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 지음
2008-07-10
13,800원 | 298쪽 | 223*152mm (A5신)
종합평점 : 5 ( 1 명)
과학 속에서 사회 읽기, 사회 속에서 과학 읽기
대한민국 과학학의 권위, 홍성욱 서울대 교수
‘대운하’ ‘광우병’에서 ‘창의력’까지 과학으로 말한다!

우리 시대 과학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최고의 과학기술학자 홍성욱 교수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비판적 메시지

과학은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아 성장한다. 또한 과학은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하지만, 사회적 관계 하에 놓인 과학자들에 의해 생산된다는 면에서 사회적 산물로 볼 수 있다. 과학이 실험실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홍성욱, 그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이른바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늘 올곧게 과학자의 목소리를 내온 우리 시대 저명한 과학기술학자이다. 학문의 통섭이 어느덧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지만, 홍성욱 교수는 오랫동안 학문의 경계를 허문 ‘잡종의 미학’을 주창하며 스스로 지식의 통섭을 실천해온 보기 드문 지식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시종일관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며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왜 중요하며, 바람직한 과학기술 발전의 조건은 무엇이고, 시민사회를 위한 과학기술은 어떠해야 하는지 묻고 대답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15쪽), 과학자의 창의성(99쪽), 현대 과학과 시민사회(192∼199쪽), 과학기술과 윤리(218쪽), 과학과 정의의 문제(227쪽) 등 과학과 사회의 접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며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과학기술과 사회를 성찰하는 통합 학문 STS : 과학과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새로운 통찰

유전자 조작 식품, 조류 독감, 나노기술, 원자력 발전, 세포 치료 등 우리는 실로 위험 요소들이 범람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위험의 대부분은 과학기술 발달에 의해 야기된 것들이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거대 기술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직 구상 단계에 있는 기술은 물론(경부대운하), 심지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기술도 세상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뒤였다). 과학과 기술과 사회를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연구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STS는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학제 간 융합 분야로서 보통 과학기술사, 과학기술철학, 과학기술사회학, 과학기술정책학, 과학기술문화학과 같은 분야를 아울러 일컫는다. 홍성욱 교수는 이 같은 관점에서 끊임없이 사회 속에서 과학을 바라보고, 과학 속에서 사회를 읽어내고자 한다.
이 책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 의학 등 해박한 과학 지식과 과학계 전반은 물론 문화, 사회, 역사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과학과 미술, 문학, 영화, 건축, 역사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그의 ‘잡식성’은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킬 뿐 아니라 과학과 사회를 결코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헤비사이드, 갈릴레오, 보어 등의 삶은 과학과 인문학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으며, ‘잡종적’ 지식이 과학자의 창의성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또한 책은 압둘 칼람, 에드워드 텔러, 오펜하이머 등을 통해 20세기 과학 발전이 가져온 가장 어두운 유산 중 하나인 전쟁 무기 개발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과학과 윤리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21세기 과학의 환경이 변한다!

21세기 과학 기술을 둘러싼 환경은 근대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학자들 간의 경쟁이 가속화하고(과학자들은 더 좋은 연구를, 더 좋은 학술지에, 더 많이 게재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과학 연구가 상업화하고 연구 지원과 관련하여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지나친 상업화는 과학자들의 윤리 의식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과학 연구의 결과가 불확실해지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위험의 체감지수가 증가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위험의 증가는 과학과 대중의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183쪽)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의 시대 : 새로운 과학이 온다!

