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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의 여정
    스머프 | 2007년 02월 01일
    이 책은 엔리케라는 소년이 미국으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에서 과테말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 노스캐롤라이까지 가는 길을 기록한 책이다. LA 타임스의 연재기사를 바탕으로 퓰리처상 2개부문을(특집기획 부문, 보도사진 부문 2003년) 수상한 이 책은 저자가 5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엔리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가 걸었던 온두라스에서 미국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을 직접 따라서 추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된 엔리케의 여정은 멕시코를 지나는 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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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엔리케라는 소년이 미국으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에서 과테말라, 멕시코를 거쳐 미국 노스캐롤라이까지 가는 길을 기록한 책이다. LA 타임스의 연재기사를 바탕으로 퓰리처상 2개부문을(특집기획 부문, 보도사진 부문 2003년) 수상한 이 책은 저자가 5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엔리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가 걸었던 온두라스에서 미국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을 직접 따라서 추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엄마와 같이 있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된 엔리케의 여정은 멕시코를 지나는 과정에서, 짐승 같은 사람들에게 폭행과 강탈을 겪게 되고, 화물열차 지붕위를 장악하고 있는 갱들과 무장 강도들에 의해 기찻길로 내던져진다. 도처에 부패한 경찰들은 이들의 돈을 갈취하고 본국으로 강제추방하지만 엄마를 만나야 하는 엔리케는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경찰과 이민 당국의 감시를 피해 일주일에 여덟명 정도 지붕 위에서 떨어져 죽거나 사지가 절단되는 "사람 잡아먹는 기차"에 올라탄다.

    쉽게 생각하면 온두라스판『엄마찾아 삼만리』라 할 수 있겠으나 이 책은 『엄마찾아 삼만리』의 뭉클한 감동을 기대할 수 없다. 제노바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엄마를 찾아가는 마르코의 이야기나 테구시갈파에서 노스캐롤라이까지 엄마를 찾아가는 엔리케의 감동스토리가 아닌, 이 이야기는 매년 미국에 있는 엄마를 찾아 나서는 4만8천명의 아이들이 하나하나 만드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여정의 일부분일 뿐이다 

     또한 이 책은 많은 문제를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엔리케와 같은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잔혹성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데, 그건 어째 영 낯설지 않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어서일까? 이혼이나 기타 사유로 자녀와 함께 거주하지 못하는 싱글맘과 싱글대디 (?), 그리고 그들의 자녀 문제, 불법 체류자나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시각과 태도 문제, 엔리케와 비슷한 길로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탈북자 문제, 잔혹한 빈곤에 시달리는 소외계층 사람들의 문제 등...

     이 책은 저기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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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재로 인한 이주노동자의 참사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이 책을 읽다.
    사탕단지 | 2007년 02월 12일
    어제 뉴스에서는, 여수출입국관리소에서 화재로 10여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때마침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은 중남미국가의 불법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야기한 [엔리케의 여정]이었다. 사실, [엔리케의 여정]을 읽으면서,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으려 하는 모습들이 중남미 혹은 미국과 국경을 인접한 지역의 특수한 경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다 기차에 수족을 잃거나 갱에게 당하는 것이나, 국가기관인 출입국관리소에 수용되어 강제출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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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뉴스에서는, 여수출입국관리소에서 화재로 10여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때마침 내가 읽고 있었던 책은 중남미국가의 불법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야기한 [엔리케의 여정]이었다.

    사실, [엔리케의 여정]을 읽으면서,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으려 하는 모습들이 중남미 혹은 미국과 국경을 인접한 지역의 특수한 경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국경을 넘다 기차에 수족을 잃거나 갱에게 당하는 것이나, 국가기관인 출입국관리소에 수용되어 강제출국을 기다리는 그들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엔리케의 여정]은, 온두라스에 사는 엔리케라는 아이가, 미국으로 일하러 간 엄마를 찾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가는 여정을 사실 그대로 그린 책이다.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작가의 목소리보다는 엔리케의 여정을 쫓아가면서 독자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아이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싱글맘들이 많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다가 국경을 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버린 중남미국가들. 엄마들은 밀입국알선자를 통해 국경을 넘고, 그런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 아이들은 몰래 국경을 넘는다. 미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인접 마을마다 엄마를 찾아가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불법이주자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차지붕에 매달려 국경을 넘어가는 이들에게는 추위와 더위, 그리고 굶주림과 더불어 갱까지, 험난한 여정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사선을 넘나들며 마침내 엄마를 만난 아이들은 행복한 재회를 꿈꾸지만, 수년간 떨어져 살아온 그들에게는 또다른 갈등이 증폭되고 폭발한다. 이것은 중남미국가뿐만 아니라 해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도 문제가 된다. 결국, 이 험난한 여정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중남미 국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 뿐이다.

    미국은, 그동안 세계 평화 유지자라는 가면을 쓴 채 수많은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종속시켜버렸다. 그 결과 미국은 부유해졌고, 그 어느 나라도 미국에 대항할 수 없는 체제가 되었지만, 미국 사회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동시에 같이 안고 가게 되었다. 그것은, 자국에서의 경제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윤택한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고, 오히려 미국민들의 일자리를 싼 노동력의 이주자들이 차지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간에 값싼 노동력이 해외로부터 많이 유입되게 되면, 일자리를 잃는 자국민의 숫자가 많이 줄어든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있는 자는 값싼 노동력으로 부를 축적하게 되고 없는 자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과 물류에 종속된 국가들은 그 국가들대로 살아남기 위해 또다른 국가의 값싼 노동력을 가져옴으로써 자국민이 설자리를 잃게 되는 똑같은 악순환이 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남아국가의 이주 노동자들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해마다 불법체류자들을 강제이송한다 어쩐다하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도 한다.

    엔리케가 겪은 수많은 고통들이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부패 경찰관과,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갈취하는 악덕기업주들과, 그런 노동자들에게 사기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불법이주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만 잘먹고 잘살면 되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아야 한다. 근본원인(불법이주자들의 국가가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치료하지 않고서는 물고 물리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불법이주자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그들 가족들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물론, 내가 가르친 대부분의 학생들은 유학 온 대학생이나, 기업체의 전문기술직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가르치면서, 한국사람들의 이중적인 잣대를 보았다. 대학생이든 전문기술자들이건간에 출신국가(선진국이냐 아니냐)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산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생산직 외국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2-3년 전,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노동자들이 알고 있는 한국어들이 대부분 한국의 욕설이었다는 것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즉, 그들이 듣는 수많은 한국어가 욕이라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십년 전에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간 노동자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의 내용은 별 4개를 주면서 편집구성을 별 2개밖에 주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1. 두르려(P.57) ->두드려 (오타)
    2. 엔리케도 그녀가 자신의 멋진 옷과 진지한 태도가 건방져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P.58) -> 그녀가 건방져 보이는 건지 엔리케가 건방져 보이는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번역
    3. 스무 다섯 점(P.66) -> 스물 다섯 점, 스물 명(P.105 / P.197) -> 스무 명 : 스물 + 수분류사(개, 대, 명 등등)이 오면 ㄹ 탈락, 스물 + 숫자 오면 ㄹ 유지되는 것이 맞춤법에 맞음.
    4. 제 나라(P.89) -> 우리 나라
    5. 국경에서 북부 치아파스의 아리아가에 이르기까지가 구역인 검은 피부와 이마에 MS문신을 한 뚱뚱한 엘살바도르인 블랙키, 엘 더크, 포르키, 홈보이 등등 많았다.(P.117) -> 이런 문장처럼 꾸미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문장 다수
    6. 또르티야(P,124)와 토르티야(P.125)처럼 같은 단어의 다른 표기들.
    7. 물 컵(P.128) 한 살 반 인(P.128) -> 띄어쓰기 오류
    8. 팔를(P.154), 코요태을(P.175) 셔츠을(P.226) ->조사 오류
    9. 그는 부패한 경찰들도 가난한 이주민들은 강탈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P.183) -> 은/는 보조사의 명확하지 못한 사용
    10. 고속도로의 아스팔트가 녹을 정도였던 섭씨 44도에서 47도를 나타냈던, 지난주보다는 기온이 낮아졌지만 (P.198) -> 어색한 문장
    11. 그는 그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인 결과, 결론은 혼자서는 가지 말라는 것이다.(P.200) -> 주어와 서술어의 불일치 문장 다수
    12. 그곳은 일반전화 훨씬 싸기 때문에 엔리케에게 전화할 때 (P.261) -> 생략된 조사로 인해 불분명한 문장
    13. 준비하고 있으라는 연락이었다, (P.276) -> 틀린 문장부호
    14. 더 날 것 같았다. (P.277) -> 더 나을 것 같았다. 맞춤법 오류
    15. 이주민들은 그들이 받는 서비스 요금보다 적은 3,463달러를 덜 낸다고 국립조사위원회는 말한다.(P.294) -> 서비스 요금보다 3,463달러가 적다는 것인지, 3,463달러를 덜 낸다는 것인지 불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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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커의 여정 & 내 삶의 여정
    텅빈하늘 | 2007년 02월 13일
    이 책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등지에서 가난을 벗어나고자 물밀듯이 미국으로 불법이주를 감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불법이주자 중에는 고국에서 생활고로 아이들을 더 이상 양육할 수 없게 되자 미국으로 건너온 어머니도 많다. 그 어머니들은 미국에서 힘들게 번 생활비를 고국의 아이들에게 부쳐준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물질적인 가난에서 어느정도 해방된다. 하지만 커감에 따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미국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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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등지에서 가난을 벗어나고자 물밀듯이 미국으로 불법이주를 감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불법이주자 중에는 고국에서 생활고로 아이들을 더 이상 양육할 수 없게 되자 미국으로 건너온 어머니도 많다.

    그 어머니들은 미국에서 힘들게 번 생활비를 고국의 아이들에게 부쳐준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물질적인 가난에서 어느정도 해방된다. 하지만 커감에 따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미국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중에 하나가 엔리케라는 남자아이다. 엔리케는 어머니를 찾아 미국으로의 힘든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우여곡절끝에 미국에서 어머니를 만나지만 어린시절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울분으로 가정내 불화를 겪기도 한다.

    이 책은 짧게는 온두라스 국적을 가진 엔리케의 미국으로의 여정을 담은 책이지만 불법이주에 따른 문제를 다각도로 그려내어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비록 중남미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우리도 동남아에서 밀려드는 불법이주민의 문제가 잠재적인 자국민과의 갈등문제를 안고 있다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여러 시사점을 가지고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불법이주의 빛과 그림자를 불법이주자의 입장과 미국의 입장에서 번갈아 가며 이야기한다. 그럼 이러한 불법이주가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책에 따르면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남미 독재정권을 지원해 줌으로서 결과적으로 중남미의 발전이 저해되어 가난해 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내었다고 말한다. 가난은 대물림되어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 견해는 옳지만 나라의 주권적인 요소를 모두 더 큰 강대국에 책임을 미룬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국민의 깨어있는 의식이 가난과 삶의 질곡에서 탈출시킬 수 있는 방법적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국제역학적인 문제는 그만 이야기하자. 

    삶에서 고난을 받는 실제적인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린 아이들이 죽을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모험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아프다. 강간, 폭행, 학대, 구걸, 굶주림......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비참한 단어를 나열한 것 같은 그들의 삶은 새삼 불평등한 세상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우리 개인으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렇게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이런 책을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값싼동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보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점이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신용카드를 꺼내어 호텔에 가서 샤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 ...... 나의 여행은 그들의 끔찍한 상황을 살짝 들여다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따듯한 방안에서 커피를 한모금 마시며 책을 본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 저편의 일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것은, 단지 그러는 것은 내 자신이 근본적으로 착한 사람이다. 선한 사람이다. 라는 자기 확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악어의 눈물은 악어 스스로를 속이면서 자기만족을 낳곤 한다. 나는 그 예외일까?

    멀리 중남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 땅에도 많은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있다. 물론 그들은 범법자다. 그들중에는 범죄자도 많고 자국민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불체자에게 우리정부가 베풀어줄 수 있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우리와 똑같은 피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부족한 3D 인력을 채우기위해 대강 눈감아주면서 들여온 외국인이주자들의 인권이 사각지대에 놓인 현실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얼마전 뉴스에서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아이들이 값싼 노동력에 착취당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에는 수많은 가난한 아이들의 노동력착취가 숨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축구의 축구공의 실밥 하나하나를 만드는 데도 가난한 아이들의 착취와 한숨이 들어있다.

    커피를 마시지 말고, 축구공을 가지고 놀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삶의 주변을 돌아볼 줄 모르고 자기자신만의 삶이라고 울타리쳐진 속에서만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그리고 또 절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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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화, 엔리케의 여정
    바지런 | 2007년 02월 13일
        사실 이 책의 제목만 접했을 때는 어려서 읽었던 엄마 찾아 삼만리의 뭉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의 감정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카트에 넣었다. 중남미에 위치한 온두라스의 엔리케가 돈을 벌러 미국에 간 엄마를 찾아 나서는 내용을 기자인 작가가 엔리케의 행적을 따라 그 길을 직접 겪어가며 그의 여정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온두라스는 멕시코 옆의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옆에 위치한 중남미에 속한다. 중남미 국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척이나 힘든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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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의 제목만 접했을 때는 어려서 읽었던 엄마 찾아 삼만리의 뭉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때의 감정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카트에 넣었다.


    중남미에 위치한 온두라스의 엔리케가 돈을 벌러 미국에 간 엄마를 찾아 나서는 내용을 기자인 작가가 엔리케의 행적을 따라 그 길을 직접 겪어가며 그의 여정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온두라스는 멕시코 옆의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옆에 위치한 중남미에 속한다.


    중남미 국가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척이나 힘든 경제 상황을 지닌 나라인 걸 알게 되었다.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남편이 집을 나가며 싱글 맘으로서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어 미국에 일자리를 찾아 간다.


    그때 엔리케의 나이 5살, 누나인 벨키는 겨우 7살 나이였다.


    꼭 돌아오겠다던 엄마가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엔리케는 엄마의 부재로 인하여 처음에는 당혹감을, 그 다음엔 혼돈을 지나서 사춘기의 분노로 돌변한다.


    엔리케는 심지가 약하고 연약한 소년인 것 같다. 애정 결핍과 외로움이 지나치며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처럼 비춰진다.


    아버지에 맡겨진 후 아버지의 새 여인으로 인해 버림받고 친할머니와 지내다 사춘기를 힘들게 지내는 엔리케를 견디지 못하는 할머니로 인해  외삼촌 마르코와 살게 되며 잠시 동안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마르코 삼촌이 죽고 나서는 다시 버림을 받게 되어 외할머니 집으로 오게 되는 데 그 동안 얼마나 상실감이 컸을지 엔리케가 본드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에 한 몫을 했을 것 같다. 모두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그만의 외로움이 너무 컸을 테고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과정이었을 거다.


    16살에 만난 여자 친구 마리아 이사벨과 엄마의 애정을 느끼고 싶었으리라.


    엔리케의 엄마를 찾아 떠나는 미국행은 결국 자신의 처지와 마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결단으로 비춰진다.


    엄마 라우데스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아이들을 위해 미국에 갔으면 열심히 돈을 벌고 돌아와야지 거기에서 아이까지 만들어 낳고 마는 무책임한 성격인 것 같다.


