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텍 - Vathek
2020-02-28
13,000원 | 192쪽 | 125*189mm
종합평점 : 4 ( 1 명)
환상 문학의 고전적인 소설이다. 영국인에 의해 불어로 쓰인 아라비아 이야기이다. 또한 잉글랜드 대부호의 상속자로 태어나 자신의 고향에 괴상하게 생긴 저택을 짓고 그 안에 틀어박혀 지내며 골동품 수집에 열을 올린 괴짜 예술 애호가가 쓴 유일한 소설이다.
아라비아 최고의 통치자이자 위대한 지배자 바텍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서 신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백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지아우르(악마적 존재)에게 무고한 아이들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모자라 결국은 지하세계를 향해 직접 길을 나서게 된다. 그러나 도중에 선량한 족장 에미르의 딸 누로니하르에게 반해 자신의 여행목적을 망각한다. 그러자 바텍보다 더욱 잔악하고 대담하며 검은 마술에 능통한 어머니 카라티스가 나서서 아들을 끝까지 지하세계로 가도록 종용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뇌와 절망과 슬픔뿐이다.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태양이 나타나게 하라! 태양이 내 앞길을 비추게 하라!
그 길이 어디에서 끝나건 상관없다.”

욕망의 끝은 어디인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갈망과 그 탐닉의 여정!

사마라의 최고 권력자인 칼리프 바텍은 탐욕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는 기존의 궁전으로도 모자라 별궁을 다섯 채 지으면서 자신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인물이다. 그리고 신학자들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그들을 박해하며 신학이 아닌 점성학을 익힌다. 그는 어느 날 탑 꼭대기에 올라, 점성학으로써 “미지의 나라에서 온 독특한 인물이 놀라운 사건을 일으킬 것”(13p)이라는 계시를 읽어 낸다.
여기서 드러나는 바텍의 어리석음은 끝없는 호기심과 그로 인한 욕망 추구이다. 바텍이 추구하는 욕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 충족’이고, 둘째는 신학을 박해하고 점성학을 들임으로써 하늘의 신비를 꿰뚫어 보려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의 충족’이다. 전자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하위의 욕망이라면 후자는 지적 호기심으로 분류되는 그보다 상위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대는 자신을 나에게 바치겠는가? 땅의 힘들을 사모하고, 무함마드를 부인하겠는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내가 그대를 ‘지하 화염의 궁’으로 데리고 가겠다. 그곳의 거대한 보고(寶庫)에서 그대는 별들이 그대에게 약속한 보물을 보게 될 것이다.”
-32p