지금까지 과학은 전문가들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전문가라 할지라도 과학연구가 사회에 미칠 파장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게 되었다. 1970년대 초엽에 미국의 물리학자 앨빈 와인버그는 “과학적으로 서술은 되는데 그 답은 과학에서 찾을 수 없는 기술사회적 문제”를 “트랜스과학(trans-science)”이라고 명명했다. 탈정상과학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피해 가능성이 크고, 합의가 거의 없으며, 신기술이 야기하고, 부담이나 이득이 불공평하게 배분되는 기술적 위험은 근대 이후 과학기술이 발전시킨 방법으로는 충분히 분석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탈정상과학의 중요한 특징은 과학의 주체가 ‘과학자 공동체’에서 주민과 이해집단을 포함하는 ‘확장된 공동체’로 바뀌는 데 있다. ‘과학적 사실’도 주민의 경험, 지식, 역사 등을 포함하는 ‘확장된 사실’로 바뀌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자들의 활동도 실험실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 대화, 설득을 포함하는 활동으로 바뀐다. 따라서 이전 정상과학의 시대에 ‘실험실’에서 사실의 발견, 그 사실에 대한 동료의 평가, 이를 지원하는 국가의 정책이 중요했다면, 탈정상과학 시대에는 과학을 둘러싼 과학자 사회와 시민 사회의 대화와 신뢰가 중요하게 부상한다. 현재 불거지고 있는 과학기술 문제 대부분은 ‘정상과학’에 익숙한 과학기술자들이 탈정상과학의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178쪽)
과학기술 전문가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과학기술 프로젝트가 무척 복잡하고 난해해서 오랜 동안 전문 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핵에너지, 환경, 유전자 재조합과 유전공학 등이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전문가주의 혹은 기술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즉 유전자 변형 식품이나 핵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불확실성이 많은 기술적 위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권리(정부에서 추진하는 기술 프로젝트의 정보에 대한 접근권, 과학기술 정책에 참여할 권리, 합의에 바탕한 의사결정을 주장할 권리, 개인이나 집단을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할 권리 등)를 인정하고 정부와 시민이 함께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황우석 사건, 광우병, 대운하… 논쟁의 한복판에는 늘 과학이 있었다.
2008년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어느 과학자의 고뇌?!

2005년 대한민국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당시 들끓던 여론을 잠재우며 황우석 박사의 데이터가 조작되었음을 알리는 데는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젊은 과학자들이 제시한 과학적 근거가 큰 몫을 했다.
2008년 다시 한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로 촉발된 ‘촛불 정국’의 향방은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황우석 사건’ 때와는 또 다르다. 대부분 BRIC의 연구자들은 이른바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미미함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설명하지만, 이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매우 적다. 왜 예전처럼 과학적 근거가 통하지 않는 것일까? 과연 미국산 쇠고기를 무서워하는 우리 국민은 과학에 무지한 채, 이성이 실종되고 유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일까? 정말 괴담과 선동에 속아 넘어간 순진한 시민에 불과할까? 늘 그렇듯이, 해답은 다시 과학 안에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병에 걸릴 확률은 홀인원을 하고 나서 환호하다 번개에 맞을 확률?

톡 까놓고 말해, 영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상당한 수의 광우병 소가 오랫동안 유통된 영국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와 소-인간 사이에 있는 종 간 장벽 등을 고려해서 그 확률을 높게는 수천분의 일, 적게는 수천만분의 일로 잡기도 한다(BRIC의 한 연구자에 따르면, 오염된 조직의 사료로 대량 유입, ‘종 간 장벽’의 붕괴, 재순환을 통한 특정 변종의 출현, 뇌·척수와 같은 특정 SRM 부위 섭취, 개인적인 유전형, 나이, 여타 감수성들의 합집합이 아니라 교집합이 되어야만 인간 광우병이라는 재앙이 존재할 수 있다). 수천만분의 일이라는 확률은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수천만 번을 먹어야 확률 1로 광우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 번개에 맞을 확률에 비교할 것도 못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광우병을 왜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는 것일까?

