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걱정과 달리 잘 읽혔다. 조회수 : 3338 별점
글쓴이 : 행인 날짜 : 2011-04-28 추천 : 1 [추천인]
소녀지옥
유메노 큐사쿠 | 디앤씨미디어(D&C미디어) |

일본 미스터리 3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도구라 마구라>의 작가 작품집이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3대 기서 이야기를 듣고 한 번 읽어야지 마음먹었는데 막상 책을 구하고 나니 조금 시들해졌다. 아마 단숨에 읽을 수 없다는 것과 기서라는 것이 꺼려하는 마음을 생기게 한 모양이다. 쉽게 구할 수 없을 때 그렇게 갈구했는데 손에 들어오니 순식간에 그 감정이 식은 것이다.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예전에는 리스트에 굉장히 집착했다. 그 리스트에 올라온 작품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읽으려고 했고, 몇 권 출간되지 바로 읽었다. 하지만 취향을 많이 타면서 아쉬움을 많이 주었다. 이런 경험도 조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 단편집이 나왔을 때 역시 강한 욕망이 생겼다. 다른 한 편으론 기서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머리 한 곳에서 울렸다. 혹시 읽다가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런데 이런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예상과 달리 너무나도 잘 읽혔기 때문이다. <소녀지옥> 3부작은 특히 그랬다. 읽으면서 살짝 <도구라 마구라>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감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가 사라진 것은 이 단편집을 읽고 난 후 읽은 다른 소설 때문이다. 두 작품이 너무나도 분위기와 전개로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뒤에 읽은 소설이 더 쉽게 읽혔다. 목차를 보면서 <소녀지옥> 아래에 나와 있는 제목들이 중편 소설의 각 장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으면서 각각 다른 단편임을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은 히메구사 유리코라는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다. 이비인후과 의사 우스키 도시히라가 그녀의 자살 소식을 그녀가 거짓말의 대상으로 삼은 규슈 제국대학 시라타카 히데마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작한다. 먼저 이 소식을 전해주러 온 남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녀가 예전에 어떤 거짓말을 하였고, 기괴했는지 보여준다. 사실 그녀의 거짓말을 읽으면서 너무 뻔한 것 같았다. 그것은 당사자가 아니고 그녀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녀가 간호사로서 보여준 재능을 생각하면 관련 인물들이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에 수긍하게 된다. 거짓말 재능을 남용하면서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만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볼 정도다.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난 후 혹시 그녀의 자살도 거짓 정보가 아닐까 의심해본다. <살인릴레이>는 지금은 사라진 여차장 이야기다. 역시 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자들을 죽였다는 소문이 있는 운전사 니타카를 둘러싼 여차장들의 이야기다. 그에 대한 평은 ‘도쿄 운전기사 중에서 제일 사내답고, 제일 평판 나쁜 사람’이다. 나쁜 소문들은 수많은 여차장을 꾀어내 내연 관계를 가지고 사귀다 질리면 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그와 사귄다. 사귄 여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빠지고, 무장해제 당한다. 복수를 다짐했던 여자마저도 그렇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들이 나올 때 거부감이 생긴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너무 남자의 시각에서 풀어낸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화성의 여자>는 제목만 보면 sf소설 같다. 하지만 내용은 성인군자로 알려진 여고 교장의 허울을 벗겨내고, 그 속에 숨겨진 사연을 하나씩 보여준다. 여고 창고에서 난 화재 사건과 그곳에서 발견된 여자 시체를 신문기사를 통해 알리면서 시작한다. 편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앞의 소설과 다르다 생각하는데 곧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편지가 등장한다. 우리의 고등학교 현실과 너무나도 닮은 꼴에 놀란다. 거기에 화성의 여자로 불렸던 한 소녀 이야기가 가슴 아리게 만든다. 탁월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 때문에 친구들에게 왕따 당했던 그녀가. 교장의 겁탈과 버릇 같은 중얼거림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여자 취급 받지 못한 그녀가 갑작스런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데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한 편의 복수극이란 점에서 통쾌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이런 감정 변화 때문이다. <동정>은 한 폐병환자가 자신을 이용한 여자에게 매혹되었다가 그 환상이 깨어지는 이야기고, <여갱주>는 너무 뻔한 결말이 보여 조금 시시했다.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굴뚝>은 마지막에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보다 예상했던 끔찍한 살인과 그럼에도 매혹된 남자의 행동이 강한 여운을 준다. 이 세 편은 사실 앞에 나온 <소녀지옥> 3부작에 비해 재미가 떨어지는 편이다. 3부작이 지옥이란 어떤 것일까 떠올려주고, 편지를 통해 사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다른 가능성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의 결과를 먼저 보여준 후 ‘왜’와 ‘어떻게’를 풀어가는 방식이 뛰어나서 강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사견 때문인지 모르지만 여자의 감성과 행동 심리를 그려낸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생각 이상으로 잘 읽히지만 읽다보면 그 기묘하고 기괴한 분위기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