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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포토] 《백화점》조경란 작가와의 만남 조회수 : 18527
글쓴이 : stella09 날짜 : 2011-06-24 10:33:00 추천 : 0 반대 : 0
첨부파일 : 조경란_20110624103325513.jpg



짧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강박


어제(21일)는 조경란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홍대 근처 카페에 다녀왔다. 주최 측의 상세한 약도 설명으로 비교적 잘 찾아 가긴 했지만 거의 다 와서 헤맸다. 내가 설명을 제대로 이해 못한 것도 있긴 하지만, 역시 우리나라 골목은 거기가 거기 같아 헤매기 딱 좋다. 그런데 모처럼의 홍대 길이어서일까? 산책 삼아 헤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얼핏 보기엔 우리나라가 지하철역을 끼고 상권이 발달된지라 볼 것이 그다지 없어 보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맨 고기구이 집 아니면, 술집, 카페가 주다. 그런 곳에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골목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것이고 보면 저마다 뭔가의 숨은 사연이 있지 않을까? 골목이 주는 인간적인 감상을 느껴보고 싶어지기도 하다.

늦은 저녁의 풍경

다행히 시간엔 늦지 않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조경란 작가를 보긴 했지만, 내가 도착한 때는 작가가 아직 등장하기 전이다. 테이블엔 와인 잔이 놓여있고, 와인에 어울릴만한 안주거리가 놓여 있었다. 시작 전 카페 주인장이 따라 주는 칠레산 와인을 얼떨결에 받아 두었다. 사실 먹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열어 준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람끼리 조촐하게 앉아 있자니 그도 참 어색하다 싶다. 조만간 이 와인이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아 본다.

사진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지만, 작가는 천생 여자란 느낌을 갖게 한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하얀 스카프를 늘어트리고, 유난히 까만 머리에 작은 목소리로 조근조근한 말씨가 인상적이다.

마침 어제의 만남은 작가가 책을 내고, 행사 스케줄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자리라고 했다. 그동안 얼마나 숨 가쁘게 다녔을지 알 것도 같다. 작가들 중엔 사람들 만나는 것을 즐겨하는 작가도 있겠지만, 은둔형의 작가도 있다. 조경란 작가는 다분히 후자의 작가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첫 밖에, 자신은 말이 많은 날이 부끄럽다고 했다. 이제 이 자리가 마지막이고 다음 날이면 다시 은둔 모드로 들어갈 것이니, 그 자리가 적잖이 안도감을 주는 자린지도 모르겠다 싶다. 더구나 다소 딱딱한 강연회 자리가 아니고, 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담소의 자리니 더욱 그러지 않았을까?

그 와인을 한 잔씩 받아 놓고, 돌아가면서 간략한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내 차례가 되니 좀 부끄러웠다. 솔직히 이 책 저 책에 치이고, 일상에 치어 난 아직 《백화점》을 읽지 못한데다, 작가의 책이라곤 몇 년 전, 《혀》를 읽은 것이 고작이다. 그런 상황에서 첫 마디가 작가님의 《혀》를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았노라고 했으니, 사실이긴 하나 낮이 좀 간지러웠다. 그런데 황송하게도, 작가는 나에게 작가의 포스가 느껴진다고 했다. 작가의 꿈은 가졌으나 아직 온전히 이룬 것이 아니니 작가의 그런 말에 만감이 교차한다.

좋아하는 것이 뭐예요?

모르는 사람과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하고 싶으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이 효과적인 물음이라고 한다. 작가는 글을 쓰기 전, 자료 준비를 위해 근처 도서관을 자주 찾는데 폐관을 하고나면 백화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백화점에서 밥도 사 먹고, 쇼핑도 하며 외롭지 않게 돌아다니는 공간이어서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백화점에 가면 누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 좋다고 했다. 그때는 이제까지 작가 조경란이 아닌 조금은 편안해진 인간 조경란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했다. 아마도 작가의 그런 경험이 이번 작품을 쓰게 하는데 주효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부탁 한 가지를 했다. 혹시라도 백화점에서 자신을 보게 되거든 모른 척 하고 지나가 달라고. 과연 이해가 갈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솔직히 누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방해 받는 것처럼 싫은 것도 없다.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즐길 권리가 있다. 그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해 주는 차원에서라도 작가를 백화점에서 보게 되거든 모른 척하고 지나가 주시길!

