분 안에 질식해 숨지게 되는 <불볕 속의 사람들>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탱크를 두드렸다면 국경경비대에 밀입국자로 잡히긴 했겠지만 죽음만은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숨이 막혀 죽어가면서도 물탱크를 두드려 살려달라는 신호조차 보내지 못한 그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죽어가게 했는지를 되물어 본다.

    하루하루가 생존과 죽음의 불안한 접전을 맞이해야 하는 삶, 인간 조건의 한계를 맞닥뜨려야 하는 폭력적인 상황에 던져진 개인들의 삶은 비참하고 슬프다. 그러나 지구의 대부분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전쟁과 폭력, 혹은 기아에 신음하며 쓰러져 가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며 무관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 역시 피할 수 없었다.

    인류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고통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니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는 한 -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분명하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을 좀더 빨리, 큰 폭으로 풀어나가겠느냐는 것이겠지만, 우선 나와 내 가족이라는 좁은 테두리에서 눈을 들어 타인의 상황과 고통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넓히는 것이 그 시작의 한걸음이 아닐까.

    이 책의 역자의 말에서는 또 언론사에 근무했던 역자가 당시 우리 사회의 강압적인 분위기와 어려운 정치, 언론 현실 속에서 고민하며 이 책을 선택, 번역하게 된 과정을 만날 수 있어 또다른 감동을 준다.

    화려하고 세련된 표지와 예쁜 편집의 신간도 좋지만, 이렇게 잊혀지고 묻혀진 좋은 구간들이 다시 소개되고 발굴되어 제 빛을 봤으면 좋겠다. 더불어, 아직 절판되지 않고 시중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책이 버젓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최초로 소개되는' 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보도자료로 사용하는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고 본다. 더 어려운 출판 여건 속에서 좋은 책을 일찌감치 찾아내 소개한 역자와 출판사의 노력이 사장되어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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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의 향기가....
    whitegoodi | 2005년 08월 24일
    멋진 한세상 -공선옥 한 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글을 쓴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비유를 흔히 듣게 된다. 여러 편의 단편들을 묶어 출판한 소설집을 읽을 때면 난 이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한 세상’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공선옥’ 이란 한 사람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서였다. 지나가는 말로 ‘도시를 등지며 살고있는 작가’라는 한마디에 이름 석자를 기억하게 되었고 소설집이 출간되자 호기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한 의욕과는 달리 책장을 빠르게 넘기지도, 또 느낌들을 술술 적어나가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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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한세상 -공선옥

    한 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글을 쓴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비유를 흔히 듣게 된다. 여러 편의 단편들을 묶어 출판한 소설집을 읽을 때면 난 이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한 세상’을 선택하게 된 것은 ‘공선옥’ 이란 한 사람에 대한 강한 호기심에서였다. 지나가는 말로 ‘도시를 등지며 살고있는 작가’라는 한마디에 이름 석자를 기억하게 되었고 소설집이 출간되자 호기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강한 의욕과는 달리 책장을 빠르게 넘기지도, 또 느낌들을 술술 적어나가며 마침표를 찍을 순 없었다. 그녀는 내게 너무나 버거운 과제를 던졌기 때문이다.
    ‘가난’ 과 ‘여성’
    그녀는 ‘없이 산다는 힘겨움’과 ‘여성의 삶’이라는 고리로 나를 질기도록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성이면서 한 인간으로서 내게 있어 평생을 찾아도 풀기 어려운, 해답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가난했던 유년을 보낸 사람에게는 배고프고 소외되어 외로웠던 생활들이, 선명하게 기억해내고 싶은 즐거운 추억일 순 없다. 가난은 단순한 불편함이라 말하지만 그것은 이상주의자의 말일 뿐, 가난은 찰흙을 빚듯 깊이 개입하여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 도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도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힘겨운 삶을 들려주며, 그들을 소외시켰던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힘있게 펼쳐보이고 있다. 마치 가슴에 못이 박히는 듯, 그들의 삶이 고통스럽게 가슴을 파고드는 것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여러 형태의 여성을 만나볼 수 있지만 몇 가지로 분류되는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특징을 살펴보면 도시를 떠나 가진 것은 없지만 홀로 자녀를 키워내는 억척스러운 어머니라는 점이다. ‘어머니’라 하면 무명저고리의 할머니를 연상하게 되지만 한참 삶의 정체성을 완성해 나갈 30, 40대의 여성이다. 활동성과 사회성이 한창 발휘될 30-40대의 여성임에도 도시가 아닌 외진 지방을 선호하고 남성이 중심이 되는 가정이 아니라 남성이 부재하는 가정을 이끌고 있다는 것,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남성과 여성의 모든 역할이 필요한 억척스러움을 강요하는 여건에서 상실되어가는 자신의 여성성을 바라봐야하는 여성인 것이다. 그것은 아마 공선옥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그러한 삶들을 힘겹게 이어가는 모습이 고집스러워보인다. 하지만 결코 그러한 삶들이 그녀들의 선택이었나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소설의 내용들이 여기까지였다면 여타의 다른, 여성의 정체성에 관한 소설들과 다른점을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의미를 심어놓았다. 자신의 모습을 곱게 보지않는 세상 앞에 소리없이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아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그 외침이 불가능한 일에 트집잡는 사람처럼 억척스럽고 보기 흉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고집스러움이 다른 길을 열어가는 개척자의 모습임을 발견하게된다. 그녀들의 보살핌 아래 그녀들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그 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고 점점 향기를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향기가 나고 있는 그 곳이 바로 사람들이 통속적인 기준에 의해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던 그 곳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울타리 속에 갇히었던, 아니면 울타리 속으로 숨어 들었던, 작가는 그곳이 소외되어져야 할 곳이 아니라 그 독특한 향기에 찾아 들어야 할 곳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겐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이 공선옥이란 울타리의 향기에 흠뻑 젖었던 시기였으며 또 그 향기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맛이 아닐까.

    그 곳을 연상하면 느껴지는 향기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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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
    birdies312 | 2005년 08월 24일
    제목: , 저마다의 삶과 일상에서 발견해 내는 사람살이의 보편성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전반, 교조적 사회주의리얼리즘을 탈피하고 현실에 환원한 중국 현대소설의 경향을 대표하는, 이른바 신사실주의 소설집으로 40대 작가들의 중편 4편을 싣고 있다. 특별한 경험이나 낯선 풍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일상에서 건져올리는 삶의 진실 혹은 힘을 느낀다. 팡팡의 은 시점이 독특하다. 태어난지 보름만에 죽은 아기가 '나'로 등장한다. 최하층민의 생활을 그렸다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중국의 상류층 생활이 더 궁금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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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중국 현대 신사실주의 대표작가 소설선>, 저마다의 삶과 일상에서 발견해 내는 사람살이의 보편성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전반, 교조적 사회주의리얼리즘을 탈피하고 현실에 환원한 중국 현대소설의 경향을 대표하는, 이른바 신사실주의 소설집으로 40대 작가들의 중편 4편을 싣고 있다. 특별한 경험이나 낯선 풍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일상에서 건져올리는 삶의 진실 혹은 힘을 느낀다.


    팡팡의 <풍경>은 시점이 독특하다. 태어난지 보름만에 죽은 아기가 '나'로 등장한다. 최하층민의 생활을 그렸다고 하는데 오히려 나는 중국의 상류층 생활이 더 궁금할 정도로 소설 속의 비참한 삶들이 낯설지가 않다. 우리 소설들 속에서도 그만한 비참함 정도는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 (최근 읽어 본 국내 소설 중 비참함의 압권은 최인석의 소설집 <<아름다운 나의 귀신>>의 첫번째 중편 <직녀 내 사랑>에서 '구더기들의 습격으로 죽은 섭섭이'의 이야기이다)
    문제는 비참함을 고발하는데 그치는가, 그 속에서도 인간의 다양하고도 심층적인 모습을 발견하는가에 있지 않을까 한다.

    류헝의 <애정의 소용돌이>는 주인공의 심리적 추이가 줄곧 흥미진진하게 긴장감을 일으킨다.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린 선과 악, 혹은 보여지는 자아와 감춰진 자아의 갈등을 정말 흥미롭게 풀어냈다. '인간이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중국도 사람 사는 곳임을 실감나게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랑'이 주제가 되어도 의아할 터인데 '간통'을 다뤘음에랴!

    류전윈의 <직장>은 중국 사람들의 일상을 또 다른 각도에서 엿볼 수 있었다. 오해와 질투, 화해와 용서, 저마다 제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면면이 세밀하게 펼쳐진다. 우리와는 다른 사회적 특성상 적어도 겉으로는 다들 자신을 죽이고 사회조직에 착실하게 적응해 살 것이는 짐작이 보기좋게 빗나갔다. 사람들 각각의 뒤틀린 감정이 이리저리 꼬이고 엉키는 과정에서 그들의 인생사가 엮어지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가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산다는 게....'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 중국 소설이 우리 삶에서도 보편성을 얻는구나 싶다.

    츠리의 <번뇌인생>은 공장 노동자 인자호우의 팍팍한 심경이 그의 하루 일과를 통해 잔잔히 그려진다. 인자호우의 삶과 생활, 생각에 모두 공감을 했지만 특히나 공감했던 것은 그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과 아들과 나누는 대화와 거기서 비롯되는 그의 상념들이다. 고단한 삶, 그러나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삶, 어떤 희망이 있을지 어떤 복병이 음침하게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되지 않아 불안한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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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의 문
    funkman | 2005년 08월 24일
    구효서작 「비밀의 문」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소수에 의해 권력이 장악된 시대에 기록된 역사에 대한 불신은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손으로 기록된 역사는 항상 조작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인간에 의해 기록되는 마당에야 시대의 위정자의 관점이 개입될 여지가 충분히 상존한다. 잘 알다시피 모든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이며, 그러한 진리는 역으로 성공한 쿠데타 는 혁명이라는 신념을 누군가에게 제공한 바 있다. 이 소설은 그 조작된 역사가 야기할 수 있는 파장을 경고하고 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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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효서작 「비밀의 문」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소수에 의해 권력이 장악된 시대에 기록된 역사에 대한 불신은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손으로 기록된 역사는 항상 조작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인간에 의해
    기록되는 마당에야 시대의 위정자의 관점이 개입될 여지가 충분히 상존한다.
    잘 알다시피 모든 역사는 승리한 자의 것이며, 그러한 진리는 역으로 성공한 쿠데타
    는 혁명이라는 신념을 누군가에게 제공한 바 있다.
    이 소설은 그 조작된 역사가 야기할 수 있는 파장을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언어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한다.

    네 명의 화자에 의해 진행되는 소설의 주요한 소재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의 마법에
    빠진 한 젊은이가 우연히 조작된 역사의 일면을 폭로하는 텍스트의 번역 과정에 참여
    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물론, 그는 소설의 주요한 화자는 아니지만, 사건의 가운데 놓여있는 텍스트, 아육
    왕상전의 허와 실을 풀어나가는 주인공이며, 아육왕상전에 그려진 멜로와 동일한 모
    티브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명실상부한 주인공이다.)

    한 젊은이가 소설가에게 전달한 한 꾸러미의 원고지,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픽션같은 넌픽션으로 서술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지의 뒤안길에 바로 그 보통 사람들에 의해 구성된 밀교
    조직이 있으며, 그들은 사회의 전복을 목적으로 핵무기까지 보유하려 한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과거 일본의 옴 진리교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인간의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를 불신하며,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언어
    를 발화하지 않는다.
    그들이 언어를 불신한다는 것의 의미는 결국 언어로 전승된 인간적인 것의 모든 역사
    를 불신한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으며, 그들의 불신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바로 조
    작된 역사, 아육왕상전이다.

    작가는 마치 실재하는 텍스트인 양 아육왕상전을 서술해 나간다.
    불교의 전륜법왕이며, 불교의 현재적 모습을 설명해주는 주요한 근거인 아육왕, 즉
    아소카왕의 실체를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폭로하고 있는 이 책은, 그것의 존재 자체
    로 역사적 상식에 대한 혁명적 전복이다.
    그러나, 그 구구한 놀람의 과정은 마지막에 그것 자체가 조작된 역사임을 밝힘으로
    써 다시 한번 획기적인 반전을 꾀하는 고조의 과정일 뿐이다.
    그 두번의 반전은 언어와 언어로 치장된 거대서사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한다.

    언어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은 상식이다.
    언어로 완벽하게 의사소통할 수 없다는 것 역시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중요한 건 이것들이 상식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이제 역사, 철학, 문화 따위 언어로 기록된 최소한 지난 수천년 간의 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언어를 조탁하고 언어로 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작가에게 있어서 언어에 대한
    의구심이란 치명적이다.

    소설에서 이 의구심이 해결되지는 않았다.
    따지고보면 인간의 역사 전반에 걸쳐 이러한 회의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지도 모
    를 일이다.
    무슨 무슨 이즘 따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거대서사들이 바로 그 흔적이겠지.
    회의를 한다는 것, 그것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비밀의 문에 한발을 들여놓는다는 의
    미일 것이다.
    이 비밀의 문은, 그러나 사람을 병들게 한다.
    많은 인간적인 것들에 대해 회의하게 하고, 신뢰할 수 없게 하고, 숱한 의사소통의
    과정에 냉소하게 만든다.

    자, 우리는...이 비밀의 문에 한 발을 들여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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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석남 시에 대한 소고
    ontheroad | 2005년 08월 24일
    시적 유토피아와 삶의 디스토피아 --- 장석남 詩에 대한 소고 장석남은 1965년 인천에서 태어나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으며, 지금까지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네 권을 간행했다. 짧지 않은 詩歷에, 적지 않은 詩篇이다. 장석남에 대해서는 대체로 '순정한 서정시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요즈음의 시단에 '서정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어디 있겠는가 만은, 유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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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적 유토피아와 삶의 디스토피아
    --- 장석남 詩에 대한 소고


    장석남은 1965년 인천에서 태어나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맨발로 걷기」가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으며, 지금까지 시집으로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네 권을 간행했다. 짧지 않은 詩歷에, 적지 않은 詩篇이다.
    장석남에 대해서는 대체로 '순정한 서정시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요즈음의 시단에 '서정시'를 쓰지 않는 시인이 어디 있겠는가 만은, 유독 장석남에게 '순정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가며 '서정시인' 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게는 그 칭호가, "장석남에게는 시세계를 끌고 가는 하나의 의지가 없다"라는 평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필자가 읽기에도 장석남의 시세계는 하나의 지향점으로 시인의 안목이 수렴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네 권의 시집 사이에는 "'사이' 이외 별게 없어 보인다"는 시인의 말이 단순히 겸손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석남의 시가 하나의 의지로 수렴되는 지향점을 지닌 것이 아니라면, 과연 장석남의 시를 어떻게 읽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순정한 서정시인'이라는 말이 지니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장석남의 시들은 그의 서정이 세계의 모든 事象에 부딪혀 울리는 노래의 格을 지닌다. 그렇다면, 장석남의 서정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그리고 그 서정이 시로서 표출되는 양상은 어떠한가. 이러한 점들이 본고에서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바이다.



    시적 유토피아 : 여기 아닌 다른 곳을 꿈꾸기

    우선, 장석남의 서정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 아닌 다른 곳을 꿈꾸기'이다. 그러나 장석남에게 있어서 '다른 곳'이란, 특정한 시공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서는 다다를 수 없는 어떤 곳, 그러니까 '유토피아'이다. 다음의 시를 보자.

    요즘은
    바람 불면 뼈가
    살 속에서 한쪽으로 눕는다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친다

    나는 안 보이는 나라를 편애하는 것이 틀림없어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만큼 멀까
    - 「진흙별에서」전문

    장석남이 꿈꾸며 '편애하는' 다른 곳은 '안 보이는 나라'이다. '진흙별'이란 시인이 발을 딛고 있는 이곳 즉 지구일 터인데, '진흙'이라는 시어는 시적 화자가 딛고 있는 이곳이 질척거리는 세상이라는 점, 빛나지 않는 곳임을 환기한다. 이러한 '진흙별'에서, 시인은 '안 보이는 나라'의 '별빛'을 꿈꾼다. 그 꿈은 결국 그 '별빛까지'의 먼 거리를 가늠하면서, 시적 화자가 꿈꾸는 다른 곳이 종국에는 다다를 수 없는 곳이라는 인식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장석남이 꿈꾸는 '다른 곳'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를 밖으로 밀었다"(「기러기 간다」), "영혼까지는 멀고 험해/마른 침을 넘기는 눈길"(「눈길」), "生은 때로 먼 길을 원한다"(「우리집에 내려오는 양은 쟁반 하나」) 에서처럼, '안 보이는' 곳이며 '먼' 곳이다. 장석남의 '다른 곳'이 지닌 이러한 불가시성과 거리감은, 그의 시로 하여금 낭만성과 유토피아적 공간을 지니게 한다. 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그러나 꿈꾸지 아니 할 수 없는 곳, 바로 이러한 곳이 낭만적 유토피아가 아니고 무엇인가. 시인은 "얼굴을 닫고 흐르는 구름에게 얼굴을 다 주"며, "새떼들이" 그를 "메고 어디론가 가"(「새떼들에게로의 망명」)기를 꿈꾼다. "나 혼자 길 아닌 곳으로 나서고 싶은"(「내가 듣는 내 숨소리」) 그의 몽상.
    이러한 낭만적 유토피아가 장석남의 시에 드러날 때, 그것은 주로 '별'의 이미지와 '골짜기'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첫 시집에서 인용한 위의 시뿐만 아니라 네 권의 시집 곳곳에서 장석남에게 '별'은 '먼 곳'을 지칭하는 개인적 상징이다.

    저 입술을 깨물며 빛나는 별
    <중략>

    유일한 문밖인 저 별
    - 「별의 감옥」부분

    눈에 드렁칡첨 얽히는 별의 빛이여
    - 「초저녁 '밥별'이라는 별」부분

    창에 별이 와 빛난다. '다 괜찮아, 다 괜찮다니까.' 그러나 답변은 없다.
    - 「오동나무가 있던 집의 기록 2」부분

    '별'이 먼 곳을 지칭하는 이미지라면, '골짜기'는 안 보이는 곳을 지칭한다. 산과 내에 가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 이를테면 무릉도원의 이미지를 지닌 시어가 장석남에게는 골짜기가 아닌가 한다.

    그 돌멩이 꽃처럼 피어
    깊고 아득히 골짜기로 올라가리라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리라
    가끔 시냇물에 붉은 꽃이 섞여내려
    마을을 환히 적시리라
    사람들, 한잠도 자지 못하리
    - 「그리운 시냇가」에서

    막 퍼붓는, 나를
    특별시 명동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집
    처마 밑에 세우고
    몰아치는 눈보라
    한꺼번에 정신없이
    명동을 두들겨
    깊은 골짜기로 幻한다
    <중략>
    휘황한 골짜기
    -「눈보라」에서

    '돌멩이'가 '꽃'이 되어 올라가는 곳, '아무도 그곳까지 이르진 못하'는 곳이 바로 장석남의 '안 보이는 나라'이며 무릉도원이며 시적 유토피아이다. 그곳으로부터 '가끔' '섞여내려' 오는 '붉은 꽃'은 이러한 유토피아에 대해 시인이 현실에서 꾸는 몽상일 터인데, 이러한 몽상은 '마을을 환히 적시'고 '사람들'을 '한잠도 자지 못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이러한 힘을 지닌 시인의 몽상은, 두 번째 인용시에서는 눈보라를 만나, '특별시 명동'을 '정신없이' '두들겨 깊은 골짜기로' 변화시킨다. 대낮에 꾸는 백일몽과 같은 이러한 시적 화자의 몽상은, 그가 꿈꾸는 '안 보이는' 다른 곳, 즉 '골짜기'로 응집되는 시적 공간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이렇듯 장석남의 서정은 그가 여기 아닌 다른 곳을 꿈꾸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며, 그의 '다른 곳'은 '안 보이는 곳'과 '먼 곳'이라는 불가시성과 거리감을 지님으로써 현실에서는 닿을 수 없는 낭만적 유토피아의 성격을 지닌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도달 불가능한 이러한 유토피아를 시인이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다른 곳'을 환시키는 시의 언어이다. 시인이 몽상으로써 얻어 낸 시적 이미지들, '먼 곳'으로서의 '별'과 '안 보이는 곳'으로서의 '골짜기', 바로 이 두 공간이 장석남의 시에서 살아 있는 시적 유토피아라 할 것이다.



    삶의 디스토피아 : 여기에서 다른 곳을 견디기

    그러나 장석남의 시에 이러한 유토피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시로써 몽상에 잠길 때 그는 '먼 별'에도 이르고 '휘황한 골짜기'를 그려 볼 수 있지만, 시인은 그가 발 딛고 있는 곳이 이 '진흙별'이라는 인식으로 언제나 돌아올 수밖에 없다. 꿈꾸는 다른 곳이 다다를 수 없는 곳이라는 이러한 인식은, 시인으로 하여금 삶의 쓸쓸함과 아픔들, 상처와 그리움 등을 시적 정서로 끌어들이게 한다. 장석남이 시에서 꿈꾸는 곳이 낭만적 유토피아라면, 그가 삶에서 마주 대하고 있는 모든 事象들은 현실의 삶을 일종의 디스토피아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새들이 날아가면 공중엔 길이 났어
    새보다 내겐 공중의 길이 더 선명했어
    어디에 닿을지
    별은 받침대도 없이 뜨곤 했지
    내가 저 별을 보기까지
    수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나는
    떡갈나무의 번역으로도 읽고
    강아지풀의 번역으로도 읽었지
    물방울이 맺힌 걸 보면
    물방울 속에서 많은 얼굴들이 보였어
    빛들은 물방울을 안고 흩어지곤 했지 그러면
    몸이 아프고 아픔은 침묵이 그립고
    내 오래 된 정원은 침묵에 싸여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갔지
    그곳이 어디인지는 삶이 상처라고
    길을 나서는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과
    저 녹슨 풍향계만이 알 뿐이지
    - 「오래 된 정원」에서

    '공중의 길을 선명'하게 보는 것, '별을 보기까지'의 시간들을 '떡갈나무'와 '강아지풀'의 번역으로 읽어내는 시인의 몽상은 분명 이 지상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물방울 속에서' 사람의 얼굴들이 모이면, 그가 꿈꾸는 휘황한 별빛의 세계는 그 '물방울을 안고 흩어지'게 된다. 그가 몽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진흙별로 내려오는 순간, 그의 '몸이 아프'다. 그의 '오래 된 정원', 고독과 몽상의 시간은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다. 그 다른 세상은 이미 '삶이 상처라'는 것, '모든 아픔과 아픔의 추억'을 알고 있는 시인에게는 다다를 수 없는, '어디인지' 그가 알 수 없는 곳에 속하게 된다. 혹은 그러한 몽상이 시의 언어 속에서만 살아 있는, 다다를 수 없는 먼 곳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시적 화자는 삶이 상처라는 것, 아픔과 아픔의 추억들을 알게 되는 것일까.
    장석남에게 시적 유토피아와 삶의 디스토피아 사이의 경계는 그가 시적 몽상에 잠기는 찰나에만 흐려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봄밤엔 바람나"듯 "바람난 國境"과 같은 것, "그러나 봄밤 밖으로" 혹은 그 국경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앓고"(「봄 밤 - 둘」)만 있는 시인의 삶. 이러한 경계 안에서 시인의 꿈이 먼 곳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그는 삶의 신산함과 쓸쓸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인가 막 쳐들어와서
    꽉차서
    사는 것이 쓸쓸함의 만조를 이룰 때
    무엇인가 빠져나갈 것 많을 듯
    가파름만으로도 한생애가 된다는 것에 대해
    돌멩이처럼 생각에 잠긴다.
    - 「송학동 1」에서

    '돌멩이처럼'. 하늘을 나는 새의 길이나 휘황한 별의 빛이 아닌, 지상에 가장 낮게 몸을 대고 있는 돌멩이처럼 시인은 '사는 것의 쓸쓸함'과 가파른 '한 생애'에 대해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의도 분식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찾아온 강변, 그 소소한 현실의 삶 속에서 그는 강이 "끼루루룩 우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너덧 개의 발걸음으로" 이 삶 속의 강변을 거니는 것이지만, "보고 싶은 자가 내가 닿을 수 없는 멀리에 있는" 그의 사사로운, 또는 자신만의 몽상 속에서 그는 강이 울며 "갑작스레" 그의 "발치에서 철썩"(「저녁의 우울」)인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강변의 너댓 걸음 산책으로 그가 "이 저녁을 어찌하겠다는" 것일까. 어찌할 수는 있는 것일까.
    이 어찌할 수 없는 쓸쓸함과 아픔을 고스란히 지닌 채, 시인은 다다를 수 없는 유토피아에 대한 몽상을 현실의 삶이라는 디스토피아, 여기에서 견디기 시작한다.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받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생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 「옛 노트에서」에서

    시적 화자가 몽상의 품안에 '많은 빛들'을 지니고 있을 때, 그는 '풀밭의 수런댐' 만으로도 '이 세계 바깥까지' 뻗어나가는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세계 바깥, 즉 여기 아닌 다른 곳에까지 이르는 그러한 빛의 힘. 이것은 시인이 지닌 몽상과 시적 유토피아의 힘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빛들을 '좇아서', 혹은 그 몽상의 힘을 지니려하며 살아오는 동안에, 그는 '긴 시간을 견디어' 내었다. 그렇다면 그가 견디며 다다른 '여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혹은 '여기'에서 그는 견딤의 대가로 무엇을 얻는가. 그것은 이제 그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게 되었다는 것. 몽상의 '옆에서 숨죽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딤, 혹은 지속성을 '앵두가 익을 무렵'이라 하여 섣불리 성장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장석남은 의연하게 삶의 디스토피아를 견디며 성숙해 온 것이 아니라, 겨우 '간신히' 그 옆에서 '숨죽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견딤은 아직도 불안전한 감정과 몽상의 파고에 흔들리고 있으며, 언제든지 다시 시적 유토피아나 삶의 디스토피아, 그 양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 불균형으로 비춰진다.



    살펴 본 바와 같이, 장석남의 시는 시적 유토피아와 삶의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걸쳐 있다. 그는 멀고도 안 보이는 나라를 편애하고 꿈꾼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꿈꿈이 삶의 쓸쓸함과 아픔, 상처와 가파름을 깊이 인식하게 만든다. 시를 사이에 두고 몽상과 현실이 끊임없이 길항하고 삼투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길항과 삼투는 그러나 쉽사리 화해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몽상의 휘황함과 삶의 쓸쓸함을 어설픈 성숙과 화해의 포즈로 합일시키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장석남의 시가 지닌 미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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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에 남겨진 기억의 시화 - 채호기론
    ontheroad | 2005년 08월 24일
    몸에 남겨진 기억의 詩化 --- 채호기 論 채호기는 198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1992년 첫 시집 『지독한 사랑』을, 1994년 두 번째 시집 『슬픈 게이』, 1997년 세 번째 시집 『밤의 공중전화』를 상재했다. 10년여 동안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채호기가 꾸준히 천착해 온 시적 주제는 자아와 타자와 몸의 문제이다. 근대 철학에 있어서 자아는 모든 인식론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근대의 인식론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보여지듯이 자아(나는 생각한다)를 인식 존재의 근원으로 파악하여(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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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남겨진 기억의 詩化
    --- 채호기 論


    채호기는 198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1992년 첫 시집 『지독한 사랑』을, 1994년 두 번째 시집 『슬픈 게이』, 1997년 세 번째 시집 『밤의 공중전화』를 상재했다. 10년여 동안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채호기가 꾸준히 천착해 온 시적 주제는 자아와 타자와 몸의 문제이다.


    근대 철학에 있어서 자아는 모든 인식론의 처음이자 끝이었다. 근대의 인식론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보여지듯이 자아(나는 생각한다)를 인식 존재의 근원으로 파악하여(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모든 대상과 타자를 거쳐 다시 자아로 회귀하는 기나 긴 여정이었다. 그러므로 그 여정은 자연과 타자를 언제나 자아에 종속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간주하였으며, 자아의 동일성 회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즉자가 되기 위한 자아의 끊임없는 변증법적 회귀는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를 주노의 관계 이상으로 파악할 수 없었으며, 지속되는 "목숨을 건 도약"을 자아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 탈근대의 시기에 와서 이러한 자아의 우위는 독아론이라 비판받게 되었다. 한세기 이상 지속되던 자아의 권위는 공격받게 되었고 타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관계를 향한 모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한 모색의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몸에 대한 탐구이다.
    몸은, 채호기가 말하듯 "즉각적이다. 몸은 반응할 뿐 반성하지 않는다. …… 항상 몸은 생각보다 빨리 간다."(『슬픈 게이』, 후기) 인식론의 모든 체계가 공허해져 버린 자리에서 이렇듯 몸은 보다 근원적인 '감각'을 제시한다. 이성 이전에 존재하는 것, 우리의 영혼과 오성이 세계와 마주 대하는 유일한 통로로서 몸은 논의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또한 몸은 자신과 타자를 구분 짓는 가장 근원적인 경계이다. 살과 피로 이루어진 내 육체 안에 내 자아가 담겨져 있고, 또 다른 살과 피로 이루어진 또 다른 육체 안에 너의 자아가 타자로서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근대 인식론의 기초를 뒤바꿔 놓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존재하는 내 육체 속에 생각하는 내 자아가 있다"이며, 그것은 너라는 타자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다시 채호기의 말을 빌리면, "내게 용접하거나 접붙이지만 결코 나일 수 없는 것, 그것은 모두 '너의 몸'"(『밤의 공중전화』, 후기)인 것이다. 타자는 더 이상 자아에 종속시켜야 할 배타적 대상이 아니다. 타자는 나와 같은 육체와 영혼을 지닌 동일존재인 것이다. 채호기의 시들은 이러한 자아와 타자, 혹은 나의 몸과 너의 몸의 새로운 관계짓기에 대한 탐색에 다름 아니다.



    거의 모든 시에서 채호기는 "너의 몸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틈, 구멍」1:101) 그가 어떠한 이유로 타자의 몸에 대해, 그리고 그 몸과의 완전한 합일에 대해 갈망하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러한 열망은 그의 세 권의 시집 도처에서 드러난다.


    나 이제 그대의 몸 속으로
    내 몸을 밀어넣어
    그대와 한몸이 되느니
    - 「몸」부분 (1:11)

    내 닫혀진 몸을 열고 피는 꽃
    기억하니? 너는 내 심장이었다는 것을
    네 혈관을 뛰어다니던 피였다는 것을
    - 「사랑하는 네 속에」부분 (1:87)

    너에게 다가가긴 쉽지만, 네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구나. 꿈쩍도 않는 너. 차라리 난 네가 되고 싶다. 될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좋아.
    - 「너의 몸을 허공에 새기며」부분 (1:96)

    너를 마시고 싶다
    너의 살과 피와 뼈와
    너의 영혼, 너의 비린내,
    너의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 남은 삶을
    후르르 마시고 싶다.
    - 「입맞춤」부분 (2:72)

    내가 내 몸에서 탈출하기 위해 너의 입으로 나갔지만, 나는 네 몸에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원한다.
    - 「너의 입」부분 (3:64)


    채호기가 이렇듯 너의 몸 속으로, 타인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신생을 꿈꾸기"(1:11)때문이다. 그는 타인의 몸 속으로 들어가 "자궁 속에 웅크려 그대의 살과 피로"(1:11) 새로운 삶을 꿈꾼다. "재가 되어 아득한 뿌리에 다가갈 때까지/붉은 꽃, 사랑하는 네 속에/ 타오르는 불빛으로 살아"(1:87)가려는 희망이다. 그 행위는 타자의 몸 속으로, 또는 세상의 몸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내 정신과 몸이 닿을 수 있으리라"(『지독한 사랑』, 후기)는 희망이다. 모든 인식론적인 경계나 존재론적인 경계를 넘어서서 열리는 합일, 너와 나의 영혼과 육체가 하나로 녹아드는, 문자 그대로의 一心同體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타자의 몸이란 "희망의 미로"(3:35)이다. 그 희망은 그를 "폭발하는 뜨거움으로 점화시키던 불인두"(3:34)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전일적인 합일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물리적으로 그러한 희망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길을 채호기는 사랑, 그것도 "지독한 사랑"에서 찾는다.


    기차의 육중한 몸체가 순식간에 그대 몸을 덮쳐 누르듯 레일처럼 길게 드러눕는 내 몸

    바퀴와 레일이 부딪쳐 피워내는 불꽃같이
    내 몸과 그대의 몸이
    부딪치며 일으키는 짧은 불꽃

    그대 몸의 캄캄한 동굴에 꽂히는 기차처럼
    시퍼런 칼끝이 죽음을 관통하는
    이 지독한 사랑

    내 자궁 속에 그대 주검을 묻듯
    그대 자궁 속에 내 주검을 묻네
    - 「지독한 사랑」전문 (1:61)


    채호기에게 있어 사랑이란 "몸 밖의 그대, 그 환한 몸 밖"(1:21)을 향해 "나의 몸 안에 둥지를 틀고/두근거리며 움직이는 꽃밭"(1:21)이며 "그 속에 장전되어 있는 터질 것 같은 폭약"(1:21)이다. 그 폭약이 죽음마저 관통할 만한 지독한 힘으로 작열할 때, 그 때에 타오르는 "짧은 불꽃"의 시간만큼만은 나의 몸이 너의 몸 속으로, 너의 몸이 나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들어오는 순간이라고 시인은 믿는다. 그 사랑은 서로에게 상처를 내지만("너는 나의 상처였어"(1:82)), 그 상처는 오히려 "소스라치는 밝은 아픔"(1:82)이다. "혈관 속에/……사랑하는/네가 있어/나는 춤추"(1:87)고, "혈관 속에/……춤추는/내가 있어/너는 밝다"(1:87) 그러한 사랑과 상처와 춤과 밝은 아픔의 순간에 "마침내 나는 없고 어둠만 있는 마침내 그 둘은 없고 새로운 무엇인가가 환하게 꿈틀거리는"(1:78) 新生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무서운 것은 사랑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데 있지 않고 애초에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네가 내 손을 잡아 줄 수 없듯이, 내가 네 손을 잡아줄 수 없음"(1:83)을 시인은 안다. 지독한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그 사랑은 "짧은 불꽃의 시간" 만큼만 지속되는 것이다. 채호기의 첫 시집 『지독한 사랑』이 타자의 몸과 합일을 이루려는 시인의 열망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지독한 사랑의 "짧은 불꽃"같은 순간, 그리고 그 사랑 이후의 공허함에 대한 예감으로 충만한 것이라면, 두 번째 시집 『슬픈 게이』는 지독한 사랑 이후의 죽음의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너의 몸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날.
    없는 너를 보는
    이 지상에 남은 눈이여!

    ……

    너의 몸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날.
    내 눈이 바라보는 이 지상의 모든 것
    네 몸이니, 아!

    이미. 네 몸 안에 깊이 들어와 이었단 말인가.
    죽어버린 고목에서 싱싱해지는 버섯처럼
    썩어가는 살점에서 화려해지는 곰팡이처럼.

    ……

    너의 죽음을 내 남은 삶처럼
    너의 남은 삶을 내 죽음처럼.
    - 「너처럼 캄캄한 세상을」부분 (2:12)


    사랑의 짧은 순간 이후에 찾아오는 것은 이토록 도저한 죽음의 심상들뿐이다. 지독한 사랑은 죽음을 담보로 한 것이었으며, 그 죽음은 채호기가 꿈꾸던 신생의 반대급부인 셈이다. "내 몸이 완전히 실리기도 전에/네 몸의 문은 닫혀버리"(2:83)고, 그 닫힌 문에 끼여 "나는 견딜 수 없이 아프고/……네 삶의 바깥에서 아직도 시리게 펄럭"(2:83)인다. 그러나 사랑 이후의 그 죽음의 황량함 속에서도, "짧은 불꽃"의 순간에 그의 몸을 관통한 신생과 밝은 아픔은 "점화된 불인두"(3:34)로 그의 몸에 각인되어 있다. 너의 죽음은 바로 나의 몸의 죽음이며 "눈 멀게 함"이다. "눈 먼 내 몸이 할 수 있는 건/그 누구도 볼 수 없는/죽음 건너 너의 몸"(2:16)을 보는 일이다. 아니, 이미 눈 멀었으므로 "두 눈 대신/ 길고 긴 혓바닥이, 무슨 상처인 양/가슴의 억만 솜털을 傷心의 억만 주름을/핥고 핥으며 더듬어 가는"(2:18) 일이다. '가슴의 억만 솜털', 혹은 '상심의 억만 주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의 몸이 기억하는 너의 몸의 기억이다. 그의 몸에 각인된 타자의 몸의 기억은 영혼의 화인보다 깊다. 그렇게 몸에 각인된 기억들은 그의 남은 삶을 부랑의 길로 이끈다. 그 부랑의 삶은 희망이 없는 삶이며, 불구의 삶이다.


    - 흘깃 사랑의 정체를 보아버린 그 눈과 온몸의 떨림을 받아내는 머리칼의 흐느낌,
    ……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다니 삶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
    그 순간
    뜨거운 火印의 말 찍혀졌네.
    내 살 속에
    오늘도 내가 생기기도 전인 그 과거로부터 없어진 건지 기억도 못 할 먼 미래에까지.

    나의 남은 삶 위에 그대를 펼치리.
    그대의 남은 삶을 연장하도록
    그대가 되어
    내 나머지 삶은 없는 것으로 하리
    실패할 때마다 내 몸의 한 부분을 잘라버리며
    불구로 이 세상 모든 삶들을 浮浪하리.
    - 「浮浪」부분 (2:21)


    몸이 기억하는 기억은, 의식에 남아 있는 기억과는 달리 시간성이 없다. 의식은 계기적 시간에 의해 기억을 간직하지만, 몸은 떨림과 아픔, 열락과 고통이라는 감각으로서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그대여 제발 잠들라!/사랑에 지친 머리를 들쑤시지 말고"(2:51)라고 쓰지만, 잘라도 곧 다시 자라나고 마는 머리카락처럼("기억은 머리카락에서 온다고/무덤풀처럼 자라나는 머리칼 거듭 자르며"(1:55)) 기억은 생생히 몸 속에 남아 있다. 이렇게 남겨진 기억은 시인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변형시키도록 하는 힘을 갖는다. 지울 수 없도록 각인된 기억에 의지하여 눈 먼 채 너의 몸에 기어가듯 다가가는 일! 이러한 변형이 시집 『슬픈 게이』에서 채호기가 보여주는 자세이다.


    손바닥에 너의 두 눈
    내 눈을 빼고 그걸 끼운다.
    코와 입 귀를 지우고
    너의 코와 입 귀를 덮는다.
    머리카락을 뽑고
    너의 머리카락을
    씌운다.

    내 얼굴은 사라지고
    거울 속에 비친 네 얼굴
    웃는다 너처럼.
    너무나 생생한 예전의 너의 미소
    그걸 흉내낸다.
    내 생각이 너의 생각이도록
    반복하고 반복한다.

    너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냐.
    네가 되어 너의 삶을 살아가는 거지.

    ……
    나는 없고
    추억의 네가 아닌
    바로 지금! 네가
    삶의 싱싱함으로
    살아온다.
    - 「슬픈 게이」부분 (2:86∼91)


    남성의 육체에 여성의 영혼을 가진 존재, 그로 인해 자신의 몸을 여성의 몸으로 변형시켜가는 게이는 바로 몸에 각인된 기억에 의해 나의 몸을 너의 몸으로 변형시켜 나가는 시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게이가 "남자에서 여자로" 다시 "여자에서 남자로" 몸을 바꾸듯이 채호기 또한 "너에서 나로", "나에서 너로"(2:97) 몸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몸의 변형은 채호기가 이미 알고 있듯이 불구의 몸이다. 그것은 "실패할 때마다 내 몸의 한 부분을 잘라버"(2:21)려야 하는 일이며, 또한 언제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를 구획 짓는 경계로서 존재하는 물리적인 몸은, 결코 완전히 타자의 몸으로 변형되거나 몰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꽃같은 짧은 순간이나마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랑조차 불가능한 상태에서, 채호기의 그러한 몸의 변형은 언제나 끝없이 유예되는 것이며("끝없이 유예되는 그 자리/격렬하고 불투명한 그 삶."(2:85)), 충분히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그렇다면 채호기는 이 끝없는 유예, 일종의 악무한을 부여잡고 그의 남은 삶을 浮浪해야만 하는가.

    세 번째 시집 『밤의 공중전화』에서 채호기는 이러한 물음에 하나의 답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채호기는 그의 몸에 각인된 기억을 시로써 풀어내려 하고 있다. 몸이 지닌 "감각을 언어로 생산하는 불가능한 작업"(『밤의 공중전화』, 후기)를 그는 세 번째 시집에서 행하고 있다. 그러한 작업은 「너」, 「너의 발」, 「너의 젖가슴」, 「너의 등」, 「너의 품」, 「너의 손」, 「너의 입」, 「너의 입술」, 「너의 눈」, 「너의 허리」등의 일련의 시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약간 오래 구운 듯한 오븐에서 방금 나온 먹기 좋도록 따뜻한 빵껍질, 비 오고 개인 오후 햇빛에 빗방울 머금은 장미꽃잎, 차갑고 단단한 청동의 냉정한 슬픔, 버캐를 입에 물고 막 잠에서 깨어나는 대지의 오래된 피로를 엄습하는 새벽 냉기를 뒤덮는 하얀 이슬.
    그것은, 탄력 있는 고무 지우개, 부드러운이라는 말의 실체, 피를 데우는 흥분의 점화구, 불을 임신하고 있는 성냥골.
    그것은, 유기물에서 유기 광물로 가는 긴 대롱의 한쪽 끝 - 자기 생의 근본을 바꾸려는 모든 혁명가의 활주로.
    - 「입술」부분 (3:66)


    위의 인용시 어디에서도 두 번째 시집에서 드러났던 몸의 변형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채호기는 언어로서, 시로서 너-타자의 몸을 빼곡하게 재구성한다. "오! 내가 얼마나 네 몸, 그 자체이기를 바라고 바라는지 네가 안다면."(3:65)와 같은 열망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지속되지만, 그 열망은 그전만큼 그로테스크하거나 절망적이지 않다. 시인이 "엎질러버린 물/언 얼음 속에 네가 갇혀 있다."(3:11)고 썼던 몸에 각인된 기억들이 "얼음 풀리는 시내처럼" "슬픔"이 되어 "거리를 흐르고", 다시 시인은 "시냇가에 핀 맑은 꽃처럼/너의 눈이 나를 바라보"(3:11)는 것을 느낀다. 그가 세 번째 시집에 이르러서야 발견한 너와 나, 자아와 타자으 몸의 새로운 관계, 그것은 시인의 언어, 즉 말이다.


    (눈으로 비쳐지는 사랑만을 사랑이라 하고 손에서 물컹물컹 쏟아지는 사랑을 위험하다고 한다면 사랑은 모두 위험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죠.)

    ……

    손의 이끌림에 의해 저는 당신의 살에 용접됩니다.
    사랑으로 꽉꽉 쟁여진 탄력이 우리들을 접착시키죠.
    도데체 무언지 모를 새로운 관계의 몸으로. 말(강조 필자)입죠.
    - 「손의 고백」부분 (3:52∼53)


    여기서 우리는 "시는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의 어떤 부분이 부서지거나 새롭게 덧붙여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슬픈 게이』, 후기)는 채호기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몸의 감각적인 속성, 그 비이성적인 속성을 시의 속성으로 받아들이면서 채호기는 몸 이외에는 바꿀 길이 없을 것 같던 자아와 타자의 존재론적 경계를 시의 세계로 옮겨 놓는다. 이것은 "타자의 몸의 주관적 詩化"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한번 자신의 몸 안으로 받아들인 타자의 몸을 주관적인 언어를 통해 빼곡하게 재구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몸에 대한 시들이 대부분 자신의 몸을 생경한 대상으로 여기며 그에 대한 객관적 시화를 구축하고 그래서 몸의 의미를 단순히 이성에의 반대급부로만 파악하고 있는 반면에, 상술한 시집 세 권에 걸친 채호기의 시들은 온전히 몸의 측면에서만 자아와 타자의 새로운 관계를 열망하고 그 불가능한 열망의 시지프스적인 시도를 언어로 담아냄으로써 오히려 몸이 지니는 존재론적 경계를 허물거나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인용시 괄호 안의 앞의 숫자는 시집의 권수를, 뒤의 숫자는 시집의 페이지수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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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birdies312 | 2005년 08월 24일
    최인훈 희곡집 이 희곡집 작품들의 공통점은 설화에 의존하고 있으며, 매우 단순하면서도 고도의 상징성을 띄며, 그것이 거듭 예리하게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비판할 줄 아는 작가의 통찰력이 참 놀랍다. 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설화를 소재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정치적 암투를 녹여낸 비극이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고 했던가. 는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느니 차라리 제 아비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던 애기 장수 설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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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이 희곡집 작품들의 공통점은 설화에 의존하고 있으며, 매우 단순하면서도 고도의 상징성을 띄며, 그것이 거듭 예리하게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실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비판할 줄 아는 작가의 통찰력이 참 놀랍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설화를 소재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정치적 암투를 녹여낸 비극이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도 무섭다고 했던가.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는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느니 차라리 제 아비에게 죽임을 당해야 했던 애기 장수 설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뜻있는 메시지가 됨을 일깨워준다. 때로는 이념에 의해, 때로는 소수의 사리사욕에 의해 희생당해온 역사 속의 민중이 그 얼마던가. 이름 없이 죽어간 젊은 영혼들, 현대의 애기 장수들은 또 얼마던가.
    이 극의 결말에서, 애기 장수를 흥겨운 춤으로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구더기 무서워 된장 못 담근다는 말처럼 학정 속에서 또 하나의 핍박을 몰고 올 애기 장수라는 희망 자체를 저어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애기 장수를 요구하는 고통과 압박의 시대가 빨리 지나가기를, 다시는 공포와 궁핍의 시대가 오지 말기를,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하는 한 층 깊고 간절한 바램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사회적 인식 앞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의 애정은 또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말해준다. 낮고 낮은 사람들이 끈질기게 생을 이어가는 모습이 권정생의 소설 세계를 떠올리기도 한다.

