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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포토]《눈앞에 없는 사람》심보선 낭독의 밤 조회수 : 18017
글쓴이 : 알지랑 날짜 : 2011-10-06 17:13:00 추천 : 0 반대 : 0
첨부파일 : 눈앞에_20111006171455385.jpg



낭독의 밤 - 심보선 신작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







10월 2일 2011년 와우북 페스티벌에서 3년 만에 새 시집을 낸 심보선 시인의 낭송회가 있었다. 첫 시집이 아닌 두 번째 시집으로 비로소 심보선 시인의 시를 접하고 정신없이 빠져들었기 때문에 그의 낭송회 소식이 들려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겠노라 다짐하고 있었다. 공지가 뜨자마자 신청을 했지만 얼마나 경쟁률이 쌨던지, 어설프게 신청한 탓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못갈소냐,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다행스럽게도 갈 수가 있었는데 하! 그곳에 가니 당첨된 사람들보다 떨어진 사람들이 더 많이 와 있더라는. 그동안 작가들의 낭독회에 많이 가 보았지만 떨어졌다고 무조건 와서는 줄 서서 기다리는 분들은 처음 봤다. 심보선 시인의 인기가 이토록 많을 줄이야. 이제 겨우 그의 시집을 읽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뻔했지만, 그가 펴낸 두 권의 시집을 읽어보면 그 상황을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는 2000년을 대표하는 문학, 시부분에 뽑히기도 했던 시집이다. 시를 늦게 알게 된 나로서는 심보선 시인의 이름 석 자는 들어왔으나 그의 첫 시집을 읽어보질 못했고(읽어보았던들, 시에 대해 문외한이었던지라 좋은지 나쁜지도 몰랐겠지. 하지만 시를 읽기 시작하자 다들 추천해주었던 시집이기도 했다. 내가 너무 늦게 그의 시집을 만나기도 했고)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을 때, 제목에 필 꽂혀 무조건 사서 읽었는데, 역시 제목이 아니라 좋은 시를 알아보는 독자들은 다 비슷비슷한 모양. 시에 이토록 열광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 같다. 유럽 어느 나라에는 시를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없어서 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데 내 주변에는 시 좋아하는 친구들 많아 공유하기도 좋다.

이날 낭송회는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신작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낭송의 밤이었고, 장소는 홍대 “살롱 드 팩토리”에서 있었다. 심보선 시인을 처음 본 것은 지난봄에 허수경 시인이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 산울림 극장에서 있었던 시 낭송회에서였다.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이름은 많이 들었고 난 그가 꽤 나이 지긋한 시인인 줄 알았는데 무척, 젊어 보여 놀랐다. 버뜨, 알고 보니 젊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의 순박한 모습을 보면 그 나이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의문이 생기긴 한다. 동안이라는 뜻. 꽤.

낭송회의 사회는 성기완 시인이 맡았다.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로도 활동 중인 성기완 시인은 한동안 심보선 시인에게 삐쳐 있어 만나지도 않았다는데 이번 신작을 계기로 화해를 했다나? 좋았던 것은 성기완 시인이 사회를 보며 낭독하는 시들에 대해 조목조목 질문을 해주고 시 해설을 간간히 해주어 시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겐 아주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

낭송회는 성기완 시인이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시작했다. 이보다 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떨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떨린다며 말을 꺼냈다. 노래가 끝난 후 심보선 시인이 <인중을 긁적거리며>라는 시를 낭송하며 본격적인 시낭송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배 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
나는 어쩌다 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
인중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전생에서 후생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뿐인 청혼을 한다


심보선 시인의 근황은 트위터을 보면 알 수 있다. 유학을 다녀온 후 용산 참사를 시작으로 현재는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까지 다니며 사회운동에 적극적이다. 위의 시 〈인중을 긁적거리며>는 쓰자마자 홍대 두리반에서 처음으로 낭독을 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시집은 '성장'을 주제로 주로 혼자 골방에서 외롭게 쓴 시들이라고 하면 두 번째 시집은 '관계'라는 주제아래 친구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쓴 시라고 했다. 그래서 혼자 고립되어 쓴 첫 시집하곤 다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을 그는 문디(mundi:라틴어로 '세계'라는 뜻) 에 헌사 하는 시집이라고 했다.



두 번째 낭송한 시는 <필요한 것들>이었다.

