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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포토]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정수복 선생님과의 즐거운 브런치 조회수 : 20534
글쓴이 : 롤러코스터 날짜 : 2011-04-26 18:51:00 추천 : 0 반대 : 0
첨부파일 : 3033_20110426185402751.jpg

아침 일찍 광화문을 나가본 적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바람 부는 광화문 광장을 옷자락 흩날리며 가로지르는 기분은 정말 상쾌했다.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커피숍 2층에 앉아 이제 막 파릇파릇 자라나는 연둣빛의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오늘 있을 즐거울 시간을 생각했다. 주말 아침의 이런 만남, 봄이라서 그런가? 따뜻한 날씨라서 그런 걸까, 아마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있었기에 그랬겠지.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 상큼하고 기분이 좋았다. 마치 오늘 만남을 예고하듯.


약속 시간이 다가와 만남의 장소로 이동했다. 경복궁 옆, 소격동이라 불리는 곳. 오늘의 행복한 만남이 있을 국제 갤러리. 이곳에서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쓴 정수복 선생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작가 구본창 선생님의 작품을 다 같이 감상한 후 정수복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주말 아침의 전시회 관람과 브런치, 꽤나 독특하고 이국적인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을 읽으며 한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이 몹시 그리웠다. 책을 읽는 내내 느릿느릿 하릴없이 여유를 부리는 그 시간을 나도 즐기고 싶었다. 한데 그 시간을 직접 즐긴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니 주저할 수가 없었다. 당장 프로방스로 떠날 수는 없지만 그곳의 이야기라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내 생각은 옳았다. 그곳을 가지 못했지만 정수복 선생님에게서 듣게 된 프로방스는 아름다웠다.

 

우선 국제 갤러리에서 있었던 구본창 선생님의 작품 관람이었다. 구본창 선생님의 작품은 선생님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며 신경숙 작가가 글을 쓴 《자거라, 네 슬픔아》를 통해서다. 아름답기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진을 보며 신경숙 작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추억을 꺼내 글로 풀어낸 책이었다. 사진을 보며 글을 쓰는 일에 한동안 빠져 있던 터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날의 작품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글로 풀어낸 전시회는 아니었지만 구본창 선생님이 오래 전부터 버리지 않고 소장하고 있던 지극히 일반적인 일상용품들이 전시물이었다. 벼룩시장이나 오래된 물건을 파는 곳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물건들, 작은 선풍기와 오래 전에 나온 외국 잡지들, 달력과 세계로 나가는 계기가 되었을 한 권의 여행 서적 그리고 다양한 모양의 박스들과 예쁜 병들, 독특한 모양의 사진 액자와 그 당시에는 귀했을 독특하게 생긴 물건들. 오래 전 우리 집에서도 한번쯤은 본 적이 있는 물건들을 들여다보며 신경숙 작가가 쓴 구본창 선생님의 사진을 보며 추억들이 생각나듯 나 역시 전시물을 보며 한때 본적이 있던 물건들이 가진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미술 전시회를 가면 보통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는 편이다. 내가 바라보는 그림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내가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그림 감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정 궁금하면 도록을 사서 보든지 그때 물어봐도 되는 것이었으므로. 한데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아마도 그림이 아니라 물건의 전시였기에 혼자서 돌아봤다면 이런 게 뭐? 하고 지나쳤을 텐데 도슨트이 설명을 들어보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훨씬 빨랐고 그 의미도 쉽게 알 수 있어서 전시물을 보는 재미가 더 좋았다. 더불어 사이사이에 정수복 선생님이 곁들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어떤 도슨트도 설명해줄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더욱 알찬 관람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가라고 불리는 김찬삼의 여행 서적을 간직하던 구본창 선생님이 그 책을 전시해두었는데 제목부터 한자로 적힌 그 책이 어떤 의미인지 그곳에 있는 어린 사람들은 몰랐지만(난 그 분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한비야의 여행기에서였던 것 같다. 역시 찾아보니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권》(99년 6월 판에 이런 글이 나온다. "김찬삼 여행기에서 나는 그때로서는 달나라 여행보다 더 먼 나라 얘기로 느껴졌던 세계 일주를 '한국 사람도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보았고…“)에 언급이 되어 있었다.) 그 분이 요즘으로 말하면 한비야 같은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렇다면 그 여행 서적은 꽤나 가치가 있는 것인 셈이다. 또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종류의 사진에 대해 도슨트의 설명이 끝나자 비하인드 스토리처럼 그 전시회에 갔었다는 이야기와 갑신정변 때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이야기를 하면서 신경숙 작가의 《리진》을 읽어보면 <기메 박물관>과 그 당시 프랑스와 관련된 글이 나온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2층에 전시되어 있던 다양한 모양의 연적(붓글씨 쓸 때 쓰던), 소주잔처럼 보이던 작은 잔과 찻잔, 작은 청자 등등의 사진을 보며 예전엔 이런 것들을 자주 사용했다는 설명을 해주셨던 것 같다(자세히 듣지 못했다. 연적과 붓글씨라는 단어만 생각남;). 정수복 선생님은 구본창 선생님의 다양한 수집품들을 보며 그 당시에 저런 물건들은 아마도 귀한 것들이었을 거라며 비슷한 시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 시대가 과거일 뿐인 우리들에게 이해가 잘 가도록 설명을 해주신 거다. 그리고 2층, 구본창 선생님의 사진이 슬라이드로 돌아가는 비디오 실에서 통독이전의 유학 시절 사진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서울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자신도 파리에 있다가 서울에 왔을 때, 느꼈을 괴리감을 설명해주기도 했다(이 얘긴 이때 들었는지 나중에 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남. 암튼, 들었던 기억이;;).