    <둥둥 樂浪둥>은 '사랑'을 주제로 하는 비극이다. 이 작품 역시 호동왕자와 낙랑 공주 설화에서 이야기 틀을 빌리고 있지만 작품 자체는 원래의 것과 많이 다르다. 사랑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달아 달아밝은 달아>는 심청의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했다. 효녀 심청은 그대로 있으나 이야기의 중심은 심청의 효행이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무지렁이들의 한많은 삶이며 심청의 일생이 그러한 삶을 대변한다.

    <한스와 그레텔>은 같은 이름의 동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내용은 다른 이야기이다. 나찌당원이었던 한스가 정치범으로서의 30년 수감 생활을 끝내게 되면서 심경이 정리되는 과정을 그렸다. 그레텔은 한스의 아내이며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랑으로 한스를 기다린다.
    그런데 작가는 왜 동화 속 이름을 빌어 두 주인공의 이름을 지었을까?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동화 속 남매와 이들 부부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스는 갇혀 있고 그레텔은 바깥에서 한스를 구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그러나 이 작품의 무게 중심은 정치범으로서 한스가 갖는 갈등과 고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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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밀밭의 파수꾼
    dbstjs787 | 2005년 08월 24일
    좋은책이란게 무얼까? 전문가들이 추천해주는 책?? 오랫동안 읽혀지는 고전?? 많이 읽혀지는 베스트셀러?? 글쎄.. 난 그냥 내가 읽고서 내맘에 드는책이 좋은책인것 같다.. -> 너무 당연한 말인가? ^^* 그러니 사람마다 좋은책에대한 기준도 다를것이다.. 가끔씩 누군가가 좋은책 추천 좀 해달라고할때 난 그래서 고민된다.. 내 기준대로 말하자니 그 사람에겐 어떨지 걱정이고, 그렇다고 내가 책을 아주 많이 읽어서 그 사람의 나이나 직업 뭐 그런것들을 고려해서 그에 맞게 말해줄수도 없고.. 참으로 답답해지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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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책이란게 무얼까?
    전문가들이 추천해주는 책?? 오랫동안 읽혀지는 고전?? 많이 읽혀지는 베스트셀러??
    글쎄.. 난 그냥 내가 읽고서 내맘에 드는책이 좋은책인것 같다..
    -> 너무 당연한 말인가? ^^*
    그러니 사람마다 좋은책에대한 기준도 다를것이다..
    가끔씩 누군가가 좋은책 추천 좀 해달라고할때 난 그래서 고민된다..
    내 기준대로 말하자니 그 사람에겐 어떨지 걱정이고,
    그렇다고 내가 책을 아주 많이 읽어서 그 사람의 나이나 직업 뭐 그런것들을 고려해서 그에 맞게 말해줄수도 없고.. 참으로 답답해지는 경우이다..
    하지만 난 <호밀밭의 파수꾼>은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봐야한단 생각을 해본다..
    뭐.. 이렇게 말하는 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내 기준에서지만 말이다 ^^
    내 주위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없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전엔 그저 신문에 난 책광고로 책을 사거나 친구들이 재밌다고 하는책(대부분이 베스트셀러)을 읽곤 했는데..
    요즘엔 리뷰도 많고, 책관련 프로도 많아서 참으로 좋다!!
    혼자만의 생각으로 책을 구입해서 낭패보는 일이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서두가 넘 길어졌는데..
    암튼 올초 <호밀밭..>을 어찌어찌하여 구입해서 읽게되었다..
    몇군데 인터넷서점의 리뷰를 죄다 읽어봐도 극과극의 의견들!!!
    도대체 어떤책이길래.. 뭐가 그리 유명한 책이길래...
    호기심이 발동한 난 책이 도착하자말자 붙잡고 읽었다..
    뭐야?? 이게 뭐야?? 계속 짜증내며 책을 다 읽고나자.. 머리가 공허해졌다..
    처음엔 어려웠고, 공감이 안갔고, 그저 한때 철없는 아이의 일탈로만 보이던 책이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것이다..
    뭐 이런책이 다있나싶을 정도로 그런 느낌은 처음이였다..
    그리고 친구에게 막 읽어보라고 성화를 부렸고, 다 읽고난 친구의 말은..
    "우리가 고등학교때 이 책 못읽어본게 아쉽다!!"란 한마디..
    그래.. 그거였다.. 내가 항상 아쉽게 생각하던 거..
    주위에 책을 추천해줄 사람이 없다는거!!
    고등학교때 읽었음 어땠을까 정말정말 궁금하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수도 없고..)
    아마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만 보였겠지..
    그리고 나가버리는 용기만 부러워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난 모든걸 버리기엔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그 싫어하던 어른들을 모습을 나도모르게 닮아가고있다..
    긍정도 부정도 할수없는 어정쩡한 상황..
    하지만 콜필드로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찾았다..
    그저 시간에 떠밀려서 사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찾아보리란 생각..
    정말 해마다 이 책 한번씩 읽어봐야겠다..
    매해마다 리뷰를 쓰면서 변해가는 나 자신을 비교해보는것도 꽤 괜찮을꺼같으니깐 말이다 ㅎㅎ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다..
    시야를 넓혀준 책을 더 늦기전에 만난건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콜필드는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을까??
    끝까지 날 괴롭혔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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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랫말 아이들
    namugun | 2005년 08월 24일
    사실 이 `모랫말 아이들`은 느낌표에서 선정되어서 읽어다고 하기 보다 황석영이라는 대작가의 이름이 딱하고 표지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보게 되었다. 사실 느낌표에서 선정하는 도서에 크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봉숭이 언니` 같은 경우에는 물론 공지영 이라는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큰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 관해서는 그렇게 호의 적이지 않다.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와 같은 경우에는 뭔지 모를 공지영 특유의 힘이 묻어났지만 이 `봉숭이 언니` 같은 경우에는 별로 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위기철의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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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모랫말 아이들`은 느낌표에서 선정되어서 읽어다고 하기 보다 황석영이라는 대작가의 이름이 딱하고 표지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보게 되었다. 사실 느낌표에서 선정하는 도서에 크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
    `봉숭이 언니` 같은 경우에는 물론 공지영 이라는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큰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 관해서는 그렇게 호의 적이지 않다.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와 같은 경우에는 뭔지 모를 공지영 특유의 힘이 묻어났지만 이 `봉숭이 언니` 같은 경우에는 별로 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위기철의 소설 `아홉살 인생` 같은 경우에는 약간 어리숙한 작가가 썻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문장들과 글이었다.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아예 인문서로 만들면 그래도 기본을 갖춘 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책들에 비판한다고 해서 느낌표가 선정한 책을 완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정말 잘 선정했다는 생각이 들고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도 마찬가지다.
    이 것으로 느낌표 선정도서에 대해서 설명을 마치고 모랫말 아이들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이 모랫말 아이들은 황석영 특유의 글의 단단함과 글의 내용이 내용인라서 추억을 회상하는 그 감동과 어우러져서 독자에게 신선하고 오랜만에 제대로 된 책 하나 읽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황석영이 쓴 다른 책들에 비해서는 덜 하기는 한 것 같다.
    황석영의 팬으로써 몇개 책을 말해보자면,
    `오래된 정원`은 큰 역사의 줄기와 사랑 이야기가 있는 것이 특히 재미가 있다. 감옥안에서 있던 해프닝들도 무척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 것은 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재미에만 치우친 책도 아니다.
    `손님`은 사회주의와 종교의 만남을 그린 것으로 내 기억 속에는 있다. 사람들의 예기를 들어보면 왜 분단 상황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슬픔이 존재하는 지도 알 것 같았다.
    모랫말 아이들은 크게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 제목에서 예기한 것이 다라고 나는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 책으로써 추억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고 나와 같은 청소년들은 어른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럼, 한 번 이 책을 들고 멋진 추억의 세계로 빠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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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rdies312 | 2005년 08월 24일
    이문열의 은 같은 대하소설인 조정래, 박경리씨의 작품들에 비해 주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현재와 가까운 시간적 배경을 갖는 탓일까? 하지만 조정래의 은 인물들의 보편적 전형성이 객관적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왜 은 같은 시간적 배경을 갖고도 보다 개인적이라는 느낌일까? 자전적 요소 때문에? 그의 이나 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소설가지만 각각 형상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분야는 다른가 보다. 책장은 넘어가지만 아무래도 뭔가 맘에 안든다. 이 작품이 과연 한 시대의 총체를 형상화한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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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의 <변경>은 같은 대하소설인 조정래, 박경리씨의 작품들에 비해 주관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현재와 가까운 시간적 배경을 갖는 탓일까? 하지만 조정래의 <한강>은 인물들의 보편적 전형성이 객관적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왜 <변경>은 같은 시간적 배경을 갖고도 보다 개인적이라는 느낌일까? 자전적 요소 때문에? 그의 <사람의 아들>이나 <황제를 위하여>는 그렇지 않았다. 같은 소설가지만 각각 형상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분야는 다른가 보다.

    책장은 넘어가지만 아무래도 뭔가 맘에 안든다. 이 작품이 과연 한 시대의 총체를 형상화한 대하소설 혹은 역사소설 맞나 미심쩍기도 하다. 솔직히 주인공 일가의 영락의식, 자기연민, 특히 절절이 되풀이되는 인철의 관념적인 자기 변명과 미화는 좀 역겹기까지 하다. 그나마 영희가 가장 살아있는 인물이라고 느껴지는데,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제 이야기를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선 치기어린 감정이나 말, 행동이였지만 ......" 하면서 말이다.
    무엇보다도 미흡한 점은 시대를 반영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창조된 각각의 인물들에게서 생동감과 자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물들이 서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게다가 소설 진행의 대부분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일가가 모두 시대를 외면하게끔 설정된 까닭인지 현실반영이 소극적으로 일관된다고 탓한다면 지나친 꼬투리잡기일까. 하긴, 그것도 하나의 관점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마지막에 건진 소중한 의미 하나.
    끝권에서 옥경의 결혼 선언에 인철이 공돌이 공순이 동거 아니냐고 하자 옥경이 이런 말을 한다.
    " ...... 세상에는 언제까지고 여유만만하게 삶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분인 사람들도 있지만 일찍 삶이 결정되어버리는 사람도 많아. 우리는 어떤 휘황한 삶을 꿈꾸려 그걸 준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삶 그 자체를 살고 있는 사람이야. ...... "
    이미 삶 그 자체를 살고 있다는 옥경의 말이 주는 울림이 날 반성하게 한다. 훌쩍 서른을 넘은 지금, 나는 아직도 삶을 준비하고 있는 중인가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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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날을 부탁해
    aimiso | 2005년 08월 24일
    황정민 나는 황정민 아나운서를 무척 좋아한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표현보다는 부럽다는 말 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화면상으로 보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싱그럽다. 독특하고 톡톡튀는 말투와 어딘 듯 모르게 느껴지는 특별한 분위기... 그래서 그동안 나는 그녀에게 꽤나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황정민 아나운서 가 펴낸 는 내가 그녀의 다양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아는데 많은 도 움을 주었다. 그녀의 사랑에서부터 일, 가족 이야기까지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 책은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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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민


    나는 황정민 아나운서를 무척 좋아한다. 어쩌면 좋아한다는 표현보다는 부럽다는 말
    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화면상으로 보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싱그럽다.
    독특하고 톡톡튀는 말투와 어딘 듯 모르게 느껴지는 특별한 분위기... 그래서 그동안
    나는 그녀에게 꽤나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황정민 아나운서
    가 펴낸 <젊은날을 부탁해>는 내가 그녀의 다양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아는데 많은 도
    움을 주었다.
    그녀의 사랑에서부터 일, 가족 이야기까지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 책은
    무엇보다 그녀의 솔직함이 잘 드러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평소에
    아나운서로서 만났던 황정민이 아니라, 인간 황정민으로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이런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기억과 더불어 풀어놓은 영화 이야기가 단단히 한 몫을 한
    다. 때로는 영화의 음악이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든가, 영화의 한 대사가 우리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하
    게 된다.
    또한 그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생각해 보도록
    하는 여유를 준다.
    '어떤 때 욕망을 느끼시나요?' '혹시 사랑하세요?' '기억을 믿으시나요?' 와 같이
    끝없이 던져지는 질문들... 이 질문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그녀의 체험을 비교해 보
    는 일도 적지 않은 재미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책 부분 부분에 실린 그녀의 사진들
    은 삶에 대한 그녀만의 생각, 태도, 표정들을 알기에 충분했다.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토가 잘려진 필름을 이으며 아저씨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녀의 필름들이 내가 오래 전부터 그녀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착각이
    들게 하였다.
    뒷부분에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적어놓은 정재승씨는 그녀를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우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가
    지고 있는 그녀. 바로 그런 그녀의 모습이 내가 이 책에서 느낀 그녀의 매력이었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던가?'
    분명히 살아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는 그녀... 마지막으로 그녀가 독자에게 또 자신
    에게 던지는 따뜻한 메시지를 남기며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 영혼이 자유롭기 위한 몇 가지 제언 ****
    - 남과 다르다고 자신을 배신하지 말 것.
    -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멀리하지 말 것.
    - 마음은 따뜻하게 생활은 씩씩하게 할 것.
    - 진심이 통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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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ontheroad | 2005년 08월 24일
    정희성의 [시를 찾아서] 정희성은 과작의 시인이다. 10년의 세월을 격해서 그가 『詩를 찾아서』에 실은 시는 도합 43편 뿐이다. 그러나 시력에 비해 편수가 적다는 것만이 이 시인의 과작에 힘과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시를 아껴 쓰면서 그 시작(詩作)이 힘과 무게를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과작이 아니라 태작으로 불리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희성의 과작에 힘과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시작에 대한 시인의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어언 30년 세월 동안 나는 '말 줄이기' 훈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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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성의 [시를 찾아서]


    정희성은 과작의 시인이다. 10년의 세월을 격해서 그가 『詩를 찾아서』에 실은 시는 도합 43편 뿐이다. 그러나 시력에 비해 편수가 적다는 것만이 이 시인의 과작에 힘과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 시를 아껴 쓰면서 그 시작(詩作)이 힘과 무게를 얻을 수 없다면, 그것은 과작이 아니라 태작으로 불리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희성의 과작에 힘과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시작에 대한 시인의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어언 30년 세월 동안 나는 '말 줄이기' 훈련을 해온 셈이다. 묵언(默言)으로써 말을 하는 경지를 넘본 것은 아니로되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피곤하다. 일상에서도 그러하고 시에서도 그러하다. …… 시는 소설이 필요로 하는 만큼 많은 말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이어서 거의 묵언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마음이 들어가 쉴 만한 작은 공간을 빚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온 터였다. 이러한 말 줄이기 훈련이 나를 왜소하고 빈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를 찾아서』, p.72.)


    정희성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말 줄이기 훈련'과 같으며 이는 시는 '거의 묵언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그의 시작 태도로부터 기인한다. '마음이 들어가 쉴 만한 작은 공간'은 그에게 소란스럽지 않고 내밀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그의 시작 태도는 산문 뿐만 아니라 시에도 잘 드러나 있다.


    발표 안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부자로 살고 싶어서
    발표도 안한다
    시 두 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게 뻔하니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안 주고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거지는 나의 생리에 맞지 않으므로
    나도 좀 잘 살고 싶으므로
    -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전문, p.15.


    시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시인은 마음의 풍요로움을 가진다. 정희성은 시인이 가슴 속에 지닌 시를 모두 '털어버리'는 일이 곧 매문(賣文)이라 여기고 있는 듯 하다. 그러므로 시를 '차라리 가슴에 묻는' 일, 그것은 이미 정희성의 '생리'이기도 하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정희성의 시는 세속 저자거리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시인 스스로 마음의 풍요와 부유함을 얻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희성의 시작 태도는 자연스럽게 '시란 무엇인가?", 혹은 "시를 쓰는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탐구로 나아가게 된다.


    세상에 입 가진 자 저마다 떠들어대서
    나는 오랫동안 참고 말 안하는 버릇을 들이다가
    이제는 말도 잊어버리고 말하는 재미도 잊어버리고
    그것이 그렇게 마음 편해서
    마침내는 시를 쓰는 것도 잊어버리고 살다가
    시인이 시를 안 쓰고 말도 안하면
    무엇에 쓰겠냐고 누가 혀를 차는 바람에
    그도 그렇겠다 싶어 원고지 앞에 다시 앉으니
    도무지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애마냥
    서투르고 그 말이라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말하는 법을 새로 배워야겠다
    - 「말」전문, p.9.


    이십 몇 년의 세월동안 두 권의 시집에 백 편이 채 안되는 시를 지으면서, 즉 '오랫동안 참고 말 한하는 버릇'을 들이면서, 정희성은 '말'에 대해서, 또한 '시'에 대해서 '처음 배우는 어린애마냥' 서투른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러한 자성(自省)은 단순한 겸손의 뉘앙스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깨달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정희성의 이번 시집 여러 곳에서 기왕의 자신의 시에 대한 편견에 대한 부정과, 또 그러한 편견을 불러오게 한 자신의 시에 대한 자성을 확인할 수 있다. 「봄소식」(p.22)에서의 "이제 내 시에 쓰인/봄이니 겨울이니 하는 말로/시대 상황을 연상치 마라/내 이미 세월을 잊은 지 오래"라는 구절이나, 「첫 고백」(p.32)에서의 "오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삼십년이 넘게 군사독재 속에 지내오면서/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다보니/사람 꼴도 말이 아니고/이제는 내 자신도 미워져서/무엇보다 그것이 괴로워 견딜 수 없다고" 등의 구절이 그러한 예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성을 통하여, 즉 어린애와 같이 서투르게 새로이 찾아 나선 말과 시에 대해 정희성은 어떠한 답을 얻게 되었는가?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
    한 줄기에 나서도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 「詩를 찾아서」부분, p.12.


    시인은 삼십 년이 넘게 시를 써 오면서도 '시가 무엇인지/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고 지금까지 헤매어 왔음을 고백한다.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라는 첫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시로서 절은 짓는 일, 곧 깨달음에 다다르는 길을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절 없이 절터만 남아 있는' 회암사나 '절은 있어도 시는 보이지 않'는 명주사를 둘러보면서, 시인은 말로서 깨달음을 얻는 일에 대한 험난함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 시인은 시를 쓰는 일, 시를 찾아 나서는 길이란 '상사화'와 같음을, 즉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꽃이 잎을 만나지 못'하는 상사화와 같이 시란 깨달음에 다다르려 하면서도 다다르지 못하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이며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과 상술(上述)한 시작 태도를 바탕으로, 정희성은 다음의 시와 같은 절창을 얻게 되기도 한다.


    문상할 일이 있어 밀양 가는 길
    기차가 마악 청도를 지나면서
    창 밖으로 펼쳐지는 감나무숲
    잘 익은 감들이 노을 젖어 한결 곱고
    감나무 숲속에는 몇채의 집
    집안에는 사람이 있는지
    불빛 흐릿한데, 스쳐 지나는
    아아, 저 따듯한 불빛 속에도 그늘이 있어
    울 밖에 弔燈을 내다 걸었네
    - 「청도를 지나며」전문, p.24.


    시적 화자는 밀양에 문상을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가고 있다. 그 길에 청도를 지나면서 시적 화자는 노을에 젖어 있는 감나무숲을 보게 된다. 노을의 빛깔과 잘 익은 감들의 빛깔이 어우러져 이 시의 도입부는 따듯하고 포근한 심상에 잠기어 있다. 그 따듯한 감나무숲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 저물녘 불빛 흐릿흐릿한 풍경, 누군가에게 문상을 가는 시적 화자의 마음 속에 사람 사는 일의 허전함과 부질없음, 따듯함과 정겨움이 서로 부대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중에 시적 화자는 그 '스쳐 지나는' 사람의 마을, 무심히 보면 따듯하고 아늑하게만 보이는 그 풍경 속에서도 하나의 '그늘'을 보게 되니, 그것은 다름 아닌 울 밖에 내다 걸린 '弔燈'이다. 그 조등을 보는 순간 시적 화자는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불빛과 그늘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사람 사는 일이 부질없음과 정겨움의 공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1연 9행의 짧은 시, 즉 말을 아껴서 뱉어낸 시형식을 통해서, 이렇듯 시인의 내면 풍경을 자연 풍경과 합일시키고 그 합일 속에서 삶의 한 단면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내는 일은 좀처럼 보기 드문 시적 성취라 할 것이다.
    그러나 『詩를 찾아서』에 실린 모든 시편이 위와 같은 성취를 얻는 것은 아니다. 몇몇 시편들이 정희성의 시력에 비해 초라한 힘과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들도 있음이 눈에 띤다.


    무엇을 기다리나 그 사람
    동구 밖 장승 곁에 서 있네
    해가 져도 장승처럼 서 있네
    어둠 속에 동그마니 장승이 되었네
    - 「그 사람」전문, p.35.


    위 시는 너무 짧은 시형식으로 인하여 시가 일종의 아포리즘으로 떨어진 경우라 할 것이다. 시에 드러난 '그 사람'의 기다림이 '장승 곁'에서 '장승처럼'으로, 나아가 아예 '동그마니 장승'이 되어버리게 만드는 일종의 점층법이 도드라져 보이기는 하나, 이것은 한편의 완성된 시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언어의 절제로 흐른 듯 보이는 소품으로 여겨짐은 어쩔 수 없다. 이 밖에 「사랑」(p.33.), 「파문」(p.39) 등도 이와 같은 시에 속한다 하겠다.
    정희성의 최근 시가 말의 아낌과 언어적 조탁을 통한 깨달음으로만 경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그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관심, 즉 우리가 부대끼고 살아가는 현실의 척박함과 부조리에 대한 시적 성찰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 「세상이 달라졌다」전문, p.41.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던 시인에게 저항이 밥이 되고 권력이 되는 세상은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시인은 자신과 같은 부류가 '얼간이들' 취급을 받으며 심지어 '저항'마저도 빼앗기게 되었다고 분개한다. 이제는 아무도 세상에 소리쳐 항변하지 않는 세태를 시인은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여름의 한때, 비루하게 자신의 눈앞의 이익과 안락만을 추구하는 '고요한 개들의 세상'으로 타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서울역 1998」(p.40), 「불안한 신호음」(p.42) 등도 이와 같은 시에 속한다. 이러한 세상의 현실에 대한 정희성의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의식이 그의 시를 관념의 영역에서 끌어 내려와 지상의 삶과 현실에 단단하게 밀착시켜 주는 닻이라 할 수 있겠다.



    이상으로 정희성의 근작시집 『詩를 찾아서』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우선 정희성의 최근 시들은 과작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시작 태도, 즉 말을 아끼고 시를 아끼는 길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시로써 이루려는 그의 노력의 성과이다. 이러한 노력은 때때로 과도한 언어의 절제로 인해 시를 아포리즘이나 소품의 수준으로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이번 시집에 실린 그의 시의 대부분이 언어에 대한 깊은 천착을 통해 우리네 삶에 대한 진중한 통찰을 이끌어낸 빛나는 시편들이라 하겠다. 또한 정희성은 이전의 시들의 연장선상에서 지속적으로 현실의 척박함과 부조리에 대한 성찰도 함께 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그의 시가 관념성과 구체성을 두루 갖게 하는 탄탄한 기반이 된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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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체험 세대를 부모로 둔 내 또래의 세대는
    우리의 부모들이 종종 보여 주는 극심한 반공주의와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믿음에 종종 놀라곤 한다.
    사실 전쟁체험 세대가 지니고 있는 반공주의는 학습된 것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전쟁을 통해 체험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아버지가 그렇다. 한국전쟁 당시
    기독교 장로회 목사셨던 내 할아버지는 단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인민재판에서 처형당했다. 내 아버지는
    눈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봐야만 했다.
    그 때 여덟살 소년의 가슴에는 무엇이 각인되고 있었을 것일까.
    그런 분에게는, 공산주의란 단지 증오의 대상에 다름 아니다.
    어떠한 독서나 감화로도 그러한 증오는 사그러들지 않는다.
    이것은 북쪽의 경우에도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 맹목적이라는 데에서는 동일한 증오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은, 6.25 동란이라고 불리우는 것처럼 내전의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고, 이데올로기 전쟁이기도 하며, 또 국제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한국전쟁,
    3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인구가 죽었고 국토의 몇 퍼센트가 황폐화되었는가 하는 사실 따위는
    그 전쟁이 남긴 상처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역사를 사지선다 암기과목으로 배우지 않았는가)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의 아이들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끼지만,
    그것은 불과 오십년 전 우리 부모들의 모습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역사 교육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이 남겨진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화해로 이끄는 방식을 황석영의 <손님>은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이며, 천연두와 같은 서병(西病)으로 파악하여 이 둘을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규정했다는 작가의 말은 동감하지만,
    작품의 구성을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열 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하여 썼다"는 말이나,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 굿으로 잠재우고 화해와 상생의 새세기를 시작하자"는 작가의 뜻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한 말은 내게는 마치 화해와 상생에 대한 강박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적인 완성도나 감동의 측면 보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국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을 이만큼 핍진하게 보여주었다는 데에서, <손님>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치안대 청년덜이 본부만 남기구 몽땅 읍내 주변얼 방비하러 나가 있댔구 또 분대럴 나우어선 모두덜 사방 동리에 숨어 있넌 공산주으자덜얼 잡아디린다구 나가서 길가가 텅 비어 있댔디. ..... 누런 군복얼 입언 인민군 병사럴 두 명 끌구서 청년들이 나타나두만, 앞에 걷넌 자가 손에다 철삿줄을 쥐고 오넌데 인민군 병사의 코뚜레럴 꿰어서요. 코에서 흐른 피가 저고리 앞을 다 적셌두만. ..... 길카구 뒤에넌 모자넌 어디루 니제삐렜넌지 단발머리으 인민군 에미나이가 앞에 선 병사으 허리춤에 매단 철삿줄에다 두 손목이 묶이워 끌레오구 있더라. 군복언 그냥 입헤두었디만 발언 맨발이야. 청년덜 네 명이 뒤에서 따라오고 말이디.
    이것덜이 오누이라네.
    앞에서 철삿줄을 잡고 끌고 오던 청년이 당사 보초 앞에서 떠드넌 소리가 들레왔디.
    ........
    야. 총이나 뺏구 즉결하구 오디 머 하러 여까디 끌구 오네?
    떠들석하는 소리가 들리고 모두 건물 안으루 들어가두만. 한참이나 있다가 복도가 크게 울리도록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어둑어둑했넌데 기쎄 그 아이덜얼 쪽 빨가벳겨개지구 끌구 나오는 거이야. 내무서 뒷마당으로 데레가넌 모낭이디. 단발머리넌 궁둥이두 작구 다리가 참새 같더라. 두 팔루 가슴얼 싸안구 머리럴 숙이군 오빠 뒤럴 따라가멘서 목놓구 울어서. 기것덜이 담장 너메루 사라지더니 총소리가 들리더라. 아아. 하지만 지옥언 기런 거이 아니야. 나넌 까딱했으문 내 하나님얼 버릴 뻔하였다. 그 이튿날 밤이 내 믿음의 오십년을 끔찍허게 뒤흔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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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님
    ontheroad | 2005년 08월 24일
    황석영 전쟁체험 세대를 부모로 둔 내 또래의 세대는 우리의 부모들이 종종 보여 주는 극심한 반공주의와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믿음에 종종 놀라곤 한다. 사실 전쟁체험 세대가 지니고 있는 반공주의는 학습된 것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전쟁을 통해 체험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아버지가 그렇다. 한국전쟁 당시 기독교 장로회 목사셨던 내 할아버지는 단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인민재판에서 처형당했다. 내 아버지는 눈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봐야만 했다. 그 때 여덟살 소년의 가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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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석영


    전쟁체험 세대를 부모로 둔 내 또래의 세대는
    우리의 부모들이 종종 보여 주는 극심한 반공주의와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믿음에 종종 놀라곤 한다.
    사실 전쟁체험 세대가 지니고 있는 반공주의는 학습된 것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전쟁을 통해 체험된 것이다.
    예를 들면 내 아버지가 그렇다. 한국전쟁 당시
    기독교 장로회 목사셨던 내 할아버지는 단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인민재판에서 처형당했다. 내 아버지는
    눈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봐야만 했다.
    그 때 여덟살 소년의 가슴에는 무엇이 각인되고 있었을 것일까.
    그런 분에게는, 공산주의란 단지 증오의 대상에 다름 아니다.
    어떠한 독서나 감화로도 그러한 증오는 사그러들지 않는다.
    이것은 북쪽의 경우에도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 맹목적이라는 데에서는 동일한 증오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 전쟁은, 6.25 동란이라고 불리우는 것처럼 내전의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하고, 이데올로기 전쟁이기도 하며, 또 국제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한국전쟁,
    3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인구가 죽었고 국토의 몇 퍼센트가 황폐화되었는가 하는 사실 따위는
    그 전쟁이 남긴 상처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우리 세대는 역사를 사지선다 암기과목으로 배우지 않았는가)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의 아이들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끼지만,
    그것은 불과 오십년 전 우리 부모들의 모습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역사 교육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이 남겨진 상처, 그리고 그 상처를 화해로 이끄는 방식을 황석영의 <손님>은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이며, 천연두와 같은 서병(西病)으로 파악하여 이 둘을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규정했다는 작가의 말은 동감하지만,
    작품의 구성을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열 두 마당을 기본 얼개로 하여 썼다"는 말이나,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 굿으로 잠재우고 화해와 상생의 새세기를 시작하자"는 작가의 뜻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한 말은 내게는 마치 화해와 상생에 대한 강박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적인 완성도나 감동의 측면 보다는, 작가의 말처럼 한국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을 이만큼 핍진하게 보여주었다는 데에서, <손님>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치안대 청년덜이 본부만 남기구 몽땅 읍내 주변얼 방비하러 나가 있댔구 또 분대럴 나우어선 모두덜 사방 동리에 숨어 있넌 공산주으자덜얼 잡아디린다구 나가서 길가가 텅 비어 있댔디. ..... 누런 군복얼 입언 인민군 병사럴 두 명 끌구서 청년들이 나타나두만, 앞에 걷넌 자가 손에다 철삿줄을 쥐고 오넌데 인민군 병사의 코뚜레럴 꿰어서요. 코에서 흐른 피가 저고리 앞을 다 적셌두만. ..... 길카구 뒤에넌 모자넌 어디루 니제삐렜넌지 단발머리으 인민군 에미나이가 앞에 선 병사으 허리춤에 매단 철삿줄에다 두 손목이 묶이워 끌레오구 있더라. 군복언 그냥 입헤두었디만 발언 맨발이야. 청년덜 네 명이 뒤에서 따라오고 말이디.
    이것덜이 오누이라네.
    앞에서 철삿줄을 잡고 끌고 오던 청년이 당사 보초 앞에서 떠드넌 소리가 들레왔디.
    ........
    야. 총이나 뺏구 즉결하구 오디 머 하러 여까디 끌구 오네?
    떠들석하는 소리가 들리고 모두 건물 안으루 들어가두만. 한참이나 있다가 복도가 크게 울리도록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어둑어둑했넌데 기쎄 그 아이덜얼 쪽 빨가벳겨개지구 끌구 나오는 거이야. 내무서 뒷마당으로 데레가넌 모낭이디. 단발머리넌 궁둥이두 작구 다리가 참새 같더라. 두 팔루 가슴얼 싸안구 머리럴 숙이군 오빠 뒤럴 따라가멘서 목놓구 울어서. 기것덜이 담장 너메루 사라지더니 총소리가 들리더라. 아아. 하지만 지옥언 기런 거이 아니야. 나넌 까딱했으문 내 하나님얼 버릴 뻔하였다. 그 이튿날 밤이 내 믿음의 오십년을 끔찍허게 뒤흔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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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밥
    reader4 | 2005년 08월 24일
    종이밥/ 김중미 소외된 계층을 통해 바라보는 현실 `아이들은 희망을 보지만 어른들은 현실을 본단다. 현실을 본다는 것은 때론 너무 냉혹한 일이거든.‘ 그런 현실을 알아서 일까. 아동문학의 현실적인 독자인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선택하는 책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이유로 아동문학은 사실 아동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어른들의 시각에서의 아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안에는 어린 시절만큼은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어른들의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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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밥/ 김중미

    소외된 계층을 통해 바라보는 현실

    `아이들은 희망을 보지만 어른들은 현실을 본단다. 현실을 본다는 것은 때론 너무 냉혹한 일이거든.‘
    그런 현실을 알아서 일까. 아동문학의 현실적인 독자인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선택하는 책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이유로 아동문학은 사실 아동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어른들의 시각에서의 아동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 안에는 어린 시절만큼은 즐겁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어른들의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동문학에서 나타나는 가족은 늘 행복의 근원이었다. 모든 것을 용서받고 화해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만약 결손 된 가정이 출발점이라면 복원을 희구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이러한 희망을 깨는 것은 금기 시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있다하더라도 아이들은 늘 사랑 받는 존재였다. 현실의 아이들은 과연 그러한가? 상반되는 현실은 늘 존재해 왔다. 현실적인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가정이 와해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늘 꿈 많고 행복한 아동으로 자라나지는 않는다. 이런 아동들이 현실 속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기 위해 또 주변사람들이 이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가정과 관련된 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결코 가정의 권위를 깨뜨리는 금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 달동네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며 글을 써온 김 중미라는 작가가 등장했다. ‘괭이 부리말 아이들’, ‘희망’, ‘종이 밥’에 이르기까지 그곳에는 힘든 현실 속에 고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이들은 고민하고 때로는 힘든 현실에 자신을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이 책 ‘종이 밥’에서 역시 불평하기도하고, 때로는 어리광을 부리고 후회하고 동생을 챙기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 철이는 산등성이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동네 산꼭대기의 판자촌에 살아가고 있다. 부모를 여읜 철이 남매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을 나가시고 철이가 학교에 가면 어린 송이는 문이 채워진 방에서 하루종일 혼자 지낸다. 송이가 혼자 놀던 방에는 배가 고프거나 심심할 때 씹었던 종이들이 흩어져 있다. 송이가 5살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면서 자물쇠가 잠긴 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곧 송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송이의 소원은 곰돌이 푸우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것이다. 이런 송이의 희망과는 달리 집을 떠나 절에 가야하는 현실이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송이를 좀더 나은 곳에서 배우고 키우고 싶어한다. 하루하루 힘들게 먹고 살아가는 고통스런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할머니는 송이를 절로 보내기로 한다. 철이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어린 송이를 위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철이는 자신의 저금통을 털어서 송이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려고 하지만 송이가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사기에는 부족하다. 선물을 받고 철없이 좋아하는 송이를 본다.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 되돌리고 싶은 후회... 때때로 송이를 귀찮아하던 철이는 절로 떠나는 동생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송이는 금방 다녀오겠다며 할머니와 절로 떠난다. 송이를 떠나 보내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철이는 산을 내려 왔다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게 된다. 철이는 혹시 송이가 같이 돌아오지 않을 까 하는 기대에 골목 어귀에서 기다린다. 다행히 철이 의 바람대로 할머니 뒤로 송이가 따라 오고 있다. 철이는 한달음에 내려가 송이의 손목을 잡고 반갑게 맞이한다. ‘너 정말 송이 맞지?’ 그리고 송이를 데리고 나온 새벽녘을 되새기며 모질지 못한 자신을 타박하시지만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다 즐거운 웃음을 지으신다.
    세상에는 배가 고파서 종이를 씹는 아이, 가난해서 학교를 못 가는 아이,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이가 존재한다. 모든 부모들이 근심 걱정 없이 아이들의 행복만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이런 아이들은 고통스런 현실을 그냥 슬프게만 바라보고 황폐해져 갈 수 있다. 이럴 때 책은 환경을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책 속에는 어른들이 겪는 갈등, 아이가 겪는 갈등, 빈부의 차에서 오는 아이들 사이의 갈등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아이들은 자신과 생활환경이 다른 아이를 어떻게 보는가 일반적으로 그냥 친구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도 그들만의 사회가 존재한다. 어른들의 힘든 현실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아이들의 현실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그 판단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힘든 선택, 다른 상황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 다른 점을 통해서 사람을 배우게 된다. 현실에서 환경이 다른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알게 될 것이다. 환경이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것 만이라도 이 책은 큰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른들 역시 현실적인 고민이 있고 그 고민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 할머니가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선물에 좋아하고 있지만 그 아이 역시 빈부간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작게 나마 고민한다. 이러한 현실을 결코 비관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동정이 아닌 그들의 슬픔과 기쁨에 눈물 흘리고 웃을 있고 그들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임을 따듯하게 공감하게 만드는 능력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작가 김중미 만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작가의 이러한 재능이 주변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다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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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은 미친짓이다
    yjhq | 2005년 08월 24일
    이만교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만교, 민음사, 2000. 참 도발적인 제목이다. 너무나 솔직해서 섬짓 하기까지 하다. 첨엔 이 솔직한 제목에 이끌려 영화를 먼저 보았다.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였으므로 영화는 영화 자체로 평가를 해야겠지만, 솔직히 영화만을 보고서는 도대체 작가가 의도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가 힘이 들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독점적인 것, 권위적인 것, 성스러운 척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어느 계층이든, 웃음과 농담의 대상으로 삼아보고 싶었단다. 그것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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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교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만교, 민음사, 2000.

    참 도발적인 제목이다. 너무나 솔직해서 섬짓 하기까지 하다. 첨엔 이 솔직한 제목에 이끌려 영화를 먼저 보았다.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였으므로 영화는 영화 자체로 평가를 해야겠지만, 솔직히 영화만을 보고서는 도대체 작가가 의도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가 힘이 들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독점적인 것, 권위적인 것, 성스러운 척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어느 계층이든, 웃음과 농담의 대상으로 삼아보고 싶었단다. 그것의 일환으로 우리 시대의 결혼이라는 제도-'경제적 손익계산표를 바탕으로 한 거래이면서도 마치 순수하게 사랑하는 척하는 위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만연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 아주 성스러운 것 인양 치장되는'-에 대해서 비웃어주고 있는 것인가 보다.
    어찌 되었건 난 작가의 의도가 너무 맘에 들었다. 뭔가 불합리한 것임을 알면서도 소심함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어느 누군가 대신하여 시원하게 욕을 퍼대는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표면상으로는 단지 결혼이라는 제도를 비웃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소설은 아마도 자신의 주체적 의지가 아닌 타인과 사회적 요구와 자본의 이익에 의해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에 냉소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텔레비전의 일세대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부모 세대들은, 극중인물과 실제인물을 곧잘 혼동했지만, 그래서 텔레비전과의 거리를 상실해 버리기 일쑤였지만, 그러나 우리 세대는 다르다. 우리 세대는 각자의 내면이 아예 텔레비전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우리는 텔레비전으로 세계를 인식하며, 따라서 세계에 대해 논평하지 않고, 텔레비전에 나온 것들에 대해서 논평한다. 그나마 귀찮으면 우리는 텔레비전을 끄듯이 신경을 끈다. 다시 세계가 궁금해지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듯 전화를 걸어보거나 각양각색의 공간들을 조금씩 기웃거려본다.
    심지어 우리 모두는 탤런트가 되어버렸다. 탤런트의 배역과 역할을 좌우하는 것은 탤런트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광고주와 시청자들의 반응과 방송국 소유주이듯, 우리들은 끝없이 광고로부터 욕구를 전달받고, 타인의 시선에 의해 조절 당하고, 우리의 물질적 소유주인 직장상사나 부모로부터 간섭을 받는 세대다.
    내 안에,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결혼과 직장 생활은 정해진 대본처럼 상투화되어 가고 있다."
    p279-280에서 인용.

    언뜻 보기에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스스로가 선택하고 정한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엮어있는 짜여진 각본이 맞추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각본은 도처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산재해 있으며 너무나 복잡하고 방대해서 심지어 우리의 생활방식은 물론, 생각과 정신까지도 지배한다.
    그야말로 우리는 작가의 말처럼 탤런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두 남녀의 결혼과 연애에 대한 방식과 태도를 놓고 본다면 마치 광대의 줄타기처럼 불안하기 그지없지만 적어도 탤런트의 삶은 거부하고 있다.
    우리 역시 두 가지 갈림길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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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홉살인생
    lacied | 2005년 08월 24일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MBC에 느낌표!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책을 선정해 주어서 책을 읽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그 느낌표!의 선정 도서중 하나인 아홉 살 인생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반 쯤 읽었을 때의 느낌은 재미있긴 하지만 별다른 생각을 하게 하거나 선정도서라 뽑힌 이유를 의아하게 했다. 이 책은 아홉 살의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시점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백여민'은 너무나 어른스럽게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보다는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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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MBC에 느낌표!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책을 선정해 주어서 책을 읽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다. 이 책은 그 느낌표!의 선정 도서중 하나인 아홉 살 인생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반 쯤 읽었을 때의 느낌은 재미있긴 하지만 별다른 생각을 하게 하거나 선정도서라 뽑힌 이유를 의아하게 했다. 이 책은 아홉 살의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시점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백여민'은 너무나 어른스럽게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보다는 어린이의 시점으로 미소짓게 만들어주고, 어린이 시점에서는 이럴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인데, 이 책에서는 별로 그런 점을 느끼지 못했다. 책의 뒤에 이 책은 저자가 스물 아홉 살 때까지의 인생을 재정리하면서 쓴 글이라고 하니, 약간은 이해가 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소설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이 책에서 느낀 점이라면 일기를 이런 식으로 쓰면 상당히 재밌겠구나, 우리는 일기를 얼마나 쓰는가? 일기를 쓰더라도 얼마나 솔직히 쓰는가? 개인적으로는 누가 볼까봐 나의 속마음을 일기에 다 드러내지 못한다. 일기조차 나의 마음대로 적을 수 없다는 것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일기를 쓰더라도 딱딱한 글만 나온다. 일기에 각각의 별명을 집어넣으며, 내 마음대로 써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게 해준 동시에 일기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해주었다.
    이 책의 중간에 보면 동네 사람들의 별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은 재밌으면서도,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였다. 정말 있는 듯한 느낌의 별명들 별로 거부감도 안 느껴지고 말이다. 그리고 술래잡기에서의 술래가 찾으러 다니다가 술래가 아닌 사람이 전봇대를 치면서 외치는 '야아도' 사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만 어렸을 때 했던 게임의 '야도'하면서 치던 그 말을 표현 해둔 것이었다. 이것을 뒤늦게 알고는 엄청 웃었었다. 이런 거 이였구나 하면서... 아홉 살 인생의 마지막 부분에는 친구 신기종의 맞았던 장면에 이름만 주인공의 이름 '여민'이 들어감으로써 방황을 하다가 다시 일상 속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표현을 했다. 이 표현은 다시 시작되는 느낌도 주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표현이고, 인상 깊게 남았던 부분이다. 이 책은 이 마지막 부분 후, 겨울이 지나고 여민이의 아홉 살이 끝나면서 이 책은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기는 했지만 별로 느낀 게 없던 책이 되어버렸다. 너무 빨리 읽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공감을 느낄 만한 것이 별로 없어서 이였을까? 이 책은 보통 어른들도 읽는 것 같던데, 내가 어려서인가, 이 책이 오랫동안 살아 남아왔다는 것은 다시 커서 읽는다면 또다시 새로운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맨 처음 시작 때의 "지나치게 행복하지 않았다면 아홉 살은 인생을 느낄만한 나이이다" 나의 아홉 살 때의 인생은 지나치게 행복해서 그랬던 걸까? 전혀 인생을 느끼지 못하고 엄청나게 놀고, 나쁜 짓만 했던 그런 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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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밥
    longdary | 2005년 08월 24일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린이용 동화책이나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중미씨는 MBC '책을 읽읍시다'추천도서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그 책을 읽었을때도 가슴이 찡해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의 '숙자'와 이 책 '종이밥'의 '송이'는 유사한 케릭터를 가지고 있는거 같습니다.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하고, 때로는 떼를 쓰기도 하고, 졸라대기도 하고.......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그러려니 할수도 있겠지만 아마 숙자나 송이없이는 숙희(괭이부리말 아이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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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린이용 동화책이나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중미씨는 MBC '책을 읽읍시다'추천도서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그 책을 읽었을때도 가슴이 찡해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의 '숙자'와 이 책 '종이밥'의 '송이'는 유사한 케릭터를 가지고 있는거 같습니다.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하고, 때로는 떼를 쓰기도 하고, 졸라대기도 하고.......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그러려니 할수도 있겠지만 아마 숙자나 송이없이는 숙희(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나오는 숙자의 쌍둥이 언니)나 철이(종이밥에 나오는 송이의 오빠)도 그 가족들도 더 힘든 생활을 했을런지 모릅니다. 송이가 생활의 활력소가 된 거겠죠.
    사실 전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오빠와 여동생 이렇게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을때도 이 책 '종이밥'을 읽으면서도 나의 어린 시절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나 역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이렇게 지금의 나로 성장해 올수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가족!
    할아버지는 시장에서 잡동사니 물건을 팔아서, 할머니는 병원에서 허드레일을 하는 청소부로 일하면서, 그리고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농산물구입 상품권 몇장으로 4명의 힘들게 생활하는 송이의 가족.
    형편이 어려둬 송이를 절로 보낸다고 할때 철이는 한편으로는 생활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송이를 절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도 송이를 따라 절로 들어가고 싶다는, 아니면 송이를 절로 보내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맨날 투정만 부리던 송이를, 배고프다고 하면서 라면이나 밥대신 종이를 질겅질겅 씹어먹던 송이를....
    어쯤 송이는 종이를 꼽씹으면서 삶의 쓴맛을 되새겼는지도 모르죠. 쓴것도 자꾸 씹고 계속 먹으면 단맛이 된다고 하지 않든가요? 송이도 종이를 꼽씹으면서 삶의 쓴맛만이 아니라 단맛을 희구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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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mychoi3454 | 2005년 08월 24일
    오랜만에 유쾌한 소설을 만났다. 긴 물난리와 짜증나는 정치판에 찌들어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에 아마도 성석제라는 글꾼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할까? 성석제 소설은 우선 재미있다. '천하제일 남가이'는 어려서 할머니가 해 주던 옛날 이야기 같고, 그의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은 독자를 이야기의 재미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킥킥거리며 또는 파안대소하며 소설을 읽고 나면 무언가 찡한 여운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단지 재미를 위한 재미만은 아니었다는 읽은 뒤에 남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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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유쾌한 소설을 만났다.

