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따 여봐라 이놈아, 내 돈 석 냥 갚아라!”
빚쟁이 징금이가 돈 석 냥을 받으려 마을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당당하게 “네 돈 석 냥 갚아 주마!”라고 받아칩니다. 징금이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돈 석 냥 대신 마을 사람들이 던져준 온갖 물건들로 몸을 불려 갑니다. 점점 커져만 가는 욕심보 징금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징금 징금 징금이』는 물질만 중요시 여기는 세태를 풍자한 전래요 ‘징금타령’을 그림책작가 윤정주의 재미난 그림을 통해 재해석한 그림책입니다. 비장하면서도 폭소를 자아내는 노랫말과 능청스러운 그림이 조화를 이루어 전래요의 색다른 재미를 전해줍니다.

유머와 생명력이 넘쳐나는 노동요 ‘징금타령’
이 그림책의 바탕이 된 ‘징금타령’은 영호남 지방에서 불리던 노동요입니다. 무주 지방에서 채록된 노래에 다른 지역 노래를 보태고 빼서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징금이’가 무엇이냐를 놓고 여러 말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민물에 사는 새우 이름인 징거미의 다른 말’이라는 해석을 바탕에 두었습니다. 먹성이 좋고 집게발이 몸보다 서너 배 크며 밤에 주로 활동하는 징거미는 성질이 사나워서 몸집이 훨씬 큰 붕어에게도 흔히 대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비장한 듯 느껴지는 노랫말이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익살과 해학이 합쳐져 배포 있고 힘찬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권정생 선생님도 “징금타령은 풍자시로서 최고봉의 걸작이며 어떤 시인도 감히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 묘사는 흉내 내지 못할 것”(『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종로서적 1986)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노래 부르는 서민들의 마음이 진솔하게 다가오며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줍니다. 비장한 노랫말에는 서민들의 호탕한 기질과 생의 의지가 꾸밈없이 담겨 있어 참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유쾌한 그림책작가 윤정주의 해학적인 그림
징금타령은 물질만능의 세태를 익살스럽게 꼬집고 있습니다. 화자인 ‘징금이’가 자기 돈 석 냥을 내놓으라고 재촉하면 노래를 받는 사람은 내 몸 한 구석을 팔아도 그 정도 돈을 갚을 수 있다며 호기롭게 응수합니다. 신체의 일부분을 떼어낸다는 표현이 자칫 비장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돈보다는 몸이, 사람이 소중하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이런 속뜻은 해학적인 그림에서 잘 드러납니다. 빚쟁이 징금이는 작은 흙덩어리 모습으로 처음 마을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던져준 여러 생활도구들로 몸이 커지자 점점 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징금이는 욕심에 눈이 멀어 처음의 모습을 잃고 징거미로 변해 버립니다. 물질로 아무리 채우려 해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나는 마지막은 슬프면서도 상징적입니다. 반면 몸의 일부분을 던져주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순박하고 편안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와 이야기를 편안하고 해학적인 그림으로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돋보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따라 부르는 놀이 노래 ‘징금타령’
징금타령은 놀이 노래로도 많이 불렸습니다. 보통 두 사람이 메기고 받으면서, 몸짓으로 몸의 일부분을 옆 사람에게 떼어 주는 흉내를 내며 불렀습니다. 머리통은 ‘바가지’, 손은 ‘갈퀴’ 등으로 몸의 각 부위를 생활 도구에 비유하는 부분은 ‘우리 몸에 이렇게 여러 가지 쓰임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듭니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몸의 부위와 쓰임을 자유롭게 바꿔 부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입니다. 『징금 징금 징금이』는 징금타령의 매력과 흥겨움을 다시 살려 독자에게 전해줍니다. ‘헛따 여봐라 이놈아’ ‘징금 징금 징금아’를 반복하며 운율을 살려 놓아, 소리 내어 흥겹게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랫가락이 일정하니 우리 몸속에서 다른 생활 도구들을 끌어내 불러보거나 여러 가지 쓰임으로 바꿔 부르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시그림책에 대하여
시와 그림의 독특한 결합 방식으로 그림책의 새 가능성을 보여주는 씨리즈. 어린이들을 위해 엄선한 옛노래, 현대시, 어린이시를 토대로 그 안에 담긴 운율과 이미지, 삶에 대한 성찰을 재미있고 깊이 있는 그림으로 펼쳐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일본 등에 번역 출판되고 각종 국제전시에 초청받는 등 해외에서도 그 진가를 인정받았습니다.
  • 풍자의 최고봉의 시, 그림은... 시 그림책
    봄햇살 | 2009년 06월 29일
    창비의 시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한켠에서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그림 작가가 알아서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시가 '시 그림책'으로 태어날 때는 기존의 시와는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을 보고나서였다. 만약 내가 그 시만 읽었다면 그림 작가가 들려준(보여줬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줬다고 표현해도 맞을 정도로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생각을 스스로 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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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의 시 그림책을 무척 좋아한다. 한켠에서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그림 작가가 알아서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시가 '시 그림책'으로 태어날 때는 기존의 시와는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넉 점 반>을 보고나서였다. 만약 내가 그 시만 읽었다면 그림 작가가 들려준(보여줬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들려줬다고 표현해도 맞을 정도로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생각을 스스로 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시어가 나타내는 그 이상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 후부터 시 그림책을 눈여겨 보고 있던 터다. 물론 항상 감탄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냥 시를 그대로 쫓아가는 그림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시리즈다.

    시 그림책을 볼 때마다 내가 시를 얼마나 모르는지 깨닫는다. 어쩜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시가 그리도 많은지. 게다가 이 시에서 나오는 징금이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도 몰랐다. 마치 <강아지똥>에 나오는 똥 같기도 하고 외국책에 나오는 진저브레드맨 같기도 한 징금이가 나오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이상한 형상은 계속 다니며 돈을 갚으라고만 한다. 그러면 옆에서는 자신의 몸의 일부를 팔아서라도 돈을 갚겠단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 사실 머리통을 떼내고 눈알을 빼낸다는 표현이 섬칫했다. 또 그림은 어떻고. 시에 나오는 내용대로 그림을 그려서 좀 부담스러웠다. 평소에 어린이 책이란 아름다운 것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조금 여유를 갖고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어떤 것을 사달라고 하면 엄마가 '엄마를 팔아서 사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사줄 수가 없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면 이 시가 더 어렵던 시절에 지독하게 돈만 밝히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면 느낌이 달라진다. 돈이 없어 못 갚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돈 내놓으라고 닥달한다면 이런 말이 나올 만하다.

    '욕심이 많을 뿐 한편 귀엽고 순박하던 징금이가 자기 욕심에 먹혀 징거미가 된' 유래담이 바로 이 시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이 설명이 없었다면 이 시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림도 이해하지 못할 뻔했다. 물론 마지막에 징금이가 징거미가 되었다는 글이 나오지만 처음에 나왔던 그 이상한 징금이가 못된 양반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그러면 뭔가 살짝 어긋난 느낌이 든다. 뒷부분에 시의 원문이 나오는데 솔직히 내 경우 그냥 이 시를 읽는 것이 더 다가왔다. 권정생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이 시가 풍자의 최고봉이라고 했단다. 원래의 시를 읽으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런데 그림과 함께 읽을 때는 그 정도까지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시를 이해하느라 바쁜데 그림도 보느라 힘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넉 점 반>이나 <영이의 비닐 우산>처럼 그림에서 뭔가 읽으려고 너무 노력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테고. 여하튼 그림 잘못이 아니라 시를 알지 못하는 내가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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