대중의 위험 인식은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생존 본능’

이유는 위험은 확률만으로 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처음 위험에 대해 연구한 미국의 엔지니어 C. 스타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죽을 확률이 사냥을 하거나 스키를 타다 죽을 확률보다 훨씬 적은데도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훨씬 더 위험하게 느끼는 것을 발견했다. 베트남전에서 죽을 확률이 오토바이를 타다 죽을 확률 정도밖에는 안 됐지만 사람들이 이 둘에 대해 느끼는 위험은 천지 차이였다. 그는 사람들이 스키, 사냥, 오토바이를 ‘자발적’으로 택하는 데 반해서, 마을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고 베트남전에 징집되는 것은 비자발적이라는 차이를 발견했다. 즉 사람들은 자발적 위험의 경우에 훨씬 높은 위험을 감수했다.
이후 심리학 교수 폴 슬로빅은 보통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위험이 자발성의 변수 외에도 위험의 원인에 대해서 모르는 정도, 피해의 끔찍함, 노출된 사람의 수에 비례해서 커진다는 것을 밝혔다. 사람들이 비행기 사고나 벼락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이유는, 이제 이러한 사고의 원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런 위험에 노출된 사람도 소수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로빅의 기준에 따르면, 광우병과 원자력 사고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끔찍한 위험에 속한다. 사람들은 위험을 확률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재앙의 정도, 통제 가능성, 형평성, 후속 세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총체적으로 지각한다. 따라서 대중의 이런 위험인식을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갈등 해결은 요원할 뿐이다.(165쪽)
여는 글 _ 과학 - 사회의 복잡한 네트워크 읽기

제1장 현대 사회와 과학기술
세계 10대 철학자의 과학 사랑
과학과 철학이 만났을 때
과학자는 로맨티스트가 없다?
과학의 약속과 반(反)과학의 도전
과학과 미술
괴테와 뉴턴
노벨상을 위하여
우주인 존 글렌에 대해 안 알려진 얘기
압둘 칼람,에드워드 텔러,이휘소
기초 과학의 진정한 가치
20년 후의 미래 과학기술 트렌드
철도,지난 100년의 오디세이
국회의사당,그 건물의 정치학
인쇄술의 사회적 영향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과학 아카이브
국내 이공계 대학원의 비극

제2장 과학과 창의성
'잡종(hybrid)'과 과학적 창의성
'잡종'과 '경계인'으로서 아인슈타인
특수 상대성 이론의 탄생과 아인슈타인의 창의성
래드랩의 성공과 창의적 연구 공간
올리버 헤비사이드 이야기
과학 영재의 성공과 실패
아인슈타인,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다

제3장 누구를 위한 과학기술인가?
위험 사회에 대처하는 방법
위험은 확률로 계산할 수 없다
육식과 광우병에 대해 다시 생각함
대운하,어떻게 볼 것인가
포스트 노멀 사이언스 시대
21세기 과학의 환경이 변한다
시민을 위한,시민에 의한 과학기술
위험,확률과 가치
사회 갈등 해결의 원칙
테크노크라시의 역사
과학과 20세기 전쟁
과학기술과 윤리
과학과 정의의 문제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 문제
황우석과 실험 재연의 정치학
'사기의 추억'

제4장 문화,사회,역사에 대한 단상들
현실과 픽션 사이_스타워즈
미생물과 제국주의_우주전쟁
1941년 하이젠베르크는 왜 보어를 찾아갔을까_연극 코펜하겐
인간의 자유를 소각해버리는 온도_화씨
감시와 금기라는 파놉티콘_올드보이
진짜 부자들이 사는 법
통합 학문이 절실하다
경계에 선 지식인
동도서기론의 한계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해석
배심원 확률 게임
인터넷 시대의 진실 게임

닫는 글 - STS를 아십니까?
  • 21세기 과학의 모습, 탈정상과학 홍성욱, 정상과학, 탈정상과학, 동아시아, 과학과 사회
    이환 | 2009년 09월 03일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전자 변형 식품 등 우리 과학은 우리 사회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는 과연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안전한지 그리고.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설치는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지에 대해 사람들은 걱정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고 있지만, 반면 위험성 또한 내재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반대에 직면하거나 큰 이슈가 될 상황도 많이 생길 것이다. 예컨대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 문제를 한 번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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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전자 변형 식품 등 우리 과학은 우리 사회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는 과연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안전한지 그리고.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설치는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지에 대해 사람들은 걱정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고 있지만, 반면 위험성 또한 내재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반대에 직면하거나 큰 이슈가 될 상황도 많이 생길 것이다.