    긴 물난리와 짜증나는 정치판에 찌들어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에 아마도 성석제라는 글꾼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할까?
    성석제 소설은 우선 재미있다. '천하제일 남가이'는 어려서 할머니가 해 주던 옛날 이야기 같고, 그의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은 독자를 이야기의 재미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든다. 하지만 킥킥거리며 또는 파안대소하며 소설을 읽고 나면 무언가 찡한 여운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단지 재미를 위한 재미만은 아니었다는 읽은 뒤에 남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또한 표제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눈으로 읽기보다는 이제 귀로 읽어야 한다는 새로운 글쓰기를 제시한 입담들로 쟁쟁하다.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자석 하나 때문에 소 여물도 못하러 가고 이기 뭐라. 스무 바리나 되는 소가 한꺼분에 밥 굶기는 기 중요한가, 바보자석 하나가 어데 가서 술 처먹고 집에 안 오는 기 중요한가, 써글랄"

    글을 읽고 나면 한번쯤 속으로 되뇌여 따라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단문 형태의 문장 구조는 극본으로 만들기에 더 없이 좋다. 성석제라는 특유의 글은 서평이전에 특이한 내음을 지녀 독자를 매료 시킨다.
    다시 서평으로 돌아와 보면 '웃음 속의 교훈'이라는 성석제 소설의 특징을 해학이니 하는 기존의 용어로 포괄하기에는 어쩐지 미진한 느낌이 든다. 풍자와 공격보다는 연민과 공감의 정서가 승한 것이 성석제 소설이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 모질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시대에 황만근의 삶은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경운기 덕분에 사람 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동네 사람이 먼저 옷깃을 잡아당기려는 사람이 되었다. 동네 머슴으로 갖가지 궂은 일을 다했고,....
    성석제는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미치지만 묵묵히 자기 도리를 다하며 살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 황만근의 일생을 통해 욕망과 이기심으로 뭉친 세상을 야유한다.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낸 황만근...
    나는 책을 덮으며 성석제가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내용이 무엇인지를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에서 찾을 수 있었다.

    " 생략(수정) "
    오늘 그의 글에서 이 욕들이 단순한 풍자가 아닌 시원한 한여름 소나기 같은 다른 의미로 들리는 것은 내가 성석제의 신작 소설을 기다리게 하는 또다른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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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잇
    storm9 | 2005년 08월 24일
    요즘 판매되고 있는 화려하고, 멋진 표지들과 사뭇 다르게 주황색의 촌스럽고, 단조로운 표지가 내 책상위에 어지럽게 붙어있는 형광색의 포스트잇을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제목과 연관성을 주기위한 계획된 의도라면 성공적인 것 같다. 이 책은 작가가 등단 7년 만에 논평하고,감동하고,이죽거리고,농담한 흔적들을 묶어낸 산문집이다. 카메라,자전거,삐삐,책,인터넷,전화같은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지고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게 써내려가 읽는내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주위의 물건이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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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판매되고 있는 화려하고, 멋진 표지들과 사뭇 다르게 주황색의 촌스럽고,
    단조로운 표지가 내 책상위에 어지럽게 붙어있는 형광색의 포스트잇을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제목과 연관성을 주기위한 계획된 의도라면 성공적인 것 같다.

    이 책은 작가가 등단 7년 만에 논평하고,감동하고,이죽거리고,농담한 흔적들을
    묶어낸 산문집이다.
    카메라,자전거,삐삐,책,인터넷,전화같은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지고 지루하지
    않고, 유쾌하게 써내려가 읽는내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주위의 물건이나 상황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우리의 생활도 조금은 여유로워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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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loveakechi | 2005년 08월 24일
    작고 귀여운 인디언 소년의 따스한 미소가 기분좋아 잡게 된 포리스터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정말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듯한 책이었다. 맑은 시냇물 소리와 나뭇잎의 사각거림이 귀에 들리는 듯한 산의 정경을 묘사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시간을 그린게 이책의 전반적인 내용이였다. 체로키 인디언 소년인 '작은 나무'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이야기속에서 나도 잠시동안이라도 도시의 소음과 공해의 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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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귀여운 인디언 소년의 따스한 미소가 기분좋아 잡게 된 포리스터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정말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듯한 책이었다.

    맑은 시냇물 소리와 나뭇잎의 사각거림이 귀에 들리는 듯한 산의 정경을 묘사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시간을 그린게 이책의 전반적인 내용이였다.

    체로키 인디언 소년인 '작은 나무'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이야기속에서

    나도 잠시동안이라도

    도시의 소음과 공해의 시달림, 인간 사이에서의 피곤함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을 그냥 놓아 두지 않았듯.

    '작은 나무'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정책에 끌려 가고 만다.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악몽이였다.

    '사생아','악마','인디언'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는 연약한 '작은나무'에게 매달렸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함을 핑계로

    사람들은 '작은 나무'의 가지가 끊어지도록, 채찍질 하고 욕을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현실보다 더 지독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인종, 학벌, 돈에 의한 차별,

    갈수록 악해지고 잔인해지는 사람들의 모습,

    온갖 모순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작은 나무'는 별을 통해 가족들과, 친한 사람들과 소망을 나눴다.

    그리고 고아원을 나올수 있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작은나무'..

    죽음마저 아름답게 여기고,

    자연으로부터 필요한 것만 가져가는 체로키인의 내일은 계속된다.

    우리도 내일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고아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온갖 부정부패, 집단이기주의, 범죄, 차별에서 벗어나

    처음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돌아가자.

    그것이 포리스터 카터가 세상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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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기와
    ddang75 | 2005년 08월 24일
    작고 귀여운 인디언 소년의 따스한 미소가 기분좋아 잡게 된 포리스터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정말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듯한 책이었다. 맑은 시냇물 소리와 나뭇잎의 사각거림이 귀에 들리는 듯한 산의 정경을 묘사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시간을 그린게 이책의 전반적인 내용이였다. 체로키 인디언 소년인 '작은 나무'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이야기속에서 나도 잠시동안이라도 도시의 소음과 공해의 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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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귀여운 인디언 소년의 따스한 미소가 기분좋아 잡게 된 포리스터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정말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듯한 책이었다.

    맑은 시냇물 소리와 나뭇잎의 사각거림이 귀에 들리는 듯한 산의 정경을 묘사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아름다운 시간을 그린게 이책의 전반적인 내용이였다.

    체로키 인디언 소년인 '작은 나무'는 자연의 순리를 배우며,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동화보다 더 동화같은 이야기속에서

    나도 잠시동안이라도

    도시의 소음과 공해의 시달림, 인간 사이에서의 피곤함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을 그냥 놓아 두지 않았듯.

    '작은 나무'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정책에 끌려 가고 만다.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정말 악몽이였다.

    '사생아','악마','인디언'이라는 무거운 꼬리표는 연약한 '작은나무'에게 매달렸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함을 핑계로

    사람들은 '작은 나무'의 가지가 끊어지도록, 채찍질 하고 욕을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현실보다 더 지독한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인종, 학벌, 돈에 의한 차별,

    갈수록 악해지고 잔인해지는 사람들의 모습,

    온갖 모순들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작은 나무'는 별을 통해 가족들과, 친한 사람들과 소망을 나눴다.

    그리고 고아원을 나올수 있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작은나무'..

    죽음마저 아름답게 여기고,

    자연으로부터 필요한 것만 가져가는 체로키인의 내일은 계속된다.

    우리도 내일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고아원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온갖 부정부패, 집단이기주의, 범죄, 차별에서 벗어나

    처음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돌아가자.

    그것이 포리스터 카터가 세상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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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시고기
    jin0807 | 2005년 08월 24일
    조창인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책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감동이 옵니다. 아들을 위해 자신은 버리는 우리의 아버지를... 부모님의 사랑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줍니다. 다움이는 생각합니다.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떠게 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에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 가시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다움이 아빠가 말합니다. "사람은 말이야...... 그 아이를 세상에 남겨놓은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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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창인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책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감동이 옵니다. 아들을 위해 자신은 버리는 우리의 아버지를...
    부모님의 사랑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줍니다.
    다움이는 생각합니다.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떠게 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에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 가시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다움이 아빠가 말합니다.
    "사람은 말이야...... 그 아이를 세상에 남겨놓은 이상은,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래."

    눈물이 나서 멈출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다시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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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성에 관해 알고 싶은 것
    worimal | 2005년 08월 24일
    우리가 성에 관해 알고 싶은 것(김성애.이지연 공저) 1. 주체적인 성 결정권을 가지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 경험들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어떤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어제 신문에서 조선시대 어우동의 삶에 대한 흥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어우동은 사대부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의 해방된 삶을 살다 갔다. 유교적 관념의 테두리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신의 성 결정권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다간 여자. 그러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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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성에 관해 알고 싶은 것(김성애.이지연 공저)

    1. 주체적인 성 결정권을 가지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 경험들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어떤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어제 신문에서 조선시대 어우동의 삶에 대한 흥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어우동은 사대부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의 해방된 삶을 살다 갔다. 유교적 관념의 테두리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신의 성 결정권을 가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다간 여자. 그러나 결국 남성중심의 조선시대는 그런 그녀를 사형시켰다. 그리고 그녀와 통정을 한 남자들은 그냥 유배형으로 머물고, 유배도 금방 풀려났다. 이런 남성중심적인 사고방식과 문화는 아직도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성에 관해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성을 깨끗하다/ 더럽다의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고 성 그 자체로 보며,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우동이 여성으로서의 해방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보수적인 유교윤리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 성에 대한 이중적인 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에 대한 이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성에 대해 겉으로는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실제로 행동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겉으로는 성이란 자연스러운 것이며 성적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는 진보적(?)인 모습을 내 보이고자 하지만 결국 그건 어쩌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막상 가까운 곳의 누군가가 성관계를 맺었다는 말을 듣거나, 결혼 전에 임신을 했다고 하면 다른 눈으로 그 사람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즉, 성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지만 아직도 어릴 때부터 은연중에 받아온 남성중심적인 성문화의 영향권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런 성문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몸에 체득된 것이라서 그것을 인식하기도 어렵고 그것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운 것 같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자는 아무나 만나서도 안되고 여자는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고.. 그 말은 항상 내 머릿속에 남아서 자주 나의 행동을 제약하고 생각을 제약한다.

    3. 순결?!
    고등학교 다닐 적 혼전 순결에 대해 교실에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육체적인 순결보다 정신적인 순결이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 후로 별로 변하지 않았다. 굳이 육체적 순결이네 정신적 순결이네 하며 나누어서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순결에 대한 보상 심리이거나 순결에 대한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하면서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보며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어쩌면 나는 보수적 생각과 진보적 생각사이에서 속이 들여다 보이는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4. 마지막으로..
    '성은 당신을 더럽히거나 타락시키거나 할 수 있을 만큼, 힘있는 놈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성에 관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자신을 포기하거나, 인생을 포기할 만큼 성은 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책의 제목은 '우리가 성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이지만, 결국 우리가 성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성에 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바로 잡아주고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 같다. '성'이라고 하면 sex부터 떠올리는 우리에게 성이란 성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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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홉살 인생
    rkd075 | 2005년 08월 24일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살은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이다" "아홉은 동양에서는 의미있는 숫자이다. 십진법에서 전체, 완성을 의미하는 열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 그래서 완성을 향하고 있는 수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일종의 질투심과 좌절감을 함께 맛본다. 왜 나에겐 재미있게(자랑스럽게) 이야기할만한 고향도, 사람들도, 사건도, 전설도 없는 것인지. 입담과 말재주가 없는 나에게 평생 이런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쓸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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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행복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아홉살은 세상을 느낄만한 나이이다"
    "아홉은 동양에서는 의미있는 숫자이다. 십진법에서 전체, 완성을 의미하는 열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 그래서 완성을 향하고 있는 수이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일종의 질투심과 좌절감을 함께 맛본다. 왜 나에겐 재미있게(자랑스럽게) 이야기할만한 고향도, 사람들도, 사건도, 전설도 없는 것인지. 입담과 말재주가 없는 나에게 평생 이런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쓸 일은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충분한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작가는 아홉살이란 숫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위의 두 말은 작가의 그런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홉'이라는 숫자보다 여민이에게 주어진 '상황, 조건'의 변화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책을 읽었다. 이사가 잦고, 얹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눈치'에 관한 추억 아닌 추억만 있기 때문이다. 여민이가 산꼭대기 집으로의 이사를 '얹혀 산다,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은, 가난이나 상황 등의 조건이 세상을 느끼도록 만드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에게도 여민이와 같은 아홉살이 있었다. 내 아홉살은 낙향 후 할머니댁에서 얹혀 살던 아버지가 면소재지에 자리를 잡고 독립생활을 시작하셨던 때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독립생활은 내 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었던 것 같다. 먼저 1년 사이에 '통닭집, 술집, 튀김가게, 연탄보급소, 농사' 등 수많은 업종의 변화가 있어 나를 지칭하는 대명사의 변화가 있었다. 또 전학 온 낯설음에 두문불출했던 생활이 소재지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과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면 구석의 할머니댁에서 학부모들의 치마바람이 거세게 일었던 소재지의 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경쟁사회에 뛰어들었다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내 아홉살의 기억은 여민이보다는 여민이를 경쟁상대로 삼았던 반장쪽에 가까웠던 같다. 난 가슴이 작아 학교에 가지 않거나, 숙제를 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나는 줄 알았고, 친구들과 싸움해서 이길 엄두도 나지 않았으니 항상 참고 착하게(착한척) 살 수밖에 없었으며 다행이 남들보다 재주가 있었던 공부 쪼가리에나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에겐 월급기계 같은 담임선생님 보다는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도와 주려했던 나를 정말로 예뻐해 준 선생님들만 만나 여민이와 기종이의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여민이의 '열 살'은 어떠했을까? 숫자에 대한 의미 부여로만 보면 '10'은 완성된 숫자니까 어떤 완성된 삶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내 기준에서 보면 아홉살과 특별하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홉살'이라는 숫자보다는 상황변화에 의미를 두면 10살이나 11살이나 그렇게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 굳이 '10'살에 목멜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이 책의 '아홉살'은 스물 아홉화 되어있는 아홉살이니.

    결국 '열 살'은 어른의 나이를 상징하지 않을까? 아홉살이 어린이의 시각이라면 열살은 어른이 시각이다. 장우림화 되어가고, 숲의 주인이 되어가며, 동네사람들이 되어가는 어른. 그래서 작가는 '고슴도치'라는 책을 '10'년 후에 펴내지 않았나 싶다. 남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잔뜩 가시를 세워놓고 자신만의 성에서 생활하는 소극적인.. 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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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게츠비
    noblesting | 2005년 08월 24일
    뭔가 허전한 느낌, 공허함... 나는 왜 사는가?? 내인생의 가치에 대한 회의... 사춘기 시절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고민들을 저는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여드름이 날까요??^^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끊임없이 샘솟는 부(富). 이책에도 이런 장면이 계속 반복해서 나오죠.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갈구하는 매력적인 화려함 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중요한 무엇이 빠져있다고 작가는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닉(캘러웨이)에게 그 무엇을 일깨워줍니다. 닉은 책의 첫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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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허전한 느낌, 공허함...
    나는 왜 사는가?? 내인생의 가치에 대한 회의...
    사춘기 시절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고민들을 저는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가끔 여드름이 날까요??^^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끊임없이 샘솟는 부(富). 이책에도 이런 장면이 계속 반복해서 나오죠.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갈구하는 매력적인 화려함 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중요한 무엇이 빠져있다고 작가는 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닉(캘러웨이)에게 그 무엇을 일깨워줍니다.
    닉은 책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단정합니다.
    '결국 개츠비가 옳았다'

    이 소설에서 닉은 1인칭 관찰자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닉은 자신이 충분히 도덕적이라 생각하고 있고, 좋은 교육을 받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밑에 글에서 개츠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닉은 '박식하고 원만한'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작정한 사람입니다. 나에게 있어 작가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소설속의 나 '닉'은 바로 현실의 나이고 따라서 동일한 내가 느낀바를 나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개츠비가 위대할 수 밖에 없는 그것...아니 그 능력. 희망을 갖게하는 천부적 재능, 누구에게도 발견할수 없는 낭만적인 감수성입니다.

    닉은 왜 떠났을 까요?? 닉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른살! 그것은 독신인 남자가 알아야 할 일들의 목록은 얇아져가고, 정열이 든 가방의 부피도 줄어들고, 머리숱도 옅어져갈 고독한 10년을 예고하는 나이다.'
    닉은 개츠비의 그 위대함을 갖지못한 자신이 고독할 것임을 알았던 것이죠. 이미 우리들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만 아직은 대단치않게 넘겨 버릴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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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
    rkd075 | 2005년 08월 24일
    19세/이순원 누가 그랬던가. 책을 구입한 후 3일 내에 다 읽지 못하면 책 속에 빠진 것이 아니라고. 정말 이틀동안 이순원의 13세부터 19세의 이야기를 내 추억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은 첫 장부터 마음에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열세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앞으로 자신이 알아야 할 어른들 세계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 나이로 성장이 멈추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삶에 대해 이제 더 알 것이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 어느 구석에나 그런 조숙한 천재들과 그 천재들이 조숙하게 만드는 환경이 따로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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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이순원

    누가 그랬던가. 책을 구입한 후 3일 내에 다 읽지 못하면 책 속에 빠진 것이 아니라고. 정말 이틀동안 이순원의 13세부터 19세의 이야기를 내 추억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은 첫 장부터 마음에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열세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앞으로 자신이 알아야 할 어른들 세계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 나이로 성장이 멈추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삶에 대해 이제 더 알 것이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세상 어느 구석에나 그런 조숙한 천재들과 그 천재들이 조숙하게 만드는 환경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고 시작한 첫 구절은, 나를 한동안 머리 아프게 했던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잘 지적해 준 말이다. 성장소설을 읽을 때마다 특별하게 살지 못했던 지난 시간을, 또 소가지 없이 살아온 것만 같은 시절을 얼마나 탓했던가. 나에게도 구체화하거나 수준있는 과정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아픔이 있었고, 성장의 고비가 있었으며 그것을 넘어 성인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어른'이라는 말이 '얼우다(부부관계를 맺다, 성관계를 맺다)'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결혼을 했다거나 그에 상응하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결혼이 개인과의 만남보다는 사회구성원과의 만남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보통 성인식이라는 통과의례를 통해 확인되는 것이지만)이 되었다는 의미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을까? 또 어떤 모습이 어른인가?

    이정수. 강원도 영동 지방에 살고 있던 주인공은 '성인'을 대관령을 넘어가는 사람이며, 그들 중에서도 돈을 벌러 넘어가는 사람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런 성인이 되기 위해 특별한 노력(흔히들 일탈행위라고 하는 것. 상고로 진학했다거나 책과 교복을 불질러 학교를 그만두도록 한 일)을 거쳐 대규모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짓는다. 운좋게 거둔 엄청난 부로 그의 성인노릇은 최고조(술을 먹고, 다방에서 차를 시켜 먹으며,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는)에 이르렀으나, 경험한 어른세계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모든 일에는 결국 때가 있음을 깨닫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19살'은 통념(법적으로, 나이로, 사회적 이해로)으로 청소년기의 최정점이며 한 걸음만 내딛으면 성인이 될 수 있는 시기이다. 정수의 19살은 어른이 되고 나서 후회와 함께 다시 어른되기 전을 기대하며 청소년기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나이인 것이다.

    성장소설을 읽어보거나 나, 그리고 친구들의 성장과정을 들어보면 참으로 다양하며 몸부림의 정도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두들 여기에 와 있고 나름의 무게를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 공부 외에도 수 만 가지 있듯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도 수만가지가 있는 듯 싶다.

    오늘도 어른되기를 꿈꾸며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를 하는 아이들과 만난다. 아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소 시간이 지난 후에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하긴 하나님도 막지 못한 또다른 세계(무엇이든 할 수 있어 보이는)에 대한 갈망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여유를 갖고 싶다.

    내가 보기에 다소 불안해 보이더라도 참고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무게를 느껴 힘겨워할 때 등뒤에 서 있거나, 갈등과 고민을 공동체 안에서 배설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거나, 먼저 산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적절하게 제시해주는 그런 여유를 가져야할 것 같다.

    19세는 지난 3월 3일 KB 'HD TV 문학관'에서 방영 2시간 분량으로 방송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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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을 나온 암탉
    ddang75 | 2005년 08월 24일
    이 글을 버스 안에서 읽었다. 무등중 앞 정류장에서 염주 4거리까지의 기나긴 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대개 여러 가지 생각이나 잠을 자곤 하는데, 어지러움과 구토증을 이겨내고 '잎싹'의 이야기를 죽 읽어 내려갔다. 버스에 내려서 어둑해진 길을 걸어가는데 주위의 것들이 온통 보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잎싹'의 마지막 장면만을 되새김했다. 아, 정말 '죽음'의 순간을 책에서든 영화에서든 그토록 절묘하고 생생하게 대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이 동화라는 선입견에 젖어서 '잎싹'의 고단한 여정이 빨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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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여정 끝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운
    강하고 여린 잎사귀를 추모하며>

    이 글을 버스 안에서 읽었다. 무등중 앞 정류장에서 염주 4거리까지의 기나긴 시간 동안 버스 안에서 대개 여러 가지 생각이나 잠을 자곤 하는데, 어지러움과 구토증을 이겨내고 '잎싹'의 이야기를 죽 읽어 내려갔다. 버스에 내려서 어둑해진 길을 걸어가는데 주위의 것들이 온통 보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잎싹'의 마지막 장면만을 되새김했다.

    아, 정말 '죽음'의 순간을 책에서든 영화에서든 그토록 절묘하고 생생하게 대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이 동화라는 선입견에 젖어서 '잎싹'의 고단한 여정이 빨리 끝나고 평안을 찾기를 바랐고, 여느 동화처럼 해피엔딩을 기대했는지 모른다. 이런 쉬운 결말은 유치하지만 어떻게 보면 간절한 바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 직전에 보았던 아카시아 꽃처럼 떨어지던 눈발들, 그리고 족제비의 가엾은 어린 것들, 그와 겹쳐지는 단단한 껍데기도 없이 나와서 마당에 던져졌던 잎싹의 알들... 쉰들러리스트의 가스실 장면도 글라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장군의 영웅적인 죽음(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던 이순신 장군까지)도 '잎싹'의 죽음만큼 숭고하지 못했다. 족제비에 물려서 바라보았던 세상들을 보고 싶다는 충동?도 느끼게 할 만큼 전율적이었다.

    죽음만큼 '잎싹'의 여정은 드라마틱함 그 자체였다.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이미 단순한 살아있음이 아니었다. 알을 낳고 싶어하고 그 새끼를 기르고 싶어하는 '잎싹'은 자신의 이름을 짓는 것처럼 모든 것에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했다. 나그네와의 만남, 그리고 초록머리의 탄생, 족제비와의 목숨을 건 사투, 고단하고 지루한 마당 밖의 삶... 그것은 '잎싹'에게 있어서 살아있음 그 자체이고, 폐계가 아닌 꽃을 탄생하게 한 '잎사귀'로서의 여정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많은 문학에서 탈출과 가출을 이야기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인형의 집'이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충실한 아내로서의 삶을 벗어버리고 가정을 나온 '노라'와 '잎싹'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이미 안정된 삶을 경험하고 그저 계속되는 일상들을 밟으며 살아온 '노라'는 사랑 속에 담긴 구속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혼자이기를 선언하고 '나'를 찾아 여행을 시작했다면, '잎싹'은 양계장의 고통스러운 삶을 느끼고 스스로 이름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자각이 된 상태였으며, 혼자이기보다는 자신의 가족과 다른 사회를 포용할 줄 아는 '우리'를 찾아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서양적인 페미니즘과 한국적인 페미니즘의 차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성급한 판단일까?

    '초록머리'에 대한 '잎싹'의 사랑을 보며 우리 한국 학부모들은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핏줄이 아니면 결코 가질 수 없는 애정, 그리고 자신의 대용물로 자식을 대하고 무조건적으로 품에 안으려고 하는 지나친 집착과 그에 따른 아이들의 고통에 대하여 부모들은 알고 있는지. 부모가 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마당을 뛰쳐나온 '잎싹'과 그저 단순한 과정을 거치듯이 아이들을 낳고 지나칠 정도로 무책임하거나 과도한 애정을 퍼붓는 우리네들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또한 '초록머리'의 성장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며 야생 청둥오리로서 살아가도록 격려하는 '잎싹'은 위대한 교육자이며 어머니이다.

    이 책에서 또 가슴 깊이 다가오는 것은 김환영씨의 그림이었다. 너무 설명하려 하지 않고, 너무 깊은 환상을 갖게 하지도 않는 김환영씨의 그림에 반했다.
    지난 여름 연수에서도 그림 동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는데, 이제부터는 하나의 완벽한 텍스트로서 '나'와 '아이들'의 독서 편력을 바꿔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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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먼동
    limelight | 2005년 08월 24일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소설을 잡기 어려워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랜만이었던만큼 편하게 읽고 싶었다. 이제는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쏘가리"의 기억과 "성석제"라는 이름을 믿고 다시 그의 책을 골라 들었다. 말장난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러나 굳이 구수한 입담이라고 믿고 싶은 그의 소설은 여전히 유쾌하고 약간은 씁쓸하다. 번듯한 인물은 하나도 없고 소시민이 들려주는 그보다도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고 있는 내가 잠깐 낯설기도 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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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소설을 잡기 어려워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랜만이었던만큼 편하게 읽고 싶었다.

    이제는 내용도 가물가물하지만 "쏘가리"의 기억과 "성석제"라는 이름을 믿고

    다시 그의 책을 골라 들었다.

    말장난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러나 굳이 구수한 입담이라고 믿고 싶은

    그의 소설은 여전히 유쾌하고 약간은 씁쓸하다.

    번듯한 인물은 하나도 없고 소시민이 들려주는 그보다도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고 있는 내가 잠깐 낯설기도 했다.

    그리고...욕탕속의 여인들.. 르느와르의 그림들과 함께 엮어지는...

    "무기여 잘 있거라"(소설이 아니라, 그 노래...)를 연상시키는 그의 여자 이야기

    약간은 불편한 느낌, 그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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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으로 가는 슬픔의 강
    javan | 2005년 08월 24일
    "어른으로 가는 슬픔의 강" '19세'는 '정수'가 13살 때부터 19살 때까지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하면서 쓴 소설인데 참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 솔직하다보니 '친애하는 나의 성교육 은사들'을 읽을 때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하필이면 버스 안에서 읽었던 부분이라서 누가 볼새라 조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들의 민망해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을 것 같은 작가의 장난기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그 나이 또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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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으로 가는 슬픔의 강"

    '19세'는 '정수'가 13살 때부터 19살 때까지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하면서 쓴 소설인데 참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 솔직하다보니 '친애하는 나의 성교육 은사들'을 읽을 때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하필이면 버스 안에서 읽었던 부분이라서 누가 볼새라 조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들의 민망해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을 것 같은 작가의 장난기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그 나이 또래인 우리 아이들도 이럴까? 한참 열 서너살인 우리반 남학생들, 그 아이들도 '정수'처럼 알 건 다 알고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아이들이 갑자기 징그러워진다. 아무렇지 않게 남학생들의 어깨를 쥐어뜯고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손을 잡는 나의 행동을 나중에 '정수'같은 아이가 소설이라도 쓰게 되면 어떻게 표현할까 조금은 걱정도 된다. '그 때 선생님은 이미 정신적, 신체적으로 성숙한 나의 머리와 손을 아무렇게나 잡았고 마치 그것을 즐기는 듯했다' 이렇게 쓰지는 않을지? -_-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은 '어른으로 가는 슬픔의 강'이었다. 가끔 멍하게 앉아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가엾다. 엄마가 딸을 낳으면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 그 감정과 약간 비슷할 것 같다. 험난한 인생에서 '자기처럼' 살아야할 딸의 인생이 가여워 운다고 하는데, 나도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이 필연적으로 겪을 어려움-그 어려움이 작거나 크거나- 생각하면 찡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이들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자란다는 것이다. 일탈 행동을 하는 아이들에게 너는 왜 그러냐고, 제발 정신 좀 차려라고 아무리 이야기하더라도 그 이야기에 감화되어 정신차리는 경우는 드물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은 어른이 되는 과정일 뿐이고 그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일을 생각하면서 추억할 거리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내 경우를 돌아봐도 학교에서 문제아가 전혀(!) 아니었던 나도 친구들과 '금지된 음주'를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반 아이들이 화장을 하고, 술. 담배를 했다 해도-물론 아이들이 '말로는' 안 했다고 하고 나도 '말로는' 무척 화난 척을 한다-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문제행동으로 보이는 그 행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자란다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솔직히 나의 이런 생각이 고민이다. '내버려둬도 저절로 깨달을텐데~'라고 생각하면서 '교사'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19세'의 정수도 결국 '어른'이 되어 학교로 돌아오게 된다. 정수도 그렇고, 정수의 아버지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모두 정수를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는 정수가 그냥 자기가 가야 할 그 길을 쭉-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정수가 농군이 되었던 이태동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되는 그만인 삥 돌았던 시간이 아니라 어른인 정수가 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돌아왔다'는 표현은 아직도 못마땅하다.
    나는 '여자'고 정수는 '남자'라서 그런지, 그다지 마음에 확 와닿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오늘 하룻동안 '19세'를 읽으면서 고 나이 또래 남학생들의 심리나 성향, 그리고 나의 사춘기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들보다는, '정수'처럼 자랐을 남자들이 더 좋아할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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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bay8282 | 2005년 08월 24일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터카터 "자연과 함께 더불어,행복한 생활을 한 인디언이야기" 이 책을 읽고 나서, 말할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감동과 교훈을 받았다. 이 책을 읽기전 나는 인디언들은 그저, 자연과 함깨 살고 굶주리는 불쌍한 존재로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후, 인디언에 대한 나의 생각은 180˚바뀌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존재이며 대지의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크게받는 자식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지금 현대 사회인들은 항상 책으로만,말로만, 거의 자연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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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터카터

    "자연과 함께 더불어,행복한 생활을 한 인디언이야기"
    이 책을 읽고 나서, 말할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감동과 교훈을 받았다.
    이 책을 읽기전 나는 인디언들은 그저, 자연과 함깨 살고 굶주리는 불쌍한
    존재로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후, 인디언에 대한 나의 생각은
    180˚바뀌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존재이며 대지의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크게받는 자식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지금 현대 사회인들은
    항상 책으로만,말로만, 거의 자연을 사랑하자,자연과 더불어 살자 라고
    하는것 같다. 도시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기는 커녕 오히려 자연을 더럽히고
    있다, 그에 비해 인디언들은 말이 필요없이 영혼을 서로 느끼며
    자연을 사랑하고 함께 더불어 살고 있다. 지금까지 자연을
    더럽힌 나를 되돌아 보니, 참 후회스럽고 부끄러웠다.
    내가 버린 작은 휴지조각 하나가 나를 지켜주고 나를 살리고 먹여주는
    자연을 파괴하고 못살게 굴었다니...
    그래서 이제부턴 사소한 것이라고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책의 주인공인 할아버지와,할머니 그리고 '작은나무'는
    인디언의 한 종족인 체로키족이였다. 이미 책에서 느꼈듯이
    백인들, 정치가들은 이 인디언들을 아주 쓸모없이 바라본다.
    그렇지만 주관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엔 인디언들이야말로, 지구에
    가장 필요한 생명체이며 독재자같은 정치인이나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야
    말로 인디언을 본받아야하며 깊이 반성을 해야한다고 느꼈다,
    이 책을 쭉 읽어보면 '눈물의 여로'라는 장면의 글이 있다.
    그 장면에서 나를 눈물을 쏟진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찡~함을 느꼈다.
    서로 가족들의 시체를 안고 백인들의 마차를 타지도 않은 인디언들의 여로..
    여로의 길을 걷다 여동생이 죽으면 그 오빠가 여동생의 시체를 안고
    눈물하나 흘리지 않고 앞을 향해서 걷는 그 장면이 참 슬펐다.
    왜 꼭 인종차별을 받아야 하는 걸까?
    모든 사람들이 거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책을 읽고 난 권력의 힘을 또다시 생생히 느낄수 있었다.
    어떤면에서 나는 작은나무가 참 부러웠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아이...
    나도 한번쯤은 꼭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이라는 어머니 품안에서 산다면 도시에선 절대 일어날수
    있는 병들을 모르도 건강하게 살수 있을것만 같다,
    이 책에서 나는 또 분명한 것 한가지를 깨달았고 그것을 생생히 느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돈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아이이다.
    그렇다. 이 책은 돈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철저히 부숴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비슷했다.
    돈이란 돈은 오로지 나에게 오게 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돈은 항상 모두다 쓸모없는 나의 군것질에 버려졌다.
    하지만 나는 이제 충분한 돈을 갖게 되면은 그 돈을 나에게 꼭
    필요한 곳에 쓰고 필요하지 않는 곳엔 쓰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아직 학생인 나에게 돈은
    그리 필요하지 않으니 용돈도 되도록 적게 받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나무가 법때문에 고아원에 가게 되었을때 나는 백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느꼈다. '오노'의 한 사람이
    미국전체를 욕먹게 했듯이, 그 몇몇 백인들도 인해 나는
    백인들이 엄청나게 싫어진것을 내 자신도 느꼈다,
    고아원의 선생님 한명이 사슴 두마리의 사진을 보여주었을때, 작은나무는
    그 모습을 자연그대로 말했다. 사슴 두마리가 짝짓기 하는 모습이 뭐가
    이상하고... 그런일을 가지고 작은나무를 심하게 때렸던 목사가
    (좀 심하지만) 미친인간이라고 느껴졌다.

    서로 멀리 사는 사람들이 서로 보고플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무언가를
    바라보면 그 사람의 영혼과 마음이 느껴질 것이라는 말이 참 아름다웠다.
    늑대별(시리우스별)은 작은나무와 저 멀리 산속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아름다운 영혼의 만남을 이루어주는 별이였다.
    작은나무의 부모들이 돌아가셨을때 작은 나무의 모든것을 뒷바침 해주고
    가르쳐주시고 길러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슬프게도 책속에선 돌아가신 것이다. 자연과 모든것을 이해하라고
    늘 일러주시던 할아버지와 희망과 행복, 사랑을 느끼게 해준 할머니,
    이 두 분은 정말 내가 존경하고 싶은 분이다. 나는 기회가 오면
    또 한번 이책을 읽고 , 또 읽을 생각이다.
    진정으로 아름다움과 내 영혼을 따스한 곳으로 이끌어준 이책,,
    이 책의 작가님 포리스터카터 님에게 정말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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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화꽃향기
    jin0807 | 2005년 08월 24일
    이책을 보고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승우라는 남자는 미주라는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여자 머리카락에서는 언제나 국화꽃 향기가 나거든요. 신기하게도 저한테만 나거든요. 지금까지도 전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연이 길을 가다가 그녀를 보았습니다. 난 다짐했어요. 미주선배..가 아닌 미주씨..라고 부르라고말입니다. 그녀가 갑자기 화를 내면 난 가슴이 미칠것 같았습니다. 끝까지 난 선배가 아닌 미주씨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같이할수 없었기에.... 하늘에서는 그녀를 먼저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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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책을 보고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승우라는 남자는 미주라는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여자 머리카락에서는 언제나 국화꽃 향기가 나거든요.
    신기하게도 저한테만 나거든요.
    지금까지도 전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연이 길을 가다가 그녀를 보았습니다. 난 다짐했어요. 미주선배..가 아닌
    미주씨..라고 부르라고말입니다. 그녀가 갑자기 화를 내면 난 가슴이
    미칠것 같았습니다. 끝까지 난 선배가 아닌 미주씨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같이할수 없었기에....
    하늘에서는 그녀를 먼저데려가는군요...
    나의 아기를 낳고 말입니다.
    지금 그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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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래물거품
    yangjeeyun | 2005년 08월 24일
    칼릴 지브란은 레바논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어권이외의 작가가 쓴 시는 처음이었지만 오히려 동양적 사고와 상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이는 시라기 보다는 인생을 위한 잠언집에 가까운데 깊이 있는 사고하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아주 감명 깊은 책 중 하나 입니다. 저의 느낌을 적자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용납할 수 있었던 일들 용납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모습 용납할 수 없었더라도 이해하겠다던 다짐들 이해하려했던 나의 건방짐 부꾸러워지는 내 모습들을 이 글들이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헤어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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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릴 지브란은 레바논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어권이외의 작가가 쓴 시는 처음이었지만
    오히려 동양적 사고와 상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이는 시라기 보다는 인생을 위한 잠언집에 가까운데
    깊이 있는 사고하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아주 감명 깊은
    책 중 하나 입니다. 저의 느낌을 적자면...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용납할 수 있었던 일들
    용납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모습

    용납할 수 없었더라도
    이해하겠다던 다짐들
    이해하려했던 나의 건방짐

    부꾸러워지는 내 모습들을 이 글들이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헤어짐 이후의 모습도 영원하리라고 믿는 삶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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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본 다섯 권의 산문과 운문
    nomadman | 2005년 08월 24일
    *호메로스,『오딧세이아』, 유영 옮김, 범우사, 1997. *나츠메 소세키,『마음』, 서석연 옮김, 범우사, 1990. *알렉산드르 뿌쉬낀,『예브게니 오네긴』,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1999. *미하일 레르몬토프,『우리시대의 영웅』, 장지연 옮김, 들불, 1991. *하인리히 하이네,『노래의 책』, 김재혁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막상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아래, 요 며칠 사이에 읽은 다섯 권의 책에 대한 단평을 올리려하니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다. 책은 읽었지만, 막상 거기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고 또 시간이 지나가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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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로스,『오딧세이아』, 유영 옮김, 범우사, 1997.
    *나츠메 소세키,『마음』, 서석연 옮김, 범우사, 1990.
    *알렉산드르 뿌쉬낀,『예브게니 오네긴』,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1999.
    *미하일 레르몬토프,『우리시대의 영웅』, 장지연 옮김, 들불, 1991.
    *하인리히 하이네,『노래의 책』, 김재혁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막상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아래, 요 며칠 사이에 읽은 다섯 권의 책에 대한 단평을 올리려하니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다. 책은 읽었지만, 막상 거기에 대해 뭐라 말하기 어렵고 또 시간이 지나가 버리면 책의 줄거리조차 잊어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 서둘러 몇 자라도 적어야 마음이 좀 편안할 것 같기도 해서 노트북을 켰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만 하다. 또 다섯 권의 책-세 권은 운문, 두 권은 산문-을 '사랑과 죽음'이라는 테마로 묶어 이야기한다는 것도 억지스러운 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읽은 다섯 권의 책이 하나의 주제아래 고스란히 모여질 법도 하다는 것도 조금은 신기해 보인다. 결론이 어떻게 날 지 모른다. 하지만, 이왕 말을 꺼냈으니 어떻게든 끝낼 수밖에.

    고백컨대, 나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오딧세이아』를 최근에야 완독할 수 있었다. 대학 1학년에 입학하기 전에『일리아스』를 읽었고, 이어『오딧세이아』를 집어들었지만, 약 반밖에 읽지 못했다. 그때까지 내가 읽은 곳은 총 24부 중 제 12부, 세이렌과 스퀼레라는 바다 괴물들에 지혜로 맞서 탈출하는 오딧세우스의 마지막 표류담이다. 이 이야기를 끝으로 오딧세우스는 알키오노스 왕의 궁전에서 떠나 아내 페넬로페가 기다리는 고향인 이타카로 떠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의 마지막 방학에 읽은『오딧세이아』는 정확히 오딧세우스의 표류담까지였으며, 꼭 서사시의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이었다. 나머지 후반부는 오딧세우스가 변장한 채 이타카 섬에 잠입하여 아들인 텔레마코스와 몇몇 시종의 도움을 받아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처치하는 이야기이다.『오딧세이아』읽기를 마치고서 나는 왜 이 책을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전부 읽을 수 있었을까 하고 질문해봤다. 10년 동안 나는 이 그리스의 맹인 음유시인의 서사시를 몇 차례 읽으려고 시도했고, 또 실제로 읽기도 했지만, 번번이 12부를 넘지 못하고 책을 덮어야만 했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 적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세이렌들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뱃사공을 유혹하는 장면에 이르면 매번 독서의 암초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세이렌의 이야기는 상당히 매혹적이다. 프랑스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는『미래의 책』에서 이 세이렌의 이야기를 토대로 마치 오딧세우스가 귀를 막고 세이렌의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음악을 듣는 행위처럼 문학이란 죽음을 통과하는 글쓰기라는 명제를 세운 바 있고, 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계몽의 변증법』에서 서구적 계몽이성의 가장 오래된 판본인 신화를 통해 도구적 이성의 기원을 밝혀낸 바 있다. 오딧세우스는 부하들에게 배의 기둥에 자신을 묶으라고 명령한다. 동시에 부하들의 귀를 막고 노를 젓게 하면서 자신은 홀로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것이다. 한편 이타카는 오딧세우스와 그의 모험담을 들어왔던 수많은 독자들이 꿈꿔왔던 고향에 대한 서구의 오래된 표상이지만, 실제 오딧세우스가 이타카에서 하는 일은 페넬로페의 구혼자들과 그들과 결탁한 못된 시녀들을 모조리 도륙(屠戮)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타카로 표상되는 고향, 사람들이 고된 여정을 통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는 귀향지란 페넬로페의 정절 혹은 사랑에 대한 재확인과 그런 재확인을 얻으려는 오딧세우스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펼쳐지는 장이다. 적대적인 타인들을 모조리 죽어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고향과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 예로 페넬로페의 구혼자 중 한 명인 암피노모스는 구혼자중에서는 가장 인덕(人德)이 많은 자였지만, 아테네 여신에겐 다른 구혼자들과 마찬가지로 죽어야 하는 운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오딧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던진 창에 의해 등뒤를 관통 당하고 쓰러진다. 그리고 이들 구혼자들이 모조리 도륙된 후에 그들의 부모들은 오딧세우스에게 항의하러 오지만, 아테네 여신은 이때서야 중재를 해서 더 이상의 살육을 막는다. 구혼자들 역시 오딧세우스만큼이나 이타카 섬 주변에서는 가장 고귀한 신분을 가진 아버지의 사랑스런 아들들이자 마찬가지로 신들을 경배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죽음과 귀향과 사랑과 화해도 한낱 그리스 신들의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 만일『오딧세이아』에서 그리스 신들을 제외한다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오딧세우스의 소망 성취담인 희극과 오딧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명부로 내려간 자들의 명부로 내려간 자들의 원통한 비극적 이야기로 나누어지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오딧세이아』를 십여 년 동안 읽었다는 사실에 뭔가 '의미'를 두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토록 멀기만 했던 귀향지 이타카에 대한 십여 년에 가까운 나의 오래된 꿈은 이 서사시를 읽기 시작한 지 십 년 후의 어느 날, 단 하루만의 독서로 무참히 깨지고 말았던 것 같다. '의미'란 그토록 부질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여러 번 읽은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마음』은 내가 보기엔 비극, 그리스적 의미의 비극 개념에 가장 가까운 소설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말의 비극이다. 이 소설의 절반은 선생의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여기엔 근대인의 내면의 고백으로 치환할 수 없는 관계의 절대성에 대한 문제가 숨겨져 있다. 즉, 두 사람이 한 공간을 동시에 차지할 수 없다는 것, 한 남자가 여자를 차지하면 또 다른 남자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기표들로 이루어진 상징적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자리다툼이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표의 질서=욕망의 환유체계는 항상 잔혹한 배제와 이에 따른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두려움을 언제나 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상징계는 언제나 두려운 것, 실재가 귀환하는 틈새를 열어두고 있다. 그리고 그 틈새를 통해 현실 전체는 단 한순간에도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다. 한 여자를 두고 친구와 피할 수 없는 대면을 해야하는 선생은 친구인 k를 기만한다. 선생은 k에게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자는 바보다"(203쪽)라는 말을 함으로써 k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며 급기야 k는 자살하고 만다. 선생의 남은 일생이란 지금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k에게 했던 기만적인 말을 스스로 되돌려 받는 일 뿐이다. 여기서 선생의 자기기만=내면이란 피할 수 없는 삼각 관계(모든 연애는 삼각관계다)의 문제에서 파생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마음』에서 타인의 죽음의 대가로 얻어진 사랑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 혹은 관계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언제나 타자, 혹은 또 다른 기표의 죽음과 배제를 통해 얻어진 잔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만일 이 문제를 비난한다면, 그것은 오직 도덕적인 층위에서만 가능하고 또 불완전하다. 사랑 때문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 그것은 이미 관계 이후의 문제, 즉 내면의 문제다. 근대인의 연애란 자연적인 정념이지만, 그것이 관계의 층위에 들어설 때는 거기엔 항상 냉혹한 측면이 도사린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도 사랑의 이 냉혹함을 결코 막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서 가장 잔인한 사람은 선생이라기보다는 선생의 아내와 아내의 어머니 장모, 즉 여자들이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k와 선생은 자살한다. 하지만 여기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여자들 때문에 두 남자들이 자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들이 없었더라면 과연 두 남자들은 자살했을까. 소세키 소설에 나타나는 여성에서 요부(妖婦)의 냄새를 맡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선생의 젊었을 적 아내는 두 남자들의 행동을 보며 웃기만 하는데, 두 남자는 매번 당황해하지만 한번도 그 웃음의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 여자의 웃음에 숨겨진 '의미'란 없는 것이다. 여자의 웃음의 '의미'를 가정하자마자, 남자들은 자의식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리고 이때 요부란, 실체가 아니라, 상징적 질서를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채워야 하는 두려운 틈새이며 회피해야 하는 관계의 빈 항이다.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고백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소세키가 또 다른 소설인『행인(行人)』에서 아내와 동생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치로가 동생에게 말한 것처럼, 여자란 한번 그 내면을 파악하려하면 결코 종잡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마음』은 말의 비극이며, 관계의 비극이다.『오딧세이아』의 그리스 신들이 떠나가며 남긴 비극적 운명이 수천년이 지난 후,『마음』으로 회귀한 것 같다.