 

길지 않은 관람이었지만 매우 알찬 전시회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근처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바람이 불었지만 햇살은 따뜻했고 예약된 그곳은 조용하고 봄의 정원 같았다. 프로방스는 아니지만 충분히 프로방스적인 기분을 낼 수도 있었던 곳. 그리고 준비된 브런치를 먹으며 출판사에서 뽑아온 여러 장의 사진을 보며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정수복 선생님의 본격적인 프로방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록을 하지 않아 모두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대충 기억나는 이야길 하자면,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249쪽에 나오는 사진을 보면 빈센트와 테오 반 고흐가 나란히 묻혀 있는 무덤 사진이 있다. 그 비석을 찍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왼쪽 반 고흐의 비석 위에 도마뱀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도마뱀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황석영 선생님이시란다. 그때 같이 동행했던 분 중에 신경숙 작가도 있었다고. 또 44쪽 사진을 보면 골목길 그늘진 곳에 모자와 안경이 놓인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마치 우연히 찍은 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수복 선생님의 물건들로 ‘설정샷’이었다며 가방에서 그때 그 안경을 꺼내 안경에 얽힌 이야기도 슬쩍 들려주셨다. 그리고 골목 안에 한 남자가 나와 있는 사진(242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이 걸려 있는 집들이 있다. 이 골목은 ‘루르마랭의 한 골목길 풍경인데 그림이 걸려 있는 집들이 바로 작은 갤러리들이란다. 정말 프로방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엔 어떤 그림들이 걸려 있을지, 궁금해졌다는. 


또 다른 사진(301쪽)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건물 그늘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이다. 사진을 본 사람들이 정수복 선생님이 아니냐고 묻는다는데 선생님은 아니시란다. 책으로 봤을 땐 이 남자가 뭘 하는지 잘 몰랐지만 큰 사진으로 뽑은 걸 보니 책을 읽고 있었다. 와, 망중한도 이런 망중한이라면!!! 그리고 사진 한 장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물어주신 독자 덕분에 ’득템’한 197쪽의 빨래를 널어둔 사진, 프로방스의 빛을 받은 저 빨래, 상상만으로도 그 뽀송뽀송함이 느껴질 정도다. 도시에 살면서 빨랫줄에 빨래를 늘어본 적이 없는지라 프로방스에서는 일상인 저 풍경도 우리에겐 아름다움으로 보이는구나, 싶었다. 그 외 표지에 나와 있는 올리브 사진은 죽었다 살아난 올리브 나무라는 이야기와 265쪽에 나오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뒷모습 사진은 오래 전 누이들이 잘 입고 다니던 원피스의 종류라는 것도. 이렇듯 책에서 보는 사진과 현상된 사진은 비교하나마나 현상된 사진이 아름다운 거라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아마도, 그 사진이 선생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란 걸 들었으면서도 탐을 낼 수밖에 없었는데 선물이야길 듣지 못한 독자가 ‘가져도 돼요?’ 라는 한 마디에 선생님이 ‘그러세요.’ 하고 승낙을 하자 가더렸다는 듯이 다른 독자들도 각기 눈독 들였던 사진의 풍경을 말하며 ‘득템’하는 행운을 누렸다는. 나 역시, 못 얻을세라 빨래를 널어놓은 사진을 얼른, 주세요! 하여 얻었다는^0^. 그리고 이어진 대화의 시간.


