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지음
2011-11-10
10,000원 | 194쪽 | 210*145mm
종합평점 : 4 ( 2 명)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낸 것일까. 전소해버린 줄 알았던 언어의 검부러기 밑에서 올라오는 참된 음절들을. 작가는 언어가 몸을 갖추기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흔적, 이미지, 감촉, 정념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신생의 언어와 사멸해가는 언어가 서로 만나 몸을 비벼대는 찰나, 우리는 아득한 기원의 세계로 돌아가 그곳에 동결해둔 인간의 아픔과 희열을 발견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참된 욕망과 조우하기 위해서는 0도 근처에서 차갑게 끓어오르는 글쓰기의 언저리까지 기어이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우리는 죽음과 탄생이 새로운 몸을 얻어 환생하는, 세속의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답게, 온전하게 몰락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소설이 우리에게 있었던가._이소연(문학평론가)
희랍어 시간 007

작가의 말 193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

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낸 것일까. 전소해버린 줄 알았던 언어의 검부러기 밑에서 올라오는 참된 음절들을. 작가는 언어가 몸을 갖추기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흔적, 이미지, 감촉, 정념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신생의 언어와 사멸해가는 언어가 서로 만나 몸을 비벼대는 찰나, 우리는 아득한 기원의 세계로 돌아가 그곳에 동결해둔 인간의 아픔과 희열을 발견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몸이 기억하는 참된 욕망과 조우하기 위해서는 0도 근처에서 차갑게 끓어오르는 글쓰기의 언저리까지 기어이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우리는 죽음과 탄생이 새로운 몸을 얻어 환생하는, 세속의 기적을 목격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답게, 온전하게 몰락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소설이 우리에게 있었던가._이소연(문학평론가)

다만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기척이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한 여자의 이야기
그것이 다시 왔어.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여자는 말語을 잃는다. 그것이 처음 왔던 것은 열일곱 살 겨울. 말을 잃고 살던 그녀의 입술을 다시 달싹이게 한 건 낯선 외국어였던 한 개의 불어 단어였다. 시간은 다시 흘렀다. 이혼을 하고, 아홉 살 난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기고, 다시 그렇게 말을 잃어버린 후,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선택한 것은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 그곳에서 만난 희랍어 강사와 여자는 서로의 앞에 침묵을 놓고 더듬더듬 대화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남자의 이야기
시간이 더 흐르면……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꿈에서뿐이겠지요.
가족들을 모두 독일에 두고 십수 년 만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 남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볼 수 없다던 마흔이 가까워오지만 아마 일이 년쯤은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아카데미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보지만 여자의 단단한 침묵과 마주하자 두려움을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선 본 적 없는 지독한 침묵. 그리고 점점 소멸해가는 남자의 미약한 빛. 이 어스름이 완전한 밤으로 이어지는 걸까.

이 소설을 읽는 일은, 어쩌면 한 장의 사진을 오래토록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장의 사진 | 필립 퍼키스는, 『사진강의 노트』 제일 첫 장에서 ‘바라보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진에서 눈을 떼지 말 것,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낄 것. “의미는 없다. 오로지 사물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W.C. 윌리엄스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말한다.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삶 전체를 통틀어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은 이 머무름과 반대 선상에 있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운동의 형태, 명암… 사물 그 자체… 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의미하든 아직은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_필립 퍼키스, 『사진강의 노트』

비슷한 의미에서, 윌리 로니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보통 나는 일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기다린다. 실재가 더 생생한 진실 속에 드러나도록. 그것은 시점의 쾌락이다,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일어나지 않은 것을,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 일을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_윌리 로니스, 『그날들』

이렇게 오롯이 사물 그 자체(혹은 존재하는 그 자체)가 담겨진 한 장의 사진을 오래토록,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보면, 거기에선 천천히 어떤 기미들이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 『희랍어 시간』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떤 기미를 발견하고 흔적을 더듬는 일이다. 그리고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기미와 흔적들은 어두운 암실, 정착액 속의 사진이 점점 선명하게 상을 만들어내듯 어느 순간 고대문자처럼 오래고 단단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시간과,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진 현재진행형의 시간까지를 포함한다.