    뿌쉬낀의 운문소설인『예브게니 오네긴』과 레르몬토프의 소설『우리시대의 영웅』의 두 주인공인 오네긴과 페초린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 "흥미를 잃었다", "따분하다"일 것 같다. 그들은 왜 그렇게 따분해 할까. 한때는 나폴레옹적 환상과 야망을 품었지만, 이들이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유희뿐이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오네긴은 "인생이란 것에 완전히 염증"(40쪽)이 나 있다. 그는 나이 마흔이 넘어서 비로소 인생의 젊음을 되찾으려는 파우스트와는 가장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관계들 속에서의 유희밖에 없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상대방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다음 상대방이 다가서면 냉혹하게 물러나기(키에르케고르의『유혹자의 일기』의 주인공이 아마 이들의 선구자격인 인물일 것이다). 이것은 일단 낭만파적 사랑의 구속을 아이러니의 간지(奸智) 속에서 해체시키고자하는 의도로 보인다. 오네긴은 한 여자를 사랑하지만, 결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그로 인해 여러 오해가 생긴다. 결국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인 따찌야나 앞에서 그녀의 여동생인 올렌까와 춤을 추게 되어 따찌야나와 올렌까의 약혼자인 친구 렌스끼에게 동시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오네긴은 결투에서 친구를 살해하고, 그 자신은 먼 방랑길을 떠난다. 후에 사교계의 여왕이 된 따찌야나를 대면한 오네긴은 뒤늦은 사랑을 고백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늦어버린 뒤였다. 여기에서 진실은 항상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기만 하다.『우리 시대의 영웅』은 정확히『예브게니 오네긴』의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다. 주인공 페초린은 오네긴과 어떻게 닮아있고 또 다른가.『예브게니 오네긴』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네긴은 비록 뒤늦은 사랑을 고백하긴 하지만, 그는 따찌야나의 사랑의 의미를 가까스로 파악한다. 이 점에서 그는 상황 속에서 진실하다. 키에르케고르를 빌려 말하면, 그는 심미적 인간에서 윤리적 인간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페초린은 오네긴의 악마적인 면모만을 추려온 인물로 보인다. 페초린은 순수하고, 악마적이다. 그는 재치 있는 인물이지만 오네긴적인 유희나 낭만적 아이러니를 갖고 있지 않다. 아이러니가 탕진된 다음, 그에게 남은 것은 인생은 결국 운명이며, 내기일 뿐이라는 무상한 통찰이다. 어떤 위대한 삶의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에겐 현실의 모든 게 그저 따분할 뿐이다. 현실은 삶의 가능성을 탕진시키는 곳에 불과하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 아, 정말 따분하다!"(145쪽) 페초린은 귀족 여인에게 접근하지만, "난 가끔씩 자문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유혹할 생각도 없고 결코 결혼도 하지 않을 아가씨의 사랑을 이토록 고집스럽게 얻으려하는 걸까"(137-8쪽)라고 반문한다. 그 와중에서 페초린은 그녀를 짝사랑하는 친구 그루쉬니쯔키와 결투를 벌여 결국 그를 죽이고 만다. 마찬가지로 날 사랑하느냐고 묻는 귀족 여인에게 페초린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곧 떠난다. 명예롭지 못한 결투의 결과인 친구의 죽음은 그저 헛되기만 하고,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가능성이란 처음부터 소진되고 없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에게 진실이란 사랑에도 죽음에도 없으며, 오직 이런 일을 행한 악마적인 자신을 드러내는 일 뿐이다. 그는 오직 내면 속에서만 진실할 뿐이다. 한때 그와 근무를 같이했다가 만난 퇴역군인 막심 막시미치에게 페초린이 던져준 노트, 페초린의 일기란 그것을 통해서만 수수께끼가 드러나는 악마적인 인간의 내면의 기록이다. 그 내면의 진실여부, 즉 내면 자체의 허위의식이란 그 다음의 문제다. 소세키의『마음』으로 돌아와 생각하면, 선생은 그나마 고백 속에서도 놀랍도록 진실한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에겐 아직 청년기의 순수함이 살아있다. 왜 그가 그에게 접근하려는 주인공인 학생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지도 분명해진다. 그는 학생을 통해 자신의 젊음을 보충하고 싶었던 것이다. 선생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지 않는다는 생각"(60쪽)이 든다고 젊은 주인공에게 말한 것은 이런 순수함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아마 그가 일하지 않고 노는 '고등유민(高等遊民)'이라는 점도 이런 순수함을 한몫 거드는 것 같다. 그의 세대 이후엔 곧 닥칠 불황으로 말미암아 고등유민 따위는 존재할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여기에 비해『마음』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다야마 가타이의『이불』의 스승은 자신이 공들여 키워놓은 여제자가 남학생과 연애를 시작하자 짐짓 점잖은 체하며 그 관계를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질투의 망상 속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불 속에다 자신의 얼굴을 묻고 훌쩍거리는 그의 고백은 추하기만 하고, 상황에서도 결코 진실하지 않다. 그렇게 보면, 오네긴의 낭만적 아이러니의 유희, 페초린의 삶에 대한 악마적 가능성, 선생의 순수함과 함께 근대문학이 출발한다고 볼 때, 근대문학이란 사실 그 종말을 처음부터 내장(內藏)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이네의 시집『노래의 책』이나 그의 서사시 혹은 장시(長詩)인『독일·겨울동화』나 그 밖의 시와 산문들은 나에겐 언제나 낭만주의와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문학적 전범(典範)으로 보인다.『낭만적 영혼과 꿈』의 저자인 알베르 베갱에게 하이네의 시와 산문은 낭만주의의 위대한 물결이 쇠퇴와 몰락의 징후를 보여주는 예에 불과하지만, 루카치에게 하이네는 몽환과 꿈의 미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독일근대문학의 가능성의 중요한 예다. 사랑과 죽음은 일단 상처받은 젊은 영혼 하이네에게도 시의 주요한 테마처럼 보인다. 그의 시에는 연인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절규하는 낭만적 영혼이 등장한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유령처럼 연인의 집 근처를 서성거리며, 때론 자신이 수의를 입고 이미 무덤에 들어가 있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극단적인 몽상 속에서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순결함의 상징에서부터 잔혹한 요부까지 거듭 변신한다. 하이네 시에서 반복되는 사랑과 죽음, 천상으로의 도약과 무덤 속으로의 하강, 그것들은 일단 낭만적 아이러니의 결과다. 하지만, 하이네에겐 사랑과 죽음이 유희를 벌이는 상상의 바깥에서부터 닥쳐오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수용의 자세가 있다. 낭만적 아이러니의 유희는 하이네에게 풍자로 바뀌며 풍자는 낭만주의 그 자체를 내부로부터 비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이네의 시에는 실연의 아픔을 호소하는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꿈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냉혹하고도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라는 충고처럼 보인다.『노래의 책』은 꿈과 꿈이 깨어나는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머뭇거리는 하이네 자신의 모습이 담겨져 있지만, 그는 세상의 속된 충고로부터 끝내 낭만적 영혼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낭만적 영혼에게는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의 토대를 스스로 깨닫기를 요청하고 있다. 비현실적인 몽상과 현실 인식 모두란 결국 다른 곳이 아닌 그 자신의 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오직 낭만주의에서 낭만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오는 것이다(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젊은 시기의 하이네의 시가 그러하다).「바다 유령」이라는 시를 보도록 하자. 서정적 자아는 홀로 뱃전에 서서 노발리스나 슐레겔과 같은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근원적 고향으로 생각했던 아득한 중세를 떠올리며 바다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나는 뱃전에 엎드려/꿈꾸는 눈길로 거울처럼/맑은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바닷속 깊은 밑바닥까지/점점 깊이깊이 들여다보았다,/처음엔 희뿌연 안개가 낀 듯하더니/차츰차츰 색깔들이 뚜렷해지며/교회의 둥근 지붕과 탑들이 나타났다,"(297쪽). 시 도입부에서 고양되는 서정적 자아의 영탄은 아득한 중세를 동경하는 낭만적 수사로 수십 행을 거듭하다가 "너 영원한 내 사랑아,/너 오래 전에 잃어버린 사랑아,/너 마침내 다시 찾은 사랑아-/"에서 최고조로 이르는데, 서정적 자아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나 이젠 다시 너를 떠나지 않겠다,/나 네게로 내려가련다./두 팔을 활짝 벌리고/나 너의 가슴 속으로 뛰어내리련다-". 하지만, 시의 중심부에서 최고조에 다다른 서정적 자아의 몽상은 다음과 같은 현실=산문적 어조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앞에서 인용한 시구에 이어진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보자. "그러나 바로 그 순간/선장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나를 뱃전에서 잡아당기면서/그는 화난 듯 웃으면서 소리쳤다:/"박사 양반, 당신 미쳤소?""(300쪽) 이 마지막 구절을 읽을 때, 서정적 자아와 일체가 되었던 독자는 갑작스런 충격과 함께 배반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서정적 자아가 연신 몽상 가득한 영탄 속에서 자신을 점점 망각하다가 급기야 캄캄한 바다의 심연으로 자신을 실제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 이러한 환기와 효과란 낭만적 아이러니가 낳은 악마의 자식인 잔혹한 풍자 덕택이다. 시의 마지막에서 선장의 개입은 지금까지의 서정적 자아의 몽상이 한낱 스러져버리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운다. 여기에서 "땅은 프랑스와 러시아 것이고,/바다는 영국 것이다,/꿈의 하늘 나라에서/지배권은 완전히 우리 것이다"(『독일·겨울동화』, 홍성광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4, 38쪽)라는 구절 속에 숨은, 독일의 낙후된 현실과 그러한 현실에 팽배한 독일인의 비현실적인 낭만주의를 풍자하는 후기 하이네의 통찰이 나온다.『노래의 책』에는 독일인의 몽환적 정신을 가득 채운 칸트의 숭고론과 헤겔의 절대정신에 대한 풍자도 나온다.「질문」이라는 시에 등장하는 한 젊은이는 파도와 구름이 가득한 바다에서 "오 내게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어다오,/태곳적부터 풀리지 않는 이 수수께끼를."라고 중얼거리며 수심(愁心)에 가득한 자신의 몽상과 회의를 풀어놓는다. 젊은이의 영탄조는 "말해다오, 인간이란 무엇인가?/어디서 왔는가?/어디로 가는가?/저 위 황금빛 별들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라는 구절에서 최고조로 이른다. 여기까지 본다면, 이 시구는 칸트가『판단력비판』의 숭고에 관한 장에서 광포한 바다와 회오리바람, 산사태와 숲 속의 거대한 안개를 대면한 자아가 압도적으로 느낄 법한 고양된 감정인 숭고의 체험을 묘사한 것을 그대로 서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어지는 마지막 시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도는 끊임없이 웅얼거리기만 할 뿐,/바람은 불고, 구름은 쫓겨간다,/별들은 무심히 차갑게 반짝인다,/그런데 바보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322-3쪽) 첫 시구에서 등장한 "한 젊은이"가 여기에서는 "바보"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항구에서」라는 시에서 이 바보 같은 젊은이는 무대를 바꿔 브레멘의 시청 지하 식당의 포도주 창고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내로 등장한다. 이 사내는 술을 마시면서 자신과 아마도 바닷가에 서 있던 젊은이도 함께 조롱하는 것 같다. 여기서 하이네의 비판은 칸트에서 헤겔로 이동한다. 술잔 속에서 그는 "소우주", "옛날의 민족사와 새로운 민족사,/터키인들과 그리스인들, 헤겔" 등등을 보지만, 실제로 그는 술에 취해서 환영을 보고 있을 뿐이다. 이 주정뱅이는 "내 불멸의 영혼도 비틀거리고/영혼과 함께 나도 비틀거린다"고 비아냥거리며 읊조리지만, 그 순간 그는 포도주 창고 감독에게 이끌려 나오고 있다. 서정적 자아는 이때 포도주 창고 감독에게 다음과 같이 주정한다. "그대 브레멘의 멋진 시청 포도주 창고 감독이여!/그대는 보이는가, 집집 지붕마다 천사들이 앉아서 술에 취해 노래부르는 모습이;/저 하늘에 타오르는 태양은 술에 취해 새빨개진 코일 뿐,/세계 정신의 코다;/그러면 새빨간 세계 정신의 코 주위로/술에 취한 세상 전체가 돈다."(325, 327-8쪽) "새빨간 세계 정신의 코"라는 재미있는 표현에서처럼, 이 시는 헤겔의 세계 정신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하이네가 정작 의도한 것은 그런 관념적인 세계 정신과 같은 학설만 유행하는 독일의 낙후된 봉건적 현실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노래의 책』의 후반부는 이처럼 낭만적 자아와 그런 자아를 풍자하는 또 다른 자아를 무대 위의 두 적대적인 등장인물처럼 배치하는 효과를 꾀하는 시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이네의『노래의 책』은 아마 내가 읽은 독일시 중 횔덜린 시와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또 앞으로도 자주 참조할 시집이 될 것이다.

    다섯 권의 책을 읽었지만, 애초 내가 기대했던 '사랑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어느새 '낭만적 몽상과 현실인식의 길항과 갈등' 정도로 이름붙일만한 주제로 바뀐 것만 같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도 느슨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주제를 애초에 잘못정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아직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직 사랑과 죽음, 이 둘 사이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더 나아가면, 가능성과 현실, 낭만적 꿈과 아이러니 등등에서.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지 모른다. 내 자아가 분열된 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리라. 어떻게 하면 둘 사이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을까, 오딧세우스처럼 귀를 열어놓고 밧줄로 돛대에 몸을 묶은 채 사이렌의 매혹적인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마저도 타자들의 고된 노동을 감수하게 하는 일이라면,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마땅히 돌아갈 고향 이타카도 없이, 여전히, 항해중이다. 다음 기회에 위 작품들에 대해 더 자세히 말했으면 한다.

    보론 : 푸쉬킨과 레르몬토프

    언제 <오네긴>과 <영웅>에 대해 다시 쓸지는 당장 기약할 순 없지만, 이 긴밀하게 연결된 두 작품이 아주 매혹적이라는 사실만큼은 당분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두 작가, 혹은 두 작가의 작품에 끼친 바이런의 영향력에 대한 것은 문학사적 사실을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에게 매혹적인 인물이었던 바이런, 그리고 바이런적 영웅, 바이런의 극시인 <맨프레드>의 주인공인 파우스트적 인물 '맨프레드'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겨우 '마녀가 맨프레드를 저주하는 주문'이라는 시를 읽어봤을 뿐), 나는 바이런의 '맨프레드' 대신에 키에르케고르의 '유혹자'를 집어넣었던 것 같다(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보니, 괴테는 바이런적 영웅이 자신의 파우스트와 비슷한데에 대해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보이지만, 또한 이 둘이 서로 다르다는 것도 지적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유혹자의 일기>는, 나에겐 낭만적=근대적 사랑에 대한 비판으로 보였다. 유혹자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면, 심미적 인간이며, 타인=여자에 대해서는 매혹적인 악당이다(물론 이런 유혹자에겐 바이런적 영웅이나 파우스트적 면모는 별로 없어 보인다. 유혹자는 실은 '돈 주앙'에 더 가깝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고백을 통해서만 어떤 진실을 드러낸다. 심미적 인간이 진실하다면, 그것은 오직 '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성찰, 심미적 인간의 고백과 내면 일기가 작품의 주된 '형식'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이것은 키에르케고르와 레르몬토프의 작품, 더 나아가 소세키의 <마음>까지 관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루카치는 <영혼과 형식>에서 키에르케고르에 대해 언급하면서 '형식은 윤리적'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오네긴>과 <영웅>에서의 사랑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재미있다. 나는 따찌야나와 베라 모두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영웅>의 뻬초린은 나에겐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의 '적그리스도'인 스타브로킨과도 매우 닮아보였다.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여인이 이 두 구제불능의 인간 곁을 끊임없이 맴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둘다 그 자체로 낭만적=악마적 화신이기 때문이다. 빼초린은 인간적인 것이라고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천사=악마 그 자체였다. 그는 마치 저에겐 영원히 방랑하는 삶을 선고받은 자, 결코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저주받은 불멸의 인간처럼 보인다. 그런 뻬초린의 이미지를 통해 레르몬토프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아마도 사랑의 불변성일 것이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영혼의 불멸=사랑의 영원함을 주장하는 서구의 오래된 철학적/문학적 전통이다. 일종의 '초월성'에 대한 관심이다. 철학에서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불멸의 신체'이나 문학에서 드라큘라 등을 통해 나타난 '불멸의 영혼'이 아마 이런 전통의 화신들일 것이다.

    한편 <오네긴>은 나에겐 교양소설의 마지막 가능성처럼 보였지만, <영웅>은 정확히 반(反)교양소설로 보인다. 사랑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성찰의 결과다. 푸슈킨은 성숙을 긍정하지만, 레르몬토프는 부정한다. 산문과 시의 대립? 아마 그럴 지도 모른다. 사랑을 통해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관점과 그것마저 세속적 변덕과 타협에 다름아니라고 일축하는 관점(푸슈킨에겐 이 두 관점이 모두 내재해 있지만, 곧 전자로 나아가고 레르몬토프는 후자의 관점을 고수한다). 나는 일단 어느 편에도 손을 들지 않겠지만, 지금은 레르몬토프나 뻬초린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 문학, 특히 소설은 대단히 세속적인 예술의 장르이며 또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좀 애매모호한 말이기는 하나, 문학의 형이상학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난 다음, 거기에 대해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반성해본다. 내가 보기에 가장 속물적인 문학 장르는 소설, 그 중에서도 특히 일련의 교양소설들이다. 시간과 변화에 너무나도 충실한 세속적 문학적 흐름의 다른 편엔 또 어떤 문학의 신기루가 흔들거리고 있을까? 초월적 문학? 그런 게 있다면, 그 신기루를 찾아 길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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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nomadman | 2005년 08월 24일
    미셸 투르니에,『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김화영 옮김, 민음사, 1995. 0. 다시 읽기, 다시 쓰기 미셸 투르니에의『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다니엘 디포우의『로빈슨 크루소』가 없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소설이다. 마찬가지로 디포우의 소설도 한 선원의 표류이야기에 대한 신문기사가 없었더라면 쓰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투르니에는 어디선가 그가 디포우의 소설을 다시 쓰기로 결심한 두 가지 이유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디포우의 원작자체가 가지는 제국주의적 야심, 곧 문명인이고 기독교인이고 백인인 사람이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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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투르니에,『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김화영 옮김, 민음사, 1995.

    0. 다시 읽기, 다시 쓰기

    미셸 투르니에의『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다니엘 디포우의『로빈슨 크루소』가 없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소설이다. 마찬가지로 디포우의 소설도 한 선원의 표류이야기에 대한 신문기사가 없었더라면 쓰여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투르니에는 어디선가 그가 디포우의 소설을 다시 쓰기로 결심한 두 가지 이유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디포우의 원작자체가 가지는 제국주의적 야심, 곧 문명인이고 기독교인이고 백인인 사람이 야만인을 개종시키고 설득하려하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 속의 프라이데이가 철저히 예속되고 대상화된 존재, 다시 말해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취급되는 데에 대한 불만이다. 투르니에는 1966년『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하,『방드르디』)을 발표하면서 위의 두 가지 문제점을 훌륭히 극복해낸다. 이는 작자 편에서 보면 원작에 대한 다시 쓰기이고 독자 편에서 보면 원작에 대한 다시 읽기인 셈이 된다.

    1. 로빈슨 vs 방드르디

    로빈슨은 미셸 투르니에가 '다시' 읽은 디포우의 로빈슨 크루소의 신화적 현현이다. 로빈슨은 단순히 어떤 소설의 허구적 인물이라는 기능을 벗어나 하나의 일반명사처럼, 디포우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신화적 인물이다. 신화라는 말이 너무 까마득한 태고적 세계에 대한 비젼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아뭏든 로빈슨은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나 세익스피어의 '햄릿'처럼 우리들에게 친숙한 서구의 근대적 인간상의 하나다. 로빈슨은 서구 문명의 근대적 완성자라는 씨니피에 (=의미)를 함축하는 신화소(神話素)로 기능하기 때문에『방드르디』속에서의 그의 계획, 생각, 공상, 작업의 발걸음은 그대로 서구문명 전체를 답습하는 과정의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다.
    『방드르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1장부터 6장까지 방드르디가 출현하기 전의 로빈슨(『방드르디』에서는 로뱅송)의 고독한 모험이 그 한 부분이라면, 7장부터 마지막 12장까지 로빈슨이 방드르디와의 만남으로 자기 이외의 타자(=타인)를 수용하게 되는 삶이 다른 나머지 부분이다.


    2. 로빈슨 : 타자의 부재

    로빈슨은 난파 후 그 자신이 "탄식의 섬"(22)이라 명명한 문명과는 동떨어진 자연의 세계속에서 탈출을 기도하려고 '탈출호'를 만든다. 하지만 그는 배를 완성한 후 어처구니없게도 혼자서 그 배를 끌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배의 진수에 실패한 로빈슨은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호모 파베르의 모습을 단숨에 벗어버리고 진흙과 배설물의 진창에 몸을 맡기고 죽은 누이동생의 환영에 미쳐가는 동물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 광기의 상태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 전까지 그의 삶은 오로지 바다를 바라보고 벗어나려는 희망에만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그는 관심을 바다에서 섬으로 돌리게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로빈슨이 살아야 할 곳은 섬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로빈슨에게 광기와 죽음의 환영을 불러일으킨 원초적 자연을 상징한다면 섬(=육지)은 고독한 로빈슨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죽음에 대항해 노동으로 일궈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야 하는 에스페란자(희망)의 땅이다. 일종의 프루스트적 연상을 통해 로빈슨은 자신이 새 삶을 시작하는 터전인 섬에게 에스페란자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이제 로빈슨은 섬을 지배하고 개척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는 다시 호모 파베르가 된다. 우리는 이 부분의 텍스트(3,4장)를 서양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의 원시적 문명 사회의 탄생과 대응시켜 읽을 수 있다. 로빈슨이 하는 일은 글쓰기(항해일지, 저장물 명세서), 지도(공간), 일력, 시계(시간) 만들기이다. 다시 말해 로빈슨은 문자를 쓰기 시작하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주권자로 개입한다. 그는 "동물성의 심연으로부터 반쯤 헤어나와 정신세계로 진입"(54)한다. 로빈슨은 섬에서 문명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그는 개 텐의 출현으로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하며, 계속되는 작업들을 통해 스스로를 총독, 장군으로 임명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립해 나간다. 들뢰즈/가타리의『앙띠 오이디푸스』를 응용하자면, 원시적 사회 모델 다음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삶의 체계는 군주적 사회 모델에 대응한다. 그 자신이 입법자, 군주, 장군이 되어 법령을 선포하고 국가를 구획짓고 영토를 요새화하는 삶의 모델. 하지만 스스로 드러나듯이 이러한 문명화 과정은 로빈슨 혼자, 즉 '사회'라는 영역이 빠져버린 상태에서 이룩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부재라는 말은 타자=타인의 부재와 같은 말이다. 헌장 준수, 형법 이행, 일과의 엄격한 실천, 관습·규제 등의 "그 모든 콜세트도 그에게 열대 대자연의 야성적이고 다스릴 길 없는 존재를 고통스럽게 실감하고 문명된 인간으로서의 그의 영혼에 고독이 끼치는 파괴력을 내심으로 느끼지 않도록 해 줄 수는 없었"(96)던 것이다. 끊임없이 엄습하는 고독속에서 로빈슨은 "우리들의 형제, 우리들의 이웃, 우리들의 친구 혹은 원수, 하여간 그 누구, 제발 하느님, 그 누구"(65)를 갈망한다. 그는 과거에 그가 빠져들었던 진창의 구렁텅이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다. 로빈슨은 다시 과감한 성찰을 한다. 즉 그 자신과 동일시되기도 했고 그가 거기에서 노동의 과정을 통해 이룩한 여러가지 삶의 업적을 가능케 했던 에스페란자를 그 자체로 "순수한 시선"(118)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노동과 개척, 지배의 대상이었던 섬. 이제 로빈슨은 섬을 '소유' 관념에서 바라보지 않고 '존재' 자체로, 더 나아가 사랑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은 5,6장에 걸쳐서 짙은 에로티시즘의 분위기를 풍기며 서술된다. 그는 섬 안에서 어느 동굴을 발견하고 거기에 들어가 눕는다. 가스통 바슐라르라면 요나 컴플렉스라고 불렀을 만한 체험인 동굴속에 태아처럼 누워있음을 통해 로빈슨은 섬이 그가 유년시절에 자주 안기곤 했던 어머니의 품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또한 오랫동안 잠재되어있던 성적 욕망을 벼락 맞은 나무둥치의 구멍을 통해 해소한다. 이때 섬은 로빈슨의 약혼자로 변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지와의 성적 결합을 통해 에스페란자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인간과 자연의 성적 교감은 인간 자체를 원소적 상태로 분해시켜 자연의 일부분으로 편입하도록 하는, 다시 말해 로빈슨에게서 인간적 조건을 박탈하는 아슬아슬한 모험이기도 하다. 그의 식물적 섹스는 "위험한 막다른 골목일"(145)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로빈슨은 이러한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고, 언젠가는 그도 바람 속에서 분해되어 자연의 원소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6장까지 인간이라는 주체가 홀로 이룩할 수 있는 모든 위업을 로빈슨의 기나긴 실패와 노력, 부단한 성찰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 과정은 분명 찬탄할 만하고 인간의 위대함에 대해 스스로 긍지를 느끼게 할 지경에 이르도록 해준다. 확실히 투르니에는 황량한 고독 속에서도 로빈슨이라는 인간의 대표가 행하고 이룩할 수 있는 가능한 한 모든 과업을 뛰어나게 묘사하고 서술하였다. 하지만 소설은 이제 중반부에 도달했다. 로빈슨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타자인 방드르디를 만나야 한다. 1∼6장을 걸쳐 텍스트 표면을 서성거리던 타자에 대한 예감(로빈슨 자신의 고독, 아로캉족의 출현, 섬과의 교감 등)은 7장에서 방드르디가 출현하면서 구체적으로 육화된다. 7장부터가 진짜 소설의 시작인 셈이다. 우리는 두 번째 절에서 로빈슨이 방드르디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인간"(336)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할 것이다.

    3. 방드르디 : 타자와의 만남

    로빈슨은 아로캉족의 잔인한 의식의 과정을 지켜보다가 한 흑인 혼혈아를 우연히, 본의 아니게 구해준다. 그러나 우연은 필연이 되고, 로빈슨은 이 혼혈아에게 "반쯤은 생명이 있고 반쯤은 추상적인"(176) 방드르디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로빈슨은 타자를 희구해 왔지만 전혀 엉뚱한 방식으로 타자는 그를 침투한다. 방드르디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로빈슨에게 복종을 하고 로빈슨은 이를 주인과 노예의 지배/복종관계로 대치시켜 놓는다. 처음에 방드르디는 주인에 대해 놀랄만큼 헌신적으로 복종한다. 하지만 차츰 방드르디는 천진난만하게 터뜨리는 '웃음'으로 로빈슨을 둘러싸고 있는 종교의식, 법적 통치의 모든 심각한 외관을 건드린다. 웃음이라는 테마는 투르니에 소설 곳곳에서 발견되는 요소로 웃음은 옥타비오 파스의 말을 빌면, "그것이 가서 닿는 것을 모호하게" 만드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로빈슨은 불안해져 다시 섬의 통치자로 군림하고 방드르디와의 주인/노예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소설의 8장은 방드르디가 주인공이 되고, 서술은 그에게 초점이 맞춰진 채 진행된다. 방드르디는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적 삶의 구현체로 나타난다. 방드르디는 선인장에 옷을 입히고, 보석으로 치장한다. 진흙에 빠진 개를 구하기 위해 논물을 빼버린다. 가지와 뿌리를 거꾸로 하여 나무를 심는다. 그 스스로 식물인간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로빈슨의 놀라움은 극도에 달"(194)한다. 로빈슨에게 방드르디는 "자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세운 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교란자"(197)로 변한다. 주인과 노예라는 외관적인 명령/복종의 관계는 그 내부로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8장 끝에서 일어나는 화약 폭발 사건은 상징적이다. 로빈슨이 이제까지 성취하고 건설했던 모든 문명의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서술은 일찍이 투르니에가 레비 스트로스의 강의를 경청하면서 참고한 문명과 야만의 이원적 대립과 그것의 역전과정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기술된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서구중심주의(=문명중심주의=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맞물린다. 이제 로빈슨은 문명과 이성과 질서의 외피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삶을 방드르디와 함께 살아야 한다. 이전까지 로빈슨은 대지적 삶을 가꾸고 일구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그는 방드르디에게 "공기"처럼 수직 상승하고 비상하면서 태양에 가까와지는 원소적 삶을 배운다. 수평적 대지의 삶에서 수직적 대지의 삶으로의 변모 과정은 "스페란자의 수호신"(226)인 거대한 삼나무가 뽑혀져 뿌리를 하늘로 향하는 모습을 통해 맨 처음으로 나타난다. 다시 한번 들뢰즈/가타리를 인용하자면, 가지와 몸통이 차례차례 뻗어나가는 올 곧은 나무는 서양사유의 발달과정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대립하는 것이 "리좀(Rhizome)"이다(『천개의 고원』서론 참조). 리좀은 줄기와 뿌리가 구별되지 않는 식물을 이름하는데, 나무의 견지에서 보자면 리좀은 나무라 명명할만한 어떤 속성도 흐려놓는 변태이며, 몸통, 가지, 줄기, 잎이라는 수형도적 질서에 따른 생장과정을 흐려버리는 식물의 잡종이다. 리좀은 식물의 위계질서 내에서 배제되어 생태계의 변두리로 밀려나 살 수 밖에 없는 식물이다. 그렇다면 서양사상사속에서 진행되어 왔던 나무의 형이상학적 체계, 즉 서양문명의 건설적, 파괴적 성격에 일조를 해온 서구중심주의적 사유에 대항해 리좀은 비체계적, 일탈적 사유이면서 동시에 체계 전복적인 사유의 가능성인 것이다. 그 과정이 소설 속에서는 방드르디가 거꾸로 심어놓은 나무의 "뿌리 끝에 파릇파릇한 순이, 심지어는 여러 다발의 잎사귀들이 돋아나" "땅에 묻힌 가지들이 뿌리로 둔갑하고 수액이 거꾸로 순환"(194)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로 나타난다.

    계속해서 로빈슨은 방드르디에게 유희하면서 사는 삶을 배운다. 방드르디는 땅과 생식의 상징인 숫염소 앙도아르를 죽여 그 가죽으로 연을 만들어 띄우기도 한다. 연을 공중의 한 가운데로 띄워 날린다는 것은 지금까지 대립되었던 수평적 삶(대지, 땅의 삶)과 수직적 삶(태양, 하늘, 공기의 삶)이 연결된다는 뜻이다. 그러한 일련의 놀이과정을 통해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주인/노예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된다. "마침내 로빈슨은 방드르디의 발을 붙잡아 자기의 목 위에다 얹었다."(254) 방드르디가 로빈슨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전관계는 로빈슨이 복종하는 노예가 되고, 방드르디가 지배, 통치하는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방드르디를 통해 로빈슨이 자신의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일어선다는 의미이다. 로빈슨의 항해일지로만 구성된 10장은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징적이며 시적인 언어로만 기술되어 있지만 그것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원초적 태양의 삶으로 회귀하는 로빈슨을 통한 새롭게 탄생하는 인간성에 대한 예감이다. 시간이 정오의 태양처럼 짧게 타오르는 직관의 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성찰을 보라.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사랑스러운 타자 전체로서 인식하고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면서 문명적 시간을 벗어나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순환적 과정에 참여한다. 다시 니체를 인용하면 로빈슨은 삶과 죽음이라는 운명을 긍정하고 내적 자연을 고양시켜, 생의 활력으로 살아가는 초인(超人)의 문학적 현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4. 스피노자적 소설

    로빈슨은 처음 섬에 도착해서 진창과 배설물의 '상상'적 구렁텅이 속에서 살다가 거기에서 빠져나와 '이성'의 법칙을 통해 땅을 정복하고 스스로 지배자로 군림한다. 그리고 방드르디를 만나 타자와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배우며 태양적 삶 속에서 삶과 자연을 일치시키는 '직관'의 계시를 얻는다. 이러한 삶의 단계는 스피노자가『에티카』에서 기술한 인식론의 실천적 기획과 대응하는 것으로, 곧 제 1부류의 인식이자 허위의 유일한 원인인 감각적·주관적·상상적 삶에서 제 2부류의 인식인 이성적·기술적·과학적 삶, 그리고 마침내 제 3부류의 직관이라는 최고의 명징한 인식에 도달하는 삶의 과정과 맞먹는다. 투르니에의 친구이자 철학자인 질 들뢰즈라면『방드르디』를 "진정한 스피노자적 소설"이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11장에서 문명세계의 상징인 "화이트버드호"가 출현하여 선장이 로빈슨에게 다시 육지로 되돌아가라고 권하지만, 그는 영원한 현재만이 있을 뿐인 섬에 방드르디와 함께 남고자 한다. 왜냐하면 육지와 문명으로 대변되는 "피폐와 먼지와 폐허의 세계 속으로 추락할 생각"(295)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에서 "방드르디"가 화이트버드호의 물질적 삶에 매혹되어 선원들과 함께 떠나버려 로빈슨은 절망하고 만다. 그러나 뱃사람들의 폭력에 못 이긴 어린 수부인 자앙 넬자페어브가 몰래 배를 탈출해 로빈슨과 조우한다. 우리는 방드르디의 사라짐을 야만적 삶의 문명세계에 대한 매혹으로 해석하거나 섬을 떠나버린 그를 문명세계에 대한 전도사로서 간주할 수 있다. 어쨌든 방드르디는 떠났고, 삶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로빈슨에게 "하늘의 신인 주피터의 날"이자, "어린아이들의 일요일"(305)의 뜻인 죄디(목요일)소년과의 만남을 제 5원소의 삶, 새로운 생명에 대한 염원으로 간주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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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를 심은 사람을 만나고서
    seubasu | 2005년 08월 24일
    세상에 이렇게 내용이 간략하면서도 내 마음의 닿는 글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장 지오노가 쓴 이 은 그 책의 내용을 간략해 보면 단 한 명의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거대한 숲으로 변해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는 아주 간단한 내용으로 그 전문 또한 판화가 실린 삽화까지 포함해서 겨우 30페이지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이 담은 내용은 너무 거대해서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세상 모든 일이 초연해서 오로지 나무를 심는 일에만 내 전 생활을 걸 수 있을가?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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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렇게 내용이 간략하면서도 내 마음의 닿는 글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장 지오노가 쓴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은 그 책의 내용을 간략해 보면 단 한 명의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거대한 숲으로 변해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는 아주 간단한 내용으로 그 전문 또한 판화가 실린 삽화까지 포함해서 겨우 30페이지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이 담은 내용은 너무 거대해서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세상 모든 일이 초연해서 오로지 나무를 심는 일에만 내 전 생활을 걸 수 있을가?
    솔직히 누가 잘 했다고 훈장을 주거나, 칭찬을 해 주는 이도 없고 그 인근에는 사는 이도 별로 없는데, 미치지 않는 이상 난 그런 일은 할 수 없을 것같다.
    그 땅이 내 땅도 아닌데 말이다. 이럼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너무 사회적 기기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인가?
    하지만 과연 몇이나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같은가?
    오늘날 우리의 생활은 얼마나 타락했는가?
    서로 밟고 올라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에게 세상은 약육강식의 또 하나의 밀림이다. 서로 싸우지 않음 아무것도 되지 않아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넘쳐나는 자동차, 빠르다 못해 이젠 하이퍼시대라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이젠 우린 신인류라고 칭하며 지구야 죽든 말든 나 하나 잘 살면 그만인 이 시대에.......
    사람이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조용히 말하고 있다.
    장 지오노는 실제로 이런 사람을 여행 도중에 만나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탄생한 소설이 바로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작가의 허구에서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또 한번 가슴이 찡하다. 허구속에서 태어나 그런 세상을 만든 사람이였다면 흔히 그건 허구잖아. 허구니까 가능하지, 바보도 아니고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하겠냐 라고 치부하고 그냥 책으로만 나 두었겠지만, 그가 실제로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썼다고 하니, 정말 세상이란 그런 작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흔히 알지만, 돈도 아니고 공기도 아니고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이 지구이다. 지구안에 공기도, 물도, 문명도 우리도 있는 것이다. 지구가 죽어 버리면 그야말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젠 정말 지구를 그만 괴롭혀야 하는 거 아닌가?
    지구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오존이 파괴된지는 오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이 생기고 지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젠 지오노가 주장하는 바대로 환경을 위해 이제 인간이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나 하나부터 바뀐다면 지구 전체로 그 효과가 퍼질 것이니, 지구는 이제 그만 비명을 질러도 될텐데.......
    3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책에서 난 오늘 지구와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지구에게 방자하게 굴고, 그녀를 괴롭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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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루스의 젖가슴
    눈먼고양이 | 2005년 08월 24일
    전혜성 전혜성은 연극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녀가 '작가의 말'에 썼듯이 죽어서 극장에 묻히고 싶을 만큼 연극을 좋아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에는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만난 사람과 그들 사이의 질척대는 사랑 혹은 집, 가족, 직장 따위의 무대 밖 이야기의 전개가 없다. 오로지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관계에만 주목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읽는 이를 줄곧 괴롭힌다. 그러니 연극을 풋사랑하는 나 같은 독자라면 이 소설을 마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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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혜성


    전혜성은 연극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녀가 '작가의 말'에 썼듯이 죽어서 극장에 묻히고 싶을 만큼 연극을 좋아한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의 <트루스의 젖가슴>에는 한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만난 사람과 그들 사이의 질척대는 사랑 혹은 집, 가족, 직장 따위의 무대 밖 이야기의 전개가 없다. 오로지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관계에만 주목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읽는 이를 줄곧 괴롭힌다. 그러니 연극을 풋사랑하는 나 같은 독자라면 이 소설을 마음에 안 들어 할지도 모른다. 대개의 소설들은 연출가를 사랑하는 어린 배우, 그녀의 눈에 비친 얽히고설킨 극단 사람들과의 관계로 세상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남녀간의 사랑은 극히 배제되어 있다. 오히려 무의미하게 그려진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내 느낌은 연극을 사랑하는 저자의 올가미에 단단히 걸려든 것이라는 것이다. 기대했던 어떤 에로틱한 느낌조차 주지 않는 소설이라니.
    연출가 이실이 만들려는 독백극 <트루스의 젖가슴>의 내용은 이 책의 중간중간에 고딕체로 표시돼 있다. 그것은 소저너 트루스라는 실존했던 흑인 노예 여인의 삶을 그린 것이다.
    소저너 트루스는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초라한 흑인 노예로 등은 온통 채찍 자국투성이고 매 맞고 거친 노동에 인생 자체가 부르텄지만 그래서 그녀가 하는 말은 더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그녀는 원래 벨라라는 이름의 노예였지만 그녀 속에서 주님은 자신이 이끄는 곳으로 가서 진리를 전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진리를 전하는 사람)라는 이름이 되어 단상에 올라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소저너 역을 맡은 원로 배우 데레사는 무대를 떠났다가 이 연극을 계기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되어 소녀 같은 열정과 흥분으로 대본 연습에 몰입하다가도 때로는 노회한 배우 특유의 거드름을 피우며 연습에 집중하지 않아 이실의 애를 태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연극 중 소저너가 자신의 젖가슴을 보여주면서 "댁들도 내 젖을 먹고 싶으시오?"라고 말하는 부분에 이르러서 절정에 이른다. 데레사는 반드시 그 장면을 끼워 넣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생트집을 잡지만 이실은 연극에서 그 장면이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뺄 수가 없다고 당당하게 맞선다. 과연 연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싶은 두 사람의 팽팽한 맞섬은 결국 데레사가 이실에게만 수술 자국만 남은 가슴을 열어 보이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 소저너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읽힌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팔려 나간 엄청난 충격. 자라선 사랑하는 남자를 보는 것조차 금지당했던 분노와 슬픔. 그치지 않는 우박처럼 내 머리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고통의 매를 맞으면서. 나는 점차 고통이란 걸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터득하게 되었다우. 고통을 밀치려 하면 할수록 그에 먹히고 말 뿐이지요. 그러므로 고통과 손잡고 걷는 법을 익혀야 한다우. 고통과, 약간만 떨어져서 함께 가는 방법 말이우.... 아, 물론 아주 약간만이지요. 아주아주 약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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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잇
    tragus | 2005년 08월 24일
    제목을 저리 쓰고 한참을.. 생각했다.. 아니다.. 궁리질했다. 어떻게 글을 전개시킬까 하고...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이곳이 무엇을 쓰는 곳이지? 페이지를 뒤로 돌려 이곳은 어떤 곳입니다 하는 친절한 안내문을 찾아냈다. "시, 소설, 수필, 전기, 평론 등 문학분야에 대한 서평을 올리는 곳입니다." 서평? 갸웃.. 검색엔진의 사전을 돌려 서평을 찾아보았다. "서평(書評) : [명사]책의 내용을 평한 글" 평? 갸웃. 다시 찾아볼 밖에. "평(評) : [명사] 사물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잘되고 못됨 등을 들어 평가함,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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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저리 쓰고 한참을.. 생각했다.. 아니다.. 궁리질했다.
    어떻게 글을 전개시킬까 하고...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이곳이 무엇을 쓰는 곳이지?
    페이지를 뒤로 돌려 이곳은 어떤 곳입니다 하는 친절한 안내문을 찾아냈다.
    "시, 소설, 수필, 전기, 평론 등 문학분야에 대한 서평을 올리는 곳입니다."
    서평? 갸웃.. 검색엔진의 사전을 돌려 서평을 찾아보았다.
    "서평(書評) : [명사]책의 내용을 평한 글"
    평? 갸웃. 다시 찾아볼 밖에.
    "평(評) : [명사] 사물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잘되고 못됨 등을 들어 평가함, 또는 그 평가"
    여기까지를 찾아냈을 때, 평론가들이 갑자기 위대해 보였다.
    물론 전문적인 평을 원하는 것은 아니예요...라고 리더스가이드 관리자는 나를 위로할 테지만, 그냥 평이라기보단 소감이나 느낌 정도가 다일 나의 끄적거림은 '평'이란 말 앞에 주눅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뭐.. 이 책 <포스트잇>을 읽으며 내가 통쾌했던 건 김영하식의 배째라 정신이었다. 그 정신으로 끄적거려볼 참이다.
    일관성을 가지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자신이 없으므로, 파편 몇 가지를 늘어놓는 게 다일 것이다.