그런데 비해 난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답할 말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을까? 싫어하는 것이 뭐였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지만 마땅히 해 줄 말이 없다. 그저 마음에 맞는 친구나 지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며 웃고 떠드는 게 좋다. 그곳이 마음에 드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조용한 카페면 더 좋겠다. 어제의 그곳 같은 곳. 이것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경란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의외로 군자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골방에 앉아서도 세상을 꿰뚫어 보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실엔 '묵'이란 글자가 벽에 걸려 있단다(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한자일 것 같고, 默자 일지 싶다). 작가는 지금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글을 쓰기 직전에는. 새 작품을 앞에 놓고 얼마나 생각이 많을까? 얼마나 많은 장면들, 말들이 머릿속을 후벼 놓을까? 그때마다 벽에 걸려있는 '묵'자를 바라보며 흩어진 마음을 고집스러우리만치 다잡고 쓸 것이다.

그녀는 글을 쓰기 위해 16년 간 지켜 온 철칙이 있다고 한다. 여행은 가되 너무 멀리 나가지 않는다. 멀리 나가면 책상 앞에 돌아와 앉기가 힘들어서다. 그리고 작가는 커피를 좋아한다고 한다. 역시 작가와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최근엔 커피의 양이 늘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커피는 꼭 핸드드립으로 마시고 있는데, 로스팅해서 마셔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많이 시간이 걸리고 무엇보다 글 쓰는데도 방해가 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작가가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인지 알 것도 같다.

그것과 관련해서, 작가는 빨리 읽고 잊히는 그런 책은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작가의 목표점은 늘 진실한 이야기를 진실하게 쓰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글은 쉽게 읽혀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천성적으로 그렇게 쓰거니와 자신은 항상 짧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책을 많이 읽고, 철학이나 심리학, 미학 같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많이 알지만 쓰기는 아주 조금 쓴다. 아는 것을 쓰지 않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쓰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척하며 쓰는 것을 아주 많이 경계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작가가 쓴 《풍선을 샀어》라는 작품 같은 경우, 주인공이 독일에서 철학을 10년 간 공부하고 왔던 만큼, 작가는 그 한 작품을 쓰기 위해 니체의 책을 다 섭렵했다고 했다. 확실히 그 말은 맞는 말 같다. 내가 창작을 공부했을 때도 선생님은 작가는 많이 알고, 그 중 빙산의 일각을 독자에게 보여줄 뿐이라고 했다.

작가로 산 세월이 16년. 이제 달인의 경지에도 오를 법하지만 그녀는 매번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쉬워한다. 그래도 이젠 연륜이 쌓여서 그런지, 예전엔 잘 써야지, 나를 이겨야지 하는 긴장과 압박 속에서 글을 쓰곤 했는데, 지금은 그것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작가들 보면 부럽다고 한다. 그들은 즐기며 글을 쓰는 데 자신은 매번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니. 그렇게 온전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 그녀는 몇 가지의 것들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를 테면, 결혼을 포기했고, 글쓰기 강좌 같은 누구를 가르치는 일하지 않으며, 어디 선가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슷한 연대를 살고 있어서일까? 나는 그런 그녀가 오히려 믿음직하고 신뢰 있어 보인다. 솔직히 요즘 젊은 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즐기며 쓴다면 그 즐기는 것이 언제 다른 것으로 이행해 갈지 모른다. 물론 그들은 다른 것을 해도 글을 쓸 때처럼 잘하겠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올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믿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매번 작가는 흰 종이, 다시 말하면 컴퓨터 모니터의 하얀 면과 깜박이는 커서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까? 전에는 그것에의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정말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두려움을 직시한다. 그러다 보면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한다.