전문적인 산책자란 말에 혹 했다는 독자는 그 말을 선생님이 직접 썼었냐고 물었고, 제목과 카피를 ‘직접’ 쓴 편집자는 자신이 읽고 느꼈던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 대한 느낌이 산책이었기에 강력하게 주장하여 그 말을 사용한 것이라 했다. 편집자가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책을 건성으로 후다닥 읽은 나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서울에서는 짧은 일정에 너무 바삐 다니시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더 많은 시간을 ‘독자와 만남’을 가질 줄 알았더니 겨우(!) 세 번의 만남밖에 없다고 하셨다(이번 만남이 두 번째 만남이고 세 번째 만남이 4월 26일(앗, 오늘!)에 있다). 나는 며칠 전에 읽었던 여행 책에서 본 프랑스의 구도시와 신도시의 개념에 대해 여쭈어보며 우리나라는 불편한 보존보다는 편안한 새 집을 좋아하는 탓에 보존 지역으로 남는 집을 가진 사람들은 불평이 많다는 이야길 했던 것 같다. 그러자 프랑스 역시 그렇긴 하지만 주택보존법(아, 정확하지 않지만 비슷함;;)이라는 법이 있어 다들 존중해준다는 것과 세월이 흐르면 그런 곳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들 별 불만 없어 한다는 얘길 해주셨다. 그 차이는 아마도 돌과 나무의 차이라며 유럽의 대부분 오래된 집들은 돌로 만든 집이라 보존이 쉬워 몇 백 년이 지나도 형태를 유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집들이 나무로 지은 집이므로 보존이 수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북촌 등지에 있는 한옥들은 일제강점기에 지은 집들이 많아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사실은 없는 것도 있다는 거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리고 선생님이 집필할 예정인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얘길 듣는 것만으로 읽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여기 다 적질 못하겠다. 자세한 것은 아마도 채널예스에 올라올 테니 그때 다들 읽어보시길^^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지극히 사적인 질문을 해보라고 하시어 꼭 질문하고 싶었지만 막상 그 자리에 가니 그런 질문은 너무도 어이가 없는 것 같아 못하고 있던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선생님이 들려주는 불어였다. 카렌 앤의 노래를 즐겨듣는 편이라 그녀의 노래를 듣다보면 가끔 목소리 굵은 불어를 사용하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있다. 나야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부터 불어로 듣는 걸 애정한 편이라 듣다 보면 마치 시를 읽는 듯, 노래를 듣는 듯 들려서 매우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불어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한번 들어보고 싶다 하던 차였는데, 선생님이 불어를 하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흔쾌히 승낙을 해주신 선생님, 간단하게 인사만 해주셔도 되는데 뭘 읽나, 하시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밑줄 좍! 그은 문장을 펴드렸다. 바로 아래.

 

프로방스에서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

 

프로방스에 가면 인생이 아름답게 생각된다. 왜일까? 프로방스에서의 삶이 아름다운 까닭은 무엇보다도 햇빛 때문이다. 노랗고 투명한 햇빛 없는 프로방스는 상상할 수가 없다. 여름의 메마른 대지와 건조한 대기 속에 그야말로 부서져 터지는 햇살 속에서 인생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햇빛은 프로방스의 그 맑고 건조한 대기 속에서 밝음과 따뜻함을 글자 그대로 부스러뜨리고 터뜨려서 흩뿌려놓는다. 그런 햇빛에는 우울한 마음을 치유해주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반 고흐처럼 햇빛에 굶주린 음산한 북쪽 나라 사람들이나 나같이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혼잡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아직도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승낙해주신 것에 감사하여 동영상을 찍어볼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겨우 한 문장 건졌다. 굵은 문장 부분이다. 와우! 역시 멋졌다^0^

 

이 질문을 끝으로 정수복 선생님과의 만남은 끝이 나고 사인을 받을 시간, 한 사람이 사진에 사인을 받자, 멋지다며 다들 사진을 들고 와 사인을 받았다. 책에도 받고 사진에도 받는 이 행복한 즐거움을 누렸다. 참참, 책에 실린 사진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DSLR급의 카메라가 아닌 똑딱이 카메라로 찍었다는 사실!! 놀랍지 않은가? 멋진 사인을 받은 사진을 집 벽에 붙여두고 나는 프로방스를 꿈꾼다. 그곳에서 빨래를 널며 햇빛에 눈이 부셔서 한쪽 눈을 찡그려 보는 그 날을.


밖으로 나와 단체 사진을 찍고 우린 헤어졌다. 바람이 불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광화문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바람, 사실은 꽤나 센 봄바람이 불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이거야말로 '광화문 미스트랄'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이날 우린 프로방스 못지않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관람하고 삼청동의 어느 멋진 곳에서 여유 있는 브런치를 즐겼으며 프로방스의 미스트랄과도 같은 '광화문 미스트랄'을 맞으며 마치 '전문적인 산책자'가 된 것 마냥 돌아다녔다. 여유로움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 쫓기지 않는 스케줄로 내가 즐기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거야말로 여유로운 삶에 속할 수 있다. 그런고로 비록 프로방스로 떠나진 못했지만 이날의 만남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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