    먼저

    이 책의 제목인 '포스트잇'이라는 글의 전문은 이렇다.
    '아무 흔적없이 떨어졌다 별 저항없이 다시 붙는, 포스트잇 같은 관계들. 여태 이루지 못한, 내 은밀한 유토피아이즘.'
    그가 가진 관계들은 어쩌면, 아니 분명히 잘 떨어지지 않는 어떤 것이거나, 떨어졌대도 흔적이 남는다거나, 다시 붙이려면 저항이 느껴진다거나, 아니면 다시 붙여지지 않는 그런 것들일 테다.
    아마도 암스테르담에서 반지 하나를 달랑 건네주고 헤어져버린 간호조무사(허영)라든지, 언제나 패티김의 '이별'만을 불렀던, 농사꾼의 영혼을 갖고 있는 아버지(이별)라든지,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곡을 따라 되살아나는 눈사람(눈사람)이라든지, 헤어진 여자친구가 건네주었던 헬렌 메릴의 노래(습격)라든지...
    하지만 김영하는 어쩌면 끈적일 수도 있는, 본질은 음습하고 축축한 이것들(그는 괴물이라 표현했다)을 경쾌한 스타카토로 끊어 노래한다.
    '구불구불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 깊고 깊은 지하실'에 내려가 '좁고 더러운 감방 안'에서 데리고 올라온 '추악한 괴물'이 지상에 나서는 순간 '부드러워지고 멀쩡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랑해진 괴물들에게 고맙단 말을 하고 싶다.
    낄낄거리다가도 문득 발목을 잡혀 내 눈은 허공을 떠돌곤 했는데, 그것은 내 안의 괴물들을 들여다보는 순간들이곤 했다. 아직은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 나의 괴물들.
    만약 지상으로 올라온 그의 괴물들이 여전히 음습하고 끈적거리고 축축한 그대로였다면, 난 아마 내 안의 괴물들을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그는 고민한다.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들어 김영하는 소설가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개기고 피하고 도망가고 드러눕는' 방식으로 세상이 '오히려 더 근본적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해찰과 두통) 고민하고,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내가 문제삼는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 서 있다. 세월이 지나면 게임은 영화보다 더 위력적으로 소설 독자들을 장악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게임인 한, 게임을 표방하는 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지점, 그 너머에 '작가'들이 게릴라가 되어 유격전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그 둘을 가르는 전선의 이름은 시간, 달리 말하면 죽음, 또 달리 말하면 부조리와 불가해함일 것이다. 그곳은 유토피아는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지옥도 아닐 것이다. 연옥쯤으로 해두는 게 좋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게임)
    그러나 내가 우와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작가가...라고 생각했던 김영하는, 처음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자신을 가장 괴롭힌 문제는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존재라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헌데 어느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은 '문제적 인간들로 가득찬 곳에서 나는 별다른 문제를 가지지 않은 역설적 의미의 문제적 인간'이었음을 발견하고 '아무것도 특별할 게 없는 그러나 그렇기에 아주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별로 특별할 게 없는 내가, 내 방식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길이 있겠지. 그러면서 지금도 쓰고 있'단다.(평범)

    마지막으로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은 적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항해가 줄을 잇기 시작하고, 인기 작가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하던 그때, 나는 그들의 소설을 읽고나면 마치 남의 일기장을 엿본 듯한 기분이 들어 어떤 수치심까지도 느끼곤 했다.
    차라리 그들이 잡문이나 산문의 형식을 빌어 이렇게 그냥 툭 뱉어주었더라면, 그때의 나는 훨씬 행복했었을 것이다.
    여튼. 나는 김영하의 이런 식이 좋다.
    그래. 이게 내 안의 괴물들이야. 어쩔래? 배째.
    이러면서도 사실은 치고 빠질 구멍을 빤히 보이게 만들어놓고 배째라고 덤비는 그의 영악함이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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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의 선물
    하늘닮은호수 | 2005년 08월 24일
    책 첫 장, 짧으나 인상적인 자끄 프레베르의 시 , 그러나 그것이 이 소설에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이 시에서 새가 가져다 준 선물―그것은 해바라기 씨앗이었다.―이 곧 그를 어린 시절 감옥으로 인도하는 열쇠였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녀에게 새의 선물은 아마도 카페의 정원수 사이로 뭉클뭉클 움직이는 더러운 잿빛 털뭉치였을 것이다. 그녀는 잿빛 털뭉치를 보며, 그것을 혐오하면서도 혐오감을 이겨내기 위해 대상을 똑바로 응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그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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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게 새의 선물은 무엇이었을까? 쥐?>>

    책 첫 장, 짧으나 인상적인 자끄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 그러나 그것이 이 소설에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이 시에서 새가 가져다 준 선물―그것은 해바라기 씨앗이었다.―이 곧 그를 어린 시절 감옥으로 인도하는 열쇠였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녀에게 새의 선물은 아마도 카페의 정원수 사이로 뭉클뭉클 움직이는 더러운 잿빛 털뭉치였을 것이다. 그녀는 잿빛 털뭉치를 보며, 그것을 혐오하면서도 혐오감을 이겨내기 위해 대상을 똑바로 응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그녀는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그런 자신의 모습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자신 외에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 다짐한 그때, 12살에 이미 완성되어버린 것이라고 그녀는 나지막히 읊조린다. 그녀는 이렇게, 어린 시절 감옥 문을 연다. 그렇다면 그녀의 12살, 그녀에겐 그 시절이 감옥이었을까? 그녀는 감옥처럼 차가운 삶의 벽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자신의 감정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에 주변 사람들의 삶을 요리조리 살필 수 있는 자유로움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넘나드는 그녀의 이성 또는 감성이 충분히 자유로웠다고 하는 것은 그녀의 아픔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이 될까?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그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감옥과 같은 그녀의 어린 시절 아픔은 그녀의 놀라운 통찰력과 성숙함으로 극복되고 있었다. 단, 이때 그녀의 통찰력과 성숙함은 너무나도 차가운 것으로 삶에 대한 냉소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녀의 통찰력과 성숙함은 이모와 할머니, 삼촌은 물론 서흥동 감나무집에 살고 있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삶을 요리조리 뜯어보기에 이미 충분한 것이었으며, 이들의 삶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녀의 통찰력과 성숙함은 나날이 발전했던 것이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한 요인이 바로 삶의 냉소 안에 확고히 자리잡은 그녀의 통찰력과 성숙함이었다. 나도 소녀 시절은 보낸 바 있다. 그러나 나의 소녀 시절이 막연한 기대, 설렘, 들뜸 그리고 투정, 짜증 등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바로 퍼부어 거리는 것이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아주 차분하게 거리를 두고 살피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차이는 물론 그녀가 가진 커다란 아픔 때문일 것이지만 어쨌든 감정조절 못하고 퍼부어대는 나로서는 열두 살 소녀의 이런 모습이 부러웠기도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가진 매력, 아니 마력은 스무 살을 넘긴 이모보다도 훨씬 어른스러운, 진지하고 성숙한 열두 살 소녀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 가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로 "쪼끄만 게 어쭈!"라는 말을 내뱉지 못하도록 만드는 적절한 배경(열두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커다란 상처)과 같은 소설 구성의 탄탄함 역시 마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책 장을 넘기는 시간은 짧지만 소녀의 감정을 넘기는 시간은 긴 소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었다.
    소녀, 그네들은 작은 가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들을 많이도 품고 있다. '환상, 기대, 설렘, 사랑, 열정, 기쁨, 질투, 아픔, 좌절, 고뇌, 고독, 미움, 경멸, 오만…….' 오히려 어른은 이런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큰그릇이 되지 못한다. '생활'을 핑계대며 이런 모든 것을 뭉뚱그려 한쪽에 치워놓는 어른들이 대부분이고, 나 또한 그렇다. 아마도 소녀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의 시작이자 끝은 바로 이 많은 것들을 뭉뚱그려 한쪽에 얌전히 쌓아놓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휴, 나도 이 과정을 거치는 중인가보다. 모든 일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은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12살에 삶을 완성시켜버리는 이 소녀의 모습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내 삶을 완성시켜버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지금, 자기의 모습을 적당히 먼 거리에서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엿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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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장
    하늘닮은호수 | 2005년 08월 24일
    가난, 가난한 사람들 ―김한수의 을 읽고 가난? 나에게만은 가난의 고통을 이어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가난을 물리친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던 덕분에 나는 가난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런 나는 생각했다. '가난은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그래서 어제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거리에 주저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쳤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전적으로 그들의 노력 부족으로 주어지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삶에 어떠한 것도 개입하지 않으리라는 나의 이성 덕택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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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 가난한 사람들
    ―김한수의 <성장>을 읽고
    가난? 나에게만은 가난의 고통을 이어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가난을 물리친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던 덕분에 나는 가난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런 나는 생각했다. '가난은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아주 당연한 것이라고…….' 그래서 어제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 거리에 주저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쳤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전적으로 그들의 노력 부족으로 주어지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삶에 어떠한 것도 개입하지 않으리라는 나의 이성 덕택에 말이다.
    1988년, 나는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여덟 살 아이였다. 그 때 아마, 88 서울올림픽이 열렸다지? 놀랄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대열에 하루빨리 들어서고자 노력하는 신흥대국이었을 것이고……. 놀랄만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던 시기…….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바로 놀랄만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가족과 주변인은 왜 놀랄만한 경제 성장의 그늘에 머물러 있었던가? 질문 참 어리석다. 그때나 지금이나 답은 같은데 말이다. 빈과 부의 고착, 부유한 사람은 늘 부유하고 풍족한 삶을 즐기고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에 치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그것이지 않은가? 이 책은 그 답을 가난한 아버지의 가난한 아들로 살아가는 창진이의 삶을 통해 나즈막히, 그러나 강하게 던져준다.
    회색의 뭉텅뭉텅한, 쭈욱 짜면 후두둑 빗방울이 금새 떨어질 듯한 어두운 구름을 생각나게 하는 창진이의 삶은 가난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 가난에 대한 개인적인 울분으로 얼룩져 있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도무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창진이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아픔과 고통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싸워야 한다는 결론을 찾는다.
    그랬다. 나는 밤이면 대합실 주변을 서성거리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또, 돈 때문에 자기 목숨을 끊어버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한 번도 그들을 거리로, 죽음으로 치닫게 한 것들이 무엇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빼앗긴 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빼앗기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인간이 무엇을 선택하지 못하고 희망이 없는 그런 사회가 아닌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고, 억압과 착취가 없고, 원하는 걸 선택하고 이루며, 사랑이 충만하고, 누구나 똑같이 일해 똑같이 분배하며, 만일 개인의 부나 권력을 위해 공동체를 깨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모두에 의해 심판받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그러한 사회를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야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눈이 곧 쏟아질 듯한 하늘이다. 구부정한 허리에 다 터진 손으로 돈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던 할아버지를 차가운 시선으로 지나쳤던 내 모습이 저 하늘의 구름만큼이나 무겁게 여겨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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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월의 아이들
    kimssa7 | 2005년 08월 24일
    서점을 둘러보면서 책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난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본 다음에 내용을 보게 된다. 되도록 책을 쓴 작가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선 유명한 작가들이 쓴 책이면 책의 내용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마음이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책의 제목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그렇게 고른 책이 가끔은 실망을 줄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 칠십 퍼센트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나의 책을 고르는 이 방법에 만족을 준 것 중에 하나가 13월의 아이들이라는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땐 순수한 아이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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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을 둘러보면서 책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난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본 다음에 내용을 보게 된다. 되도록 책을 쓴 작가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선 유명한 작가들이 쓴 책이면 책의 내용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마음이 빼앗겨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책의 제목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그렇게 고른 책이 가끔은 실망을 줄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 칠십 퍼센트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나의 책을 고르는 이 방법에 만족을 준 것 중에 하나가 13월의 아이들이라는 책이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땐 순수한 아이들에 대한 책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흰 표지에 정신의학 소설이라는 글씨를 봤을 땐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 13월의 아이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이 책 표지에 이미 알려졌듯이 이 책은 정신의학 소설이다. 어느 한 정신병원에 김덕유 라는 의사가 있고, 그 의사가 담당하게 되는 환자들과 그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을 그려놓았다. 우선 우리가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너무 멀리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회는 점점 각박해져가고 이기적이 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처럼 순수한 사람, 너무 티없이 착한 사람이 견뎌낼 수 있을까?
    우리는 커 가면서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이익을 먼저 생각하게 되면서 점점 자신을 사회에 맞춰가게 된다. 그럼 그렇게 맞추어 나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런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병원이다. 아니 쉼터이자 재활센터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병원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 있으리라고 난 확신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 분류의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은 환자가 등장한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최혜원이다.
    최혜원은 자살을 시도하여 입원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성폭행을 하려고 했던 아버지 친구가 죽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최혜원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넌 죽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듣게 되고 자꾸 심해져가는 알 수 없는 목소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살까지 시도하게 된다.
    최혜원과 함께 방을 쓰는 아이는 빛을 싫어한다. 한때 신세대를 책임지고 있던 촉망받던 가수였지만, 그 가수를 되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걸었던 탓이었을까? 그 아이는 밖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퇴원하기조차 싫어한다.
    최혜원 주위를 항상 맴도는 정민수. 그는 자신이 직접 에탄올로 얼굴을 씻어버리는 끔찍한 일을 했다. 그래서 얼굴에 화상을 입게 되었고, 자신이 직접 그렇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 병원측이 정신적 이상으로 판명하여 이 병원에 오게 되었다. 왜 그렇게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했을까? 김덕유와 치료를 해 나가면서 이 사실은 하나 하나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 밖에도 야한 욕을 아무에게나 내뱉는 사람, 아내를 너무 의심하는 의처증환자,
    종교에 너무 깊이 박혀 버려서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등등..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던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들이 너무나 컸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이상행동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조금씩 덜 순수하고, 조금씩 덜 착한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지만, 그들이 너무나 아이같은 천사이었기에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12월이 다 가면 다시 1월이 오지만, 그들은 다시 나가고 싶지 않는 사회라는 곳이 두려운 아이들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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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bpaper | 2005년 08월 24일
    헌책방의 훈훈함에 겨워 한권 사들고 나온 책인데 솔직히 박완서라는 이름만 보고 샀습니다. 1994년에 찍어 나온책이라 그냥 그런줄 알고 읽었더니만 원래 1976년 에 나온 첫 산문집이더라구요 신기하게도 그때의 이야기가 지금의 사회 상황과도 별 차이 없이 다가오거든요 '세모'에서의 촌지에 관한 이야기라던가..'이별의 김포공항'에서의 막연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가족들 이야기도 그렇고 20여년 전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한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연인들'에서와 같이 사회로의 길들여짐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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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의 훈훈함에 겨워 한권 사들고 나온 책인데 솔직히 박완서라는 이름만 보고 샀습니다.
    1994년에 찍어 나온책이라 그냥 그런줄 알고 읽었더니만 원래 1976년 에 나온 첫 산문집이더라구요

    신기하게도 그때의 이야기가 지금의 사회 상황과도 별 차이 없이 다가오거든요

    '세모'에서의 촌지에 관한 이야기라던가..'이별의 김포공항'에서의 막연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가족들 이야기도 그렇고 20여년 전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한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연인들'에서와 같이 사회로의 길들여짐과 같은 글은 물론이구요

    하나하나 놓칠수 없이 맛스러운 글들이지만 그중에 하나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제목이 '맏사위' 였는데

    엄마의 눈에는 예쁘기 그지없고 모자람 없는 딸을 늘 부자에게 시집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이 '엄마'의 이야기인데 자기의 복박했던 가난함을 딸에게 항상 잔소리로 가르쳐 주며 양복점에서 일하는 딸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과 사귀기를 바라며 나름의 꿈을 꾸곤 하는 아줌마 였습니다.
    유난히 깨끗함을 좋아하는 딸에게 돈이 없으면 지지리 궁상한 가난에 깨끗함도 없다는 식의 협박도 하면서 말입니다.

    "...세상 거짓말 중 청빈이란 거짓말처럼 악랄한 거짓말이 또 있는줄 아니?모순이란 말이 창과 방패의 거짓말에서 비롯된 건 너도 알지. 창과 방패의 관계보다 더 모순된 관계가 청과 빈의 관계야...우선 가난하면 집값이 싼 빈촌에 살아야돼.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동내가 빈촌인 줄 알지만 여긴 그래도 신흥 주택가야. 정작 빈촌을 네 따위가 상상이나 할라. 생전 쓰레길 쳐가나 똥을 파 가나,하수도가 있나 수돗물이 나오나, 거기 어떻게 청이 있니? 네가 제아무리 쓸고 닦아 봐라.걸렌 어따 빨구,똥 안 누구 살 재주 있나...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정작 사위감이 그렇게 부자가 아니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내가 의사나 텔레비젼 연속극 속의 재벌의 아들을 둘러댔던 것은, 내 생활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낼수 있는 족속의 본보기가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생활 주변이란 고장은 그렇게 보잘것없이 답답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내 사위는 의사나 재벌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웬만큼 부자면 됐다. 큰마음먹고 다시 한 번 양보를 하면 현재 부자가 아니더라도 장재성이 있으면 됐다 내가 말하는 장래성이란 물론 빨리빨리 부자가 될 수 있는 장래성을 의미했다.
    아아, 나는 좀더 솔직해야겠다. 나는 내 딸이 즈이 아버지,즉 내 남편을 닮은 남자와 좋아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박복하다고 생각하는 자기와는 다르게 살아보게 하고 싶은 엄마의 심정이다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다지 잘못이 없는거 같더라구요.

    드디어 딸이 사윗감을 데리고 왔는데 엄마는 부자가 아니지만 훤칠한 사윗감이 썩 마음에 들어합니다.

    "정각에 사윗감이 왔다. 그는 어깨가 벌고 키도 크고 얼굴도 훤했다.여자 노리개를 파고 새기고 할 좁쌀맞은 상이 아니었다. 미구에 훌륭하게 되고 유명해질 건 뻔했다.그는 허둥지둥하는 나를 부축해서 앉히더니 너부죽이 절을 했다.나는 다시 한 번 콧마루가 시큰했다."

    여기까지는 제가 그다지 감흥없이 술술 읽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엄마의 예사롭지 않은 착각(?)속에서 저는 먼가 싸~ 하는게 있더라구요..싸~하다는 말로밖에는...

    벗어나고자 하는 삶을 벗어나게 하고픈 딸의 삶속에서 바라보는 그 마음이야..
    잔인할수도 있지만.. 애처러웠습니다.

    마지막 내용은 읽어 보시고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남겨 두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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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에 들었던 얘기가 오늘에도 살아나려면?
    tridon | 2005년 08월 24일
    최인훈이 어느 작품에선가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어떤 사람이 잃어버린 것, 그리고 두번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삶이 된다' 이 규정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면 인간의 삶이란 게 얼마나 복잡하고 거대한 상실의 집합체일 수밖에 없을 것인지... 약간 암담한 생각까지 든다. 물론 최인훈의 얘기를 그렇게 액면 그대로 풀어내는 건 의도적인 왜곡, 악의적인 오독이다. 최인훈은 그 상실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 잃어버리고는 삶이 결코 정상적일 수 없는데도 도저히 되찾을 수 없는 어떤 것, 보다 구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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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훈이 어느 작품에선가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어떤 사람이 잃어버린 것, 그리고 두번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삶이 된다'

    이 규정을 액면 그대로 적용하면 인간의 삶이란 게 얼마나 복잡하고 거대한 상실의 집합체일 수밖에 없을 것인지... 약간 암담한 생각까지 든다. 물론 최인훈의 얘기를 그렇게 액면 그대로 풀어내는 건 의도적인 왜곡, 악의적인 오독이다. 최인훈은 그 상실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 잃어버리고는 삶이 결코 정상적일 수 없는데도 도저히 되찾을 수 없는 어떤 것,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분단돼 있는 조국의 현실을 빗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인훈의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아무리 양보해서 봐준다 해도 의도적인 비틀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그 의도적인 오독, 비틀기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바로 유안진의 <옛날 옛날에 오늘 오늘에>란 책의 리뷰를 쓰기 때문이다.

    유안진은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리고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얘기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토속의 말과 풍습이다. 하지만 어쩐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불공평한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책 읽는 내내 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야, 우리 어렸을 적에 먹었던 그 개구리 참외란 것 말야, 얼마나 맛있는지 너희들은 상상도 못할 거야... 요즘 과일 야채는 크기만 하고 맛이 싱거워. 너희들은 죽어도 그 맛 모른다. 그 맛도 모르고 자라는 니들이 불쌍해 ㅉㅉㅉ"

    물론 이건 악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그 얘기의 진정성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만 얘기해서는 근본적으로 화자와 청자(저자와 독자) 사이에는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도무지 맛볼 수 없는, 검증이 불가능한 맛을 가지고 뒷세대들을 기죽이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개구리 참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맛과 제일 비슷한 참외를 하나 들고 와서 "이게 그래도 내가 어렸을 적에 먹어본 개구리 참외 맛과 비슷하구나..." 이렇게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유안진의 글은 그래서 옛말과 풍습에 대한 냉랭한(?) 자랑만 있지, 그 옛말과 풍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 이 말에 반박할 분도 계실 것 같다. 유안진은 책 전체 분량의 절반 가량을 잃어버린 과거의 말과 표현을 그대로 묘사하는 데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부족하다니? 그래도 단정적으로 말해 유안진의 이 책은 우리의 옛말과 풍습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 분명 부족하다.

    가실총각 싱숭생숭 바람벽 치고간다... 이런 식의 옛날 말을 아무리 많이 지면에 옮겨놓아도 그게 우리의 옛말과 풍습에 대한 재현이라는 느낌은 와 닿질 않는다. 왜일까? 이 글을 쓰는 사람 자신도 유안진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옛말과 풍습에 대한 기억을 꽤나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 맛이 살아나질 않는다. 그 그리움이 뼈속을 울리지 못한다.

    나는 그 이유가 유안진이 현재 처해있는 삶의 안이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옛말과 풍습에 대한 생각,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생각 그 어느 것에서도 절박함과 그리움이 보이질 않는다. 고향 떠나와 도시 한구석에서 나름대로 터잡을 때까지 과거 삶의 방식이 지닌 진솔함이나 소박함 따위 잊고 철저히 도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만 살아온 시골 출신 늙은이가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나서 생색내듯이 자기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줄 때와 비슷한, 어떤 몰인정함과 각박함이 느껴질 뿐이다.

    글쓰기란 역시 창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이나 시 같은 창작 장르가 아니어도 그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최인훈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 두번 다시 되찾을 수 없어서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광장>을 썼고 두번 세번 네번 거듭 고쳐썼다. 아니, 그의 작품 전체가 바로 그 그리움의 거듭되는 고백 아니었을까?

    유안진이 다룬 '잃어버린 우리의 말과 풍습'이라는 주제가 최인훈이 매달린 '분단'이라는 주제보다 더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주제에 접근하는 자세는 너무 큰 중량감의 차이가 난다. 그 자세의 차이가 바로 감동의 차이일 수밖에 없다.

    영남 출신 필자들에게서 느끼기 쉬운, 자기 고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도 솔직히 거북하다. 영남 출신들의 '똥도 우리 것이 더 달다'는 태도는 정말 못말리겠다는 느낌이다. 열녀의 지방별 숫자 비교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 일본과 중국의 연구 열풍 심지어 지폐에 실린 초상화까지 언급하며 퇴계 이황 선생의 위대성을 강조해야 하는 것인지(그렇게 이황 선생의 위대성을 말하고 싶다면 차라리 그 주제로 독립된 글을 하나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은 독서중> 코너에 오자 문제는 이미 짚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지 않으련다. 다만, 이미 말한 부분 외에도 엄청난 오자/오기가 발견됐다는 사실만 분명히 해둔다. 재판(이 나올지 모르지만)을 찍을 때는 그런 오자 좀 바로잡으면 좋겠다. 출판사는 도대체 뭐하는 건지? 설마 우리나라 출판사 편집자들이 그런 오자 잡을 실력도 못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름있는 필자라고 해서 잘못된 것도 제대로 지적을 못한 건가? 하긴 그렇다면 이건 더욱 끔찍한 얘기다만...-_-;;;

    하나만 더. 이 사이트에 올라온 언론매체들의 이 책 <옛날 옛날에 오늘 오늘에>에 대한 리뷰란 걸 얼핏 훑어보면서 '역시 그동안 신문 등에 실린 신간 안내나 리뷰 따위 글들을 읽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 사족으로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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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순
    하늘닮은호수 | 2005년 08월 24일
    개와 늑대의 사이의 시간 -양귀자의 을 읽고 언제부턴가 나는 나도 모르게 개와 늑대의 사이의 시간―일몰의 시간, 해가 지고 얼마지나지 않은 시간으로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잠기는 시작하는, 모든 것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시간이다. 박완서의 소설 에서 이 시간을 개와 늑대의 사이의 시간이라고 했었다. 이 시간이 집에서 기르던 개가 낯선 늑대처럼 여겨지는 순간이라나?―을 흠모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적절한 외로움과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이 시간은 하루 일과에 시달리다가 고단해져버린 나를 설레이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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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와 늑대의 사이의 시간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언제부턴가 나는 나도 모르게 개와 늑대의 사이의 시간―일몰의 시간, 해가 지고 얼마지나지 않은 시간으로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잠기는 시작하는, 모든 것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시간이다. 박완서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이 시간을 개와 늑대의 사이의 시간이라고 했었다. 이 시간이 집에서 기르던 개가 낯선 늑대처럼 여겨지는 순간이라나?―을 흠모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적절한 외로움과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이 시간은 하루 일과에 시달리다가 고단해져버린 나를 설레이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도 그 시간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먼 곳의 냄새를 이끌고 돌아올 것 같은 시간으로 말이다. 이 소설을 지배하는 전체적인 느낌이 그 시간이 주는 느낌과 아주 비슷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모두 '지리멸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스물 다섯 안진진의 생의 외침이 그랬고, 이모의 자살이 그러했다. 아버지의 미워할 수 없는 술주정과 가출이 그러했고, 진모의 비둘기(재벌 외삼촌을 가진 여자)에 대한 애정행각(살인미수에 그친 비둘기의 새 남자에 대한 응징)이 그러했다. 또, 철저한 인생 계획표를 수립한 나영규가 그러했고, 흰 꽃의 야생화를 보면 셔터를 눌러대는 짐장우가 그러했다. 다만 이모의 쌍둥이 자매였던 어머니의 삶만은 지리멸렬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는데, 이는 어쩜 내 눈에만 그렇게 비추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지리멸렬한 삶을 거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눈앞에 닥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두 팔 걷어붙이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들의 이러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삶을 비추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리멸렬', 어제도 나는 이 지리멸렬함을 이기지 못해 폭발을 했었다. 그렇다고 다른 누구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가출을 감행하는 무시무시한(?) 폭발의 모습은 아니었다. 나의 폭발은 내 눈물샘의 폭발에 지나지 않았으니깐……. 하여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은 누구나 지리멸렬한 삶에 투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안진진, 그녀는 생의 외침을 시작으로 지리멸렬한 삶을 떨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래서 찾은 방법은 결혼이었다. 그래서 두 남자를 만나고 저울질하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저울질의 결과를 거부하고 그녀에게 지리멸렬한 삶을 가져다줄 남자―나영규를 선택한다. 어찌된 일일까? '한 번만 뒤집으면, 얼마든지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일 수 있는 우리'라는 생의 진실을 깨달은 그녀는 나영규와 김장우도 이 공식에 집어넣은 채로 나영규를 선택해버린 것일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주인공의 선택이었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은 책의 제목을 지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리멸렬(갈가리 흩어지고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됨)함의 이면에 감추어진 삶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가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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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백산맥
    kimssa7 | 2005년 08월 24일
    고등학교를 순천으로 다니면서 나의 고향인 고흥과 순천을 오가면서 보아왔던 벌교가 근거지로 한 소설이란 점이 괜히 친근감이 느껴져 왔다. 그리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날 더욱더 그렇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전라도 사투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람들과의 대화부분을 여러 번 생각해야 할 곳도 꽤 있는 듯 하다. 나도 고흥에서 자랐지만, 생소한 사투리가 나를 꽤 여러 번 그 부분을 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0권이나 되는 태백산맥이란 책의 내용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내용이 방대하다. 그래서 태백산맥의 내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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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를 순천으로 다니면서 나의 고향인 고흥과 순천을 오가면서 보아왔던 벌교가 근거지로 한 소설이란 점이 괜히 친근감이 느껴져 왔다. 그리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날 더욱더 그렇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전라도 사투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람들과의 대화부분을 여러 번 생각해야 할 곳도 꽤 있는 듯 하다. 나도 고흥에서 자랐지만, 생소한 사투리가 나를 꽤 여러 번 그 부분을 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0권이나 되는 태백산맥이란 책의 내용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내용이 방대하다. 그래서 태백산맥의 내용보다는 읽고난 내 느낌들을 적는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안에 세워졌던 동상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남긴 이승복. 내 초등학교시절 그 동상은 입학할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 또한 어렸을 적부터 사회주의가 나쁘다는 점을 교육받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게 모르게..
    그리고 그것을 난 당연히 받아들여 왔었다. 한번도 다른 쪽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태백산맥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맞을 무렵부터 휴전협상이 이루어진 1953년까지를 모태로 벌교를 근거지로 하여 벌였던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없애려는 이승만 정권과 그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사상이 다르기에 남쪽에선 없어져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난 단지 이 사회주의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회주의 운동을 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뻔히 목숨을 내건 싸움인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산속으로 들어갔을까? 자신의 그 선택으로 인해 가족들이 뻔히 아파할지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 사람들. 그들은 후회라는 것을 하지 않는것 같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이다. 그것이 난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며 그 죽음 앞에서 왜 웃을 수 있었을까?

    우리의 역사는 사건들로 나열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이다. 그 역사흐름의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조정래의 소설인 것 같다. 모두가 사실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허구만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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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도둑
    prettyk | 2005년 08월 25일
    오늘 특기적성 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한 프린터에는 자전거 도둑이라고 크게 써져 있었습니다. B4용지에 가득 매워져 있는 글귀를 저는 계속 읽어 내려갔습니다. 자전거 도둑...-박완서- 박완서의 자전거도둑은 청계천의 전기용품 도매상점의 점원꼬마인 열여섯살 수남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골손님과 한번씩 사러오는 손님들의 알밤까지 받아가며 귀여움을 받고 주인영감님 밑에서 꼼꼼한 성격으로 일하는 수남이는 어디하나 나물할때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순수한 성격을 띠지 않았다 . 흔이 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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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특기적성 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한 프린터에는 자전거 도둑이라고 크게 써져 있었습니다. B4용지에 가득 매워져 있는 글귀를 저는 계속 읽어 내려갔습니다.

    자전거 도둑...-박완서-

    박완서의 자전거도둑은 청계천의 전기용품 도매상점의 점원꼬마인 열여섯살 수남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골손님과 한번씩 사러오는 손님들의 알밤까지 받아가며 귀여움을 받고 주인영감님 밑에서 꼼꼼한 성격으로 일하는 수남이는 어디하나 나물할때가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순수한 성격을 띠지 않았다 .
    흔이 자전거 도둑이란 제목때문에 수남이가 자전거를 훔쳤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된다.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날의 수남이에게 일어난 재수없는 일을 바탕으로 수남이는 자신이 자전거 도둑이었음을 느낀다.
    어느날이었다 . 수남이가 배달을 갔다가 그 물건을 주고 나오는 사이 바람으로 인해서 자전거가 엎어지는 바람에 옆에있는 승용차를 친것이다. 차주인은 돈을 요구했고,자전거를 먼저 가지고 있을테니 돈을 가져오라고 했다.하지만 수남이는 돈을줄수 없어 자전거를 가지고서 달려와버린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수남이는 자신의 자전거를 가져온 죄밖에 없지만. 그래도 차에 기스낸 값을 안줬으니 자신을 도둑이라고 생각한것이다. 아직도 수남이가 왜 자신을 도둑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는 알수없다. 자기 자전거를 가져온것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수남이는 옛날에 자신의 형이 어쩔수 없는 도둑질로 경찰에게 잡혀간 일을 생각하게 된것이다. 수남이는 자신이 그 자전거를 가지고 오면서 얼마나 쾌감을 느꼈는가..미안함과 죄송스러운 마음은 하나도 없었던 자신의 헛된 마음을 느낀것이다. 아마 나라면 그런것은 생각지도 않고 돈만 남았다며 . 좋아했을것이다.
    하지만 수남이는 자신의 양심을 믿고 따랐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은 .. 그리고 양심은 어느 누구도 알수 없는데. 자신만은 그것을 느낀다는것을 수남이는 말해주고 있다. 겉으로 보면 수남이는 도둑이라고 볼수 없다 . 하지만 자기 자신이 느끼고 자신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은 도둑이 된것이나 다름없는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그렇듯이 무슨일을 하든. 자신의 마음한구석이 조금이나마 아파온다면 아마 우리도 수남이처럼 자신을 도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재수 없는 날이 생길것이다. 하지만 그런날이 온다고 해도 나는 수남이처럼 내 마음을 믿고 내 양심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그 양심을 씻어낼수 있는사람이 바로 마음과 겉모습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

    ※ 어느날 내 자신이 도둑 이었다면.. 자신이 그 도둑이란 누명을 벗어보는게 어떨가 생각한다..※ - 김 민 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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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 빨개지는 아이
    miracle | 2005년 08월 25일
    '나'는 얼굴을 붉히고 다닌다. 붉히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이유없이 얼굴이 빨개진다. 이상하게 긴장되고, 남 앞에서 부끄러워질때는 얼굴색이 평범한 사람의 얼굴색과 같아진다. 참 이상하다. 내게 좋은점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제일 찾기 쉽다는 것이 얼굴 빨갛다는 장점이다. 나는 얼굴이 빨가다는 이유로 친구가 없다. 매일 외롭고 쓸쓸하다. 어느날 갑자기 아파트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나'는 소리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계단을 한층 한층씩 오를 때마다 소리가 가까워진다. 몇층을 올라가서 발걸음이 멈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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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얼굴을 붉히고 다닌다.
    붉히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이유없이 얼굴이 빨개진다. 이상하게 긴장되고, 남 앞에서 부끄러워질때는 얼굴색이 평범한 사람의 얼굴색과 같아진다. 참 이상하다.
    내게 좋은점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제일 찾기 쉽다는 것이 얼굴 빨갛다는 장점이다. 나는 얼굴이 빨가다는 이유로 친구가 없다. 매일 외롭고 쓸쓸하다.
    어느날 갑자기 아파트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나'는 소리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계단을 한층 한층씩 오를 때마다 소리가 가까워진다. 몇층을 올라가서 발걸음이 멈췄다. 내앞에는 딸꾹질을 하는 아이가 앉아있다. 그 아이도 나처럼 이상한것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얼굴이 빨갛지만 그 아이는 시도때도 없이 딸꾹질을 한다. 학교갈때도 딸꾹질, 놀때도 딸꾹질, 밥먹을 때도 딸꾹질, 잠잘때에도 딸꾹질..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써봐도 딸꾹질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내겐 좋은일이다. 내게 친구가 되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 이후로 '나'와 그아인 친구가 됐다. 진정한 친구 우리는 매일 함께 다녔다. 우리는 서로가 즐거워했다. 그아인 나를 처다보며 웃었고, '나'는 그 아이의 딸꾹질 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다. 얼굴이 빨갛고, 딸꾹질이 잼있게 해주니까...
    그런데 갑자기 어느날 그 아인 사라졌다. 아무데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아이의 딸꾹질 소리도 들리질 않았다. 기운이 쭉 빠진채로 집에 들어왔다.
    엄만 내게 편지가 왔다며 말한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무척 기뻐하지만 그 편지가 어디있는줄 모른다. 아빠가 가지고 계신다고 했는데, 아빠는 바쁜 일때문에 나와 얘기도 하지 않는다. 몇일이 지난후에도 난 편지를 보지 못했다.
    몇년이 지났다. 나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대로의 모습,, 얼굴이 빨간 아이
    일문제로 거래처를 가는데 어디선가 낯설지 않은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간다. 바로 그아이다.
    내가 이름을 한번 불렀다. 그아이는 나를 금방 찾았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며 서로에게로 달려간다. 우린 앞으로 다신 헤어지지 않을 친구가 되었다.
    어렸을 때처럼 우린 맨날 함께다니고 서로를 보면서 웃고 즐거워 한다.


    -이처럼 서로에게 단점이 있다고 하여도 그 단점을 매꿔줄 친구를 찾으면 그 단점은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말없이 있어도 즐거워 하고, 한번 보고 들으면 금방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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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탄길(1)을 읽고나서..
    prettyk | 2005년 08월 25일
    나는 지금 이렇게 웃고 있다. 어느때나 어디서나 나는 웃는다. 하지만 모두다 나처럼 이렇게 어느때나 웃는것은 아니었다. 어쩔수 없이 울어야 했고. 어쩔수 없이 아파야 하는 누군가가 너무 나도 많다. 바로 '연탄길'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깨닭게 된것이다.울고 아파하는 사람이 많다는걸 말이다.세상이 우리에게 공평하지 않은것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한 선물도 주지 않는다. 연탄길에서는 공평한 선물을 받지 못한 고통받는 사람들을 전적으로 비추고있다. 그들의 아픔과 눈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를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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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이렇게 웃고 있다. 어느때나 어디서나 나는 웃는다.
    하지만 모두다 나처럼 이렇게 어느때나 웃는것은 아니었다.
    어쩔수 없이 울어야 했고. 어쩔수 없이 아파야 하는 누군가가 너무 나도 많다.
    바로 '연탄길'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깨닭게 된것이다.울고 아파하는 사람이 많다는걸 말이다.세상이 우리에게 공평하지 않은것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한 선물도 주지 않는다. 연탄길에서는 공평한 선물을 받지 못한 고통받는 사람들을 전적으로 비추고있다. 그들의 아픔과 눈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를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바로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부터는 한쪽 가슴이 시려워 지는것을 느끼고, 한쪽 눈이 따끔해 지는것을 느끼는걸 보면 말이다. 한쪽 가슴이 아파오는걸 왜 느끼는 지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것 같다. 그 사람들의 아픔을 쉽게 말로 표현 할수 없는것과 같다. 나는 그걸 비로소 느꼈다. 마음은 아파도 속으로는 미소지을수 있어야 하는 어딘가는 아픔이 있는 사람! 연탄길에 모든 이들은 그러했다. 한가지 아픔씩은 다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많은 교훈을 준 책이 바로 연탄길 이었다. 내가 이해하며 어렵게 읽어가기 보다는, 술술 읽어 내려 가면서 내가 그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느껴보는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에만 매달려 있지 않고, 서로 나누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눈물을 흘릴수 있고 ,내 안의 것을 나누어 줄수 있는...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를 울게 한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사랑을 나누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나눈다는 것은 무슨뜻일까? 나에게 있는 것을 조금 보태주고, 부어주며.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일까? 나누는 것이란..물질적인것이나, 능력적인 것보다는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란걸 이제서야 안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나누는 사랑이 형식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이책에서 말하는 사랑나누기는 사랑을 실천하는 법과 그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보자는 것이었다. 나도 누구에게 어떡해 사랑을 나눠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라면 나라도 .. 아니 누구든지 간에 사랑을 나눌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눈빛 만으로도 고마워요. 사랑해요. 라고 말할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픔과 웃음은 하나다. 분명히 그럴것이다.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는 웃음을 나누어줄수 있듯이 말이다. 지금도 울고 아파하고 고통받아야하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잘 안다. 그리고 지금은 웃고 있지만 서서히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나눌수 있고 서로 헌신할수 있다면, 언젠가는 모두가 웃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 금 우 리 들 처 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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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텔미유어드림
    BeanPole | 2005년 08월 25일
    내가 제일 존경해 마지못해 사모하는 시드니셀던의 책이 드디어 학교 도서관에 나왔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었나!! 고3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상*하로 나눠진 책을 읽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쉬는시간, 점심시간에 짬을 내 틈틈히 읽게 되었다. 책을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그 긴박한 가슴조여오는 스릴이란 나에게 영화를 보는 듯한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한 여자의 내면의식 속에 2개의 인격이 더 생성됨으로써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그살인사건을 추리해가는 소설이다. 처음엔 아무도 책속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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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제일 존경해 마지못해 사모하는 시드니셀던의 책이 드디어 학교 도서관에 나왔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었나!! 고3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상*하로 나눠진 책을 읽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쉬는시간, 점심시간에 짬을 내 틈틈히 읽게 되었다. 책을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그 긴박한 가슴조여오는 스릴이란 나에게 영화를 보는 듯한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한 여자의 내면의식 속에 2개의 인격이 더 생성됨으로써 일어나는 살인사건과 그살인사건을 추리해가는 소설이다. 처음엔 아무도 책속의 여자가 한 여자인 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이게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그리고 읽어갈수록 책속의 여자들이 한여자의 다른 인격들인것을 알게된다. 바로 다중인격장애로 인한 살인...지금부터 <텔미유어드림>의 문을 열어볼까한다
    실제 있었던 일인 이 책을 간단히 말해보면, 주인공 애슐리는 어릴적에 매일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로 인해 애슐리는 성교를 증오하면서 다른 남자와 성교를 하다가 남자를 칼로 무참히 갈기갈기 찢으며 마지막엔 거세까지 한다. 그것도 수많은 남자를...그리고는 자기는 무슨일은 저지른지 모른다. 바로 애슐리안의 다른 인격인 알레트와 토니가 한짓이다. 하지만 그 살인을 저지른 몸은, 손은, 지문은, 머리카락..모두 애슐리의 것이다. 그래서 범인은 애슐리로 지목되고 재판을 받게된다. 겨우 겨우 무죄를 선고받은 애슐리는 다중인격장애를 치료받는다.
    난 이 책에서 애슐리의 잔임한보다는 남자의 성폭행, 아니 아버지와의 성폭행으로 인한 성교의 증오를 가슴깊이 느낄수 있었다. 어릴적에 당할수 밖에 없었던 애슐리의 증오와 분노가 그녀 안의 다른 인격들로써 거세라는 살인을 저지르게 한것이다. 남자들은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여자들의 이런 경험과 그것으로 인한 심리적 피해와 분노를.... 당할수 밖에 없었던 어린 애슐리의 그 작은 마음을...
    ◆그리고 나는 나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됬다. 어디선가 내안의 또다른 인격이 꿈틀꿈틀 싹트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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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칸의 비밀
    bluehyuk67 | 2005년 08월 25일
    (p.s 줄거리를 잘 줄이지 못하여서 이야기가 길게 되었습니다 、 그래도 읽어봐 주세요、학교에서 글읽으라고 해서 한번 써봤어요 .!) 제목대로 이글의 내용에는 비밀을 가지고 .. 있다 ..! 비밀은 영원히 지킬수있는 사람만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세상에는 비밀은 없다고 하지만.. 그 비밀은 어디까지나 말을 하지 말라는 그런뜻이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 내가 살고있는 작은마을에는 마을의 동정을 전해주는 주간 신문이 있었다. 텍스 월리엄슨씨가 발행하는 그 주간지의 칼럼이 가끔씩 빈칸으로 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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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줄거리를 잘 줄이지 못하여서 이야기가 길게 되었습니다 、

    그래도 읽어봐 주세요、학교에서 글읽으라고 해서 한번 써봤어요 .!)

    제목대로 이글의 내용에는 비밀을 가지고 .. 있다 ..!
    비밀은 영원히 지킬수있는 사람만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세상에는 비밀은 없다고 하지만..
    그 비밀은 어디까지나 말을 하지 말라는 그런뜻이로 비밀을 지켜야 한다..


    내가 살고있는 작은마을에는 마을의 동정을 전해주는 주간 신문이 있었다.

    텍스 월리엄슨씨가 발행하는 그 주간지의 칼럼이 가끔씩 빈칸으로 실리는 이유에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처음에는 상황을 모르니깐 엄청 궁금해 했다.

    그래서 윌리엄슨씨를 나쁘게 생각하고 괴짜라고 생각을 하였다.

    (나의 생각: 윌리엄슨씨에 대해 잘모르고 그런말 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윌리엄슨씨를 좋아한고 마음씨좋고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
    는다 .

    40동안 일한끝에 65세 될 무렵쯤에 평생 꿈꿔웠던 마을의 주간 신문사를 사서 운영
    하여 돈을 모으게 되었다.


    텍스가 신문을 발행하고 2년째 된던해 신문에 제2면에 칼럼 난이 빈칸으로 실리기
    시작하였다.

    빈칸은 1년에 두번정도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들을수 없었다
    사람들은 사장님(텍스 윌리엄슨씨)를 흉을보고 그랬다 ... 하지만 윌리엄슨은
    그사람들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후 자신이 곧 죽을 것으로 믿고 있던 한 환자가 마쉬 박사에게 텍스가 빈 칼럼을 싣는 이유에 대해 애기를 한것이다. 그 애기를 비밀로 하는대신
    그때부터 텍스 애기를 하면 " 만일 텍스가 미친 거라면, 우리도 그렇게 미쳤으면 좋겠소" 라고 박사는 말하였다.


    풀리지 않는 그 빈칸 ... 사람들은 더 나쁜쪽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소문때문에 텍스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갔다.
    피트 무비 노인이 그애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내 몰리의 죽음에 상심해 했다 .. 온 동네사람이 아는것을 혼자만 모르고 있엇다.
    동네사람들이 빈칼럼 애기를 나쁘게 애기하자 ....피트노인은 신문에서 가시를 빼주는 조건으로 한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 라고 말을 하였다.