그러던 어느 날, 나그네의 행색을 한 악마 에블리스가 찾아온다. 바텍은 그가 보여 준 신묘한 보물들에 현혹되어 악마와의 조약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악마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어린 아이 50명을 절벽에서 밀어 버리고, 충성 어린 백성을 불 속에 태워 버려 제물로 바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악행을 진정으로 감행하는 것은 바텍이 아닌 왕모 카르티스이다. 그녀는 주술이나 흑마법 등 지하의 것을 좋아하며 바텍 못지않게 호기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점성학 또한 그녀가 바텍에게 가르친 것이었는데, 그것은 작품 속에서 정통 신학으로 여겨지는 이슬람에 반(反)하는 학문으로 등장한다. 악마, 악마의 제물, 주술, 흑마법 등의 요소에서 고딕소설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결국 바텍은 ‘지하 화염의 궁’을 찾아서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는 도중 어떤 거처에도 들리지 말라는 조약을 어기고 머무른 마을에서 에미르인 파크레딘의 딸, 누로니하르와 사랑에 빠진다. 중반부부터는 지하의 보물과 호기심 충족이라는 목표는 까맣게 잊은 채, 누로니하르와의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이 소식을 들은 카라티스가 찾아와 목표를 다시 상기시키며 여정을 재개한다.
이 과정에서 바텍과 카라티스 욕망의 차이가 나타난다. 바텍은 본능에 충실한 하위 욕구의 충족을 우선으로 한다. 정작 그 상위의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왕모 카르티스이다. 결국 작품 속에서 바텍은 카라티스의 상위 욕구를 충족해 주는 대리인의 역할로 드러난다. 눈앞의 하위 욕구 충족에 만족하며 나아가기를 포기하는 바텍을 카르티스가 다시 일으켜 나아가게끔 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바텍과 누로니하르는 ‘지하 화염의 궁’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곳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궁 안의 수많은 사람은 심장에 불이 붙어 오른손을 가슴에 붙이고 괴로워한다. 에블리스는 바텍과 누로니하르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는데, 그들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없음을 직감하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끝내 바텍, 누로니하르, 카라티스 세 사람도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들로 인해 심장에 불이 붙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작품은 “절제 없는 욕망의 추구와 그로 인한 파멸”(186p)이라는 보편적이고 정통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 하지만 기본 체계를 따르지 않고 상위 욕구와 하위 욕구의 분리를 통해, 주변 인물인 카르티스가 주인공인 바텍을 자신의 욕망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구성을 보이고 있다. 구성적 변이로써 주제 제시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의 식상함을 한층 덜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텍』은 전체적으로 고딕소설의 요소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당대 유행하던 아라비아풍의 동양 문학의 요소도 가미되어 있다. 각개 다른 분야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윌리엄 벡퍼드 특유의 구체적인 묘사와 섬세한 상상력으로 쓰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유럽 작가의 창작품이 아닌 실제 아랍 텍스트의 번역본으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바텍』은 프랑스에서 선정한 『이상적인 도서관』 ‘환상과 경이’ 부문에서 베스트 1위를 차지하는 등 고딕 환상소설 분야의 단연 최고작으로 꼽히고 있다.
  •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고딕환상소설,아라비아풍고딕,섬세한상상력,거친진행,오감의궁전
    행인 | 2020년 03월 19일
    고딕 환상소설이란 말에 혹했다. 영국인에 의해 불어로 쓰인 아라비아 이야기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읽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서평을 쓰려고 하니 쉽게 이야기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고, 가독성도 좋은데 말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몇 가지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오감의 궁전이나 지적 욕망에 의해 등장한 악마를 공처럼 차는 장면이나 천오백 계단을 가진 탑 등의 이미지다.   사마르의 칼리프 바텍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지배자다. 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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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딕 환상소설이란 말에 혹했다. 영국인에 의해 불어로 쓰인 아라비아 이야기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읽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서평을 쓰려고 하니 쉽게 이야기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고, 가독성도 좋은데 말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몇 가지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오감의 궁전이나 지적 욕망에 의해 등장한 악마를 공처럼 차는 장면이나 천오백 계단을 가진 탑 등의 이미지다.

     

    사마르의 칼리프 바텍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지배자다. 그의 눈을 정면에서 본 사람은 죽는다고 한다.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감의 궁전을 지어놓고 감각의 욕망을 채웠지만 지적호기심은 아직 부족하다. 어느 날 그에게 전달된 칼에 쓰인 글자의 뜻을 알고 싶어 학자들을 불러 모은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수염만 태운다. 한 나그네가 이 칼에 적힌 문자를 해독한다. 왕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나그네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화려한 장면인 공처럼 변한 나그네를 칼리프와 백성들이 차는 장면이 이때 나온다. 이 비현실적인 장면이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라비안나이트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왕의 욕망은 한 번 타오르자 멈추질 않는다. 잠시 이성을 찾아도 그의 어머니인 왕모 카르티스가 다시 부채질한다. 율법을 지키기보다 점성술과 흑마법 등으로 더 많은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지하 화염의 궁을 찾아가다 에미르인 파크레딘의 딸 누로니하르와 사랑에 빠졌을 때 현실에 만족하며 더 나아가질 않는다. 이 소식을 들은 카르티스는 다시 바텍의 욕망을 부채질한다. 아니 함께 떠난다. 이런 장면들 속에 선한 지니들이 나타나 다시 발길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누로니하르의 욕망까지 합쳐지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빠진다.

     

    이런 과정을 작가는 아라비안나이트 풍으로 풀어낸다. 카라티스가 흑마법을 부리는 탑은 고딕소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녀와 독과 주물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저주와 악독한 욕망과 죽음으로 가득하다. 위험한 왕을 구하기 위해 온 용감한 시민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 수 있다. 바텍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 50명을 제물로 바치는데 왜 악마가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이유는 다른 이야기와 엮이면서 해결된다. 더 많은 권능에 대한 욕심을 가득한 바텍 일행과 성장을 포기한 채 현실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야기는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바텍 등이 갈구했던 욕망을 먼저 얻은 선대가 어떤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존재하는지 보여준다. 욕망의 충족이 형벌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형벌은 끝없이 이어진다. 신들의 사자들이 바텍에게 몇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무시한 대가다. 우리 삶에서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욕망에 무작정 휘둘릴 때, 참회하고 잘못을 되돌릴 마지막 기회를 차버릴 때 등이다. 이야기가 거칠게 진행되지만 섬세한 상상력은 읽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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