    예컨대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 문제를 한 번 살펴보자. 정부에서나 과학 전문가들은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주민은 이를 믿고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이에 따르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방폐장 설치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즉 방폐장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정상과학(normal science)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상과학이란 20세기의 과학을 말하는 것으로 실험실에서의 연구와 그 연구결과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 그리고 연구를 지원하는 국가나 과학재단의 지원이 중요시 되던 시기의 과학을 말한다.

    그러나 방폐장이나 유전자 변형식품과 같이 불확실성이 많은 기술적 위험에 직면한 상태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확대된 ‘확장된 공동체’에 의해서 합의된 일련의 단계들을 천천히 밟아 나가야 한다. 즉 과학과 시민 사회의 인터페이스를 구축해야만 한다. 이런 부분이 바로 탈정상과학(Post-normal science)이 다루고 있는 분야이다.

    탈 정상과학이 중요한 이유는 “더 불확실하고, 가치가 논쟁의 대상이 되며, 그 여파가 크고, 반면에 판단은 급박하게 해야 하는 상황에 적용되는 과학”이라고 이 책 <홍성욱의 과학에세이>(동아시아.2008년)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탈 정상과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학의 주체가 ‘과학자 공동체’에서 주민과 이해 집단을 포함하는 ‘확장된 공동체’로 바뀌는 데 있다. 즉 과학의 민주화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나 방폐장 등에서 국민의 반대는 격렬했다. 홍성욱 교수의 표현에 의한다면 이는 정부에서 정상과학 수준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다시 말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고, 국민들과 쌍방 간의 대화소통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로 인하여 앞으로 닥칠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과학기술학(STS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udies)이라고 저자인 홍성욱교수는 말하고 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사, 과학기술철학, 과학기술사회학, 과학기술정책학, 과학기술문화학과 같은 분야를 통합”한 학문을 말한다. 다시 말해 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을 함께 연구하는 학제간 융합 분야이다.

    저자는 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미래 과학기술의 모습을 예측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시도이다. 지금의 트랜드를 가지고 다양한 가능성과 제약 조건을 따져봐야 한다. 다면 20년 후 과학기술의 개략적인 큰 방향은 몇 가지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80년 이후에 등장한 과학기술 분야의 가장 강력한 트랜드는 컨버젼스, 융합, 잡종의 트랜드다. 기존의 분야들이 합쳐져서 새로운 분야가 만들어지고, 이렇게 만들어진 몇 가지 새로운 분야가 또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 ....나노과학기술, 생명공학, 물질공학, 뇌과학, 인지과학 등이 이러한 융합의 예이다.”

    이 책은 과학에 관련한 시사적인 것들을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것으로,.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인 광우병이나 대운하 건설, 황우석 사건 등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읽어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안점은 다른 과학책과는 차이가 있다. 저자인 홍성욱교수는 학제적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즉 자신이 과학자이지만 역사학이나 철학, 사회학, 인류학과 같은 인문학과의 학문적 만남이 중요하다는 것을 책 내용을 통해서 역설하고 있다.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철학에 깊이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리학과 철학을 접목시킨 점이 위대한 발견을 이끈 창의력의 기본이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통섭이라는 말이 화두이다. 홍성욱 교수는 통섭과 비슷한 개념인 하이브리드 즉, 잡종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하이브리드 세상읽기>나 <잡종, 새로운 문화 읽기>와 같이 과학과 인문학을 접목시킨 대중과학서를 여러 권 출간한 바 있다. 홍성욱교수가 말하는 21세기 과학의 모습은 인간과 사회 속에서 깊이 자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잡종’ 학문 연구이고, 탈정상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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