시간이란 무엇인가요?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을 찍는다면 그건 바로 이 순간 일어난 일입니다. 십 년 후에 당신이 그 사진을 볼 때, 순식간에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옵니다. (……) 사진은 동결된 순간이며 기억입니다. 하지만 사진은 늘 현재의 순간을 담고 있지요. 바로 사진의 마법이지요. _필립 퍼키스,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

그 어떤 사진이라도, 만약 그것을 위하여 적절한 맥락이 창조된다면 그러한 ‘현재’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진이 좋으면 좋을수록 창조될 수 있는 그 맥락은 보다 완전한 것이 된다.
그러한 맥락은 시간 속에서 그 사진을 대신하게 되는데―그것은 불가능한 것인 그것 자체의 원래 시간이 아닌―서술되는 시간 속에서이다. 서술된 시간은 그것이 사회적 기억과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띠게 되면 역사적 시간이 된다. 짜맞추어진 서술되는 시간은 그것이 자극하고자 하는 기억의 과정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_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암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 제대로 된 사진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빛과 어둠이다. 암실에 자연광이 새어들어가게 되면 사진은 하얗게 바래어지고, 암등의 빛이 과하게 되면 사진은 까맣게 타버린다. 그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사진이 완전히 마른 후에야, 인화가 제대로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빛과 어둠과 시간이 만들어낸 예술. 그것이 사진이라면, 『희랍어 시간』은 해서,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이며, 그것은 오로지 빛과 어둠으로만, 명암으로만 완성되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다. “오직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명암 속에서 그 진실을 밝히는.”(G. I. 구지프)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되고 단단한 문자인 희랍어처럼, 빛과 어둠으로만 완성되는 흑백사진처럼, 소설은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으며 그 결이 곱고 단단하다. 목수이며 사진작가인 서영기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목수는 몸의 반응이 중요하다. 나무를 만지고 몸이 반응하며 정신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사진은 세계에 대한 내 사고의 반응이다. 대상은 달라도 반응이 반복되고 집중되면서 동일한 지점에서 둘은 경계가 없어진다.”(월간 사진, 2011.11)
한강의 경우, 그리고 이 소설 『희랍어 시간』의 경우 그것은 언어일 것이다.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감정과 고르고 또 고른 절제된 단어들. 언어로, 문장 그 자체로 세계를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이미 한 장의 사진과, 이 한 편의 소설과 그대로 닮아 있는.
이 소설과 함께,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존재하던 것들, 그 기미와 흔적들, 영원과도 같은 어떤 찰나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어떤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 평범하지 않은 두 남녀의 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행인 | 2011년 12월 01일
    작가 한강을 처음 만난 것은 이었다. 그 당시는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을 때다. 한때 너무 즐겨 읽었지만 여성작가들의 사변적으로 흘러가는 소설에 질렸던 때다. 몇몇 작가의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왠지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 그 책을 선택한 것도 우연이다. 사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몰입하였고 단숨에 읽었다. 또 다른 장편 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단편집 은 너무 무거워 읽기 힘들었다. 이런 시간들을 하나씩 거치면서 한강이 한승원의 딸이란 정보보다 작가 한강으로 강하게 자리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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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한강을 처음 만난 것은 <그대의 차가운 손>이었다. 그 당시는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을 때다. 한때 너무 즐겨 읽었지만 여성작가들의 사변적으로 흘러가는 소설에 질렸던 때다. 몇몇 작가의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왠지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 그 책을 선택한 것도 우연이다. 사실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순간 몰입하였고 단숨에 읽었다. 또 다른 장편 <검은 사슴>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단편집 <여수의 사랑>은 너무 무거워 읽기 힘들었다. 이런 시간들을 하나씩 거치면서 한강이 한승원의 딸이란 정보보다 작가 한강으로 강하게 자리 잡았다.

    길지 않은 장편이다. 채 200쪽이 되지 않는다. 이전의 장편처럼 술술 읽힌다. 작가 소개 사진도 이전과 달리 밝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이런 자그만 변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펼친 책 첫 문장이 의문을 불러온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고대 북구의 서사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보르헤스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써달라고 한 문장이다. 한 연구자는 그 문장을 보르헤스 문학으로 들어가는 의미심장한 열쇠라고 말했다. 작가는 지극히 조용하고 사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였다고 썼다. 어느 것이 정답일까? 알 수 없다. 이 소설에는 작가의 해석을 염두에 둬야한다.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말을 잃었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조금씩 눈을 잃고 있다. 교차 서술 방식으로 이 두 사람의 현재와 과거를 말한다. 미래에 함께 만날 것이란 예측은 너무 간단하다. 이 둘이 만나는 곳은 희랍어 시간이다. 그녀는 학생이고, 그는 선생이다. 이미 사어가 된 희랍어를 통해 이 두 사람은 만났다. 학생과 선생으로.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그 어떠한 감정도 없었고, 상대방이 지닌 아픔과 장애도 몰랐다. 어쩌면 오해가 더 많다. 평범하지 않은 두 남녀의 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45쪽)고 깨닫고 말했다. 그때 궁금한 것 하나가 떠올랐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결혼이 사랑에 의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과거는 상실로 가득하다. 열일곱에 처음 말을 잃고 이혼 후에는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겼다. 물론 중간에 다시 말을 되찾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말의 상실은 그녀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귀신에 홀린 듯한 사랑을 경험한 남자의 실명은 유전이다. 그의 사랑도 실패했다. 빛도 점점 잃어간다. 이런 그가 그녀에게서 발견한 것이 있다.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온 ‘두려운 데가 있고, 어딘가 지독한 데가 있는 침묵’이다. 여자가 섬세하게 남자의 얼굴에서 눈물을 발견한 것과 비슷하다.