나에게는 6일이 필요하다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나날이 필요하다
물론 너의 손이 필요하다
너의 손바닥은 신비의 작은 놀이터이니까
미래의 조각난 부분을 채워 넣을
머나먼 거리가 필요하다
(…)
간혹 오후는 호우를 뿌렸다
어느 것은 젖었고 어느 것은 죽었고
어느 것은 살았다
그 어느 것도 아니었던 우리‥…
항상 나중에 오는 발걸음들이 필요하다
오직 나중에 오는 발걸음만이 필요하다
바로 그것, 그것인, 아닌,
아무것도 아닌, 아무것인,
모든 것인…


이 시를 쓸 때는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예술이든 시든 사회에 필요한 것을 많이 찾으려고 했다. 마지막 세 줄은 쓰지 못하고 있다가 교토 여행에서 마무리 했단다.



세 번째 시의 낭독은 성기완 시인이 해주었다. 심보선 시인과 만나지 않고 있을 때, 우연히 잡지에서 <늦잠>이라는 시를 읽었는데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한다. 묘사를 하다가 시의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현실로 흐르는 느낌이랄까, 그는 첫 줄을 읽으며 아, 정말 좋다며 감탄사를 내기도 했다.

별은 어둠의 미묘한 순응자
시간이 닦아놓은 밤의 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는 젖은 흙 위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잘 익은 사과 맛이 나는 발자국들을 찍으며
(…)
나는 생각한다
멀리 떨어진 두 개의 눈동자를 이어주는 흙길
녹슨 나침반의 떨리는 북쪽

오전 열 시,
이제 일어나야 해요


심보선 시인이 좋아하는 시인은 기형도와 황지우. 하지만 그 이전에 김종삼 시인을 좋아했단다. 그 분의 시를 읽고 시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깨달았단다. 꾸밈없고 말재간 없이 형학적이지 않은 그냥 휙~ 써내려간 시, 그런 시를 그는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성기완 시인은 낭송이 끝날 때마다 시의 한 부분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간만에 국어 시간에 시 공부를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는 그토록 지겨웠던 시 이야기가 이날 성기완 시인이 조목조목 물어볼 때는 어찌나 재미있던지.

이후 <좋은일들>, <영혼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를 차례로 읽은 후 친구이면서 이번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의 발문을 쓴 진은영 시인이 나와 <텅 빈 우정>을 낭송해주었다. 심보선 시인과 진은영 시인의 우정은 꽤 오래되었고, 진은영 시인에 의하면 거절 당하는 걸 무서워하는 자신에게 최근 몇 년 동안 부탁만 하면 무조건 들어준 친구였기에 발문을 부탁했을 때 기꺼이 해주었다고 웃었다.



근데 낭송한 시의 제목이 <텅 빈 우정>이라 잠시 다들 웃음.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손으로 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손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은 신비로운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은 날
내일은 진동과 집중이 한꺼번에 멈추는 날
그다음 날은 침묵이 마침내 신이 되는 날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당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동시에 끝날 것입니다


두 번째 초대 손님은 심보선 시인이 시를 쓰면 다 읽어봐 준다는 친구 김홍중 교수였다. 같은 사회학을 공부한 친구로서 같이 책 작업을 한다고도 했는데(움, 좀 헷갈리는데;;) 그는 <이상하게 말하기>를 낭송해주었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손목시계 위의 시간을 읽는다
분침과 시침 사이에 펼쳐진 고요와
고요 아래 째깍거리는 소요를 헤아린다
빛과 어둠이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지는 오후
자라나는 애처럼
죽어가는 새처럼
나는 이상하게 말한다
(…)
지금은 머릿속에서 온갖 꽃들이 시드는 오후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 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시를 낭송하고 느낌을 말하고 시인의 생각을 들어보고 하다 보니 이미 시간은 초과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진행. 심보선 시인도 무척 아쉬워했는데 아마 그곳에 있었던 모든 독자들이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는지, 아직 읽을 시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데 곧 끝내야 하다니. 아쉽고, 아쉽고 아쉬웠다나.

이 시간의 백미는 마지막 시였다.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잡지 【현대문학】 8월호에 실렸던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에 관한 시였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행한 170명의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40미터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의원. 그를 위해 심보선 시인은 The Beatles의 "Hey Jude"를 그와 같은 상황에 비추어 의역한 것이다. 시인은 이 시를 낭독한 후 독자와 모두 같이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며 끝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고 이 시는 어쩐지 앉아서 읽는 것보다 서서 읽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며 서서 낭독을 했으며 시를 다 낭송하자 독자들은 성기완 시인의 기타에 맞춰 "헤이 주드"를 함께 불렀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독자들이 그 시간 동안 얼마나 흥분하고 좋아했는지는 아마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 같다. 시 낭송이 이렇게 즐겁다면, 시가 이렇게 아름다고 좋은 거라면, 죽어간다는(!) 시는 아마도 오래오래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 같다.



Hey, Jude, don’t make it bad
주드(시민 여러분), 비관하지 말아요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슬픈 노래를(현실을) 더 낫게 만들면 되잖아요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그녀를(김진숙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요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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