    자식은 사랑하나 무지해서인지 계획성이 없는 즉흥적이며 감정적인 여인으로 보인다.


    그래도 온두라스는 아직까지 굉장히 가족 중심적 사회인 것 같다.


    마르코 오빠가 여동생 라우데스를 한동안 키운 것과 친 인척들이 아이들을 맡아가며 돌봐주고 서로 위하고 돕는 모습이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따뜻한 마음들과 정이 많은 민족 같다.


    멕시코의 경찰들과 이민국 직원들의 부패한 모습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이다.


    이주민들을 협박하고 때리고 나쁜 짓을 해가면서도 그 돈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모습들이 멕시코의 치안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달리는 기차 위에 몸을 맡기는 위험을 무릅쓰고 122일간의 여정을 지나는 동안 만난 강도에게서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하고 위험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멕시코의 어느 마을은 이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곳도 있다.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들 이주민들을 나쁘게 보는 멕시코인들은 그들이 나쁜 이주민들에게 반대로 당한 적도 있기에 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사람이 말했듯이 그들 또한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감행하는 입장이면서도 자신들보다 못한 옆 나라의 이주민들에게 행하는 폭력이나 강제 송환 등의 조치들은  고려해야 되지 않을 까 싶다.


    모든 어려움을 겪고 엄마를 만나게 되지만 해피엔드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엄마와의 갈등, 즉 엄마가 나를 버렸다는 마음의 상처가 어렵게 만난 엄마에게 또 상처로 되풀이 되는 것이다.


    처음 만나서의 기쁨은 잠깐 동안이고 현실은 또 다른 갈등으로 인해 불협화음으로만 치닫게 된다. 엄마에게 왜 나를 버렸냐고 화를 내는 엔리케와 죄책감으로 인한 엄마와의 싸움에 방황하는 엔리케는 나중에는 엄마와 화해를 하며 고향에서 자신의 딸을 낳아 키우고 있는 여자 친구를 미국으로 부른다.


    시간이 지나자 엔리케는 엄마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자신도 결국 엄마처럼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을 것이다.


    과연 엔리케는 미국에서 여자 친구와 다시 재회해서 결혼도 하게 되고 다시 온두라스로 같이 돌아 갈 수 있을지 뒷이야기가 자못 궁금하다.


    딸 자스민에게  엔리케와 엔리케의 엄마가 겪었던 똑같은 길을 겪게 되지 않으련지 우려가 된다.


    미국에 넘쳐나는 중남미 이민자들에 대해 미국은 지금 손익계산에 머리를 굴리고 있는 듯 하다. 강화하고 있는 국경조치에 비해 불법 이민자들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위험천만한 기차여정은 잘못하여 떨어져 목숨을 잃거나 몸의 어느 부분이 절단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차위의 이주자를 노리는 강도의 무자비한 살육과 폭행, 강간등 너무 위험한 상황들이 발생해도 누구하나 하소연할 곳도 없고 이주민들의 인격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어차피 늘어나는 불법이민이라면 이주민들에 대한 배려와 정책이 다시 서야 할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엄마 찾아 삼만리를 기억하는 감정은 사라지고 이 무섭도록 치가 떨리는 현실에 내 놓인 이주민들의 고난의 길이 걱정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현재 미국으로 가는 중남미 국가의 여성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짧은 기간을 계획하고 미국에 오지만 막상 계획처럼 되지 못하며 자식을 만나게 되도 자식은 자신을 버렸다는 분노를 엄마에게 표출하고 엄마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며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재결합을 해도 해체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이 진정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때이다.


    진정한 행복을 먼저 고려하여 가족이 해체되는 불행을 되풀이하여 격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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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작품
    진달래 | 2007년 02월 15일
    처음에 이 책에 대한 소개로 해외판 <엄마 찾아 삼만 리> 또는 또 다른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나 픽션으로 볼 수 없는 면이 있고 한 명의 엔리케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엔리케가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느 문학작품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읽을 때의 느낌이나 읽고 나서의 느낌도 그 여운이 달랐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한 기자가 남미에서 미국으로 오는 많은 불법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왜 남미에서 미국까지 오는지, 그 과정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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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책에 대한 소개로 해외판 <엄마 찾아 삼만 리> 또는 또 다른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코 소설이나 픽션으로 볼 수 없는 면이 있고 한 명의 엔리케의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엔리케가 그 여정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여느 문학작품과 사뭇 다르다. 그래서 읽을 때의 느낌이나 읽고 나서의 느낌도 그 여운이 달랐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한 기자가 남미에서 미국으로 오는 많은 불법이민자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왜 남미에서 미국까지 오는지, 그 과정은 어떤지, 어떤 일들을 겪는지 아주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엔리케라는 한 온두라스 소년이 과테말라와 멕시코 전역을 기차와 버스, 도보로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기자가 엔리케에게서 들은 내용, 같은 여행을 통해 만난 다른 불법이민자들을 직접 보고 또 들은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여행이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여행과 얼마나 다른가. 또 한 번만 하고 마는 여행인가. 그 여행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와 눈물, 고통은 또 얼마나 큰 것인가. 이 여행은 둑음을 무릅쓴 여행이다. 불법으로 하는 여행이니만큼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여행인데, 성공할 때까지, 또는 장애자가 되거나 둑음에 이르기까지 그 여행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내란, 가난 그리고 해체된 가정으로 인한 불법이민자와 그 가족은 남미에서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나 사회, 가정 모두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다. 더구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그 고통은 어른 세대만 겪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이되어 교육이니 일자리니 미래를 꿈꿔볼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다 보면, 이들에게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그대로 그 상태를 견디며 생존하거나, 미국이라는 꿈의 나라로 불법이민을 가서 경제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아빠가 아이들과 몇 년씩이나 헤어져 지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방법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많은 엄마나 아빠들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머니를 벌면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불법이민을 감행한다. 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더구나 불법이민자의 입장에서 머니를 벌어야 얼마나 많이 벌겠는가. 그러다 보면 한 해, 두 해... 아이들은 희미해져가는 엄마 얼굴을 떠올리기도 힘들게 되고 애정이나 교육이 결핍된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엄마를 찾아 그 먼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여정이란 것은... 국경에서 몰래 화물열차를 타고 불법이민자를 색출하는 경찰을 피하고 먹을 것을 구해가며 미국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멕시코를 관통하는 그 화물열차는... 강간피해자를 만들고 장애자를 만들고 살인을 저지르는 열차인 것이다. 그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어린 아이들을 폭행하고 강간하고 가진 것 다 빼앗고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마피아나 갱단들... 경찰들도 더 하면 더했지, 마피아와 다를 게 없다. 더구나 열차 지붕에서 하는 여행은 자칫 졸다가 떨어져 둑거나 나뭇가지에 치여 떨어지거나... 숨었다가, 기차가 다시 출발할 때 움직이는 열차에 매달려야 할 때,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인 여행 자체도 위험한 것이다. 물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끼리 우정을 쌓기도 하고 간혹 도움을 주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도처에 둑음이 도사리고 있는 여행이 바로 엔리케의 여행이다. 이주민을 돕는 사람들의 외침이다. “우리는 사람이요. 우리는 사람들을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여행을 왜 하는가.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왜 하는가. 목숨까지도 내놓고 하는 그 여행을 왜 하는가. 몇 번이나 붙잡혀서 폭행을 당하고 되돌려지면서도 그 여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적 끌어안아주던 엄마, 그 엄마를 만나기 위한 것이다. 나이키 신발도 멋진 책가방도 커다란 곰 인형도 이들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몇 년씩이나 보지 못한 엄마를 보러가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하지만 천행으로 다시 만난다 해도 그 결말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번 해체되었던 가정이 다시 합쳐진다고 그 간극이 엄마와 자식이라는 단순한 공식으로 모두 메워질 수 있는가.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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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상의 선택이란...
    readingjun | 2007년 02월 15일
    '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 뒤표지에 나온 광고중 한 문언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논픽션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요즘 꽤 많은 실화들을 접하고 있는데 언제나 실화는 감동적이면서 가슴아프다. 이 책은 죽음을 무릎쓰고 엄마를 찾아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난 온두라스의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이 지나온 길을 따라 가며 저자가 보고 겪고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그 이야기 속엔 불법 체류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연과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까지 그 위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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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 뒤표지에 나온 광고중 한 문언이다. 언젠가부터 이런 논픽션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요즘 꽤 많은 실화들을 접하고 있는데 언제나 실화는 감동적이면서 가슴아프다. 이 책은 죽음을 무릎쓰고 엄마를 찾아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난 온두라스의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이 지나온 길을 따라 가며 저자가 보고 겪고 들은 이야기를 적었다. 그 이야기 속엔 불법 체류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연과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까지 그 위험한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주민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읽는동안 내 나라에서, 내 가족들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란 걸 모른 채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감히 '천국'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몇 해 전 태국에 있는 친구의 언니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도 불법으로 태국에 건너와 일을 찾는 미얀마나 캄보디아인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임금탓에 수퍼마켓에서 계산하는 직원외에 물건을 비닐봉투에 담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아니고 둘 씩이나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뿐아니라 웬만한 한국 가정엔 가정부를 두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가정부가 미얀마나 태국 주변 국가에서 돈 벌러 온 불법체류자였다. 그들이 받는 월급은 우리 돈으로 기껏해야 15만원. 그걸로 고국에 있는 동생 학교보내고 살림에 보태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돈은 겨우 만 원 남짓이다. 물론 이건 태국의 예를 들어서 한 이야기지만 자국보다 더 나은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나라에나 마찬가지로 다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예전에 미국과 일본에 불법으로 건너간 것도 그렇고, 요즘 중국 동포들과 동남아 사람들이 그들 나라보다 좀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 명목으로 한국행을 택해 건너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날에는 나라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세계 어느나라마다 그런 현상이 있었지만 난 이 책을 들춰보기 전까지는 그 현실에 대해  너무나 몰랐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멕시코인들이 미국으로 가기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는 이야길 들었으나 그런 것은 그저 돈을 벌겠다는 어른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엔리케처럼 엄마를그리워하다가 엄마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여정을 따라가지 않았다면 평생을 몰랐을 뻔했다.


     중앙아메리카, 브라질과 멕시코 사이에 끼어 있는 가난한 나라들 온두라스,콰테말라등 라틴계 아메리카인들의 처절한 삶은 그 모든 것이 정치적 부패와 가난함에 기인하다고 본다. 더구나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의 삶은 특히 더 그렇다. 제대로 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이 집을 나가거나 이혼을 당하면, 혼자 아이를 맡은 그들은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그들이 택하는 가장 손쉬운 돈벌이라는 게 미국으로 건너가 불법체류를 하며 돈을 버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겨진 아이들은 졸지에 엄마를 잃어버린 고아나 다름없는 아이가 되는 거다. 차라리 고아였다면 포기를 할텐데 고아가 아닌 고아일 수 밖에 없는 그 아이들의 삶이란 짐작하지 않아도 뻔하다.


     엔리케 역시 이혼한 엄마가 엔리케를 온두라스에 두고 미국으로 돈을 벌러갔다. 엄마 라우데스는 자기가 없어도 가족들이 엔리케와 누나를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나는 엄마들 모두 생각하듯이 딱 2~3년만 돈을 벌어 온두라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라우데스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2~3년이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국하고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삶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음으로 그만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가족과의 약속은 점점 그 신빙성을 잃어갈 뿐이었다. 또 온두라스의 고향에선 그 나름대로 떠나온 집 근처에  엔리케의 아버지가 살고 있고,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살고 있었지만 엄마만큼 엔리케를 돌보지는 못했고 엔리케는 엔리케대로 자신의 모든 불행을 엄마 없는 탓으로만 돌려버렸다. 결국 엄마가 돈 벌러 가고 없는 아이들이 최후에 선택하듯이 엔리케마저도 미국으로 엄마를  찾으러 갈 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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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모험담이리고 하기엔 가슴 아픈 이야기
    escop2001 | 2007년 02월 15일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불법체류니 연수차 왔다가 행방이 묘연하다는 뉴스를 쉽게 접하게 되었지만 그들을 보는 시선은 단 하나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 그래서 당연히 어둡고 이제는 잘 사는 (?) 나라 우리나라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단정지게 된다. 얼마전까지 만에 해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을 찾던 우리의 모습들인데 말이다. 중남미에서 불법이주하는 사람들은 80년대부터 시작했다. 거기다 갈수록 그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한다. 싱글맘들이 낳은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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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불법체류니 연수차 왔다가 행방이 묘연하다는 뉴스를 쉽게 접하게 되었지만 그들을 보는 시선은 단 하나다.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

    그래서 당연히 어둡고 이제는 잘 사는 (?) 나라 우리나라사람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단정지게 된다. 얼마전까지 만에 해도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을 찾던 우리의 모습들인데 말이다.

    중남미에서 불법이주하는 사람들은 80년대부터 시작했다. 거기다 갈수록 그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한다. 싱글맘들이 낳은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 '죽음의 기차'라 불리는 기차를 타고 말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감수하고도 이들은 왜 떠나아 하는지 책에서는 아이를 두고 떠나는 엄마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 엔리케는 17살이다. 그의 나이가 5살되던해 엄마는 미국으로 갔다. 굶주림과 암울한 미래를 더 이상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겨진 아이들에게 희망만을 남겨주지 못했다. 돌아오리라 기대했던 것이 10년이 지나도고 이루어 질 가망이 없어보이기에..
    그들은 기차를 탄다.

    처음 책 표지를 봤을 때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가 그 사진이 그 것이 뿌연 안개속에 한 아이가 등을 돌리고 않아있던 곳이 바로 기차 위라는 걸 알았을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남미에 온두라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곳에서 부터 미국과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멕시코까지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기차를 타고 가는 여정은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한다.
    부패한 경찰, 거리의 갱단, 무장강도등 이들을 노리는 짐승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은 도처에 있고 기차에서 떨어져 죽거나 신체의 일부분이 잘려나가는 어려움도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이들을 도우는 고마운 손길도 적지 않지만..

    결국 엄마를 만나게 되는 엔리케는 그 감격의 눈물은 뭐라 표현이 안된다. 하지만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엄마였건만 그 기쁨도 잠시 떨어져 있던 세월이 그들에게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온다. 나를 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길 바랬건만 술과 마약으로 돈을 쓰는 아들을 보는 엄마의 마음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된다. 과연 누구의 탓으로 돌릴수 없는데도 말이다.