    <그 노인은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명예보다 텍스의 명예가 더 중요 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 누가 자신의 명예보다 남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겠는가 ??
    별로 없을꺼라고 생각한다 .. 항상 도덕시간에 배우듯 ... 자기 자신보다 ..
    남을 먼저 생각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4년전.... 피트 노인이 칠십세가 되었을 때...!!!
    자신을 일을 다른 젊은 사람한테 넘겨줘야 했다.. 그런데 몰리와(부인) 살길이 막막했다. 시집간 딸이 있는데 언쳐살기는 싫었고...
    그래서 그는 생애 처음으로 부정한 일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후 수많은 연장을 내다 팔았고...그런데 어느날 사장이 파놓은 함정에 걸리고 만것이다... 그리고 피트노인은 연장을 훔쳤다고 솔직히 말을 하였다.

    (나의 생각: 남에것을 허락없이 가져가는것은 나쁘지만 나도 어렸을떄 껌을 하나 훔친적이 있는데 너무 가슴이 찔리고 ... 미안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을 했는데 ..
    힘들어도 .. 남에것은 손을 대지말고 정직하게 살수있는 그런 우리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_-ㆀ)


    그 이야기를 듣고 열씨미 뒤에서 그 내용을 적고 있던 텍스가 " 피트의 부인은 이 마을에서 누구보다 열씨미 봉사활동을 하고 있소." 이런 말을 하였다.


    "몰리는 훌륭한 부인이오 이일로 그녀가 손가락질을 받아선 안 되겠지요" 하고


    다시 한번 노인에게 기회를 주고 신문에 기사를 빈칸으로 내보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말을 더 붙였다... 한번이라도 더 한다면 그때는 반드시 신문에 기사를 실을 거라고 경고를 하였다.

    피트 노인에겐 두번쨰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피트로부터 빈 칼럼에 얽힌 진짜 이유를 들은 뒤로 .. 마을 사람들은

    텍스에게 새로운 존겸심을 품었다 ;;


    그는 자랑스러웠다. 무수한 추측 속에 텍스는 죽기까지 열한번의 빈 칼럼을 실고..

    빈칸컬럼은 미스테리로 남았다...



    ★{ 제가 글을 잘 못써서 ..! 그러는 읽으면 재미 있으니깐 꼭! 읽어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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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칸의 비밀
    miracle | 2005년 08월 25일
    이 책의 내용은 신문에 대해서 쓰여지고 있다. 텍스 윌리엄슨.. 신문의 주간지를 작성하는 자 텍스는 몇년동안이나 주간지의 칼럼을 가끔씩 빈칸으로 실려 내보내고 있다. 왜 그런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단지, 주간지를 작성하는 사람들만 빼고는.. 이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억측이 떠돌고, 텍스가 괴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에 그런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텍스는 수다스럽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좋아한다. 텍스는 신문사에서 40년동안 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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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내용은 신문에 대해서 쓰여지고 있다.
    텍스 윌리엄슨.. 신문의 주간지를 작성하는 자
    텍스는 몇년동안이나 주간지의 칼럼을 가끔씩 빈칸으로 실려 내보내고 있다. 왜 그런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단지, 주간지를 작성하는 사람들만 빼고는..
    이런 이유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억측이 떠돌고, 텍스가 괴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에 그런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텍스는 수다스럽고 마음씨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좋아한다. 텍스는 신문사에서 40년동안 일을 해왔다. 65세때에는 자신이 꿈꾸어 오던 신문사를 마을에서 운영하게 되었다. 텍스의 친구 윌트와 일은 분담하여 신문사를 운영하였다.
    텍스가 신문을 발행할때에는 날마다 1면이나 2면이나 칼럼난에 인쇄가 되지않아 빈칸으로 실리고 있다. 이를 궁금히 여긴 사람들이 몇번씩이나 캐물었지만 짤막하게 반복된 얘기만을 하고 있다. 어느날 건장하게 생긴 청년이 텍스가 마을사람들에게부터 미친자가 아닌가?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텍스를 찾아와 그것의 진실을 말하자고 하였지만, 텍스는 다른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고, 주의의 말은 다 필요없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청년과 친구에게 그 비밀을 꼭지키라며 입단속을 해놓는다.
    빈칸의 수수께끼는 여인에 의해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했지만 이상한 말로 떠돈다. '텍스가 사람들에 대한 불리한 기사로 돈을 받고있다'는 소문..
    그 빈칸의 칼럼을 협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소문이 멀리 퍼져서 텍스는점점 외톨이가 되어갔다. 텍스의 미소도 사라져 갔다. 그 소문은 아내의 죽음에 상심해 집안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던 피트노인에게도 들린다. 그 피트노인은 빈칸 주인공의 하나였다. 피트는 자기의 명예보다 텍스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텍스를 찾아갔다. 사건의 전개는 4년전 피트의 일이다. 한 연장제조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피트는 아내(몰리)와 가난한 가정을 꾸려나가야 했다. 자신의 자리가 내려앉을까봐 겁이나던 피트는 수많은 연장을 몰래 내다 팔았다. 사실이 밝혀지자 사장은 보안관에게 신고하는데 그때마침 보안관의 기사를 맡았던 내가 옆에 있어 사건하나가 더 생길까 하는 생각에 보안관을 따라 같이 회사로 갔다.
    텍스는 보안관의 뒤에서 기사거리를 적고난뒤, 피트를 한번 용서해 주자고 의견을 제시한다. 그 용서가 피트의 아내(몰리)와도 상관있는 일이기 때문에...
    피트의 아내는 훌륭한 부인이기 때문에... 욕먹게 할 수는 없다고..
    그게 빈 칼럼 얘기의 한개이다. 칼럼의 주인공은 여러명이다.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 그곳에 쓰일 수 있다. 또한, 칼럼은 텍스의 신념의 상징이기도 한다.
    피트로부터 빈 칼럼에 얽힌 이유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텍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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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ŀ ㅈı 막 수 업
    bluehyuk67 | 2005년 08월 25일
    학생을 가르치면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데... 이제부터 독일어로 가르치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그 마지막 수업을 그린 그런 내용이다 ..、 이번 마지막수업으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 마지막수업 우리에게 뭘 주려하는지 알수있을것이다 ...、 그래서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은 아침늦게 학교를 가게되었다. 막! 급하게 뛰어가다가 면사무소 앞을 지날때 게시판 주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게 눈에 띄었다. '또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하고 있는데.. 게시문을 읽고 있던 대장간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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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을 가르치면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데... 이제부터 독일어로 가르치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그 마지막 수업을 그린 그런 내용이다 ..、
    이번 마지막수업으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 마지막수업 우리에게 뭘 주려하는지 알수있을것이다 ...、 그래서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은 아침늦게 학교를 가게되었다.

    막! 급하게 뛰어가다가 면사무소 앞을 지날때 게시판 주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게
    눈에 띄었다.

    '또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하고 있는데.. 게시문을 읽고 있던 대장간 와슈테 영감님이 소리쳐 프란츠에게 "서둘러 갈것 없다"라고 말을 하셨다.


    프란츠는 영감님이 놀렸을꺼라고 생각하고 학교로 뛰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 다른떄에 시끄럽던 교실안이 무척조용하였다.
    그래서 부끄럽게 교실안에 들어가서 조용히 끝자리 쯤에 앉았다.



    아멜교수가 말문을 열었다. " 알자스와 로렌주에서 이제부터 독일어로 가르치라하여
    저와는 이것이 프랑스 마지막 수업이 될것 같아요" 하고 말을 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때 쯤, 누군가가 내(프란츠)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글을 암송할 차례였다.


    정말 크게 똑똑하게, 틀리지 않게 욀수 있기를... 바랬는데 .. 그런데 처음 두세마디가 헷갈려 당황하고 마음이 서글퍼졌다.



    아멜선생님은... " 프란츠 충분히 벌을 받은거야! 너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겠지
    '내일 배우면 되지 뭐'.... ' 너희들은 프랑스인이라고 자기나라 말조차 할줄 모르지 뭐야 !'


    아멜선생님은 계속 프랑스어에 관해 말을 해주셨다.

    그런뒤 문법책을 들고 우리가 암송한 부분을 읽어주셨다.

    나도 열심히 수업을 들었고, 선생님도 열심히 설명을 하셨다.


    떠나기 전에 모든 지혜를 단한번에 우리의 머리속에 넣어 주려는 결심을 하셨는지
    모를 일이다.


    어째든 그는 우리의 마지막수업을 끝까지 계속할 굳은 결심을 하고 계셨다.


    학교 괘종시계가 12시를 치고, 이어서 알젤리스의 종( 아침, 낮, 저녁 기도를 알리기
    위한 종) 소리가 들려왔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프러시아 병사의 나팔소리가 우리교실의 창밑에서 울려 퍼졌다.




    아멜 선생님은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교단 위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 여러분 " ...." 여러분, 나는 … 나는 … "

    그는 말을 끝맺을수가 없었다.

    칠판쪽으로 가서 분필을 잡고 힘을다해.... VIVE LA FRANCE (프랑스 만세!)



    말없이 손짓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하였다.

    " 이제 끝났습니다 . 모두 돌아가십시오 "



    《이야기는 모두 여기서 끝이났다...
    절실하게 느낀것은 아멜교수의 마지막 수업은 어느누구 보다 더 절실하게
    애절하게 끝까지 계속 수업을 할꺼라는 마음가짐이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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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칸의 비밀
    prettyk | 2005년 08월 25일
    우리 모두에게는 비밀도 있을것이고, 못된마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때뿐이다. 기회는 단 한번이란 말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잘못이 있다면 뉘우치고 반성하고 다시 깨달을때 비밀도 못된 마음도 시기도 없어지는것이다. 이 조금한 단편소설속의 텍스에게서 이렇게 중요한걸 알았다. 뉘우치고 반성할수 있다면 기회는 한번이 아닌 두번이란 사실을 말이다. 어느 마을의 정보통의 신문기자로 통하는 텍스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심을 받으면서 마을 사람들의 일을 신문에 담는 사람 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텍스는 신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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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에게는 비밀도 있을것이고, 못된마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때뿐이다. 기회는 단 한번이란 말은 여기서 통하지 않는다. 잘못이 있다면 뉘우치고 반성하고 다시 깨달을때 비밀도 못된 마음도 시기도 없어지는것이다. 이 조금한 단편소설속의 텍스에게서 이렇게 중요한걸 알았다. 뉘우치고 반성할수 있다면 기회는 한번이 아닌 두번이란 사실을 말이다.

    어느 마을의 정보통의 신문기자로 통하는 텍스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심을 받으면서 마을 사람들의 일을 신문에 담는 사람 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텍스는 신문에 빈칸을 남기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텍스가 그 빈칸을 가지고 누군가를 협박하는줄 알고 텍스를 나쁘게 보기 시작했고, 텍스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텍스가 빈칸을 만드는 주된이유는 마을 사람들에게 협박을 하는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것이었다. 누군가가 잘못을 하더라도 텍스는 바로 신문에 올리는것이 아니라,한번에 기회로 그사람이 뉘우칠수 있게했다.무슨 잘못이 있더라도 먼저 기회를 준뒤에 신문에 올리려는 것이 텍스가 빈칸을 내는 주된 이유였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요소 중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중에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잘못' 이다. 즉,우리에게 해롭게도 이용되지만 이롭게도 이용되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누구라도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누군가에게 수천대는 맞아야 했을것이고, 수년동안 양심에 찔려야 했을것이며, 다른사람의 눈총을 받아가며 살아야 했을것이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이유는 잘못을 했더라도, 나 자신이 그것을 속죄하고 뉘우쳤기 때문에 그들은 누군가에게 눈총을 받지 않았을 뿐더러 양심에 찔리지도 않을 것이다. 잘못을 없애기 위해서는 잘못되지 않은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삶을 잘못과 나쁜모습으로만 살아왔다면, 다시 내삶을 새롭게 시작해야한다고 믿는다. 노력할수 있을 만큼의 모습으로 말이다. '단한번의 실수가 인생을 좌우한다' '기회는 한번뿐이다' 이런말은 우리 삶에 필요치도 않고, 생각지도 않아야 할것이다. 처음이 끝이 좌우할수 없는것처럼 한번의 실수와 잘못이라는 것도 사람을 낙오자가 되게 할수는 없다. 누가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좋고 잘난 모습으로만 살아가겠는가!! 누가 이 험한 세상을 한번에 이길수 있겟는가!! 도저히 불가능한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하기란 가능 하지도 않다. 정말 좋고 잘난 모습이란.. 잘못을 한다면 그때 그때 뉘우칠수 있는것이다. 한번의 실수와 잘못.. 그리고 헛된모습을 바로 잡는다면 그 다음은 실수도 낙오자도 헛된모습도 보이지 않게된다. 아마 자신의 한번의 잘못때문에 다른사람의 눈치를 보고, 매일 양심에 찔려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더큰 낙오자와 실패자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내 잘못을 누가 덮어주겠는가! 내 잘못을 누가 감싸안아 주겠는가! 내 잘못과 헛된마음을 누가 없애주겠는가! 이 모든것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것이며 자기 자신이 할일이다. 잘못을 자신이 지킬줄 알고 내가 이겨낼줄 알아야 한다. 지키고 이겨내는 것은 쉽다. 잘못이 있으면 내가 그것을 가차없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면 끝난것이다.
    하지만 왜 세상사람들은 잘못을 버리지 못하고 한번의 실수를 인생의 끝까지 가져가려는 것인지 이해할수가 없다. 그냥 자기 안에서 뱉어 버리면 되는것을...
    누구나에게 있는것을 자신에게만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게 하는것도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것도 우리다. 사람의 얼굴에 '잘 못' 이라고 써있는것도 아닌데, 그 사람의 모습을 나쁘게 판단한다. 또는 잘못을 반성한 사람의 과거를 이상한 눈초리로 본다. 우리들이 이렇게 보는 관념 때문에 사람들의 요소인 잘못은 해롭게만 쓰이고 있는것이다.

    한번 내 자신, 즉 내 속을 한번 둘러보자.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가.. 지금까지의 잘못과 실수인가? 아니면 잘못을 이겨낼수 있고 없애버리는 반성과 성찰인가!!잘못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본보기로 알아야한다. 그리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용기로 가치있게 살아야한다. 나도 한번 내 속을 들여다 본다. 내가 내 모습속에 잘못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내 속은 잘못과 실수를 버리고 있는 깨끗한 모습인지 말이다.

    당신들의 모습은 모두 다 똑같다. 모두가 바라보는 시선도 똑같다. 하지만 당신들이 어떡해 하여서 잘못과 헛된 모습을 털어내고 새롭게 다짐하는지는 모두 틀다.

    얼마나 편하겠는가...과거의 잘못을 털어내고 마음이 깨끗하며 아름다운 양심이 있는사람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될수있다. 속에있는 잘못은 가차없이 털어내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한다. 소중한 모습의 나를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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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racle | 2005년 08월 25일
    별은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와있는 단편소설(현대소설) 이예요. 교과서에서 읽다보니 좋은것 같아 책으로 다시 한번 읽어봤어요. 산을 지키는 목동과 목동이 좋아하는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얘기를 담아놓은 책이지요. 목동은 산과 양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마을 소식은 알지 못해요. 하지만 주일에 한번씩 마을 소식을 듣곤 하지요. 목동은 다른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스테파네트 아가씨에게만 관심이 있어요.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자주 잔칫집에는 가시는지, 또 저녁에 자주 마을에 가는지 어떤지,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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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은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와있는 단편소설(현대소설) 이예요.
    교과서에서 읽다보니 좋은것 같아 책으로 다시 한번 읽어봤어요.
    산을 지키는 목동과 목동이 좋아하는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얘기를 담아놓은 책이지요.
    목동은 산과 양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마을 소식은 알지 못해요.
    하지만 주일에 한번씩 마을 소식을 듣곤 하지요. 목동은 다른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스테파네트 아가씨에게만 관심이 있어요.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자주 잔칫집에는 가시는지, 또 저녁에 자주 마을에 가는지 어떤지, 또 잇달아 보면 젊은이들이 찾아와 환심을 사지는 않는지 등
    모든게 스테파네트 아가씨에 대한 질문이지요.
    이런 궁금증은 모두 반달치의 양식을 가지고 오는 노라드 아주머니와 꼬마였지요.
    그런데 어느 일요일에는 아주머니가 늦어졌죠. 세시쯤이나 되서야 명랑하고 경쾌한 나귀의 방울소리가 들려왔는데.. 나귀를 끌고 온것은 아주머니가 아니였어요.
    그것은 바로 스테파네트 아가씨였어요. 꼬마는 병이나고 노라드 아주머니는 휴가를 얻어 아이들을 보러 집에 갔다는군요. 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단둘이 산에 남아있으니 말입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나귀에서 내려 왜 오게됐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고, 늦은 이유도 말해주었어요. 아가씨 말로는 길을 잃었다고 했는데, 꽃 모양의 리본과 아름다운 스커트, 그리고 레이스로 꾸민 옷차림을 봐서는 춤을 추다 늦은 듯한 모양이었어요.
    내 눈은 아가씨를 향해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는지도 몰랐죠.
    아가씨는 시간이 지난뒤, 산에서 내려갔어요. 아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아가씨는 추위와 무서움에 떨면서 있었어요.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진것처럼 내 눈에 보였어요. 거의 밤이 되가는데 산을 혼자서 내려가기는 위험하고, 나도 산을 벗어날수 없어 오늘 하루는 아가씨와 같이 잠을 자야 했습니다. 아가씨의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나오는데 아가씨는 그곳에서는 잠을 이룰수 없다고 나오셨어요. 나는 아가씨와 나란히 불앞에 앉아서 반짝거리는 하늘만 바라봤어요. 우리는 그렇게 별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새웠지요.



    - 별의 주제는 성스럽고 순결한 사랑이다. 나도 이런사랑을 한번 맛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얘기를 해보는것. 사랑을 꿈꿔온 남녀라면 이런생각쯤은 다 해보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직은 그렇기엔 나이가 어린것 같으니 쫌 기다려야 겠네요. ㅋㅋ
    이 소설에서 끝맺음이 나지 않았지만, 신분차이를 이겨내고 둘이 사랑했으면 좋겠네요. 저 혼자서라도 그렇게 생각해야겠어요. 내 리뷰를 읽고나서 여러분들도 한번씩 생각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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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빛 여우
    seubasu | 2005년 08월 25일
    니이미 난키치가 지은 이 금빛 여우는 그가 타계한 후에 빛을 보게 된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지요.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이 숨어져 있는 아주 서정적인 책입니다. 여기서는 여러 개의 작은 이야기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어떤 걸 골라 읽든지 간에 좋습니다. 모자르트의 음악 중 어느 것을 선택해서 듣든지 간에 과연 모자르트답구나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골라 읽든지간에 과연 서정적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본동화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일본색이 여기저기 튀어 나와 눈쌀을 찌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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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이미 난키치가 지은 이 금빛 여우는 그가 타계한 후에 빛을 보게 된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지요.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이 숨어져 있는 아주 서정적인 책입니다.
    여기서는 여러 개의 작은 이야기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어떤 걸 골라 읽든지 간에 좋습니다. 모자르트의 음악 중 어느 것을 선택해서 듣든지 간에 과연 모자르트답구나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골라 읽든지간에 과연 서정적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본동화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일본색이 여기저기 튀어 나와 눈쌀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생각은 그냥 고이접어 서랍속에 넣어 두세요.. 오히려 일본색이 느껴지지 않아 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금빛 여우외 8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꽃마을의 도둑들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잠깐 적어보면...

    꽃마을의 도둑들은 꽃마을에 5인조 도둑단이 등장하면서 시작합니다.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두목만이 정말 도둑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생계가 어려워 도둑이 되려고 그의 밑에 모인 수하들이지요. 도둑이 되기 전에는 납땜장수, 곡마단에서 피리를 불던 이들 이렇게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이였지만, 나라가 궁핍해지고 입에 풀칠마저 할 입장이 되지 못하니 부득이 도둑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꽃마을에서 그들은, 두목의 지시하에 물건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 정탐을 갑니다. 정탐을 간 사람들을 기다리던 두목에게 꼬마가 다가옵니다. 꼬마는 잠깐 다른 아이들과 놀게 소를 잠깐 봐달라고 하고, 다른 부하들이 돌아오는 동안에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부하들이 돌아오자, 그는 소의 주인을 찾아 주자고 말을 합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구도 그를 선뜻 믿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만 나타나면 심한 불신감을 표출하며 소위 왕따를 시켜왔던 사람들 사이에서 일면식도 없는 자신을 믿어준 그 아이에게 실망을 시켜 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의 사정을 알게 된 다른 부하들은 그 아이를 찾아 헤매다 못해 마을관리에게 두목은 아이를 찾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다른 4명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5인조 도둑단을 해체하게 됩니다. 두목은 헤어지면서 그들에게 다시는 도둑질 할 생각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누누히 당부합니다.
    그럼 누가 이 두목에게 다시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한 것일까요? 사람들 말로는 그 마을 입구에 있는 어린 지장보살이였다고 합니다.

    짧지만 뭔가 울컥하는 게 올라 오지 않습니까?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느끼는 인상만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벽을 쌓고, 의심하고 그 사람됨을 폄하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상대방이 갖게 될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소외감에 대해서는 털끌만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예 생각이라는 개념이 없지요..
    두목 역시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사람들이 쌓은 벽에 실망하고 좌절하다 못해 도둑이 된 것이겠지요. 잠깐동안이라도 그에게 믿음이라는 걸 손에 쥘 수 있게 해 주었다면, 결코 그가 도둑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 결코 차별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자신이 싫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장점까지도 폄하하는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에 대한 의문기호만이 떠 오릅니다.
    사람은 정말은 따뜻한 면만이 가득한 건 아닐까?(장갑편)
    사람을 지위체제에서 보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아야 하며(농부의 발, 스님의 발편),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공익을 위한 사람(동백나무와 샘터편).....
    그렇게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는 면에 대해서 잔잔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 아이가 생기게 되면 매일 그 아이 머리맡에서 이 책을 읽고 주고 싶습니다.
    아가야, 너는 나중에 이런 사람이 됐음 좋겠어라구요...
    오늘 금빛 여우를 만나 보고 싶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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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팝꽃과 산벚꽃의 사랑이야기
    kimssa7 | 2005년 08월 25일
    동화책을 읽다 보면 맑다, 순수하다, 깨끗하다, 아름답다 등의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내 주위의 물건, 동물, 꽃, 나무 등 많은 것들에게 관심과 사람과 똑같이 생각해 보자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실상으로는 잘 되지가 않았다. 이미 컸기 때문일까? 그럼 동화책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글들을 쓸까? 무척 궁금해지는 일이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지만 작가들은 여전히 맑고 순수하기 때문일까? 내가 읽었던 동화책은 사람이 아니었거나 아직 다 크지 않은 아이들이나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인 것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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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책을 읽다 보면 맑다, 순수하다, 깨끗하다, 아름답다 등의 단어가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내 주위의 물건, 동물, 꽃, 나무 등 많은 것들에게 관심과 사람과 똑같이 생각해 보자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실상으로는 잘 되지가 않았다. 이미 컸기 때문일까?
    그럼 동화책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글들을 쓸까? 무척 궁금해지는 일이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이지만 작가들은 여전히 맑고 순수하기 때문일까?
    내가 읽었던 동화책은 사람이 아니었거나 아직 다 크지 않은 아이들이나 소년, 소녀들이 주인공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치 않게 어른들을 위한 사랑동화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조팝꽃과 같은 여자와 산벚꽃 같은 남자의 사랑을 담은 책이다.
    조팝꽃과 같은 여자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3년 후에 유학을 갈 예정이다. 그리고 산벚꽃 같은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산벚꽃과 같은 남자가 조팝꽃과 같은 여자와 목사동 가는 길을 함께 동행하면서 둘의 사랑은 시작된다.
    이 두 남자와 여자는 목사동을 다녀온 후 각자의 길로 가지만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말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얼마 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렇게 사랑을 한 조팝꽃과 같은 여자와 산벚꽃 같은 남자에게 힘든 위기가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다 큰 어른들의 사랑이야기도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극적인 표현도 없고, 거칠지도 않게,, 그렇게 예쁜 사랑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그저 성관계라고 표현한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여기선 몸사랑이란 말로 표현을 했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항상 눈살만 찌뿌려졌던 자극적인 표현이 아닌 아주 아름답게 표현된 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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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우익의 혼자만 잘사면 무슨재민겨
    prettyk | 2005년 08월 25일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도 사람이다..그리고 우리들까지 사람이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다른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은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하고 있는것인가. 전우익 선생님은 사람이라는 것을 농사라는 것에 비유하여 이시대의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농사도 틀이 있어야 잘나고 잘 길러지는 것인데. 왜 우리는 틀없이 살고 자라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며 전우익 선생님은 말하고 있다. 틀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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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도 사람이다..그리고 우리들까지 사람이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왜 다른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은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하고 있는것인가. 전우익 선생님은 사람이라는 것을 농사라는 것에 비유하여 이시대의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농사도 틀이 있어야 잘나고 잘 길러지는 것인데. 왜 우리는 틀없이 살고 자라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며 전우익 선생님은 말하고 있다. 틀이 없는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무엇이 좋다고 떠들어대고 우왕좌왕 하는것인지 나는 그들이 안타까울 정도다. 이 나라에는 부유하고 화려하며 좋고 멋있는 것만을 원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와 명예보다는 가난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을 안고 사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겉만 멋있고 화려하면 뭐하겠는가. 속은 썩어 문드러진 쓰레기와 같은데... 내 자신만 내세우려하고 내 것만을 보여주려하니 누가 그것을 사람이라고 할지...이렇게 어린 나에게도 그 사람들에 대해선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무섭게 보인다.
    농사라는 것에 비유를 들어보면, 봄에는 씨뿌려, 여름에는 싹이 트고,물을 주며, 가을에는 추수하고, 겨울에는 추위와 함께 싸워 곡식을 키워야하니...노력과 인내,그리고 끈기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놀고 먹고 자면서 위로 올라가려고만 하고, 멋있고 화려해지려고만 하고있다. 모두가 이렇게 왔다갔다 이리저리니. 누가 이것을 나라라고 할지 모를 판국이다. 가난한 농민들은 뼈빠지게 일해서 벌어도 자지 못하고 놀지 못하는데. 우리들은 지금 무얼하는 것인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국민은 하나다! 하고 떠들어 대고 있지 않은가!! 혼자만 내세우고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뒤에있고 어려운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 때문에 더아파하고 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요즘 대통령선거로 예를 들수 있다. 선거니, 뭐니 하다보니 모두 어딜가나 그 사람들 이야기다. 하지만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은 너무 불쌍해 보인다. 겉은 저렇게 까만 양복을 입고 멋있는 척 하지만 속은 얼마나 더러워 보일 것이며,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끓고 있을것인가... 더럽고 치사한 것만 모여있는 세상이 무슨 이유로 우리는 이렇게 된건지, 우리 자신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안보이는 세상은 아름다울거다.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너무나도 멋있고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왜 치사하고 나쁘고 실속만 차리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난에 찌든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푸른 나무와 하늘을 없애버리기까지 하는 이 세상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고개를 돌려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는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자신은 아름다워질 수있고 그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다. 사치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내 실속만을 차리지 않는 나 자신을 만들어야 할것이다. 이런 나 자신을 만들려면 아마도 많은 시간이 걸릴것 같다. 사람이란건.. .많이 바뀌어야 될 것이다.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에 잘못된 사상과 사람이라는 점을 헛되게 하지 않게 위해서 말이다. 이 책에서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까마득히 높은 사람들,그 무슨 자리깨나 앉아 있는 사람들, 자기가 하는 일이 바른지 삐뚤은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두려움 마저 없으니. 무슨 짓인들 못합니까?"라고 써있다. 우리 사람들을 깨닿게 해주는 좋은 글귀같아 한번 적어보았다. 저들에게서는 높은곳의 정상 만이 보이고 그 과정은 없는 것일까. 한치의 두려움도 없는 것일까.
    저 아래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얼마나 더 무서워해야 하는걸까. 혼자만의 정상이 그렇게 멋진 곳일까? 한번 그곳까지 올라가서 그들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고 겉과 속이 다른사람들은 무엇을 추구 하려했는지 알고싶다. 실속만 차리는 사람들, 그 모습이 얼마나 안타깝고, 한심해 보이겠는가...

    전우익 선생님은 말했다. 기생충이라고! 우리 보고 기생충이란다! 참...나도 사람인데 내가 기생충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내 자신을 더럽고 추하게 보게된다. 사람이 기생충이란 얘기는 전우익 선생님이 TV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다 . 정말 요즘 세상에 딱 들어 맞는 풍자인 것 같다. 기생충이라니!! 우리가 보기에도 어떤 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한심한 사람까지 있는데... 밭에서 농사짓고,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기생충이라고 부르고도 남을 것이다.
    나도 저런 사람들 처럼 기생충이 되는건 아닌지 두려울 때가 있다. 같은 사람인데 닮아가면 어떡하나 하고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추하게 변하다 보니 누구나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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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보고서
    desert44 | 2005년 08월 25일
    불안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보고서 -유미리의 『골드러시』를 읽고 유미리의 『골드러시』는 패륜에 관해 말한다. 한 소년이 그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나이는 열네 살.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경계에 소년은 놓여 있다. 확실한 소속감을 가질 수 없으므로 경계에 서 있는 자는 불안하다. 은 소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 은 소년에게 또 다른 불안의 근원. 파칭코 가게를 경영하면서 탈세를 통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아버지. 엄마는 그녀의 첫아들 히데끼가 '윌리엄스병'이라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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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보고서
    -유미리의 『골드러시』를 읽고



    유미리의 『골드러시』는 패륜에 관해 말한다. 한 소년이 그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카즈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나이는 열네 살.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경계에 소년은 놓여 있다. 확실한 소속감을 가질 수 없으므로 경계에 서 있는 자는 불안하다. <불안>은 소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 <가족>은 소년에게 또 다른 불안의 근원. 파칭코 가게를 경영하면서 탈세를 통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아버지. 엄마는 그녀의 첫아들 히데끼가 '윌리엄스병'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리자 가정과 자식을 버리고 종교에 빠져든다. 그녀는 철저하게 물질을 배격하는 정신의 삶을 선택한다. 법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는 소년에 불과한 형, 원조교제에 빠져 있는 누나인 미호, 그녀는 내가 이러고 다닌다고 해서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당당하게 소리친다.

    소년 카즈키의 불행은 성장의 모델을 가질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아버지 히데모토는 떳떳하게 말한다. <경찰 신세만 지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좋다. 네가 필요하다면 아빠는 패션 모델 뺨치는 미인도 언제든 붙여줄 수 있다.>라고. 소년은 그런 아버지를 찌른다. 아버지는 어른이 아니다. 더러운 돈과 욕망의 어린아이.

    작가 유미리는 소년의 어머니 미키를 통해서 이렇게 폭력적인 세상에서 종교는 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왜 자식들을 버리고 자기만 도망치냐는 소년의 항변에 미키는 차갑게 대꾸한다. <자기 힘으로 빠져 나오거라.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어.> 소년이 미키에게 돈을 주자 그녀는 돈을 불태운다. 그것이 애정표현의 옳은 방식이든 아니든, 자신이 건네준 돈이 불태워지자, 소년은 격노한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엄마의 뺨을 후려친다. 미키, 그녀는 어른이 아니다. 모든 정상적인 관계와 물질을 거부하는 비이성적 광신에 붙들려 있는 어린아이.

    소년에게 어른은 없다. 아버지와 엄마는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이 나이가 돼서 뭣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어지다니>라고 말하는 <카나모토>라는 사나이. 적어도 소년의 눈에 카나모토는 어른으로 비친다. 그는 적어도 삶을 반성한다. 반성하고 있다. 반성도 모르는 어른이라는 어린아이들이라니! 아버지는 소년을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소년에게 어른을 강요했다.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파칭코 직원들은 소년에게 모두 존대말을 했다. 그렇다고 소년이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아버지를 죽이자.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나도 한번 어른이 되어 보는 거다.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 소년은 불안하다. 자신은 어른이 되지 못했고 자신을 돌보아줄 어른을 잃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어른 같이 말해본다. 남들의 코웃음을 살 뿐이다. 소년은 아버지의 정부와 또 그녀의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일 뿐, 그런 행위가 소년을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소년은 카나모토에게 복종하려 하지만 그는 소년에게 죄를 묻는다. 진퇴양난.

    소년은 주머니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동물원에서 찍은 가족 사진. 그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의 기호이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상실된 낙원의 기호. 소년의 가족은 오직 변색된 사진 속에서만 있다. 사진은 현실의 이미지요, 행복의 기호일 뿐이다. 소년의 가족은 현실 속에는 없고, 소년의 행복은 이미지와 기호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유미리의 <골드러시>는 이렇게 가족의 해체를 말한다. 해체된 가족이 어떻게 폭력을 낳는지를 말한다. 『골드러시』에서 희미하게나마 가족 안에 도사리고 있는 파괴의 힘이 어디에서 배태되었는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엄마인 미키가 첫아들이 병자가 아니라 천재라고 믿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첫아들에게 보여준 애정과 관심. 그 덕분에 누나인 미호와 소년은 철저하게 엄마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욕망은 결핍된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상받으려고 한다. 소년은 자신의 형에게 화상을 입히고 꿈 속에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폭력을 통해 결핍된 애정을 보상받으려고 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장영창>이라는 한국인임을 짧게 말해주는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소년의 아버지 또한 일본 사회에서 <이지메>의 희생자는 아니었을까. 이 소설에서 폭력은 전염된다. 일본 사회의 이지메의 폭력이 아버지를 폭력적으로 만들고, 아버지의 폭력이 또 다시 자식을 폭력적으로 만든다. 폭력은 이렇게 확대 재생산된다. 유미리의 『골드러시』는 불안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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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의 학교
    desert44 | 2005년 08월 25일
    이윤기의 『어른의 학교』 이윤기/어른의 학교/민음사/190쪽/7000원 김수영도 그랬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의례 수필에 대한 묘한 저항감을 나타내 보인다. 문학가들의 그런 저항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잡문(雜文)을 쓴다는 식이라든가, 시의 타락이 소설이요, 소설의 타락이 수필이라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장르의 위계 질서가 엄존하는 곳에서 시나 소설이 아닌 글들은 간단하게 잡스런 글들로 분류된다. 서양쪽이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사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서 잡문에 대한 점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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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기의 『어른의 학교』
    이윤기/어른의 학교/민음사/190쪽/7000원


    김수영도 그랬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들은 의례 수필에 대한 묘한 저항감을 나타내 보인다. 문학가들의 그런 저항감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잡문(雜文)을 쓴다는 식이라든가, 시의 타락이 소설이요, 소설의 타락이 수필이라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장르의 위계 질서가 엄존하는 곳에서 시나 소설이 아닌 글들은 간단하게 잡스런 글들로 분류된다. 서양쪽이나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사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서 잡문에 대한 점수는 그리 후한 편이 못된다. (대체 장르에 대한 이런 식의 평가가 어떤 기원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한국 현대 문학에서 사유와 문체가 잘 버무려진 맛깔난 에세이를 읽기가 쉽지 않다. 김소운이나 윤오영의 수필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글을 향한 조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그 양이 적다. 파스칼의 『팡세』와 같이 문체의 요모조
    모를 뜯어보는 즐거움과 함께 거장의 정신의 광맥을 짚어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는 책은 불행하게도 그리 많지가 않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제법 빗줄기가 굵은 소낙비다. 김화영의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문학상상력의 연구』도 문체와 사유가 행복하게 악수하고 있는 아주 희귀한 예에 속할 것이다. 여러번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논문이라면 나는 김화영의 카뮈 연구서인 『문학상상력의 연구』를 권한다.

    적어도 김화영의 이 책에서만큼은 <아름다운 논문>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윤기의 『어른의 학교』도 호우급에 속한다. 그 빗줄기가 사뭇 시원하다. 이문열이 그랬던가. 이윤기의 소설은 잔재주로 안개를 피우지 않는다고. 그런 사정은 수필에서도 마찬가지. 분위기로 멋을 부리지 않는 대신 그의 의뭉은 여전히 한 소식을 전한다. 귀밑이 희끗희끗한 이 아저씨는 능청스럽게 사람을 웃긴다. 본심을 슬쩍 뒤로 감추고 짤막짤막한 스타카토식 발언으로 소위 '뒷다마를 까는' 솜씨는 고수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글을 꼬부려서라도 미문을 쓰겠다고 덤비는 요즘의 신세대 작가들도 한 번 눈여겨 볼 만한 문체다. 국내 몇 안되는 유능한 번역문학가로서 잔뼈가 굵은 그는, 오랜 번역 과정에서 얻었음직한 인문학적 교양으로 한껏 글의 후광 효과를 살린다. 선가(禪家)의 에피소드들도 재밌다. 책의 여백은 시원하다. 북디자인 방면에서 그래도 한다 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정병규의 솜씨가 책의 외양을 산뜻하게 했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된 정재규의 컷도 운치가 있다. 꼼꼼히 읽으면 이윤기의 콤플렉스가 보인다. 대충 읽어도 이윤기의 유머는 보인다. 내 마음은 이런 구절에 기표했다.

    사다리를 버린다(去梯)커니, 통발은 잊는다(忘筌)커니,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다(不立文字)커니 하는 거 아무나 지망지망히 시늉할 것이 아닙니다. 사다리는 누각에 오른 연후에야 버리는 것(登樓去梯), 통발은 물고기를 잡은 연후에 잊는 것(得魚忘筌)입니다. 자기 근기(根氣)는 요량도 못하는 채 뭘 불싸지르고 뭘 버리는 거 좋아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적어집니다.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들 것이 아니라 모두 배우는 일에 겸손해졌으면 합니다. 옛 선사 한 분의 말씀이 들어둘 만합니다. <언필칭, ' 불립문자 '라고 하나 문자도 방편될 것이면 가히 길동무 삼을 만한 것이라(그러니까 까불지 말거라).>

    옳다. 언어나 논리가 아니라면 우리가 달리 어디에 의지할 것인가. 김용옥도 그런 말을 했지만 논리의 극단에서 초논리이어야지 논리란 논리는 모두 정리해고한 후에 초논리하자는 것은 우습다. 아니 위태롭다. 공자님도 우군으로서 여기에 한 마디 거드신다.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사색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사족: 여백도 좋고 운치도 중요하지만 지면을 낭비하는 것도 그리 좋은 미덕은 아닌 듯싶다. 장식도 좋지만 그것으로 해서 책값이 올라가고 그래서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자꾸 주머니 눈치 봐야 한다면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호화양장본은 재벌 회장님 자서전이면 족하지 싶다. 반론이 있겠지만 뒷주머니에 찔러넣을 수 있는 사이즈와 가격이면 나로선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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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로티즘
    desert44 | 2005년 08월 25일
    죠르주 바타이유의 펴낸곳: 민음사 가 격 : 9000원 은 단순하지 않다.그것은 性 이상의 것이다. 신성에 이르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을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어떤 것으로 보고 있다.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으로서의 에로티즘을 바타이유는 말하고 있다.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파고드는 에로티즘은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고립감을 벗어나게 한다.에로티즘은 나와 너의 하나됨을 지향한다.그러나 그 지향의 끝은 언제나 죽음이다. 에로티즘은 죽음에의 문을 열어 준다.죽음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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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죠르주 바타이유의 <에로티즘>
    펴낸곳: 민음사 가 격 : 9000원

    <에로티즘>은 단순하지 않다.그것은 性 이상의 것이다. 신성에 이르는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을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어떤 것으로 보고 있다.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으로서의 에로티즘을 바타이유는 말하고 있다.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파고드는 에로티즘은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고립감을 벗어나게 한다.에로티즘은 나와 너의 하나됨을 지향한다.그러나 그 지향의 끝은 언제나 죽음이다. 에로티즘은 죽음에의 문을 열어 준다.죽음은 개인적으로 존속하고 싶은 욕구를 부정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이성의 지배에 무한정 복종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이성의 세계를 건설하지만, 인간의 내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폭력이 도사리고 앉아 있다. 전적인 통제가 불가능한 충동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도 또한 결코 우리의 합목적성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비합리성의 우주 속에 자리잡고 있는 폭력을 우린 에로티즘을 통해 경험한다. 에로티즘은 정신성이 지배하던 질서와 유효성의 체계를 허물어 뜨린다. 동물적 충동에 몸을 맡긴 사람은 맹목과 망각을 누리면서 폭력을 짐승처럼 휘두른다.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고 울부짖는 야수성, 팽창과 절규, 그 끝에 죽음이 있다. 그 관능적 희열이란 죽음의 전조이다.

    삶이란 끊임없는 폭발의 연속이다. 그런데 끊임없는 폭발에도 불구하고, 삶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존재는 폭발의 힘이 다하면, 새로운 존재에 자리를 내어주어 그 새로운 존재들이 폭발의 불꽃놀이를 지속하게 한다. 그것이 삶의 조건이다. 에로티즘은 삶의 연소, 삶의 낭비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합리적이 아니다.생산의 메카니즘을 보기좋게 외면한다.아니 위반한다. 그렇다. 에로티즘은 금기의 위반이다.합리성의 파괴이다. 찢음이며 찢김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폭력이다.그러나 그것은 또다른 생명을 낳는다. 그러나 거기엔 공허가 있다.갑작스런 한순간에 열리는 공허.그 공허의 문을 여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부재를 이끌어들이며,부재는 부패와 관계한다. 관능적 희열 끝에 우린 급속도로 부패한다.새로운 생명에게 우릴 내어주고 우리는 잠시 죽는 것이다.

    동물성과 야수성을 말하지 않고 에로티즘을 말할 수 없다. 성행위 중의 상대방은 연속성의 가능성으로서 제시되며,빈틈없는 개체의 불연속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야수처럼 파고든다.성행위 중에 동물성의 폭력의 세계에 휘말리게 된 두 존재가 성적 결합을 통해 자아를 잠시 잊고 위기를 함께 겪는다.성적 결합은 두 존재로 하여금 연속성을 향해 잠시 자아의 문을 열게 할 뿐이다. 막연한 의식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그러나 발작이 지나면 각자의 불연속성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따라서 성행위는 가장 진하면서도 가장 의미있는 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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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에 울다
    desert44 | 2005년 08월 25일
    불가능한 것을 듣는 투명한 문체의 귀 마루야마 겐지 도서출판: 예문 규칙적인 수영과 조깅으로 복부와 종아리에 여전히 탄력을 유지하고 있는 40대 중반, 그것이 하루끼의 이미지다. 그의 모든 소설의 장정은 조깅복 상의를 입은 그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가 즐겨 신는다는 운동화와 조깅복은 하루끼의 단순한 기호물에서 그치질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정장은 그에게 불편하다. 그것은 무겁고, 무거운 만큼 보행을 늦춘다. 달리고 싶은 자에겐 조깅복과 운동화면 그만이다. 워크맨의 경쾌한 음악이 그로 하여금 구름의 보행을 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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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한 것을 듣는 투명한 문체의 귀
    마루야마 겐지 <달에 울다> 도서출판: 예문


    규칙적인 수영과 조깅으로 복부와 종아리에 여전히 탄력을 유지하고 있는 40대 중반, 그것이 하루끼의 이미지다. 그의 모든 소설의 장정은 조깅복 상의를 입은 그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가 즐겨 신는다는 운동화와 조깅복은 하루끼의 단순한 기호물에서 그치질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정장은 그에게 불편하다. 그것은 무겁고, 무거운 만큼 보행을 늦춘다. 달리고 싶은 자에겐 조깅복과 운동화면 그만이다. 워크맨의 경쾌한 음악이 그로 하여금 구름의 보행을 닮게 할 것이다.

    재즈에서 얼터너티브, 윌리엄 와일러에서 스필버그까지 아메리칸 문화의 뒷골목까지 하루끼는 빠삭하다. 그는 대단한 문화적 식욕을 가졌고 그런 문화적 식욕을 오늘날의 젊은 문인(문인뿐이겠는가. 오늘날의 재즈붐과 문화적 담론의 팽창을 보라. 개나 소나 재즈고 영화다.)
    들은 열심히 쫓아가고 있는 눈치다. 마치 그런 문화적 식욕의 부진이 문화적 후진이라도 되는 양. 거리의 장식장과 그 안에 디스플레이가 그렇듯 가볍고 경쾌하고 산뜻한 하루끼의 보행. 하루가 멀다하고 버전업되는 자본주의적 속도에 전혀 주눅들지 않은 하루끼. 그는 그 자본주의적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매일 조깅을 하는 것일까.

    하루끼와는 많이 다른 곳에 마루야마 겐지가 있다. 그는 좀 삐딱하다. 다소 거칠고 야생스럽기까지 하다. 그의 소설 <달에 울다> 장정에 있는 그의 사진은 어떠한가. 검은 선글라스. 팔없는 검은 나시 티셔츠와 검은 바지와 검은 구두와 검은 양말. 의도적으로 근육을 강화시
    키기 위해, 조깅이나 수영으로 만든 육체가 아니라 선천적인 꼬장꼬장함으로 인해서 만들어졌을 법한 다소 신경질적인 육체, 그것이 마루야마의 몸이다. 수틀리면 한방 내지를 기세의 육체. 이런 사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주 점잖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점잖음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물의 가족>으로 나의 입을 반쯤 벌어지게 했던, 마루야마의 문장은 독보적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뒤척이지도 않는다. 이불에 누운 채, 달빛에 의지해서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낡은 병풍의 묵화를 바라보고 있다. 벌써 오랫동안 그러고 있지만, 몸은 따뜻해지지 않는다. 특히 발가락이 시리다." 이 평범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달에 울다>는 무엇보다 '괜광씬 문체'를 보여준다. 그의 소설은 '내용이고 세계관이고 간에 소설은 무엇보다 문체가 아닐까'하는 비약을 자연스럽게 한다. 간결한 문장,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는 칼로 자른 듯하다. 극도로 투명하다. 그의 문장은 요란하지 않지만 그 맛이 오래 간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하루끼보다 훨씬 더 기교적인지 모른다. 밖으로 드러내는 기교가 아닌 감추는 기교. 에이, 난 그런 거 몰러, 하는 식의 능청스런 기교.