작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작가건 문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문체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조경란 작가는 필사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을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느 작가의 문체가 좋아서 필사를 하다보면 그것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 작가는 좋은 작품을 여러 번 읽고, 특히 단편인 경우 소리 내어 읽어 볼 것을 권했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없어도 되는 문장, 조사 등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물론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긴 권할만한 방법이라고 했다.

더불어 작가는 때로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해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을 희생시켜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작가가 되지 말아야 한다. 이건 정말 깊이 숙고해야할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의 눈물을 보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고 독자를 만나다 보면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떻게 해서 이 작품을 쓰시게 되었는가, 같은.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이 질문을 이제 마지막으로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다고 했다. 나는 좀 다른 질문을 해 볼 수 없을까 하다, 작가라는 직업에 만족하시는지, 만일 다음 생에도 작가를 하실 건지, 작가 외에 다른 꿈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때 작가는 다음에도 생이 있다면 절대로 작가는 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카 하나가 큰 이모가 하는 일을 궁금해 하며,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더란다. 그래서 작가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며 하지 말라고 했단다. 그러자 이제 겨우 7살인 조카가, 세상에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냐며 자신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 말은 또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꿈이 없이 살아 온 26년의 세월이 있었기에 자신의 길을 찾고 지금까지 글을 써 온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울먹이는 것이 아닌가? 그만큼 작가로써 걸어 온 길이 얼마나 지난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를 울려 본적이 없는데 짓궂게 남과 다른 질문을 한 것 같아 속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쾌재를 불렀다. 나도 참. 대신 작가는 다음에도 생이 존재한다면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두, 세 명의 세션과 함께 자신의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다고 했다. 그건 내 꿈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요즘 인기 있는 '나는 가수다'의 영향 때문이 큰 것 같다.

작가, 자신을 예언하다

나는 백화점을 잘 가지 않아 몰랐던 요즘 백화점에 서점이 없어졌다고 누가 말했다. 사람들이 이젠 아이패드니, 태블릿PC니 하는 것으로 책을 다운받아 읽으니 백화점에 그런 것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 모이는 장소에서 종이책을 보는 것이 어색해 자꾸 감추게 되고 위축되더란다. 그런 말을 들으니 나는 확실히 21세기를 살지만 여전히 20세기를 사는구나 싶다. 그런데 뭔가 모를 반항심이 생겼다. TV가 나올 때 라디오는 없어질 거라고 했다. 하지만 TV나 라디오는 여전히 공존한다. 비디오가 나올 때 영화관은 없어질 거라고 했다. 하지만 영화관은 여전히 존재한다. 종이책도 마찬가지다. 그런 기계가 나왔다고 해서 종이책이 없어지기나 하겠는가? 왜 당당히 읽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적어도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 두 눈이 시퍼렇게 뜨고 살고 있는 한 종이책은 영원할 것이다. 기계는 기계만이 안고 있는 한계가 있다. 그것에 인간의 무한한 가치를 종속시킬 수 없다. 어차피 기계도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조경란 작가는 아는지 힘을 준다. 작가는 확실히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작가인 듯 싶다. 얼마 전, 액상프로방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는데, 글을 쓸 수 있기까지 자신을 이끌어 준 대선배님과 같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은 종이로 된 책을 읽었고, 그분은 태블릿PC로 책을 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분은 자신에게 "천생 요즘 작가는 못되는군."하시더란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e-북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잘라 말한다. 항상 그래온 것처럼, 비공리적이며 희소성의 의미로 반드시 종이로만 출판되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건 모르긴 해도 그녀가 작가로서 인간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려 좋았다. 나는 그런 작가의 고집이 좋다. 이제 은둔에 들어 간 작가가 다음에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작품으로 독자와 해후하게 되길 기대해 본다.

stella09 2011-06-24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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