    엔리케느 온두라스에 여자친구과 딸이 있다. 딸 자스민은 또다른 제2의 엔리케인 셈이다. 남겨진 아이였던 그가 남겨진 그의 딸 자스민은 위해 술을 끊고 열심히 일한다. 여자친구 마리아 역시 딸을 두고 미국에 갈 결심을 하면서 이야기 끝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땅에 엔리케의 이야기 못지 않은 사연을 담고 사선을 넘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과 동남아시아나 중국, 조선족등이 있다는 것을 상기 시킨다. 또한무엇보다 그들을 보는 우리의 곱지 않은 시선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 역시 이주민들의 고통을 자국의 값싼 노동자로 이용하는 점등은 무시 한채 오직 손익계산서만 따지는 철처한 미국인의 눈에 바라보는 이야기라는 점은 씁습한 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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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에게는 밥보다는 엄마의 사랑이 더 필요했다
    이환 | 2007년 02월 16일
     엄마를 만나기 위한 목숨을 건 여행 끝에 엔리케는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 11년 만에 만난 모자간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많은 틈이 존재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에 대해 엄마가 사과하길 원한다. 애들에게는 굶더라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을 버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있지만 힘들게 일해서 가족에게 송금하는 등 자신의 희생에 대해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엄마와 아이들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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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를 만나기 위한 목숨을 건 여행 끝에 엔리케는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 11년 만에 만난 모자간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많은 틈이 존재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에 대해 엄마가 사과하길 원한다. 애들에게는 굶더라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을 버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있지만 힘들게 일해서 가족에게 송금하는 등 자신의 희생에 대해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엄마와 아이들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엔리케와 엄마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서로를 미워하게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하는 엔리케의 모습이 독자들에게는 안도의 한 숨을 쉬게 해준다.


    보통 엄마들은 자신의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야 의식주 해결과 자녀에 대한 교육을 시킬 수 있고, 그래야만 자녀들에게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기에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스킨십과 미소 그리고 사랑이다. 해리 하를로의 실험결과에서 보듯이 엄마 잃은 새끼 원숭이는 우유를 주는 철로 만든 인조 엄마보다는 먹을 것을 주지 않더라도 부드럽고 따듯한 헝겊으로 감싼 인조 엄마를 좋아했다. 즉 아기에게는 먹는 것 보다 엄마의 따스한 스킨십이 더욱 필요로 한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엔리케는 122일에 걸쳐 온두라스의 데구시갈파에서  멕시코-미국 국경까지 8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다. 그 거리는 2,574 킬로미터에 달하며 그는 이 과정에서 무수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 몸은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주민들의 모습이 애처로워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난하고 또 불쌍한 그들의 돈과 몸을 빼앗는 짐승 같은 강도, 갱들, 경찰관을 보고는 분노했으며, 불법 이주민들을 돕는 베라크루스 사람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코끝이 찡해왔다.

    2000년 세계은행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멕시코의 1억 명의 인구 중 42.5퍼센트가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며, 시골 마을에서는 다섯 살 난 아이의 30 퍼센트가 잘 먹지를 못해 성장이 느리다고 한다. 기찻길을 따라 허름한 집에서 사는 이 사람들이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바로 이들이 베라크루스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중 20 퍼센트는 미국으로 떠난 자식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불법 이주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는 것이다. 또 열차에서 떨어져 다리나 팔이 잘려나간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다.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에 바쁘다보니,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인 것 같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리라.


    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이 책을 쓰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기간 중 6개월간은 이주민들과 같이 위험한 여정에 올랐으며 각지에서 취재를 했다. 저자는 엔리케가 지나온 여정을 그대로 재연했다. 즉 온두라스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멕시코에서는 화물열차와 히치하이크로 여행을 했다. 아니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었을 것이다. 이 목숨을 건 긴 여정은 그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주자를 없애기 위한 유일한 효과적인 전략은 ‘이민자들의 고국 경제를 후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그들 나라에서 의식주와 자녀 교육에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 와서 3D 업종에 근무하는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을 생각해본다. 그들도 단지 돈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말도 잘 안 통할 뿐만 아니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아가면서 고국으로 보낼 돈을 벌기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도 따스한 시선을 보내주는 성숙함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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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의 가슴 아픈 여정에 동행하며.
    나스카 | 2007년 02월 16일
        해매다 중남미 국가들에 살고 있던 70만 명의 주민들이 미국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온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불법 이주민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혹독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중남미의 국민들은 일자리가 없어 미국을 찾게 되는데, 자식들을 떼어 놓고 일자리를 찾아 머나먼 타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엔리케의 여정」이러한 불법이주민들의 힘겨운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엔리케’는 ‘온두라스’라는 중앙아메리카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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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매다 중남미 국가들에 살고 있던 70만 명의 주민들이 미국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온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불법 이주민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혹독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중남미의 국민들은 일자리가 없어 미국을 찾게 되는데, 자식들을 떼어 놓고 일자리를 찾아 머나먼 타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엔리케의 여정」이러한 불법이주민들의 힘겨운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엔리케’는 ‘온두라스’라는 중앙아메리카 작은 나라에 살고 있는 소년이다. ‘언리케’가 다섯 살 때, 엄마 ‘라우데스’는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오게 되고, ‘엔리케’는 엄마 없는 11년을 견디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미국에서 간간히 붙여주는 돈으로 학교도 다니고,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엄마’라는 존재의 따뜻함이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한 ‘엔리케’는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기차여행을 떠나게 된다. 화차에 몸을 실어 엄마의 전화 번호 하나만 달랑 들고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엔리케 외에도 많은 불법이주민들이 기차의 지붕이나 짐칸에 몰래 숨어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으로 떠나고 있었다. 그 길은 너무나 위험해서 사람들은 불안정한 기차를, ‘죽음의 기차’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멕시코 최남단 주 치아파스는 짐승 같은 깡패들과 경찰들의 소굴이었다. 이 곳에서 몰매를 맞고 목숨만 간신히 건진 ‘엔리케’는 처음으로 이 여정의 위험함을 몸소 깨닫게 된다. 깡패도 무섭고, 이민국의 단손도 무섭고, 각 지역 주민들의 냉정함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가 바로, ‘경찰’이다.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이 갈취를 하고, 강간을 하고, 모든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참으로 끔찍한 그 곳의 온갖 고난을 견디면서 ‘엔리케’는 엄마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죽음의 기차에 올라탄 수많은 불법 이주민들의 생사를 건 험난한 여정이 그저 믿을 수 없을 뿐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경찰들의 횡포에도 쉬쉬하며 눈 감아버리는 당국의 태도는 단연 최고의 몰상식함이었다. 물론, 짐승보다 못한 나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천사의 마음처럼 따뜻한 주민들과 신부님도 있었다. 들은 몇 일째 굶주리고 있는 불법 이주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며,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디며, 122일 동안 일곱 번의 헛된 시도 끝에 19,310킬로미터를 달려온 엔리케. 그토록 바라던 엄마와의 해후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뒷부분을 유추해보면서 책을 읽었지만, 바라는 만큼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포근한 감동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 작품이 픽션이었다면, 가장 멋진 마무리로 감동적인 엔딩을 장식할 수가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논픽션’이므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해야하기 때문이다.


      엔리케의 가슴 아픈 여정에 동참하는 동안 머릿속이 참 복잡해졌다. 불법 이주민에 대한 미국의 너그러운 태도도 문제고, 불법 이주민을 강력하게 제안하여 타도하는 태도 역시 문제이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가난에 치여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의 최후의 선택을 막을 방법은, ‘라우데스’의 말처럼, 오로지 ‘넉넉한 일자리’ 뿐이다. 일자리가 풍부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많다면, 엔리케처럼 엄마를 찾아 위험천만한 여행을 자초하는 아이들은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이 문제가 결코 말처럼 이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의 부채 탕감이나, 일자리 창출이 그토록 간단하게 해결 될 문제라면 이미 지구상에는 모든 나라들이 잘 살고 부자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대로 굶어 죽느냐, 다른 나라로 떠나 돈을 버느냐.’ 이런 좁은 선택의 기로에서, 지금도 수많은 엄마, 아빠가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나고 있다. 과연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는 그 누구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도, 축구공도, 나이키 운동화도, 곰 인형도 아닌, 바로 ‘엄마, 아빠’의 따뜻한 손길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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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찾아 삼만리,는 동화이야기가 아니야
    노부타 | 2007년 02월 18일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한편이 떠올랐다. 헤어지고 소식이 끊긴 엄마를 찾아 머나먼 길을 걸어 다른 나라까지 가서 결국 엄마를 찾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것이 동화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마르코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내게는 더할나위없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내게는 이주노동자의 서글픔이 담긴 이야기가 되었다. 엔리케의 여정은 어찌보면 엄마를 찾아 떠나는 동화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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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 한편이 떠올랐다. 헤어지고 소식이 끊긴 엄마를 찾아 머나먼 길을 걸어 다른 나라까지 가서 결국 엄마를 찾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것이 동화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를 찾아 헤매는 마르코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내게는 더할나위없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내게는 이주노동자의 서글픔이 담긴 이야기가 되었다.


    엔리케의 여정은 어찌보면 엄마를 찾아 떠나는 동화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빈부의 차가 심해져가고 있고, 부의 집중이 세계의 몇 나라에 더 치중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엔리케의 이야기가 더이상 동화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엔리케의 여정은 남아메리카의 온두라스에서 더이상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기 벅찬 엄마 라우데스가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미국으로 밀입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린 자신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엄마가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위험한 여행을 시작하였고,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 것이다.
    엄마의 사랑과 가족의 더 나은 미래와 자신의 삶을 건 여정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길이다. 가진것이 없는 그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는 것마저 빼앗는 강도가 있고, 경찰이 있고, 밀입국 감시단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이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감동어린 이야기도 있다. 굶주리고 지친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와 입을 옷을 주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면 엔리케의 여정은 엄마를 만나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너무 험하고 고통스러운, 외면해버리고 싶은 현실에 책을 집어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엔리케의 이야기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내가 아는 애도 부모님이 일본으로 떠나 불법취업자로 생활하는 동안 형제들끼리만 생활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은 긴 세월 가족을 위해 힘겨운 노동을 하며 버티셨지만 결국 그것이 그들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도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하지도 못했고, 부자가 될수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을 건 여정에 걸음을 떼어놓은 사람들이 저 멀리 남아메리카에만 있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자.
    나는 왜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고, 지금 이순간에도 덜컹이는 기차에 목숨걸고 올라타려하는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지, 가족의 희망을 품고 부자나라에 가서 뼈골이 빠지는 노동을 하다 한줌의 재가 되어버리는 이들이 있어야 하는지...모르겠다.
    세상은 이기적이라는 말로는 모자라다. 이 세상은 너무 슬프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말을 감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쟁 영웅의 귀향을 노래한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행복한 재회로 끝났다. 중서부 초원지대와 오클라호마 농민들의 캘리포니아 이주를 그린 고전소설 '분노의 포도'는 죽음과 희미한 새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끝났다.
    그러나 엔리케의 긴 모험은 소설이 아니다. 따라서 결말이 더 복잡하면서도 덜 드라마틱하다. 오히려 오 헨리의 소설처럼 결말이 뒤틀려있다"(235)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목숨을 건 여정에서 결국 엄마와 만나게 되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했습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현실은 비참했고, 불법 밀입국자의 노동은 고되었고, 부자가 될 만큼 돈을 많이 모을수도 없고, 고향에 있는 가족이 행복해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아이를 놔두고 부모가 '돈'을 벌기위해 목숨을 건 여행을 해야하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 나의 이야기가 너무 비관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리케는 엄마를 만났고, 엄마의 사랑을 느꼈다..라고 이야기를 끝내버리면 나의 감상은 끝나는 것인가?
    한때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높였던 공중파TV  오락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힘겹다.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줄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이런 우리의 마음이 모아져 세계의 모든이가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아니 세상의 모두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이기적인 삶을 버린다면......
    나의 이런 이야기가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침, 우리 고유의 명절 새 해가 되었으니 소원을 빌어본다. 세상의 모든 이가 사랑을 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더 이상 엔리케와 같은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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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한번 만나고 싶다'와 그 이후
    여유로움 | 2007년 02월 18일
    어떤 일에 대해 알고 싶을 때에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일을 먼저 겪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과 그 일을 직접 하는 것. 의 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후자를 택했다.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에서 과테말라를 지나고 멕시코를 종단하여 미국 국경과 인접한 누에보라레도까지의 2574킬로미터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실상을 정확하게 나타냈다. 매년 4만 8천명의 아이들이 혼자서 불법으로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한다. 이들보다 먼저 떠나서 미국에서 일하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잠깐의 이별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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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일에 대해 알고 싶을 때에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일을 먼저 겪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과 그 일을 직접 하는 것. <엔리케의 여정>의 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후자를 택했다. 온두라스의 테구시갈파에서 과테말라를 지나고 멕시코를 종단하여 미국 국경과 인접한 누에보라레도까지의 2574킬로미터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실상을 정확하게 나타냈다.


    매년 4만 8천명의 아이들이 혼자서 불법으로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한다. 이들보다 먼저 떠나서 미국에서 일하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잠깐의 이별이 길어지는 경우, 다른 아이에 비한 물질적 풍요보다도 정신적인 충족을 위해 이들은 참으로 힘들고 위험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 길에는 강도와 강간, 폭력, 부상과 방치, 밀입국 조직이 지천에 깔려 있고 부모를 반드시 만나리라는 보장도 확실치 않다. 그리고 마약이나 본드에 중독될 위험, 부상을 입어서 그 여정에서 낙오될 위험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아이와 어른들은, 7살밖에 안 된 아이들까지도 사력을 다해 미국으로 가는 열차의 지붕에 올라탄다.

    악명높은 치아파스를 지나고 이민귀화국을 거치는 어려움을 보며 나는 갑자기 인터넷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되었던 ‘에스탄시아’라는 만화를 떠올렸다. 이 만화에서도 단일 철로를 타고 가는 열차에서 각 검문소마다 특정 임무 또는 질병의 관문이 주어지고, 이 관문을 통과하는 사람만이 최후로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만화의 내용만큼이나 현실의 엔리케의 여정은 참으로 고단하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을 겪어내고 엔리케는 엄마를 만났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어느 정도는 해피 엔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어렵게 엄마를 만났어도 엔리케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아이와 엄마가 만나면 또다른 국면이 시작된다. 자랄 때의 외로움과 여정의 어려움을 보상받고자 하는 아이와,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개인적인 삶을 희생한 것을 몰라주는 아이의 무정함에 서운한 엄마는 사사건건 충돌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엔리케는 다시 자신의 아이에게서 엄마를 뺏음으로써 제2의 엔리케를 만들게 된다.

    개발이 뒤떨어진 나라들의 경우 아무리 일을 해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특히 가족이 해체되었을 경우 더하다. 따라서 엔리케처럼 어렸을 때부터 노동 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나는 엔리케의 시선으로, 엄마인 라우데스의 시선으로 엔리케의 여정을 지켜보았다. 이 쪽도 저 쪽도 다 공감이 되는 입장이면서,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그들의 갈등과 어려움에 마음이 답답하다. 이 책으로 인해 엔리케와 같은 불법이주민들이 더 쉽게 부모를 만날 수 있게 될까?

    밀려드는 이민자들과 그들이 낳는 아이들 덕분에 평균 연령이 낮아지고 고령화 사회로의 전환이 늦어지는 혜택을 입고 있는 미국이지만, 이들처럼 가진 것 없는 극빈자들은 사실 환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자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른 행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엔리케들의 생활이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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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의 사투 122일
    emhy311 | 2007년 02월 19일
    우리 곁에는 엔리케의 어머니 라우데스 같은 비슷한 삶처럼, 그들의 꿈을 이루고자 먼 타국으로 찾아와서 모든 것을 희생하며, 돈을 벌려고 밤낮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외국인이 있다. 동남아 여러 나라나 중국에서 건너온 그들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고생하는 그들의 속사정이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것처럼, 아메리칸의 꿈을 그리며 욕망을 그리던 시절을 경험한 우리가,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모를 리 없다. 불법체류자라는 사회적으로 떳떳지 못한 신분으로, 돈을 벌어 잘 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국경을 넘어 갖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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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곁에는 엔리케의 어머니 라우데스 같은 비슷한 삶처럼, 그들의 꿈을 이루고자 먼 타국으로 찾아와서 모든 것을 희생하며, 돈을 벌려고 밤낮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외국인이 있다. 동남아 여러 나라나 중국에서 건너온 그들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고생하는 그들의 속사정이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것처럼, 아메리칸의 꿈을 그리며 욕망을 그리던 시절을 경험한 우리가,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모를 리 없다.


