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K - 초판출간 2016년
돈 드릴로 지음 | 황가한 옮김
2019-03-11
13,000원 | 288쪽 | 150*210mm
블랙유머와 아이러니로 현대 산업사회, 자본주의, 과학기술, 사이비 종교, 대중매체, 환경오염 등을 날카롭게 해부해온 작가의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는 소설이다. 돈 드릴로는 토머스 핀천, 필립 로스, 코맥 매카시와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포스트모던 소설의 대가로 평가받으며, 2013년 《그레이트존스 거리》와 《코스모폴리스》 출간했다.
주인공 제프 록하트의 아버지 로스는 공학과 신기술이 발전할 미래까지 육체들을 냉동해 보존하는 비밀 실험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자다. 그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 아티스를 먼저 냉동 보존시키고, 2년 뒤 자신 또한 냉동 보존된다. 제프가 목격한 냉동 보존 육체들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온몸의 털을 깎고 불필요한 장기를 적출한 뒤(뇌도 적출하는데 경우에 따라 머리를 통째로 절단하기도 한다) 나체로 투명한 캡슐 안에 보관되는 것.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조력 자살을 통해 냉동 보존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들이 대기하는 장소를 ‘제로 K’라 부른다)은 사자(使者)라 불리며 미래 세계의 선구자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다. 제프는 자발적으로 냉동되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태어남’을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가에 관한 질문에 직면한다.
1부 첼랴빈스크기…9

아티스 마티노…163

2부 코스
우리 시대의 사자(死者)의 서(書)
―죽음에 대한 명상과 삶을 향한 포옹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죠. 하지만 죽는 것도 반드시 똑같은 방식이어야만 할까요?_259쪽

소설은 화자인 제프 록하트가 ‘컨버전스(융합)’라는 비밀 단지에 가서 아버지 로스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무장 경비가 지키고 있고, 내부에서 이동할 때는 경호원이 동행하며, 모든 사람들이 통행증에 해당하는 손목 밴드를 차고 있어 보안 등급에 맞는 곳만 출입할 수 있는 그곳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고립되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로스는 육십대의 억만장자로, 생체공학과 신기술이 발전할 미래까지 육체들을 냉동해 보존하는 비밀 실험 프로젝트의 주요 투자자다. 로스와 불치병에 걸린 아내 아티스는 이 실험에 참여하기로 했고, 제프는 작별 인사를 위해 그들을 따라 이곳에 왔다.
제프가 목격한 냉동 보존 육체들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온몸의 털을 깎고 불필요한 장기를 적출한 뒤(뇌도 적출하는데 경우에 따라 머리를 통째로 절단하기도 한다) 나체로 투명한 캡슐 안에 보관되는 것.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조력 자살을 통해 냉동 보존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들이 대기하는 장소를 ‘제로 K’라 부른다)은 사자(使者)라 불리며 미래 세계의 선구자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 이 사자(使者)들이 때가 되기 한참 전에 죽은 상태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 그들 몸에서 필수 장기들을 꺼냈다는 사실. 속박, 정렬, 각기 할당된 자세로 세팅된 몸들이라는 사실. 여자 남자 여자. 이들은 마네킹을 대신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보존 처리를 거치면서 바짝 다듬어진, 다시 살아난 생명들은 모두 똑같을까? 인간으로 죽어서, 같은 크기의 드론으로 다시 태어나다._153~155쪽

처음에는 아티스를 따라가겠다던 로스가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꾸었고, 아티스를 혼자 보낸다. 이 지점에서 아티스의 냉동된 육체와 부유하는 의식이 묘사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무의식적 흐름에 가까운 영혼의 목소리가 끝없이 울린다.

2년이 지난 뒤, 로스와 함께 컨버전스를 다시 방문한 제프는 조력 자살을 통해 냉동 보존이 되려는 아버지의 죽음을 보게 된다. 아티스를 보낼 때와는 다른, 좀 더 비감함이 다가오는 장면이다.

벌거벗고 평판에 누운 그의 몸에는 털 한 올 없었다. 아버지의 삶과 시간을 그와 어렴풋이 닮은 이것과 연결 짓긴 어려웠다. (…) 개별적인 생명체임을 나타낼 수도 있는 모든 것을 박탈당한 아버지의 몸. 그것은 모든 정상적 반응이 미미해진, 익명성 속으로 떨어진 물체였다. _258쪽

로스를 보내고 난 뒤 제프는 또 다른 형태의 선택된 죽음과 마주한다. 연인인 에마가 우크라이나계 전남편과 함께 입양한 아들 스택이 우크라이나에서 민병대로 싸우다 총에 맞아 죽는 광경을 영상으로 목격하게 된 것. 스택은 겨우 열네 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여기, 내 머리 위에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얼룩이 가슴에 퍼져나간다, 젊은이, 눈 감은, 놀랄 만큼 사실적인. 그는 에마의 아들이었다. 스택이었다. (…)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감명적인 삶이 아니라 그들이 죽은 방식이다._270~273쪽

소설 속에서 내내 “어떤 직업에도 성공에도 사람에게도 집착하지 않고 표류하며 살아온, 즉 삶에 대한 근본적인 애착이 없는” 현대인의 단면을 보여주던 제프는 이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질문을 다시 떠올린다. ‘인간은 태어남을 선택할 순 없지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영예로울 수 있지 않은가’라는, 컨버전스에서 맞닥뜨렸던 질문에 답하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는 천상의 빛이 필요치 않았다”고, [삶이란] “지구와 태양의 다정한 어루만짐에서 가장 순수한 놀라움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생(生)을 포옹하기에 이른다.

《제로 K》는 60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우리 시대의 위대한 작가 돈 드릴로가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명상에서 길어낸 작품으로, “드릴로 소설에서 가장 신비롭고 감동적이다. 현실 세계의 수수께끼와 경이를 통해 독자에게 위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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