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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 [포토] 그를 찾아서 - 성석제 작가와의 만남 조회수 : 21070
글쓴이 : stella09 날짜 : 2011-04-18 14:42:00 추천 : 0 반대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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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찾아서 - 성석제 작가와의 만남에서




45분과 30분 사이에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행사 장소 근처까지는 늦지 않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다 와서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45분을 주위를 배회하고도 8시까지 찾아내지 못한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사실 8시도 행사 시작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은 것인데, 영화나 연극으로 치면 거의 3분의 1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어찌 보면, 이런 작가와의 만남도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인데 이것을 처음부터 함께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래도 그때만큼은 나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건, 내가 너무 먼 곳에서 왔다는 것과 성석제 작가를 전에 한번 만났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물어물어 장소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시각은 다행히도 8시를 넘기지 않았다.

옆에 계신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왕을 찾아서>다. 문득, 내가 찾은 건 뭐였을까, 묻고 싶어졌다. 장소였을까? 작가였을까? 아님, 내 안에 꿈틀대는 문학에 대한 열망이었을까?

폐일언하고 또는 이를테면,

우리나라 말에, 앞대가리 뚝 자르고 중요한 본론을 얘기할 때 '폐일언'이란 말을 쓰곤 한다. 앞에 무슨 얘기가 오고갔던지 중요하지는 않고,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주위를 환기시켜주기 위해 이런 말을 쓰는 것일 게다. 그래, 앞에 무슨 말이 오고갔던 폐일언하고, 지금부터 들어 볼 참이다.

내가 자리에 앉아마자 듣게 된 건, 작가가 글을 쓰겠다고 산속으로 들어갔던 이야기를 시작한 대목에서부터다. 그는, 꼭 필요한 기초생활 용품과 법률용어 사전을 들고(글쓰기 참고용이 아닌 취침용이란다) 무조건 산골 암자를 들어갔다고 한다. 대부분은 불편해서 오래 못 있고 하산하는 그곳을 작가는 버텨볼 요량으로 들어갔단다. 얼마나 불편했던지, 쓸 수 있는 취사도구라곤 가마솥 두 개가 전부라고 한다. 거기에 1인분 밥을 해 먹든 라면을 삶든, 뭘 해도 그 큰 가마솥을 이용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그러니 오죽 불편했을까? 게다가 마침 한쪽 손은 다쳐서 거의 쓸 수가 없었고, 누가 괴롭히는 사람도 없으니, 꼬박 한 달을 씻지 않고 살았단다. 그렇게 씻지 않으니 나중엔, 얼굴에서 무엇이 떨어지는데, 알고 봤더니 각질이 두껍게 쌓여 저절로 떨어지더란다. 그리고 그 속에 속살이 비치는데, 그때 처음 자신이 잘 생겼다는 걸 알았단다(이야기를 들으니 자신이 못났는지, 잘났는지 모를 때 해 봄직한 실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내가 나쁘지 않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즉효가 될 수 있지 않을까?ㅋ)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눈이 많이 왔던 어느 날 바깥을 나가봤더니 큰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건 사람 발자국 같지는 않았고, 큰 짐승의 발자국 이를테면 호랑이의 발자국이었다고 한다.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작가는 며칠을 숨소리조차 재대로 내지도 못하면서 지낸 웃지못할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아마도 작가는 그때를 모티프로 해서 훗날 『호랑이를 봤다』를 썼을지 모를 일이다.

그는, 천생 소설가다



내가 작가를 처음 만났던 건, 지난 2006년 작가가 『참말로 좋은 날』을 펴낸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지금이야 작가 외에 사회자도 있고 낭독자도 초대되어 세련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하지만, 그 시절엔 작가 혼자 연단에 나와 연설인지, 강의인지, 잡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고 끝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썰렁했지 싶다. 지금 저렇게 하는 걸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썰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땐 그때 나름의 분위기와 멋이 있지 않은가? 기억나는 건, 그날 찾아준 독자들에게 주최 측에서 떡을 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얼마나 기대하지 않던 멋진 횡재란 말인가?

그때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러니 꼭 5년만이다. 5년 만에 만난 작가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약간 느리고도 어눌한 말투도. 약간 싱거운 듯한 입담도.

그는 모기업 사원 출신이다. 우연히 그 기업 창업주가 돌아가면서 장례식 때 읽을 조사를 대신 쓴 것이 개기가 되어 사보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곳으로 갔다가,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하는, 틀에 박힌 삶이 싫어 회사를 다니다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학교 잘 졸업하고, 직장 잘 다니는 평범한 삶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늘 관심 있어 하는 쪽은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번에 재출간되어 나온 『왕을 찾아서』도 역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조폭들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는, 성석제 작가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가 기억에 남는다. 황만근이란 이름도 쉽게 잊히지 않고, 그것도 조폭두목에 관한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나름 재밌게 읽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성석제 작가는 참 솔직담백하다. 한번은, 자신의 작품을 읽은 어느 독자가 만나자고 청하더란다. 그런데 그는 다름 아닌 진짜 조폭이었단다. 그것도 두목. 그가 작가에게 조폭의 세계에 대해 완전히 다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소위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다. 어찌나 무섭게 생겼던지, 작가는 그때 이후로 이 세계를 버렸다고 해서, 웃었다.