    불법체류자라는 사회적으로 떳떳지 못한 신분으로, 돈을 벌어 잘 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국경을 넘어 갖은 고생을 참는 것처럼,  사람 살아가는 길이 험난한 삶에서 그나마 두고온 가족과 만날 날을 그리며 밑바닥 생활을 견뎌내는 어려움이 짐작이 되고, 그런 부모를 찾아 이역만리 국경을 넘는 무모한 여정의 과정이 사뭇 충격적으로 그려졌다.


    중남미 온두라스에서 머나먼 미국 땅까지 숱한 고생을 하며  엄마를 그리며 먼 길을 나서는 어린 엔리케의 험난한 여정을,  미국인 저자가 꼼꼼하게 되짚어가며 사실적으로 펼쳐낸 이야기로서, 소설보다 감동적인 내용으로 풀리쳐 상에 빛나는 기사에서 출발한 르포 형식으로 고발의 성격도 있는 글이다.


    이런 글이 우리에게도 인상 깊은 것은 엔리케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실화이며, 우리에게도 비슷한 상항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엔리케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며 자유를 찾아 헤매는 소년들이나, 탈북하여 두고온 가족을 그리며 남몰래 눈물짖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명절이 되면 먼 길을 마다 않고 가족과 친지를 찾는 우리네 심정으로 짐작해봐도 가족을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엄마를 만나기까지는 너무나도 멀고, 그 여정의 고생이 말도 못할 정도로 험난해서 지옥 같은 여정을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면서, 돈이 없어 화물 열차의 지붕을 타거나 걷기를 밥 먹듯 하며, 사투의 122일 만에 만나는 감동적인 실화가 두려움과 배고품이 상상이 되는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트럭이 줄지어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면, 수십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운다. 트럭이 쓰레기를 쏟아놓기가 무섭게 플라스틱, 나무, 양철 같은 것들을 찾기 위해 쓰레기 산으로 기어오른다. 피와 태반으로 가득 찬 병원 쓰레기가 그들의 발밑에서 철벅 철벅 소리를 내고, 한  아이가 쓰레기를 뒤진 시커먼 손으로 썩은 빵 조각을 집어 먹는다. 아이들은 냄새 나는 쓰레기 소굴을 돌아다니고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 속에서는 새까만 독수리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쪼아댄다.
           - 본문 51쪽에서


    이런 참혹한 현실의 아픔과 슬픔과 고통이 어우러진 악몽 같은 이야기가, 자녀를 먼 고국의 땅에 두고 불법으로 돈을 벌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라우데스 같은 사례가 수없이 많이 있기에 무척 안타까우며, 이렇게 엔리케처럼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성공한 경우지만 그렇지 못한 수많은 제2의 엔리케가 이어질 수 있는 현실에서, 잘 못하면 한 순간에 불나방처럼 사라질 운명에 처할 뻔한 삶을 떠올리면 아찔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런 뜻에서 주인공 엔리케의 여정이야말로 어린 영웅 같은 이야기이다.


    온갖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남의 나라에서 힘들게 일을 해서 돈 버는 길을 선택 해야 하는지의 이유와, 이주민으로서 겪어내는 삶의 애환이 절절이 녹아있는 이 글을 통해서 이해와 동정을 하게 되고, 진실하게 그려진 내용을 통하여 엔리케의 엄마를 찾는 순수한 열정이 죽음의 기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주어 국경을 넘는 모험의 과정을 담담히 펼쳐내어, 불법 이주민과 그들의 가족의 삶에 관심 두게 하는 글이고, 함께 실린 사진의 느낌이 더욱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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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널리즘은 살아있다.
    stella09 | 2007년 02월 19일
    언젠가...이 책에 실린 사진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본 적이 있다. 플리처상 보도사진 부분에서 수상했다는 짧은 제목과 함께. 사진엔 문외한이라 어떤 필름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은 강렬했고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보면, 겉표지의 사진은 제법 서정적이고 낭만적여 보이기도 하다. 물론 지붕위에 앉았으니 불안은 하겠지. 하지만 소년의 돌아앉은 모습에 묘한 황량한 여유로움이 베어있는 듯하다. 과연 이럴 수 있을까? 그래도 소년의 마음은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몰래 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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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이 책에 실린 사진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본 적이 있다. 플리처상 보도사진 부분에서 수상했다는 짧은 제목과 함께. 사진엔 문외한이라 어떤 필름을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은 강렬했고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보면, 겉표지의 사진은 제법 서정적이고 낭만적여 보이기도 하다. 물론 지붕위에 앉았으니 불안은 하겠지. 하지만 소년의 돌아앉은 모습에 묘한 황량한 여유로움이 베어있는 듯하다. 과연 이럴 수 있을까? 그래도 소년의 마음은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몰래 무임승차 했으니 불안할 것이고, 어서 이 기차가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데려다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겠지. 분명 무임승차가 나쁜 것이긴 하지만 여행 하면서 무임승차와 서리의 묘미는 여행의 짜릿한 기쁨을 배가시켜 주기도 하지않던가.  더구나 제목 끝말을 '여정'으로 설정했으니 대뜸 '엄마 찾아 삼만리'를 연상하게도 만든다. 또한 '엔리케'란 리틴스러운 이미지가 주는 느낌도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나머지 사진이나 책의 내용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비참하다.  살아 보겠다고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아이들과 그 위를 나르는 검은 독수리의 이미지란 스산하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하다. 또한 기차의 지붕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붙들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생에 대한 사투는 참으로 모질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운이 없어 거기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지가 절단 나거나 죽기도 한단다.  그런데 이들은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어린 나이에 그런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는 것일까? 그것은 남부럽지 않게 자식을 키워 보고자 불법이민자로 미국땅에 발을 디딘 부모를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그러한 도전을 서슴치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죽느니 차라리 어머니를 찾으러 가는 길에 죽겠다'는 필사의 각오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정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란 죽음 조차도 갈라놓지 못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나는 고백 하건데, 그런류의 보도 사진이나 뉴스 보도물 보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보면 괴롭다.내가 살고 있는 지구 어느 한쪽에서 그런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타깝다. 그런데 그것 이상으로 뭘 해 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나는 저런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란 말로 본 느낌을 대변한다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아무튼 그런 보도물을 접한다는 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나를 들여다 보면, '이 생각이 과연 전부 다인가?'가에 진실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해 버리고 만다. 눈이 보배라고 사람은 좀 더 나은 것, 화려한 것,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스러운 것에 눈을 두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도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매스컴은 연일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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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의 여행이 가슴아프다.
    바다짱 | 2007년 02월 19일
    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다른   이 책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세상 삶의 어두운 한 면을 아주 생생하게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놓은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세상이 또 있단 말인가? 21세기 최첨단의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 책은 온두라스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엔리케라는 한 소년이 미국으로 이주한 엄마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122일간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자국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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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다른


     


    이 책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세상 삶의 어두운 한 면을 아주 생생하게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놓은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세상이 또 있단 말인가?


    21세기 최첨단의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 책은 온두라스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엔리케라는 한 소년이 미국으로 이주한 엄마를 찾아 떠나는  험난한 122일간의 이야기이다. 가난한 자국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미국이라는 나라로 몰래 이주해서


    그곳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보내주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중남미의 나라가 이렇게 까지 가난하고 살기 힘든나라인줄은 몰랐다. 아니 나의 관심 밖의 영역이였던 것같다.


     


    또한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엔리케의 긴 여행에서 죽음도 불사한 그의 여정이 무모하게 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자국의 국민들이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데도 미국으로의 이주여행을 가만히 두고 보고 있는 온두라스라는 나라나, 미국의 국경지대를 더 많은 인력을 투여해 이주민의 이주을 제압하고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이주민이 미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통계를 통해 곁으로는 이주을 강화하는 듯 하면서도 뒤로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미국의 심뽀도 얄밉다.


     


    물론 양국에 경제적으로 이주민들이 큰 이익을 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온두라스는 이주민들이 미국에서 보내준 돈이 경제의 15%에 달한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미국은 그들을 통해 저렴한 임금으로 3D직종에 종사하게 하여 미국국민들이 저렴하게 소비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기초 조직인 가족이 붕괴되어가면서부터 또한 죽을줄도 모르는 여행아닌 여행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안정된 생활일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니 한없이 슬퍼졌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진 이 환경이 얼마나 행복한 환경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저자의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실화를 통해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가족의 고통과 사랑, 그리고 소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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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옥을 보여주다!
    정군 | 2007년 02월 19일
    소냐 나자리오의 <엔리케의 여정>의 표지를 본 순간, ‘엄마 찾아 삼만리’를 떠올렸다. 온두라스의 소년이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엄마를 찾기 위해 장장 122일 동안 모험을 한다는 설명에 그리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용은 생각지 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지옥’에 관한 것이었다. 브릭스라 하여 브라질이 21세기에 주목받는 국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은 가난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런 탓에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들어간다.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도 그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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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냐 나자리오의 <엔리케의 여정>의 표지를 본 순간, ‘엄마 찾아 삼만리’를 떠올렸다. 온두라스의 소년이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엄마를 찾기 위해 장장 122일 동안 모험을 한다는 설명에 그리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용은 생각지 했던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지옥’에 관한 것이었다.


    브릭스라 하여 브라질이 21세기에 주목받는 국가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은 가난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실정이다. 그런 탓에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들어간다.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도 그랬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자식을 떼어놓고 미국으로 간 것이다. 금방 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떠나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엄마들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한다.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번다. 가난한 나라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서다. 그러나 집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 엔리케처럼 남겨진 자식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엄마를 그리워한다. 가난해도 좋으니까 엄마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결국 엔리케는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엄마를 찾아 떠난다.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은 여기서부터 엔리케가 엄마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애달프고 이내 숙연해지게 된다. 그리움에 허덕이는 엔리케를 보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은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이주민들을 위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엔리케가 엄마를 찾아가는 거리는 5만 리다. 그런데 이 5만 리는 쉽게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가. <엔리케의 여정>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가, 약탈과 폭행, 그리고 강간이다. 돈이 없는 이주민들은 불법 루트를 감행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경찰에 잡히면 곧바로 나라로 돌려보내진다. 그런 만큼 그들은 경찰들을 피해 다녀야 한다.


    그런데 그 길에는 비극적이게도, 그것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 약탈. 그들이 신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모조리 빼앗아간다. 옷과 신발까지 빼어가는 것은 예사다. 폭행. 이 과정에서 폭행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이주민들은 인간이 아니다. 먹잇감에 불과하다. 때리는 행위는 대수롭지 않게 자행된다. 법의 심판에서 비껴나는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강간은 어떤가. <엔리케의 여정>에서 여성들이 어디론가 끌려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 역시 법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그 지역의 공권력이 나서서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극적이게도, 공권력은 부패해있다. 그들 또한 강도들과 다르지 않다. 때리고, 빼앗는 그들, 그들은 거리의 갱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었다. 먹을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달려들어 빼앗아가는 그들, 먹을 것이 없다면 화가 나서 죽이려고 달려드는 그들은 짐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인권을 위해 전쟁까지 불사한다는 미국은 뭘 하고 있던 것일까. 바로 코밑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은 그들의 존재가 필요치 않다. 그러니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서쪽 국경지대에 국경순찰대를 증강하고, 122킬로미터에 이르는 벽을 설치했다. 힘들게 이곳까지 왔더라도, 이곳에서 개죽음 당하는 일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은 이 모든 것들을 ‘폭로’하고 있다. 부패한 경찰, 이주민을 약탈하는 강도들, 그리고 이 상황을 외면하는 나라들까지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엄마 찾아 삼만리’를 떠올리며 감동의 눈물만 흘릴 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열쇠를 갖고 있는 미국이 중남미에서 쏟아지는 이민자들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또한 중남미의 가난한 국가들에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한 그곳이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어차피 그곳에 있어봤자 굵어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들은 목숨을 건 도박을 계속 할 테니까 말이다.


    지옥 같은 곳이라고 표현해도 될 것이다.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엔리케가 지나간 그곳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언제까지 그곳을 놔둘 것인가. <엔리케의 여정>의 끝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그 질문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곳이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그곳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과 강간과 약탈, 폭력 또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엄마 찾아 삼만리'를 떠올리며 보기에 <엔리케의 여정>은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 이 책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담아냈기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지옥을 담아냈지만, 이 책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퍼져가기를 희망한다. 이 책의 목소리라면,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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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자유 | 2007년 02월 19일
      비행기를 탄다면 온두라스에서 미국까지 네다섯시간 정도면 족히 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엔리케에게는 무려 122일이 걸렸고 심각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과연 지금 현재 벌어지는 실화인지 내내 궁금했고, 자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다섯 살의 소년 엔리케가 경험하는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밀입국의 여정. 그 길은 '험난한' 정도의 수식어로는 부족한, 너무나도 끔찍하고 놀랍고 비참한 여정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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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탄다면 온두라스에서 미국까지 네다섯시간 정도면 족히 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엔리케에게는 무려 122일이 걸렸고 심각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과연 지금 현재 벌어지는 실화인지 내내 궁금했고, 자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다섯 살의 소년 엔리케가 경험하는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밀입국의 여정. 그 길은 '험난한' 정도의 수식어로는 부족한, 너무나도 끔찍하고 놀랍고 비참한 여정이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 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에서 부양할 아이들을 가진 싱글맘의 선택은 하나다.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열심히 일하여 내 아이를 잘 먹이고 학교를 보내어 번듯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하루종일 일해도 아이들을 한끼조차 먹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젊은 엄마들은 단신으로 미국에 들어간다. 잠깐만, 몇년만, 오년만...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단행한 생이별은 십년을 훌쩍 넘기게 되고, 엄마와 아이들의 만남은 점점 멀고 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만리타국에서 엄마가 보내오는 돈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학교를 그만두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 그러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결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많은 소년들은 엄마를 찾아 떠나고, 멕시코 행 화물열차에 몰래 올라타 미국으로, 미국으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목숨을 버리는 일은 부지기수. 또한 '이주민' (멕시코 인들은 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에 대한 냉대와 폭행, 절도, 강간 그리고 살해 위협에 맞닥뜨리고 되고, 불행히도 희생자는 속출한다.  

      미국으로 가는 길, 엔리케는 수없이 잡혀 왔고, 그 때마다 다시 시도했으며, 결국 강을 건너 엄마를 만난다. 그에게는 단지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엄마와 아들. 이제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충만하고, 함께 힘을 모아 남은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는 큰 돈을 마련할 수 있는 황금빛 미래가 과연 펼쳐지게 될까? 