    <달에 울다>의 첫 페이지의 문장들을 보자. "식수림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마을은, 다시 한번 바닥없는 정적에 푹 잠기고, 여기저기에서 실개울 소리가 되살아나고 있다.안개처럼 조용하게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것은 몇만이라는 누에가 뽕잎을 부지런히 뜯어먹는 소리이다. p.11" 실개울이 불어나는 소리를 듣는 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를 듣는 귀, 이것이 겐지의 귀다. 하루끼의 귀가 비틀스에게 열려 있다면 겐지의 귀는 실개울과 뽕잎에 열려 있다. 그의 귀는 불가능한 것을 듣는다. "법사는 여울을 건너는 발소리를 알아차린다.p.14" 들리지도 않는 것을 들린다고 하는 것이 선사들의 어법이다. 겨자씨 안에도 수미산이 있다고 그들은 곧잘 말한다. 그러나 선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고분고분하게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어법도 그런 것이리라. (귀란 모름지기 들리는 것만을 들어야 한다는 규칙이 뭐 헌법에라도 있단 말인가? )

    귀신의 귀를 빌렸는지 그의 귀는 때론 불가능 너머의 것까지를 듣는다. " 강물 소리, 세 가지 종류의 개구리의 합창, 아버지의 짐승 같은 심음 소리. 예전에 누에방으로 사용하던 아랫층 마룻방은, 지금은 텅 비고, 고요하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이 집에서 태어나고 죽은 사람들의, 있는 것 같지도 않은 기척이 넘실거리고 있다.p41" 그는 고백한다. "내 청력은 나이와 더불어 예리해 가고 있다. 예컨대, 사과나무가 땅 속의 물을 빨아먹는 소리까지도 들린다." 이런 과장된 청력은 어쩌면 겐지의 능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겐지에게 그런 초능력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픽션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겐지의 매력은 투명한 노골성에도 있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그런 천진성(겐지를 너무 과찬하고 있는 건가? 하긴 계집이 이쁘면 방귀냄새까지 향기롭다지 않은가)이 겐지에겐 있다. "야에코는 블라우스의 단추를 끄르고 씩웃더니 활짝 가슴게를 열어 보였다. 모양새 좋은, 소독액보다 더 하얀 유방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는다.p.40", "야에코의 모습은 전라나 같다. 사타구니 부분, 그 훨씬 안쪽까지도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몹시 혼란스럽다.p.46"

    많은 사람들이 하루끼는 흉내내도 겐지는 흉내내지 않는다. 난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곳에 인파가 드글거릴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아주 적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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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병 속의 물이 달콤해지는 시간
    desert44 | 2005년 08월 25일
    물병 속의 물이 달콤해지는 시간. 보르헤스의 틀뢴,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추상화된 언어로 불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별적인 사물들로부터 어떤 공통적 성질을 추출하는 추상(抽象)의 작업은 결국 유(類)로는 환원될 수 없는 개체성을 버리는 사상(捨象)의 과정 속에서만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틀뢴, 그곳에서는 사물들은 개별성의 훼손됨이 없이 자기 고유의 이름으로 명명된다고 합니다. 틀뢴에서의 사물들의 이름은 그 개별적 사물만이 갖는 독특한 향기와 빛깔과 질량을 함유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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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병 속의 물이 달콤해지는 시간.



    보르헤스의 틀뢴,
    그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추상화된 언어로 불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별적인 사물들로부터
    어떤 공통적 성질을 추출하는 추상(抽象)의 작업은
    결국 유(類)로는 환원될 수 없는 개체성을 버리는
    사상(捨象)의 과정 속에서만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틀뢴, 그곳에서는 사물들은 개별성의 훼손됨이 없이
    자기 고유의 이름으로 명명된다고 합니다.
    틀뢴에서의 사물들의 이름은 그 개별적 사물만이 갖는
    독특한 향기와 빛깔과 질량을 함유하겠지요.
    하기사 4월의 라일락과 6월의 라일락을
    '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우리들의 명명체계는 얼마나 허술하고 부실한 것인지요?
    分類와 抽象의 위협으로부터
    유일무이한 나만의 오리지낼러티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곳 틀뢴,
    그곳에서 지금 창 밖에서 마악 꽃봉오리를 여는 라일락은
    어떤 이름으로 불리었을까요?

    나는 당신이 아니고, 당신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너다, 너는 나다,라는 華嚴論的인 명제는
    틀림없이 나는 네가 될 수 없다는
    절망이 키워낸 부산물일 것입니다.)

    모든 類와 種에 아랑곳없이
    존재의 특이성이 남김없이 보장받는 곳 틀뢴,
    언어의 모음과 자음들이
    존재의 유일무이한 광휘를 찬양하는 데 바쳐지는 그곳에서는
    사랑이나 우정은 망각에 저항하는 도착적(倒錯的) 열정으로
    '이곳'만큼은 아프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현재의 바람이 '살아 있음'의 유구한 기쁨을 노래하고
    내일은 내일의, 오늘은 오늘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햇살 아래 한 순간을 살다가는 육체들은
    열려진 가능성의 미래를 잊은 채
    오직 현재를 유일한 기쁨으로 승낙할 것입니다.
    그런 현세주의는 근사합니다.
    우린 너무나 많은 희망의 노래에 길들여져 왔고
    슬픔이나 절망의 초월적 권능을 과장하는 문화에
    필요 이상의 상상력을 고갈시켰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희망이란 이름으로 여전히 의미있습니다.
    희망이 없다면 보르헤스의 세계는
    어찌 한 줄이라도 읽힐 수 있겠습니까?)

    보르헤스의 주인공은
    틀뢴의 백과사전 11권을 발견한 놀라움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밤의 밤>이라 불리는 어떤 밤이 있다.
    그날 밤은 하늘의 비밀 문이 넓게 열리고,
    물병 속의 물이 달콤해진다고 한다.
    만약 하늘의 비밀문이 열렸었다 해도,
    나는 그날 밤은 그처럼
    이상한 정신적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대목에서 누가 깊은 숨을 들이 쉬며 쉬어 가지 않겠습니까?
    아름다움은 그런 짧은 정지 속에서 기쁨의 순간을 연장합니다.

    그러나 과연 틀뢴은 현실태로서 가능한 곳일까요?
    모든 존재가 남김없이 자신의 독자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세계가 참말로 있을 수 있을까요?
    추상의 욕망이 무장해제된 세계,
    만약 그런 세계가 있을 수 있다면
    그곳의 시간은 '이곳'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흘러갈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시시각각을 포착하려는 꿈이
    그것들을 뭉뚱그려 한데 묶으려는 추상의 욕망을 낳지는 않았을까요?)
    '이곳'에서의 찰나가 '그곳'에서는 한 生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의 사물은 오래도록 자신의 광휘를 잃지 않으며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시간이 덧없이 흐르는 곳에서
    기억은 망각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겠지만
    느린 시간 속에서 의식은 하품을 하며
    나른한 현재를 즐길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누워 있는 안락한 의자 밑으로
    구름 한 점이 낙엽처럼 흘러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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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벙어리삼룡이
    prettyk | 2005년 08월 25일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하는 것처럼 그도 그러했다. 그는 사랑을 말로써 하려하지 않고 자신의 몸의 희생과 진정한 사랑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누구든지 그처럼 할수없을것이다. 누굴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희생할수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느누구나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삼룡이의 사랑에 대한 숭고한 희생정신과 그 애뜻한 마음을 보여주므로써, 우리 현대인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고 있다. 어느 주인댁 하인으로 사는 삼룡이는 말못하고 바보같지만, 주인님의 명은 무엇이든 따랐으며, 일도 부지런히 잘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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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하는 것처럼 그도 그러했다. 그는 사랑을 말로써 하려하지 않고 자신의 몸의 희생과 진정한 사랑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누구든지 그처럼 할수없을것이다. 누굴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희생할수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느누구나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삼룡이의 사랑에 대한 숭고한 희생정신과 그 애뜻한 마음을 보여주므로써, 우리 현대인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고 있다.

    어느 주인댁 하인으로 사는 삼룡이는 말못하고 바보같지만, 주인님의 명은 무엇이든 따랐으며, 일도 부지런히 잘했다. 하지만 주인댁 아들의 괴롭힘과 폭력으로 삼룡이는 힘들어 했다. 그래도 삼룡이가 그 고난을 참았던 것은 주인댁 아씨 때문이었다. 삼룡이는 주인댁 아씨를 사랑했던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것으로도 족했던 삼룡이는 모든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집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씨는 결혼까지 했지만. 삼룡이는 아씨를 끝까지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주인댁 집에 큰 불이 난것이다.
    삼룡이는 그 불길 속에서 아씨를 구하려다 그만 팔이짤리고 얼굴이 일그러져 처참히 죽고 말았다. 나는 삼룡이가 죽어가는 모습에서 가슴이 찡해짐을 느꼈다.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길속을 헤쳐 들어간것 만으로도 눈물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 삼룡이는 자신의 마음을 말로써 표현할수 없어서 자신의 몸으로 사랑한다고 말한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희생한다' 이런 이야기는 흔한 이야기지만, 삼룡이는 다른것 같다. 말못하는 바보 였고, 맞고 짓눌리면서 사는 병신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바보가 사랑이란것을 알고 사랑이란것을 한것이다. 삼룡이가 얼마나 아씨를 사랑했는지는 불길속을 들어갔을때 삼룡이의 팔이 끈어지고 얼굴이 불길때문에 일그러 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씨를 구한것을 보면 알수있다. 불길속에서도 삼룡이의 사랑은 컸던것이다. 어떡해서 그 바보같고, 자질구레한 한 사람의 모습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아마 우리 현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래도 아씨가 삼룡이의 마음을 알고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아씨가 끝까지 그 마음을 몰라서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아직 사랑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이런 마음이라도 가지고 싶다 .. 삼룡이 처럼 말이다. 삼룡이란 이름을 처음 읽었을때 그 모습이 바로 묘사 되었다. 분명히 촌시러울 테고 분명히 얼굴은 우락부락 이상할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다보니 아니었다. 삼룡이의 모습은 어느 누구 보다고 멋있었고, 양반 못지 않게 존경스러 보였다.
    한번 우리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자기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고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초라하지 않다는것을 말이다.

    난 많은것을 느낀것 같다. 모습과 마음은 틀리다는 것을 말이다. 비록 삼룡이가 아씨를 사랑하고 그 아씨에 대해 목숨을 바치는 그런 흔한 이야기 였지만, 이런 흔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많은것을 느낄수 있고 생각할수 있고, 더 깊이 들어갈수 있는것이다. 아마 나에게도 언젠가는 삼룡이 같은 사람이 나타날거라 믿는다. 나만의 착각이지만..ㅋㅋ 나도 삼룡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할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아마도 그런 사람이 나타날거라 믿는다.

    우리 모습은 초라하다. 얼굴은 보잘것 없고, 능력도 돈도 없는 빈털털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한명씩은 있다고 해보자. 그사람은 나를 초라하게 보겠지만 내 마음만은 초라하지도 빈털털이도 아니라고 믿어야한다. 내 마음만은 멋있는 신사고, 내자신이 나를 존경스러워 할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그사람을 위한 마음은 어느 부자 못지 않다는것을 알아야한다.


    ※사랑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만을 보고 사랑하는것 보다는 마음까지도 알아보고 사랑할수 있는 우리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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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소설-빛나는 전망을 읽고
    monki | 2005년 08월 25일
    Ⅰ 북한의 소설을 읽어볼 기회는 정말 드물다. '꽃파는 처녀'니 '피바다'니 하는 책들이 있다고 하지만, 서점에서도 지금은 거의 없다. 한창 80년대 사회에서 민주화에 대한 투쟁이 격렬했던 시기에, 그리고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시기에 쉽사리 구할 수 있었던 선배를 통해서 읽을 수 있겠지만, 그런 선배들이 모두 졸업한 지금의 상황에서 그리고 사회가 이데올로기 문제나 북한 문제에 대해 많이 너그러워졌다고 하나 실제로는 아직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출판하려는 출판사가 없다는 것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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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소설을 읽어볼 기회는 정말 드물다. '꽃파는 처녀'니 '피바다'니 하는 책들이 있다고 하지만, 서점에서도 지금은 거의 없다. 한창 80년대 사회에서 민주화에 대한 투쟁이 격렬했던 시기에, 그리고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시기에 쉽사리 구할 수 있었던 선배를 통해서 읽을 수 있겠지만, 그런 선배들이 모두 졸업한 지금의 상황에서 그리고 사회가 이데올로기 문제나 북한 문제에 대해 많이 너그러워졌다고 하나 실제로는 아직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그리고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출판하려는 출판사가 없다는 것과 더 이상 읽을 독자가 없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조금은 힘든 일이 아닐까 한다. 전에 만주에서 활동했던 김일성 부대의 유격대원들이 자신의 그때 활동을 했던 상황을 회고하면서 쓴 '회상기'라는 책도 정말 어렵게 구해서 읽었다. 서점에 가면 그런 책들이 한두 권 정도 있고, 그것도 아주 구석에나 있는 것을 보면, 이젠 북한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큼의 관심이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찌보면 안타까운 현실이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북한을 동포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면에서 지금 읽는 북한의 한 단편은 매우 나에게 인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것이 50년대에 쓰여진 옛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어보면서 난 소설치고 유치하면서 기계적이고 공식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북한의 문학예술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복무해야한다는 교시에 철저할 정도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이 작품의 줄거리는 한국전쟁 때 미국의 무차별적 폭격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파괴된 한 공장에서 시작된다. 혜숙은 용접공으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가스탱크를 용접하고 있었다. 그녀는 미국을 증오하다가 다시, 열차를 타고 돌아올 제대 군인인 남편 윤호를 생각하고 있다. 그때 덕순이가 나타나 영희가 이유없이 공장에 나오지 않음을 말하는데, 사무실에서 혜숙을 불러 가보니, 지금 해야 될 일이 많은데도 영희가 남자를 만나면서 결혼할 생각에 공장에 나오지 않음으로 다투고 있었다. 혜숙은 자신이 달래서 데려오겠다고 하고는 사무실을 나와 영희네 집에 들러 왜 나오지 않냐고 묻는다. 영희는 결혼하면 남편을 집에서 내조하는 생각에 공장을 그만둘 것이며, 윤호가 곧 돌아오면 혜숙 역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윤호를 그리워하던 그날 밤, 윤호는 제대해 돌아오고, 자신은 청수로 가기 때문에 이사갈 준비를 하라며, 또 더 이상 공장에 나가 고생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혜숙은 공장의 일손이 부족하다며 기어이 야근을 한다. 섭섭해하던 윤호는 자고 다시 일어나니, 혜숙은 주택 지구 여맹회의에 간 것을 알고는 노한다. 혜숙이 돌아와 다시 얘기하는데 혜숙은 지금 공장 일 때문에 청수에 가지 못한다고 하자, 윤호는 화를 내며 혜숙에게 자신이 반갑지 않냐며 또 변한 것 같다고 화를 낸다. 혜숙이 견디지 못하고 잠시 나갔는데, 다른 직원들은 혜숙이 곧 떠날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에 속이 상하다가, 최 아바이를 만나 상의한다. 최 아바이는 윤호를 설득해 줄 것을 약속했다. 한편 윤호는 기분이 울적해 잠시 나왔다가 공장이 모두 미국의 손에 파괴된 것을 보고 격분해하다가, 합성탑이 부서진 모양으로 있는 것을 보고는 껴안고 운다. 이때 최 아바이를 만나 기능공이 부족하다고, 혜숙은 절대 필요한 존재라고, 청수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라는 말에, 혜숙을 인정해 주고, 혼자 청수에 갔다올 것을 결심한다. 영희 역시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고는 공장에 나올 것을 얘기하며, 바로 일을 시작한다.
    이 소설은 54년에 쓰여졌다. 이 시기는 그들이 구분한 현대사의 다섯 시기 중 네 번째인 전후복구 건설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다. 그래서, 그들이 문학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한국전쟁 후 파괴된 모든 시설을 복구하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소외 등 인간의 존재를 다룬 50년대 남한의 소설과 달리 이것은 그들의 새로운 사회 건설의 의식을 고취시키고, 이런 힘든 상황이 누구로 인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개인적 욕망을 과감히 잘라내고 전체를 위해 희생하는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쉽게 납득이 안가는 점이 많다. 윤호가 혜숙을 그리워하고 다시 함께 살아갈 것을 생각한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감정이고 오랫동안 생각한 일이므로 쉽게 바꾸기란 그 누구도 어렵다. 그런데, 이것이 최 아바이의 말 몇 마디에 그리고, 사회가 파괴된 모습을 조금 보고 통탄해 하다가 의식이 바뀌는 것은 납득이 안간다. 어쩌면 저리도 순수할 정도로 자기 희생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영희도 비둘기처럼 남편을 집에서 내조하는 것을 최고의 꿈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혜숙과 윤호의 과정을 보고서는 바로 바꾸게 된다. 그것이 가능할까? 사람의 내면은 얼마나 복잡한데.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정말로 북한의 대중들이 소설 속에서 형상화된 인물들과 같을까? 사람들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 한국 전쟁 때 얼마나 많은 핏줄들이 죽었는가. 그것도 원치 않던 싸움으로. 서로 죽고 죽인 게 아니라, 일방적인 폭탄 세례로 인해 모든 것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싸움으로. 이럴 때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만이 그 죽은 핏줄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 아바이의 말에 "우린 미국 놈들이 보란 듯이 공장을 다시 일궈 세울 걸세...."하는 구절처럼. 그리고 미국에 대한 증오가 곳곳에 나타나는데, 혜숙이 무너진 건물을 보면서 '죽일놈들 같으니'하면서 생각하는 것, 윤호 역시 합성탑을 보면서 '죽일 놈의 새끼들'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이런 모든 고통의 원인이 미국으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당연하다 할 정도로 당에 의한 교시적 기능을 갖춘 문학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면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즉, 혜숙이 여맹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하는 생각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보이는데, "그는....두 개의 문 앞에서 어느 문을 들어갈지 망설이고...한쪽 문은 그 전날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안일과 낙후와 무기력, 값없는 삶의 나날이 되풀이되는 '좁은 문'이고, 한쪽 문은 노동의 영예와 끊임없는 전진,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넓은 문'이었다...."라고 하면서, 지금은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전후복구에 힘쓰면 보람과 행복이 있다는 것, 또 혜숙이 혼자 갈등을 겪을 때 하는 생각 중에 '...어버이 수령님께서 우리 공장이 빨리 복구되기를 얼마나 바라고 계신가'라는 면에서 보면 그러하다.
    내가 기계적이고, 공식적이라 한 것은 전형적인 변증법적 과정에 맞추어 인간의 의식의 변화를 다루고 있는 점 그리고, 인물의 내면 심리 상태를 날씨로 나타내는 기법이 있는데, 이것이 공식에 대입한 듯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제목이라는 것이 작품의 전체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공식이 "빛나는 전망"에서 같이 제목만 봐도 해피엔딩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눈에 보이고, 창작 동기 역시 읽어보지 않더라도 바로 알 수 있다. 영희와 혜숙과 윤호는 서로 연관되어 있고, 윤호와 영희가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희생 정신을 갖추는 것이 변화 발전이라 볼 때, 정반합의 공식에 맞출 수 있다. 윤호와 영희의 여자로서의 내조를 최고의 이상으로 보는 것이 正이라 한다면, 지금 상황이 한 사람의 노동력도 아쉬운 상태라고 자각되어 있는 상태와 그런 현실, 최 아바이의 설득을 半이라 한다면, 그 둘의 대립관계로 인해 변화·발전된 상태 즉, 영희와 윤호의 자기 희생에 대한 각성을 合이라 볼 수 있다. 변증법을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아울러 이 소설이 당의 지침에 의해 쓰인 작품이거나, 혹은 작가가 당원이라는 것을 짐작케 할 수 있다. 인물의 내면 심리 상태와 날씨의 관계이다. 처음 날씨가 맑았는데, 이 때는 혜숙이 마음에 아무런 사심없이 전후복구를 위해 열심히 용접한다. 그러다가 윤호가 와서 떠나는 것에 대해 서로 다투게 되는데, 이것을 "먼지를 휘감아올리며 돌개바람이 일었다. 낮게 흐린 하늘에서 비꼬치가 후둑후둑 듣기 시작했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가, 타인과의 갈등에서 이것이 전이를 일으켜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한 내부에서의 갈등, 즉 갈등의 심화를 "그의 서글픈 마음을 울어주는 듯 비는 여전히 좍좍 소리를 내며 퍼부었다"로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에서 그런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혜숙이 환하게 웃는데, 이것은 "그 사이에 비가 그치고 차츰 훤해지던 하늘에 구름장이 트이며 새파란 쪼각 하늘이 비에 씻긴 맑은 얼굴을 내밀었다"로 표현하고 있다.
    또 하나는 소설 처음의 날씨가 그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암시하고, 결말도 암시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침해가 솟아오르는 듯 매봉산 위 하늘가가 온통 감빛으로 발그레 물들었다"고 시작하고 있고, 다음 줄도 "...짙은 새벽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에서 새벽이란 아침이 오기 직전으로 아직은 어둡다. 즉, 전후 복구의 고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런 새벽을 감싸는 안개가 걷힌다는 것에서 이 작품의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정말로 결말은 "그의 눈 앞에는 하늘에 선 무지개처럼 황홀한 꿈이, 참다운 행복과 보람찬 생활이, 손저어 부르는 내일의 빛나는 전망이 아름다운 화원처럼 펼쳐지는 것이었다"로 맺고 있다.


    처음으로 북한의 소설을 접해 보았다. 비록 내 나름대로 기계적이고, 유치하다고 평을 하지만, 지금은 더욱 발전된 소설이 있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발전했으리라 생각을 한다. 북한의 소설을 읽어보고 그들의 문학관은 어떤 건지에 대해서, 그리고 거기에 나타난 문화나 사상은 어떤건지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사회주의의 미학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를 언젠가는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빛나는 전망: 해방50년 한국의 소설, 변희근, 한겨레신문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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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물원킨트
    umtra | 2005년 08월 25일
    처음 이 책을 보았을때 제목이 낯설었다. 킨트??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웠던 내 머릿 속에는 어린이라는 뜻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을 넘겼다. 내가 배수아 씨의 소설을 읽은 건 이것이 세번째다. 첫번째는 '랩소디 앤 블루'였고, 두 번째는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였다. '랩소디 앤 블루'에서는 성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좀더 대중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이었는데, 30대 독신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 '동물원 킨트'는 고립에 대해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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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보았을때 제목이 낯설었다.
    킨트??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배웠던 내 머릿 속에는 어린이라는 뜻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을 넘겼다.
    내가 배수아 씨의 소설을 읽은 건 이것이 세번째다.
    첫번째는 '랩소디 앤 블루'였고, 두 번째는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였다.
    '랩소디 앤 블루'에서는 성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좀더 대중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이었는데, 30대 독신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 '동물원 킨트'는 고립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번 소설은 어려웠다.
    그래서 쓰는게 망설여졌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동물원을 사랑한다.
    반면 인간들에 대해서는 고립을 원한다.
    그것은 아마도 거짓과 위선 등으로 가득찬 인간 세상보다는 진실된 동물들과의 삶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굳이 '고독'이라는 단어가 아닌 '고립'을 택한 것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고독'이라는 단어는 너무 쓸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에게 있어 마음에 드는 상대는 이름으로써 기억되는게 아닌, 동물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보다 동물이 더 친근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주인공의 고립은 결국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와 고립의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닌가 한다.
    한때 나도 동물원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아마도 무척이나 쓸쓸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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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箱의 武俠小說(?) 「金裕貞」讀後記
    desert44 | 2005년 08월 25일
    위악적(僞惡的)이란 평가엔 대개들 고개짓을 설렛설렛하는 게 人之常情인데, 이 친구는 어찌 돼먹은 영문인지 "내가 僞惡 빼놓으면 뭐 남는 게 있겠수"한다. 위악이란 뭔가. 역설로 세상을 견디고 풍진 바람 속을 뚫고 가는 것. 해서인지 速度, 速度 하는 세상에 이 친구는 부러 늦게 간다. 文體만 해도 그렇다. 意味야 어찌 되었든 말맛을 한번 즐기고 가겠단 心思로 능청능청거리는 폼이 되우 의뭉맞다. 때론 이런 수작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솜사탕 같기도 하고 톡 쏘는 콜라맛 같기도 한 所謂 포스트모던한 文體의 수작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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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악적(僞惡的)이란 평가엔 대개들 고개짓을 설렛설렛하는 게 人之常情인데, 이 친구는 어찌 돼먹은 영문인지 "내가 僞惡 빼놓으면 뭐 남는 게 있겠수"한다. 위악이란 뭔가. 역설로 세상을 견디고 풍진 바람 속을 뚫고 가는 것. 해서인지 速度, 速度 하는 세상에 이 친구는 부러 늦게 간다. 文體만 해도 그렇다. 意味야 어찌 되었든 말맛을 한번 즐기고 가겠단 心思로 능청능청거리는 폼이 되우 의뭉맞다. 때론 이런 수작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솜사탕 같기도 하고 톡 쏘는 콜라맛 같기도 한 所謂 포스트모던한 文體의 수작질에 이골이 났다 싶을 땐 그의 끈적끈적 엉기는 글도 씹히는 맛이 솔찮다. 어떤 일로 醉氣를 다스리지 못해 작은(?) 분탕질을 쳤을 때, 이 친구가 내게 권한 것은 李箱의 소설 「金裕貞」이었다. 모더니스트 李箱의 散文은 간판답지 않게 舊式이다. 이 자가 과연 모더니스트랴 싶다. 간간히 外來語가 속출(續出)하지만 어휘 구사(語彙驅使)며 文體며 영락없는 풋고추 된장 바지 저고리다. 散文은 詩와는 딴 판이다.

    소설, 「金裕貞」, 내용은 이렇다. 金裕貞이 B라는 친구와 크게 싸운다. 싸움의 테마는 春園이었다. 春園 다음 問題는 주먹질이었다. 개판을 쳤다. 이 싸움의 빛나는 대목은 <네 놈들을 한꺼번에 쥑이겠다>는 B의 결기다. 여기에 S군이 가세한다. 裕貞도 질세라 기세등등하다. 싸움은 絶景이다. 문학은 저리 집어치우고 問題는 體力이다. 태껸의 동작이 오고 가고, 가히 점입가경(漸入佳境). 警官이 온다. 警官이 그만 가라고 소리치니 活劇은 幕을 내린다. 조금 끝이 싱겁긴 하다. 하지만 때가 언젠가. 巡使 한 마디에 울던 아이도 뚝 하던 시절 아닌가. 물론 그 세 친구는 이튿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답다.

    이런 떠그럴! 여기에서 싸움은 수상한 냄새를 풍긴다. 그건 교미(交尾) 전의 어떤 엎치락뒷치락 같다. 폐가 결딴난 裕貞이 웃통을 벗고 악다구닐 질러대는 光景이 눈앞에 삼삼하다. 왜 우리에겐 이런 게 없냐 싶다. 그만한 熱情, 그만한 狂氣는 어디에 사라져 버렸는가. 資本主義的 日常에 순하게 길들여진 것일까. 사무침, 없다. 狂氣, 없다. 祝祭, 없다. 너 따위와는 이젠 끝이다, 라는 絶交, 없다. 얌전하다, 다들. 문학이나 예술을 간판에 앞세우고 획까닥, 데까당하자는 게 아니다. 제 領土를 수호키 위한 저토록 치열한 육박전(肉薄戰)을 감행할 戰鬪的 姿勢가 되있느냐는 말이다. (이건 순전히 스스로에 대한 협박(脅迫)인 셈이다. 脅迫이 脅迫으로 끝날 때의 거짓을 아는가, 라는 대목에서 反省은 그만 털푸덕 맥이 빠져 버린다. 제길, 이런 류의 反省은 그냥 폼으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비가 가열차게 몇 일 내렸다. 중랑천까진 범람(氾濫) 안했지만 사뭇 위협적이었다. 때론 중랑천이고 안양천이고 확 넘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水災民에겐 잔인한 이야기겠지만 文脈을 읽으셨다면 너그러운 이해있으시기를…) 나중에 이건 떠내려 가지 않았네, 하겠지. 그런 것들 말고 우리네 所有의 明細書는 지나치게 번잡하다.


    서른을 한 뼘 앞둔, 20대의 후반에 삶을 마감한 裕貞과 李箱, 그들의 요절(夭折)은 지나치게 민감한 感受性에 대한 神의 配慮요 恩寵이었을까. 일찍 지친 자들은 일찍 내 집에 와 쉬라는 건 신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한 인간들에 대한 보너스였을까. 금홍이 같은 계집애와 어떻게 해보고 싶다면 '미성년자 약취(未成年者掠取)'라는 혐의(嫌疑)를 씌울 것이 분명타. 재미없다. 데까당하기엔 體制의 올가미가 빠듯하다. 숨쉴려면 노래방이나 가랍신다. 그것두 술마시면서 하면 유기장법 違反이다. 금 안 밟으려면 휘청한다. 홍대(弘大) 앞이나 대학로(大學路)는 그래서 공창(公娼)이다. 狂氣를 한 곳에 집중시킴으로써 狂氣는 쉽게 管理된다. 弘大 앞이나 大學路에서 狂氣는 솟구쳐 나오는 것인가 消費되는 것인가.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적어도 裕貞과 李箱의 지하까페에서만큼은 솟구쳐 나왔으리라. 이럴 때 나의 회고적(回顧的) 그리움은 아무 잘못도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가 내게 권한 것은 小說, 「 金裕貞」이었다. 그쯤 해두란 말인가, 한번 더 해보란 말인가. 의도가 수상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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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 마스 뛰어넘기
    futureof | 2005년 08월 25일
    이제 곧 크리스마스이다.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다. 이날을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고 기뻐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예수님이 태어나서 일생동안 하고 가신 일을 기억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줄 아는 그런 마음을 예수님을 통해 한번더 생각하는 그런 날이다. 하지만 이런 예수님 탄생의 의미가 새겨지기보단 그저 사람들과 어우러져 즐겁게 놀고 마시고 흥청거리는 연말의 분위기가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진다. 원래 크리스 마스는 우리 명절이 아니고 서양의 큰 명절이다.그럼 서양에선 어떤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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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곧 크리스마스이다.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다. 이날을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고 기뻐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예수님이 태어나서 일생동안 하고 가신 일을 기억하고 이웃을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줄 아는 그런 마음을 예수님을 통해 한번더 생각하는 그런 날이다.

    하지만 이런 예수님 탄생의 의미가 새겨지기보단 그저 사람들과 어우러져 즐겁게 놀고 마시고 흥청거리는 연말의 분위기가 크리스마스까지 이어진다.

    원래 크리스 마스는 우리 명절이 아니고 서양의 큰 명절이다.그럼 서양에선 어떤 식으로 이 크리스 마스를 보내고 있을까? 서양의 가장 큰 명절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 마스이다.가장 큰 명절 답게 12월 내내 시끌벅적하게 크리스 마스 분위기가 거리를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선물을 준비하랴,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하랴, 파티복을 준비하랴.이래저래 바쁘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드는게 지금의 크리스 마스 풍경이다.기쁘고 즐거워야할 크리스마스가 이젠 갖춰진 틀에 맞추기 위한 행사인양 변질되서 그 정신은 사라지고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모습을 갖고 있다.

    작가 존 그리샴은 그런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꼬집으면서 주인공 루터를 내세워 좀 색다른 크리스 마스를 제시하고자 한다.하지만 루터가 계획하는 크리스마스도 본질적인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되새긴다기보단, 그저 지나친 소비를 아까워 하는 꼼꼼쟁이 세무사 루터의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그렇더라도 일률적으로 진행되는 크리스마스의 모습에서 벗어나 유람선을 타고 일상에서 벗어난 열흘간의 여행을 꿈꾸는 그의 크리스마스 뛰어넘기가 훨씬 지지를 받을만 하다.뜨거운 태양볕아래 일광욕을 하며 해변가에 누워있는 루터부부. 진짜 휴식이 될수 있을것 같다. 덩달아 그들의 반란이 성공하기를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다르게 크리스마싀의 모든 준비는 이웃들과의 단단한 주고받음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케익을 파는 보이스 카웃 단원들. 크리스 마스 트리를 파는 경찰관 대원들. 마을을 멋지게 보이기 위해 매년 이맘때마다 눈사람을 지붕위에 매다는 풍경들. 그 모든 일들이 어떤 유기적 관계속에 있기때문에 이웃들은 루터부부의 반란을 탐탁하게 여길수가 없었나보다.그런 이웃들이 보여주는 루터부부에 대한 집착은 이미 만들어진 틀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그들을 어떻게 하면 막아낼수 있을까 하는 철저한 방어 전략을 생각해 내게 하고 계속되는 감시의 시선을 갖게 만든다.

    루터부부와 이웃들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결국 여행을 꿈꿀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딸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반전을 맞게된다.서양이건 동양이건 자식이기는 장사없고 자식사랑엔 그 어떤 장애물도 없다더니..
    말도 안되는 싸움이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허탈해 지기도 한다.

    이웃들과의 관계가 협동에서 적대로 다시 협동으로 바뀌는 계기이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서 적응해 가면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하지만 가끔씩 그 편안한 환경에 도전장을 내고 새롭게 뭔가 변화를 주고자 할땐 커다란 장벽을 느낄수 있을때가 있다.그것이 이런 사소한 개인의 취향이건 좀더 거창한 유토피아의 건설이건..루터부부의 크리스 마스 뛰어넘기는 너무 소모적이고 물질적인 크리스 마스를 비꼼으로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결국 딸의 귀국으로 무산되고 만다. 하지만 이런 해프닝은 결국 만들어진 기존의 편안함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그 안에 그 편안함을 만들어낸 과정속에 들어있는 개개인의 노고가 또한 들어 있기때문이다. 갑작스런 딸의 귀국으로 크리스마스준비를 해야하는 이들 부부에게 이제껏 적대적이던 이웃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웃이란 때론 지나친 간섭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 할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관심이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도와준다는 아이러니이다.
    이런 이웃사랑을 루터는 직장동료에게 유람선 여행을 선물하면서 되갚아 준다.
    아내가 암에 걸려 같이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 직장동료에게..
    결국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해 할수 있는 크리스 마스.
    그것이 이땅에 예수님이 오신 이유일것이다.
    하지만 점점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어 지는 요즈음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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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리와함께한화요일읽고 한참후에..
    juhu87 | 2005년 08월 25일
    읽은지 꽤 오래된 책이다 기억이 날런지 모르지만..암튼 끄적여볼란다^^; 이책은 한 모리라는 스승이 죽음앞에 놓인 상황에서 그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다..여러가지 인생의 철학적인 테마별로 전개하는 방법은 그다지 나에겐 색다르지 않았다.. 우린 정말 잘살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산다..하지만 그 잘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워 질 수가 없다는 걸..알려준다 놓아라..(let it be) 난 우리 인생사가 결코 내뜻대로해서 달성되는 영역과 아닌 영역을 구별하는 능력을 인식하길 바라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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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은지 꽤 오래된 책이다 기억이 날런지 모르지만..암튼 끄적여볼란다^^;
    이책은 한 모리라는 스승이 죽음앞에 놓인 상황에서 그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내용이다..여러가지 인생의 철학적인 테마별로 전개하는 방법은 그다지 나에겐 색다르지 않았다..
    우린 정말 잘살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산다..하지만 그 잘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워 질 수가 없다는 걸..알려준다
    놓아라..(let it be) 난 우리 인생사가 결코 내뜻대로해서 달성되는 영역과
    아닌 영역을 구별하는 능력을 인식하길 바라는 모리의 글을 보면서 자의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다 책이라는 것이 뭐...내상황과 환경과 조건에 따라 의미도 달라지는 거니 머....의미의 절대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잘살기 위해서는 잘 죽는법을 알아야 하는 모리는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가볍게 읽히는 책이지만 그주제와 내용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돼는 곱씹을만한 내용이 곳곳에 묻어난다...모리는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제 당신이 그걸 받아들이냐 아니냐는 기호에 따라....섭취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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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cylou | 2005년 08월 25일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땐 '항동이 뭐지', 이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지금도 머릿속으론 이해했지만(성공회대가 항동 입구에 위치에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항동이란 곳을 가 본 적 없기에, 들어본 적도 없기에 그냥 시인이 만들어낸 미지의 공간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듯하다. 나도 늘 어떤 나만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고 가끔은 그 곳이 진짜고 여기 현실이 내가 꿈꾸는 가상의 공간이 아닐지 의심하기도 하니까. 책에서 소개하듯이 조은일 작가는 생활의 얘기를 조금은 어설프게! 우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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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 제목을 보았을 땐 '항동이 뭐지', 이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지금도 머릿속으론 이해했지만(성공회대가 항동 입구에 위치에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항동이란 곳을 가 본 적 없기에, 들어본 적도 없기에 그냥 시인이 만들어낸 미지의 공간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듯하다. 나도 늘 어떤 나만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고 가끔은 그 곳이 진짜고 여기 현실이 내가 꿈꾸는 가상의 공간이 아닐지 의심하기도 하니까.

    책에서 소개하듯이 조은일 작가는 생활의 얘기를 조금은 어설프게! 우리에게 들려준다. "만족으로 가는 길은 영원한 메피우스의 띠가 아닐까, 끝이 없는 길...." 이라고 겸손하게.
    "나의 유치한 몸부림이 어떤 이들에게 적나라한 공감이 된다면 좋은일!(조은일)이다"라고 책을 내놓으며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시, 에세이는 정말 평범하다. TV를 보다가 . 지하철을 타다가, 비가 만나서, 바람이 좋아서, 작가가 살았던 항동의 '그린빌라' 단지도 빠질 수 없다... 생활 곳곳의 모든 움직임이 그녀에겐 좋은 문학 소재가 된다. 특별한 수식도 없이 비유도 없이 써내려 나간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통찰에서 오는 지혜로운 얘기들도 들려준다.



    머리가 걱정

    고정 수입이 없는 생활의 두려움
    오늘 하루하루야 무사하건만
    이 막연한 걱정의 근원은 무엇인가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이 없는데
    만물의 영장만은 더 좋은 머리로 내일을 걱정한다
    욕방과 욕심이 빚은 부정 비리가
    순전히 미리 가 있는 내일의 걱정 때문이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건만
    미리 비축해야한 하는 터무니없는 영악함
    고정 수입이 없는 나는
    무사히 오늘을 살건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건만
    걱정까지 없애려면 구만 리 해탈 길

    삶의 이런 방식은 게으름일까, 무욕일까.
    게으름과 무욕 사이의 어느 아름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선(善)일까



    난 예전에 참 집안 걱정이 많았다. 철이 들기 전엔 몰랐던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 집에 가득산재 해 있었다. 그리곤 나는 한동안 너무 알뜰해 졌고 오늘을 살기 보단 내일에 '미리 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철부지로 아무것도 몰랐던 때와 잡안 상황이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한 가지는 눈에 띄게 달라졌었다. 쓸데없이 걱정과 잔소리만 늘어놓는 소심한 사람으로 변해서는, 가족들에게 웃음보다 찡그린 얼굴만 더 자주 내미는 아이가 돼 버린 것 나의 모습.
    중요한건 가족들과 함께 하는 건데, 난 혼자만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스트레스 팍팍내면서. 지금은 가능한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후 더 편해졌고, 일도 잘 풀렸다. 엄마 아빠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돈 몇 푼이 아니라 부모님이 그렇게 나를 위해 고생하셔도 마음으론 힘들지 않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거였다. 이글 쓰고 나서 엄마 가게에 전화해서 귀엽게 애교를 부려야겠다.

    설익음

    내 시 한바탕 읽어보던 친구가
    "너..한이 많은가?"
    한마디 했다.
    가슴이 뜨금..한이 녹아야..녹아서 사라져야..
    좋은 글이 될텐데...
    미안하고 낯이없다.
    '하긴...한이 없이 글이 되겠나?'
    변명해 주는 내 친구
    나는 죽을 때까지 설익은 인간일 거다.

    다른 제목을 적어보면.
    아침 커피, 기득권, 아내의 B의 고백, 법관 나으리, 월미도, 이런 여자, 사람을 찾습니다, 방송 유감, 편견, 소음 공해, 우리집 베란다, 정오, 항동 자랑, 전망 좋은 방. 사랑은 병....

    소소한 얘기들이 --항동에 냉이꽃이 필까-- 에 가득하다
    다른 작은 이야기들은 책을 통해서 직접 읽어 보세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자체가 사고픈 마음을 망설이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살 때 어느 정도 디자인도 보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이 너무 부족하다. 표지에 비해 내부 전개 방식을 너무 단조롭게 해서 언뜻 성의 없게 보일 수 있다. 또 눈에 계속 거슬렸던 점은 시를 적음에 있어 행이 바뀔 때 끝부분을 너무 이상했다는 것이다. 시일 경우는 한 자 한 자에 의미가 있기 때문에 행이 바뀐다는 것은 시인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표현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선 그냥 자리가 좁아서 그 다음 행으로 내려가면서도 그것이 마치 또다른 행으로 바뀌는 듯 인쇄해 놓았다. 그것도 단 한 글자를 적을 공간이 부족해서 그렇게 많은 페이지 속에 똑같은 식으로 반복했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머지 부분들은 이 책을 접하게 될 다른 독자들에게 남겨둔다

    아, 지하철 노선도를 보니 역곡역에 카톨릭대학이 있고(그녀가 직접 운영하는
    찻집이 있단다) 그 옆이 바로 성공회대가 위치한 온수 역이 있었다. 작가가
    그렇게 운치 있다고 말한 그린 빌라 를 찾아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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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동 한 그릇
    seubasu | 2005년 08월 25일
    우동하면 생각나는 건 딱 두 가지정도.. 하나는 김현주 => 국물이..국물이 끝내줘요. 이거랑 나머지 하나는 바로 일본동화 우동 한 그릇이다. 이 동화를 보면서 정말 북해정이라는 곳이 있을가? 거기에 가면 정말 예약석이 있는 걸까? 행복을 전하는 예약석이..라고 생각했던 어릴 적 기억이 난다. 어느날 조카에게 주려고 동화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이 책은 결국 조카 손에 들려지지는 못했다. 새삼 다시 읽고 싶은 맘에 어느 틈에 조카에 대한 생각은 저기 어딘가로 처박아 두고 내가 대신 이 책을 잡고 있더라..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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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하면 생각나는 건 딱 두 가지정도..
    하나는 김현주 => 국물이..국물이 끝내줘요. 이거랑 나머지 하나는 바로 일본동화 우동 한 그릇이다.
    이 동화를 보면서 정말 북해정이라는 곳이 있을가?
    거기에 가면 정말 예약석이 있는 걸까? 행복을 전하는 예약석이..라고 생각했던 어릴 적 기억이 난다.
    어느날 조카에게 주려고 동화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이 책은 결국 조카 손에 들려지지는 못했다. 새삼 다시 읽고 싶은 맘에 어느 틈에 조카에 대한 생각은 저기 어딘가로 처박아 두고 내가 대신 이 책을 잡고 있더라..
    석달 그믐날 10시 예약서에 앉고 싶은 맘을 달래며..