많은 소설가들이 그러하듯,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 시로 등단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동안 시집도 두 권이나 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프로필엔 그것이 늘 빠져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의 소설만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고, 그 스스로도 지금은 시를 쓰지 않고 소설만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실을 발견하고 기뻐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이 날 사회를 맡은 시인 신용목 씨다. 그는 작가에게, 혹시라도 지금 누가 원고료를 준다면 시를 다시 쓰겠냐고 했더니, 누가 나에게 그런 명목의 고료를 줄 리 없고, 그래서 시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이 소설이거니와, 그것으로 돈을 벌어왔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을 바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이 속상하고, 슬플 때 울어버리면 그 눈물과 함께 자신의 마음이 정화되는 것처럼, 그에게 있어서 소설쓰기란 그런 거라고 했다. 이렇게 좋은 일에 돈까지 주겠다는데, 이 좋은 일을 왜 마다하겠냐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는 천생 소설가란 생각이 든다.



그는 소설계의 안성기다!

사회자 신용목씨는, 또 이런 말도 했다. 형님(신용목씨는 작가가 자신과 같은 동향이라고 해서 친근하게 이렇게 불렀다)은 작가들의 세계에선 가장 잘 생겼다고. 그러면서 영화배우 누구를 닮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러자 독자들이 와 웃었다. 나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웃음의 정체는 뭘까? 긍정인가? 부정인가? 그러자 대뜸 누군가는, "안성기요! 옆모습이!" 한다.

그런데 작가가 너무 겸손해서 일까? 전에 작가가 어딜 가는데 누가 대뜸, "어, 안성기다!"하더란다. 그는 그것을 못 들은 척하고 계속 가던 길을 갔는데, 그 사람이 계속 자신을 쫓아오더란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쯤해서 자신이 안성기가 아님을 솔직하게 보여줘야겠다고 해서, "저 안성기 아닌데요."했단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은 작가를 봤던 것이 아니라 그 앞에 가는 사람에게 했던 것이다. 순간 어찌나 무안했던지. 듣고 있던 우리도 박장대소를 했다.

그래서일까? 정말 배우 안성기 씨와 닮은 일면이 있는 것도 같다. 특히 정말 옆모습이! 눈가에 잡히는 굵은 주름도 얼핏 그를 연상하게도 된다. 아무튼 그 사실을 인정을 하든, 안하든 그는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작가의 사람들

그는 비상한 재주를 가졌다. 이를테면,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잘 그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이 아는 이미지로 그린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넌 왜 소설에서 한번도 나를 등장시키지 않느냐"고 불만 아닌 불만을 사기도 한단다. 사실 알고 보면 한번씩은 다 등장시켰는데, 그것이 자신들이라는 걸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또는 그와는 반대로, 지난날의 애인들(이것도 작가만이 아는 애인은 아닐까?)을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자신은 이 사람을 생각하고 썼는데, 여러 사람이 자신을 생각하고 쓴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해서 난감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과연 작가의 인물에 대한 특수성과 보편성이 이렇게 들어나는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이 대목해서 지난 2006년, 독자와의 질의응답시간에 내가 질문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난, 작가도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소설에 쓰기도 할 텐데, 그동안 실제 인물이 나타나서 왜 나를 그렸냐고 시비를 걸었던 적은 없냐고 물었었다. 사실 이 질문은 그냥 물었던 질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나에겐 좀 절박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때 작가는, 그런 적이 딱 한 번 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역시 조폭두목. 그때 작가는, 나는 당신보다 더 높은 사람을 알고 있다고 했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도와줘서 해결했다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다. 물론 작가는 절대 기억 못하겠지만.



제목에 대하여

다른 작가도 매번 자신의 작품에 가장 좋은 제목을 부여하겠지만, 성석제 작가 역시 제목을 잘 짓기로 빠지지 않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제목이 너무 좋아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그래서 팬이 된 독자도 있다고 했다. 하긴, 이번에 다시 나온 『왕을 찾아서』도 그렇고, 『호랑이를 봤다』도 그렇고, 앞서 말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도 있고, 나름 독특하면서도 뭔가 있어 보이는 아우라가 있다.

하지만, 역시 우리의 작가님은 또 한 번 겸손의 미덕을 발휘해 주신다. 전에 ‘연어’니 ‘고등어’니 주로 물고기로 제목을 지어서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이 있어 자신도 ‘쏘가리’란 이름으로 작품을 쓴 적이 있는데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가끔은 그러냐고 넘어갈 법도 한데, 작가는 스스로가 자신의 말에 초를 친다. 이것이 또 얼마나 웃기던지. 어찌 보면 이것이 성석제 작가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에게 전성기란 없다

분위기는 정말 즐겁고, 재미있었다.(거짓말 조금 보태서) 2006년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그때 질의응답 시간은 서로들 눈치를 보느라 그다지 활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런 질문대열에 낄 수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날은 서로들 질문을 하느라 시간이 모자를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새삼 성석제 작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 한 독자가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냐고. 그런데 그의 대답이 나로선 좀 의외였다. 나는 그 질문을 존경하는 작가가 누구냐, 란 질문의 의미로 생각하고, 선배 작가 누구를 말하지 않을까 생각 했었다. 그런데 그는, 박지원과 홍명희와 이옥을 들었다. 우리와는 시대를 같이 하지 않는 까마득히 지난 시대의 작가들이다. 역시 그의 해학적 문장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어떤 독자는 어느 때가 가장 좋은 작품을 썼던 시기였냐고 묻기도 했다. 이는 전성기가 있었는지, 있다면 어느 때였는지를 묻는 질문 같기도 하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지금"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건 정말 맞는 대답일 것 같다. 전성기를 추억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만일 그때를 추억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이미 노쇠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번 작품 보다 이번 작품이 더 좋은 것이며, 다음에 쓸 작품이 이번 작품 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는 늙지 않으며, 독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열정 가지고 작가는 매번 독자를 웃기고 동시에 감동을 주었다. 다음엔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어떻게 웃겨주고, 감동을 줄지 매번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가, 성석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또 기대해 보자.

(사진: 문학동네, 마담웬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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