      엔리케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를 만난 후에도 계속되는 엔리케의 방황과 기회의 땅 미국에서 엄마와 똑같이 힘겨운 삶을 살게 되는 그의 하루하루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그의 여정을 발견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엔리케가 남기고 온 여자 친구 마리아와 딸 자스민의 삶은 반복되는 운명의 굴레를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준다. 온두라스에 남았던 마리아는 자스민을 인간답게 키우기 위해 미국 행을 결심하고, 엔리케가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외로웠던 어린 시절은 자신의 딸에게 다시 대물림되는 것이다. 제 2의 엔리케는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이 또한 엔리케의 여정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에게 데이트를 청하는 백인 남자에 응했더라면 자신과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엔리케 엄마의 한탄에 왜 그리도 공감이 되던지. 엔리케도 본국에 남겨둔 아내와 자식이 없었다면 좀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상황을 가정해 보더라도 그들에게는 바늘 구멍만한 기회가 있을 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찌 해볼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너무나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험한 여정에서 귀하게 만났던 따뜻한 손길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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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리 픽션이었다면....
    구르믈버서난달처럼 | 2007년 02월 20일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책의 표지에 나오는 사진. '퓰리처 상'을 수상하고, '유니세프 올해의 사진'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이 사진은 얼마전까지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이었다.아무 생각없이 처음 봤을때 느낌이 좋아서 배경화면으로 지정했고, 나중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평원을 달리고 있는 열차. 그리고 그 지붕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 첫 느낌은 '평온함'과 '아늑함' 정도였다. 어딘가로 떠나가는 자의 설레임도...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표지를 보았을때야 비로소 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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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한다.
    책의 표지에 나오는 사진.
    '퓰리처 상'을 수상하고, '유니세프 올해의 사진'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이 사진은 얼마전까지 내 컴퓨터의 바탕화면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처음 봤을때 느낌이 좋아서 배경화면으로 지정했고, 나중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평원을 달리고 있는 열차. 그리고 그 지붕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 첫 느낌은 '평온함'과 '아늑함' 정도였다. 어딘가로 떠나가는 자의 설레임도...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표지를 보았을때야 비로소 이 사진에 담긴 의미와 사연을 알고 혼자 얼굴을 붉혔다. 나의 무지함과 무심함에.....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5만 리의 위험한 길을 떠난 온두라스 한 소년의 122일의 생생한 모험을 기록한 전 세계 화제작!"
    책의 소개글 중에 하나이다.
    책과의 첫대면이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 죽음을 담보로 펼치는 여정에 대해, 떠난 자와 남겨진 자들의 모습들을 하나 하나 알아갈수록 얼굴은 화끈거리고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이 글과 사진에 나온 모습이 몇백년, 몇십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실제로 벌이지고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더더욱....


    이야기는 이름만 들어서는 지도상에서 찾기도 힘든 '온두라스'라는 중남미의 나라에서 시작한다. 가족의 부양과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밀입국한 엄마.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 엄마를 10년 넘게 기다리다 지쳐 결국은 사지로 뛰어드는 아이 엔리케. 몇번의 죽음고비를 넘겨가면서 남은 것은 상처밖에 없지만 그래도 엔리케는 그 길을 여덟번이나 다시 되짚어간다. 단지 배고프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따뜻했던 엄마의 품이, 이제는 기억 조차 희미한 엄마의 사랑이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서 지옥보다 더한 그 길을 다시 가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중남미에서 온 불법체류 아동들이 17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엄마나 아빠를 찾아 미국으로 가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을 당해야 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답답해져온다.
    막상 사지를 뚫고 들어가 자신의 부모의 품에 안긴다고 해서 모든게 끝나는게 아니라고 한다. 서로 떨어져 있었던 그 긴시간의 간극을 메우기에는 넘어야 할 많은 산들이 있다. 떠나온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서로의 모습은 헤어질 당시의 모습 그대로이기에. 그 긴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기에 생긴 서로간의 오해들.


    이 모든게 누군가의 머리속에서 이루어진 창작이 아닌 '픽션'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 모든게 안타깝고 슬프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지만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더더욱.....


    -다른분들도 많이 지적하셨지만....
    이 책은 반드시 교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은 둘째치고라도 중간 중간 보이는 오타와 오역들은 다른 의미에서 불편을 주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한 소년의 122일 생생한 기록!' - 책 표지부터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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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를 통해 넘치는 나의 행복을 비로소 깨닫다
    재윤맘 | 2007년 02월 20일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족과 함께 큰 걱정없이 살고 있는 현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하면 무척이나 이기적인 생각일까...... L.A. 타임즈지에서 프로젝트 리포터로 빈곤, 마약, 이민 등의 사회문제에 대한 기사를 20년 이상 쓰고있다는 작가가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청소해 주러 오는 가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12년 동안 헤어진 아이들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시에 어린 아이들을 고국에 남겨두고 머나먼 나라에서 불법이민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의문을 가진다. 나 역시도 10살 딸아이를 키우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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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족과 함께 큰 걱정없이 살고 있는 현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하면 무척이나 이기적인 생각일까......


    L.A. 타임즈지에서 프로젝트 리포터로 빈곤, 마약, 이민 등의 사회문제에 대한 기사를 20년 이상 쓰고있다는 작가가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청소해 주러 오는 가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12년 동안 헤어진 아이들과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시에 어린 아이들을 고국에 남겨두고 머나먼 나라에서 불법이민자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의문을 가진다.


    나 역시도 10살 딸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라고 알고 있는데, 단지 생존을 위해 3,000킬로미터가 넘는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절실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 역시 모성이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이 택한 최상의 선택이 자식들과의 생이별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이민 인구의 급증을 겪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법적논쟁으로까지 확대되는 그들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들여다 보고자 열일곱 살 소년 '엔리케'를 따라나선 실화이다.


    엔리케가 다섯 살 무렵에 일곱 살 누나 벨키와 함께 온두라스에 남겨두고 암울한 미래를 피해 구원의 외침이 들리는 미국으로 떠난 엄마 라우데스. 불법 이민자로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온두라스에 아이들에게 보낼 돈을 벌기위해 힘겨운 생활을 하루하루 버텨낸다. 언젠가 아이들과의 만남을 위해......


    온두라스의 엔리케는 이혼한 아빠와 할머니, 이모, 외삼촌에게 차례로 맡겨지지만 엄마가 없는 탓에 가슴속 깊은 곳에는 채우지 못하는 공허함이 하루하루 자라난다.


    아이들과의 기약없는 이별을 택한 라우데스의 기대와는 달리 심신이 피폐해져 가는 엔리케는 결국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의 힘겨운 여정을 떠난다.


    한순간의 안전조차도 보장되지 않은 온두라스에서 미국까지 19,310 킬로미터를 달려 122일 동안 일곱 번의 시도 끝에 오로지 엄마를 만나기 위해 택한 여정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없는 끔찍한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가슴아픈 현실이다.


    엔리케또는 라우데스와 같은 이유로 미국을 향하는 그들 앞에 놓인 위험천만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여행길. 거기에는 떨어지거나 바퀴에 깔리거나 강도들에게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화물열차에 의지한 채 며칠을 굶기조차하고, 노상강도들에게 폭행 또는 강간을 당하기도 하고, 경찰들에게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이민자들의 모습이 처참하기까지 하다.


    결국, 엔리케는 기나긴 고생끝에 엄마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목숨을 건 오랜 여행끝에 만남 이후에 삶도 그리 편안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실존인물인 엔리케가 사랑하는 마리아와 딸 자스민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나의 지구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어린 아이가 오로지 엄마를 만나기 위해 죽음까지 무릅쓰고 불을 보듯 뻔한 위험속으로 달려간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나의 아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 이 지구상 어디에선가는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게 해 준 엔리케의 이야기는 초등생 딸아이의 논술이나 영어를 온통 걱정하며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내가 가족과 함께 하는 평안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담보로 할만큼 간절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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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아픈 이야기
    푸른샘 | 2007년 02월 20일
    온두라스 소년 ,17세 엔리케엄마를 찾아 화물기차 지붕위에 올라타고, 팔,다리가 잘려나갈지도 , 아니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며  위험한 길을 떠나야만 했던 엔리케 나이에 난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죽음을 담보로 멀고도 험한길을 마다않는 그들.막연히 tv에서 보는 부유함을 동경하며 꿈꾸는 그곳 신세계에서큰 돈을 만질수 있고 벌수 있다는 꿈을 가지며 떠나는 곳 미국.전화번호 하나에  의지하고엄마를 찾아 무작정 죽음을&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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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두라스 소년 ,17세 엔리케

    엄마를 찾아 화물기차 지붕위에 올라타고, 

    팔,다리가 잘려나갈지도 , 아니 죽을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며  위험한 길을 떠나야만 했던 엔리케 나이에 난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죽음을 담보로 멀고도 험한길을 마다않는 그들.

    막연히 tv에서 보는 부유함을 동경하며 꿈꾸는 그곳 신세계에서
    큰 돈을 만질수 있고 벌수 있다는 꿈을 가지며 떠나는 곳 미국.

    전화번호 하나에  의지하고
    엄마를 찾아 무작정 죽음을  무릅쓰고 화물열차 지붕위에서 나뭇가지에 부딛혀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죽기도 하지만

    엔리케는 이곳에서 "어떤사람도 믿지말고, 절대 혼자서 다니지 마라"와 같은 교훈을 얻는다.

    결코 우리들과 먼 이야기는 아닌듯 싶다.
    우리 또한 그랬고,
    코리아드림을 꿈꾸며 지금도 수없이 도전하는 많은 아시언들이 있기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 존재하는 여정.

    어떤삶을 살아왔고, 어떤 꿈을 간직한채 길을 떠나는지는 모르지만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의 친구들이기에 그들은 최우선적으로 보호 받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서평은 알라딘,교보(jmlee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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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의 머나먼 여정,,
    jun4098 | 2007년 02월 20일
    끝이 해피앤딩이다아니 드이어 엔리케가 엄마를 만나는 순간 마음한구석에서 눈물이 흘렀다하지만 둘이 만난다고 행복해질까?라는 의문은 현실로 나타났다너무 긴세월을 홀로 보냈던 엔리케와 혼자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엄마가 만나서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엄마에게 애정을 받고 싶었던 엔리케가 드는 그두마음에서 아주 갈팡질팡했을것이다그 마음을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알 수가 있을것같다왜 이런 아픔은 계속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얼마전에 텔레비전에서 탈북해서 영사관에 갔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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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해피앤딩이다
    아니 드이어 엔리케가 엄마를 만나는 순간 마음한구석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둘이 만난다고 행복해질까?
    라는 의문은 현실로 나타났다
    너무 긴세월을 홀로 보냈던 엔리케와 혼자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엄마가 만나서
    자라온 환경도 다르고
    엄마에게 애정을 받고 싶었던 엔리케가 드는 그두마음에서 아주 갈팡질팡했을것이다
    그 마음을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알 수가 있을것같다
    왜 이런 아픔은 계속 일어나고 있는지..


    이야기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얼마전에 텔레비전에서 탈북해서 영사관에 갔다가 다시 민박집에 갔다가 그곳에서 잡혀서 북으로 북송되엇다는 말과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뉴스를 한참 본적이 있다
    아마 그곳에서도 이런일이 일어나고 있는것은 아닌지
    그리고 조선족이 우리나라로 빚을 지고 돈을 벌러 들어왓다가
    돈은 벌지도 못하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못하고 이민국에 쫒기는 신세가 되기도 하는것을 텔레비전을 통해서 많이 듣게 되고 보게 된다
    참 그런현실이 왜 그렇게 슬픈지 많이 아팠다
    이야기속에 나오는 그들도 그렇다
    중앙아메리카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미국이란 땅으로 돈을 벌러 떠난다
    집에 가족을 두고 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이 조금이나마 좋은 환경에서 나보다 낫게 살기를 바라며서 하지만 막상 미국에 도착을 하고 돈을 벌다보면 내 마음 내가 뜻한바와 같지 않고 일이 자꾸 꼬이게 될때가 있다 그리고 집에 남은 사람들은 언제나 붙여올 돈만 기다리고 있고 만일 그사람이 한가정의 가장이거나 엄마라면 아이들은 어떨까????????
    어린아이들은 나중에 보고픈 마음이에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식구들은 식구들대로 쪼들리고 다시 돈이 필요해서 다시 돈을 벌려고 떠나려 한다
    되풀이가 되는것같다
    되풀이 되고 되풀이 되고,,


    엔리케도 그렇다 처음에는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잘 살아보자 자기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하지만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하고 엄마의 손이 한창 필요할때 주변이 그렇게 도와주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은 엇나가게 시작한다
    그리고 본드와 마약 그리고 여자,,
    참 마음이 아프다 조금이나마 어른들이 손을 내밀고 잡아주었다면 그렇게 변했을까
    그래서 나중에 엄마를 찾아 떠난다
    그런데 그길이 너무험하고 힘들다
    돈이 있어서 떠난다며 얼마나 좋으련만
    돈은 없고 길을 떠나고 그래서 만난 사람들 무작정 미국이란 곳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
    그러나 그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람이라 말할 수가 없다
    그중에 너무나 고마운이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았기에 그길은 너무 험하고 힘들다
    어린 소년이 떠난 길을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하루하루 보냈다
    그래도 그 4개월을 넘게 그 고생을 다하고 만난 엄마
    그랬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컷을까


    그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보자
    왜 떠나야 했나 가족을 두고 내 고향을 두고 새로운 환경속으로
    그리고 왜 되풀이 되는가,,
    너무나 아픈 현실이
    우리모두 고민하고 해결을 해야 하는문제점이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독일로 탄광과 간호사로 많이들 돈을 벌러떠났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불법체류자들로 남게 된다
    그 이유는 무얼까
    불법체류자들도 되풀이 되는것은 아닌지,
    이책을 읽으면서 아주많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엔리케는 그나마 운이 좋은 아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길을 떠난다고 한다
    그들의 꿈과 희망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마음이 너무너무 아픈책이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랄뿐이다
    모두모두 행복한 세상이 빨리 왔으면 남은 자 떠난자 그리고 남아서 기다리는 사람들
    멀리서 보고픈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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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기있는 영웅들
    jjolpcc | 2007년 02월 20일
    책은 대부분 누워 읽는 편이다. 요즘같은 겨울에는 이불을 꼭꼭 뒤집어 쓰고 포근함을 느끼며 행간의 의미를 즐기는 독서법이 제격이다. 그런데 "엔리케의 여정"을 읽으면서 내내 이불속 포근함을 느끼면 책을 읽는 내 자신이 불편했다. 이 책은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현실의 안락함에 빠져 물리적인 풍요속에서 사회를 아니 삶을 따분해 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얼마나 편한함속에서 살고 있는가? 또한 살아왔던가? 얼마나 많은걸 누리고 살고 있으면서도 불평만 가득했던가?  책을 읽으며 나는 타성에 젖은 삶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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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대부분 누워 읽는 편이다. 요즘같은 겨울에는 이불을 꼭꼭 뒤집어 쓰고 포근함을 느끼며 행간의 의미를 즐기는 독서법이 제격이다. 그런데 "엔리케의 여정"을 읽으면서 내내 이불속 포근함을 느끼면 책을 읽는 내 자신이 불편했다. 이 책은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현실의 안락함에 빠져 물리적인 풍요속에서 사회를 아니 삶을 따분해 했던 나를 반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얼마나 편한함속에서 살고 있는가? 또한 살아왔던가? 얼마나 많은걸 누리고 살고 있으면서도 불평만 가득했던가?