    요약해서 그 내용을 보면, 가정의 시련극복기 정도..
    교통사고를 당해 부친을 잃고 그 부친이 남긴 빚을 그 부인이 갚아나가는 사이 아들들은 그런 어머니를 도와 서로간 우애있고, 똑바른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얘기. 그 중간마다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준 건 석달 그믐날 북해정에서 먹던 우동 한 그릇.
    그리고 수십년이 흘러 빚도 청산하고, 우동 한 그릇에서 얻던 용기로 힘을 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어 그들을 기다려준 북해정에 다시 찾아가는 것이 끝인 이 짧고도 짧은 이야기를 난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어릴 적 아빠가 고관절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마저 불편하게 되어 그나마도 몇 달째 계속 쉬시던 회사를 결국 그만 두시고,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던 나와, 중학생 언니,고등학생 언니. 그리고 잔병치레가 많은 내 동생 그리고 아픈 아빠때문에 맘걱정없는 날이 없는 우리 엄마. 이렇게 여섯식구의 모습이 떠 올랐다.
    수입원이 없어서, 정말 학교에서 그때 처음 실시하던 급식비마저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낼 수없다라는 말은 죽기보다 하기 싫었다. 그로 인해 나를 바라 볼 애들의 동정어린 시선이,너무나도 싫었던 것이다. 곧 죽어도 자존심만 세우면 그만인 줄 아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렸기 때문에 더 싫었다. 아이들의 가식없는 동정이 오히려 더 잔인하다는 것쯤은 유난히 조숙했던 나로써는 알고 싶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시간에 공작도구도 사 갈 수 없었다. 어차피 엄마에게 말을 해 봤자, 엄마의 어두운 얼굴이나, 그냥 옆짝꺼 빌려 쓰면 안되겠느냐는 말밖엔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고 항상 교실 뒤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야 했다.
    애들이 다 하는 저금도 난 예외였다. 졸업식 때 저금액이 많은 아이에게 상을 주고, 돈을 나눠주는 걸 보면서 정말 씁쓸했고,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인 언니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보다는 분명히 어른이였던 언니들은 그나마 그렇게 어두운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사정 모르는 동생만이 예전과 같은 생활을 영위할 따름이였다.
    그때에는 외식같은 건 정말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북해정에 가서 3명이 한 그릇을 시켰을 때 얼마나 창피했을까?
    무안을 당하면 어쩌나, 거절당하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그날, 우린 아빠의 실직 이후 처음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쥰이나 그의 형같은 그릇은 되지 못했는지라, 6명의 식구가 단 세 그릇의 자장면을 시키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주인도 싫었고, 그렇게밖에 해 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싫었다. 나와 동생 그리고 언니들 앞에 한 그릇.
    엄마와 아빤 밀가루는 싫다고 하셨다.
    뒤에서 쑥덕거리는 주인도 싫었고..
    왜 아파서, 날 이렇게 만드나하는 고약한 생각을 하는 나도 싫었다.
    그 자장면집 주인들은 북해정의 주인과는 사뭇 달라서, 아주 고단수로 말을 돌려가며 우리를 무안을 줬다. 그날 거기서 먹은 자장면은 그 날밤 고대로 토하고 말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됐을 때야 겨우 우리 집은 허리를 펼 수 있었다.
    그동안은 대학에 그렇게 가고 싶어 했고, 시험만이라도 쳐 보고 싶다는 큰 언니가 좋은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포기하고 공장으로 들어가 우릴 먹여 살렸다.
    그리고 그 사이 난 이 책을 읽었고, 그리고 그냥 웃어 버렸다.
    어차피 동화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여기서는 정말 일어날 가능성이 제로라고 생각했다. 다만 좋은 이야기라고, 마음이 조금은 훈훈해지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어차피 내 우울했던 유년기에는 우리에게 허리를 깊숙히 숙여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던 북해정의 주인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이 없이 어떻게든 아둥바둥 거리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우리 불쌍한 엄마의 모습밖에 없었다.
    동화와 현실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군하고 생각 했을 뿐.
    하지만 맘 한 구석으로는 정말 북해정이 있는걸까? 일본은 희한한 것들이 많은 곳이니까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 보고 싶군..정말 10시 예약석이 있는걸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어쩌면 동화책에서처럼 용기를 주는 그들을 만나, 내게도 용기를 줬음 하는 마음이였으리라.

    어느 정도 기울었던 가세가 극적으로 펴지기 시작하고 이젠 조카들에게 책도 선물하고, 내 앞으로 된 통장도 여러 개를 가질 수 있게 된 지금 다시 접하게 된 우동 한 그릇은 가만히 읽어 보면 딱 내 얘기였다.
    하지만 쥰이나 그 형 그리고 그의 어머니같은 처지에 있었지만, 내게는 용기를 붇돋아 주고 그들만을 위한 10시의 예약석을 비워두고, 맘속으로 몇 년이고 응원해 주고 결국 그들을 성공하게 만든 북해정의 주인같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우울했던 어린 시절이고, 사람이라면 신물이 난다고까지 생각했던 나였기에 정말 책을 다시 접하는 순간 우울하고 씁쓸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이 책을 더 좋아하는 것같다.
    내게는 달리 용기를 주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는 언제나 10시의 예약석을 비워두고 그들 모자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물러 서지 않는 힘도 갖고 싶었다.
    지금 난 힘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언제고 내가 이 두 가지를 다 갖게 되는 날이 왔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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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과 도둑
    monki | 2005년 08월 25일
    문학의 기능은 무엇일까? 우리는 문학의 기능에 대해 크게 교육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으로 대별하고 있다. 즉, 문학이 우리 삶에 있어서 단순히 즐거움과 재미만 주면 되는가 아니면 교육적으로 인간을 교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된 문제였다. 난 개인적으로 문학이란 것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고, 예술이라는 것은 사회를 보는 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 예술이라고 불리는 문학은 당연히 사회 속에서 사회를 보는 눈이므로, 사회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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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기능은 무엇일까? 우리는 문학의 기능에 대해 크게 교육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으로 대별하고 있다. 즉, 문학이 우리 삶에 있어서 단순히 즐거움과 재미만 주면 되는가 아니면 교육적으로 인간을 교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의된 문제였다. 난 개인적으로 문학이란 것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고, 예술이라는 것은 사회를 보는 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 예술이라고 불리는 문학은 당연히 사회 속에서 사회를 보는 눈이므로, 사회를 모방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시가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지라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면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오로지 현실을 반영한 문학이 리얼리즘계열이 참다운 문학이요, 진정한 문학이라고 보았으며, 그런 목적성을 띤 문학이 사회에 훨씬 영양가 있는 문학이라 생각하면서 문학을 문학답게 만든다고 보았다. 이 단편을 읽기 전까지는...

    주인공은 현재 존재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긍정하고 아름답게 보다가 그 존재하는 현실이 상당히 부정적이고 모순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을 비판하게 된다. 민중시인이란 이름으로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다가 그 역시 다시 그것을 통해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고는 갈등에 빠진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민주화 세력이라는 지식인들의 허무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 단편이 쓰여진 시기가 92년이라고 보면 김영삼씨가 정권을 잡은 시기인데 김영삼씨는 결국 군부세력과의 통합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군부세력이랄 수 있는 민자당을 통해 집권하게 되었다. 즉, 군부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한 민주 인사로서의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면 뭔가 달라진다는 희망이 결국 군부세력과 결탁하는 것을 보고 지식인들은 아마도 허무주의에 빠졌으리라 본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정치적인 사회보다는 자연이나 자신의 학문분야에만 다시 관심을 갖고 정치에 대해서는 냉소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 주인공의 모습이라 본다. 하지만, 아직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한 일부 운동권 세력들은 이런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것을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시인을 산채로 데려가는 행위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갈망하며 그들에게 있어 구심점으로 작용하길 희망하며, 그들이 다시 사회를 비판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시인에게 시를 생산하길 요구하며, 그의 결과가 시인이 생산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의 생산한 시라는 것은 다시 한번 사회에 대해 변혁을 도모하려는 의지라 할 수 있고, 민중의 의식을 대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에서 우러나오지 못하고 사회 역시 소위 민주화라는 바람을 타고 변하였고, 전 국민들이 패배감이나, 혹은 경제적 호황에 따른 부의 축적과 이기주의의 팽배로 그들에 대해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이것을 여기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구나 하는 식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운동권 세력 역시 순수한 열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90년대 경제 호황에 발맞추어 나타난 개인의 이기주의와 함께 변질되어 그들 역시 나약해지고 예전과 같지 않다. 이것을 이 단편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도 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환상도 없던 시절의 그들은 용감했다. 자포자기적인 흉폭성과 막연한 울분에 차 있던 무식한 산도둑떼에 지나지 않던 그들은 그런 싸움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내다랐으나 제세선생의 이치와 시인의 감정으로 겨우내 세례받은 그때는 달랐다. 이치를 따지게 됨으로써 스스로의 목숨까지 따지게 되었고 시인의 생산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동안 어느새 문약이 스며든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결국은 패퇴하게 되는데 이는 운동권 세력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세력의 몰락은 더욱더 사회 체제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점점 더 교묘해지고, 민중 역시 그들에 대한 동조가 없도록 차단하려 한다. 민중 역시 이기주의와 허무주의의 팽배로 그들에 대해서 더욱 등을 돌리게 된다. 운동권 세력이 얻은 결론이란 단지 몇몇의 소수가 깨어 있다고 해서 그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일찍 깬 소수의 변혁 운동은 더욱더 사회에서 냉대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시인을 놓아주는데, 시인은 다시 아무 일 없는 듯이 툭툭 털며 자연으로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이것은 지식인 세대들은 이제 그런 열정에 대한 아무 미련없이 자신의 학문이나 연구 분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런 생경한 구호를 남발하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 있어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문학은 문학이다. 문학은 예술이기 때문에 예술성을 가진다. 독자들도 변하였고 독자가 처한 상황도 변하였다. 지금은 일제 시대나 80년대가 아니다. 모든 것이 상황이 크게 변하였다. 그런데도 예전의 방법을 고수한다면 독자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문학은 그런 구호를 남발하고 거친 표현과 거친 구성이 아니라, 작가가 작가의 신념이나 사상으로 재구성할 때만이 더 진실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짧은 소설로 인해 나의 문학에 대한 생각이나 사회에 대한 인식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란 결코 소수의 영웅으로 만들어진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 듯 싶다. 사회는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요구가 있을 때 자연스레 변화하게 되어있다는 생각을 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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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와 다섯 兵丁
    monki | 2005년 08월 25일
    1.인간과 이데올로기 인간을 규정하는 말들 중에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즉, 로빈슨 크루소같은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교류와 공동생활을 통해야만 참답게 되는 존재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회가 또는 집단이 더 비대해지고, 그러면서 충돌이 잦아지고, 그들을 조정하기 위해 법이 존재한다. 또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해 통치자도 존재한다. 만약 그 통치자가 어떠한 행동철학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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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간과 이데올로기
    인간을 규정하는 말들 중에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즉, 로빈슨 크루소같은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교류와 공동생활을 통해야만 참답게 되는 존재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회가 또는 집단이 더 비대해지고, 그러면서 충돌이 잦아지고, 그들을 조정하기 위해 법이 존재한다. 또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해 통치자도 존재한다. 만약 그 통치자가 어떠한 행동철학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한다. 이데올로기 앞에 자유도 없다. 개성도 없다. 생명까지도.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2.인간에 대한 존중
    작품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다. '그'는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절에서 길러졌다. 하지만, 군대에서 많은 속세의 경험을 한 후, 환속하게 되고,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기 위해 고향에 간다. 고향에서 낡은 군복을 입고 허기진 사과를 먹으면서 걷는 병정 다섯을 만난다. 자신을 길러준 스님이 가르쳐준 주소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나, 외삼촌 내외는 철저히 자신을 부정한다. 그는 다시 다섯 병정을 보게 되고, 어머니에게 여쭙지만 잘 모른다고 한다. 병정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원두막 노인을 만나게 되면서 병정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을 때 어머니는 그 중 이마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그'의 아버지임을 말해 준다. 어머니는 사흘 뒤 돌아가시고 다시 병정을 찾았을 때는 병정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휴머니즘을 그리고 있다. 원두막 노인의 말에 직접적으로 나타난다."....피맛을 본 사람들이 모두 미쳐 있었던 게지. 그래 놓고도 저쪽은 무어라고 선전했는지 아나? 인민을 약탈한 자는 저희 편이라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거야. 결국 그 풋사과 몇 개가 포로를 학살할 구실이 되어 준 셈이지. 설령 그보다 더한 짓을 했기로서니, 그 새파란 생명을-그것도 다섯씩이나.... 사상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절대로 그런 게 아닐 거야. 사상 아니라 사상 할애비라도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어. 정말로 좋은 사상이라면 우선 사람부터 존중할 줄 알아야 해. 무슨 이유든 사람을 상해서는 못 쓰는 법이야....."
    사상이나 정치나 종교나 모두 인간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보면 분명히 인간보다는 아래에 있어야 한다. 즉 그것들은 수단일 뿐이지 목적 자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인간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사상이 아니라, 사상을 위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노인의 말은 주객이 전도된 인간과 사상을 비판하면서 인간 자체를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휴머니티가 드러난 또 다른 부분은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다. 어머니는 자신이 병자의 몸이었지만,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기쁨을 느낀다. 또한 누군지도 모르는 병정 중 한 사람과 관계한다는 것 자체 역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능욕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얻은 아들이 어떤 절간에서 키워지고, 그 절에서는 홍역으로 죽었다고 했지만, 그 말을 부정하고 어딘가 살아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강한 생명성을 긍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죽으면서 그에게 남긴 유언에서도 "병화에 그을린 귀신은 원귀가 되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아직 그들이 이 세상을 떠도는 것은 풀지 못한 한의 무게 때문일 게다. 그 한을 풀어 드리도록 해라. 하지만, 그 한이 지난 시대의 눈먼 증오에서 비롯된 거라면 새로운 증오로는 풀지 못한다. 그 시대의 광기에서 비롯된 거라도...역시 새로운 광기로는 풀 수가 없을 거야....."즉 어떠한 증오나 광기로 푸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를 놓고서 한을 풀라는 말이다. 병정을 북한군에 총살된 국군으로서 한을 풀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배고팠던 한 인간으로서 풀라는 의미다.

    3.작가의 말
    작가는 작품 말미에 어떤 운수승의 이야기라고 하면서, 그러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슬프면서도 한심하다고 말하고 있다. 시대의 광기로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지만, 슬프되 한심하다고 한 건 무엇일까? 이기와 일상과 불문과 타성으로 다섯 병정과 같은 일들이 이것뿐이겠냐고 한 작가의 말. 이것은 그렇게도 숨겨진 슬픈 희생들이 많은데도 드러난 일들이 별로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희생이 있었음에도 그런 것들이 내부적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가려지고, 그러면서 슬픈 희생들이 다시 또 반복되고, 또 잊혀지고, 또 반복되고 하는 것들이 작가에게는 한심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작가를 포함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의 굴곡이 한심하다는 자조적인 표현인지 묘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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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prettyk | 2005년 08월 25일
    우리는 곁에 작은행복을 두고 살아갑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욕망은 필요치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순간 작은행복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소중하다고 느껴야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 조금한 것에서도 느낄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우리들이 작은행복이 무엇인지 깨닿게 해줍니다. 아마 요즘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많이 느낄것입니다. 지금 주위에 작은 행복과 따뜻한 삶속에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깐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차갑고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습니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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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곁에 작은행복을 두고 살아갑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큰욕망은 필요치 않습니다. 바로 지금 이순간 작은행복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소중하다고 느껴야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 조금한 것에서도 느낄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우리들이 작은행복이 무엇인지 깨닿게 해줍니다. 아마 요즘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많이 느낄것입니다. 지금 주위에 작은 행복과 따뜻한 삶속에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깐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차갑고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습니까..아마 내곁에 있는 조금한 행복과 지금 이순간 자신의 행복과 따뜻함을 찾는 다면 우리 모습은 빛날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그날까지 우리 인간은 오로지 사랑과 선행으로써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이런 문구가 책속에 쓰여 있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선행이란걸 베풀어 본적이 없는것 같습니다. 선행이란게 무엇인가..마음에서 울어나서 돕고 같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인데 저는 한번도 그래보지 못한것입니다. 선행을 한다고 해봤자 학교 봉사활동 점수를 올리기위해 남을 도운 일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가 선행을 베풀어야 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책을 보고 말이죠.. 선행과 사랑은 그렇게 어려운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쉬운일이라고 말할수도 없습니다. 그만큼의 따뜻한마음이 없다면 할수 없는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마음에서 우러나서 도와준적도..누군가를 위해 선행을 베풀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적도..아마 우린 한번도 없을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많아지면서 추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것 같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춥고 배고푸고 아파오겠지만, 모두가 살면서 선행이란것을 한번이라도 베풀수 있다면, 하나 하나가 추위를 없애주는 이불이 되줄것이고, 배고품을 없애주는 빵이 될것이며, 아픔을 없애주는 병원과도 같은 존재가 될것입니다. 선행을 받는자, 선행을 하는자가 모두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행하면 되는것입니다. 그냥 내 손이 가고 내 행동이 가는대로 그 사람들을 도우면 되는것입니다. 베풀고 나눠주면 되는것이 바로 선행입니다.


    두 꼬마 여자아이 간에 조금한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싸움이 커져서 꼬마여자아이들의 엄마까지 나와서 싸움을 하고 있는것이다. 둘 꼬마 아이의 엄마들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한대 칠것처럼 싸운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하지만 금새 아이들 둘은 다시 친해져서 같이 놀게되었다. 그것도 엄마들이 싸우는 앞에서 말이다.
    여기서 두 꼬마 여자아이의 엄마는 무엇을 느껴야 되는 걸까..그들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화해한 뒤에서 싸우고 있었던것이다, 어른보다 아이가 먼저 화해하고 웃어버리고 모든것을 해결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풀지 못하고 더 화를 낸다. 그것이 아이들과 어른들의 아주 큰 차이다. 어른들은 힘든일과 어려운일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 하지만 아이들은 힘들거나 어려워도 금새 잊어버리고 웃는다. 어른들은 매일 찡그리며 사는것이 일상의 일이지만, 아이들은 매일 웃는것이 그들의 생활이다. 어른들은 손잡고 화해하며 자신이 이기려고만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지고 이기는것은 모르고 손잡고 화해하는것을 안다. 어른들의 모습은 차갑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따뜻하다. 몸짓도 아이보다 크고 아는것도 많은 어른들의 모습은 바로 이러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고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따뜻하다는것을 알았다. 이 책에서 나온 이 이야기에서는 이렇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는듯 하다. 자신이 어른이라면 느껴봤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의 모습을 자신의 조금한 딸과 아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이 크면,,당신의 모습을 봐왔던 것처럼 똑같이 하려고 할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스스로 땀흘려 얻은 제 것만을 가질뿐, 결코 남의 것을 탐내는 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책의 뒷표지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느끼고 여러분도 느낄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들...무슨 욕심이 그리 많고, 무엇을 바라는지.. 내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것 까지 보고 만져보는걸 보면 , 참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제 자신의 것에 왜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것에 만족해야하는지........
    우리는 이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책을 보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 자신것에 만족하고 제 스스로 일구어낸 땀과 모습에서 모든것을 얻었으면 합니다.


    ※제 모습속에서도 빛나는 우린데, 왜 남에 의해서
    자신을 빛내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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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단상
    desert44 | 2005년 08월 25일
    롤랑 바르트 "무슨 일이세요? 당신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군요" --아니예요, 전 행복해요, 하지만 슬퍼요. -- 메테를링크의 중에서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채 십분이 되기도 전에 우린 '사랑'을 운운하는 수많은 노랫말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담론의 양적인 결과에 비해 그 실질과 내용은 왜소해 보인다. 사랑의 담론이 이렇게 부실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그것들이 삶과 사물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과 사색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의 자기 증식 원리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마아케팅 차원에서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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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무슨 일이세요? 당신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군요"
    --아니예요, 전 행복해요, 하지만 슬퍼요.
    -- 메테를링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중에서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채 십분이 되기도 전에 우린 '사랑'을 운운하는 수많은 노랫말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담론의 양적인 결과에 비해 그 실질과 내용은 왜소해 보인다. 사랑의 담론이 이렇게 부실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그것들이 삶과 사물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과 사색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의 자기 증식 원리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마아케팅 차원에서의 사랑의 담론은 시장의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채 가지기 힘들다.

    통속적인 사랑의 담론들이 범람하고 있다.통속적이라는 것은 무반성적이라는 것이다. 대중들은 사랑의 담론들을 기계적으로 수용한다. 거기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아주 미세한 뉘앙스가 결여되어 있다. 연인들이란 지극히 섬세한 어떤 것들을 쉴 사이 없이 만들어 내는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랴. 하나하나의 느낌들이 극도로 민감해지는, 그래서 쉽게 깨어지기 쉬운 영혼들, 바로 그들이 우리가 연인들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이 아니랴.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에서 비롯된다'라고 작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이 책의 문체는 롤랑 바르트를 마르크스주의자, 구조주의자 라는 기존의 인식틀에서 제외시켜 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대단히 아름다운 산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미리 이데올로기화, 정치화 되어 있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저 깊이 느낄 자세만 갖추면 된다. 약간의 심호흡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역자 김희영은 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 이 사랑의 담론을, 상상적인 것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의 자리를 제공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라고

    이 책은 그러므로 기특한 책이다.

    남들에게 공개하기 아까운, 그래서 혼자 몰래 간직하고 싶기 만한 이 책을 열어 보자. 이 책은 제 몸의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를 열어 우리와 대화하게 될 것이다.나는 내가 밑줄친 그곳을 열어 보이겠다.(바슐라르 읽기에서 고정된 나의 이런 어투는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약간의 주석을 달겠다. 그 주석들은 언제나 그 책들이 나에게 촉발시킨 몽상과 사유의 흔적들이다.

    참고로 이 책은 괴에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대상으로 행해진 강의의 결과임을 밝혀두자. 이 책엔 치열한 사랑의 담론들이 등장한다. 그것의 대부분은 베르테르의 담론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사랑을 하는 모든 연인들의 담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의 담론이다.

    # 표시는 본문의 내용 그 아래는 감상적 주석

    #장미빛과 신비로운 푸른빛이 어우러진 어느날 저녁, 우리는 하나의 유일한 섬광을 교환하겠지. 모든 것은 긴 오열처럼 작별 인사로 가득한 채 ---보들레르

    그와 내가 나누는 섬광은 무엇일까? 입맞춤, 아니면 어떤 느낌의 홍수, 아니면 부딪히는 눈빛들, 눈물에 반짝이는 불빛들....

    #죽음을 사랑하는 것일까? 키츠의 말처럼 반쯤은 그런 마음도 있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편안한 죽음을 반쯤은 사랑했거니 half in love with easeful death) 죽는 것으로부터 해방된죽음. 나는 이런 환상을 해본다. 내 육체의 어느곳에서도 피가 흐르지 않는 부드러운 출혈, 채 사라지기 저에 고통을 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계산된 거의 즉각적인 소모. 나는 잠시나마 죽음의 뒤틀린 상념 속에 머무른다.

    어떤 구렁텅이에 빠지고 싶은 열망이 사납게 가슴 속에서 자라난다.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격렬한 감정들. 즉각적으로 소모되고 싶은 이상한 충동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선 삶은 잘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은 우리가 매우 부조리한 존재임을 말해준다. 사랑 속에서 사람들은 부조리하다. 아픔의 본질은 그 부조리에 있다. 부조리를 넘어서려는 이성의 안간힘은 창백한 얼굴을 가진다. 그 창백함을 바라보는 존재는 초라하면서도 그 부조리함을 견디는 존재는 한편으론 위대하다.

    #그의 천직은 철새, 사라지는 자이다. 그런데 사랑하고 있는 나의 천직은 그 반대로 칩거자, 그 사람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자리에서 꼼짝않고 미결 상태로 앉아 있는, 마치 역 한 구석에 내팽개쳐진 수화물마냥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그 사람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과연 나를 위해 행복한 처분을 내려줄 수 있을까. 스스로 손을 뻗지 못하는 그런 기다림의 수동성이 존재를 달뜨게 한다. 다가설 수 없음이 부재를 향하여 맹렬하게 손을 뻗친다. 그의 부재가 확실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기다림의 자리는 뜨겁다.

    #하나의 단어가 육체로부터 우러나와 부재의 감동을 말해준다.즉, 갈망하다란 단어가...입김을 불 때마다 그 불완전한 입김이 서로 상대방의 입김에 섞이기를 원하는 것처럼. 두 개의 이미지를 하나로 녹이는 것으로서의 포옹의 이미지. 그러나 사랑의 부재에서의 나는 서글프게 누렇게 메마르고 오그라든, 떨어진 이미지이다.

    나는 나를 벗어날 수 없다. 이 존재의 감옥에서 나는 행복한 유폐자다. 그러나 '행복한'이란 말은 한정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아픈 행복이기에. 사랑의 찰과상이 주는 아픈 행복들.

    #일생을 통하여 나는 수백만의 육체와 만나며 그 중에서 수백개의 육체를 욕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백개의 육체 중에서 오로지 나는 하나만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 욕망의 특이함을 말해준다...수많은 사람 중에서 내 욕망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우연과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필요했던가.

    사랑엔 멀티태스킹이 있을 수 없다. 내 욕망은 놀랍게도 오직 하나만을 요구한다. 둘은 희미하다. 오직 하나만이 강렬하다. 하나는 둘보다 강하고, 셋보다 격렬하다. 나는 무리중에서 오직 그만을 구별해낸다. 하나가 없는 모든 다수는 안중에도 없다. 그를 돌려다오.

    #나는 내 광기의 유일한 증인이다. 사랑이 내게서 노출시키는 것은 에너지이다.

    나는 타오르는 나를 본다. 그 불이 나를 바라보는 나의 눈길마저 태운다. 롤랑바르트는 말한다. "왜 지속되는 것이 타오르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인가?" 이성은 정열 위에 군림한다. 그러나 그런 우열이 정당한가?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내 욕망이며, 사랑의 대상은 그 앞잡이에 지나지 않는다.사랑과 욕망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연인들은 현명해질 수 있을까? 욕망은 대상을 수중(手中)에 두려고 한다. 대상이 저항할 때, 그 저항이 불가항력적일 때 욕망은 스스로를 자학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나는 인생을 헛되이 살았다고. 그때 욕망의 큰 구렁에 자학의 늪이 고인다. 욕망은 단지 큰구멍이다. 거기에 무언가를 채워야만 욕망은 편안하다. 그러나 그 구멍은 점점 둘레를 넓혀 간다. 욕망은 확장적이다. 더 깊은 곳을 찾아서 손을 뻗친다.

    #자신의 불행을 재현함으로써 그를 감동시키려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징계하는 어떤 고행의 행위를 시도한다.(생활방식이나 옷차림 등에서)

    그는 격렬한 동작으로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는 세상을 버린 듯 멀리 있는 것들, 천문학과 해양학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는 은둔자처럼 허름하게 옷을 입기도 하고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평소에 입지도 않던 스커트를 입기도 한다. 도발적으로, 그녀는 태우지도 않던 담배를 입에 문다. 그들은 변화하고 싶은 것이다. 표면의 변화가 내적이고도 화학적 변화를 가져오기를 갈망하고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세계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그들의 행위엔 하염없는 융합에의 욕구가 스며 있다. 세계가 변화하여 그와 내가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는, 그 터무니없는, 불가능을 꿈꾸는, 슬프고도 미묘한, 달콤쌉싸름한 초콜렛 같은.

    # 대부분의 상처는 상투적인 것에서 온다. 모든 사람들처럼 사랑해야 하고, 버림받아야 하고, 또 욕구불만만을 느껴야 하는 등등. 그러나 독창적인 관계일 때에는 상투적인 것은 모두 흔들리며, 초월되고, 철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복 또한 상투적인 것에서 온다. 나는 지나친 불행과 지나친 행복을 경계한다. 날것 그대로의 삶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다. 고통뿐인 사랑은 없다. 사랑은 언제나 여러 감정의 질료들이 섞여 있다. 혼재되어 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람을 느끼면서도 때론 격렬한 어둠의 한가운데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결코 일관되게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기다림이란 시간 속에서 풍화되고 마모된다는 것, 시간 속에서 자신을 해체하는 것. 그런 아주 느린 소멸!

    # 내 정념의 서정적 진술에, 문자 그대로의 표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게 나를 정당화하는 일이 아닐까? 지나침, 광기, 그것이 내 진실이며 힘이 아닐까? 그리고 이 진실, 이 힘이 결국에 가서는 그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닐가?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정념의 기호들이 그를 질식시킬지도 몰라라고 나는 중얼거린다.바로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감춰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내 정념에 신중함(태연함)의 가면을 씌우는 것, 바로 거기에 진짜 영웅적인 가치가 있다 "고매한 영혼들은 자신이 느끼는 혼란을 주변에 퍼뜨려선 안 된다"(클로틸드 드 보)...그렇지만 정념을 (다만 그 지나침을)완전히 감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그것은 인간이란 주체가 너무 나약해서가 아니라, 정념은 본질적으로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추는 것이 보여져야 한다. 내가 당신에게 뭔가 감추는 중이라는 걸 좀 아세요, 이것이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능동적인 패러독스이다.

    맨 얼굴, 가면이 없는 얼굴이 진실일까. 그럴만큼 존재는 순수한가. 가면 속의 맨얼굴이 혹 더 교묘한 가면은 아닐까. 가면 없이 순수할 수 있는 존재란 오직 어린아이가 아닐까. 내가 나의 순수를 스스로 보장할 수 없을때 나를 가린다는 것은 미덕이지 않을까. 대체 어떻게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럴때 드러내기 위해 감추는 역설은 드러난다. 부끄러울 치[恥]란 글자는 귀[耳]에 마음[心]을 앉혔다.마음에 달린 귀가 우리의 욕망을 들을 때 우린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 귀는 열려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귀가 너무나 열려있을때, 그 귀가 긴장감을 누그러뜨리지 않을 때, 마음은 질식한다. 때로 그 귀를 닫아야 할 때가 있다. 양심적인 것만이 우리를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우리를 비양심적으로 살게 할 어떤 권리나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 내가 언어로 감추는 것을 육체는 말해버린다. 메시지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만, 육체는 조종할 수 없다...내 육체는 고집센 아이이며, 내 언어는 예의바른 어른이다.

    육체를 육체로놓아 둬선 안된다. 말(혹은 이성)을 말로만 내버려 둬선 안된다. 그 둘을 통합한다는 것은 대단한 현명함을 요구한다. 우린 언제나 그 어떤 하나에 쏠릴 위험을 안고 산다. 누가 중용의 대가인가. 우린 스스로 그 대가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대중의 일원이 된다. 고고함을 꿈꾼다는 것, 불가능한 것을 소망한다는 것, 그것은 단지 동화적 망상이어야 할까. 소시민임을 자처하면서 그 소시민의 울타리 안에 있음을 오히려 감사하면서 우린 신화적 힘과 권능을 탕진한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어디에 있을까.
    내 힘으로 좌지우지 할 수 없는 것,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것, 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이란 그런 것들이 아닐까. 닿을 듯 닿을 듯 손 닿지 않는 곳에서 그리움은 폭발한다. 널 그리고 그대를 내 그리움의 끝에 둔다.

    # 안착한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안착되었다"고 생각한다.그들은 모두 어떤 계약상의 관계의 실질적이고도 감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자신만이 거기서 제외되었다고 여겨져, 부러움과 비웃음의 모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밤의 등성이에 하나둘 불이 켜지면 어떤 이들은 그 불빛 속의 휴식을 그리워 한다. 그들은 방이 그리운 것이다. 티끌처럼 점처럼 떠돌며 그들은 방이 그리운 것이다.나는 지금 내가 오래 전에 읽은 이하석의 한 구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절들은 나의 마음에 살러 왔다. 차가운 얼음들이 나의 이빨로 달겨들던 시절. 우리들의 자취방에 가득했던 스산한공기들. "...우린 늘 방이 그리웠지요. 그러나 우리의 방은/ 어디에도 없고, 티끌처럼 점처럼 우린 떠돌지요./ 때론 눈물의 집 속에 들어 내가 바깥을 내다볼 때,/ 내가 깃든 눈물의 투명한 물방울의 집은/ 세상의 시선에 맞아 자주 터뜨려져버려요/ 세상 밖 어디에서 땅을 ㄹ어 세상 밖/ 어디에다 우리 집을 지을까요? 도꼬마리 청석 위/ 우리가 가구는 세상은 도시의 빈터만큼/ 눈물겨워요. 이 도시의 버려진 빈터에서/ 당신을 읽어요..."

    # 충족된 연인은 글을 쓸 필요도, 전달하거나 재생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쓴다는 것은 공허를 채운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의 허기를 스스로 달래는 그런 노동. 새벽 쓰린 속을 달래려 곤로에 찬물을 얹으면 유리창에 달라붙는 새벽의 입자들. 부유하는 불빛들. 그러나 허기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허기는 보여준다. 그가 무엇을 욕망했는지를. 허기는 큰 구멍이다.

    # 그러니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

    그러므로 나는 그를 압박하지도 내 정신을 잃지도 않으면서 그와 더불어 괴로워 하리라. 아주 다정하면서도 잘 감시된, 애정에 넘쳐 흐르면서 예의를 잃지 않는 이 처신에, 우리는 부드러움이란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연민의 "건전한"(개화된, 예술적인) 형태이다.

    그를 본다. 그녀를 본다 냉정해지자고 다짐하는 그와 현명해지자고 다짐하는 그녀. 잘 감시된, 잘 관리된 애정 속에 자신을 세워 두자고 그들은 다짐한다. 품위를 잃지 않기를~~하며 그들은 다짐한다. 그런 다짐과 품위가 한낱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시대. 니이체는 말한다. "그대들이 대중의 일원이기를 멈추고자 한다면 단지 그대들의 안일을 멈추기만 하면 된다"고. 우린 더 큰 세계의 싹이 아닌가.

    # 손을 꽉 잡는다는 것--수많은 소설의 얘깃거리가 되어온--손바닥 안에서의 그 미세한 움직임, 비키지 않는 무릎, 아무 일도 아니란 듯 소파의 등받이를 따라 늘어뜨려진 팔, 그 위로 차츰차츰 다가와 기대는 그의 머리. 그것은 미묘하고도, 은밀한 기호들의 천국이다.

    손가락 하나에도 수많은 기호를 담을 수 있는 그들. 그들은 너무 잘 느낀다. 지나쳐야할 것들마저도 놓치지 않는 그런 섬세함으로 그들은 상처 받는다.

    # 언어는 살갗이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

    사유는 언어다. 언어 없는 사유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유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유도 사유지만, 나는 내가 아는 사유로 사유한다.

    #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거나 조립하는 시는 헌정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나는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당신을 숨막히게 하는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어한다라는.

    그 충동에 사로잡혀 있을 때 새는 가장 극진한 소리로 울지 않던가.

    # 나는 내게 상처를 주는 이미지들(질투, 버려짐, 수치심)을 연신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자해하려 하며, 또 하나의 상처가 내도하여 그것을 잠시 잊게 할 때까지, 다른 이미지들로 양분을 주고 부양한다.

    상처를 덧내는 사람들, 그 상처속에서 아픈, 그러면서도 달착지근한 즙액을 야곰야곰 갉아 먹으려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고통을 빼앗아간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갱생을 요구하는 것만큼이나 잔인하다. 어두운 자들에게 고통은 좌절의 양식이다.

    # 한 영국 귀족이 <베르테르>에 의해 야기된 자살 전염병에 대해 괴테를 비난하자 괴테는 순전히 경제 용어로 이렇게 답변하는 것이었다. "당신네의 상업 체제가 수천의 희생자를 낳게 했는데, 왜 그 중 몇 명을 <베르테르>에 허용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그것이 현대의 윤리다. 터무니없는, 내가 한번도 동의한 적이 없는.

    # 살갗이 벗겨진, 지극히 가벼운 상처에도 아픔을 느끼는 사랑하는 사람의 특이한 감수성... 사랑에 관한 한 그것은 살갗이 벗겨진 사람이지 깃털로 감싸인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랑은 그렇다. 그렇지 않은 사랑도 있을 것이다. 말이란 언제나 현재에 충실하다. 그러니 그 말의 현재밖에 있는 당신은 그 말에 묶이지 마라. 당신의 현재엔 또 다른 언술이 필요한 것이다. 책에 언급된 말들은 어떤 순간에만 헌신한다. 발화자의 상황과 문맥에 헌신한다. 당신에겐 당신의 문맥이 있다.....그러나 한입으로 두말을 해도 말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 사랑의 포옹은 한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이와의 완전한 꿈을 실현시켜 주는 것처럼 보인다.

    ......처럼만 보일 뿐이다.

    # (사랑의 정념은 정신착란이다, 그러나 정신착란은 낯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정신착란에 대해 말하며, 그리하여 이제 길들여졌다. 불가사의한 것은 오히려 정신착란의 상실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돌아갈 것인가?)

    미셀 푸코의 난해함을 모두 감당하긴 힘들다. 그러나 <현대>가 위에서 말한 착란을 범죄로 몰고 있다는 데엔 그가 동의해줄 것으로 믿는다. 그것이 내가 아는 미셀 푸코다. 곳곳에 처벌의 기제들이 득시글거린다. 그러니 자신만만할 수 있는 연인들이 몇이랴. 통제된 곳에서의 축제는 엄밀히 축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한부 외출에 불과하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뻔하게 들여다 보이는, 얕은 수작의 시간들. 거기에서 광기는 슬픈 속임수다. 어떤이들은 그 축제의 한복판에 슬쩍 유리구두를 벗어 놓음으로써 그 시간이 좀더 연장되기를 바란다.

    # 나는 사랑의 상상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러나 상상적인 것은 불이 잘 안꺼진 이탄처럼 그 밑에서 타오르고 그리하여 다시 불붙는다. 단념한 것이 다시 솟아오른다. 잘 안 닫혀진 무덤에서 갑자기 긴 외침이 폭발한다.

    그 불은 잘 안 꺼진다. 그 무덤은 잘 안 닫혀진다. 왜냐면 불을 꺼야할 당사자가 그 불이 완전히 꺼질 것을 두려워해서 가슴 속 어딘가에 불씨를 자꾸 숨기기 때문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방화자다. 타인의 충고를 듣는 척은 하지만 그는 애초에 불을 끌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는 언제든지 꺼지려고 하는 불에 기름을 붓는다.

    # 기진맥진 한 목소리, 희박한, 핏기없는 목소리, 세상 끝에 다다른 듯한 목소리, 그리하여 이제 차가운 물 속 깊숙이 잠겨가는 목소리. 목소리는 피곤한 사람이 죽어가는 것처럼, 이제 사라지는 중이다. 피로는 무한 그 자체이다. 끝내는 것을 끝내지 않는 것. 이 간략하고도 짤막한,너무도 드물어 퉁명스럽기조차 한 목소리, 이 멀고도 다정한 목소리의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게는 하나의 거대한 마개가 된다. 마치 외과 의사가 내 머리 속에 커다란 솜뭉치를 처박아 놓은 것처럼.

    그렇게 피곤할 땐 의미가 귀찮다. 여지껏 지탱해온 이성이 털푸덕 땅바닥에 주저 앉는다. 그들을 위로하겠다면 그가 칩거해있는 방의 열쇠를 멀리 던져 버려라. 누구도 그의 문을 열 수 없게.

    # 축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의 모든 만남을 하나의 축제로 체험한다...어떤 엄청난 즐거움의 총체요, 향연......

    어떤 사람이 말한다. 제길, 축제가 뭐 이래.

    # 주체가 된다는 것, 주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나를 미치게 한다. 나는 타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공포 속에 인지한다....나는 영원히, 파괴불능인 채로 나 자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치는 것이며, 견고하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내 집은 파괴의 집입니다>라고 최승자는 말한다. 그러나 <나>처럼 견고한 성은 없다.

    # 옷...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의 만남 때에 입었던 옷이나 또는 사랑하는 이를 유혹할 목적으로 입는 옷 때문에 야기되거나 부양되는 모든 감정적 동요...나는 나를 열광케 하는 한 만남을 위해 나는 정성스럽게 화장한다.

    그런 치장의 시간을 헛된 소비가 아니다. 독서의 시간만큼 그런 시간은 소중하다. 몸의 단장도 영혼의 단장에 못지 않음을 인정하자. 살아서의 초라함을 죽음으로 보상 받으려는 어리석음을 맹렬히 비난해주는 동지들이 있다. 물질의 소모에 집착하는 물질적 현세주의자들이 그들이다. 필요한 때만 손을 잡아주는 그런 통일전선을 경계하자. 그들은 소비만을 생각할 뿐이다. 일부 통합을 위해서 전반적인 야합은 있을 수 없다.

    # 나는 한권의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자신을 투사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에 밀착하여 책의 마지막까지 그 이미지 속에 갇혀 있어야만 한다...이런 동일시!!

    바로 '이 책 속의 그는 나다'라고 그들은 동일시한다. 그래야만 그들은 그 책 속의 이미지를 온전히 자기것으로 할 수가 있다. <홍당무>를 읽으며 어떤 소년은 자기의 엄마가 의붓엄마라고 생각한다.

    #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추위, 그것은 어머니의 체온을 필요로 하는 어린애의 추위 타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그를 안아 주어라. 그럴 때 그는 의외로 착한 소년이 된다.

    # "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란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란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알 수 없는 대상 때문에 자신을 소모하고 동분서주하는 것은 순수한 종교적인 행위이다.

    이해가 사랑의 전초단계라면 이 세상엔 지금보다 훨씬 많은 논리 서적들이 범람할 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외감.

    # 당신의 욕망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당신은 그것을 조금 금지하기만 하면 된다.(금지없는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 게 사실이라면)

    '신께서 선악과에 대한 금지를 명하신 것이 곧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바로 그 자유가 우리들의 기쁨의 원천이다. 적어도 우리가 우리의 죄를 통제할 수 있는 한 말이다.

    # 견딜 수 없는 것. 사랑의 고통의 축적된 감정이 드디어 "이렇게 계속할 수 없어요"란 외침으로 폭발한다는 것.

    잘 관리된 이성의 규율 속에서 튀어나오는 이런 단발마적인 절규......

    # 자살의 상념, 결별의 상념, 은둔의 상념, 여행의 상념, 봉헌의 상념 등. 나는 사랑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해결책을 상상할 수 있으며, 또 끊임없이 상상한다...사랑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에 대한 환상적인 조작..사랑의 담론은 일종의 유폐된 출구이다...상념이란 항상 내가 상상하며 감동하는 하나의 비장한 장면, 곧 연극이다...때로는 작별의 장면, 때로는 한 통의 엄숙한 편지, 또 때로는 충만한 해후의 장면이기도 하다. 재앙의 예술이 내 마음을 진정시켜 준다.

    연극의 기원에 대한 이론의 하나로 위의 의견을 첨가하고 싶다. 혼자 버려둔 생각은 뭔 짓인들 못할까. 그를 죽이고, 그의 장례식에서 눈물 흘리고, 웅장한 스펙타클로 이별을 준비하고, 감동으로 격정적인 헌시를 바치고.

    # 사랑의 우수 속에서는 무엇인가가 끝없이 사라진다. 마치 욕망이 이런 출혈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 사랑의 피로가 있다. 그것은 채워지지 않은 배고픔, 입을 크게 벌린 사랑, 또는 내 모든 자아가 대신 자리를 차지한 사랑의 대상에게 끌려가며 이전되는 것.

    내 영토의 등기부엔 아직도 내가 소유주다. 나는 이전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이전되지 않는다.

    # 비틀기는 놀이가 아닌, 상투적인, 강박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하나의 의례적인 조작이다. 이처럼 다변에 사로잡힌 연인도 자신의 상처를 만지작거린다....이제 막 울음을 터뜨리려는 자의 역할, 그 역할을 나는 내 앞에서 연기하고 그러면 그것은 나를 울게 만든다. 나는 내 스스로의 연극 무대이다. 이렇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것은 더욱더 나를 울게 만들고, 그러다 울음이 멈추려 하면, 다시 울음을 솟구치게 할 가혹한 말을 자신에게 내뱉는다.....마지막 난장판에 이르는 그런 말의 즐김.

    자신의 연기를 자신이 지켜 보아야 하는 그런 쓸쓸함. 타인들이 나처럼 나를 지켜봐 줄 순 없다. 그렇다 난 내 광기의 유일한 증인이다.

    # 침묵 중의 어머니는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주지 않는다.

    어머니, 침묵만 하는 어머니, 그 침묵이 편하면서도 두려운 것은 왜일까요.

    # 나는 아무것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소득의 밤, 정교하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소비의 밤이다. 나는 어둠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 사랑의 내부 안에 그저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런 방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오랜 시간 긴장해 있지 않았던가.

    # 말, 그것은 무엇인가? 한방울의 눈물도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하리라--슈베르트 <눈물의 찬가>..눈물, 액체의 확산 속에 적셔진 육체..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장 진실한 메시지, 혀의 메시지가 아닌 육체의 메시지를 거두어 들이는 한 과장된 대화 상대자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눈물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 하지 못한다 해서 여지껏 나의 사유의 도구였던 말을 헌신짝 버리 듯 할 수 있는가. 나는 그 말로 사유하고 그리워 하지 않았던가. 언어에 대한 불신도 하나의 상투적인 태도가 되어 버림으로써, 제대로된 논리마저 불신 받는 웃지 못할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잘 사고된 말은 성숙하지 못한 직관보다 더 절실 하다.

    # 잡담. 사랑하는 이가 잡담에 휘말리거나, 또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그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느끼는 아픔...공동의 담론이 나의 그 사람을 빼앗아, 저기 존재하지않는 모든 사물들에도 적용되는 그런 보편적인 대체물의 핏기없는 형체로 되돌려 줄 때, 나는 마치 그 사람이 죽어, 축소되어, 언어의 거대한 능벽 안 유골단지에 안치된 것처럼 보인다. 내게서 그 사람은 결코 지시물이 될 수는 없다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내밀하고 고독한 세계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심정, 이것은 소유의 감정이 아니다. 그의 내부가 고요히 그리고 무한히 확장되기를 바라는 기원이다.

    #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육체의 중심부, 심장까지), 주체는 더욱 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주체란 내면성 그 자체이기에(상처란 무시무시한 내면성이다). 바로 그것이 사랑의 상처이다 닫혀지지 않는 근본적인 열림(존재의 뿌리까지)거기서 주체가 흘러나오며, 바로 그 유출 속에서 그는 자신을 주체로 설정한다.

    상처는 어떤 중심점을 향해 타오른다. 거기에서 주체는 맹렬해진다. 격렬하게 흘러 나온다. 나무의 심장은 수액으로 가득차 있어 뜨겁다.

    # 하나의 대담한 출현이 내 마음 속에 상처를 열게 한다....나를 명중하는 일시적인 자태...나는 내게 말해진 한 문장을 사랑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 문장이 내 욕망을 건드리는 그 어떤 것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치 추억처럼 내 마음 속에 살러 올 그 통사론적인 형태(그 틀) 때문이다.

    어떤 문장은 내 마음에 살러 온다. 나에게 살러 오는 문장들을 위해 책을 연다.나는 행복한 벌집이 되겠다.

    # 작업 중의 자세란, 어떻게 보면 이미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