    언어와 빛. 이 둘을 잃어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가슴 속으로 잔잔히 파고든다. 그들이 느끼는 고독의 깊이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더 짙어진다. 남자가 안경을 깨트리고 어둠 속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하나의 사고는 이 둘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준다. 그리고 그 남자의 입을 통해 언어가 쏟아져 나온다.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와 말을 할 수 없는 남자의 대화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여자가 남자의 손에 글을 쓰기 전에는. 그 한계도 분명하다. 보지 못하니 장황하게 쓸 수 없다. 간단한 단어만 쓸 뿐이다. 이 부조화와 불안 속에 둘의 접촉이 일어난다. 그들이 교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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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남자, 그 여자의 접속
    대지의 속삭임 | 2011년 12월 21일
      그 여자      “말”이란 세상과 나의 소통수단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 세상은 나를 외면한다. 아니 네가 세상을, 그리고 현실을 피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17세가 되는 겨울, 갑작스럽게 “말”을 잃어버린다. 한때 부모가 천재라고 생각할 만큼 빠른 언어습득능력의 반동일까? 영문도 모르게 그녀는 세상과 이어진 끈을 잃고 내부로 침잠(沈潛)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우연히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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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여자



         “이란 세상과 나의 소통수단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 세상은 나를 외면한다. 아니 네가 세상을, 그리고 현실을 피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17세가 되는 겨울, 갑작스럽게 을 잃어버린다. 한때 부모가 천재라고 생각할 만큼 빠른 언어습득능력의 반동일까? 영문도 모르게 그녀는 세상과 이어진 끈을 잃고 내부로 침잠(沈潛)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우연히 도서관이라는 의미를 가진 비블리오떼끄라는 낯선 단어와 마주치면서 다시 을 되찾는다. 어쩌면 굳이 비블리오떼끄가 아니어도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언어이기만 했으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3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실어증(失語症)으로 다가온 것일까? 어째듯 그녀는 삶, 아니 정체성의 위기를 낯설게 하기라는 수단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淨化)시킴으로써 극복한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말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다시 그것이 찾아온 것은 운명의 장난일 지도 모른다.


         엄마를 여의고,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의 양육권마저 뺏긴 그녀에게 더 이상 살아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아직 살아가고 있는 것은, 시지프스처럼 양육권 소송이라는 승산 없는 희미한 빛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이 그녀가 을 잃어버리고 차츰차츰 소멸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기적을 갈구하는 그녀의 몸부림은 첫 번째 말을 잃었을 때와 달리 자의(自意)로 낯선 언어를 배워 실어증(失語症)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의지가 그녀에게 희랍어 시간을 통해 그 남자를 만날 기회를 주었다.


         금세 다시 말라버린 입술을 연다.
         끈질기게,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1)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또 그 남자와 어떻게 사랑을 해나갈 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래 전 영화 <접속>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러 차례 스쳐 지나가면서도 모르던,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동현(한석규 분)과 친구의 남자를 사랑하던 수현(전도현 분)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웃으면서 새롭게 관계를 정립하는 모습처럼, 그녀와 그 남자가 서로를 인식하고, 사랑하고, 새롭게 관계를 맺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 남자 


         그 남자는 15년의 긴 시간을 독일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보냈다. 무엇이 그를 다시 모국으로 돌아오게 했을까?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그 남자에게 고국으로의 귀환은 익숙함일까, 낯섦일까? 그 어느 쪽이기에 의사가 예측한 40세의 실명(失明)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일까?


         을 잃는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특히 의 혜택을 누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남자는 이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사례를 통해 언제쯤 을 잃을지 예상하고 있었다. 죽을 날짜를 잡아놓은 사형수처럼.


         일상의 잔인함 속에서 그 남자는 을 잃어버린 그녀에게서 자신의 실수로 놓쳐버린 옛 사람의 그림자를 본다. 희랍어 강의를 하면서 어느새 그 남자는 그녀에게 길들여진다. <어린 왕자>의 여우처럼……


         그리고 그 남자와 그녀가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각오하고 (희랍어) 첫 음절을 발음한다. 그 남자의 상실과 그녀의 회복이 스쳐가는 교차점에서 소설은 끝난다.


         마치 소설의 첫 부분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침상에서 보낸 첫 밤이자 마지막 밤, 새벽이 올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장검이 놓여 있었다.”2)는 말로 암시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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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강, <희랍어시간>, (문학동네, 2011), p. 191



    2) 한강, 앞의 , p.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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