     책을 읽으며 나는 타성에 젖은 삶속에서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목숨을 걸고 엄마를 향하는 엔리케와 수많은 이주민들의 모습이 가엾고 안쓰럽게 느끼면서도 목표를 향해 목숨을 거는  치열한 그들의 삶에서 나는 내 스스로의 나태함을 꾸짖었다. 엄마를 찾아 목숨을 건 열여섯살 소년의 여정을  그린 이 책은 엄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 라틴 아메리카의 빈곤한 경제와 그로 인한 가족의 해체, 목숨을 건 이주민들의 실상을 그려냈다. 온두라스에서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까지......목숨을 건 기차에서, 버스안에서, 길위에서, 차가운 강물속에서도 엔리케는 오직 엄마라는 존재를 종착역 삼아 목숨을 건 여행을 이어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다섯살에 헤어진 엄마 라우데스는 열여섯 엔리케에겐 신(神)이었다. 그에게 미국의 어머니는 각박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마약으로 찌든 육체를 씻어낼 수 있는 구원의 존재였다. 11년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채 간간히 수화기를 통해 목소리만 확인했던 어머니란 존재는 목숨을 건 긴 여정의 목적지이자, 엔리케 자신의 삶의 이유였던 것이다.


    인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본데도 찾을 수 없는 강도들과 갱들, 이주민 단속반과 경찰들은 엔리케의 여정에서 그리 대수롭지 않다. 강도를 만나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도 엄마를 향한 엔리케를 의지를 꺽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런 일은 이전보다 더 강렬히 엄마에게 찾고자 하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또 그와 이주민들을 돕는 멕시코의 가난한 사람들, 신부님들,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은 인간애의 본질이 퍼런색의 달러가 아닌 붉은 색의 피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엔리케, 이주민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돕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진정 용기있는 영웅들이었다.


    책을 읽은 후 스스로 다짐한다. 나도 영웅이 되어야 겠다고 말이다. 아니 나뿐만아니라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엔리케와 이주민들, 그들을 돕는 사람들만이 영웅의 자리를 지키게 한다면 그들과 함께 숨쉬는 우리는 비겁한 사람이 된다. 직접 멕시코나 과테말라, 온두라스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강력하게 연대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남아메리카에 쏟는 다면 가족간에 생이별이 지금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이주민의 권리가 제자리를 찾고, 온두라스에 일자리가 늘어나고, 제 2의 엔리케는 가족과 함께 자신의 꿈을 키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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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를 만나기 위한 소망의 길이지만...
    책방꽃방 | 2007년 02월 21일
    '눈물의 버스' '사람 잡아 먹는 기차'중앙 아메리카의 버려진 어린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 꼭 겪어야하는 것들에게 붙여진 이름들!왜 그녀들은 그렇게 어린 아이를 버려두고 그 먼나라로 떠나야만 했을까? 만나고 싶어도 쉽게 만나러 갈 수 도 없으며 만나러 오지도 않는 엄마가 아무리 좋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내준다고 한들 엄마곁에 있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음을 모르는걸까?엄마를 만나기위해 몇번이고 눈물의 버스를 타는 엔리케와 고통과 좌절의 아픔을 함께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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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버스'
    '사람 잡아 먹는 기차'

    중앙 아메리카의 버려진 어린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 꼭 겪어야하는 것들에게 붙여진 이름들!

    왜 그녀들은 그렇게 어린 아이를 버려두고 그 먼나라로 떠나야만 했을까? 만나고 싶어도 쉽게 만나러 갈 수 도 없으며 만나러 오지도 않는 엄마가 아무리 좋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내준다고 한들 엄마곁에 있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음을 모르는걸까?

    엄마를 만나기위해 몇번이고 눈물의 버스를 타는 엔리케와 고통과 좌절의 아픔을 함께 느끼며 이 책속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을 후회했다. 험난한 가시밭길을 달려 가는것만 같이 끝없는 고통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만 같은 느낌에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손에서 책을 놓고 싶었다. 이런 나처럼 엔리케도 아니 그런 환경에 처한 그 아이들도 잠시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중단하고 싶을 때가 없었을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리케가 간절히 원하는 엄마와의 해후를 위해
    다시 눈물의 버스를 몇번이나 타고 사람 잡아 먹는 기차를  오르는 것처럼 나도 꼭 그 소망을 이루길 원하는 간절한 바램때문에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다. 어서 이 고통의 노정이 끝나고 엄마를 만나기를 바라는그런 간절한 맘으로 다시 책장을 넘긴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은 갖지 못한 처지이면서도
    그렇게 희망이 되고 힘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는 그 '엄마'란 존재인 나는 달려가 그 아이를 꼭 안아 데려오고 싶은 아주 간절한 심정이었다. 아니 너무나 육체적 고통이 심하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어린 소년들을 볼때는 그노정을 중단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차라리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하는 희망을 머나먼 미래에 두더라도 현재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를 몇번이나 생각했다.

    이런 내 맘을 알아 채기라도 한걸까?
    오악사카와 베라크루스의 기찻길의 친절한 사람들은 작은 빵 꾸러미를 던져 주어 그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엔리케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꼭 내 맘을 대신해 주는 것만 같아 참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엔리케가 드디어 엄마와의 통화가 이어진 날, 엔리케와 나는 함께 목이 메인다. 

    '오전 10시. 엄마가 그를 두고 떠난 지 11년이 지나서 .
    122일동안 일곱번의 헛된 시도 끝에,
    19,310킬로미터를 달려온 엔리케가 뒷좌석에서 튀어나와
    빛바랜 빨간 나무 계단을 올라가, 이동식 집의 하얀문을 
    활짝 밀어 젖혔다. ' p234

    드디어 엄마를 만나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엄마 곁에' 있게 되지만
    그들을 갈라 놓은 세월만큼 그들에겐 알지 못하는 벽이 생겨 났다.
    둘은 만나기를 간절히 원한 만큼 또한 서로가 너무 달라 한동안
    참 많은 갈등으로 고통 스러워하고 또한 엔리케가 두고온 여인이 딸을 낳았지만 그들을 두고 떠났던 그들의 엄마처럼 그녀 또한 딸을 두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가슴 아프고 너무도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11년전 엄마가 떠났던 바로 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p71

    바로 이렇게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은 같은 곳에서 작별을 하고 같은 곳에서 엄마를 찾으러 가는일을 되풀이한다. 참으로 서글프고 애달프고 참담하기만 하다. 엄마를 만나기 위한 소망의 길이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들의 여정은 여정이 아니라 노정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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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픽션이 가지는 시선
    하루(Haru) | 2007년 02월 21일
    언젠가 개봉했던 <인 디스 월드>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파키스탄의 아프칸 난민촌에서 유럽, 정확하게 런던으로 가고자 하는 두 아이의 여정을 그린 영화였는데, 차갑지도 뜨끈하지도 않게 감독의 시선이 참 힘들게 느껴졌던 그런 영화였다. 유럽으로 목숨을 걸고 가고자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현실만큼이나 절절하게 다가왔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엔리케의 여정>은 좀처럼 들어 보기도 힘든 온두라스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까지 밀입국을 시도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참,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읽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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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개봉했던 <인 디스 월드>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파키스탄의 아프칸 난민촌에서 유럽, 정확하게 런던으로 가고자 하는 두 아이의 여정을 그린 영화였는데, 차갑지도 뜨끈하지도 않게 감독의 시선이 참 힘들게 느껴졌던 그런 영화였다. 유럽으로 목숨을 걸고 가고자 했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현실만큼이나 절절하게 다가왔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엔리케의 여정>은 좀처럼 들어 보기도 힘든 온두라스에서 멕시코를 거쳐 미국까지 밀입국을 시도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참,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읽는 내내 많이 힘들다는 점을 미리 말해두겠다.


    한 소년의 여정기
    엔리케의 엄마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미국행을 택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국에 가서 힘들게 일해서 아이들을 학교에도 보내고 넉넉하게 먹을거라도 해결할 수 있으면 만족할 것 같은 그 엄마의 심정으로 엄마는 미국행을 택한다. 하지만 1장의 부제가 "뒤에 남겨진 남자아이"인 것처럼 아이들은 현실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아이들은 엄마를 그리워하고 결국 엔리케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갈 여행을 한다. 온두라스, 콰테말라, 멕시코를 지나 미국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여정은 어렵다는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여정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기 때문에 엔리케와 같은 아이들과 사람들의 삶이 책에 드러난다. 특히 책의 종반 부분에 들어가 있는 단 몇장의 컬러 사진이 그들의 여행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차 지붕에 매달려 온갖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그들은 여행을 아니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단지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고단한 여정을 마친 엔리케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10년만에 엄마를 만났을 때 이야기까지 적고 있기 때문에 더욱 씁쓸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험난한 여정을 마친 것 처럼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은 그 순간 모든 여정은 다시 시작된다. 마지막 장의 부제가 "뒤에 남겨진 여자아이" 인것 처럼 말이다.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 가지는 시선
    이 책이 소설이라면 '엔리케는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와서 엄마를 만나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고 끝이 날 것이고, 그렇다면 독자들도 기분 좋게 이 책을 덮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힘들고도 고통스러웠던 여정을 함께 읽었기 때문에 넉넉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을거다. 하지만 서문에서도 밝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엔리케가 걸었던 그 길을 고스란히 걸어서 취재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논픽션이기 때문에 '엔리케는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끝을 맺을 수가 없다. 엔리케가 걸었던 길을 그의 아내가 걷고 있고, 엔리케의 아이는 온두라스에 남아서 또 엔리케가 걸었던 여정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엔리케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이고, 그 후의 이야기가 둘째일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들은 사지가 잘릴 위험을 무릎 쓰고 열차에서 내리고 도망치고 또 올라타고 있을 것이다.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강물을 위험하게 건너 사막에서 헤메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미국에 간 그들에게 오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메리칸 드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는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특히,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여정을 추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현재 미국으로 이민에 대한 현실을 소개한 짧막한 글이다. 미국을 향해 떠나는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있다는 엄연한 현실과 그들이 미국에서 받는 대우를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일자지라는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문제를 던지고 있다. 이 책이 단순한 여정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이 단순하지만 짧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에서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운이 좋아 미국에서 태어 났다는' 이주자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지금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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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다른 엔리케가 생기지 않기를...
    술패랭이 | 2007년 02월 21일
    사실 책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단지 현대판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정도 외에는..책 표지를 보면서 기차 위에 앉아 있는 소년의 122일 간의 긴 여정이겠구나..배고프고 힘든 여정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를 찾아 가는 따뜻한 이야기겠구나...가 전부였다.그런데 책을 펼쳐들고 엔리케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엄마를 찾아 떠나는 아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려고 했던 안이함에 얼마나 얼굴을 붉혔는지 모른다. 단순히 엄마를 찾기에는 이 가혹한 현실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기에 부끄러움과 분노로 얼굴을 붉히게 되었다.저자인 소냐 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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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책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단지 현대판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정도 외에는..책 표지를 보면서 기차 위에 앉아 있는 소년의 122일 간의 긴 여정이겠구나..배고프고 힘든 여정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를 찾아 가는 따뜻한 이야기겠구나...가 전부였다.
    그런데 책을 펼쳐들고 엔리케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엄마를 찾아 떠나는 아이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려고 했던 안이함에 얼마나 얼굴을 붉혔는지 모른다. 단순히 엄마를 찾기에는 이 가혹한 현실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기에 부끄러움과 분노로 얼굴을 붉히게 되었다.

    저자인 소냐 나자리오는 현실을 들여다보고 어렵게 사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려하는 살아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많은 작품과 그 작품에 현실을 담아내려고 몇 년에 걸쳐 경험을 하는 그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 역시 엄마를 찾아 온두리스에서 미국까지 장장 122일간의 엔리코의 여정을 그녀 역시 똑같이 경험하고 쓴 책이다.

    그렇다면 15살의 엔리코의 어머니 리우데스는 왜 가족과 떨어져 미국으로 가야했는가?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이 빈곤한 현실이 가족의 분열을 야기시킨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기에는 너무도 힘들었던 그녀는 언제 만날 지도 모르면서 돈을 벌기위해 아이들을 남겨두고 미국행을 감행하게 된다.그녀의 미국행으로 남겨진 아이들은 윤택한 삶을 누리기 보다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더 목이 말라있고 결국 엔리코는 엄마를 찾아 먼 여정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만에 도착할 미국땅에 122일이나 생사의 벽을 넘나들면서 힘든 여정을 밟아야 하는 이유는  갖지 못한 자들의 밀입국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가야하는 길이기에 그 과정에서는 강탈과 폭행, 강간 등 수많은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한 명의 엔리케가 아닌 수많은 또 다른 엔리케가 겪고 있는 현실..잘 사는 나라는 풍요로움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해당한다. 그것도 정말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제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땅에 살고 있는 인디오나 흑인들에게도 인색한 그것이 밀입국을 감행하는 못사는 타국인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혜택일 리가 없다. 인권을 부르짖고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현실은 실제는 너무도 냉혹하다.

    엔리케의 여정을 답습한 소냐 나자리오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내가 아니 내 주변에서 일어 날 수 있는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그들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랬으리라..삶이 행복이기보다 생존 그 자체인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기에 나아질 수 있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엔리케의 여정을 통해서 지금도 수없이 떠나는 또 다른 엔리케들에게 아픈 삶이 지속되지 않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가장 기본적인 가족의 행복마저 유린당한 그들의 삶을 보면서 무관심하던 우리의 양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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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찾아 122일간의 사투 5만리
    필터 | 2007년 02월 22일
    중남미출신의 한 남자 아이가 화물열차 지붕위에 올라타고 멕시코를 가로질러 미국으로 가고 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화물열차의 지붕이나 난간에 매달려 그들의 부모를 찾으러 북쪽으로 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엄마가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 책 속 사진 설명 주인공 '엔리케'도 수많은 소년들 중 하나. 엔리케가 이 화물열차 지붕위에 올라탄 것은 12년 전에 자신을 버리고 집을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서다. 엔리케의 '엄마 찾아 122일간의 사투 5만 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엔리케의 엄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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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출신의 한 남자 아이가 화물열차 지붕위에 올라타고 멕시코를 가로질러 미국으로 가고 있다. 해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화물열차의 지붕이나 난간에 매달려 그들의 부모를 찾으러 북쪽으로 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엄마가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 책 속 사진 설명

    <엔리케의 여정>주인공 '엔리케'도 수많은 소년들 중 하나. 엔리케가 이 화물열차 지붕위에 올라탄 것은 12년 전에 자신을 버리고 집을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서다. 엔리케의 '엄마 찾아 122일간의 사투 5만 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엔리케의 엄마는 왜 떠나야만 했을까?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남편이 집을 떠나자 맨몸으로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암담한 현실에 처한다. 아이들을 굶겨야 하는 날들이 늘어가자 미국으로 숨어 들것을 결심한다. 1~2년만 타국에서 고생하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일 20시간을 일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음이 다행스러웠지만 귀국할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 채 1년, 2년..., 목돈을 모아 돌아갈 날을 꿈꾸다가 1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것은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만이 아닌, 남미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싱글맘'들이 처한 암담한 현실이다.

