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 지음
2011-03-30
10,000원 | 210쪽 | 188*128mm (B6)
참혹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소설
생계의 위기와 아내의 가출 등 잇따른 불행으로 막다른 길에 몰린 한 남자.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아들을 품에 안은 채 호수에 뛰어든다. 남자는 끝내 목숨을 잃지만 아이는 살아남는다. 물속에서 죽음과 맞닥뜨린 순간 희박한 산소를 찾아 호흡하려는 본능적 의지가 아이의 목에 아가미를 탄생시킨 덕이다. 아이는 호수 근처에서 살고 있는 노인과 노인의 손자 강하에게 거두어지고 ‘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아가미로 숨을 쉬고 등에 돋은 비늘을 빛내며 조용하고 깊은 호수 속을 유영하는 곤. 그는 인간이자 물고기인 자신을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기에 노인과 강하, 그리고 호수 근처가 그가 경험하는 세계의 전부다. 하지만 그에게는 물속에서 한없는 평온과 자유를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참담한 현실이 끌고 간 죽음의 문턱에서 아가미를 얻게 된 이 기이한 생명체 곤은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그것은 곧 그가 세상을 운용하는 법칙이나 관념에 물들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세상 역시 그런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모른다. 인간이면서 물고기인 존재,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 곤이 상징하는 이러한 비현실성은 현실 세계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세계,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어떤 것으로도 왜곡되지 않고 누구도 파괴되지 않는 세계, 태곳적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세계. 누구나 한 번쯤은 그리워했을.
모든 생물체는 물고기에서 진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아가미는 인간이 물을 떠나 땅에 적응하느라 퇴화한 태곳적 기관일 터.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를 읽고 나면 우리는 모두 한때 물고기였다는 것을, 한없이 깊고 넓은 물속을 자유로이 유영하던 그 시절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태곳적 순수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남자, 그를 사랑한 두 여자와 한 남자
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강하의 할아버지와 강하, 강하의 어머니인 이녕, 그리고 우연히 물에 빠졌다가 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여자 해류다. 곤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각기 다르다. 곤과 성장기를 함께 보낸 강하는 그가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영영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은 채 내심 그를 걱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짐짓 거칠게 대한다. 마약에 찌든 채 십수 년 만에 집에 돌아온 이녕은 곤의 비늘을 보고 환각 상태에서 경험한 물속 환상을 떠올리며 아름다움과 그리움을 느낀다. 삶에 지쳐 무력감에 빠져 있던 해류는 짧은 순간 곤을 만나고 난 뒤 자신이 만난 이상한 존재에 대해 신비감과 경이감을 간직한다. 이렇듯 곤은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그리움의 대상이자 신비의 대상이며, 이는 곧 태곳적 순수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그들 각자의 입장이기도 하다. 『아가미』는 결국 곤과 그를 둘러싼 세 사람의 비밀스러우면서도 가슴 저린 운명을 통해, 곤이 상징하는 그 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왜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남은 곤. 아주 가끔 물가로 놀러 나온 이들의 눈에 띄어 그들을 놀라게 하지만 그는 곧 물속으로 사라진다. 그를 본 한 아이는 말한다. “인어 왕자님은 누구를 위해 다리를 얻은 걸까? 그러면 역시 언젠가는 물거품이 되어서 아침 햇살에 부서져버릴까?”(189쪽) 『아가미』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그 아이를 향해, 그리고 『아가미』를 향해 답하고 싶어질 것이다. ‘아니,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어.’
프롤로그
노인과 호수
강물을 아는가
호수공원의 어느 날
바다의 방문
진흙탕에서
홍수 속에서
에필로그
해설
책 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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