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30
14,800원 | 352쪽 | 223*152mm (A5신)
인간은 모두 뇌의 작은 화학 반응에 춤추는 꼭두각시인지도 모른다
-세나 히데아키, <브레인 밸리>-

일상적인 궁금증에서 철학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신비로운 뇌의 메커니즘을 만난다!

■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자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놀라운 뇌 이야기

우리는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일까? 왜 어떤 사람은 한번 본 사람을 잘 기억해내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까? 표정을 짓거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의식일까, 무의식일까?
런던 대학교 웰컴 재단의 신경영상센터 명예교수이자 세계 최고의 신경심리학자인 크리스 프리스가 쓴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원제: Making up the Mind)>는 뇌에 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흥미진진한 뇌과학 신간이다. 뇌영상 기술을 활용한 인간의 인지 능력 연구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저자는, 우리가 뇌와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호기심들을 바탕으로 뇌가 우리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뇌의 활동이 어떻게 잘못된 지식을 만드는지, 뇌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도록 만드는지 등 신기한 뇌의 메커니즘을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또한 최근의 연구를 통해 증명된 최신 뇌과학 지식들은 물론 의식과 무의식, 자유의지, 마음의 실체 등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까지 과학과 철학, 심리학, 의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하고 폭넓은 접근을 시도한다.

■ 심리학자, 인문학 교수에게 뇌과학에 대해 설명하다

최근에는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심리학 전공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심리학 전공이라며? 그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번 알아맞혀봐”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곤 했다.
저자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심리학자로서 그가 경험해야 했던 여러 가지 난감한 상황들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그가 심리학을 처음 공부할 때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심리학자들의 서열이 거의 바닥 근처였던 때인데, 그 때문에 저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자리에 나갈 때마다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심리학이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오고 자신의 명패가 ‘심리학자’에서 ‘인지신경과학자’로 바뀐 지금도, “인지신경과학자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상대방(과학 전공자든 문학 전공자든 상관없이)의 표정에서 ‘당신은 진짜 과학을 하는 과학자는 아니로군요.’라는 반응을 확인한다는 것.
그래서인지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인문학 교수의 질문에 저자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지만 한국어판 제목을 <인문학에게 뇌과학을 말하다>로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저자는 최근의 심리학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뇌영상 과학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상당수 과학자들은 심리학의 놀라운 발전에 감탄하는 데 비해 유독 인문학 학자들은 뇌 활동을 연구한다고 해서 인간의 정신에 대해 뭔가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을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때마다 저자는 논쟁을 하는 대신 그 자리를 조용히 피하는데, 결국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은 화려한 언변이나 논쟁이 아니라 실증적인 실험 결과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의 세계는 각자에게 고유한 사적인 영역이고, 인간의 정신 자체를 직접 관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신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전혀 다른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뇌가 정신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 뇌가 만드는 마음, 뇌가 만드는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인간은 이성적인 사고와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뇌가 우리의 마음을 만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이미지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뇌는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제한된 정보를 처리하며, 그것을 이용해 세상에 대한 그림인 모델을 만든다. 뇌가 최신 컴퓨터보다 더 빨리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델 때문이다. 다시 말해, 뇌는 감각 기관에 들어온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뇌 안에 있는 모델과 비교해서 이미 알고 있는 정보는 버리고 새로운 정보만 처리한다. 물론 이 모델이 잘못 작동하거나 틀리는 경우도 있지만, 놀랍게도 99% 수준으로 정확하게 처리한다.
뇌는 모델을 만들면서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번잡한 감각 정보처리에서 해방되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 사귀기, 가족 돌보기, 상대방 설득하기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이는 뇌가 손상된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임상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과 유사한 사례들을 이 책의 저자는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동일한 사건을 각자 다르게 기억하는 이유

뇌가 만드는 모델은 세상의 실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환상(illusion)에 가깝다. 이 환상은 두 가지 측면, 즉 뇌와 물리세계(사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환상, 그리고 뇌와 정신세계(생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환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뇌는 모델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오류가 날 때마다 수정하기 때문에, 사람들 각자가 접하는 환상은 모두 다르다. 사람들이 동일한 사물과 사건을 접하고도 각자 다르게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에 실망하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한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우리 뇌가 고립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뇌는 공동체를 이루고 다른 사람들과 일치감을 이루고자 하는 모델도 만드는데, 이 때문에 소통이 필요하다. (각자의 뇌가 만드는 환상이 다르니, 소통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들과 일치감을 느낄 수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소통은 잘 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소통을 포기하지 않으며, 이를 위해 언어를 사용하고 발전시켜 왔다.

■ 불교적 인식론을 바탕으로 한 뇌의 재발견

책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저자가 자신이 주장하는 환상과 불교적 인식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불교의 인식론에 의하면, 우리의 모든 인식은 감각정보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감각기관인 안의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들어와 생긴 것이다. 외부에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인식이 바로 세상이라는 것. 결국 고정된 실체로서의 세상도, 그것을 인식하는 고정된 자아도 없다(제법무아諸法無我).
언뜻 보기에는 뇌과학과 별다른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불교적 인식론이 저자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책의 곳곳에 한자와 고대 중국의 시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뇌가 감각기관에 들어온 정보를 모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집중하는 특정한 정보만 처리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한자로 된 문헌을 읽는 과정을 예로 들고, 뇌와 문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 3부에서는 번역의 문제를 다루면서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의 시를 인용하고 있다.

■ 단순하고 명쾌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뇌의 세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뇌가 세상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뇌가 만들어 냈기 때문에 내가 사라져서 인생이 허무하다거나 세상이 무의미하다는 비관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저자는 시종일관 유쾌한 어조, 구어적 표현, 단순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유지한다. 또한 뇌가 인식하고 모델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인 그래프와 사진을 이용하면서도 에셔의 그림, 말레비치의 그림, 애드 거 앨런 포의 에세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영상 등 독자의 시선을 계속 책에 붙들어 두는 재미있는 자료들도 이용한다. 각 장의 본문을 1인칭으로 집필해 독자와의 거리를 좁혔다가, 마지막에는 그 장의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3인칭으로 정리하고 있어, 마치 소설을 읽듯 내용을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과학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장치한 글의 구조 또한 인상적이다
책 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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