    그녀들은 미국이라는 신세계 가장 밑바닥에서 돈을 벌어 고국의 자식들과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라우데스'처럼 미국으로 가는 과정에 수많은 젊은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여 임신을 하게 되고, 매춘을 하거나 팔려 가는 등 집을 떠날 때보다 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사람 잡아 먹는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

    엔리케가 엄마를 찾아 미국으로 향하며 올라탄 화물열차 지붕위에는 온갖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강도에게 돈을 빼앗긴 뒤 열차 위에서 밀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허다했고, 지쳐서 졸다가 떨어져 죽거나 다리가 절단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민자들은 그 화물열차를 '죽음의 기차', '사람잡아 먹는 기차'라고 불렀다.

    기차가 멈춤과 동시에 단속을 피하기 위해 숨는 숲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곳곳에서 불법 이민자들을 노린 인간사냥꾼들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이 사냥꾼들은 가진 것을 모두 뺏고 당국에 넘기거나 죽였다. 혹은 불구로 만들었다. 멕시코의 경찰들은 아예 강도가 되어 이민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폭행하거나 죽였다. 혹은 그들의 나라로 강제 이송했다.

    하지만 수많은 이민자들이 다시 이 죽음의 길에 올랐다. 엔리케도 7번이나 잡혀 강제 이송되었고 8번째 시도로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죽음의 길에는 엔리케처럼 오래전에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선 소년들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꿈꾸는 불법 이민자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LA타임스의 리포터인 '소냐 나자리오'는 2000년 5월 멕시코 누에보라레도에서 17세의 온두라스 소년 '엔리케'를 만나게 된다. 가난한 남미 사람들의 미국으로의 불법 이주를 취재하는 것이 그녀의 목적이었다. 당시 엔리케는 자신이 5살 때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가진 것은 아주 적은 푼돈과 엄마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뿐.

    그녀는 2000년 5월부터 9월까지 수많은 이민자들이 목숨을 걸고 있는, '남미를 거쳐 멕시코를 횡단, 미국에 이르는 5만 리'에 해당하는 '엔리케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녀는 엔리케처럼 죽음의 기차 지붕위에 올라타 수많은 이민자들 틈에 끼이고 그들처럼 열차가 멈추면 단속을 피해 도망치면서 멕시코 31개주 중 13개주를 종단한다.

    그녀도 수많은 이민자들처럼 지붕위에서 떨어져 죽을 위기에 처한다. 또 기차가 잠깐 멈춘 사이 이민자들과 함께 단속을 피해 도망치면서 폭행과 강간의 위험에 처하거나 목격하게 된다. 즉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이민자들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이민자들의 죽음의 여정'에 동행하며 적은 기록이다.

    저자는 몇 개월 동안의 취재를 마친 뒤, 매일 누군가 자신을 성폭행하기 위해 화물열차 위를 달려오는 악몽에 시달렸다. 때문에 몇 달 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후에야 잠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자신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죽음의 여정에서 엔리케와 수많은 남미 이민자들의 현실을 취재·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처참한 불법 이민자들의 현실

    저자의 취재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엔리케가 엄마를 만나 생활하는 과정이나 온두라스 등에 남겨진 가족들을 찾아 취재를 한다.

    '엄마 찾아 122일간의 사투 5만 리' 끝에 만난 엄마와의 생활은 행복할까? 이국에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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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 고발 보고서
    Haeundae | 2007년 02월 22일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나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뭔지 모를 신경질이 나를 곤두세웠다. 이 지구상에 어떻게 그런 인권 사각지역이 존재하며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생소한 라틴어 지명들이 익숙하지 않아 맨 앞페이지의 중앙 아메리카 지도를 고정시켜 놓고 책을 뒤척이며 나의 시선을 옮겨 다녔다. 엔리케의 여정이 지그재그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실감하며 그 열사의 땅,사막지역을 통과하는 '철의 애벌레'(국경 횡단 화물열차)에 나의 몸이 같이 실려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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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나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뭔지 모를 신경질이 나를 곤두세웠다. 이 지구상에 어떻게 그런 인권 사각지역이 존재하며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생소한 라틴어 지명들이 익숙하지 않아 맨 앞페이지의 중앙 아메리카 지도를 고정시켜 놓고 책을 뒤척이며 나의 시선을 옮겨 다녔다. 엔리케의 여정이 지그재그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실감하며 그 열사의 땅,사막지역을 통과하는 '철의 애벌레'(국경 횡단 화물열차)에 나의 몸이 같이 실려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갱단에 잡혀 폭행을 당할 때는 내 자신도 꼭 누군가에게 얻어 맞은 것처럼 아픔이 느껴졌고 돈을 뺏기고 옷이 벗겨질 때에도 나의 가슴이 똑같이 쓰라렸다.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의 허상만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는 너무 많다. 그 현실은 미국과 그 인접의 라틴계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이다. 똑 같은 아니 그 보다도 더 심한 현실을 겪고 있는 곳이 한반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탈북자들의 고통과 중,남미지역의 미국 밀입국 시도자들의 현실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탈북자들은 자유를 향해,라틴계 밀입국자들은 가난을 벗기 위해 끊임없이 도망다니고 비참한 행보를 자처한다.
    나는 책에서 밝히는 논쟁의 초점이 '어린 영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엔리케의 여정을 통해 비추어진 중,남미 전체 인권유린의 사회고발이 진정한 책의 논쟁거리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인권이다. 그 인권의 사각지에서 끊임없이 신음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의 몫이다. 그들 정부도 손 놓아버린 비참함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국제적인 개입이 없는 한 '엔리케의 여정'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라틴 아메리카의 실상은 물거품이라고 생각한다.
    소냐 나자리오의 고발을 통해 나는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또 다른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에서 읽은 것만이 그들의 고통을 다 대변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을 통해 분출된 나의 분노가 그들의 아픈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해줄 수 있으면 하는 바램 가득하다.
    알라딘,예스24-->june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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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의 여정
    jedu | 2007년 02월 23일
    이 책은 발로 쓴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 사고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나서는 소년들의 생생한 이야기이다.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도,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엄마를 찾아 집을 나설까? 아내는 이 책 몇 페이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단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가슴 아픈 이야기가 멀리 아메리카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탈북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쳐졌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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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발로 쓴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엄마를 찾기 위해, 사고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나서는 소년들의 생생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지금도, 얼마나 많은 소년들이 엄마를 찾아 집을 나설까?
    아내는 이 책 몇 페이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단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슴 아픈 이야기가 멀리 아메리카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탈북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쳐졌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통과 탄식이 또한 떠올랐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고 일어나면 가족들이 죽어가는 땅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넌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다시 수많은 생사의 어려움을 겪는다. 만약 붙잡히게 되면 다시 송환되기 때문에, 이들의 생존에 대한 본능은 필사적이다. 최근 탈북자들과 새터민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으며, 통일에 대한 관심과 협력이 얼마나 시급하고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뿐인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에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횡포와 인권유린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 얼마전 출입국 사무소에 수용되어 있다가 화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소식은, 정말 어이없기까지 한 것이었다.

    사실, 엔리케가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엄마를 만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희망이 있기에 고통과 배고픔도 견디어냈다.
    엔리케는 엄마를 만났다. 결국.
    그러나 그것으로 해피엔드가 아니었다. 10년이 넘어서 만난 모자는 어색했고 낯설었다. 아들은 삐딱하게 행동했고, 나무라는 엄마에게 대들었다. "엄마가 나에게 해준것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엄마는 그동안 아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고, 선물과 돈을 보냈다. 그러나 아이들이 원한 것은 엄마의 존재였다.

    그렇다. 가족이 어떤 이유로든 헤어져 있는 것은 비극이다. 더구나 엔리케처럼 어린 아이들이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우리가 사는 인생에,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가족은 짐이 아닌 축복'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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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 이주민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아폴론 | 2007년 02월 27일
      은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에서 생활고를 극복하고자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만 했던 부모와 고국에 남겨진 아이들에 관한 보고서다. 작가 소냐 나자리오는 2003년 이 책의 기본이 되었던 기획 시리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이혼 후 싱글맘으로 아이들 둘을 키우며 중남미의 온두라스에서살고 있었다. 여자 혼자 아이들 둘을 키우는 삶이 그리 녹녹치 않음은 익히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지도 않고 사회 보장 제도가 발달 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삶은 더 고달프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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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리케의 여정>은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에서 생활고를 극복하고자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만 했던 부모와 고국에 남겨진 아이들에 관한 보고서다. 작가 소냐 나자리오는 2003년 이 책의 기본이 되었던 기획 시리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고 한다.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이혼 후 싱글맘으로 아이들 둘을 키우며 중남미의 온두라스에서살고 있었다. 여자 혼자 아이들 둘을 키우는 삶이 그리 녹녹치 않음은 익히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지도 않고 사회 보장 제도가 발달 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삶은 더 고달프다. 누구도 아이들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가능한 한 아이들과 더불어 그들만의 삶을 꾸려 보려고 하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말 그대로 우리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 만이래도 배곯음을 면케 해 줄 방법을 찾거나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맡기도 직접 돈을 벌어 올 수밖에 없는 상황. 아이들만을 끼고 앉아 아이들이 굶주림을 지켜보면서 가난을 대물림하면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 갈 것인가,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맞기고 맘 모질게 먹고 아이들을 떠나 아이들이 먹고 교육을 시키기 위한 돈을 벌어 올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에서 라우데스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얼마간이래도 희망이 있는 쪽을 선택 했다. 결국, 라우데스는 희망을 안고 불법이주민의 긴 대열에 올랐다. 라우데스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라우테스 한 사람이 아니듯 불법 이주민의 길을 택한 게 라우데스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라우데스의 이주가 특별한 선택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라우데스도 처음 온두라스를 떠날 때만해도 길어야 2~3년이면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기반을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럼 온두라스로 돌아오든 미국으로 아이들을 부르든 함께 모여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라우테스가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안정 되지 못한 자신의 신분(불법이주민이란 딱지)은 미국 고용시장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었고 이민국 사람들에게 걸리면 언제 고향으로 컴백 당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다. 그래도 그들은 악착 같이 일을 했다. 그래서 얼마간 두고 온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다만 얼마만이라도 송금을 하길 원했다. 아이들이 필요하다는 물건들을 사 보내면서 '이 돈과 이 물건들이 있으면 그들은 다만 얼마만이래도 생활이 나아지겠지' 하는 위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한편 고국에 남은 아이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부모의 부재가 힘에 겨웠다. 부모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약속을 했던 시간들이 단축 되는 것은 고사하고 연장 되는 일이 허다했다. 멀리서 보내오는 돈과 물건들이 엄마와 아빠를 대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움을 점차 쌓아갔고 그 그리움의 봇물이 더 이상 감당이 안 될 때 그들은 그리움의 실체를 찾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움의 실체를 찾아 떠난 다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의 부모가 그곳에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갔는지. 중개인 없이 아이들이 부모를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부모들은 아이 단독으로 부모를 찾아오길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엔리케도 미국에 있는 엄마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고향의 일가친척들에게 '나 떠나요. 엄마를 찾아가요' 통고를 하고 그냥 떠났다.


    엔리케가 온두라스를 떠니 미국의 엄마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총 122일이며 그가 간 거리는 3222Km다. 당연히 불법이주민의 신분을 가지고 출발했고 도착을 했을 때도 처음의 신분을 유지했다. 122일 동안 3222Km를 가면서 엔리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도둑들에 의하여 가진 물건을 도둑맞았고, 갱들에 의하여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았고, 경찰을 비롯하여 이민국 직원들에게 돈을 갈취당하기도 하고 쫒기기도 했다. 말과 글로는 점잖게 물건을 잃고, 맞고, 쫒기고, 도망치고 했다고 단순하게 표현이 되지만 현장에서 그들에게 닥친 위험은 죽음과 같은 위험 그 자체였다. 엔리케는 일곱 번을 경찰이나 이민국에 잡혀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해야만 했다. 그 말은 엔리케의 고통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시로 전해져오는 죽음과 같은 긴장이 122일이나 지속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리케는 엄마와 헤어진 지 12년 만에 엄마 라우데스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엄마를 만났으니 모든 게 잘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라우데스는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사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엔리케는 엄마를 만났지만 반가움도 잠깐, 엄마와 떨어져 있던 시간동안 느꼈던 그리움은 자신을 버렸다는 분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원망으로 변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를 만나 폭발하게 되었다. 분노하는 아들을 두고 라우데스가 갖게 되는 마음은 억울함이다.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원망과 아들의 분노, 아들의 엇나감이었다. 자신을 지켜 온 희망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린다.


    이것은 엔리케와 리우데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돈을 벌겠다고 불법이주민의 길에 오른 부모와 아이들이 겪는 거의 공통적인 문제다. 부모와 자식 간에 헤어진 기간이 길면 길수록 서로 간에 친밀감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엔리케와 라우데스의 갈들이 그렇듯 끊임없는 싸움 끝에 엄마들이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의 사랑을 돈과 맞바꾸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지 못했다. 아이들은 분노로 가득 찼고 엄마와 함께 하면서도 외로워했고, 끊임없이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며 엄마로부터 또다시 버림 받을까 두려워한다. 아이들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에 어른들은 강하게 자신들이 그들의 엄마이고 아빠임을 주장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질서의 흔들림. '최선의 선택'의 대가는 아주 혹독하다.


    이 이야기가 비단 엔리케와 라우데스의 이야기에만 국한 되는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최선의 선택이라 지위하면서 행해지는 일이다.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들, 누군가 겪게 될 가족 간의 문제들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인간이 감당 할 몫은 크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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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아픈 픽션
    늘소녀 | 2007년 03월 01일
      처음 이 책 광고 문구를 봤을때 '온두라스판 엄마찾아 삼만리'라는 문구만 보고 가슴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했다. 워낙 슬픈이야기는 잘 읽지 못하는 편이라 신청할까말까 고민도 했으나 풀리처상 수상에 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이란 문구에 혹해서 결국은 읽고야 말았다. 역기 예상대로 슬픈 이야기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엄마찾아 삼만리와는 거리가 먼 처절하고 가슴 쓰린 픽션이 아니라 실화라  더욱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온두라스에 사는 엔리케라는 소년이 미국으로 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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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 광고 문구를 봤을때 '온두라스판 엄마찾아 삼만리'라는 문구만 보고 가슴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이겠거니 생각했다. 워낙 슬픈이야기는 잘 읽지 못하는 편이라 신청할까말까 고민도 했으나 풀리처상 수상에 전 세계 양심에 경종을 울린 펜과 사진의 힘이란 문구에 혹해서 결국은 읽고야 말았다.


    역기 예상대로 슬픈 이야기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엄마찾아 삼만리와는 거리가 먼 처절하고 가슴 쓰린 픽션이 아니라 실화라  더욱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온두라스에 사는 엔리케라는 소년이 미국으로 돈을 벌러 간 엄마를 찾아 나서는 길고도 험난한 이야기
    5세에 떠나 곧 돌아온다는 엄마가 12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결국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엄마의 전화번호 한장만 달랑 들고122일동안 5만리의 위험한 여정을 시작한다.


     멕시코를 거쳐 미국까지 가면서 강도들에게 돈을 강탈당하거나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 경찰에게 걸려 맞거나 돈을 빼앗기고 강제 이송되기도 하는등 8차례의 시도만에  결국은 성공하게 된다.


    읽는내내 어린 소년이 겪어야 되는 무시무시한 상황들이 정말 가슴 아팠고 경찰이나 이주민브로커들, 죽음의 기차, 폭력배들의 파렴치한 행동들을 보면서 분개하기도 했다.


     이책은 작가가 직접 엔리케가 했던 것처럼, 화물열차 지붕위에 올라타고 엔리케와 같은 여정을 떠나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 경험담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내용이 아주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써내려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의 내용이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이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로 오는 동남아 이주민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들을 종종 보기도 했지만 그들이 남기고 온 가족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들도 아마 우리나라에 오는 동안 또는 우리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남의 일같지가 않다.


     이책은 가족에 대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란 어떤것인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엄마는 자식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떠났지만 정작 남은 엔리케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마약을 하거나 알콜중독이 되거었다. 그리고 엄마를 만났지만 엄마를 원망하게 되고 엄마는 자식을 위해 희생을 했지만 그런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들때문에 괴로워한다.


      아이들에겐 그 어떤 것보다는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걸 엔리케는 온몸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의 엔리케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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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를 문 기차, 꼬리를 문 엔리케들
    울싸 | 2007년 03월 04일
    애인이 없다. 시간이 없다. 이런 뻔한 이유로 극장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기에 가끔 보는 영화는 대부분 DVD를 통해서 고르곤 한다. 뭐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가 생각나지 않기에 적절한 갈등(혹은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갈등)이 1-2시간 안에 말끔히 해결되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감당키 힘들 갈등은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한 소년의 엄마를 찾아 나선 122일의 여정’은 책을 펼치고 덮는 동안 해소되는 갈등이 아니었다. 과연 이 소년이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를 만나는 동안 엮이는 많은 인물들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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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인이 없다. 시간이 없다. 이런 뻔한 이유로 극장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기에 가끔 보는 영화는 대부분 DVD를 통해서 고르곤 한다. 뭐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가 생각나지 않기에 적절한 갈등(혹은 아주 사소하고 유치한 갈등)이 1-2시간 안에 말끔히 해결되는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감당키 힘들 갈등은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한 소년의 엄마를 찾아 나선 122일의 여정’은 책을 펼치고 덮는 동안 해소되는 갈등이 아니었다. 과연 이 소년이 그토록 그리워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녀를 만나는 동안 엮이는 많은 인물들 간의 열정적인 증오와 우정은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 엄마와 아들이 만나는 순간 그들은 사랑을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이런 작위적인 여정을 상상했다면 책을 읽는 잠시 동안의 시간이 편치 못할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다른. 2007)은 픽션이 아니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의 말머리나 꼬리에 따라 붙은 논픽션의 표식, 때문에 감동이 배가 된다는 그러한 표식과는 다른 현실 자체인 것이다. 물론 아이를 떼어놓고 먹고 살길을 찾아 떠난 엄마와 그녀를 그리워하다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결국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여정을 나선 소년의 이야기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장엄하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작가, ‘소냐 나자리오’는 그들의 감정에 작위적인 감동의 가격표를 붙이지는 않는다. 냉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여 본 것, 들은 것만을 추려내 이야기 해줄 뿐이다. 눈앞의 현실이 아니기에 픽션, 논픽션을 구분하기 힘든 먼 나라 이야기는 때문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 생생함으로 <엄마 찾아 삼만리>보다 적은 눈물 자국을 남기는 <엔리케의 여정>은 눈물샘이 아닌 주먹을, 심장을 조이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된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미국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윤택한 삶을 위한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 아니다. 그녀들은 살기 위해 가족을 떠난다. 경제적인 자생력이 없는 그네들의 나라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만을 확인할 뿐이기에 말이다. 가족의 곁에서 입에 풀칠은 하겠지만 하루 한 끼와 세 끼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간신히 아사를 피하는 삶은 그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교육을 보장할 수 없고, 간신히 발붙이고 사는 환경에서 ‘홈 스쿨링’은 우습지 않은 잔인한 농담에 불과하다. 어머니, 그녀 자신도 그런 환경에서 자리지 않았는가. 간신히 끼니를 때우고 철이 들기도 전에 책상을 떠나 행상의 길을 나섰다. 그 속에서 미약하나마 행복을 주었던 사랑은 뜻하지 않은 임신을 초래하고, 대부분 그 사랑마저 순간의 유희에 그치고 만다. 어쩌면 그녀들에게 사랑이란 사치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믿고 의지할 수 없는 남편과의 사랑이 그렇고 자신이 범한 과오를 고스란히 물려줄 자식들에 대한 사랑 역시 그렇다. 그녀들에게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으로 가는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좇는 것이다.


    엔리케와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이 도저히 어린 나이에 감당키 힘든 여정을 택한 것을 치기어린 사춘기 방황으로 혹은 복에 겨운 철부지 행동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물론 엄마는 그들은 버린 것이 아니다. 또한 그녀들이 힘겹게 벌어 보내준 돈과 선물로 다른 아이들 보다는 물질적으로 나은 삶을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좋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쳐, 엄마의 원대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떠나간 엄마의 그림자를 앙칼스럽게 부여 쥐고 있는 그들에게 엄마가 부치는 돈과 함께 돌아오는 것은 상실감뿐이다. 곧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엄마에 대한 원망만을 키워가면서 그 상실감은 어느새 자신을 잡아먹고 있다. 그들에게 자신을 망칠 기회는 너무도 가까이에 있다. 잠시 동안의 안식을 주는 마약이 지척에 있고, 그것을 소비하는데 큰 어려움도 없다. 상실감에서 오는 격한 투정을 받아줄 사람도 없기에 자학은 더욱 그 강도를 높여간다. 자신을 망칠대로 망쳐버린 ‘엔리케’와 아이들은 결국 엄마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떠나간 엄마와 찾아가는 아이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결국 이민자 전체의 이야기로 넓어진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신의 가족이 있는 땅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원인은 그들 나라에 경제적 자생력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생산과 소비, 그리고 노동이 순환할 틀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노동력(그것도 기술이 결여된 것)뿐이다. 서구 열강의 탐욕스러운 침이 그들의 해변에 처음 떨어진 이후로 지금까지 그들의 삶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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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들의 여정
    라다카 | 2007년 03월 10일
    여섯 살 때였던가?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2시간 동안 엄마를 찾아 헤맨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 유년의 기억들이 추억으로 사라졌음에도 그 날의 기억은 고통으로 선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온두라스에 살던 열 다섯살 소년, 엔리케는 엄마를 찾아 시장을 떠돈 것이 아니다. 온두라스에서 과테말라를 거쳐 멕스코를 넘어 미국까지. 기차에서 떨어지고 강도에서 얻어맞고 경찰에게 시달리며 남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122일 동안 5만리를 거쳤다. 엔리케가 얻어맞고 떨어지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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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살 때였던가?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2시간 동안 엄마를 찾아 헤맨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 유년의 기억들이 추억으로 사라졌음에도 그 날의 기억은 고통으로 선명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온두라스에 살던 열 다섯살 소년, 엔리케는 엄마를 찾아 시장을 떠돈 것이 아니다. 온두라스에서 과테말라를 거쳐 멕스코를 넘어 미국까지. 기차에서 떨어지고 강도에서 얻어맞고 경찰에게 시달리며 남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122일 동안 5만리를 거쳤다. 엔리케가 얻어맞고 떨어지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이 험한 여정을 끝내지 않은 이유는 미국에 돈 벌러간 엄마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것 하나 뿐이지만 그 하나의 이유는 엔리케에게 모든 것이다.

    엔리케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내내 불편하고 힘들었다. 엔리케가 겪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 일이 지구반대편 남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돈 벌러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몽골, 중국, 동남아 일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아메리카 드림을 위해 미국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또 다른 아이들이 전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두고 더 많은 돈을 찾아 떠나는 부모의 행렬은 아마 게속될 것이다. 돈은 많은 곳에 더 많이 쌓이고 없는 곳에는 더욱 부족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 이주 행렬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그럴수록 부모를 기다리거나 따라가는 아이들의 여정은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 뻔하다.

    우리가 이 이주 행렬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할 수 있는 것은 이주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일 수 있다. 화재로 이주민들이 불법이란 이름으로 죽어나가지 않도록, 고향에서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를 고아로 만들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며 노란 얼굴에 까만 머리색이 아니면 이상하게 보았던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을 만나는 것이 이제는 결코 낯설지가 않다.  이주민들을 향해 보내는 따뜻한 시선은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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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기차를 타고
    문차일드 | 2007년 03월 13일
    자국의 유독성분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수출’하는 선진국, 쓰레기더미 위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생존해나가는 세계 각지의 구석진 곳의 아이들, 마약에 취한 채 내전에 끌려가 살인기계와 총알받이가 되는 아프리카 아이들, 갓 10대가 되어서 결혼해 노예처럼 살다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인생편력을 가진 소녀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카카오 농장에서, 카펫을 짜는 공장에서, 양귀비꽃밭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려야하는 짙은 피부색의 작디작은 아이들... 제 3세계에 빛과 어둠을 동시에 드리우는 세력권에서 우리는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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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국의 유독성분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수출’하는 선진국, 쓰레기더미 위에서 생존을 위협받으며 생존해나가는 세계 각지의 구석진 곳의 아이들, 마약에 취한 채 내전에 끌려가 살인기계와 총알받이가 되는 아프리카 아이들, 갓 10대가 되어서 결혼해 노예처럼 살다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인생편력을 가진 소녀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카카오 농장에서, 카펫을 짜는 공장에서, 양귀비꽃밭에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려야하는 짙은 피부색의 작디작은 아이들... 제 3세계에 빛과 어둠을 동시에 드리우는 세력권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엔리케의 엄마 라우데스는 아무리 바쁘게 일해도 일곱 살 벨키와 다섯 살 엔리케, 두 남매를 먹여 살릴 길이 없는 온두라스에 사는 싱글맘이다. 극한에 달하고, 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선택한 것은, 미국으로 밀입국하여 아이들에게 돈을 송금하는 것이다. 엄마가 없어 천덕꾸러기가 되어 친척집을 전전하며, 엄마가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생계를 이어갈 수는 있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돌아온다고 달래고 달래던 엄마는 십 수 년이 흘러도 만나볼 수가 없다. 풍족한 것도 아니지만 엄마가 상실되었기에 누릴 수 있던 모든 것들은 벨키와 엔리케 같은 아이들에게 결코 감사의 대상이 아닌, 한없는 증오와 그리움에 다다른 애증의 대상일 뿐이다.

    갓 10대를 넘긴 아이건, 장성한 나이가 되어 희미한 엄마의 잔상만 남은 아이건, 미국으로 떠나버린 엄마를 가진 중남미 국가의 엔리케들은 거리와 사춘기와 마약을 거쳐 죽음의 기차에 오른다. 달리는 기차에서 지붕과 화물칸을 넘나들 수 있어야하며, 갱들과 갱보다 더 무법자인 현지경찰, 이민국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생명을 위협 당해야하고, 구타, 강간, 굶주림, 강도, 공포, 고독, 죽음을 겪어내며 멕시코의 리오그란데 강까지 이르기 위해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으면 거듭될 여정을 떠난다. 오직 엄마를 만나기 위해.

    소냐 나자리오는 엔리케가 122일 동안 8차례의 시도 끝에 다다른, 엄마에의 사투를 5년의 추적과 고증 끝에 세상에 내 놓았다. 엄마를 만나기 전에는 죽어도 죽을 수 없었던 아이, 엔리케, 엔리케들은 죽음의 기차에서 살아남았고, 인간보다 아귀를 닮은 법망을 뒤집어 쓴 무법자들의 총검을 피해 살아남았고, 절망과 희망의 얼굴을 동시에 가진 마의 리오그란데를 살아서 건넜으니, 엄마를 만나 해피엔딩의 후일담을 들려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죽음을 이겨내고 신세계에 건너온 아이들에게 남은 것은 타인과 다를 바 없는 엄마와 새 가족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아웃사이더가 된 자신, 또 다시 거리와 마약과 알콜로 내몰리는 현실의 문제이다.

    엔리케가 라우데스를 포용하지 못한 채, 현실과 맞닥뜨려 결국은 엄마와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장면에 이르면 <엔리케의 여정>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기본적인 메시지로 회귀한다. 여전히 중남미의 가진 것이라고는 모성뿐인 절망에 빠진 엄마들이 선택해야하는 밀입국, 여전히 죽음의 기차를 타고 ‘엄마’를 위해 인간의 존엄성의 모든 부분에 치명적인 상흔을 얻는 아이들, 여전히 미국의 이민정책의 양면성으로 괴로워하는 불법이주민들과 그 자녀 사이의 격한 단절감. 대체 어디서부터 메스를 대야 죽음의 기차의 핏빛 질주를 막을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으로 끊임없이 밀입국을 감행해야 하는 싱글맘과 노동자들을 포용할 길 없는 중남미 산업 구조의 취약성과 피폐함을 회복시킬 수 없고, 미국이 불법이민자들로부터 얻는 산업적인 성과와 희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으며, 죽음의 기차에 매달려 희망처럼 포장된 구원이라고 믿는 해후에 배신당하고 마는 엔리케들을 감싸안아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떠나 물질로 행복을 보상하려는 엄마들의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실행하려는 움직임들을 멈추지 않을 계기가 되어 줄 수는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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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리케의 여정
    세상이란 | 2007년 05월 17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소년의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담인 이 책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말 그대로 죽지못해 사는 사람들이나 죽기싫어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책이다 오로지 아이들의 엄마를 찾겠다는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먼 여행길에 오른 소년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또다른 모험은 깊은 연민과 함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엔리케의 여정속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들의 어려운 삶속에서도 자신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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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소년의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담인 이 책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말 그대로 죽지못해 사는 사람들이나
    죽기싫어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책이다
    오로지 아이들의 엄마를 찾겠다는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먼 여행길에 오른 소년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또다른
    모험은 깊은 연민과 함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엔리케의 여정속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들의 어려운
    삶속에서도 자신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엔리케의
    힘든 생활을 보며 엔리케와 같은 아이들의 삶을 보며
    나의 삶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이 책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취재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전하려 한 작가 또한 의미있는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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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한줄
  •   엔리케의 여정 中에서
    '그는 11년전 엄마가 떠났던 바로 그 현관 앞에 서 있었다. 'p71

    11년전 엄마는 아이를 두고 가면서 자신이 떠나는 그 자리가
    자신을 찾아 떠나기 위한 자리가 될지 알았을까?


    '오전 10시. 엄마가 그를 두고 떠난 지 11년이 지나서 .
    122일동안 일곱번의 헛된 시도 끝에,
    19,310킬로미터를 달려온 엔리케가 뒷좌석에서 튀어나와
    빛바랜 빨간 나무 계단을 올라가, 이동식 집의 하얀문을 
    활짝 밀어 젖혔다. ' p234

    드디어 엄마를 만난다.
    그렇게 엔리케는 엄마를 만나 행복하기만 할까?

    지난 시절 자신이 걸어 온길을 대물림하는 것만 같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내 가슴에 뻥하고 커다란 구멍을 뚫어 버린듯하다.
    책방꽃방 | 2007-02-21 0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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